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현대문학』이 매달 25일 발행하는 월간 핀 소설,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041 출간 !
발굴되지 못한, 발굴되어여만 하는 ‘역사들’
이면의, 너머의, 곁의 계보를 구상하는 ‘소설’
1990년대 초반 인기를 끌었던 클럽 줄리아나 도쿄를 배경으로 폭력과 상처, 연대와 회복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놓은 첫 장편소설 『줄리아나 도쿄』로 〈오늘의 문학상〉을 수상한 한정현은 이후, 연작으로 읽어도 무방한 여덟 편의 단편소설을 담은 소설집 『소녀 연예인 이보나』를 발표하며 문단의 핵심 아이콘으로 자리잡았다. 동성애자, 트랜스젠더, 크로스드레서 등 주변부의 인물로 묘사되던 이들을 소설 전면부에 등장시킨 한정현은 두 번째 장편소설 『나를 마릴린 먼로라고 하자』에서도 주류 역사가 삭제시킨 인물들을 통해 “견고해 보이는 대문자 역사의 폭력의 계보를 사랑의 계보로 대체”(김초엽)하며 확고한 “한정현 유니버스”를 구축했다는 평을 받았다. 이번에 발표한 소설 『마고麻姑―미군정기 윤박 교수 살해 사건에 얽힌 세 명의 여성 용의자』(이하 『마고麻姑』)는 그 “한정현 유니버스” 안에서 더 견고하게 확장된 세계를 보여보는 소설이다.
마고麻姑라는 제목이 암시하듯, 빛의 제물로 바쳐진다는 전설에 등장하는 ‘마녀’라는 어휘는 약자, 소수자들을 대변하는, 이 소설 전체에 ‘낙관의 힘으로 폭력에 맞서’는, ‘누군가를 잊지 않고 살려’가는 사랑의 색채를 부여하는 모티브로 쓰인다.
일제 패망 직후, 미군정이 시작된 혼란스런 한반도를 시대적 배경으로 한 이 소설은, 미군에 의해 살해된 윤박 교수 살인 사건에서 시작된다. 살해범이 미군이라는 사실이 밝혀지면 미군정의 여론이 악화될 것을 우려한 미군정 조사관은 사건을 조작하려고 한다. 때문에 사건 당일 윤박 교수와 같은 공간에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사건에 연루되었다고 언론에 보도된 세 명의 무고한 여성이 용의선상에 오른다.
종로경찰서의 검안의이자, ‘세 개의 달’이라는 가명을 사용하는 여성 탐정인 연가성은 문화부 기자인 권운서와 함께 희생의 제물로 바쳐질지도 모를 윤박 교수와 이 세 여인들과의 관계를 추적한다. 수사가 진전됨에 따라 세 여인들에게 충분히 범행동기가 될 만큼 윤박 교수가 이들을 이용하고 착취한 사실과, 그로인해 이들이 원한과 죄책감에 서로를 적대하도록 얽힌 관계에서 서로를 구해내려는 마음에까지 가 닿아 있던 내면의 심층까지 파악하게 된다.
또한 하나의 서사의 줄기를 이루는 연가성과 권운서. 예전부터 그러했듯, 서로가 서로를 구원하는 징표를 찾아 나서는 이후의 삶을 택한다. 이렇게 이 소설의 조각들은 시간의 흐름 속에서 세 용의자 중의 하나였던 소설가이자 윤박 교수의 제자였던 현초의의 문장 “빛이 사라지면 너에게로 갈게“를 실현하는 ‘섹슈얼리티, 계급, 인종, 민족, 이념’을 넘어선 마지막 조각으로 맞춰진다.
“섹슈얼리티·계급·인종·민족·이념이 사람들을 더욱 촘촘하게 분활하고 억압했던 역사적 시공간에 월북한 아버지와 재조 일본인 어머니를 둔 연가성, 남자의 몸을 지녔으나 여자로 살며 가성을 사랑한 권운서를 기입해놓았다, 아니, 정확히 말해 언제나 존재했던 퀴어의 삶을 역사적 현장에서 가시화하고, 이를 통해 그들에게 가해진 부당한 폭력을 드러낸다. 그런 점에서 『마고』는 ‘역사의 퀴어링’이라는 한정현의 문학적 실천의 연장선에 있다.”(이지은)
나는 공적인 역사 자체를 부정하지 않으며, 더구나 역사적 상상력과 왜곡은 전혀 다른 문제라고 생각한다. 다만 하나의 역사‘만’ 존재한다, 고 생각하지 않는다. 아직 발굴되지 못한, 발굴되어야만 하는 ‘역사들’이 우리 곁에 많이 있을 것이며 그것은 어쩌면 보다 개인적이고, 또한 구체적일 확률이 높다고 본다. 공적인 역사의 기록이 사실로서의 계보를 확보한다면, 소설은 그 이면의, 너머의, 곁의 계보를 구상할 수 있으리라고도 생각한다. 아직 보이지 않는 그런 ‘곁’들을 나는 쓰고 싶었다. ―「작가의 말」 중에서
작가의 말
“그냥, 사랑 이야기입니다.”
위의 문장은 이든 대위가 주인공인 연가성에게 관심을 보이며 주어 든 소설, 『너희들의 등 뒤에 서』가 무슨 내용이냐고 묻는 장면에서 하는 대사이다. 물론 저 소설의 실제 내용은 여성 독립운동가의 복수를 다룬 내용으로 일본인이 쓴 것이며, 실제로 존재한다. 그러나 조선어를 모르는 이든에게는 연가성의 저 말, 그러니까 그냥 사랑 이야기, 로서만 아마 그 소설은 기억될 것이다.
이렇듯 언어가 비껴간 자리에서 사라지는, 혹은 오해되고 숨겨지는 이야기들이 있다. 그러나 결국 그 비껴선 이야기를 끝내 하는 것 또한 인간의 언어가 해야 할 몫, 나는 그것을 소설이 할 수 있다고 믿는 소설가이고, 그러니 저 소설이 아닌 나의 이 소설 『마고』 또한 그냥 사랑 이야기가 아닌 사랑 이야기이기도, 그리고 미군정기라는 시대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소설은 모든 비껴선 언어 사이를 최대한 멋대로 뻗어 나갈 수 있으니까. 나는 그런 소설의 그런 특성을 통해 이 소설에서 저 이야기들을 모두 하고 싶었다.
월간 『현대문학』이 펴내는 월간 〈핀 소설〉, 그 마흔한 번째 책!
〈현대문학 핀 시리즈〉는 당대 한국 문학의 가장 현대적이면서도 첨예한 작가들을 선정, 월간 『현대문학』 지면에 선보이고 이것을 다시 단행본 발간으로 이어가는 프로젝트이다. 여기에 선보이는 단행본들은 개별 작품임과 동시에 여섯 명이 ‘한 시리즈’로 큐레이션된 것이다. 현대문학은 이 시리즈의 진지함이 ‘핀’이라는 단어의 섬세한 경쾌함과 아이러니하게 결합되기를 바란다.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은 월간 『현대문학』이 매월 내놓는 월간 핀이기도 하다. 매월 25일 발간할 예정인 후속 편들은 내로라하는 국내 최고 작가들의 신작을 정해진 날짜에 만나볼 수 있게 기획되어 있다. 한국 출판 사상 최초로 도입되는 일종의 ‘샐러리북’ 개념이다.
001부터 006은 1971년에서 1973년 사이 출생하고, 1990년 후반부터 2000년 사이 등단한, 현재 한국 소설의 든든한 허리를 담당하고 있는 작가들의 작품으로 꾸렸고, 007부터 012는 1970년대 후반에서 1980년대 초반 출생하고, 2000년대 중후반 등단한, 현재 한국 소설에서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작가들의 작품으로 만들어졌다.
013부터 018은 지금의 한국 문학의 발전을 이끈 중추적인 역할을 한 1950년대 중후반부터 1960년대 사이 출생 작가, 1980년대에서 1990년대 중반까지 등단한 작가들의 작품으로 꾸려졌으며, 019부터 024까지는 새로운 한국 문학의 역사를 써내려가고 있는 패기 있는 젊은 작가들의 작품으로 진행되었다.
세대별로 진행되던 핀 소설은 025~030에 들어서서는 장르소설이라는 특징 아래 묶여 출간되었고, 031~036은 절정의 문학을 꽃피우고 있는 1970년대 중후반 출생 작가들의 작품으로 꾸려졌다.
현대문학 × 아티스트 이동기
〈현대문학 핀 시리즈〉는 아티스트의 영혼이 깃든 표지 작업과 함께 하나의 특별한 예술작품으로 재구성된 독창적인 소설선, 즉 예술 선집이 되었다. 각 소설이 그 작품마다의 독특한 향기와 그윽한 예술적 매혹을 갖게 된 것은 바로 소설과 예술, 이 두 세계의 만남이 이루어낸 영혼의 조화로움 때문일 것이다.
이동기
한국 현대 미술에 만화 이미지를 본격적으로 도입했으며, 1993년에 창조한 캐릭터 ‘아토마우스’가 등장하는 일련의 현대 미술 작품들로 알려진 작가이다. 2000년대 세계 미술의 ‘네오 팝neo-pop’적 흐름을 예견한 그의 작품들은 현대 사회의 다양한 요소들을 다루고 있는데, 만화, 광고, 인터넷부터 고전 회화와 추상 미술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시각적, 문화적 요소 들을 통해 실재와 허구, 무거움과 가벼움, 물질과 정신, 동양과 서양 등 이질적 영역 사이의 복잡한 관계를 암시하고 있다.
베를린의 마이클슐츠갤러리, 암스테르담의 윌렘커스 붐갤러리, 서울의 일민미술관 등에서 30여 회의 개인전을 가졌으며, 2011년 베니스비엔날레 부대전시 ‘퓨처 패스Future Pass’, 2005년 후쿠오카아시아미술관의 ‘애니메이트Animate’등의 전시에 참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