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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지 1

: 1부 1권

[ 양장 ]
리뷰 총점9.7 리뷰 67건 | 판매지수 7,2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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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시/희곡 top100 4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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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출간일 2012년 08월 15일
판형 양장?
쪽수, 무게, 크기 440쪽 | 536g | 148*210*30mm
ISBN13 9788960532410
ISBN10 896053241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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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박경리는 『토지』의 작가로 불린다. 『토지』는 한국문학사의 기념비적인 작품이다. 『토지』는 1969년에서 1994년까지 26년 동안 집필되었으며, 그 크기만 해도 200자 원고지 4만여 장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이다. 구한말에서 일제 강점기를 거쳐 해방에 이르기까지의 무수한 역사적 사건과 민중들의 삶이 고스란히 『토지』에 담겨 있다. 『토지』는 한마디로 “소설로 쓴 한국근대사”라 할 수 있다.

『토지』에는 평사리의 대지주인 최참판댁의 흥망성쇠를 중심으로 동학혁명, 식민지시대, 해방에 이르기까지 우리 민족의 한 많은 근현대사가 폭넓게 그려져 있다. 당시 사회의 모든 계층을 아우르는 인물들과 반세기에 걸친 장대한 서사, 그리고 참다운 삶에 대한 끊임없는 탐구 등은 작가의 생생하고 아름다운 문체를 만나 한국문학에 큰 획을 그은 『토지』로 태어났다.

26년의 집필 기간 동안 작가의 수정이 가해진 대목은 수정된 원고를 적용하였고, 인물이나 지명의 혼동, 오·탈자 등 명백한 오류는 모두 바로 잡았다. 쉽게 판단할 수 없는 대목들은 작가 생전에 작가를 직접 방문해 답을 얻었고, 기존 출판사의 당시 담당자들에게도 자문을 구한 바 있다.

꼬박 10년의 시간이 걸려 오랫동안 와전·왜곡되었던 작품의 원래 모습을 되찾으려는 작업이 마로니에북스 판 『토지』로 완성되었다. 이제 독자들은 『토지』의 원래 모습과 작가의 생생한 목소리를 들을 수 있게 되었으며, 처음 작가가 전달하려 했던 단어와 문장의 아름다움, 생생함을 만날 수 있게 되었다. 명실공히 『토지』의 결정판이다.

목차 목차 보이기/감추기

기획의 글
自序
서문

제 1 편 어둠의 발소리
서(序)
1장 서희(西姬)
2장 추적
3장 골짜기의 초롱불
4장 수수께끼
5장 장날
6장 마을 아낙들
7장 상민 윤보와 중인 문의원
8장 오광대(五廣大)
9장 소식
10장 주막에서 만난 강포수(姜砲手)
11장 개명 양반
12장 꿈속의 수미산
13장 무녀(巫女)
14장 악당과 마녀
15장 첫 논쟁
16장 구전(口傳)
17장 습격
18장 유혹
19장 사자(使者)

제 2 편 추적과 음모
1장 사라진 여자
2장 윤씨의 비밀
3장 실패
4장 하늘과 숲이

저자 소개 (1명)

책 속으로 책속으로 보이기/감추기

어쩌면 귀녀의 생애가 끝나는 날 강포수의 생애도 끝나는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함께 죽으리라는 뜻이 아니다. 귀녀의 죽음은 어떤 형태로든 지금까지의 강포수 인생과는 같을 수 없는, 다른 것으로 변할 것이라는 뜻이다.
지금 강포수는 귀녀와 더불어 있다. 옥중과 옥 밖의, 손이 닿을 수 없는 엄연한 법의 거리요 지척이면서 가장 먼 그들, 서로가 서로를 보고 느낄 뿐이지만 그러나 강포수는 일찍이 귀녀가 이같이 자신 가까이 있는 것을 느낀 적이 없다. 가랑잎 더미 위에 쓰러뜨렸을 적에도 귀녀는 강포수에게 멀고 먼 존재였었다.
강포수를 좋아하건 싫어하건 그것은 이제 아무것도 아니었다. 저주받은 악녀이건 축복받은 선녀이건 그것도 강포수하고는 관계가 없었다. 다만 거기 그 여자가 있다는 것과 그 여자를 위해 서러워해줄 단 한 사람으로서 자기가 있다는 것, 그것뿐이었다.--- '1부 3편' 중에서

“어, 어쩔 수 없네.”
조준구는 얼굴의 땀을 또 닦는다. 지폐에 손이 가면 사방에 서 사람들이 쫓아 나와 자신을 결박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눈앞에 돈을 보고 손을 뻗칠 수 없다. 상체는 앞으로 기우는데 팔은 천 근 같아서 들어 올릴 수가 없다. 전신을 누르는 중량을 들어 올려야 한다. 조준구는 드디어 팔을 뻗어 지폐를 집어든다. 서희 얼굴에 회심의 미소가 떠오른다. 미소는 크게 확대되어 갔다. 하얀 이빨이 드러나면서 흔들린다. 웃음소리가 일정한 굴곡을 이루며, 톱날같이 조준구 마음을 썰어댄다.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인가.
“나, 나, 그러면 가, 가야겠네.”
조준구는 허둥지둥 뒤통수에 그 날카로운 톱날 같은 웃음소리를 들으며, 대문을 나서고 사뭇 걸어서 눈에 띄는 술집으로 들어갈 때까지 웃음소리는 쫓아왔다. 그러나 술 한 잔을 들이켜고 몸서리치게 괴로웠던 갈증을 면했을 때 조준구는 품 속에 있을 오천 원을 실감할 수 있었다.--- '3부 1편' 중에서

옛날, 아득한 옛날 어머니를 매장하던 날, 음달진 곳, 솔방울과 자갈이 굴러 있던 곳, 소나무에 머리를 부딪고 피를 흘리며 울던 소년의 모습이 생생하게 한복의 눈앞을 스치고 지나가는 것이다.
‘형!’
심장에서 피가 솟구쳐오르는 것만 같다. 입속에 고인 것을 뱉어내면 그것은 침이 아닐 것이며 새빨간 선혈일 것만 같은 생각이 든다.
‘형!’
증오감은 그리움으로, 절실하고 강한 그리움으로, 한복은 달음박질치듯 걸음을 빨리한다. 사방은 어두웠고 칠흑같이 캄캄하게 어두웠다. 두신거리는 사람들 소리 속으로 들어갔다. 빨간 전등이 오두머니 켜져 있는 현관에, 그 현관에 김두수가 서 있었다. 비대한 돼지 상호의 김두수가 우뚝 서 있었다.
“형아!”
“이놈아!”
가장 악랄한, 잔인무도한 악인이 선량하고 정직한 아우를 껴안고서 눈물을 흘린다.--- '3부 2편' 중에서

……설움을 모른다면 어찌 마음이 있다 할 것인가. 마음이 없다면 사람이라 할 수 없고 시궁창인들 어찌 더러울까……
‘그렇지마는 기쁜 것도 맘 아니겄소?’
……만물이 본시 혼자인데 기쁨이란 잠시 잠시 쉬어가는 고개요 슬픔만이 끝없는 길이네. 저 창공을 나는 외로운 도요새가 짝을 만나 미치는 이치를 생각해보아라. 외로움과 슬픔의 멍에를 쓰지 않았던들 그토록 미칠 것인가. 그러나 그것은 강줄기 같은 행로의 황홀한 꿈일 뿐이네. 만남은 이별의 시작이 란 말도 못 들어보았느냐?……
‘그거는 머, 다 하는 얘기 아니겄소?’
……부처는 대자대비라 하였고 예수는 사랑이라 하였고 공자는 인이라 했느니라. 세 가지 중에는 대자대비가 으뜸이라. 큰 슬픔 없이 사랑도 인(仁)도 자비도 있을 수 있겠느냐? 어찌하여 대비라 하였는고, 공(空)이요 무(無)이기 때문이며 모든 중생이 마음으로 육신으로 진실로 빈자이니 쉬어갈 고개가 대자요 사랑이요 인이라. 쉬어갈 고개도 없는 저 안일지옥의 무리들이 어찌하여 사람이며 생명이겠는가……
--- '4부 1편' 중에서

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보이기/감추기

박경리 『토지』,
그 거대한 서사의 결정판을 만난다!


박경리의 펜 끝에서 태어난 생동감 넘치는 인물들, 아름답고 생생한 언어.
동학농민혁명의 불길이 일렁였던 1897년부터 1945년 해방까지 격동의 반세기,
백정에서 양반까지 온갖 군상들이 보여주는 참다운 삶에 대한 하나의 해답!

이번 마로니에북스판 『토지』는 『토지』 출간 이후 43년 동안 연재와 출판을 거듭하며 와전되거나 훼손되었던 작가의 원래 의도를 복원한 판본이란 점에서 큰 의미를 지닌다.
박경리는 『토지』의 작가로 불린다. 『토지』는 한국문학사의 기념비적인 작품이다. 『토지』는 1969년에서 1994년까지 26년 동안 집필되었으며, 그 크기만 해도 200자 원고지 4만여 장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이다. 구한말에서 일제 강점기를 거쳐 해방에 이르기까지의 무수한 역사적 사건과 민중들의 삶이 고스란히 『토지』에 담겨 있다. 『토지』는 한마디로 “소설로 쓴 한국근대사”라 할 수 있다.

『토지』에는 평사리의 대지주인 최참판댁의 흥망성쇠를 중심으로 동학혁명, 식민지시대, 해방에 이르기까지 우리 민족의 한 많은 근현대사가 폭넓게 그려져 있다.
당시 사회의 모든 계층을 아우르는 인물들과 반세기에 걸친 장대한 서사, 그리고 참다운 삶에 대한 끊임없는 탐구 등은 작가의 생생하고 아름다운 문체를 만나 한국문학에 큰 획을 그은 『토지』로 태어났다. 국내를 넘어 독일, 영국, 프랑스, 일본, 중국 등 국외로도 이름을 떨치고 있는 『토지』에 대한 재조명은 당연히 예정되어 있던 수순이라 하겠다.

43년 만에 다시 태어나는 박경리의 토지

1969년 「현대문학」에서 처음 시작한 『토지』의 연재는 여러 매체를 거쳐 오늘날에 이르렀다. 박경리는 『토지』의 자리를 1972년 「문학사상」으로 옮겨 2부를 연재했고, 1978년 다시 「한국문학」과 「주부생활」에 3부를 연재했다. 4부는 1981년 「마당」에서 연재되었는데, 1983년부터는 「정경문화」에서 연재의 뒤를 이었다. 작가는 1992년 9월부터 「문화일보」에 『토지』의 5부를 연재하여 1994년 8월 26년간의 집필 끝에 전 5부를 완결 지었다. 『토지』는 연재 도중에 문학사상사, 삼성출판사, 지식산업사 등에서 출간되었으며, 완간 이후 솔출판사와 나남출판사에서 전권이 출간되었다.

이처럼 소설 『토지』는 여러 잡지와 신문의 연재본, 문학사상사, 지식산업사, 삼성출판사, 솔출판사, 나남출판사까지 그것의 자리가 수없이 바뀌어왔다. 이 때문에 여러 번 바뀐 저작권 등 계속되는 재출간에 의해 본래 작가의 의도와는 관계없이 판을 거듭하며 왜곡과 오류로 원문이 훼손되었다.
더불어 원고지 4만여 장에 이르는 방대한 원고, 26년에 걸친 집필기간도 원문의 왜곡과 훼손에 한몫을 하였다.

이에 마로니에북스는 토지 편찬위원회가 2002년부터 2012년 현재까지 정본작업을 진행한 정황을 토대로 토지 편찬위원회 교수진들과 함께 작가의 의도와 가장 가까운 토지를 출간하기 위해 연재본을 저본으로 한 작업을 진행하였다. 이 작업을 통해 작가 고유의 목소리를 살려낼 뿐만 아니라 여러 판본의 전권을 일일이 비교·검토하며 수정되지 않은 오류와 왜곡들도 바로잡았다.

작가의 원래 의도와 생생한 육성이 살아 있는
『토지』의 결정판!


마로니에북스의 『토지』는 가장 신뢰할 수 있는 판본은 “연재본”이라는 작가의 평소 주장을 반영하여 “연재본”을 저본으로 하는 ‘작가의 원래 의도’를 가장 잘 반영한 『토지』의 결정판이다.
하지만 26년의 집필 기간 동안 작가의 수정이 가해진 대목은 수정된 원고를 적용하였고, 인물이나 지명의 혼동, 오·탈자 등 명백한 오류는 모두 바로 잡았다. 쉽게 판단할 수 없는 대목들은 작가 생전에 작가를 직접 방문해 답을 얻었고, 기존 출판사의 당시 담당자들에게도 자문을 구한 바 있다.
꼬박 10년의 시간이 걸려 오랫동안 와전·왜곡되었던 작품의 원래 모습을 되찾으려는 작업이 마로니에북스 판 『토지』로 완성되었다. 이제 독자들은 『토지』의 원래 모습과 작가의 생생한 목소리를 들을 수 있게 되었으며, 처음 작가가 전달하려 했던 단어와 문장의 아름다움, 생생함을 만날 수 있게 되었다. 명실공히 『토지』의 결정판이다.

회원리뷰 (67건) 리뷰 총점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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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리 토지 서희편-하동 대지주 애기씨가 간도 자본가로 변신하기까지 내용 평점5점   편집/디자인 평점5점 i*****e | 2022.07.29 | 추천0 | 댓글0 리뷰제목
박경리 대하소설 『토지』 책맛보기 스물두 번째입니다. ‘20세기 10대 소녀가 자본가로 변신하여 거부가 되기까지’라는 제목으로 최참판댁의 마지막 혈육 최서희를 만납니다.   서희는 하동 평사리 대지주 양반가의 애기씨였습니다. 증조할머니의 친정 조카 조준구에게 지주로서의 권한을 빼앗깁니다. 게다가 그의 꼽추 아들 병수와의 혼인까지 종용하자, 1908년 열다섯 살 무;
리뷰제목

박경리 대하소설 토지책맛보기 스물두 번째입니다. ‘20세기 10대 소녀가 자본가로 변신하여 거부가 되기까지라는 제목으로 최참판댁의 마지막 혈육 최서희를 만납니다.

 

서희는 하동 평사리 대지주 양반가의 애기씨였습니다. 증조할머니의 친정 조카 조준구에게 지주로서의 권한을 빼앗깁니다. 게다가 그의 꼽추 아들 병수와의 혼인까지 종용하자, 1908년 열다섯 살 무렵 간도땅으로 이주를 감행합니다. 간도는 고구려와 발해의 옛땅입니다. 새로운 공간은 새로운 사람을 만드는 걸까요?

 

20세기 10대 소녀 서희는 간도땅에서 진취적인 사업가로 변신합니다. 조준구가 앗아간 것들을 되찾으리라는 복수심으로 무장하고서 말입니다. 사무친 원한은 서희로하여금 투기, 투자, 사재기, 물가 조작 등을 통해 거부의 반열에 금방 올라서게 합니다. 양반가 규수의 진보적 행보는 근대 자본주의의 물살을 타고 그녀를 삽시간에 자본가로 등극시켰던 것입니다.

 

최참판댁 혈육 서희에게 태평한 세월이 주어졌다면 지주의 권리를 대물림받았을 것입니다. 땅이나 돈이나 그것들을 불어나게 하는 수법은 비슷한 측면이 있는 걸까요? 땅을 부리고 땅을 늘리고 땅을 사고파는 대지주가 되었을 그녀가, 돈이 돈을 낳고 돈이 새끼를 치도록 만드는 자본가로 변신할 수 있었으니 말입니다. 조준구에게 집과 땅을 모조리 갈취당하고도 천애고아 최서희는 결코 빈털터리 빈민으로 추락하지 않습니다. 대지주가 자본가가 되었으니 재력가의 위상은 그대로 유지되었던 셈입니다. 어찌하여 그렇게 되었을까요?

 

어른 조준구가 10대 소녀 서희에게서 빼앗지 못한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서희의 권위의식과 자존감, 서희의 명민함과 냉정함, 서희의 학식과 지혜, 서희의 안목과 통찰 등입니다. 게다가 또 하나가 더 있습니다. 돈 번식에 가속도를 붙일 수 있는 밑천을 서희는 빼앗기지 않고 지니고 있었습니다. 자본 투척의 적시적기를 간파한 서희의 과감한 투자 실행은 빚을 내지 않은 든든한 종잣돈이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그녀에게는 할머니 윤씨부인이 은밀하게 남겨준 금괴가 있었던 것입니다.

 

윤씨부인은 전염병이 야기한 참상을 지켜보면서 최참판댁 식솔들이 연이어 희생되어 갈 때 자신의 죽음을 예감합니다. 열한 살 서희가 잠들어 있는 깊은 밤에 찾아와 한지로 싼 금괴를 장롱 받침대로 괴어줍니다. 누구나 볼 수 있는, 눈에 가장 잘 띄는 그곳에다가 나무토막처럼 위장하여 금괴를 은닉해주었던 것입니다. 윤씨부인이 발휘한 기지는 위기에 처한 서희가 재기할 수 있는 믿음직한 발판이 됩니다. 나이 든다는 것의 진면목을 윤씨부인의 지혜로운 행위를 통해 보게 됩니다. 목전까지 닥친 죽음에 대한 무섬증을 제쳐두고 남아있을 사람의 안위를 염두에 둔다는 것은 그야말로 큰 자비심일 듯합니다. 홀로 남겨질 어린 손녀의 무사한 자립을 위해 생애 최후까지 베품과 책임을 다하는 할머니의 모습은 오랫동안 각인될 듯합니다.

 

지금도 생생하게 떠오르는 것은 그날 밤 할머니의 얼굴이요, 들려오는 것은 할머니의 목소리였다. 부르는 소리에 눈을 떴을 때 등잔 불빛 아래 할머니가 앉아 있었다.

 

서희야? 김서방이 죽었느니라. 봉순네, 복이 놈도 병이 났어. 내가 좀 더 오래 살아 네 뒤를 보아주고 싶지마는 사람의 일은 어찌 알겠느냐? 내 지금 할 일이 있으니 서희 너는 말 말고 있어야 하느니라. 아니다. 마루에 나가서 누구 사람이 오는지 살펴보는 편이 낫겠구나.”

 

무섭고 이상한 생각이 들어 떨면서 서희는 마루에 나가 어두운 뜰을 바라보았다. 방안에서는 꽤 오랫동안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났다. 장롱 옆구리에 달린 고리가 흔들리는 소리가 나고 장롱을 열고 닫는 소리도 났다. 이윽고 윤씨부인은 방문을 열고 손짓하여 서희를 들어오게 했다.

 

농발 대신 저기 막대기를 괴었느니라. 후일 너에게 어려움이 있을 때...만일을 위해 마련해주는 게야. 아무에게도 말하지 마라. 그것을 쓰게 되고 못 쓰게 되는 것은 오직 신령의 뜻이 아니겠느냐.”

 

서희는 농발 대신 장롱을 괴어놓은 막대기 두 개를 멀거니 바라본다. 그 막대기가 서희 육신의 일부분인 양 서희 의식에서 떠난 일이 없었다. 막대기는 한지에 싸여 있었는데 한지는 거무스름하게 때가 묻어 있었다. 농발을 들고 나가는 할머니의 뒷모습, 성큼하게 큰 키에 긴 두 팔은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10대 소녀 서희는 할머니 윤씨부인이 남겨준 금괴를 금고에다 깊숙하게 보관했던 것이 아닙니다. 금괴를 돈으로 바꾸어서 의식주를 해결하거나 몸단장을 위한 장신구를 구입하는 데에 야금야금 사용하지도 않았습니다. 돈의 흐름과 시류를 읽을 줄 알았던 서희는 할머니가 남긴 금괴를 돈이 계속 나올 수 있는 화수분으로 탈바꿈시킵니다. 그랬더니 돈은 돈 그 자체를 포식할 수 있는 자본이 되어 서희를 금방 자본가의 대열에 올라서게 합니다.

 

또 다른 한편, 서희의 다양한 책읽기도 할머니의 금괴 못지않은 투자 밑천으로 단단하게 한몫하지 않았을까 싶기도 합니다. 서희는 책에서 얻게 된 지식과 지혜를 더 많은 이윤을 남길 수 있는 수단으로 삼아 거부의 길로 진입하고 안착했을 것입니다. 서희의 지성이 자기 이득 쟁취를 위해 다른 사람을 조종하고 이용하는 도구로 전락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설사 그렇다 하더라도 서희를 비난 일색으로 몰아부칠 수가 없습니다. 포악무도한 조준구를 통쾌하게 응징할 수 있을 만큼 서희가 더 많은 부를 쟁취했으면 싶으니 사람의 심사는 참으로 복잡미묘한 듯합니다.

 

서희는 황망한 사건이 평사리 최참판댁을 어지럽게 휘젓을 때, 그 고통의 나날을 활자를 붙들고서 세상을 읽고 사람을 읽으며 보냈습니다. 다채로운 서책들과 함께 하면서 언어가 품고 있는 치유력과 문제해결력을 전수받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조준구를 대적하느라 신경이 곤두선 서희는 자신의 지성을 자신의 성품으로, 사유로, 일상으로 제대로 스며들게 할 수가 없었을지도 모릅니다.

 

포악스럽고 음험하고 의심 많고 교만한 서희, 그러나 그것이 그의 전부는 아니었다. 제 나이를 넘어선 명석한 일면이 있었다. 본시 조숙했지만 그간 겪었던 불행과 지켜보지 않을 수 없었던 많은 죽음들로 해서 그의 마음은 나이보다 늙었고 미친 듯이 노할 적에도 마음 바닥에는 사태를 가늠하는 냉정함이 도사리고 있었다.

무료하고 지루한 나날, 서책에 묻혀 시간을 보내는 생활은 그를 위해 다행한 일이었으며 거기에서 얻어지는 지식은 또 지혜를 기르는 데 살찐 토양이 되어주었다. 언문으로 된 이야기책에서부터 서고에서 꺼내어온 여러 가지 한서를 읽었으며 그중 오경의 하나인 춘추를 탐독했다. 그 밖에 서울서 발행되는 신문 조각 같은 것도 가끔 읽었다. 조준구한테 배운 일본 글로 일본 책까지 한두 권 읽었다. 이쯤 되면 여식으로 박학하고 세상 물정에 밝다 하겠는데, 그것으로 총명한 천품을 무한히 닦아갈 수도 있겠는데 서희는 그 명석함도 자기 야심과 집념의 도구로 삼으려 했을 뿐이다.

 

양반가의 규수에서 여성 장사치로 변모한 것은 서희의 혁명입니다. 이를 간파하고 무참히 여긴 사람이 있었으니 간도행에 동행했던 김훈장입니다. 간도로 이주한 지 3년쯤 지났을 때 양반 혈통을 중시하는 수구파 김훈장은 서희에 대한 푸념을 늘어놓습니다. 술 한 병을 들고서 안부 차 찾아온 상사람 용이를 붙들고서 말입니다. 김훈장의 노쇠함은 서희의 새로운 면모가 달갑지 않았던 것입니다. 만일 서희의 이질적인 모습을 수긍할 수 있는 김훈장이었다면 그의 노후는 한층 더 생기발랄했을지도 모릅니다. 노년에 이질적인 것을 받아들여 자신을 새롭게 만드는 것은 요원한 일일까요? 김훈장의 넋두리는 서희가 간도땅에서 어떻게 거부가 되었는지 그 내력을 짐작하게 합니다. 노년이 주로 하게 되는 옳고 바른 잔소리의 전형에 귀기울여 봅니다.

 

내 자네를 보고 할 말은 아니네만 사람이란 씨가 있는 법이야. 명색이 양반이면 사내도 못할 짓을, 그래 규중의 규수가 아무리 낯선 땅이기로, 겨우 열아홉 나이의 처녀 몸으로 미천한 시정배하고 어울리면서 장사라니? 투기사업이라니? 하기는 최참판댁 여인네라면......허나 윤씨부인은 그렇지가 않았어. 참으로 그 바탕이 능히 본받을 만했었지. 그런데 서희는 어찌 그럴 수가 있나. 나라를 위해 몸 바친 사람들한테 군자금 몇 푼 못 주겠느냐? 친일파가 짓는 절에는 희사를 하면서 말이야. 서희는 조선의 백성이 아니었더란 말인가?”

 

일본으로부터 이땅의 왕실을 되찾고 싶은 수구파 김훈장에게 독립운동은 가치로울 수 있습니다. 양반 혈통을 중시하는 김훈장에게 독립운동은 이땅의 왕족 혈통을 복원시킬 수 있는 희망입니다. 하지만 서희에게 급선무는 빼앗긴 평사리 집과 토지를 되찾는 일입니다. 10대 서희에게는 눈에 보이지도 손에 잡히지도 않는 나라를 되찾는 일보다도 자신이 실제로 빼앗긴 것들을 다른 사람의 힘을 빌지 않고 온전히 자기 힘으로 되돌려놓는 일입니다. 그 일에 몰두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벅찰 수 있습니다. 김훈장은 서희를 윤씨부인과 비교하여 서로 같지 않다고 토로하지만 손녀와 할머니가 다른 것은 지극히 당연합니다. 두 사람이 살아내는 시공간이 각각 다르게 펼쳐져 있는 만큼 똑같이 살아지지 않는 것은 너무나 정상입니다.

 

각양각색의 조상 유전자들이 뒤섞이고 어우러져서 새로운 후손이 탄생합니다. 그래서 후손은 조상을 닮으면서도 똑같을 수는 없습니다. 자식이 부모보다 '더 나은' 존재가 되는 것이 아니라 자식이 부모와 '다른' 존재가 되는, 그것이 진화이고 진보이며 자연의 순리입니다. 서희는 최치수, 별당아씨, 윤씨부인과 유전적인 면에서 일치하는 점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들과 다른, 색다른 존재입니다. 그들 각각으로부터 물려받은 것들이 용해되어 새로운 서희가 되었을 테니 말입니다. 분명한 것은 서희 속에 별당아씨, 최치수, 윤씨부인을 빼닮은 면모가 이미 터를 잡고 있다는 점입니다.

 

서희 아버지 최치수는 조준구를 더러운 사창가로 유인하여 최참판댁 재물을 함부로 넘볼 수 없도록 암시를 주었습니다. 설사 자손을 낳을 수 없는 몸이 될지언정 자존감을 훼손시키는 자에게 저항했으며 그런 방식으로 최참판댁을 지켜냈습니다. 티끌만큼의 비굴함도 지니지 않았던 최치수는 냉소적이었습니다. 서희는 아버지의 냉엄함을 그토록 싫어했건만 그 기질은 고스란히 서희 심중에 자리잡습니다.

윤씨부인은 아비가 각각 다른 두 아들을 낳았지만 한치의 권위 손상도 용납하지 않는 생애를 지켜나갔습니다. 최참판댁 가문을 위해 살았지만 윤씨 성을 지닌 여자대장부로서의 주체적인 면모를 한시도 잃은 적이 없습니다. 윤씨 부인의 그 올곧은 기상도 서희는 넘겨받습니다.

그 무엇보다도 서희의 눈부시게 아름다운 미모는 별당아씨를 오롯이 물려받은 덕분이기도 합니다.

 

어렸을 적 서희는 오동나무를 깎아 만든 살림살이로 소꿉놀이를 하기도 하고, 산이랑 강가에 놀면서 자연의 이치를 저절로 터득했습니다. 마을 두만네 집에 강아지를 보러 가기도 하고, 숲속에서 쏜살같이 달아나는 토끼를 보며, 꽃밭에서 벌과 개미의 아귀다툼을 지켜봤습니다. 그러면서 다섯살 서희는 군밤은 스스로 갓 까서 먹어야 맛난 줄을 알았고, 꿀이나 엿보다도 산딸기의 단맛이 더 깊고 오묘하다는 것도 깨우쳤습니다. 서희는 배를 채우기 위해 허겁지겁 먹는 법이 없었으니 보통사람이 감각할 수 없는 맛의 경지를 음미하지 않았을까, 싶어집니다. 그 각별한 감각능력은 서희의 지성에 반영되었을 듯도 합니다.

 

삼월아.”

, 애기씨

그때,그때 말이야, 봉순이가 산딸기를 따왔어.”

산딸기는 좀 더 익어야 익십니다.”

몇 밤이나 자면 익어?”

보리 벨 때가 돼야, 달포나 돼얄 깁니다.”

달포가 몇 밤이야?”

서른 밤 더 되지요.”

할머니 나이보다는 적지?”

하믄요. 아버지 연세쯤 됩니다.”

그거 참 맛나던데.”

서희는 삼월의 목을 껴안으며 군침을 삼킨다

맛나기는요. 시큼텁텁하고 달지도 않소.”

아니야.”

산딸기보담은 엿이 더 맛나지요. 꿀이 더 맛나지요.”

아니야! 딸기가 맛나!”

서희는 주먹으로 삼월의 등을 쳤다.

하낫도 안 단 딸기가 머가 맛납니까?”

아니래도.”

쇤네는 아무리 해도 꿀이랑 엿이 더 맛나더마요.”

아니래도! 딸기가 맛나!”

서희는 삼월의 목덜미를 꼬집었다.

아 아야!”

딸기가 맛나다고 해

, , 애기씨 딸기가 맛나요.”

거 봐.”

 

삼월이 등에 업혀 작년의 산딸기 맛을 기억해내는 서희이니 얼마 전까지 함께 지냈던 엄마의 빈자리와 지금은 사라져 버린 엄마의 향기를 기억하지 못할 리가 없습니다. 영특한 만큼 허전함은 더 생생했으리라 싶습니다. 서희는 별당 뜰에 날아온 새들을 귀히 여기며 먹이를 주던 인자스러운 엄마가 눈에 선합니다. 미열이 있는 날, 밖에서 놀기라도 하면 감기들라 염려해주던 따뜻한 목소리도 귓가에 맴돕니다. 그 엄마는 떨어진 석류꽃을 실에 꿰어서 족두리를 동그랗게 만들어 서희 머리에 올려주기도 했습니다. 그런 엄마가 갑자기 사라지고 말았으니 세상이 무너진 듯, 다른 세계를 마주한 듯, 엄습한 불안감은 어린 서희에게 막중했을 것입니다.

 

이는 꼽추 병수로서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감정입니다. 엄마의 도타운 자애심을 전혀 경험한 적 없는 병수는 엄마 그리워 울부짖는 서희를 신비롭게 바라볼 수밖에 없습니다. 아마 병수에게 엄마의 사라짐은 서희만큼 치명적인 아픔이 되지 않을 것입니다. 엄마의 괄시와 학대만을 경험한 병수에게 엄마의 사라짐은 어쩌면 두려움으로부터의 해방과 자유일지도 모릅니다. 지나친 사랑이나 지나친 방치나 자식에게 상처되기는 매마찬가지인 듯합니다. 넘치도록 받는 사랑이 좋은 것만은 아닐 수도 있구나,싶어집니다.

 

서희가 엄마 찾아오라고 떼를 쓰기 시작하면 달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윤씨부인이 나서서 서희의 종아리에 매질을 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서희는 종아리를 맞으면서도 반짇고리를 내동댕이치고 악을 더 씁니다. 떼쓰기를 멈추지 않는 서희를 그대로 두고서 윤씨부인은 매질을 멈추고 묵묵히 물러납니다. 보통 부모들은 자식의 항복을 받아낼 때까지 매질을 멈추지 않는데 말입니다. 막무가내로 떼쓰고 울어대는 서희가 너무나 안쓰러워서 더 이상 매질을 할 수가 없었던 걸까요? 아니면 서희의 떼쓰기에서 장차 엄마 없는 삶을 헤쳐나갈 수 있는 강직하고도 끈질긴 힘을 감지했던 걸까요? 서희의 떼쓰기를 잠재우지 않은 채로 윤씨부인은 물러났던 것입니다.

 

서희는 한순간 매질을 뚝, 멈추고 물러나는 할머니의 모습에서 무엇을 느꼈을까요? 자신을 향한 할머니의 진정어린 슬픔과 아픔을 읽어내고 공감했을까요? ‘어미는 떠났으니 이제 너는 혼자서 너의 삶을 살아내는 게야. 어미를 대신할 수야 없겠지만 끝까지 너를 지켜주도록 하마.’ 라는 무언의 지지와 약속을 깨달았을까요? 매질을 멈출 수 있다는 것은 감정에 휘둘린 매질이 아니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윤씨부인이 매질을 멈추고 떠난 그 자리에 앉아 스스로 떼쓰기를 잦아들게 하면서 총명한 서희는 할머니에 대한 애틋한 정과 믿음이 굳건해졌을 성싶습니다. 그런데 그 할머니마저 전염병이 앗아가고 맙니다.

 

윤씨부인이 죽은 뒤의 최참판댁 넓은 집안은 일시에 폐허가 되었다. 그러나 그것으로 끝나지는 않았다. 서희와 길상이 발병하였다. 어미를 잃은 봉순이는 어미를 잃었다는 슬픔보다 계속되는 죽음에 대한 공포 때문에 거의 광란 상태가 되었다. 봉순이는 서희를 내버려두고 도장 속으로 혼자 기어들어가서 나오질 않았다. 다른 하인들 역시 뿔뿔이 헤어져서 어느 구석에 처박혔는지 알 수 없었으며 다만 수동이 혼자 절룩거리면서 서희를 돌보고 길상이를 돌보고 하다가 그 역시 발광한 사람처럼 변하는 것이었다. 수동이의 미친 증세는 한밤중에도 대문 밖을 쫓아 나가 마을을 향해 소리를 질러대게 했다. 이날 밤도 수동이는 절룩거리며 밤새도록 집 주변을 빙빙 돌고 있었다.

이 무렵 길상이는 엉금엉금 기어나왔다. 그는 자신이 어디서 기어나왔는지 알지 못했다. 목이 타는 듯 갈증을 느꼈을 뿐이다. 다만 물, 물을 찾고 있었다. 낮인지 밤인지도 알 수 없었다. , , , 했으나 입 밖에 말은 나오지 않았다.

, , .”

차가운 촉감. 이마에 싸늘한 것이 닿는다. 써늘한 촉감을 따라 얼굴을 디밀었다. 그러나 입속에 흘러들어오는 것은 없다. 무릎을 세우고 허리를 세우고 발을 디뎠다. 길상이는 물동이라 생각했다. 드디어 물동이의 아가리가 나타났다. 얼굴을 처박고 미친 듯이 물을 빨아당겼다. 얼마나 마셨던지 의식이 조금씩 깨어나기 시작했다. 의식이 깨어났을 때 길상이는 물이 아닌 술이었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자신이 도장 안에 와 있는 것을 알았다.

아아! 이젠 살 것 같다! 살 것 같다! 애기씨는!”하고 외쳤다. 외쳤다고 생각했으나 실제 목소리는 여전히 입 밖에 나오지 않았다. 걸어갈 기력은 없었다. 아까보다 맑아진 정신으로 다시 엉금엉금 기어서 도장 밖으로 나온다. 밤이었다. 하늘의 별이 보였다. 부엉이 울음소리도 들려왔다.

마님도 돌아가시고 김서방, 봉순어매도 죽었다. 봉순이도 죽었이까? 애기씨는! 애기씨는 우찌 됐이꼬?’

별당 뜰에까지 기어갔다.

애기씨! 애기씨! 봉순아! 봉순아!”

불렀으나 목소리는 목구멍 속에서 사라지고 말았다.

, , , 무울

마루에 쓰러진 서희 목소리였다. 기어서 도장으로 다시 돌아온 길상이는 바가지를 주워들었다. 바가지로 술을 떴다. 정신은 아까보다 좀 더 맑아 왔다. 바가지를 들고 별당으로 갈 때 길상은 기지 않고 천천히 걸어본다. 애기씨 외친 것이었으나 소리는 작았다. 그러나 아무튼 목이 트였다. 길상이는 서희를 반쯤 안아 일으켜 바가지를 입에 갖다 대었다. 서희 입에서 술이 다할 때까지 바가지는 떨어지지 않았다. 그런 뒤 길상이는 서희와 함께 쓰러져 잠이 들었다.

 

서희는 그렇게 살아나고 보니 엄마 아버지에 이어 할머니마저 곁에 없습니다. 완전한 외톨이 신세가 된 자신을 마주해야 합니다. 하지만 죽지 않고 살아났으니 살아남게 된 자의 몫을 살아내야 합니다. 정신을 추슬러 할머니 윤씨부인의 삼년상을 받들어야 합니다. 아버지 최치수의 삼년상을 끝낸 지가 얼마 전이었는데 말입니다. 엄마 찾아오라고 떼를 쓰던 유년시절에 아버지의 삼년상을 치르느라 매일 곡을 하면서 어린 서희는 자신의 떼쓰기를 잃어야 했습니다. 이제 또 다시 할머니를 위해 울어야 합니다. 유년에 이어 십대가 되어서도 상복을 입고서 매일 아침 저녁 홀로 곡을 해야 합니다. 서희의 그런 일상이 가혹하게 느껴집니다. 어리지만 어릴 수가 없는 처지에 놓인 혈혈단신 서희는 생존의지를 과연 어떻게 발휘해 나갈까요 

 

어디 두고 보아라. 내 나이 어리다고, 내 처지가 적막강산이라고, 지금은 나를 얕잡아보지만 어디 두고 보아라.’

그런 앙심은 이미 아이가 가지는 성질의 것은 아니었다. 아침이면 봉순이를 거느리고 서희는 윤씨부인 상청에 나가 상식을 올리고 곡을 하는데 조준구는 그 곡소리가 질색이었다. 온갖 저주와 최씨 가문을 마지막까지 지키어나갈 것을 맹세하는 것 같은, 저주와 다짐을 하기 위해 해가 지고 다음 날이 새어 상청에 나가기를 기다린 듯, 처절한 울음이었다. 날로 새롭게 날로 결심을 굳히는 듯, 곡성을 들을 때마다 조준구는 한기를 느끼곤 했다.

 

어쩌면 곡을 해야 하는 의례가 정해져 있는 일상이 서희를 살아가게 했는지도 모릅니다. 허례허식일 수도 있는 예법은 서희를 어김없이 아침에 일어나도록 만들어 주었습니다. 아침이면 서희를 잠자리에서 일으켜 세우고, 밥을 먹게 하고, 밤이 되면 내일의 곡을 위해 잠들게 합니다. 예식은 몸을 움직여야만 하는 활동입니다. 반드시 치러야 하는 형식적인 삼년상 의례가 없었더라면 서희는 어찌 되었을까요? 어쩌면 사무친 외로움으로 서희의 일상은 무너졌을지도 모릅니다. 서희는 짜여진 예식에 맞춰 몸을 움직이면서 차츰 내면과 정신을 가다듬어 나갈 수 있었을 것입니다.

10대 소녀 서희는 조준구와 홍씨라는 어른을 상대하는 것이 버겁다는 것을 일단 수긍했을 수 있습니다. 자신의 처지가 돌보아 줄 핏줄 하나 없는 천애고아가 되었지만 전과 다름없이 기죽지 않고 위엄을 지켜나가리라 다짐했을 수도 있습니다. 조준구가 서울에서 아내 홍씨와 꼽추 아들 병수를 데리고 내려왔을 때 마냥, 당시의 만만하지 않았던 그 기상 그대로를 변함없이 유지하기로 합니다.

 

서울에서 내려온 홍씨의 위세당당한 인기척에 붓을 놓고 돌아앉으며 서희는 봉순네를 불렀다. 오만스러움과 위엄이 절로 몸에 밴, 나이치고는 두려우리만큼 침착한 얼굴이다.

봉순네! 저 손님은 사랑으로 뫼셔야 할 것 아니냐? 여긴 내 처소란 말이야. ”

서희는 병수에게 손가락질해 보였다. 그 안하무인의 태도에 홍씨도 입이 벌어지는 모양이었다.

 

윤씨부인이 죽자 서희를 대하는 홍씨의 태도가 달라집니다. 서희더러 조준구와 홍씨 내외에게 아침마다 문안 인사를 올리라고 했던 것입니다. 어른의 명령이라고 해서 서희가 실행할 리는 천부당만부당한 일이었습니다.

 

홍씨는 서희를 우습게 알았다. 친척집에서 데려다놓은 고아 취급이었다. 예의법절에는 숙달치는 못한 그 자신이 엄격한 여주인같이 행세하는 것도 꼴불견이거니와 서희를 가르치려 들었다. 홍씨는 아침마다 그들에게 문안드릴 것을 명령했다. 아직 나이가 어려 집안 살림이 어찌 돌아가는지 그것에 대해서는 몰랐으나 상전으로서의 품위가 이미 갖추어져 있고 그들을 식객이상으로는 생각지 않는 서희가 그의 명령에 승복할 리는 없었다. 홍씨는 앙탈을 했으나 서희는 언동으로 수삼차 홍씨에게 모욕을 가했을 뿐 추호도 숙어드는 빛은 없었다.

 

전염병이 평사리를 휩쓸던 그해 서희는 할머니를 잃고 봉순이는 어머니 봉순네를 잃었습니다. 열한 살 서희, 열세 살 봉순이, 고아가 된 두 소녀가 별당 연못가에 함께 있습니다. 봉순이는 울고 있고 그런 봉순이를 바라보는 서희 가슴은 터지는 듯합니다.

 

봉순이는 무릎 위에 깍지를 낀다. 깍지 낀 손 위에 턱을 얹는다.

자꾸자꾸 눈물이 납니다. 생각수록 서럽고 옴마가 보고 접어서 그만 죽어부맀이믄 싶습니다.”

너마저 죽으면 나는 어떻게 하니?”

그러기 말입니다. 와 그렇기 애는 믹있는고 싶으니 옴마가 다시 살아만 온다믄, 다시는.”

우리 할머님께서는 아버님이 돌아가셨을 적에 눈물을 아니 보이셨다.”

어른스럽게 가르치는 것 같다. 그 의젓한 투에는 김훈장 훈도의 영향도 있었고 범절을 지키려는 강한 자부심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마는 애기씨도 전에는 많이 우싰습니다.”

서희의 의젓한 품을 무심하게 깨뜨려버린다.

언제?”

전에 어릴 적에 말입니다. 막 어머님 데리고 오라 캄서. 한번 울음을 잡힜다 싶으믄 온 집안의 사람들이 정신을 못 차리고, 우리 옴마는 아이구 우짜꼬 아이구 우짜꼬 함시로. 애기씨는 생각 안 나십니까?”

그건 철없을 때 얘기야!”

새된 목소리가 사방에 깨어져서 울린다. 서희의 얼굴빛이 변하고 깎은 듯 둥근 이마에 푸른 줄이 뻗는다.

 

어머님 데려오라 하며 울었던 어릴 적 일이 머릿속에 가득 들어차서 슬픈 시절, 어미가 보고 싶어 울었던 나날이 선명하게 눈앞에 떠오른다. 어미에 대한 그리움은 아직도 그에게는 떨어버릴 수 없는 집념이다. 그 끈질긴 감정 속에는 그리움뿐만 아니라 원망과 증오가 함께 있었다. 남의 사내를 따라 어린 자식을 버리고 간 어미, 그것은 자식에 대한 배반이며, 하인 놈을 따라간 어미, 그것은 서희 마음에 씻지 못할 오욕을 심어준 죄악이었다. 그 오욕은 잊을 수 없고 견디기 어려운 것이었다. 서희는 어머니, 별당아씨의 얼굴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어머니를 데리고 달아난 사내 구천이의 얼굴도 기억하고 있었다.

 

서희는 격렬한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들뜬 채로 뜰을 이리저리 쏘다니다가 고방 앞에서 하인 삼수와 홍씨가 큰 소리로 주고받는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

 

마님. 이 고방 내력을 아십니까. 애기씨 어머님, 그러니까 별당아씨 말씸입니다. 그 내력쯤은 알고 계시겄지요.”

 

머슴하고 눈이 맞아서 달아났다던 계집 말이냐? 양반댁에서 무슨 망신이람.”

 

이 고방은 말입니다. 그 구천이란 놈하고 달덩이 겉고 연꽃 겉은 별당아씰 함께 넣어서 가두었는데, 흐흐흐 구천이 그놈 당장 목이 떨어지는 한이 있어도 은앙새가 기분 좋았일 깁니다. 그런데 그때 이 고방 속에서 죽자사자 은앙새들이 죽었이믄 지금쯤 구신이 날 긴데 말입니다. 누군가가 고방 문을 훤하게 열어주었이니.”

 

열어주었다구? 내통한 자가 있었구먼.”

 

그러세요. 아침에 일어나보니께 도장 문은 열리 있고 사람은 온데간데 없어졌으니 그래 크게 난리가 날 줄 았았지요. 도무지 지금 생각해봐도 영문 모를 일입니다만 아무 말씸이 없었다 그말입니다. ”

 

추달을 해서 열어준 자를 찾아내지 않았다, 그 말이냐?”

 

, 지난 일이고 또 마님께서는 돌아가싰으니 말씸입니다마는 지 생각 겉애서는, 마님께서 혹 문을 열어주시지 않았나 싶더마요. 눈으로 본 기이 아니니 장담이사 할 수 없는 일입니다만.”

 

오오라 알겠네. 그 늙은이 청상과부로 살아서 며느리한테 난 바람에 부채질을 했구먼. 그 늙은이한테도 화냥기가 있었던 모양 아니냐?. 알고 보니 최참판댁 내막이라는 것도 쓰레기통같이 추잡하군.”

 

서희는 사색이 되어 마구간을 향해 쏜살같이 달려간다. 마구간에서 말채찍을 집어들었다. 칼이 있었으면 칼이라도 집어들었을, 도끼가 있다면 도끼라도 집어들었을 그런 기세였다.

 

이놈!”

 

야비하게 웃으며 별당아씨에 관한 얘기를 외설스럽게 늘어놓고 있던 삼수는 등에 짜릿한 아픔을 느끼고 몸을 돌렸다. 아이의 매질이 그리 대단히 아팠던 것은 아니었으나 서희의 권위를 전적으로 무시할 수 없었던 삼수는 당황했다. 삼수는 팔을 들어 얼굴을 가리며 비는 시늉을 했다. 말채찍을 들고 달려가는 것을 본 봉순이 전갈로 수동이와 길상이 꽁지에 불붙은 것처럼 달려왔다.

 

수동아! 길상아! 이놈을 묶어라!”

 

수동과 길상은 버둥거리는 삼수의 다리까지 홀쳐 맨다. 홍씨가 수동이 앞으로 다가서려 했을 때 서희는 말채찍을 흔들며 홍씨를 칠 듯한 기색을 보였다. 얼굴이 백지장처럼 된 홍씨는 서희에게 덤벼들려 하는 순간 길상이와 수동이는 동시에 홍씨를 막고 선다. 살기등등한 남자 앞에서 홍씨의 동작은 멎었다. 서희에게 손가락 하나라도 닿으면 죽일 듯한 기세였던 것이다.

 

밧줄에 묶인 삼수는 반죽음이 될 만큼 맞았다. 그러나 삼수가 죽도록 얻어맞은 것보다 중요성을 띤 것은 서희가 홍씨를 치려고 했던 일이다. 서희도 서희려니와 하인들은 또 어떻게 했던가. 수동이와 길상이 막아서면서 서희에게 손가락이라도 닿을 것 같으면 홍씨의 모가지를 잡아 비틀 무서운 분위기를 뿜어내지 않았던가.

 

이후 수동이 길상이 봉순이 세 사람의 공동전선은 더욱 견고해졌다. 그들은 매일매일 적진 속에서 서희를 지키듯 긴장해 있었으며 표정은 삭막하였고 도사리는 맹수의 자세 같은 투지에 차 있었다. 그들은 세 사람 사이에 다른 어떤 누구도 끼워주려 하지 않았다. 최참판댁 안의 별당은 한 개의 성이며 봉순이는 전령병이요 수동이와 길상은 결사대 같은 것이었다.

 

다리를 저는 노쇠한 수동은 별당아씨와 도주한 구천이에 대해 같은 하인으로서의 동료의식 비슷한 감정을 가졌던 하인입니다. 최치수가 겨누고 있는 총구를 피해 구천이가 달아나도록 소리쳐 주었던 것은 주인 최치수에 대한 배반 행위나 마찬가지였습니다. 자신이 저지른 엄청난 배반에 대해 일언반구 따진 적 없는 주인 최치수에 대한 의리를 다하고 싶었을까요? 아니면 스스로 죄책감을 덜어내고 싶었을까요? 최참판댁에 남은 단 하나의 핏줄, 서희를 지켜주는 든든한 파수꾼 역할을 자처하고 도맡습니다. 수동이는 열한 살 서희에게 최참판댁 지주로서의 권한을 되찾아주기 위해 물심양면으로 뒷바라지하지만 그런 일은 가능하지 않았습니다.

당찬 지주의 면모를 과시하기에 역부족이라고 해서 어리거나 약한 모습을 노출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서희는 아직 여전히 어리고 약할 수 있는데 말입니다. 유년시절과 소녀시절 연거푸 삼년상을 치르느라 내리 곡을 하며 살았던 서희는 이제 적개심과 긴장으로 완전무장한 채 사춘기를 맞이하고 살아내야 합니다.

 

수동이는 머릿속에 못이라도 박아넣듯이 서희에게 적개심을 풀지 못하게 하였다. 자신과 길상이 봉순이를 빼놓은 나머지는 모조리 원수로 알아야 할 것이며, 애기씨는 도둑놈들과 배신자들을 결코 잊어서는 안되고 용서해도 안 되고 항상 깊이 명심해야 할 것이며, 할머님의 기상을 본받아야 할 것이며 어서어서 자라야 한다는 것이다.

 

참말이지 애기씨 자라시는 기이 여삼추만 같십니다. 애기씨만 자라서 살림채를 잡으시믄 소인은 죽어도 눈을 감겄십니다.”

 

수동이는 눈물을 떨어뜨리기 일쑤였다. 그렇지 않더라도 조숙하고 영민하며 기승하고 오만한 서희가 그동안 어려운 일들을 겪어내면서 굳힌 것은 경계심과 주어진 모든 것을 지켜나가리라는 결심뿐이었다. 마음의 무장은 수동 길상 봉순 세 사람의 기대 이상으로 강인한 것이었다.

 

그렇지만 수동이가 제일 먼저, 소수 결사대를 이탈하는 병사가 되고 맙니다. 최참판댁에서 평생토록 충실한 하인으로서의 삶을 누리고 헌신한 수동은 이 세상을 하직하게 됩니다. 수동이가 눈을 뜬 채로 숨진 날, 길상이는 눈이 퉁퉁 붓도록 울고 봉순이는 털썩 주저앉고 맙니다. 반면에 조준구와 홍씨는 희희낙락 후련해 합니다. 그렇다면 서희는 어떻게 했을까요? 윤씨부인은 자신의 측근 하인이었던 바우할아범이나 갓난할멈의 죽음을 성대하게 뒷바라지하여 그의리를 지켰는데 말입니다. 어린 서희는 더욱 다급하게 몰릴 자신의 처지에 급급했던지 수동의 죽음을 챙기고 보살피는 마음씀씀이를 발휘하지 못합니다.

 

별당의 서희는 아무 말이 없다.

 

수동이아재 그렇구름 주야로 애기씨 걱정만 하더니. 신령님도 무심하시오. 애기씨를 우찌하고 수동이아재까지 데리고 갑니까, 으흐흐....”

 

잠자코 있던 서희는 봉순에게 짜증을 낸다.

 

울지 마라. 시끄러워. 시끄럽다 안 하느냐? 하인 하나 죽었기로.”

 

하다가 벌컥 역정을 낸다.

 

그동안 연달아 사람이 죽어나갔어! 새삼스런 일도 아니지 않느냐? 이 집에 귀신이 들어 그렇다고들 하더구나! 정말 그렇다면 나는 귀신하고 싸울 테야! 신령님네 살려주시오. 살려주시오 골백번 그래 봐야 아무도 살려주진 않던 걸. 구구하고 치사스러워. 모조리 다아 잡아가라지. 하지만 나는 안 될 걸. 우리 집은 망하지 않아. 여긴 최씨, 최참판댁이야! 홍가 것도 조가 것도 아냐! 아니란 말이야! 만의 일이라도 그리 된다면 봉순아? 땅이든 집이든 다 물속에 처넣어버릴 테야. 알겠니? 난 그렇게 할 수 있어. 내 원한으로 불살라서 죽여버릴 테야. 난 그렇게 할 수 있어. 찢어 죽이고 말리어 죽일 테야. 내가 받은 수모를 하난들 잊을 줄 아느냐?”

 

어떻게 땅과 집을 물속에 처넣을 것인가. 치켜올라간 눈썹, 뱅글뱅글 돌아가는 입매, 가위 모질고 사나운 작은 귀신 야차(夜叉)를 방불케 한다. 그는 원한 사무쳐 있었을 뿐 수동이 죽음에 대해서는 조금도 슬퍼하는 기색이 없다. 봉순이는 마음속으로 야속하다고 생각한다.

 

수동이 죽고나자 결사대의 강인한 연대 의식은 점점 옅어져 갑니다. 수동이 죽은 탓도 있겠지만 서희와 봉순이가 다같이 사춘기를 통과하느라 더 그렇습니다. 연대의 결속력은 자연의 섭리에도 영향을 받게 되나 봅니다. 자의식과 반항심으로 똘똘 뭉친 10대 중반의 격동기를 앓고 있는 두 소녀는 모두 자기감정을 자신조차 어쩌지 못합니다. 두 사람은 성과 없는 자존심 대결로 속앓이만 이어갈 뿐입니다.

 

머리를 빗고 있는 서희는 속이 부글부글 끓어오른다. 누구 하나 별당 뜰에다 꿇어 앉혀 놓고 몽둥이질이라도 실컷 했으면 속이 후련해질 것 같다. 속이 끓어오르지 않는 날이라곤 별로 없었다. 심한 날이 있고 덜한 날이 있을 뿐. 작은방에는 기척이 없다. 하마 애기씨 하며 봉순이 건너올 법도 한데 세숫물 시중을 들고 난 뒤 방에 들어간 채 아무 소리가 없는 것이다. 쌀쌀하게 굴었기로, 신경질을 좀 부렸기로, 지가 토라지며 어쩌겠다는 거냐, 싶어 괘씸한 생각이 치민다. 잔뜩 찌푸린 얼굴이 거울 속에서 서희 자신을 노려보고 있었다. 미간에 심술이 뒤룩뒤룩 매달려 있다.

 

망할 계집애, 어디 두고 보자. 내 성미를 몰라서 그래? 하나하나 다 접어놨다가 내 그에 벌을 줄 테야. 감히 누가 내 영을 거역한단 말이냐!’

 

봉순이의 요즘 행동거지가 다소 이완된 것은 사실이지만 거역으로 혹은 반항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날이 선 서희 신경에 더 많은 원인이 있다. 이럴 때면 반드시 길상이나 봉순에게 의지하는 자기 처지를 생각하게 되고, 상대방이 그것을 의식하고 있을 것을 상상할 때 서희는 참을 수 없는 곤욕감에 몸을 떤다. 무조건 복종이면 복종이지 친근감을 갖는 것을 싫어한다. 동정하고 보호하는 기분을 가진다는 것이라면 더더군다나 용납될 수 없는 일이다.

 

도대체 저희들한테 무슨 능력이 있다는 것이냐, 아랫것이면 아랫것 답게 내 명령을 좇으면 될 일이지. 주제넘게 누굴 보호하며 누굴 감싸겠다는 것이냐, 수동이가 죽었기로 머슴 한 놈이 죽었기로 내 자리가 흔들린단 말이냐, 나를 가엾게 여긴다 그 말이냐? 이 나를? 아랫것인 주제에 나를 가엾게 여겨?’

 

서희의 기분은 그러했다. 옛날에는 네가 죽으면 나는 어쩌겠느냐고 봉순이한테 더러 어리광도 피우던 서희였건만. 외톨박이가 되어 헤매거나 혹은 병들거나 상처받아 힘이 약해진 맹수는 유독 사납다. 서희의 경우가 그런 것인지도 모른다. 외톨박이, 무수한 마음의 상처들, 불리해져가는 현실, 서희는 그런 현실을 인정하려 하지 않는다. 결코 인정하려 하지 않고 그에 비례하여 높아져 가는 신경질의 증세를 비위에 거슬리는 사소한 일에다 줄기차게 원인을 찾으려 하지만, 기실 자신을 속이는 일 이외 아무 것도 아니다.

 

아무리 사소한 일이라도 자신이 소홀하게 취급된다는 것을 알아채기만 하면 서희는 맹수처럼 이를 갈았다. 그것은 차츰 병적으로 커져 갔다. 한편, 길상이나 봉순에게 대해선 어떤가 하면 그것 또한 미묘한 갈등이었다. 친밀하게 깊은 유대를 맺고 있다는 그들의 의식 자체를 허용하지 않았으며 그들이 그렇게 느끼는 것을 자신의 약점으로 보았다. 혹은 자신을 격하하는 무례로 보는 것이다. 신성불가침의 영역을 침범한 것처럼 생각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에게 주는 벌은 소리내지 않고 목을 조르는 방법이다. 무엇이 잘못인지 왜 그러는지 본인들도 모르는 만큼 성미라 생각하고 참지만 그러나 그들도 이제는 머리가 커졌다.

 

추호의 동정도 바라지 않는 서희. 그런 서희를 동정할 수밖에 없는 봉순이와 길상. 그들은 자의식이 날뛰는 사춘기의 한가운데를 통과하면서 서로 겉돌기 시작합니다. 그렇지만 마음 속으로 왈가왈부 한들 오랜 세월 이어온 유대관계를 끊을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냉정하게 돌아설 수도 없으면서 늘 함께 일상을 보내야 하는 관계에 모두들 지쳐갑니다. 별당이라는 출구가 막힌 성에서 사춘기 청춘들의 갑갑함은 솟구쳐 분출합니다. 봉순이는 길상이를 붙들고 고달픈 속내를 드러내며 하소연을 합니다.

 

날이갈수록, 전엔 그러지 않았는데 와 저러시는지 모르겄다. 참말이제 어느 장단에 춤을 추어야 할지 모르겄다. 원 세상에 변덕스러워도 푼수가 있지. 정말 못살겄구마. 그만 달아나든지 해야 할까부다. 하기사 심란하니께 나한테 화풀이를 하는 것이겄지마는 하루이틀도 아니고 당하는 사람은.”

 

서희에게는 당시, 만일 가슴팍에 창칼이 들어 온다면 주먹으로 쳐서 부러뜨릴 것이요, 독약이 든 음식을 먹는다 하더라도 오장을 그냥 지나서 밖으로 내몰 수 있으리라는 자신 속에 절대적인 것이 있다는 믿음이 있었고, 수동이 죽었을 적에 봉순에게 만일 조씨네 것이 된다면 땅이고 집이고 모조리 물속에 처넣어버리고 말겠다고 한 말은 진심이었다. 이 같은 서희의 병적 증세는 다소의 차이는 있으나 봉순이 길상에게서도 볼 수 있었다. 고집스러워지는 것, 신경질이 되는 것, 사태가 불안해지는 데 따라 서로가 복잡해지고 티격태격하는 상태, 그러나 봉순이와 길상에게는 서희와 달리 청춘을 앓는 심적 갈등이 보태어져 있었다. 아무튼 서희는 그들 생각이 불손하다고 혐오하고 그들은 서희가 변덕스럽다고 불만해 하고, 그러면서도 유대는 끊어질 수가 없다

 

조준구는 위조 인장을 한아름 만들어서 최참판댁 토지를 자기 소유로 돌려놓습니다. 일제강점기가 도래할 즈음 친일 개화파 조준구는 근대화의 바람을 타고 토지 소유를 증명할 수 있는 문서의 중요성을 알아차렸던 것입니다. 토지 문서는 이땅의 까막눈 농부들에게 문서라는 그 이유 하나만으로도 괜히 겁먹고 기죽게 만드는 무기가 됩니다. 이제 토지의 주인은 자기 땅이라고 믿고 피땀 배어들게 그 땅을 일궈온 농부 당사자의 것이 아닐 수도 있게 됩니다. 문서를 요리조리 잘 만드는 재주를 가진 사람, 문서에 인장을 먼저 박는 사람이 토지의 주인이 됩니다. 근대의 법은 토지의 진짜 주인을 헷갈리게 하고, 진실을 명명백백하게 가려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철저하게 진실을 뒤엎어버리는 도구가 되기도 합니다. 토지 문서는 자기 땅이라고 굳게 믿고 그 땅에 기대어 노고를 바쳐왔던 사람들을 허망하게 만들기도 했을 듯합니다.

 

두만네와 김이평 부부도 억울한 피해를 입는 당사자가 됩니다. 바우할아범과 갓난할멈의 제우답으로 윤씨부인이 선사했던 논을 문서화되어 있지 않다는 이유로 조준구가 빼앗아 갑니다. 그 땅에서 오랜 세월 부지런히 농사를 지어왔고 마을 사람 모두가 실제적인 논 임자가 누구인지 알아도 문서가 입증하지 않으면 소용이 없었습니다.

 

이 나라의 높으신 친일파 관리들이 우리나라 땅이 일본 소유라는 조약 문서를 만들어 식민지 로 만들었다면, 조준구는 평사리 무지랭이 농부들의 논밭을 자신이 주인이라는 문서를 만들어 빼앗았던 것입니다. 조준구는 자신이 불법적으로 만든 토지 문서가 훗날 혹여 화근이라도 될까봐 꼽추 아들 병수와 서희의 혼인을 성사시키라는 언질을 아내 홍씨에게 합니다.

 

역시 병수하고 혼인시키는 그 이상의 상책은 없소.”

우릴 죽이려던 계집아일 며느리 삼아요?”

며느리랄 거 있소? 볼모지. 병수 놈도 사람 구실을 못하는 아이니 형식일 뿐이지요.”

병수 놈도 혼인 아니 하겠다고 펄펄 뛰는 건 어쩌구요?”

 

서희에게 홍씨가 혼인을 종용하고 회유할 그즈음, 윤보와 마을 사람들은 친일파 조준구가 사는 최참판댁을 습격합니다. 용이 영팔이 길상이도 습격에 가담합니다. 습격한 이들은 윤보의 진두지휘 아래 의병 활동에 필요한 모든 물품들을 실어내 갑니다. 길상이 앞장서 토지문서를 찾으려고 했지만 끝내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토지문서를 숨겨놓은 사당 마루 밑에 조준구와 홍씨가 피신해 있었기 때문에 토지문서와 두 내외는 건재하게 됩니다. 이 습격 사건 이후 길상 영팔 용이는 일본에 의해 폭도로 몰려 쫓겨다니는 신세가 됩니다. 꼽추 병수와 혼인하기 싫은 서희도 막다른 위기에 봉착하게 됩니다.

 

길상이마저 마을 사람들과 함께 떠나버린 지금 서희는 날갯죽지가 부러진 한 마리의 새, 빈사 상태다. 핼쑥하게 여윈 모습에 퀭하니 뚫린 두 눈에는 일찍이 그에게서 보인 일이 없는 비애의 그림자가 넘실거리고 있었다. 홍씨는 매일이다시피 별당에 나타나 지껄이는 것이다.

 

너도 총명한 아이니까 모를 리 없겠지. 요즘 일본 사람 세상이란 말이야. 의병 그놈들을 끌어들여 감히 우릴 죽이려고 했었던 너 아니야? 의병인지 화적 놈인지 지금이 어느 세상이라구? 일본 나라에 항거해서 살아남을 수 없는 거야. 길상이놈까지 끼어들었으니 너하고 공모하지 않았다는 말은 못할 게야. 안 그러냐?”

 

그러나 한마디 말도 새나오지 않고 완강하게 침묵을 지키는 것은 자기 내외를 살해하려 했다는 홍씨의 말을 인정하기 위해서다. 그리고 앞으로도 반드시 죽이고 말겠다고 외치고 싶었을 것이다. 무던히 끈덕지고 무지하여 늙은 말고기같이 질긴 홍씨였지만 교활하기로는 서희가 몇 수 위다. 서희 성미에 참으로 견디기 어려운 인내였으리. 전신으로 살의를 인정하면서 증거를 잡히지 않으려는 침묵인 것이다.

 

어디로 도망을 갈까? 간다면 어디로 가야 한단말이냐?’

 

꼽추 조병수와 혼인하기 싫은 서희는 가출을 감행해야 합니다. 길상 영팔 용이도 평사리 마을에 돌아오면 붙잡혀 가는 처지가 되고 맙니다. 서희를 포함한 그들 모두는 의기투합하여 평사리를 떠나 간도로 갈 결심을 굳힙니다. 간도는 월선의 삼촌과 숙모가 살고 있는 땅입니다. 월선이는 얼마 전에 그들과 함께 간도에 살면서 국밥집을 운영하여 돈을 제법 모았습니다. 강청댁이 월선의 주막을 찾아와 무섭게 강짜를 부리자 대문에 못질을 해놓고 갔던 곳이 바로 간도였던 것입니다. 그곳에서 돈을 벌어 돌아와 집도 마련하고 살림도 넉넉해진 월선을 일러 사람들은 간도댁이라 불렀습니다. 간도댁 월선이가 용이에게 간도에 대해 열심히 설명했던 적이 있습니다.

 

간도는 왜놈들은 가뭄에 콩 나듯 있고 청국 사람들이 더 많소. 거기가 본시는 우리 조선땅이었다 카던데, 조정에서 돌보지 않고 내비리두어서 청국 사람들이 밀고 들어왔다 캅디다. 그래 놓고 이자는 저거 땅이라고 우긴다 카데요. 청국 사람한테 세금을 바치는 기이 뼈가 아프다 캄시로 조정의 대신놈들 욕들을 합디다. 청국의 행패도 어찌 심한지, 그들을 잘 구슬러야 한다카던가. 그라고 또 외딴 곳에서는 살 수 없다 캅디다. 무섭은 마적단이 있어서 재물만 뺏는 기이 아니고 여자들도 뺏고 사람들도 죽이고. 우리가 있었던 곳은 용정인데 큰 도시오. 조선사람들도 젤 많이 살고요. 토문강은 강도 크고 기니께 나리터도 수없이 많십니다. 여기랑은 달라서 소고 말이고 짐, 사람 모두 나릿선을 쓰는데 머 큰 벌이사 안 되겄지마는 그거를 모두 조선사람들이 부리고 있고 산포수들도 조선 사람들이 많다 캅디다. 장날이믄 짐승 가죽이랑 녹용이랑 약초랑 가지오는데 아닌 게 아니라 모두 조선 사람들이었소. 아금바르고 부지런하고, 나라서만 좀 뒷배를 보아주믄은.”

 

중국인보다 조선 사람이 더 많이 산다는 간도는 겨울에는 바람 많고 눈이 많아 몹시 춥고 여름에는 몹시 덥습니다. 버려진 땅도 많고 농사짓는 사람이 많다고 하니 이땅의 농부 용이와 영팔이가 그곳으로 갈 마음을 굳혔을 수도 있습니다. 영팔네 네 식구와 용이네 네 식구, 그리고 김훈장은 부산에서 서희, 길상, 월선 일행과 합류하여 배를 타고 간도를 향해 출발합니다. 그런데 봉순이는 간도행의 일원이 되지 않고 빠지게 됩니다. 더 이상 서희의 주변인물로서 시중드는 봉순이가 아니라, 새로운 봉순이만의 삶을 열어나갈 적기라고 판단하고 동참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간도로 간지 3년 만인 1911, 용정에 대화재가 납니다. 용정 도시 거의 대부분을 태운 재앙이었습니다. 재앙이란 누군가에게는 부를 거머쥘 기회가 되기도 합니다. 전염병 코로나가 그랬듯이 말입니다. 화재로 불탄 용정을 새롭게 재건하기 위해 도시는 활기차게 됩니다. 열여덟 살 서희는 용정의 대화재를 전화위복으로 삼으려고 스물여섯 살 길상에게 명령을 내립니다.

 

내일 길상이는 회령으로 가야 해. 회령에 있는 재목을 모조리 사는 게야. 수량이 많이 않으면 원목을 그곳 제재소에서 키기로 하고. ”

그렇게 많이 어디다 쓰시려구요.”

많을지 적을지 그것은 가봐야 알 일 아니냐? 두고보아. 재목이 동이 날 테니. 일꾼들을 데리고 가서 일부 목재는 실어 보내고 나머지는 계약을 걸어놓아요.

그리고 따로 일꾼을 사서 불탄 자리를 말끔하게 하고, 우리 집터만이 아니라 장터 옆의 그 자리도 함께 치우는 거야.”

그러면 그 터에서 살던 사람들은 어떻게 하지요.”

어떻게 하다니? 이제는 헐고말고 할 것도 없이 불이 났으니 땅은 땅 임자 마음대로야.”

하지만

뭐가 하지만? 하라면 하라는 대로 하는 거지.”

더 이상 말하지 않고 일단 길상은 물러난다.

 

다음날 이른 조반을 먹고 길 떠날 차비를 차린 길상은 서희가 묵고 있는 방 앞으로 갔다.

애기씨

이제 떠나는 게냐

닫혀진 방문 안에서 서희는 말햇다.

, 한데 일꾼들은 데리고 가지 않고 응칠이만 데려가기로 했습니다.”

문밖에서, 서희가 보는 것도 아닌데 길상은 얼굴을 꼿꼿이 세운 채 눈만 내리깐다. 겨루는 자세인 것이다. 한참 있다가

?”

서희는 이미 길상의 의도를 알아차린 눈치였다.

애기씨 집 짓는 데 쓰일 목재만 사올 생각입니다.”

무슨 말을 하는 게냐? 집 짓는 데 쓸 목재지 그럼 배라도 만들려 했다 그 말이냐?”

서희는 능청을 떤다.

아닙니다. 제가 말씀드린 뜻은 남에게 팔 재목은 아니 가져오겠다 그겁니다.”

뭐라고?”

불이나서 홈싹 망해버린 사람들을 상댈 장사하실 생각은 마십시오. 애기씨 집이랑 곳간을 짓고 또 빈터에 가기들을 지으실려면 그것만으로도 쉬운 일은 아닙니다.”

 

길상은 내친김에 마음속으로는 계속 말한다.

 

이 이상 더 욕을 먹어서 되겠습니까? 윤씨부인의 손녀 서희애기씨께서 떨어진 밥풀까지 주워잡수시겠다 그 말씀입니까?’

 

서희가 무서워서 입밖에 내지 못한 말은 아니다. 그랬다간 발벗고 나서서 재목 장사까지 하려 들 서희의 성미다. 어제 한 말은 진심이 아닌 것도 알고 있다. 필요 이상으로 악착하게 굴어보겠다는 일시적인 오기, 떼를 써본 것이다. 해서 어제는 잠자코 있었다. 하룻밤을 지내고 보면 서희 심경도 달라지리라 생각했다. 용정은 반 이상이 불타버렸으니 목재를 사려면 어차피 회령에는 가야 했다. 서희는 아무말이 없다. 내심 길상이 그렇게 말해주어 다행이라 싶으면서 굽히는 것이 싫어 입을 다물고 있는 모양이다.

 

바람직한 측근의 모습은 어떠해야 하는가,라는 물음에 대한 모범답안을 길상에게서 봅니다. 길상은 서희를 무조건적으로 따르는 종이 아니었습니다. 그런 종은 절대 되지 않을 것을 항상 명심하고서 서희 곁에서 충직하게 일해 온 듯합니다. 어쩌면 올곧은 길상만 아니었더라면 서희는 더 큰 부자가 되었을 법도 합니다. 더 큰 욕을 먹더라도 말입니다.

하지만 서희는 이미 부자가 되었고, 어차피 앞으로 계속 부가 쌓여져 갈 자본가의 입지를 구축했습니다. 서희가 갑부의 반열에 오르기까지 신실한 길상은 줄곧 함께 해왔습니다. 그것은 길상이 서희가 축적한 부에 막중하게 기여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서희에게 아무리 종잣돈이 있었더라도, 서희의 지략이 아무리 뛰어났더라도, 길상이라는 '사람'과의 '관계'가 긴밀하지 않았다면 간도에서 부자가 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서희에게 길상은 은인이나 다름없습니다. 삶을 일궈줄 사람이나 관계의 중요성에 수긍하게 됩니다.

 

서희는 간도에서 거부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소녀에서 여인이 됩니다. 애기씨가 마님이 된 것입니다. 조준구에 대한 복수를 성공시키기 위한 정략이었는지, 아니면 순수한 애정의 발로였는지, 그것도 아니면 길상이 베풀어 준 은혜에 대한 보답이었는지 서희는 길상과 혼인을 합니다.

권위의식이 하늘을 찌를 듯했던 그 최서희가 남의 이목을 도외시 하면서 말입니다. 서희는 아마 혼인 결정을 하면서 자신이 최고라는 자의식과 자기 고집에서 조금씩 놓여났을 듯합니다. 길상과의 혼인 결정은 서희에게 일생일대 최고의 지혜였고, 자신을 새로운 사람으로 창조해가는 시초가 되었을 것입니다. 단 한 사람의 길상, 단 한 사람의 성품은 주변으로 스며들고 번져서 언젠가는 광활한 우주의 기류까지 미세하게 흔들어 줄 것도 같습니다.

 

서희는 길상과 혼인하여 윤국 환국 두 아들을 낳습니다. 서희는 다섯 살까지 함께 살았던 엄마 별당아씨에게서 보고 배우고 느꼈던 자애로움을 두 아들을 향해 한껏 펼쳐냅니다. 간도살이 10년을 끝내고 돌아와 진주에 터전을 잡고 살 때 열세 살 윤국이가 열일곱 살 환국에게 엄마 서희에 대해 평합니다.

 

형은 우리 어머니 좀 이상하다 생각 안 해요? 굉장히 엄하시면서, 무슨 일이 있어도 눈 한 번 까딱하시지 않으시면서, 우리들한테는 잔걱정을 하시니까 그렇지. 대개 사람들은 약하거나 강하거나 좋거나 나쁘거나 어느 한편인데, 안 그래요, ?”

 

 

뻔한 의문 하나를 붙들어봅니다. 서희의 자애로움을 흠씬 받고 자란 환국과 윤국은 과연, 결핍이 없고 상처가 없을까요? 훌륭한 부모를 두고, 재력가의 후손이라고 해서 설마 고통이 없을까요? 역시 뻔한 답을 스스로에게 건넵니다. 어떻게든 부모를 이유 삼아 상처를 만들어내고 그 상처를 끌어안고서 자신들의 삶을 창조해 가는 존재가 자식이 아니겠는가,하고 말입니다.

 

꼽추 병수는 부모 조준구와 홍씨가 남의 재물을 염치없이 갈취하는 그 모습이 죽고 싶을 만큼 치욕스러운 상처였습니다. 서희는 얼굴이 벌겋게 되어 괴로운 듯 기침을 하는 건강하지 못한 아버지 최치수가 두려운 대상이었습니다. 또 불륜적 애정 도피를 꾀했던 엄마 별당아씨도 참으로 수치스러운 상처였습니다. 부모들은 그저 자신들의 삶을 욕망껏 살아낼 뿐이었는데 자식들에게 상처로 가닿았던 것입니다. 상처가 거름이 될 수도 있을까요? 일제강점기 속에서도 꼽추 병수는 목공예의 일인자가 되고, 서희는 갑부의 대열에 올라섭니다. 부모에 대한 응어리진 상처가 하늘만큼 땅만큼 컸던 두 사람이 말입니다. 상처를 탓하며 상처를 핑계삼아 자신의 삶을 가두는 것은 어리석음이 아닐까 싶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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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리 토지(조병수편)-자립의 위대함과 치유의 이타성 내용 평점5점   편집/디자인 평점5점 i*****e | 2022.06.27 | 추천0 | 댓글0 리뷰제목
“외모 결핍 사랑 결핍에도 불구하고 목공예의 일인자로 등극하다”라는 제목으로 꼽추 조병수를 만납니다. 꼽추는 허리가 둥글게 굽어 등이 혹처럼 튀어나온 사람을 일컫습니다. 꼽추라는 멍에를 짊어지고 살아가는 병수를 통해 깨달은 바는, 인류가 이기적이어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타성을 버리지 못하고 지금까지 끌어안고 살아온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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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모 결핍 사랑 결핍에도 불구하고 목공예의 일인자로 등극하다라는 제목으로 꼽추 조병수를 만납니다. 꼽추는 허리가 둥글게 굽어 등이 혹처럼 튀어나온 사람을 일컫습니다. 꼽추라는 멍에를 짊어지고 살아가는 병수를 통해 깨달은 바는, 인류가 이기적이어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타성을 버리지 못하고 지금까지 끌어안고 살아온 이유입니다.

 

꼽추 장애는 어찌하여 병수의 것이 되었으며, 또 어찌하여 파렴치한이 병수의 부모가 된 것일까요? 병수는 자신을 낳아준 부모, 조준구와 홍씨에게조차 업신여김을 당해야 했던 존재였습니다.

 

조병수를 일러 꼽추도령이요 천치 바보요 오줌도 가릴 줄 모른다는 사실과 억측 속에 인간 폐물로 추호의 동정 없는 낙인 찍힌 존재다.

 

외모로써 인간 본질을 파악하는 것이 얼마나 그릇된 오류일 수 있는지를 소설은 여지없이 펼쳐내 보여줍니다. 또 자식은 그 부모와 판이하게 다를 수 있다는 사실을 가차없이 드러내기도 합니다.

 

기괴스런 병신이지만 얼굴은 천상의 동자같이 깨끗하다. 부모들과는 딴판으로 어떤 성령이 그의 속에 깃들어 있는 것처럼 정하고 귀하게 보인다.

 

귀녀는 자신이 당한 모욕을 잊지 않고 원한을 품고 복수를 단행했습니다. 그렇지만 꼽추 병수에게 모멸은 너무나 일상적이다보니 원한이 되지 못했을까요? 모멸의 언사는 허공에 흩어질 뿐 병수에게 스며들지 못합니다. 꼽추인 자신으로써 도저히 응징할 힘이 없기에 수모를 당하더라도 애써 모른 척했던 것일까요? 약자의 처세술로써 말입니다.

 

병수는 자신의 장애보다도 부모가 남의 재물을 갈취하는 악행이 수치였습니다. 간악한 부모가 먹여주고 입혀주고 재워주는 대로 도저히 살아갈 수가 없어 거리로 뛰쳐나옵니다. 양반 자제 병수가 거리에서 구걸하는 거지 신세를 자처하게 된 것입니다. 꼽추 장애에 걸맞은 자립은 거지가 되는 것이라고 여겼을 수 있습니다. 아무리 부모가 악행으로 재산을 모았다고 하더라도 그 덕분에 얻게 되는 안락한 의식주를 박차고 뛰쳐나오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 절대 아닙니다. 거지 행세를 하는 병수를 아버지 조준구는 병신이라고 칭합니다.

 

그놈이 이 애비 얼굴에 똥칠을 하느라 유리걸식을 한다더구먼.”

조씨 어른께서 좀 거두면 그렇게 됐겄소?”

아니오. 그거는 그렇지가 않소. 거둔다고 그것 받을 놈이 아니오. 그놈은 애비가 망하고 무일푼 되기만을 고대하는 게요. , 병신이면 병신답게 엎드려 있지 못하고.”

어디서 들은 얘긴데 요즘엔 소목 일을 배우고 있다 하더마요.”

소목일, 그거 유리걸식보담은 낫구먼. 하하하 핫핫핫.”

 

꼽추라는 장애를 가진 병수가 자립한다는 것은 예사로운 일은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부모가 마련해주는 의식주를 과감하게 포기합니다. 고생스럽게 떠돌다가 마침내 소목일을 만나게 되고, 그 일로 차츰 자립에 이르게 됩니다. 떳떳한 자립은 곧 병수에게 자기 구원이었을 수 있습니다. 악덕한 부모의 돈으로 목숨을 부지하지 않아도 되니 말입니다. 병수에게 소목일이 얼마나 보배로웠을지는 능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병수가 소목일의 일인자가 되는 것은 따 놓은 당상에 틀림없어 보입니다.

 

병수는 거리의 걸인으로 나서기 전에 굶고 싶지만 먹게 되었고, 죽고 싶지만 살게 되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죽지도 살지도 못하는, 죽은 것도 산 것도 아닌 그 중간지대에는 꼽추인 자신에게 시집을 온 아내가 있었고 두 아이들이 있었습니다. 최참판댁 마당에서 술래잡기를 하고 나비를 쫓아다니는 두 아이조차 거리로 나서고자 하는 병수의 마음을 가라앉히지 못했습니다. 병수 내면에서 일렁이는 파도를 가족이라고해서 잠재울 수는 없었던 것입니다. 병수는 이타성을 발휘하기 위해 먼저 이기적이어야 했습니다. 가족을 떳떳하게 건사하기 위해서라도 자립이 다급했던 것입니다. 꼽추인 몸으로라도 밝게 자라는 아이들을 더 밝게, 찌푸려져 있는 아내의 얼굴을 화사하게 펴주기 위해서라도 거리로 나서야 했습니다.

 

꼽추 도령 병수가 장가든 그때는 쌀밥이요 고기반찬이었을 테지만 울면서 밥을 먹어야 했던 병수였다. 일종의 희생물로 바쳐진 병수의 아내 되는 사람은 더더구나 삶에 대한 무의지가 질병처럼 스며들어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시초부터 상전 되기를 거부해왔고 먹는 것을 거부해 왔으며 사는 것을 거부해온 병수는, 그러나 상전이기도 했고 자신을 저주하면서도 밥을 먹었으며 죽지도 못했다. 먹고 마시고 사는 일은 무의미했지만, 먹고 굶는 중간지대에서, 죽고 사는 중간지대에서, 엉거주춤한 생각은 퇴화해 갈밖에 없었다.

병수는 죽음으로 줄달음치고자 하는 발작이 일 때마다 죽지 않으려는 비명, 죽으려는 몸부림의 파도가 일었다. 언제나 조용하고 무시무시하게 조용한 집안은 썩은 물이 고인 웅덩이요 나태와 오수의 온상이었다. 다만 두 아이들이 봄풀을 뜯고 술래잡기를 하고 나비를 잡고 햇볕을 쬐며 자라고 있는 것이다. 찌푸린 것이 아니라 항상 찌푸려져 있는 얼굴의 아내는 막대기처럼 무표정, 무신경, 처참했다. 찌푸려진 얼굴에는 인간적인 느낌이라곤 한 오라기 찾아볼 수 없다. 벽돌짝처럼 말뚝처럼 굳어진 모습이다.

 

사실 병수는 자신처럼 몸이 온전하지 못한 사람과 혼인을 하고 싶어 했습니다. 장애를 가진 사람끼리 다정다감하게 지내는 혼인을 상상하면서 얼굴을 붉히고 혼자 슬몃 웃었던 적이 있습니다.

 

내가 어찌 서희한테 장가를 든단 말이냐? 나같이 병신 계집애가 있다면 내 색시 삼아서, 눈물도 닦아주고 신발도 신겨주고 맛난 복숭아도 따다 주고 또오 또오...... ’

 

하지만 병수의 그 바람은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두려워하는 엄마 홍씨가 병수를 서희와 혼인시키려고 다그쳤던 적이 있습니다. 재물에 대한 욕망을 채우는데 유리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병수는 그때 유순하지 않았습니다. 서희와의 혼인 추진에 죽기살기로 반대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병수가 서희를 어여삐 여기지 않았던 것은 아닙니다. 병수는 서희가 보고 싶어서 대숲쪽 담장에 난 조그만 구멍을 통해 별당 뜰을 몰래 들여다본 적도 있습니다.

 

병수는 대숲을 걷다가 걸음을 멈춘다. 담장 가까이로 행복해진 얼굴을 가져간다. 조그마한 구멍에 한쪽 눈을 바싹 갖다 댄다. 한쪽 눈이 비친 곳은 별당 뜨락이다. 서희 모습이 나타났다. 병수 눈빛이 환해진다.

가엾은 서희......하늘의 선녀라고 저렇게 어여쁘게 생겼을까.’

병수 눈에 눈물이 글썽인다.

내 이 병신만 아니더면...... 이 세상 끝까지 너를 따라가겠다! 내 이 병신만 아니더면 너도 나를 싫어하지는 않았을 거야. 가엾은 서희, 너를 위해 나는 무엇을 하리. 부끄럽다! 부끄러워. 이 집도 살림도 땅도 모두 서희네 건데...... 우린 비렁뱅인데, 네 말대로 비렁뱅인데 말이야!’

눈물에 흐려 서희 모습이 물감처럼 번져난다.

 

도련님. 거기서 뭘하시오?”

노기에 찬 길상의 눈이 쏘아보고 있었다. 병수의 얼굴은 사색이다. 평소 준수했던 길상이 무시무시한 살기를 뿜어낸다. 다음은 웃었다. 살기보다 무서운 모멸의 웃음이다.

병신 육갑한다 카더니마는 흥! 그 말이 조금도 그르잖구마. 꿈도 꾸지 마시오. 하늘을 우러러보고 땅을 굽어보고 물어보시오. 될 법이나 한 일이오? 천지개벽이 있어도 우리 애기씨는 안 될 기요!” 하는데 길상의 얼굴은 입술빛까지 하얗게 질린다.

, 꿈에도, , 그런 생각은. , 나는 서희가 불쌍했을 뿐이야. , 꿈에도, 아 아버님이 굳이 혼인하라신다면 나, 나는 죽어버릴 테야.”

도련님? 정말로 그리 생각하시오? 정녕 그렇소?”

정말이야. 정녕! 죽어버릴 테야. 맹세하겠어. 나는 죽어버릴 테야. 아무도 용서할 수 없는 일이야. 난 그걸 알어. 어째 길상이는 그걸 몰라주니?”

그러믄 와 이런 짓을 하시오?”

, 너무 이뻐서. , 나 난 말이야. 누이동생이 예, 예뻐서 말이야. 길상아. 내 이 수치스런 짓 아, 아무에게도 말 안 하겠지?”

, 입 밖에 내지 않겄십니다.”

병수는 흐느껴 운다. 울음은 격렬해져서 경기들린 아이처럼 전신을 떤다. 길상은 병수를 번쩍 안아 올리더니 대숲을 빠져나간다.

 

병수가 서희를 지켜봤던 적은 또 있습니다. 봉순이와 서희가 별당 연못가에 앉아 울음을 터뜨릴 때도 바라봤습니다. 봉순이가 죽은 엄마가 보고 싶다며 먼저 울기 시작했습니다. 울면 무슨 소용이 있냐고 의젓하게 달래던 서희에게, 봉순이는 온 집안이 떠들썩하도록 엄마 데려오라는 떼를 썼던 서희의 어린 시절을 들먹입니다. 그랬더니 서희는 꾸욱 잠재웠던 엄마에 대한 그리움을 폭발시키고 맙니다. 억눌러있었을 뿐 욕망은 사라지지 않았던 것입니다.

 

서희는 발딱 일어섰다. “너만 엄마가 죽었니! 너만 엄마가 죽었냔 말이야!”

서희는 땅바닥에 주질러 앉아 울음을 터뜨렸다. 울부짖고 새파랗게 질리고 눈을 까집으며 까무라칠 지경이다. 어릴 적 그대로의 패악이었다. 봉순이도 함께 울음을 터뜨린다.

 

꼽추 도령 병수가 신기한 듯이 얼굴을 기웃이 내밀고 있었다. 투명하고 창백한 얼굴에 커다란 눈이 울부짖는 서희 모습을 지켜본다. 기괴스런 병신이지만 얼굴은 천상의 동자같이 깨끗하다. 달밤에 이슬만 먹고 자란 풀잎처럼 가냘프다. 조준구의 모습이 없는 것은 아니나 부모들과는 딴판으로 어떤 성령이 그의 속에 깃들어 있는 것처럼 정하고 귀하게 보인다.

 

별안간 서희는 울음을 그쳤다. 병수를 보았던 것이다. 눈을 부릅뜨고 병수 가까이 걸어간다. 병수 얼굴에 손가락을 겨누며

비렁뱅이 병신! 네가 내 신랑이 되겠다 그 말이냐?”

홍당무가 된 병수는 어떻게 해야 좋을지를 모른다.

가아! 다시, 두 번 다시 별당에 얼씬거렸다간 당산나무에 매달아서 때려죽일 테야!”

광태며 파격의 행동이다. 열한 살이면 행세하는 집안의 규수로서 그런 언동은 상상키 어려운 일이었다.

 

하지만 병수 눈에는 엄마를 보고싶어 하는 서희의 애처로움만 보일 뿐, 양반 규수로서의 허물은 보이지 않습니다. 서희에게 병신이라는 욕을 들은 이후에도 여전히 서희를 가여워하고 아름답게 여기며 살았으니 말입니다. 그나저나 어미가 보고 싶어서 울어대는 서희와 봉순이를 바라보는 병수의 심사는 어떠했을까요? 서희와 봉순이가 간직하고 있는 어미에 대한 정을 병수로서는 도무지 경험한 바가 없었으니 서희와 봉순이가 신기하게 보였을 법합니다. 병수 의식 속에는 어미에 대한 두려움과 혐오감이 깊이 박혀 있을 뿐입니다. 찢긴 작은 눈에 흰자위가 가득한 무서운 얼굴을 가진 어미 홍씨는 공포의 대상일 따름입니다. 병수는 서울 골방에 갇혀 살던 그 시절의 무서운 어미의 모습을 떠올립니다.

 

언제였던지 뚜렷이는 기억할 수 없다. 서울 있을 때의 일이다. 빈집에 낯선 손님이 찾아왔었다. 병수는 햇빛을 따라 골방에서 마루까지 기어 나왔다. 따스한 초봄 햇빛을 받고 앉았는데 졸음이 왔다.

아이구 이게 누구야? 우리 병수도련님이구먼. 어릴 때 내가 안아 주곤 했었는데, 관옥 같은 얼굴에........가엾은 병수.”

중년의 점잖은 여인은 슬픈 눈이 되었다가 눈에 눈물이 핑 돌았다. 등 뒤에서 병수를 노려보던 어머니는 여인의 소매를 잡아끌었다. 여인은 주머니 속에서 은전 한 닢을 꺼내어 병수 손에 쥐여 주었다. 문간까지 바래다주고 돌아온 어머니는 병수를 쥐어박았다.

하필이면 손님이 와 있는데 마루까지 나올 건 뭐람? , 창피스러워서.”

 

심심했던 병수는 은전 한 닢이 신기하여 골방 속에서 이틀을 가지고 놀았다. 은전이 큰 궤짝 밑으로 들어가고 말았다. 그러다가 병수는 은전 잃은 것을 잊었다. 다음 날 어머니가 나타났다.

너 아주머님한테 받은 은전 내놔.”

병수는 두려운 생각 때문에 입이 떨어지질 않았다. 몇 번인가 쥐어박힌 뒤 궤짝 밑에 들어갔노라 했다. 궤짝을 들어내어 은전을 찾은 뒤에는 뺨을 두 차롄가 맞았다. 그런 일이 있은 후 병수는 어머니 장롱 속에 은전이 가득 들어 있는 것을 보았다.

 

홍씨는 은전을 욕망하는데 온 힘을 쏟느라 자식은 안중에 없습니다. 에너지가 고갈되어 재물 이외에는 마음이 가지지 않습니다. 게다가 홍씨에게 꼽추 병수는 사랑스러운 아들이 아니었습니다. 홍씨는 자신의 자랑스러운 깃발이 되어주지 못하는 자식과 남편에 대한 결핍을 재물에 대한 욕망으로 대신했을 수 있습니다. 홍씨는 재물의 화신이 되면서 어머니도 되지 못하고 아내도 되지 못하는 길로 들어서게 된 것입니다. 재물 소유에 집착하고 중독되면서 사람의 도리는 망각되어 갔을 듯합니다.

 

골방에서 지냈던 병수가 최참판댁으로 내려왔을 때는 열두 살이었습니다. 당시 서희는 열 살이었습니다. 최치수는 죽고 윤씨부인은 아직 살아있을 적입니다. 그렇지만 병수는 윤씨부인께 자기 존재를 알리지 못했습니다. 조준구와 홍씨가 창피스러운 마음에 인사를 시켜주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조준구가 나귀에서 내리고 뒤따르던 가마 두 틀이 멎는다. 놀라운 광경이 벌어졌다. 홍씨가 타고 온 가마 뒤켠에 마치 짐짝같이 내버려져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았던 가마 속에서 뭔지 모르는 이상한 것이 엉금엉금 기어나왔던 것이다. 그것은 아이였었다. 분명 사내아이임에 틀림이 없다. 얼굴을 봐서는 여남은 살쯤 된 것 같았고 평생 햇빛이라곤 받아본 일이 없었던지 종잇장처럼 창백한 얼굴이었다. 꼽추였었다. 아이는 어머니를 두려워하는 듯 계집종 곁에 가서 치마폭 속에 몸을 숨기듯 하며 눈만 내밀고 사방의 형편을 경이에 찬 표정으로 살펴보는 것이었다. 길상이는 움직일 줄 모르고 처참한 광경을 지켜보고 서 있었다. 해맑은 눈동자에는 어떤 의문의 빛도 없었으며 얼굴은 아름다웠다. 계집아이같이 입술은 빨그레했다.

 

어두운 골방에 갇혀 살던 십대 소년 병수에게 최참판댁과 평사리는 심신을 고양시켜 주는 밝은 무대가 됩니다. 비록 부모가 재물 갈취를 도모하고자 결정한 평사리행이었지만 자식 병수에게는 골방에서는 도저히 맛볼 수 없었던 풍부한 빛과 넓디넓은 공간을 선사했던 것입니다. 부모의 나쁜 의도가 자식에게 좋은 기회로 작용되어질 수 있다니 세상사 오묘할 따름입니다.

 

서울에서의 골방살이에 비한다면 평사리는 넓고 넓은 천지였다. 그는 시시로 뒷산에 올라 하늘과 강물과 숲과 들판을, 철 따라 다양하게 변모하는 자연을 볼 수 있었고 날짐승 들짐승 뭇벌레들, 사철의 식물들을 볼 수 있었고, 먼발치로 들일 하는 농부들의 생태도 볼 수 있었다. 가두어진 생활에서 일시에 밀어닥친 외계의 상황은 그런 만큼 신선하고 강렬했을 것이다. 목마른 나무가 물을 빨아올리듯이 새로운 환경은 그에게 숱한 지혜를 주었고 생각을 풍부하게 해주었으며 사물을 판단하는 능력을 길러주었다.

 

불타 없어진 누각 빈터에 쭈그리고 앉아서 마을을 내려다보며 병수는 생각한다. 산에 오르면 늘 하는 생각이다.

생각할수록 모르겠어. 어째서 세월을 간다 하는고? 사람들을 한 해가 가고 한 해가 온다고 말들 한단 말이야. 아니야. 끝이 없을 건데, 시작도 없을 건데 어째 시간이 있단 말이야? 세월이 어디 있다고 금을 긋고 길이를 재느냐 말이야? 날마다 해는 동쪽에서 서쪽으로 가고, 그게 세월이란 말일까? 그래서 사람들은 늙어가고 죽고 또 아이가 태어나고 자라는 걸까? 세월, 시간, 그게 뭐길래? 알 수 없군. 세월은 바람일까? 바람이 사람들을, 이 세상에 있는 것을 어디로 자꾸 몰고 가는 걸까?’

 

병수는 무슨 다른 재미나는 생각이 없을까 하고 눈을 멀리 보낸다. 눈에 비치는 것은 모두가 새롭고 신기하다. 말없는 자연과 마주하고 있으면 샘처럼 온갖 공상이 솟아나 그를 즐겁게 해준다. 슬픈 일을 생각할 때도 슬프지 않다.

 

와아, 병수는 자연의 품에서 결핍을 승화시킵니다. 상처를 치유합니다. 결핍과 상처를 운과 복으로 전환시키고 있습니다. 어머니 홍씨가 결핍을 재물로 채웠다면 병수는 자연과의 관계 맺기로 결핍을 날려버립니다. 결핍이 흩어진 그 자리는 고독할 수 있는 여유로 채워집니다. 고독은 자연과의 충분하고도 각별한 관계 맺기를 선물합니다. 누구도 관심을 가져주지 않는 꼽추이기에 오롯이 자신의 주인이 되어 자연을 만납니다.

자연과 친구 되니 자연을 철저하게 이해하게 되고, 그 통찰 속에서 병수는 자기 자신을 불쌍하고 부끄러운 병신이 아니라 온전한 꼽추 인간이라는 자연의 일부로 받아들였음 직합니다. 보호받아야 할 미숙한 존재가 아니라, 비난받아야 할 기이한 병신이 아니라, 꼽추도 숱한 인간 자연중의 하나임을 깨닫고 꼽추답고도 인간다운 자신의 삶을 기획했을지 모릅니다. 자연과의 우정이 도타워질수록 꼽추라는 자신의 외모와, 사악한 부모를 만난 인연을 자연의 섭리로 납득하고 수긍했으리라 싶습니다.

 

병수는 자신을 꼽추로 태어나게 한 부모를 향해 원망하지 않습니다. 꼽추인 자신의 몸에 적응하면서 그냥 살아갑니다. 남과 비교하지 않으니 장애인 자신의 몸에 불만을 가지지도 않습니다. 꼽추와 하나되어 살아가니 장애가 장애로 여겨지지도 않습니다. 꼽추인 자신의 몸이 해낼 수 있는 활동을 찾아 자신의 존재를 만들어갑니다. 꼽추여도 자연과 놀고 책과 놀 수 있으니 병수는 그것들을 실컷 누립니다.

 

병수는 최참판댁 별채에서 글선생 이초시와 함께 생활합니다. 채마밭이 앞에 펼쳐진 별채는 예전에 윤씨부인 측근 김서방 부부가 살았었고, 서울에서 내려온 홍씨가 잠시 기거했고, 윤씨부인이 죽은 후 홍씨가 안채로 건너가자 별채는 병수 차지가 되었습니다. 병수는 별채에서 이어진 숲길을 오르내리고 책을 읽기도 하면서 별채 공간을 한껏 만끽합니다. 부모조차 잠시라도 들르지 않는 별채는 소외감을 자연과 책이 주는 사유로 가득 채울 수 있는 안성맞춤 공간이 됩니다.

 

게을러 빠진 것과 낮잠을 즐기는 버릇 이외 이렇다 할 특징이라곤 없는 이초시는 병수의 글 선생이다. 조준구와 홍씨가 얼씬거린 일이 없었으므로 누가 가타부타 할 사람도 없다. 애초부터 병신 아들, 면무식이나 하게 하자고 데려다 놓은 사람인 만큼 두 내외는 이초시에 대해서도 도통 관심이 없는 것이다. 시원찮은 선생이었으나 이초시한테 소학을 배우고 통감을 떼고 사서를 배우면서 도덕률에 의한 가치를, 인간 행위의 존엄성을 헤아리는 의지를, 지각하게 된다. 실로 병수는 옛날 성현의 글, 그 행간행간에 배어난 위대한 사상을 흡수하고 깨달으며 비약하고 상승해갔다.

 

병수의 공부는 신나고도 재미난 고군분투가 되었을 성싶습니다. 병수는 홀로 공부하는 속에서 더 부지런히 더 풍부하게 깨쳐나갔을 것입니다. 자칫 혼자하는 공부는 자기 고집을 더 공고히 하기 십상이라지만 병수는 우주 만물과 책의 행간들과 관계 맺고 사귀는 데에 바빠질수록 유연해져 갑니다.

항상 변하면서도 늘 그대로인, 자연을 향해 질문하고 소통하면서 병수만의 삶을 창조해 나갑니다. 대자연이라는 실제 현장과 이론적인 책이 다 함께 벗이 되어 주니 통찰과 안목은 일취월장하게 됩니다. 이는 글만 가르치고 게으른 이초시가 결코 당도할 수 없는 경지입니다.

 

가르치는 이초시는 게으름을 피워도 배우는 병수는 게으르지 않았습니다. 이초시가 게으른 것은 꼽추 장애를 가진 자신을 도외시하는 처사라는 것을 병수는 간파합니다. 자신에게 글을 가르쳐주는 선생에게서 무시를 당해야 하니 얼마나 마음이 허했을까요? 이초시는 직접 글을 가르치면서도 왜 병수의 성품과 능력을 인지할 수 없었을까요? 어쩌면 충분히 느꼈지만 그 느낌을 거부하고 싶었는지도 모릅니다. 병수의 실력에 주눅이 들어 그의 장애를 무시할 수 없게 될까 봐, 그러면 마음놓고 게으름을 피울 수 없게 될까 봐 인정하기 싫었을 수 있습니다. 옹색한 이초시로서는 병수의 능력을 인정해 주는 순간부터 자신의 입지가 좁아질 것을 우려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서울서 열두 살까지 불구 자식을 수치로 아는 홍씨에 의해 세상 구경을 못하고 어두침침한 골방에서 자란 병수가 최참판댁에 내려와 자라지 않은 채 열다섯이 되었다. 자라지 않는 신체, 그 신체와는 반대로 정신의 성장은 이상하게 빨랐다.

 

대체로 신체적 불구자는 성한 사람들보다 감각이 예민하다고 한다. 병수는 감수성이 빨랐다. 직감은 정확했고 본능적으로 상대방의 특질을 파악한다. 단순히 선악의 기준에서 파악한다기보다 사람들 성격의 빛깔이랄까 분위기랄까, 느낌 같은 것이라 할까.

 

병수는 내심 이초시를 좋아하지 않고 길상이를 좋아합니다. 길상이는 티내지 않고 아무렇지 않은 듯 슬쩍 병수를 거들어주고 도와줍니다. 길상이는 이초시가 감지하지 못한 병수의 자질과 지성을 감지하고 있습니다. 꼽추 장애를 가졌지만 맑고 선량한 병수를 존중합니다.

 

꼽추 장애에 가려 병수의 자질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병수의 남다른 점을 감지하고 있는 길상은 많은 장님 속에서 눈뜬 사람의 하나라고나 할까. 한번은 높은 마루에 오르질 못하여 병수가 버둥거리고 있을 때 뒤에서 누가 안아 올려준 일이 있었다. 길상이었다. 그때 그의 눈에는 슬프고 따스한 것 같은 빛이 서려 있었지만 그 후 다시 무뚝뚝해지고 말았다. 그러나 병수는 길상이 좋았다.

 

대자연과 옛 성현의 책이 타인을 이해하고 배려하는 이타성을 함양시켰을까요? 꼽추 병수의 이타적인 감수성은 정말 남달랐습니다. 철 지나도록 울고 있는 매미를 안쓰러워하고 학대와 폭행을 일상적으로 겪고 있는 삼월이를 위로합니다. 자신이 더 가련할 수도 있는 꼽추 장애를 가진 사람이라는 것을 잊어버리고서 말입니다.

어쩌면 자신의 멍에나 고통을 잊게 하는 것이 이타적인 마음일 수도 있겠다, 싶습니다. 상처를 치유할 수 있는 대안이 이타성일 수도 있음을 병수를 통해 배웁니다. 이타성에는 상처를 지우는 힘이 있는 듯합니다. 병수는 자신의 장애를 괴로워할 여가가 없을 뿐만 아니라 모욕을 당해도 가여워해 달라고 징징대지도 않습니다. 이타성을 발휘하느라 자신의 고통과 상처를 돌아본다든지 아파할 틈이 없습니다. 이기적이어야만 생존할 수 있었던 인류가 그 긴긴 역사 속에서 여전히 이타성을 부여잡고 있었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지 않을까요?

고통을 덜어내는 데는 이타성만한 것도 없을 것 같습니다. 고통을 덜어내지 않으면 살 수가 없고, 살려면 고통을 덜어내야 할 경우가 있습니다. 인류는 생존하기 위해 이기적이어야 했겠지만 생존하려면 또 이타적이기도 해야 했을 것입니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도 남은 가족이나 다음 세대에 대한 이타성을 발휘할 때만이 덜어질 수 있으리라 싶습니다.

 

별채에서 병수는 글을 읽다가 고개를 들어 매미를 연민합니다. 안채와 별당 사이에 있는 팽나무 속에서 찢어지게 울어대는 매미를 말입니다.

 

여름도 다 가는데 여태 매미가 우네? 저러다가 찬 바람이 불면 어디로 갈까? 아마 죽어버릴 거야

병수는 늘 생각하는데, 귀청이 윙윙 울리도록 시끄럽게 울어대는 매미 소리가 싫지 않은 것이 이상했다. 어머니 홍씨의 악쓰는 목청을 들으면 전신이 오그라들 듯 무섭고 괴로웠는데 그보다 시끄러운 매미 소리는 왜 싫지 않을까 하고.

이슬만 먹고 사는 죄 없는 벌레니까, 사람들처럼 욕심부리고 싸우지도 않지. 그리고 여름이 가면 죽는 슬픈 신세니까 말이야.’

 

병수는 채마밭에 쭈그리고 있는 삼월이를 본다. 여전히 피멍이 든 얼굴이다. 어머니의 소행이거니, 병수는 언젠가 삼월에게 모진 매질을 가했던 어머니의 무서운 형상을 생각한다. 병수는 삼월의 멍든 얼굴이 자기 등에 짊어진 혹과 비슷하다는 생각을 한다. 눈으로 볼 수 없는 등의 혹에도 저와 같은 피멍이 있고 손톱으로 할퀸 핏자국이 있으리라 생각을 한다. 왜 그런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었다. 마당에 내려간 병수는

삼월아! 배출 뭘 할려고 그래?”

머하기는요? 김치 담을라고요.”

배추 다듬는 손을 멈추지 않고 대답한다. 뻔한 일이다. 뻔한 일을 물어보는 것은 삼월에게 말을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날씨가 추워졌지?”

.”

병수는 빙긋이 웃는다. 무슨 말을 할까. 적당한 말이 없다. 가까이서 보는 멍은 자줏빛에 가깝다. 별안간 멍든 삼월의 얼굴을 쓸어주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울컥 치미는 애정, 정다운 마음.

밥 많이 먹었니?”

?”

삼월이 의아해하며 쳐다본다. 바보 도련님이 하는 소리거니 하고 다시 배추 진잎을 뜯어내고 다듬는다.

삼월아. 옛날에 말이야. 장화홍련 있잖어? 계모 땜에 죽은 형제 말이야.”

삼월이는 도통 관심이 없다. 병수 역시 들어주기를 바라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무심히 한 말은 아니다.

삼월아, 니가 그 장화 같단 말이야.”

.” 덮어놓고 삼월이는 대답한다.

그러면 나는 홍련이란 말이지?’

병수는 제깐에도 우스워서 하하핫 하고 웃다가 생각이 별안간 비약한다. 은전 한 닢.

나한테 은전이 있다면 첫째로 삼월이한테 주고 싶어. 그러면 삼월이는 애길 데리고 도망칠 수 있을 거야. 그러면 얼굴에 멍도 안 들고 목에 피딱지도 앉지 않을 거야. 왜 어머니는 삼월이를 노상 때릴까? 이젠 아기 낳은 어머닌데 말이야.’

 

윤보가 자신의 곰보 얼굴과 친하게 지냈다면 병수는 자신의 굽은 등에 적응하며 살았습니다.

윤보가 목조주택을 짓는 대목의 전문가였다면 병수는 가구나 문방구 등 목공예품을 만드는 소목의 일인자입니다. 윤보가 노총각으로 생을 마감했다면 병수는 아내와 두 아이를 둔 가장입니다. 게다가 온갖 악행을 저지르는 아비가 되어 병수에게 수모를 안겼던 조준구의 말년을 보살피기까지 합니다.

 

돌이켜보면 병수가 부모 때문에 고통스러운 삶을 살았지만 그의 삶에 부모의 노고가 영 없지는 않았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꼽추 병수의 자립에 부모가 나름대로 기여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니 말입니다. 우선 병수에게 사람이라는 생명을 부여했습니다. 부모는 꼽추 장애를 가진 자식을 버리지 않았고, 골방에서 키웠지만 먹여주고 입혀주고 재워주었습니다. 생명을 지켜주었던 것입니다. 또 짐짝 취급이었지만 어쨌든 가마에 태워 평사리까지 데리고 왔습니다. 풍부한 햇빛과 호젓하게 오를 수 있는 뒷산을 선사해 주었던 것입니다. 별채라는 병수만의 아지트에서는 개인 글선생으로부터 글을 배우게도 해주었습니다. 자연과 책을 가까이 할 수 있게 해 주었으니 그것만으로도 부모의 큰 은혜를 입은 것이라 여겨집니다. 뿐만 아니라 꼽추 자식을 혼인까지 시켜주었으니 부모 노릇은 거의 한듯싶습니다. 아니 보통 수준은 능가한 부모 노릇에서 재력과 계층의 위력을 실감하게 됩니다.

 

이 시점에 이르고보니 누가 누구를 연민하고 누가 누구를 선망할 수 있단 말인가, 하는 질문을 품게 됩니다. 또 하나 더 던지게 되는 질문은 과연 온전한 인간, 정상적인 인간이란 어느 누구를 이르는 말인가,하는 것입니다. 양반가의 병수가 거리의 걸인에서부터 자립을 시작하는 용기와 꼽추 장애를 가진 그의 지고지순한 인간적 풍모를 보니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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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518 이*하 내용 평점5점   편집/디자인 평점4점 YES마니아 : 로얄 a*********3 | 2022.06.13 | 추천0 | 댓글0 리뷰제목
총 26권으로 구성된 대하 소설인 토지의 시작인 1권은 주로 주인공 서희의 어린시절과 최참판댁의 최치수, 그리고 평사리 마을의 분위기를 이야기로 이루어져 있다. 읽으면서 인상 깊은 구절이 여럿 있었는데, 특히 여는 말에 담겨 있던 작가의 말이 인상 깊었다. '도시 인간들이 이룩한 것이 무엇일까?' 라는 구절이었다. 지금과 같은 이 땅에서 100년 전을 꿋꿋이 살아가던 사람들의 모;
리뷰제목
총 26권으로 구성된 대하 소설인 토지의 시작인 1권은 주로 주인공 서희의 어린시절과 최참판댁의 최치수, 그리고 평사리 마을의 분위기를 이야기로 이루어져 있다. 읽으면서 인상 깊은 구절이 여럿 있었는데, 특히 여는 말에 담겨 있던 작가의 말이 인상 깊었다. '도시 인간들이 이룩한 것이 무엇일까?' 라는 구절이었다. 지금과 같은 이 땅에서 100년 전을 꿋꿋이 살아가던 사람들의 모습이 눈에 선하게 보이는 것 같았던 토지라는 책에서의 이야기와 지금의 우리를 다시금 생각해보게 만드는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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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줄평 (97건) 한줄평 총점 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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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매 평점5점
정주행 시작합니다 천천히 사 볼게요
1명이 이 한줄평을 추천합니다. 공감 1
불**면 | 2022.02.08
구매 평점5점
최치수네를 중심으로 인간의 욕망이 불러일으키는 고단한 삶의 다양한 모습을 이야기하다.
1명이 이 한줄평을 추천합니다. 공감 1
YES마니아 : 로얄 이*기 | 2022.01.03
구매 평점5점
재밌네요
1명이 이 한줄평을 추천합니다. 공감 1
YES마니아 : 플래티넘 부**자 | 2021.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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