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에 몇 번이나 고맙다고 말하는지 한 번쯤 생각해본 적 있나요?
--- 본문 중에서
살면서 몇 번이나 진정으로 ‘고마워요’라고 말했는지 한 번쯤 생각해본 적 있나요? 마음에서 우러나온 고마움을. 감사와 사의 그리고 은혜를 말로 표현했는지.
--- p.16
몇 분이 지나 누군가 간식을 가지고 들어온다. 조그만 빨대가 달린 조그만 사과 주스, 그리고 조그만 비닐에 싸인 조그만 빵. 아이들 놀이방의 것과 똑같다. 이런 것들이 할머니를 기다리고 있어요, 미쉬카 할머니. 짧은 보폭, 깜박 졸기, 조그만 간식거리들, 짧은 외출들, 짧은 방문들. 작아지고 축소되었지만, 완벽하게 규정된 삶.
--- p.40
‘아니, 대체 무슨 일이 있었을까? 이런 일이 어떻게 가능하지? 정말 우리 모두를 기다리는 게 이런 걸까? 한 명도 예외 없이? 재앙을 피할 수 있는 우회로나 갈림길, 혹은 샛길 같은 것이 없을까?’
--- p.49
나는 그들 목소리의 떨림을 정말 좋아한다. 그 허약함. 그온화함. 그들의 뒤바뀐 말들, 막연한 말들, 방황하는 말들, 그리고 침묵을 정말 좋아한다.
--- p.50
미쉬카 할머니, 저는 두려워요…… 제가 해낼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제가 아이를 가질 수 있을지 말이에요. 끝까지 해낼 수 없을까 무서워요. 제가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게, 아니면 제 의지와 상관없이 무언가가 만들어지는 게 두려워요. 저주나 운명같이, 어둠 속에, 추억 속에, 핏속에, 세계의 역사 속에 무언가가 생겨날 수 있다는 것이요, 그것에 맞서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언가 말이에요. 무슨 말인지 아세요? 그리고 제게 충분한 사랑과 인내, 관심이 있을까요? 제가 아이를 키우고, 아이를 안아주고, 아이를 돌볼 수 있을지 어떻게 알겠어요? 제가 아이에게 말을 할 수 있을지, 중요한 것들을 알려줄 수 있을지, 커다란 미끄럼틀에 올라가고, 혼자서 길을 건너게 둘 수 있을지요, 그리고 아이가 필요할 때 제가 손을 내밀 수 있을까요? 해야만 하는 것을 저는 어떻게 알게 될까요? 아이를 사랑하지 않을까봐, 아이를 너무 사랑할까봐, 제가 아이를 아프게 할까봐, 아이가 저를 사랑하지 않을까봐 두려워요.”
--- p.84~85
“처음으로 다른 누군가를 관심을 가지고 보살폈어. 나 말고 다른 사람 말이야. 그게 모든 것을 바꾸더라, 알겠니, 마리야. 다른 사람 때문에 두려울 수 있어, 자기가 아닌 다른 사람 때문에. 그래도 그건 정말 큰 행운이란다.”
--- p.89
미쉬카 할머니를 만나러 갈 때면, 나는 그곳 사람들을 관찰한다. 아주 나이 든 사람들, 중간쯤 나이 든 사람들, 많이 나이 들지 않은 사람들. 가끔 그들에게 묻고 싶어진다. 아직도 누군가와 포옹을 하세요? 누군가 당신을 두 팔로 안아주나요? 언제부터 다른 사람의 피부가 당신의 피부 속으로 들어오는 접촉을 하지 않았나요?
늙음, 내가 정말 늙을 때를 상상하면, 40년 혹은 50년 후 내 모습을 떠올려보려 하면, 가장 고통스럽고, 가장 참기 힘든 생각은 누구도 나를 가까이 하지 않으리라는 것이다. 신체적인 접촉이 조금씩 혹은 갑작스럽게 사그라드는 것. 어쩌면 욕구도 더는 똑같지 않을지도, 오랫동안 굶었을 때처럼 육체는 쪼그라들고, 오그라들고, 마비될지도. 그렇지 않으면 배고픔을 호소할 때와는 반대로, 그 누구도 듣고 싶어 하지 않을 것 같아 소리 없이 참을 수 없는 비명을 내지를지도.
--- p.103
내가 졌다. 나는 그 사실을 안다. 나는 이렇게 상황이 확 달라지는 지점을 안다. 그 원인은 모르지만, 결과만은 가늠한다. 싸움에서 졌다. 그렇지만 포기해서는 안 된다. 절대 그럴 수 없다. 그렇지 않으면 더더욱 나빠질 것이다. 끝없이 추락할 것이다. 싸워야만 한다. 단어 하나 하나. 필사적으로. 아무것도 양보해서는 안 된다. 자음 하나, 모음 하나도. 언어가 없다면, 과연 무엇이 남을까?
--- p.114~115
나는 언어치료사다. 말과 침묵, 말해지지 않은 것들과 일한다. 수치심과 비밀, 회한과 일한다. 부재와 사라진 기억들, 그리고 이름, 이미지, 향기를 거쳐 되돌아온 기억들과 일한다. 나는
어제와 오늘의 고통과 일한다. 속내 이야기들과. 그리고 죽는다는 두려움과 함께. 이런 것들이 내가 다루는 일이다.
--- p.126
그런데 계속 나를 놀라게 하는 것, 심지어 경악하게 하는 것, 때로는 숨이 멎을 정도로 놀라게 하는 것 ― 십 년도 넘게 이 일을 한 지금도 여전히 ― 은 바로 어린 시절 고통이 지속된다는 점이다. 세월이 흘렀음에도 생생하게 타오르는 흔적. 그것은 지워지지 않는다.
--- p.126
나이가 든다는 것은 잃어버릴 줄 아는 것이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매주, 아니 거의 매주 새로운 손실과 손상, 손해를 입는 것이다. 이게 내가 이해한 바이다. 그리고 이득이 되는 것을 적는 칸에는 이제 아무것도 실려있지 않다. (...) 아침에 안 되는 것은 저녁에도 안 되고, 아예 되지 않는다. 끝없이 익숙해진다. (...) 영원히 가지리라 생각했던 것을 잃어버리는 것이다. 새로운 조건에 맞추는 것이다. 새로이 조직하는 것이다. 없이 하는 것이다. 고집을 부리는 것이다. 잃어버릴 것이 이젠 하나도 없는 것이다.
--- p.144
때로는 상실이 남긴 허무를 책임져야만 한다.
--- p.148
그런데 아시잖아요, 말들은 상처를 입혀요. 욕설, 모욕, 빈정거림, 비난, 질책은 흔적으로 남아요. 지워지지 않아요. 뭐든 판단하려 들고, 약점만 찾던 시선. 협박. 이런 것들은 상처를 남긴다고요, 정말로요. 그러고 나면 저 자신에게 신뢰를 가지기가 어려워요. 자기 자신을 사랑하기가 힘들어요.
--- p.173
“미리 알아야만 한다고요. 사람들이 죽을 때에요. 그게 그들의 선택이든 아니든요, 상관없어요. 어쨌든 그건 그 사람들 문제고요. 편지든, 경고장이든, 문자메시지든, 음성메시지든, 이메일이든 뭐든 받아야만 한다고요.”
--- p.177
“맞아요, 결국엔 고통스럽다고요. 매번 우리는 무언가를 말할 수 있는 시간이 있을 거라 생각해요. 그런데 갑자기 너무 늦어버리죠. 보여주기만 하면, 과장스러운 몸짓만으로도 충분할 거라 생각해요. 그런데 사실은 아니에요, 말을 해야만 해요. 할머니가 그토록 좋아하시던 단어로. 말을 해야 해요. 중요한 것은, 말이라고요.”
--- p.17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