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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부에 미친 혜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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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3년 12월 29일
쪽수, 무게, 크기 372쪽 | 334g | 125*188*20mm
ISBN13 9791188343690
ISBN10 11883436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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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목차 보이기/감추기

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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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호 : (화가 나서) 그런데 지금 그 얘기 왜 하세요?
범순 : 미안합니다.
은호 : (말 끊으며) 퀴어신 거죠?
범순 : …….
은호 : 퀴어요.

사이

은호 : 아니세요?

사이

범순 : 레즈비언이에요?
은호 : 예.

사이

은호 : 배우님은요?
범순 : (정색하며) 전, 아니에요.
은호 : 뭐가 아닌데요?

사이

은호 : 저 벽장 아니에요.
범순 : 숨긴다는 거죠?
은호 : 숨기지 않는다는 거예요. 숨긴 적 없다고요. 전 오픈이에요.

사이

은호 : 아까 저랑 어, 저랑 그렇게 하고 싶다고 생각해서, 그렇게 하신 거 아니에요? 그런데 어떻게 퀴어가 아니에요?
범순 : 그냥…… 은호 씨가, 은호 씨가 오늘, 아까― 좋았던 거예요.

범순의 말이 은호에게 상처가 된다.

은호 : 그냥 조금 전에. 그냥, 그렇게 하고 싶었다는 거죠.

사이

범순 : 예.
은호 : (코웃음 치며) 저 배우님 때문에 여기 들어왔어요.

사이

은호 : 아니면 이렇게 개빻은 프로덕션에서 일 안 해요.

사이
범순, 머리에 손을 짚고, 휘청인다.

---「콜타임」중에서

예수 : ……나는 니가 이렇게 바로 결정을 내리는 게 좀 걱정돼.
혜인 : …….
예수 : …….
예수 : 집사님도 많이 놀라실 거고…….
혜인 : 엄마는 너무 걱정하지 마. 내가 알아서 얘기할게.

사이

예수 : (너무 약해져서) 안 헤어지면 안 될까.
혜인 : …….
예수 : 기도해봤는데……. :
혜인 : …….
예수 : 때가 아니라고 하셨어.
혜인 : …….
예수 : …….
혜인 : (힘없이, 체념에 닿은 듯) 때가 아니라고 하셨어?
예수 : 응.
혜인 : 예수야.
예수 : ……. (혜인이를 본다.)
혜인 : 넌 가끔 하나님을 이용해. 난 그렇게 느껴.

예수, 쭈뼛쭈뼛거린다.

예수 : 자기야.
혜인 : 예수야, 우리 끝났어. 정말 미안하지만, 나 이제 이 얘기 그만하고 싶어. 내가 너한테 이미 (사이) 너무 많이 말했어. 나는 이제 (짧은 사이) 남은 게 없어.
예수 : …….
혜인 : …….
예수 : ……미안해.
혜인 : 나는 니가 너 말고 나를 걱정했으면 좋겠어.
예수 : …….

둘 사이에 뭐라 말할 수 없는 불쾌한 분위기가 감돈다.

예수 : 그래.
혜인 : 기도할게.
예수 : (손가락으로 쉿, 하며) 하지 마. 그 말 하지 마.
혜인 : 알았어.

사이
혜인, 나가려는데

예수 : (원망하듯) 우리 이렇게 끝나는 거에, 하나님이 어디 계셔?

사이

혜인 : (건조한 말투로) 넌 어디 있었어? 나 혼자 있었을 때.

예수, 대답하지 못한다.

---「청년부에 미친 혜인이」중에서

성우 : 얼마지?
연경 : 33만 원인가 그래. 미친 거 아니냐, 33만 원. 나 한 달 용돈 5만 원이야.
성우 : 야, 제주도는 비행기만 해도 20만 원이야.
연경 : 아니? 우리 사촌 언니가 제주도 갔는데 비행기로 왕복 4만 9천 원에 갔다 왔다 그랬는데?
성우 : 구라까지 말라 그래.
연경 : 아닌데? 사촌 언니 구라 아닌데?
성우 : 그런 거 없거든?
연경 : 아니거든? 있거든? 여튼 엄마한테 존나 미안했어. 비싸서.
성우 : 어. 엄마가 돈 주면서 손 벌벌 떨린다고, 왜 제주도까지 가냐 그랬어. 경주나 가지, 씨발 애들을 제주도까지 보낸다고.
연경 : 니네 엄마 욕해?
성우 : 어. 욕 맨날 해. 입에 걸레 물었어.

사이

연경 : 너 제주도 가봤어?
성우 : 아니.
연경 : 처음 가는 거야?
성우 : 어.
연경 : 난 가봤어. 난 중1 때 여름방학에 엄마랑 오빠랑 갔었어.
성우 : 좋겠네.
연경 : 너 제주 흑돼지 먹어봤어?
성우 : 아니.
연경 : 장난 아니야. 존맛.
성우 : 흑돼지 제주에서만 파는 거 아니야. 마트 가면 다 팔아.
연경 : 제주도에서 먹는 거랑 같냐?
성우 : 그래도 안산에도 제주 흑돼지 파는 데 있어. 나 그런 데서 많이 먹어봤는데?
연경 : 나 그리고 회도 먹었어. 바다 보면서.
성우 : 좋겠네.
연경 : 어, 진짜. 개꿀이었어.
성우 : 근데 배 타면 더 싼 거 아니냐?
연경 : 몰라, 올 때는 비행기 타잖아.
성우 : 비행기 타는 거였어?
연경 : 몰랐냐?
성우 : 아, 맞다.

사이

성우 : 그래도 우리 엄마 착해.

사이

성우 : 33만 원 너무 비싸. 돌았어.
연경 : 어, 돌았어.

---「오십팔키로」중에서

이레 : 내가 써줄까.
현신 : 뭐?
이레 : 니 반성문……. 나 잘 쓸 수 있는데.
현신 : 뭔 개소리야. 니가 왜 내 걸 써.
이레 : 어차피…… 학교에서 좋아하게 쓰면 되는 거잖아. 너, 이번에 잘 안 되면 퇴학당하는 거 아니야? 벌점도 엄청 쌓였다고……. 동생이랑 너랑 세트로…… 대박이네.
현신 : 닥쳐라.

사이

현신 : 글씨체는.
이레 : 내가 불러줄게. 니가 받아 적어.

사이
현신은 이레의 의중을 모르겠다.

현신 : 너 왜 이러냐?

이레, 대답이 없다.

이레 : 너, 졸업하고 싶어?
현신 : 아 씨발, 최꼬추부터 시작해서…….
이레 : (말 끊으며) 대학 갈 거야?
현신 : 왜?
이레 : 대답해봐, 갈 거야? 대학?
현신 : 갈 거야.
이레 : 왜?
현신 : 대학은 나와야 먹고살 수 있으니까.
이레 : 어디 갈 건데? 이름도 모르는 지잡대? 돈만 내면 가는 데?
현신 : 닥쳐.
이레 : 그럼 잘 먹고 잘살 수 있을 것 같아? 빵셔틀이나 하는 한심한 애랑. 죙일 거울만 보는 못생긴 애랑 놀다 인생 쭉 말아먹으려고?
현신 : 셋 셀 때까지 닥쳐라. 아님 너 이빨 털린다. 하나.
이레 : 난 너처럼 막 사는 애들 보면 되게 신기했었어. 뭐 믿는 데가 있어서 그런진 모르겠지만. 난 돈도 빽도 없어서 공부 열심히 해서 좋은 대학 가고 좋은 회사 취직해서.
현신 : 둘.
이레 : (멈추지 않고) 잘 먹고 잘살 생각이거든. 너랑 니 동생까지 학교에서 짤리면 니네한테는 절대 오지 않을 미래겠…….
현신 : 셋.

현신, 이레를 때려 바닥에 넘어뜨리고 얼굴을 발로 밟는다.

이레 : (현신에게 밟힌 채) 나 좀 도와줘.

---「바람직한 청소년」중에서

반상을 사이에 놓고 앉아 살인 계획을 세우는 주정과 명진.
명진은 노트에 끊임없이 무언가를 쓴다.

명진 : 지문은 남기면 안 되잖아요. 수술용 장갑 같은 거 낄까?
주정 : 사람 몸에도 지문이 남는대니?
명진 : 남을 거예요, 아마.
주정 : 컴퓨터 해봐라.

컴퓨터 앞으로 가 인터넷으로 검색을 해보는 명진.
명주, 문을 열고 들어온다.
주정과 명진, 이를 눈치 채지 못한다.

명진 : 남는대요.
주정 : 그럼 장갑은 무조건 껴야겠다.
명진 : 엄마.
주정 : 어?
명진 : 그 집도 애가 있었죠?
주정 : 그래, 여자애 둘 있지. 큰애는 시집간 거 같더라. 다행이지.
명진 : 뭐가요?
주정 : 시집.
명진 : 그게, 다행이에요?
주정 : 그래도 낫잖니. (사이) 니네보단.
명진 : (힘들게) 그 집도. 우리 집처럼 될까요?

사이

주정 : 명진아.
명진 : 네.
주정 : 우리 집에 매년 설날마다 배달 오는 갈비 있잖아. 한우 1등급.
명진 : 고모가 보내주는 거요?
주정 : 그거 그 사람이 보낸 거다.
명진 : 뭐요? 엄마 미쳤어요? 우리한테 그걸……. 왜 말 안 했어요?
주정 : 처음에는 도로 돌려보내려고 했는데…… 니네 아빠 살아 있을 때도 한 번도 못 먹어봤던 거잖아.
명진 : 아니, 아무리 그래도…….
주정 : (말 자르며) 니네가 너무 잘 먹었어.

명진, 대답 못 한다.

주정 : 너무 맛있게, 많이 먹었어. 입에 뭐 넣어주면 맨날 뱉어내는 니네 할머니도 꼭꼭 씹어 삼키고. 니네 할아버지야, 말할 것도 없고. 나도, 먹었어. 맛있었으니까. 그런데, 자꾸 그 사람을 용서하는 기분이 들더라. 용서해달라고 보내는 고기를 먹었어. 우리 모두가. (짧은 사이) 그 사람은. 용서받은 줄로 알 거야.
---「가족오락관」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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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오진의 인물들은 서로가 서로의 용기가 되어준다.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한 채로 발만 동동 구르다가도 기어이 한 발을 내딛게 만들고, 여기도 아니고 저기도 아니어서 혼란하고 불안한 나날을 어떻게든 견디게 만든다. 서로를 결코 혼자 내버려두는 법이 없기에, 서로에게 손을 내밀지 않는 건 애초에 생각조차 해본 적이 없기에 서로의 세계에 포섭되고 휘말린다. 이오진의 인물들이 보여준 각양각색의 용기는 내게도 그렇게 스며들었던 것 같다. 그리고 아주 결정적인 순간에, 내게 이런 용기가 있는 줄도 모른 채로 낙망하던 순간에 호랑이 기운처럼 갑자기 솟아났던 것 같다. 하루는 세상 무서울 게 없는 것처럼 자신만만해졌다가도 또 하루는 작은 점처럼 한없이 움츠러들 때, 세상으로부터 사랑받으려 하기보다는 미움받지 않으려 애쓰는 자신을 발견할 때 이오진이 우리 마음속에 심어놓은 용기는 조금씩 자라났을 테니까.
- 김병운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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