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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신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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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8년 12월 10일
쪽수, 무게, 크기 408쪽 | 128*188*30mm
ISBN13 9788954654098
ISBN10 89546540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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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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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환란에서 저 환란으로 계속 이어지는, 참으로 끔찍스럽고 징글징글한 세월이었다. 환란으로 날이 밝고 환란으로 날이 저물었다. 화불단행(禍不單行)이란 말 그대로, 그 환란들끼리 생면부지 사이처럼 서로 내외하면서 하나씩 따로 오는 게 아니라 여럿이 작당해 겹치고 포개지며 한꺼번에 몰려드는 바람에 옴치고 뛸 수조차 없는 형편이었다. 사망 권세 물리치고 죄악 세상 이기신 구주 예수 권능 힘입어 환란으로 점철되는 현실에서 평안함을 얻을 그날은 대관절 언제쯤 찾아올 것인가. 이렇듯 곤고한 처지일 때 사모 쪽지에 예고된 대로 구원의 복음 같은 예배당 종소리가 뎅그렁뎅그렁 온누리에 가득 울려퍼진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하지만 이제나저제나 하고 아무리 기다려도 사모가 예고했던 그날은 좀처럼 오지 않았다. 아직까지는 분명코 그랬다. 구원의 종소리는 끝내 울리지 않은 채 먹빛으로 캄캄한 지옥의 나날만이 아무런 작정도 없이 그저 도도히 흘러가고 있을 따름이었다.
---p.68

방금 전까지 사촌형이 앉아 있던 문지방을 부용은 한동안 무연히 건너다보았다. 병정으로 뽑혀 사지로 향하게 된 젊은 남정들이 모여 품앗이로 상대방 신체 어느 부위에 부병자자를 새기지 않으면 안 되었던, 왜란과 호란 거쳐 동학란에 이르기까지 내우외환으로 뒤발한 역사가 연대순으로 달려와 문지방 위에 엉덩이 걸치고 일렬로 늘어앉는 광경을 목도하는 기분이었다. 불행과 비극으로 점철된 역사의 험준한 고빗사위들이 고향과 가족들 두고 멀리 떠날 수밖에 없는 젊은 남정들 신체에 입묵된 부병자자 하나하나에 돋을새김으로 강조되어 있는 듯싶었다. 산서 땅 조선인들 위에 군림하는 천석꾼마저도 결국 일제의 강제 동원으로부터 복심 중 복심인 장조카 하나 지켜줄 능력이 없다는 사실을 일찍이 간파한 결과일까. 그래서 진용이 형님은 끌려갈 경우에 대비하느라 그처럼 왼쪽 어깨 아래 상박 부위에 부병자자를 새길 수밖에 없었던 것일까. 굵다란 대바늘로 살을 쪼고 그 생채기에 먹물 넣어, 반드시 살아서 고향집 가족들에게 돌아오고 싶다는, 죽을 경우 시신으로라도 고향에 돌아와 선영에 묻히고 싶다는, 마지막 비원이 담긴 ‘生歸’를 자자하던 그때, 죽음을 전제한 그 입묵 행위에 임할 당시 진용이 형님은 기분이 어떠했을까.
---pp.84-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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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젊었을 때 신문사에서 일하면서 윤흥길 작가의 연재소설 원고를 챙기는 뒷바라지를 한 적이 있었다. 그때, 나는 그를 가까이에서 관찰했다. 그에게는 우리 시대가 잃어버린 경건성의 바탕이 있었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로 가듯이, 소설을 짊어지고 그 고통스러운 시대를 통과하고 있었다. 이 웅장한 소설은 페이지마다 사람들이 부딪쳐서 지껄이고 따지면서 이야기가 들끓는다. 사람들은 시대에 맞서거나 야합하거나 외면한다. 어떠한 시대에도 삶은 가지런할 수가 없는데, 이 소설은 수많은 지류와 역류를 거두면서 파행하는 강물의 흐름을 보여준다. 윤흥길의 글은 사람의 존재와 사람의 생활, 그 양쪽을 끌어안으면서 이 끌어안기에서 분출하는 언어의 활력을 보여준다. 인간의 비루함이나 시대의 야만성에 대해서 쓸 때도 그의 글은 언어의 활기에 가득차 있다. 이 활기는 생활의 구체성에서 나온다.
- 김훈 (소설가)
우리의 언어가 이토록 풍요로웠던가. 결코 만만치 않은 볼륨임에도 ‘병의 물을 거꾸로 쏟듯’ 쏟아지는 질펀하고 낭자한 사설에 온몸이 유장한 가락과 고저장단의 리듬을 타며 책속으로, 이야기 속으로 빠져든다. 인간사 애옥살이, 오욕칠정을 곰삭인 해학이나 웅숭깊은 시선으로 짚어내는 데 이미 일가를 이룬 작가는 이 작품에 이르러 우리가 잃고 잊고 버렸던 언어들이 바로 목숨과 시대와 삶의 영토라는 것을 문학의 이름으로 충실히 보여주고 깨우쳐주고 있는 것이다.
- 오정희 (소설가)
윤흥길을 만나기란 쉽지 않다. 먹고 마시고 떠들어대는 세속적인 삶과는 상당한 거리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횡설수설하거나 비틀거리지도 않는다. 과묵하고 절제된 삶에서 좀처럼 흐트러진 적도 없다. 은둔하고 있다는 인상을 지녔으나 그가 펼쳐내는 이야기를 읽다보면 그 안에 뚜렷이 존재하는 그의 영토를 목격하게 된다.
- 김주영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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