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목정보
발행일 | 2020년 05월 30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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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224쪽 | 324g | 142*206*20mm |
ISBN13 | 9788936811549 |
ISBN10 | 8936811541 |
발행일 | 2020년 05월 30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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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224쪽 | 324g | 142*206*20mm |
ISBN13 | 9788936811549 |
ISBN10 | 8936811541 |
1984년판에 부친 서문 옮긴이 서문 추천의 글 제1부 강제 수용소에서의 체험 강제 수용소에 있었던 보통 사람 이야기 카포, 우리 안의 또 다른 지배자 치열한 생존 경쟁의 각축장 이 책을 쓰게 된 동기 믿음을 상실하면 삶을 향한 의지도 상실한다 도살장 아우슈비츠에 수용되다 집행 유예 망상 삶과 죽음의 갈림길 무너진 환상 그리고 충격 냉담한 궁금증 인간은 어떤 환경에도 적응할 수 있다 절망이 오히려 자살을 보류하게 한다 죽음에의 선발을 두려워하지 말라 혐오감 무감각 주검과 수프 죽음보다 더한 모멸감 무감각한 죄수도 분노할 때가 있다 한 카포에게서 받았던 작은 혜택들 수감자들이 가장 흔하게 꾸는 꿈 먹는 것에 대한 원초적 욕구 메마른 정서 수용소 안에서의 정치와 종교 인간에 대한 구원은 사랑 안에서, 사랑을 통해 실현된다 나를 그대 가슴에 새겨 주오 세상이 이렇게 아름다울 수도 있다니 강제 수용소 안에서의 예술 강제 수용소에서의 유머 사소한 것에서 느끼는 상대적인 행복 상대적 행복을 느꼈던 환자 생활 생존을 위해 군중 속으로 나 혼자만의 공간 번호로만 취급되는 사람들 운명의 장난 테헤란에서의 죽음 운명을 가르는 결정 수용소에서의 마지막 날 엇갈린 운명 무감각의 원인 인간의 정신적 자유 시련의 의미 끝을 알 수 없는 일시적 삶 미래에 대한 기대가 삶의 의지를 불러일으킨다 미래에 대한 믿음의 상실은 죽음을 부른다 살아야 할 이유 완수해야 할 시련이 그 얼마인고 자살 방지를 위한 노력 집단정신 치료의 경험 수용소의 여러 인간 군상 해방의 체험 해방 이후 나타난 현상들 비통과 환멸 제2부 로고테라피의 기본 개념 로고테라피의 기본 개념 의미를 찾고자 하는 의지 실존적 좌절 누제닉 노이로제 정신의 역동성 실존적 공허 삶의 의미 존재의 본질 사랑의 의미 시련의 의미 임상에 따른 문제들 로고드라마 초의미 삶의 일회성 기법으로서의 로고테라피 집단적 신경증 범결정론에 대한 비판 정신 의학도의 신조 인간의 얼굴을 한 정신 의학 제3부 비극 속에서의 낙관 비극 속에서의 낙관 저자에 대해 로고테라피에 관한 참고 문헌 |
이 책은 인류가 지닌 잔혹한 역사 속에서 살아남은 작가의 수양록같은 글이지만, 그 글에 담긴 의미는 가히 가공할만하다. 다소 아쉬운 것은 작가의 그 강렬한 경험을 통해 탄생한 로고테라피의 개념이 너무 개념적으로 적혀 있어서 짧은 글귀로 이해하기는 쉽지 않았다는 점이다.
하지만 이 책에서 주어진 교훈은 아주 크다. 삶을 살아감에 있어서 어떠한 시련과 고통이 오더라도 우리는 그 속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는 태도를 결정할 수 있다. 또한 진정한 사랑과 성취를 통해 우리는 삶의 의미를 계속해서 찾아가며 살아가야 한다. 나는 누군가와 이어지고 누군가는 또 다른 누군가와 이어진다. 나만이 할 수 있는 그런 삶의 의미를 찾아야 한다. 인간의 마지막 존엄성은 결코 훼손되지 않으며, 그 것이 훼손된다하더라도 훼손시킬 수 있는 권리는 오로지 자기자신에게만 있다.
작가가 유대인 학살 시절에 실제로 강제 수용소에서 겪은 내용을 바탕으로 씌여진 글인데, 보면서 인간의 존재에 대해서 한번 더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자세하게 수용소에서 겪은 인간군상에 대해서 쓰여져 있는데, 이런 읽을 겪은 사람들에게 많이 도움이 되었으면 하고 쓴 내용이었습니다. 아무래도 소설이 아니고 심리학서에 가깝다보니 문체는 딱딱했지만 한번 읽어볼만 한 내용입니다.
가끔 책을 읽다가 전기가 통한 느낌을 받은 것처럼, 상당한 의미를 주거나 마음 깊숙한 곳을 찌르는 것 같은 책들이 있다. 나에겐 이 책이 그런 책이다.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빅터 프랭클> 책은 크게 두 챕터로 나누어져 있다. 첫째는 저자가 경험한 강제 수용소 수기이고, 두 번째는 저자가 깨달음 바탕으로 발전시킨 로고테라피에 대한 이야기이다. 수용소에 대한 내용이 궁금하면 첫 챕터만 읽어도 된다.
홀로코스트나 유대인 수용소에 대한 내용은 책 <안네의 일기>, 슈피겔만의 <쥐>, 프리모 레비의 저서부터 영화 <피아니스트>까지, 많은 곳에서 묘사된다. 하지만 이들도 현실 그대로를 나타내진 못한다. 실제 다큐멘터리를 보면 유대인 시체를 그저 가축처럼 구덩이에 밀어 넣는 장면은 평범할 정도다. 한나 아렌트가 조금 더 멀리서 인간의 멍청한 무조건적인 복종에 대한 비판을 가하는 식으로 홀로코스트를 바라봤다면 빅터 프랭클은 직접 경험한 수용소 생활을 통해 인간의 날것 그대로를 보며, 개인의 의지와 자유에 초점을 맞춰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유대인 의사였던 저자는 가진 모든 것을 빼앗기고 수용소로 끌려갔다. 노동할 수 있는 청년들 빼고 대부분이 죽음을 당했고, 수용소에서조차 끼니를 제대로 먹지 못했다. 이곳저곳 가축처럼 실려 다니고 이름 아닌 번호로 불리며 인격적인 모든 것들이 박탈당했다. 영양실조, 적은 수면시간, 추운 몸, 부종과 동상, 정신적 퇴행 증상을 겪으며 모두가 죽음을 생각하고 있었다. 그는 의사였다는 이유로 요양소에서 병자를 돌보는 일을 하거나 할 수 있었고 상담을 해준 한 카포에게 어느 정도의 편의를 제공받기도 했으나 그것은 잠깐이었고, 목숨만 부지하며 고통의 삶을 살아가다 이후 나치가 전쟁에서 패하며 전선이 점점 다가오게 되고 결국 그는 구조된다.
프랭클은 비극 속에서 인간의 다양한 모습을 본다. 타인뿐 아니라 변해가는, 순간마다 좌절과 가축의 모습이 될 유혹에 빠지는 스스로의 모습도 바라본다. 그러면서 상당히 많은 것들을 느낀다. 인간은 어떤 환경에서도 적응할 수 있다는 것, 절망에 적응하면 자살을 선택하지도 않고 되레 웃을 수도 있다는 것, 죽음과 괴롭힘이 일상화되면 그것에 대한 어떤 감정도 못 느낄 만큼 인간의 감정이 메말라 간다는 것들을. 감정이 사라진 인간은 방금 죽은 사람의 옷을 자신이 살기 위해 그냥 가져갈 수 있었고 죽음에도 놀라지 않았다.
저자가 수용소 생활을 하며 그토록 궁금해했던 것은 '인간의 정신적 자유'에 관한 문제였다. 그것은 인간은 수동적일까 하는, "인간은 단순히 여러 조건과 환경적 요인이 만들어낸 하나의 피조물일까" 하는 질문으로 나타났지만 그는 삶의 마지막 상황에서도 빵을 나눠주는 수용소 사람을 보며 이내 진리를 깨닫는다. "그 진리란 인간에게 모든 것을 빼앗아 갈 수 있어도 단 한 가지, 마지막 남은 인간의 자유, 주어진 환경에서 자신의 태도를 결정하고 자기 자신의 길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만은 빼앗아 갈 수 없다는 것이다." 우리는 자유의지를 가지고 있다. 아무리 힘든 상황일지라도 행동을 결정하는 것은 인간의 자유에 달려있다. 상황은 주어지지만 선택은 내가 한다.
"수용소에서는 항상 선택해야 했다. 매일같이, 매시간마다 결정을 내려야 할 순간이 찾아왔다. 그 결정이란 당신으로부터 자아와 내적인 자유를 빼앗아 가겠다고 위협하는 저 부당한 권력에 복종할 것인가 아니면 말 것인가를 판가름하는 것이었다. 그 결정은 당신이 보통 수감자와 같은 사람이 되기 위해 자유와 존엄성을 포기하고 환경의 노리개가 되느냐 마느냐를 판가름하는 결정이었다.", "근본적으로는 어떤 사람이라도, 심지어는 그렇게 척박한 환경에 있는 사람도 자기 자신이 정신적으로나 영적으로 어떤 사람이 될 것인가를 선택할 수 있다." 수용소에서도 선택할 수 있었다. 하나의 동물, 가축 같은 존재가 될 것인가 고고한 인간이 될 것인가는 개인이 선택하는 것이다. 우리는 그럴 능력이 존재한다.
그는 세상을 탓하거나 한탄하지는 않았다. 그보단 시련도 충분히 의미가 있다고 말한다. 인간의 삶에서 시련은 필수적인 것이며 시련 사이에서도 우리는 무엇인가 결정할 능력이 있다. 시련을 통해 우리는 성장할 기회를 가진다. "시련은 운명과 죽음처럼 우리 삶의 빼놓을 수 없는 한 부분이다. 시련과 죽음 없이 인간의 삶은 완성될 수 없다.", "힘든 상황이 선물로 주는 도덕적 가치를 획득할 기회를 잡을 것인가 아니면 말 것인가를 결정하는 선택권이 인간에게 주어져있다. 그리고 이 결정을 그가 자신의 시련을 가치 있는 것으로 만드느냐 아니냐를 판가름하는 결정이기도 하다.", "도처에서 인간은 운명과 시련을 통해 무엇인가를 성취할 수 있는 기회와 만난다." 그렇지만 그와 다른 피해자들이 겪은 고통은 시련이라기에 너무나도 거대하다고 느껴지기도 한다.
우리 삶을 '의미 있고 목적 있는 것으로 만드는 것'은 우리의 자유다. 여기서 자유는 정신적인 자유일 것이다. 그렇게 우리가 무엇인가 할 수 있다는 자유, 즉 일종의 희망의 의미로도 다가오는 자유는 소중하다. 우리 삶을 고귀하고 가치있게 만드는 것은 내가 선택하는 것이다. "삶을 의미 있고 목적 있는 것으로 만드는 것. 이것이 바로 빼앗기지 않는 영혼의 자유이다."
고통의 순간에서도 프랭클은 아내를 생각하며 사랑을 느낀다. 그가 느끼는 사랑은 그 고통을 견디게 했고 일종의 희망을 맛보게 했다. 진리는 사랑이며, 모든 것은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깨달음은 동서양을 가리지 않는다. 그는 인간에 대한 구원은 사랑을 통해서, 사랑 안에서 실현된다는 것을 믿었다. 사랑은 많은 이들의 피난처이며 고통을 잊게 해주는 진통제이기도 하다. 사랑이 메말라 버린 상황에서 사랑을 찾는다. 그것이 자유의지가 향하는 목적지일까. "이렇게 내면세계를 극대화함으로써 수감자들은 멀리 과거로 도피해 자기 존재의 공허함과 고독감 그리고 영적인 빈곤으로부터 피난처를 찾을 수 있었다." 일시적일지라도 사소한 행복이 거대한 절망을 가려주었고, 삶의 의미가 무엇인가 하는 질문에 대한 답을 찾으면 절망으로부터 구원될 수 있다 말하고 있다.
"그가 자신의 짐을 짊어지는 방식을 결정하는 것은 그에게만 주어진 독자적인 기회이다." 그렇다. 내 삶은 누군가가 대신 살아주지 않고 이렇게 사고하고 느끼는 것은 오로지 자신의 몫이자 자신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러니까 나의 사고, 나의 행동은 오로지 나만이 할 수 있는 것이다. 나의 것이다. "시련을 당하는 중에도 자신이 이 세상에서 유일한 단 한 사람이라는 사실에 감사해야 한다."
세상이 고통스럽고, 힘들게 구는가?
프랭클은 사회나 무엇인가를 변화시키지 말자는 무기력한 말을 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삶을 개선하거나 세상을 바꾸기 위해 시위를 하고 불만을 표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일단 나를 바로 세워야 한다. 그래야 연대든 무엇이든 할 수 있다. 프랭클이 말하는 것은 단순한 정신승리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제대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삶이 우리에게 무엇을 기대하고 있는가를 파악하고, 자신 있게 나아가자는 것이다. 이것은 인간 의지의 문제이며, 일종의 태도의 문제와도 맞닿아 있다. "인간이 시련을 가져다주는 상황을 변화시킬 수는 없다. 하지만 그에 대한 자신의 태도를 선택할 수는 있다."
"정말 중요한 것은 우리가 삶에 무엇을 기대하는가가 아니라 삶이 우리에게 무엇을 기대하는가 하는 것"
그도 홀로코스트 시대에 인간이 한 개인으로서 크게 세상을 바꿀 순 없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렇기에 세상을 바꾸자는 허황한 발언보단, 이 세상이 우리 삶에 부여하는 것에 반응하여, 고귀한 삶을 위해, 가치있게 살아가라 말한다. 우리가 세상과 삶에 대해서 무엇을 내놔라, 어떤 것을 간절히 내놓으라 할 수는 없다. 자신이 바라던 것이 이루어질 수는 있으나 항상 그럴 수 있지도 않다.
"삶의 의미는 사람마다 다르고, 때에 따라 다르다. 따라서 일반적인 방식으로 삶의 의미를 정의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삶의 모습은 각자마다 다르고 아무리 비슷해 보여도 그 의미는 다르다. 이런 것에서 우리가 만사형통한 삶의 해법이나 비결을 찾는 것은 말이 안 된다. 그는 "'삶'은 막연한 것이 아니라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니, 누군가가 이래라저래라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며, 어떤 대단한 법칙으로 모든 삶을 설명할 수 있는 것도 아니며 답은 우리 스스로 개인이, 한 삶이 우리에게 무엇을 기대하고 있는지를 묻고, 찾고 그에 대한 나름대로의 답을 찾아가는 것이다.
삶이라는 것은 알 수 없고, 또 부조리하며 행운에 의존한다. 빅터 프랭클의 경우엔 불행이라는 말로 설명할 수조차 없을 만큼 고통의 삶이었다. 하지만 그 사이에서도 살고자 하는 의지와 이를 선택할 수 있는 인간의 자유가 존재함을 그의 삶 자체로 경험했고 깨달았다. 그래서 빅터 프랭클은 우리에게 고통 속에서도 의지를 가지고 살 수 있고, 그 자유는 나름대로의 축복이라 말하고 있다.
"살아 돌아온 사람이 시련을 통해 얻은 가장 값진 체험은 모든 시련을 겪고 난 후 이 세상에서 신 이외에 아무것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는 경이로운 느낌을 갖게 된 것이다."
로고테라피는 빅터 프랭클이 얻은 깨달음에서 발전시킨 정신분석 치료 개념이다. 환자의 삶의 의미가 무엇인지 찾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우리는 삶의 의미가 무엇인지 찾아야 불안함의 악순환을 막고 그것에 믿음을 가지고 나아갈 수 있다. "로고테라피는 미래에 환자가 이루어야 할 과제가 갖고 있는 의미에 초점을 맞춘다. 로고테라피는 정신 질환을 일으키는 데 아주 커다란 역할을 하는 악순환의 고리와 피드백 기제를 약화시킨다. 그렇게 해서 정신 질환 환자에게 전형적인 자기 집중 증상이 발생하고 심화되는 것을 막는다.", "환자가 삶의 의미와 직접 대면하고 그것을 향해 나아갈 수 있도록 도와준다. 그리고 이렇게 환자 스스로 삶의 의미를 깨우치게 도와주는 것이 정신병을 극복할 수 있도록 환자의 능력을 향상시키는 데 커다란 도움이 된다."
로고테라피를 설명하는 다음 글에는 수용소 생활을 통해 얻은 깨달음과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잘 나타나있다.
"아주 오랜 기간 정신 의학에서는 인간의 마음을 그저 하나의 수단으로만 보았고, 그 결과 정신 질환 치료를 하나 테크닉으로만 간주해 왔다. 하지만 나는 이제 이런 종류의 꿈은 충분히 꾸었다고 생각한다. 지금 수평선 너머로 어렴풋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심리학의 얼굴을 한 의술이 아니라 인간의 얼굴을 한 정신 의학이다.
그러나 아직도 자신을 그저 하나의 기능인으로 생각하는 의사가 있다면, 그는 환자를 병 너머에 존재하는 하나의 인간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그저 하나의 기계로 보고 있다는 사실을 고백해야 할 것이다.
인간은 여러 개의 사물 속에 섞여 있는 또 다른 사물이 아니다. 사물들은 각자가 서로를 규정하는 관계에 있지만 인간은 궁극적으로 자기 자신을 규정한다. 타고난 자질과 환경이라는 제한된 조건 안에서 인간이 어떤 사람이 될 것인가 하는 것은 전적으로 그의 판단에 달려있다.
나는 살아 있는 인간 실험실이자 시험장이었던 강제 수용소에서 어떤 사람들이 성자처럼 행동할 때, 또 다른 사람들은 돼지처럼 행동하는 것을 보았다. 사람은 내면에 두 개의 잠재력을 모두 가지고 있는데, 그중 어떤 것을 취하느냐 하는 문제는 전적으로 본인의 의지에 달려 있다.
우리 세대는 실체를 경험한 세대이다. 왜냐하면 인간이 정말로 어떤 존재인지 알게 됐기 때문이다. 인간은 아우슈비츠 가스실을 만든 존재이자 또한 의연하게 가스실로 들어가면서 입으로 주기도문이나 <셰마 이스라엘>을 외울 수 있는 존재이기도 한 것이다."
우리에겐 자유라는 축복이 있음을, 우리는 더 나은 세상을 만들고,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는 의지가 있는 존재임을 계속해서 말한다. 우린 가치 있다. 각종 유혹과 고통이 다가올 때 책을 다시 한번 펼쳐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