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 중심주의는 여성에게 유리한가?
시간이 지날수록 ‘피해자 중심주의’ 논리는 더 힘을 얻는 듯하다. 어떤 여성은 이 말이 남성 중심적 사회에서 일종의 인식론적 ‘가산점’(젠더 관련 사건에서 피해 여성의 입장이 더 객관적이라는 믿음)이며, 여성의 입장을 더 고려해‘주어야’ 한다는 의미라고 생각한다. 반면 남성 사회는 여성‘주의’도 이상한데 ‘여성=피해자’에 ‘피해자 중심주의’라니 말도 안 된다고 반발한다. 피해자 중심주의를 옹호하는 여성과 반대하는 남성의 공통점은 논의를 불가능하게 한다는 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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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 말을 무조건 믿어야 한다는 주장은, 역설적으로 여성의 지위가 얼마나 낮은가를 보여준다. 피해자 중심주의는 여성에게 불리할 뿐 아니라 실현 불가능한 개념이다. 피해 여성의 말을 포함해서 모든 사람의 발화는 상대와 상황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그러나 피해자 중심주의에는 규범적인 피해자의 이미지가 전제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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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이 결혼과 출산을 기피하는 이유
여성의 비혼은 남녀 간 불평등으로 인한 여성의 각성, 즉 남녀 간 의식의 불균형이 가장 큰 원인이다. 공사 영역에 걸쳐 여성의 노동량과 사회 경험은 이전 시대에 비해 엄청나면서도 목적 의식적 변화를 보이는데, 남성의 여성관, 사회관, 자아 인식은 여성의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현실에서는 여성에 대한 차별이 일어나는데도, 남녀 간 의식의 불균형 때문에 “남자가 피해자”라는 착각과 피해 의식이 가능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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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사회적 자원과 경제력이 없을수록 열등감 때문에 시간 많은 남성이 더 가사 노동을 안 한다는 것이다. 남성의 이런 상태는 여성이 결혼을 기피하는 가장 결정적 이유이자 성차별 현실을 요약한다. 우리 사회에서 가사 노동을 얼마나 천시하는지(‘솥뚜껑 운전’, ‘집에 가서 애나 봐라’… …), 그리고 가사 노동 전담 여성을 얼마나 비하하는지 모르는 여성은 없다. 남성 문화는 가사 노동을 루저의 상징으로 삼는다. 여성들은 이 구조를 간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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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건희 비판’은 미소지니인가?
미소지니는 대통령조차 ‘여성’으로 ‘격하’시킬 수 있는 남성 문화를 말한다. 미소지니는 박근혜 전 대통령의 실정(失政)을 벗은 몸으로 공격한 경우이다. 당시 나는 박 전 대통령을 지지하지 않았지만, 그의 공적 영역의 지위가 성 역할로서 여성으로 환원되는 문화 현상에 반대했다. 반면 김건희 여사는 경제력을 기반으로 해서 가부장제가 원하는 규범적 여성성을 적극적으로 실천함으로써 자원을 확보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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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은 “모든 여성은 착하고, 여성을 비난해서는 안 되고, 아무리 여성이 범죄를 저질러도 남성의 범죄보다 약하므로 비난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여성주의는 여성성과 남성성이 모두 자원이 되지 않는 사회를 추구하고 지향하는 사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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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언제까지 ‘성차별 있음’을 증명해야 하는가
남성 문화는 남성이 ‘차별당하는 이유’로 징병제, 여성 할당제, “여성의 지위가 예전보다 나아졌다”는 점을 든다. 그러나 이 모두 사실이라 해도 나이 든 남성에게는 해당하지 않는다. 즉 젠더 문제가 아니라는 의미다. 모든 남성이 복무 여부, 보직, 근무 방식 등에서 징병제를 동일하게 경험하지 않으며, 특히 징병제는 여성이 만든 것이 아니라고 아무리 이야기해봤자 소용이 없다. 남성 사이의 계급 투쟁을 젠더 갈등으로 포장하고 스스로 현실 인식을 거부한다면 해결책은 없다. “군 가산제 부활”, “여성도 군대 가라”는 외침은 일단 남성들끼리 합의를 본 후 발언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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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 ‘사회’ 진출이 사실상 공사 영역에 걸친 이중 노동이라는 현실 때문에 여성들은 과로와 경력 단절을 피해 비혼을 선택하고, 이는 저출산과 동물과의 반려 인생으로 이어졌다. 도대체 언제까지 ‘성차별 있음’을 증명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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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남성의 ‘문제적’ 젠더 인식
꽃은 스스로 이동하지 못하고 사람(남성) 눈을 즐겁게 하는 데 존재 의의가 있으며, 꺾였을 때 쉽게 시든다. 여성과 남성이 모두 사람이거나 꽃일 때는 성희롱이 아니다. 하지만 남성은 사람인데 여성은 꽃이라면 인권 침해가 된다. 꽃의 운명은 사람에게 달려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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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매매는 성 문화뿐만 아니라 남성 중심적 사고 체계의 핵심이다. 성폭력, 성희롱, 남성의 성 콤플렉스, 여성 비하는 모두 성매매를 정점으로 한 변종 문화이다. 모든 남성은 잠재적, 간접적, 실질적 성 구매자다. 그 자장 안에서 자유로운 남성은 없다. 직접 성 구매를 하지 않거나 혹은 성적으로 ‘점잖기만’ 해도 남성은 여성의 호감을 산다. ‘나쁜 남자’가 너무 많으면, 그들 덕에 조금만 그렇지 않은 남자는 아무 노력 없이 저절로 ‘좋은 남자’가 된다. 남성 연대 정치의 기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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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민에 반대하고 트랜스젠더를 배제하는 페미니즘?
난민은 ‘우리’의 거울이다. 수용이나 혐오 등 차이에 대한 태도는 민주주의의 척도이기 때문이다. 자국민 우선? 아니, 누가 자국민인가? 도처의 양극화를 보라. 어느 사회 내부도 균질적이지 않다. 여성주의는 정체성의 정치가 아니다. 사회 정의를 위한 수많은 주장 중에 가장 창의적인 사고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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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랜스젠더 여성은 여성이 아니다? 그들이 여성의 권리를 빼앗아 간다? 여성 우선 페미니즘? 누구도 타인의 성별을 규정할 수 없다. 이제까지 여성 운동은 민족/민중/시민 개념을 독점하면서 인권의 위계에 따른 순서(“여성 문제는 나중에”)를 주장해 온 남성 중심의 사회 운동에 저항해 왔다. 여성주의가 진짜 여성과 가짜 여성을 구별하고 배제에 앞장선다면, 그런 여성주의가 왜 필요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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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적 자기 결정권’의 논쟁적 이슈
여성이 자신의 성을 자원으로 삼기 위한 ‘자기 결정’을 하는 경우에는 매우 논쟁적인 이슈가 된다. 다시 말해 성적 자기 결정권은 성폭력처럼 성적 자기 결정을 침해하는 사안에 대해서도 주장할 수 있지만 성매매, 다이어트, 외모 관리, 여아 낙태처럼 여성이 자신의 의지로 (대개 남성 사회가 요구하는 방식으로) 자신의 몸을 자원, 투자, ‘처벌’, ‘학대’의 대상으로 삼을 권리로도 주장할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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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 몸이 남성에 의해서든(순결 이데올로기) 여성 자신에 의해서든(성적 자기 결정권) 주체의 대상으로서 공간이 되면, 몸은 언제나 이성의 지배를 받는 수동적인 것이 된다. 이러한 논리에서 여전히 몸은 이성, 의식 중심주의에 종속되고 몸들인 여성 개인들의 저항은 의미화되기 어렵다. 성적 자기 결정권을 넘어, 몸을 식민화하지 않는 성폭력에 대한 새로운 저항 개념 모색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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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공정한 교환’으로서 성매매
성매매에서 중요한 것은 매매라는 행위 자체가 아니다. 누구든 자기 몸을 포함해서 무엇이든 매매할 수 있다. 문제는 사는 사람과 파는 사람의 성별 분리가 이토록 절대적인 산업이 과연 있느냐는 것이다. 어떤 변화가 와도 매매(賣買)의 성별은 불가역적이다. 성별이 바뀌지 않는다. 이것이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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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매매는 상품화 문제가 ‘아니다’. 모든 인간이 상품인 시대다. 많은 이들이 노동 시장에서 자신을 좀 더 좋은 상품, 매력적인 상품으로 만들기 위해 자기 계발에 밤낮으로 노력한다. 왜 여성주의 진영은 ‘섹스’만 거래의 대상이 아니라고 강조함으로써 아무도 설득하지 못하는 것일까. 이 논쟁이 의외로 어렵기 때문에 여성주의는 성매매가 인권 침해이고 폭력임을 강조하기 위해 ‘심각한 피해’만을 강조해 왔다. 그리고 이에 반발한 다른 여성주의자들은 성 산업 종사 여성들이 ‘일방적인 희생자’가 아니라고 비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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