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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성희의 밥과 숨

문성희의 밥과 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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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 에세이 top20 42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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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8년 03월 19일
쪽수, 무게, 크기 304쪽 | 460g | 140*205*30mm
ISBN13 9788934980704
ISBN10 8934980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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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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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먹는 음식의 재료 또한 땅에 뿌리를 내리고 바람과 빛과 물을 통해 자라나면서 형체가 단단해진 다음 먹잇감이 되어 내 몸 안으로 들어와 생명을 만든다. 무형으로 내 몸을 감싸고 있는 이 빛과 바람과 물 없이는 온전하게 형체를 갖춘 생명체가 될 수 없다. 그것은 문명을 멀리하고 숲에서 사는 동안 무수한 낮과 밤, 그리고 봄 여름 가을 겨울을 거치면서 자연스럽게 알게 된 이치이다. 이 쓸모 있는 지식을 학교에서 배울 수는 없었고 배우는 데 돈이 들지도 않았다. 돈을 주고 사지 않는 것, 돈을 주고도 살 수 없는 이 생명의 법칙은 도시와 시골을 가리지 않고 적용되었다.--- p.13

진정으로 존재한다는 것은 내가 내 존재를 잊지 않는 것이며, 나의 존재함에 깊은 경의를 표현하는 것이다. 이렇게 단지 있는 상태, 그 존재의 상태에 대한 크나큰 희열을 되찾은 이후로 나는 점점 더 음식을 간단히 먹게 되었다. 때로는 불의 힘을 빌리지 않고도 먹고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단순하게 조리하고 반찬 없이 밥을 먹을수록 사유의 힘이 커져갔고 삶을 찬양하기가 더 쉬워졌다.--- p.20

몸은 자연스럽게 주변의 에너지에 반응한다. 내가 이것을 감지하느냐 못하느냐의 차이는 내 몸의 세포가 얼마나 열려 있는가의 차이일 뿐이다. 몸 세포가 처음 그대로의 모습으로 열려 있으면 자연이 주는 치유의 힘이 저절로 작동한다. 어떤 음식을 어떻게 먹고 사는 게 좋은지는 스스로 알아가게 되어 있는 것이다.--- p.24

갈수록 바느질 솜씨가 나아진 것은 아니지만 여름옷과 겨울옷, 그리고 내게 필요한 물건들을 내 손으로 만드는 것이 가능해졌고, 그러면서 나의 삶은 좀 더 느슨해졌다. 나는 이 상태를 ‘자기주도적 삶’이라고 부른다. 한때는 자기주도적인 삶을 살기 위하여 시골로 가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삶의 방식을 결정짓는 것이 외부적 요인이나 환경보다는 나의 의식과 태도에 달려 있음을 알게 되었다. 만약 진정 그러하기를 원한다면 내가 있는 곳이 어디일지라도 내가 원하는 것을 찾아낼 수 있고, 원하는 일을 할 수 있다. 조건이나 환경을 바꿀 수는 없어도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명료해지면 어떠한 방식으로도 시도하고 접근할 수 있다.--- p.52

생식 가루를 물에 타 먹으면서 나의 많은 것들이 달라졌다. 살아 있는 낱알들의 생명력이 내 몸 안으로 흘러들어와 세포 하나하나를 건드렸고, 내 몸은 보다 민감하고 깨끗하게 변화되어갔다. 나는 각각의 세포가 낱개의 지성 혹은 의식을 가지고 있다고 느끼게 되었다. 내 몸에서 빠져나온 머리카락 하나에도, 손가락 끝에 맺힌 피 한 방울에도 감사한 마음이 절실했다. 이 마음이 커질수록 내 몸은 더욱 예민하고 가벼워졌다. 영혼과 몸과 마음이 분리될 수 없는 하나로 연결되어 있으면서도 낱낱이 존재하고 상생하여 조화를 이루어내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p.88

산속에 사는 동안 최소한의 생계를 이을 수 있는 텃밭 가꾸기와 흙을 물로 개어 무너진 담벼락을 덧칠하고 나무판자를 톱질하여 덜컹거리는 나무문짝에 덧대는 작업 정도는 할 수 있게 되었다. 지게 지는 법과 낫질하는 법도 최소한의 생계를 유지할 만큼은 할 수 있게 되었다. 찾아오는 사람 없이 혼자서도 충족하게 살 수 있었다. 갖지 않고도 삶을 채울 수 있는 것이 이다지도 많다니. 가난은 결핍이 아니었다. 나의 생존을 위하여 필요한 것을 이미 하늘이 준비해두었다는 것을 왜 몰랐을까? 숨을 쉰다는 것 외에 또 다른 존재함이 있기나 한 것일까? 지금 이 순간 그저 숨 쉬고 있다는 것, 그것만이 내가 간절히 원하고 바라는 것이었다.--- p.100

새벽의 명상 시간에는 일체의 거리를 없애고 오직 존재 그 자체에 집중하는 훈련을 했다. 모든 생명체는 온전하게 하나이며 분리될 수 없고, 그 모든 것들이 지구를 존재하게 만든다. 나는 그 모든 것들과 깊게 연결되어 있었다. 그것을 느낄 때마다 힘이 가득 차올라 온갖 어려움을 헤쳐나갈 수 있을 것 같았다.
--- p.1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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