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행복에게 자유를
행복은 늘 함께 할 수 없다. 잡을 수 없고 무상한 것이다. 따뜻한 햇살처럼 시원한 바람처럼 마주할 때 잠시 누리는 인생의 일부이다. 행복을 바라는 욕구가 강하면 자꾸 두리번거리고 갈구하게 만든다. 행복에 대한 집착이 오히려 삶을 불행하게 만든다. 쫓아가면 잡을 수 없는 무지개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행복에 대한 욕구를 낮추면 오히려 일상의 소소한 것들이 즐거움으로 다가온다. 행복에 대한 막연한 기대치가 사라지기 때문이다. 행복을 놓아주자. 오고 싶을 때 오고, 가고 싶을 때 가도록 행복에게 자유를 주자. 그리고 우리도 행복으로부터 자유로워지자.
--- p.361
· 자유롭게 산다는 것
자유롭게 산다는 것은 진정한 자유에 의해서 살아가는 것이다. 진정한 자유의 ‘자(自)’자는 결국 희망자기상이라고 할 수 있다. 자(自)는 ‘나’이고, 나 중에서도 ‘내가 원하는 나’이며, 그것은 희망자기상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자유롭게 사는 것은 희망자기상에 의하여 살아가는 것이다. 자신의 삶을 희망자기상에 의하여 결정하고 희망자기상을 실현할 수 있도록 자신의 욕구를 선택하는 것이다. 진정한 자유는 의지가 있어야 누릴 수 있다. 내 자신을 운영할 힘, 그것이 자유를 보장한다. 따라서 진정한 자유를 원한다면 의지를 키워야 한다. 희망자기상이 자(自)라면, 의지는 유(由)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즉, 희망자기상과 의지가 있어야 자유롭게 살 수 있다는 것이다.
--- p.367
· 인간이 스스로를 바꿀 수 있는 근거
만약 선천적으로 희망자기상이 정해져있다면 생각할 것도 고민할 것도 없이 그길로 가게 될 것이다. 그것은 동물과 같이 정형화된 삶의 패턴을 가져온다. 그러나 인간은 그렇지 않다. 다시 말해서, 인간이 스스로 자신이 원하는 모습을 찾고 자신을 바꿀 수 있는 근거는 자기상욕구는 있으나 선천적 희망자기상이 없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것이 바로 인생을 고민하고 어떻게 살지를 고민하게 하는 것이며, 동시에 인간이 자신의 인생을 개척할 수 있는 여지를 주는 것이다. 타고나는 희망자기상이 없는 것은 인간에게 인생의 길을 찾는 고뇌를 안겨주지만, 동시에 스스로 자신의 인생을 만들어 가는 진정한 자유를 주는 것이다.
--- p.374
· 목표세우기
일등이나 최고와 같은 목표는 다른 사람보다 잘해야 달성할 수 있는 상대적 목표이다. 다른 사람의 성과는 내 의지로 어쩔 수 없기 때문에 내가 최선을 다해 노력해도 상대적 목표는 이루지 못하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다. 그것은 운이 개입되는 것이며, 누구나 달성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열심히 노력하면 뭐든지 할 수 있다는 말이나, 안됐다면 노력이 부족했기 때문이라는 말은 상대적 목표에 해당될 수 없다. (중략) 세계 최고가 되는 것과 경쟁에서 승리하는 것이 목표가 되는 것은 합리적이지 않다. 그것은 희망이다. 나만 잘하면 되는 것이 아니고 그저 최선을 다할 뿐 운명에 맡겨야 하는 것이다. 어떤 자리에 오르는 욕구를 충족하기 위해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 자리에 오르기 위해 자신의 수준이 어느 정도가 되어야 할지를 예측하고 그 수준에 이르도록 노력하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정진해야 할 진정한 목표이다. 자신의 목표를 달성했다면, 희망의 성취는 보너스다.
--- p.414~415
· 희망자기상에는 목적지가 없다.
희망자기상은 반드시 성취하고 유지해야 하는 것이 아니다. 희망자기상은 목적지가 아니고 길이기 때문이다. 길은 내가 가는 동선을 제시할 뿐이다. 벗어나면 다시 돌아오거나 그곳으로부터 새롭게 길을 찾을 수 있다. 희망자기상이라고 하는 길을 따라 가는 것, 그것이 자유롭게 사는 것이며, 그것으로 충분한 것이다.
--- p.436
· 머리로 안다고 삶이 바뀌는 것은 아니다.
아는 것을 실천하는 것은 악기를 연주하는 것과 같다. 이론으로 이해해도 실제 연주는 다르다. 몸이 익숙해져야 한다. (중략) 인생의 큰 깨달음을 얻었다 하더라도 몸으로 실천하지 않으면 어느새 예전과 다름없이 돌아가게 된다. 삶은 결국 행동으로 만들어지는 것이다. 생각만으로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깨우친 것이 있다면 어색한 실천의 과정을 반복해야 한다. 몸에 배어야 비로소 삶에 반영될 수 있다.
--- p.442~443
· 우리의 범위에 따른 선악의 견해차
인육을 먹는 것이 당연히 부정된다면, 인간과 친하다는 이유로 개를 먹어서는 안된다는 주장은 일리가 있게 된다. 개를 가족처럼 여기며 사는 사람에게 개고기는 인간을 먹는 것과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중략) 그 사람들에게는 선악의 판단 기준이 되는 ‘우리’라는 범위가 인간과 가까운 개까지 포함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개고기 논쟁의 핵심은, ‘과연 개가 다른 동물과는 달리, 인간에게 ‘우리’의 범위로 들어올 수 있는 존재인가’ 하는 것이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이 모든 인간에게 같지 않기 때문에 논쟁이 생기는 것이다. 미개여부나 식성과는 상관이 없다. 개를 ‘우리’로 느끼는 사람은 개고기를 인육에 준하는 것으로 보는 것이고, 그렇지 않는 사람은 개고기를 다른 고기와 다르게 볼 이유가 없는 것이다.
--- p.123
· 합리적 배분시스템으로서의 기본소득제도
사회는 개인이 각자 대처해야 했던 먹거리와 안전의 문제를, 구성원이 힘을 모아 공동의 작업으로 해결하는 시스템으로서 구성원 전체의 삶의 질을 향상시켰다. 생산시스템의 핵심은 분업이다. (중략) 자본주의의 생산성 향상은 지속적으로 생산 필요인원을 감소시킨다. 그리고 자동화는 그것을 가속화시킨다. 자본주의 생산시스템에서는 생산능력과 생산의욕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생산체제에서 소외되는 생산 소외자 즉, 실업층이 존재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배분시스템에서 마저도 이들을 소외시키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합리적 배분시스템이 갖춰야 할 조건은 두가지이다. 첫째, 배분 소외자가 발생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사회는 생활공동체이고 생산공동체이다. 배분대상에서 생산소외자도 모두 포함되어야 한다. 둘째, 배분의 몫이 합리적이어야 한다. 가장 단순한 것은, 사회총생산량을 1/n로 배분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생산의욕을 저하시켜서 총생산량의 감소로 이어진다. 사회주의가 실패한 원인 중 하나이다. 따라서 소외자가 없도록 하면서도 생산의욕을 저하시키지 않도록 배분해야 한다. 이 두가지 조건을 만족시키는 방안으로서, 일차적으로는 사회구성원 전체에 대하여 ‘기본생활 수준’으로 1/n로 동일하게 배분하고, 나머지 생산량에 대하여는 현재와 같이 생산기여도에 따라 시장에 의하여 배분되도록 하는 방안이 합리적 대안이 될 수 있다. 이 배분개념을 그대로 살릴 수 있는 모델이 바로 ‘기본소득제도’이다
--- p.141~142
· 강한 인공지능 등장 방지책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컴퓨터는 하드웨어의 유지보수를 인간이 대신해 주지만, 인간의 하드웨어는 인간이 스스로 유지보수한다는 것이다. 이 차이점이 인간과 컴퓨터 또는 인간과 인공지능 간에 결코 비교할 수 없을 만큼의 간극을 가져온다. 인간은 욕구와 감정을 갖는 것이다. 욕구와 감정에 대한 보다 자세한 내용은 다음 장에서 설명될 것이다. 이 같은 이유로 필자는 인류를 지배할 것으로 우려하는 소위 ‘강한 인공지능’은 ‘스스로 자신의 하드웨어를 유지보수하는 소프트웨어’를 탑재해주지 않으면 그 등장을 방지할 수 있다고 판단한다. 이 장과 다음 장을 읽고 나면 필자의 의견에 공감하게 될 것이라 생각한다.
--- p.1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