확장메뉴
주요메뉴


소득공제
공유하기

호미

리뷰 총점10.0 리뷰 1건 | 판매지수 486
구매 시 참고사항
  • 제40회 신동엽문학상 수상작
eBook이 출간되면 알려드립니다. eBook 출간 알림 신청
12월의 굿즈 : 로미오와 줄리엣 1인 유리 티포트/고운그림 파티 빔 프로젝터/양털 망토담요 증정
[단독] 시와 X 요조 〈노래 속의 대화〉 북콘서트
[작가를 찾습니다] 미리 만나는 "한국 문학의 미래가 될 젊은 작가" - 김선오
2022년 읽어보고서 : 예스24로 보는 올해의 독서 기록
2022 올해의 책 24권을 소개합니다
12월의 얼리리더 주목신간 : 행운을 가져다줄 '네잎클로버 문진' 증정
책 읽는 당신이 더 빛날 2023: 북캘린더 증정
월간 채널예스 12월호를 만나보세요!
소장가치 100% YES24 단독 판매 상품
쇼핑혜택
현대카드
1 2 3 4 5

품목정보

품목정보
출간일 2021년 10월 29일
쪽수, 무게, 크기 282쪽 | 332g | 135*200*18mm
ISBN13 9788966551415
ISBN10 8966551416

이 상품의 태그

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농민이며, 여성이 사는 삶

전남 진도에서 농사를 지으며 소설을 쓰는 정성숙 작가의 첫 소설집이 나왔다. 정성숙 작가의 이 소설집은 그동안 한국문학이 ‘까맣게 잊고 있던’ 농촌 현실을 아주 본격적이면서도 생생하게 그리고 있다. 더군다나 여성 농부의 관점으로 해남 지역의 입말과 정서를 통해 오늘날 우리 농촌과 농촌에 사는 농민이 처한 현실을 박진감 있게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4차 산업혁명과 첨단의 디지털 기술이 현실이 된 상황에서 농촌과 농민의 언어가 무슨 의미와 가치를 갖는 일일까. 작가가 그린 농촌 현실에서도 이런 현실은 적나라하게 반영돼 있다.

목차 목차 보이기/감추기

호미 … 007
기다리는 사람들 … 049
백조의 호수 … 087
복숭아나무 심을 자리 … 117
아직도 건네지 못한 이야기 … 147
이른 봄 … 177
연변 봉숭아꽃 … 207
놈 … 237

해설 | 문종필 … 269
작가의 말 … 277

저자 소개 (1명)

책 속으로 책속으로 보이기/감추기

“너 시방 뭔 말을 하고 자빠졌냐! 이잉! 니 새끼덜이 끄니를 굶고 있는 것도 아니고. 오메! 샛바닥은 짧은데 침은 멀리 뱉고 잡은 모양이구마이. 쌍놈이 갓을 쓰믄 머리가 빗겨진다고 했어야. 이 썩을 놈아. 그 땅이 으떤 땅이라고 터진 주둥아리라고 아무 말이나 내뱉어도 된닥하든. 엉! 행여 넘덜이 그 밭을 꿩 이마빡 같은 산전밭이라고 씨부렁거리드라도 너는 그라믄 안 되제. 아아믄! 집은 험해도 살제마는 땅이 없으믄 끄니를 굶는 것이라서, 느그 삼 형제 주둥아리에 풀칠이라도 시캐줄라고 느그 성… 느그 성 생목심하고 맞바꾼 것을 모른다고는 할 수 없겄제. 아믄, 아믄! 인두겁을 쓰고 그랄 수는 없제! 그랄 수는, 그랄 수는….” --- 「호미」 중에서

비 오는 날에 심심풀이로 컴퓨터에서 화투 놀이를 하면서부터 미애는 변하기 시작했다. 컴퓨터에 나타난 전화선 너머 남자와의 만남을 통해서 농사 외의 다른 세계를 봤다고 했다.
가꿔놓은 농사와 함께 밟히기만 했던 지난날은 놔두더라도 빚더미에 눌려 숨이 막힐 것 같다고, 금방이라도 뒷덜미를 잡혀서 내동댕이쳐질 것같이 조마조마하기만 한 일상에서 도망치고 싶다고도 했다. 땡볕에 고추 따며 사는 고달픔만큼 덤으로 따라오는 억울함을 견딜 수가 없어서, 배 터지게 애쓴 만큼 빚만 늘어나는 농사에서 발을 빼고 다른 것을 해보자고 창선한테 말했다가, 허파에 바람 들어서 쓸데없는 소리나 지껄이는 주둥이는 맞아야 정신 차린다며 입을 주먹질당했다고 했다. --- 「기다리는 사람들」 중에서

태풍이 김장 배추를 거의 휩쓸어간 덕분으로 겨울 배추 심을 때는 산지 거래 가격이 평당 만 원까지 치솟았다. 기회를 잡은 농산물 수입업자들은 중국산 배추를 들여오기 시작했고 농사꾼들은 비어 있는 땅 곳곳에 배추를 심었다. 더군다나 9월 말까지 날씨도 협조를 해줘서 물이 고여 있던 논에도 배추를 심을 수가 있었다. 하늘은 인심을 더 써서 10월까지 춥지 않은 늦가을 날씨를 만들어줬다. 예년 같으면 9월 말이나 10월 초에 심으면 결구가 되지 않던 배추까지 배가 댕댕하게 불러서 그야말로 배추가 풍년이었다. --- 「백조의 호수」 중에서

“아따아! 집구석에서 하던 꺽정을 집구석에 놔두고 나오제 뭣 났다고 천리만리까지 끋고 와서 술맛 떨어지게 하고 있으까이. 우리덜 당면 과제는 장개를 가는 것이고, 농촌 총각이 장개를 가야 농촌의 인구를 늘려서 애국하는 길이랑께에.”
“애국 같은 소리하고 자빠졌네. 정치하는 것들이 우덜을 홍어좆으로 보고 의붓새끼로 아는데 뭔 놈의 애국은 애국이여! 그런 것 있으믄 개나 줘서 뜯어 먹으라고 하제!”
“그것보담도 농사꾼이 살라믄 미국 놈덜 모가지를 틀어부러야 한다고오!” --- 「복숭아나무 심을 자리」 중에서

그 순간, 뒤에서 튀밥 튀기느라 뻥! 하는 소리에 놀라서 귀숙은 주저앉을 뻔했다. 맑은 하늘에 별이 번쩍번쩍하는 그 사이로 축사의 배부른 개들이 휘익 지나갔다.
“막걸리 한 사발에 안주로 시발낙지 한 마리랑 요놈하고 바꿔 먹어도 막걸리 한 사발 값은 더 내게 생겼시다!” 하는 노인네를 뒤로 한 귀숙은 튀밥 튀기는 곳으로 돌아와 쪼그리고 앉았다. 머리가 메추리알만 한 세발낙지들이 온몸에 달라붙어서 꿈틀거리는 것 같아서 몸서리가 쳐졌다. 귀숙은 세발낙지들을 피해보려고 벌떡 일어섰다. 눈에서 세발낙지가 핑그르 돌더니 무릎이 탁 꺾였다.
--- 「이른 봄」 중에서

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보이기/감추기

농민이며, 여성이 사는 삶

전남 진도에서 농사를 지으며 소설을 쓰는 정성숙 작가의 첫 소설집이 나왔다. 정성숙 작가의 이 소설집은 그동안 한국문학이 ‘까맣게 잊고 있던’ 농촌 현실을 아주 본격적이면서도 생생하게 그리고 있다. 더군다나 여성 농부의 관점으로 해남 지역의 입말과 정서를 통해 오늘날 우리 농촌과 농촌에 사는 농민이 처한 현실을 박진감 있게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4차 산업혁명과 첨단의 디지털 기술이 현실이 된 상황에서 농촌과 농민의 언어가 무슨 의미와 가치를 갖는 일일까. 작가가 그린 농촌 현실에서도 이런 현실은 적나라하게 반영돼 있다.

비 오는 날에 심심풀이로 컴퓨터에서 화투 놀이를 하면서부터 미애는 변하기 시작했다. 컴퓨터에 나타난 전화선 너머 남자와의 만남을 통해서 농사 외의 다른 세계를 봤다고 했다.
(…)
미애는 없는 틈을 만들어서라도 컴퓨터 앞에 앉아 농사짓지 않는 사람들의 세계를 탐험했다. 영락없이 남편 모르게 연정을 키우는 모습이었다. 그 모습이 창선의 눈에 걸려들어 여지없이 주먹질을 당했고 그 일이 울고 싶은데 뺨 맞은 격이 되어 미애는 집을 나가버렸다.
―「기다리는 사람들」 중

작중 미애는 고단한 농사를 피해 ‘랜선’으로 농촌 바깥의 사람들을 만나다가 남편인 창선에게 폭행을 당하고 집을 나가버린다. 동네 사람들은 그런 미애더러 “콤피터랑 연애”했다고 수군거리지만 미애의 친구인 “나”는 미애가 집을 나간 이유를 정확히 알고 있다. “콤피터랑 연애” 자체가 미애가 감당해야 하는 농촌 현실 때문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바로 “가꿔놓은 농사와 함께 밟히기만 했던 지난날은 놔두더라도 빚더미에 눌려 숨이 막힐 것 같”고, “금방이라도 뒷덜미를 잡혀서 내동댕이쳐질 것같이 조마조마하기만 한 일상에서” 미애는 도망치고 싶었던 것이다. 그런 심리에 도시에 사는 사람들, 특히 타자의 삶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아는 척’을 하는 전문가들이 불을 질렀다.

“정신과의사라는 사람이, 지금 당신이 하는 일이 당신의 미래를 결정한다, 그런 말을 했닥하냐. 가만히 생각해보믄 진짜 맞는 말 같드라.”
“창선이 그놈이 또 너한테 주먹질하든?”
―「기다리는 사람들」 중

여성인 미애의 실존 상황은 피폐한 농촌의 현실에다 가부장적 폭력이 더해진 것인데, 작가는 이 가부장적 폭력도 농촌의 현실이라는, 오래된 사실이지만 여태껏 변함이 없는 사실을 생동감 있게 드러낸다. 이제는 아예 소멸을 말하는 농촌 현실이 남성이든 여성이든 가리지 않고 힘들게 하지만, 여성 농민은 이중의 무게를 짊어지고 있다는 점을 놓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이는 작가 스스로가 여성으로서 농촌에서 농사를 짓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인지 모른다. 아울러 도시와 도시의 문화가 농촌을 지배하는 현실에서 농민은 그저 예능 프로그램의 우스갯거리가 되고 있는 형국이다.

버스가 인천공항에 도착하기 전까지는 자신들이 촌놈들이라는 것에 신경 쓰지 않았는데 버스에서 내려 공항에 들어서자 딴 세상이 펼쳐졌다. 똥지게 지고 장에 가면 이런 기분이 들까 싶게 지나가는 사람들의 눈동자는 커지는 것 같고 촌놈들의 몸뚱이는 자꾸만 졸아들고 있었다. 그나마 스물두 명이 무리 지어 있을 때는 덜한데 혼자서 화장실에라도 다녀올라치면 숫제 죄인처럼 오금이 저리기까지 했다.
―「복숭아나무 심을 자리」 중

베트남 여성과 국제결혼(?)을 하기 위해 도착한 인천공항에서 농촌의 늙은 총각들이 처한 상황을 묘파한 이 장면에서 우리는 슬픈 희극을 마주하게 된다. 이제 농촌과 농민의 삶은 ‘찬란한’ 도시 문화의 웃음 제공자로 추락하기까지 한 것이다.


농토에서 부동산으로!

한국 사회의 부동산 문제는 그 기원과 역사가 복잡한 사안이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농업의 궤멸 현상과도 관계가 있다는 점이다. 이제 도시뿐만이 아니라 농촌의 논밭도 부동산으로 추락 중이다. 농사의 지속, 대물림이 끊어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부모에게 물려받은 논밭을 팔거나(「호미」), 농사를 작파하고 중간상인을 하는 쪽(「백조의 호수」)이 ‘경제적’으로 더 나은 삶의 방식이다. 차라리 이런 삶이 합리적이며 시대에 뒤처지지 않는 방향이다.

―어머니는 산 너머 쪽으로 도로 정비사업이 진행되고 있다는 말 들으셨소?
“시방 질을 맹근 지도 맻 년 안 되고 을마나 넓고 존데 새 질을 맹글어야?”
―그 길이 위험하게 내져서 이번에 새로 길을 낸다요.
“…?”
―그쪽 땅값이 날마다 오르고 있다는 것을 모르고 계셨단 말이요?
“그랑께에, 시방, 니, 말은, 산 너머 밭을….”
―어차피 내 앞으로 된 땅이고 하니까 내가 정말 필요할 때 요긴하게 써야지 농사도 잘 안되는 땅을 옆구리에 끼고만 있으면 심이 언제 필 것이요!
―「호미」 중

한센병에 걸린 큰아들 효준이 죽기 전에 함께 일군 “산 너머 밭”을 둘째 아들이 자기 몫이라며 팔자는 이야기에 “영산댁”은 가슴앓이를 하지만 그녀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리랑을 부르는 일밖에 없다. 이 작품에서 영산댁이 밭을 매며 부르는 아리랑은 영산댁이 처한 상황을 독자들의 가슴속으로 흘러 들어오게 한다. 영산댁이 마음을 의탁하는 존재는 미운 ‘이웃들’이지 도시인이 된 자식들이 아닌데, 이제 그 이웃들마저 품팔이로 전락하고 있는 현실을 작가는 놓치지 않는다. “산 너머 밭”에서 쓰러졌다 간신히 살아 돌아온 영산댁의 눈에 보이는 것은 양파 작업을 떠나는 “봉고차뿐”이었다.
정성숙 작가는 이 소설들을 써야만 했던 어쩔 수 없는 배경을 이렇게 말하고 있다.

십수 년 전에 쓴 소설들입니다. 변화무쌍한 요즘과는 시대성이 맞지 않는 것 같아서 출판을 포기했었습니다. 그러다가 가만 생각해보니, 농민들의 삶의 내용은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는 판단이 들었습니다. 드론이나 자율주행트랙터가 등장했지만 호미로 풀을 뽑아야 하는 원시적인 고달픔은 여전합니다. 천한 일은 호미를 쥔 자들의 몫입니다.
농촌에 품앗이가 없어지면서 공동체의식은 거의 무너졌고 추가 비용으로 외국인 인력이 그 자리를 메우는 정도가 달라졌습니다.
―「작가의 말」 중

“천한 일은 호미를 쥔 자들의 몫”이라는 작가의 한마디가 이 소설집을 관통하는 핵심이다. 첨단 문명이 제아무리 날뛰는 시대라 할지라도 “천한 일”은 사라지지 않고 그것을 감당해야 하는 존재들은 변함이 없을 것인데, 그 존재들은 바로 여성이다. 그런데 농촌에서도 도시에서도 이 현상은 한결같다. 하지만 반대로 그 천한 일을 하는 “호미를 쥔 자들”이 없다면 이 세계도 없을 것이라고 고쳐 읽어도 무방할 것이다.
한국문학은 이제 이 최전선의 삶을 외면할 수 없게 되었다!

추천평 추천평 보이기/감추기

말은 맛있고 이야기들은 징하다. 요새 이런 소설을 쓰는 건 저항일까, 몽니일까? 이의 있다는 소린가? 그런 소리 말자. 농촌이 없어진 동네도 아니고 거기도 엄연히 삶이 있는 곳이다. 예나 지금이나 거기나 여기나 뒤도 없는 세상인 건 매한가지이고 보면 시세 따져 이야기할 이유가 없다. 대파밭에서 고추밭에서 배추밭에서 재래시장통에서 갑갑한 인생들이 견디고 사는 건 제 삶에 주인이 되고자 하는 몸부림이고, 인간이기를 포기하지 말자는 것이다. 이 덕목들이 빤하다고? 그럴까? 소설은 한 치도 거들먹거리는 바 없이 생짜여서 전형적인 이야기들이 없다. 우리가 왜 숨막히는 삶을 부린 자리에서 언어의 생명력을 건져서 한숨 돌리는지, 왜 그게 문학의 소임이기도 하는지. 이 탁월하고 정직한 작가는 짱짱한 소설들로 보여준다. 여덟 편이 하나같이 진짜배기다.
전성태(소설가)

회원리뷰 (1건) 리뷰 총점10.0

혜택 및 유의사항?
구매 포토리뷰 농촌, 그곳에도 삶이 흐른다 내용 평점5점   편집/디자인 평점5점 b*****1 | 2021.12.08 | 추천1 | 댓글0 리뷰제목
계간 <창작과 비평> 통권 194호, 특집란의 '진실의 습격'에서 언급된 책들 가운데 정성숙의 <호미>가 있다. 진도에서 32년째 농사를 짓고 있다는 이력 외에는 공개된 이력이 없는 작가라 한다. 십수 년 전에 쓴 소설들이라 출간할 생각도 못하다가 농촌 현실이 그때나 지금이나 변한 게 없다 싶어 출판을 결심했다고. 질펀한 남도 사투리가 난 익숙하니 고민할 필요없이 얼른 주문했;
리뷰제목
계간 <창작과 비평> 통권 194호, 특집란의 '진실의 습격'에서 언급된 책들 가운데 정성숙의 <호미>가 있다. 진도에서 32년째 농사를 짓고 있다는 이력 외에는 공개된 이력이 없는 작가라 한다.

십수 년 전에 쓴 소설들이라 출간할 생각도 못하다가 농촌 현실이 그때나 지금이나 변한 게 없다 싶어 출판을 결심했다고. 질펀한 남도 사투리가 난 익숙하니 고민할 필요없이 얼른 주문했다.

여덟 편의 단편 모두 오래 전 농촌 모습을 이야기한 건 맞지만 지금이라고 영 딴판은 아니니, 오히려 소설 속 배경보다 더 황폐해진 부분들도 있으니, 시대감 떨어지는 농촌 소설일 거라 오해하면 안된다. 도시 사람에겐 SF 재난소설로 읽힐 수도 있겠다. '해빙기를 맞은 저수지의 얼음판 위에 서있는 꼴'이라 말하는 농사꾼들의 절박하고 답답한 현실이 거칠고 생생하고 그려지니까. 일반화하면 안되겠지만 바다를 낀 지방의 농사꾼들은 바다일과 농사일을 두루 해내야 하는 억척스러움을 강요당하기도 하니 어느 부분 재난 상황 맞다. 일반적으로 여자의 일은 '일상적으로 조바심이 묻어있는 잰 손놀림'이라 당연시되고 가볍게 취급되지만, 남자의 일은 '드물면서도 결정적인 마무리가 될 수 있'는 농촌 현실이니 온종일 억세게 일하고도 가려지는 여성 노동은 더 재난적이다. 열받음과 쓰라림 때문에 <한국 기행>같은 프로그램 잘 못보겠더라.
한겨울 갯벌에서 조개 캐고 미역 따다 말리는 할머니들, 시금치며 방풍나물이며 겨울에도 푸른 채소들 기르는 할머니들, 배추 뽑고 대파 묶는 할머니들, 장에 내다 파느라 쪼그려 앉은 할머니들. . .남도 바다와 들녘에는 쉴 수 없는 여자들, 무릎이며 허리며 손가락이며 어디 한군데 성한 곳 없이 노동하는 여자들 모습이 빠지질 않으니 뜨신 곳에서 편한 자세로 관람하고 있을 수가 없다. 농촌의 들녘에는, 할머니들에게는 휴식기도, 은퇴도 따로 없다.

이 책에서도 결정과 결단이 필요한 일은 주로 남정네들이 벌이고 뒷치닥거리하듯 매일의 노동은 여자들의 몫이 된다. 쑤시는 삭신마저 다 내주며 일하는데도 빚더미에 앉게 되는 이상한 현실에서 입도 몸도 걸어지다가 마침 울고 싶을 때, 악 쓰고 싶을 때 이웃과 대거리를 하고 머리채를 잡을 수밖에 없는 여자들…그러니 농사 짓지 말라고, 농촌을 벗어나라고? 무능하고 무책임한 대답할 거면 닥치고 이 책이나 읽을밖에.

영산댁은 손과 발을 움직여봤다. 오른손과 오른 발은 아쉬운 대로 기운을 쓸 수 있을 것 같은데 왼쪽은 움직임이 전혀 만들어지지 않았다. 마비 상태 그대로였다. 오른쪽을 쓸 수 있다는 것이 천만 다행이었다. 여기서는 자신이 죽어서 살이 썩고 뼈만 나뒹굴어도 동네 사람들은 모르리라. 해가 지기 전에 산을 내려가서 사람들 눈에 띄어야 한다. 그래서 서울로 쫓아가서 둘째 아들 기준이 언감생심, 산 너머 밭을 어쩌지 못하도록 오금을 받아놔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42p

문득 호미만 있으면 깊은 샘이라도 팔 것인데…
"호무,그래 호무!" 영산댁은 오른발 근처에서 호미를 찾아내자, 어쩔 수 없이 까치밥이 될 모양이다 싶던 두려움을 다 물리칠 수 있었다. 43p

영산댁의 손에 호미가 쥐어져 있다는 것은 산 아래가 아니라 기어서 서울까지라도 갈 수 있다는, 굴삭기 못지않은 장비를 갖춘 셈이었다. 44p

<호미>에서는 농사꾼의 분신같은 호미가 대파 밭의 억센 잡풀들을 제거해 주는 작고 든든한 농기계이자 마비된 영산댁의 생명을 살려주는 구급품으로 등장한다. 그 작은 호미에 의지해 몸을 끌어 산 아래까지 겨우 내려온 영산댁이 마음먹은 당장 할 일은 병원에 가는 게 아니다. 큰아들과 일군 산 너머 밭을, 그 밭에 박힌 큰아들의 피땀을 지키려는 것이다. 어미의 마음이, 그 슬픈 강단이 먹먹해져서 잠시 허공에 마음을 부려놓아야 했다. 내 마음 아닌 듯…


식당에서 설거지하고 한 달에 백오십만 원이면 고추 육백여 근이었다. 식당 일을 앉아서 하는 것은 아니겠지만 최소한 헛일은 아니고 손해 보는 짓도 아님은 분명하지 않을까. 더구나 뼈에 금이 가는 줄도 모르고 지어놓은 농사가 어째서 헛농사가 되는지 납득할 수 없어서, 어금니 부서질 것 같은 억울함을 어쩌지 못하고 손에 잡히는 무엇이라도 던져서 깨부수고 싶은데.
66p

가꿔놓은 농사와 함께 밟히기만 했던 지난날은 놔두더라도 빚더미에 눌려 숨이 막힐 것 같다고, 금방이라도 뒷덜미를 잡혀서 내동댕이쳐질 것같이 조마조마하기만 한 일상에서 도망치고 싶다고도 했다. 땡볕에 고추 따며 사는 고달픔만큼 덤으로 따라오는 억울함을 견딜 수가 없어서, 배 터지게 애쓴 만큼 빚만 늘어나는 농사에서 발을 빼고 다른 것을 해보자고 창선한테 말했다가, 허파에 바람 들어서 쓸데없는 소리나 지껄이는 주둥이는 맞아야 정신차린다며 입을 주먹질당했다고 했다. 77p

<기다리는 사람들>의 미애는 남편의 주먹질도 징했지만 그보다 '늙어 꼬부러질 때까지 흙을 파도 사는 각단이 안 뵈는' 삶을 더는 안 살고 싶다고, '그 구덕 생각만 해도 징상스럽다'고 밝힌다. 그 곳으로 절대 돌아가지 않겠다고.
미애처럼 식당일이 차라리 낫다며 마을을 떠난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곳에 머물러 살면서 농사에서 비껴난 이도 있다. 미세스 장, 미영, 갑기 아내로 불리는 '나'는 <백조의 호수>에서 상인과 밭주인을 연결해주는 중간상인으로 일하며 돈을 번다. 그게 품팔이나 농사일보다 벌이가 낫고 육체적으로도, 시간적으로도 여유롭다. 그녀는 유자향 가득한 차 안에서 백조의 호수를 들으며 저쪽 아낙네들을 바라본다.

3kg이 넘는 배추를 하루 종일 트럭에 올리고 있다. 대파를 뽑는 일은 또 얼마나 고된가. 허리를 구부린 채로 엎드려서 대파를 하루 종일 뽑다 보면 손목이 시리다 못해 퉁퉁 부어서 집에 돌아온다. 그리고 다음날은 손이 부어서 주먹이 쥐어지지 않는 손가락을 주무르면서 들로 나간다. 그렇게 애를 쓴들 불어나는 농협 이자는 그녀들의 품삯보다 몇 곱절이었다. 결국 그녀들은 물 위의 그림같이 떠 있는 백조 같은 모양을 만들어낼 수 없다. 결코.
나도 몇 년 전까지는 저 아낙네들처럼 살았다. 그때의 아득함이라니.머리를 처 박고 흙만 들여다보다가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는 것은 날씨를 가늠하기 위함이었지 산 너머 다른 세상이 궁금해서가 아니었다. 97~98p


겨울은 농한기이니 수확으로 여유 누리며 그간의 노동을 쉬어가는 시기라 생각하면 당신은 빼박 도시인이다. 따뜻한 남도의 겨울은 배추와 대파, 시금치, 방풍나물…의 계절이다. 그러니 '남정네들은 동무를 찾아 소일거리하고 아낙네들은 들일을 찾아 나'서는 계절인 것이다. 하우스 농사가 대세인 요즘은 남도가 아니라도 농촌 어디나 이런 풍경이겠지. 다행한 건 옛날처럼 남자라고 한량처럼 굴 수 없는 현실 정도?
울집은 농사를 짓지 않았지만 나는 겨울마다 배추밭에서, 대파밭에서 허리 꼬부라지는 아낙네들을 보며 자랐다. 내 삶과는 전혀 상관없다는 듯, 차 안의 미영처럼. 이제는 올해 고추값이, 배추값이. . .대파밭을. . .하는 소식을 조금 깊이 받아들이곤 한다. 내 삶이 그들의 삶과 이어져 있으니, 생각보다 크게 얽혀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그들이 징한 세상, 징한 빚을 한탄하지 않고 농사 짓는 일도 먹고 살만 하다고 자랑할 수 있길 바란다. 답답함과 억울함이 부르는 울분이 아니라, 순간순간 자긍과 평화를 느끼는 하루가 쌓이길 바란다. 그렇게 내일을 보며 농사 지을 수 있는 세상이길 간절히 빈다.


"고렇게 멋진 효율성을 따지믄 농사를 안 짓는 것이 그중 효율성이 높겄구만!" 189p

귀숙은 자신이 사는 꼴을 들여다보니 호적상으로만 경석의 아내일 뿐 실상은 머슴도 상머슴에 불과한 밭두렁 등신이었다. 삼백예순 날에서 삼백날을 넘게 밭고랑을 기어 다니고 소똥을 치우고 살아도 빚더미 속에서 다리 한번 제대로 펴보지 못하는데 서방이라는 작자까지 흘리고 다니는 일거리가 발에 채여서 지 맘대로 나오는 숨도 조절해서 쉬어야 할 판이었다. 무엇보다도 들에서 자신의 삭신을 굴리는 만큼 빚이 줄어야 마땅한 이치인데 빚덩이는 몸뚱이를 더 굴려 커져만 가니 환장할 노릇이었다. 대출받아서 이자 막고 다시 대출받아서 연체이자 막았다. 폭우로 방죽 둑이무너졌는데 귀숙 자신은 무기력하게 호미 자루만 만지작거리고 있는 꼴이었다. 194 P

재작년 작은아들 유치원 재롱잔치 때 장래 꿈이 아빠처럼 힘센 농사꾼이라고 발표해서 질겁했다는 마누라의 말에 나는 그런 마누라한테서 날카로운 배신감을 느꼈다. 아이의 꿈이 농사꾼은 아니라 한다는 마누라의 바람이 내 희망이기도 했어야 하는지. 245p

"애쓰고 일하믄 일한 만치 빚이 덜어져야 할 것인데, 어찌케 된 시상인지 애를 쓰믄 쓸수록 빚이 불어나니 뭣이 잘못되었어도 한참 잘못 되었당께!"
267p

진도에서 농사 지으며 글 쓰는 작가님의 소설이지만, 허구만도 아니고, 남도만의 이야기는 더더욱 아닐 터. 농기계가 좋아도 여전히 사람 손이 더 많이 쓰이고, 농기계 구입마저 빚을 더하며 농번기 농한기 구분없이 체력을 영끌해서 쉼없이 노동해야 하며 신농법이다, 도농교류 판매교육이다, 농촌체험이다. . . 이제는 농업인에 경영인까지 되어야 한다고 강요하는 세상인데도 농사꾼들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었다. 언론에서 비추는 농촌은 태풍 피해나 느긋한 마당 풍경, 이웃들과 어울려 지역 특산품 홍보하느라 한상 차려먹거나신작물 재배, 귀농 성공 사례 같은 만들어진 모습들뿐이다. 오래 전에 쓴 소설들이라곤 하지만 지금의 농촌은 뭐가 더 나아졌을까 생각하니 답답하고 속상하다.
'성성한 생태만 보믄 이문 냄길 생각부텀 드는 것이 아니고 니 생각부터 들더랑께. 아이, 먹어봐라이. 얼크은 할 것이다.'고 영심을 챙겨주는 선우엄마처럼
(<아직도 건네지 못한 이야기> 159p) 뭐라도 그들에게 위로가 되길, 연대하는 맛이 생태찌개의 '얼크은 한' 맛처럼 속에 채워지길.





댓글 0 1명이 이 리뷰를 추천합니다. 공감 1

한줄평 (2건) 한줄평 총점 10.0

혜택 및 유의사항 ?
평점5점
어려운사투리지만읽는데지루하지않고군더더기없이늘어지지않고농촌의현실을핵심으로보여줍니다.
이 한줄평이 도움이 되었나요? 공감 0
금*어 | 2022.01.22
구매 평점5점
농촌에도 사람이 살고 노동하는 삶, 평온과 행복을 추구하는 삶이 흐른다. 귀 기울이자.
이 한줄평이 도움이 되었나요? 공감 0
b*****1 | 2021.12.08
  •  쿠폰은 결제 시 적용해 주세요.
1   12,600
뒤로 앞으로 맨위로 aniAlar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