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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아직) 희망이 있는가?

: 100년 후에도 희망이 되는 기독교를 위하여

리뷰 총점8.9 리뷰 17건 | 판매지수 1,0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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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출간일 2020년 10월 14일
쪽수, 무게, 크기 224쪽 | 320g | 150*210*20mm
ISBN13 9788953138773
ISBN10 8953138779

이 상품의 태그

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기독교는 아전인수, 자화자찬을 버려야 한다
기독교에 대한 평가는 사회가 내리는 것이다


100년 전 기독교는 우리에게 희망이 되었다. 예수께서 명하신 ‘빛과 소금’의 역할을 제대로 했다. 기독교의 나무는 우리에게 교육, 의료, 사회봉사 등 사회 전반에 거쳐 많은 열매를 제공했다. 하지만 교세의 확장과 더불어 교권화되고, 세속화되면서 교회는 그리스도의 가르침과 멀어졌고, 세상의 손가락질을 면치 못하게 되었다. 이런 시점에서 ‘과연 기독교가 100년이 지난 후에도 부끄럽지 않고 자랑스러운 종교로 인정받을 수 있을까?’ ‘크리스천들이 사회적으로 모범을 보이며 존경받을 수 있을까?’를 저자는 묻고 싶은 것이다. 지금까지 기독교인은 교회라는 좁은 울타리 안에서 자화자찬하면서 살아온 것을 부인할 수 없다. 그러는 동안 사회에서 멀어지고 교회라는 연못 속에서 스스로 만족하는 폐쇄성을 극복하지 못했다. 기독교와 크리스천에 대한 평가는 교회 안에서 우리끼리 내리는 것이 아니다. 사회가 평가해 주어야 한다. 다른 종교인이 그리스도인을 높이 평가하며, 사회의 일꾼과 지성인이 크리스천과 교회에 대해 고맙게 여길 수 있는 기독교가 되어야 한다. 이 책은 우리에게 이미 주어진 영원히 희망이 되는 예수 그리스도의 뜻을 다시 일깨우고, 그 희망의 불씨를 되살리도록 안내한다.

목차 목차 보이기/감추기

책머리에

Part 1 100년 후에도 희망이 되는 기독교를 위하여
100년 후에도 부끄럽지 않은 기독교가 되려면
기독교가 버려야 할 것들
인류 역사에 희망을 주는 기독교가 되길

Part 2 인간다움을 회복하는 기독교
신앙은 실천에 옮겨질 때 완전해진다
신앙적 양심을 갖고 산다는 것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
참된 목회는 인간 이해에서 나온다
양심과 신앙의 연결점에 ‘인간애’를 두다
공부하는 교회, 공부하는 목회자가 되기를
크리스천은 세계 어딜 가도 한 형제자매
크리스천이 지녀야 할 삶의 기준들

Part 3 민족에 희망을 주는 기독교
흑백논리와 자기 절대화의 병
상하관계에서 평등관계로, 그리고 사랑의 관계로8
온정주의와 합리주의가 조화된 진리와 사랑의 종교
한 국가가 자기결정권을 상실했을 때 생기는 일
“저희 죄는 용서하시고 우리 겨레에게는 희망을 갖게 하소서”
기독교는 다가올 미래를 기대하는 희망의 종교이다
그리스도인의 국민적 도리는 무엇인가
열린 사회, 갈등을 최소화하는 지혜
진보도 보수도 그리스도의 제자
정의는 사랑에 의해 완성된다
이성적 진실과 도덕적 인륜을 의미하는 인간다움

Part 4 예수의 뜻을 실천하는 기독교
크리스천이 지녀야 할 직업관은
믿음은 꿈과 더불어 성장한다
사랑의 경쟁이라면 무한경쟁이어도 좋다
삶에 하늘나라의 한 부분이 있어야 한다
누가 주님이 기뻐하시는 역사를 건설할까 양심과 도덕이 아니라 믿음이 인간을 구원한다
그리스도가 주인이 되는 교회
‘주의 기도’ 그 이상의 기도는 없다
선으로 악을 이기는 그리스도인

저자 소개 (1명)

책 속으로 책속으로 보이기/감추기

크리스천의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기독교 스스로가 달라져야 한다. 고칠 것이 있으면 개선하고 회개할 것이 있으면 숨김 없이 용서를 구하고 바로잡을 것이 있으면 과감히 혁신해 나가야 한다. 우선 성직자와 지도층 인사들이 새로워져야 하며 다음에는 일반 신도들이 그 뒤를 따라야 한다. 무엇보다도 성직자가 교인을 대할 때 권위의식을 버리는 자세가 선행되어야 한다. 교인 역시 다른 종교를 믿는 사람이나 사회인을 위에서 내려다보면서 비판하는 권위주의에 빠져서는 안된다.
--- p.19

세상사의 모든 분야에서 그러하다. 권위주의가 사라진 곳에는 선한 질서가 그 공백을 채우게 되어 있다. 권위의식은 상하의식을 동반하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나 그 권위의식이 질서의식으로 변화되면 공존과 평등의식을 동반한다. 천주교에서도 마더 테레사가 숭앙의 대상이 되고, 평신도가 존경의 대상이 되는 것은 그들이 그리스도의 권위를 현실사회에서 은총과 사랑의 질서로 대신했기 때문이다.
--- p.21

우리가 교회주의를 조심스럽게 경계하는 것은 교회주의에 빠져 교회 안은 물론이고 교회 밖에도 건설되어야 할 하나님의 나라를 망각하거나 멀리할 우려를 떨쳐버릴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야 어떻게 되든지 우리 교회만 잘되면 그만이라는 논리는 얼마나 잘못된 생각인가. 민족과 국가는 정치인들의 책임이고 우리는 교회만 부흥시키면 된다는 주장이 용납될 수 있는가. 사회와 역사의 흐름이 기독교 정신과는 어긋나는 방향으로 달리고 있는데 큰 교회당을 짓고 많은 수가 모여 예배를 드리고 풍부한 재정을 운영할 수 있으면 족하다는 관념이 그리스도의 정신과 부합될 수 있겠는가. 교회주의를 탈바꿈하자는 것은 교회를 떠나거나 버리자는 뜻이 아니다. 교회의 목적을 높이며 세계와 인류에 희망을 주자는 요청이다. 그리스도께서 하신 일이 바로 그런 뜻이었던 것이다. 빛은 암흑을 이겨야 하며 누룩은 밀가루를 빵으로 바꾸는 데 쓰여야 한다. 소금은 음식물의 부패를 막으면서 맛까지 낼 수 있어야 한다. 교회도 많은 열매를 맺기 위해 스스로 죽어가는 한 알의 밀로서의 역할을 감당해야 하는 것이다.
--- p.24~25

우리가 교리주의를 우려하는 것은 편협성과 폐쇄성 때문에 그리스도의 말씀, 즉 진리를 소홀히 여기거나 배제할까 염려되는 까닭이다. 교리는 우리의 것이지만 진리는 만인의 것이다. 그리스도의 교훈이 진리라면 그것은 다른 종교의 교리를 넘어 믿음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신학도 그렇다. 신학은 만인이 따를 수 있는 진리의 학문이 되어야 한다. 교리와 교권을 위한 신학이 되어서는 안 된다. 그것은 한없이 넓은 그리스도의 말씀과 기독교의 진리를 교리라는 좁은 그릇에 담는 것 같은 우를 범하는 것이다. 우리는 아직도 그런 현실을 주변에서 너무 많이 보고 있다.
--- p.30

크리스천은 누구보다도 인권을 존중하며 생명과 개성 및 인격의 가치를 높이 받든다. 기독교의 근본정신이 인간애와 인간 목적관에 근거를 두고 있는 까닭이다. 만일 정치적 목적이나 경제적 목표달성을 위해 인간을 수단화하는 크리스천이 있다면 그것은 그리스도의 뜻을 역행하는 행위가 된다. 우리가 이념의 노예가 된 공산주의자들을 용납하지 못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 p.33

신앙은 앎을 포함하면서도 실천에 옮겨질 때 완전해진다. 그래서 신학의 내용은 실천을 통해 입증된다. 대부분의 크리스천에게 있어 신앙은 실천을 통해 풍부해지며 그 내용이 신학의 문제로 해명되는 것이다. 말하자면 신앙은 앎과 실천을 함께 지니는 것이다. 아는 바가 없으면 불완전한 신앙이 되고 실천이 없으면 죽은 신앙이 된다.
--- p.39

크리스천들은 양심적 신앙과 주님께서 베푸시는 사랑의 가르침을 교훈 삼아 사회악을 저지르는 상황에 대응할 수 있어야 한다. 세상의 아들들도 양심과 지혜를 갖고 용감하게 사회악에 항거하고 있다. 크리스천들은 더 굳건한 신앙과 하나님 사랑의 은총으로 역사악에 대항하는 의무를 지니고 있다. 세상의 아들들은 외로운 싸움을 전개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 편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구원의 역사에 뛰어들고 있다. 주께서 주신 사랑을 그들에게 나누어줄 책임을 지고 있는 것이다.
--- p.46

성경을 읽어보면 예수께서는 환자를 치유할 때 꼭 세 가지를 이뤄 주셨다. 질병의 치유, 정신적 위로와 안식, 그리고 믿음에 따르는 신뢰와 희망의 회복이다. 예수님은 인간을 아셨기 때문에 그렇게 하셨다. 인간을 모르면서 교리만을 강요했던 서기관, 율법학자, 제사장을 책망하셨다. 인간을 이해하는 의사였던 주님은 제자들과 함께 육체는 물론 정신과 영혼의 병을 치료해 주셨다. 우리도 인간을 사랑한다면 인간을 알고 이해하는 책임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인간을 깊이 아는 사람이 한 인간을 하나님의 자녀로 안내할 수 있는 것이다.
--- p.59

법과 양심의 중간에 ‘선한 질서’를 두고 판단하는 것이 하나의 해결책이 될 것 같다. 아무리 좋은 법이라고 해도 사회의 선한 질서를 해치거나 파괴하는 법은 용납될 수 없다. 또 아무리 자신은 양심에 따르는 행동이라고 해도 그 행위가 사회의 선한 질서를 해치거나 파괴하는 처사일 때는 정당화될 수 없다. 법은 사회의 질서를 유지?증진시키기 위해 존재하며 양심은 법을 초월해 사회의 선한 질서를 높여주기에 가치가 있다. 질서는 공동선의 가치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사회 공동선을 해치는 법은 옳지 못하다. 또한 개인의 양심적 행동도 사회 공동선을 해쳐서는 안 된다. 많은 사람이 공동선의 정신적 질서 속에 살기 때문이다.
--- p.62

양심과 신앙의 관계는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양심적인 사람도 받아들일 수 있고 신앙인도 인정할 수 있는 어떤 연결점은 없는 것일까? 양심과 신앙의 연결점에 인간애를 두면 좋을 것 같다. 내 양심적 판단이 인정받을 수 있다는 것은 내 이웃을 사랑하는지 여부에 따라 평가될 수 있다는 뜻이다. 사랑이란 위하는 마음과 행 동이다.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마 22:39)는 예수님의 가르침이 바로 그것이다. 모든 양심의 궁극적인 목표는 거기에 있다. 아무리 양심적이라고 호소해도 다른 사람을 수단과 방편의 대상으로 삼는다든지 이웃에게 피해와 고통을 준다면 그것은 양심적일 수 없다. 이기적인 욕망을 양심으로 둔갑하는 일에 지나지 않는다. 그것은 신앙도 마찬가지이다. 내가 믿는 신앙이 귀하고 최선이라고 해서 다른 사람을 불행으로 이끌며 고통을 준다면 그것은 참 신앙이 아니다. 그런 신앙은 양심을 따르는 사람들로부터 버림을 받을 수도 있다. 지성인과 인도주의자가 종교를 경원시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 p.63~64

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보이기/감추기

기독교는 아전인수, 자화자찬을 버려야 한다
기독교에 대한 평가는 사회가 내리는 것이다


100년 전 기독교는 우리에게 희망이 되었다. 예수께서 명하신 ‘빛과 소금’의 역할을 제대로 했다. 기독교의 나무는 우리에게 교육, 의료, 사회봉사 등 사회 전반에 거쳐 많은 열매를 제공했다. 하지만 교세의 확장과 더불어 교권화되고, 세속화되면서 교회는 그리스도의 가르침과 멀어졌고, 세상의 손가락질을 면치 못하게 되었다. 이런 시점에서 ‘과연 기독교가 100년이 지난 후에도 부끄럽지 않고 자랑스러운 종교로 인정받을 수 있을까?’ ‘크리스천들이 사회적으로 모범을 보이며 존경받을 수 있을까?’를 저자는 묻고 싶은 것이다. 지금까지 기독교인은 교회라는 좁은 울타리 안에서 자화자찬하면서 살아온 것을 부인할 수 없다. 그러는 동안 사회에서 멀어지고 교회라는 연못 속에서 스스로 만족하는 폐쇄성을 극복하지 못했다. 기독교와 크리스천에 대한 평가는 교회 안에서 우리끼리 내리는 것이 아니다. 사회가 평가해 주어야 한다. 다른 종교인이 그리스도인을 높이 평가하며, 사회의 일꾼과 지성인이 크리스천과 교회에 대해 고맙게 여길 수 있는 기독교가 되어야 한다.

100년 후에도 희망의 기독교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인류에게 희망을 주는 기독교가 될 수 있을까? 첫째, 목회자들이 자신들의 권익을 위해 예수 그리스도가 앉아야 할 자리에 대신 앉아 교회주의, 교리주의, 교권주의로 신자들을 호도했음을 깨닫고 철저히 회개해야 한다. 이런 각성과 돌이킴 있는 회개 없이는 그리스도께는 물론, 세상에서 버림받을 수밖에 없다. 둘째, 예수의 가르침인 ‘인류애’를 되찾아야 한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과 십자가를 지신 목적은 ‘인간 사랑’에 있다. 신앙이 인류애를 앞설 수 없다. 교회와 목회자가 인간의 존엄보다 위에 설 수 없다. 기독교의 존재 목적은 교회 안은 물론 교회 밖에 사랑으로 이뤄진 하나님 나라를 건설함에 있다. 이 책은 우리에게 이미 주어진 영원히 희망이 되는 예수 그리스도의 뜻을 다시 일깨우고, 그 희망의 불씨를 되살리도록 안내한다.

회원리뷰 (17건) 리뷰 총점8.9

혜택 및 유의사항?
생각하며 읽어야 할 책 내용 평점4점   편집/디자인 평점3점 t*****1 | 2020.12.04 | 추천0 | 댓글0 리뷰제목
연세대 철학과 명예교수인 저자는 놀랍게도 도산 안창호 선생을 직접된 분이다. 교과서 속에서나 들어보았을 인물을 대면할만한 이유는 그가 100세를 넘긴 나이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기독교가 담당해야 할 인간의 가치와 존엄성의 우선순위를 잃어버린 채 현재는 교회가 사회공동체로서의 기본마저도 유지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라 판단한다. 그는 이런 상황에서 기독교가 100년 뒤에도;
리뷰제목

연세대 철학과 명예교수인 저자는 놀랍게도 도산 안창호 선생을 직접된 분이다. 교과서 속에서나 들어보았을 인물을 대면할만한 이유는 그가 100세를 넘긴 나이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기독교가 담당해야 할 인간의 가치와 존엄성의 우선순위를 잃어버린 채 현재는 교회가 사회공동체로서의 기본마저도 유지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라 판단한다. 그는 이런 상황에서 기독교가 100년 뒤에도 희망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라는 고민으로 책 문을 연다. 그 답은 사랑임을 제시한다.

개인적 사랑이 아니라 이웃을 위한 사랑, 민족을 위한 사랑, 나라를 위한 사랑의 결이 훨씬 넓다. 저자의 사유가 현대에 인기있는 것은 현대 기독교인의 결핍을 짐작해볼만하다. 우리가 저자의 생각에 발을 담궈 생각의 체온을 함께 느낀다면 우리 신앙이 훨씬 풍요로워질것이라 생각된다.

그는 때로는 ‘교회를 위한 교리에 집착해 인간 모두를 위한 진리도 추구하지 못하고 있다’와 같이 기독교에 대한 가감없는 직격탄을 날리기도 한다. 그리고 교회는 원하나 교회주의를 부정하고 교리의 최소화를 이야기하며 복음이 더 널리 전파되어야 함을 이야기했다. 모양새는 좋지만, 그가 말하는 보수 신학을 하는 사람으로서는 단순히 표현에 동의하기 이전에 곰곰이 생각해봐야만 할 것이다. 본 책을 읽는 독자들이 ‘과연 그것이 정말 그러한가’라는 생각으로 읽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다.

그럼에도 그리스도인의 의무와 책임을 다해야 한다는 것은 우리에게 너무나 절실한 훈계의 회초리임은 부정할 수 없었다.

20p 권위는 있어야 하나 권위주의에 빠져서는 안 된다.

45p 오늘날과 같이 사회악이 팽배한 세상에 살수록 크리스천은 그 엄청난 사회악에 대하여 ‘나는 그리스도 앞에서 어떤 의무와 책임을 감당해야 하는가’를 묻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이 주님의 엄정한 요청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59p 우리도 인간을 사랑한다면 인간을 알고 이해하는 책임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73p 바쁘고 힘들더라도 목회자는 더 열심히 공부해 주기 바란다.

97p 현대인에게는 자기 절대화가 곧 우상이다.

151p 예술과 철학에는 언제나 두 가지 기초가 남는다. 그 하나는 순수성이다. 예술과 철학은 그 자체가 목적이어야 한다.

185p 사랑이 있는 경쟁이라면 무한경쟁이 되어도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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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을 행동하는 그리스도인으로, 실천하는 목회자로써 살아가기위해 내용 평점5점   편집/디자인 평점5점 YES마니아 : 로얄 c****b | 2020.12.03 | 추천0 | 댓글0 리뷰제목
100년을 살아낸 신앙의 선배가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믿음을 행동하는 그리스도인으로, 실천하는 목회자로써 살아가기위해처음 책 제목을 읽었을 때, 왜 아직에 괄호가 쳐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까지는 희망이 있지만, 앞으로는 장담할 수 없어서일까? 올해만큼 기독교인으로써, 그리스도인으로써 행동하고 있는지 돌아본 해도 없었던 것 같다.;
리뷰제목

100년을 살아낸 신앙의 선배가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

믿음을 행동하는 그리스도인으로, 실천하는 목회자로써 살아가기위해

처음 책 제목을 읽었을 때, 왜 아직에 괄호가 쳐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까지는 희망이 있지만, 앞으로는 장담할 수 없어서일까? 올해만큼 기독교인으로써, 그리스도인으로써 행동하고 있는지 돌아본 해도 없었던 것 같다. 그리스도인으로써 내가 지금 제대로 된 역할을 하고 있는지 고민하고 씨름하던 차에, 이 책을 만났다.

나는 어려서부터 당연히 교회에서 자라왔고, 교회에서 생활해왔다. 그리고 공부해온 학교들도 다 신학교였기에 어떻게보면 안전한 울타리 안에서, 나쁘게 말하면 우물 안 개구리로 나는 살아왔다. 내가 속해져있는 크리스찬 공동체에서는 좋은 이야기만 듣고 자라왔다. 그런 나에게 저자는 기독교와 크리스천에 대한 평가는 교회 안에서 우리끼리 내리는 것이 아니고 사회가 내리는 것임을 말한다. 사회가, 세상이 우리들을 평가한다면 어떻게 평가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과연 나는 몇점이나 받을까?

나를 볼때, 우리를 볼때, 아 저 사람을 보니 기독교는 개독교가 아니구나. 아 적어도 저 공동체를 볼 때, 예수는 진짜 있구나. 하나님이 진짜 있구나 하는 것을 믿음으로 보여줘야 함에도 나의 모습은, 우리의 모습은 부끄럽고 연약한 모습이다. 기독교가 사회에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제대로 해내고 있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지금 예수께서 우리를 보신다면 어떻게 말씀하실까?

이 질문을 늘 염두에 두는 기독교와 크리스천이 되어야 100년 후에도 희망을 주는 기독교가 될 것이다. 

저자는 서두에서 이 답을 제시한다. 맞다.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셨을까? 예수님이 우리를 지금 보고 계신다면 뭐라고 말씀하실까? 이 질문을 늘 품고 매일 매일의 일상과 삶을 살아간다면 우리에게는 (아직)이 아닌, (계속) 희망이 있을 것이다. 

오늘날의 사회같이 사회악이 팽배하고, 진리를 진리로 여기지 않는 많은 가치가 혼합되어 있는 세상속에 '나는 어떤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갈 것인가? 나는 어떤 책임과 의무를 가져야 하는가?' 끊임없는 고민과 씨름이 우리에게 늘 필요하다. 이 책을 읽으며 다시금 한국 교회의 의무와 존재 가치는 어디에 있는지 바라보고, 나의 자리에서 주님이 주신 믿음대로 움직일 때 우리에게 희망이 있음을 보게 되었다.

100년 후에도 희망이 되는 기독교가 되기 위해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과 사랑을 그대로 체화하여 실천하는 길밖에 없음을 말하며 저자는 이 책을 마무리한다. 정말로 우리에게 허락된 것은 어떤 좋은 수단과 방법이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보여주셨던 사랑의 지혜만이 우리의 희망이 되는 답이다. 

그리스도만이 우리 교회의 주인되시고, 우리 삶의 주인되신다!

우리의 삶의 자리가 하나님 나라를 위해 더 고군분투하며, 믿음을 살아내는 자리가 되길 기도해본다.


나의 책갈피
 ??


??p7. 교권을 차지하는 데만 혈안이 되어 정작 기독교가 담당해야 할 인간의 가치와 존엄성을 지키는 일은 뒷전으로 밀려났다. 또한 교회를 위한 교리에 집착해 인간 모두를 위한 진리도 추구하지 못하고 있다. 교회가 목적이 되면 하늘나라 건설이라는 더 중요한 목표에서 멀어지고 민족과 국가의 장래에 대해서도 고민하지 않는 기독교가 된다. 교회의 양적 비대가 기독교 정신의 생명력 상실을 가져오는 것이다.

??P32. 기독교의 사명은 기독교의 세상화가 아니다. 세상적이고 세속적인 것을 그리스도화하는 일이다.

??P39. 신앙은 앎을 포함하면서도 실천에 옮겨질 때 완전해진다. 그래서 신학의 내용은 실천을 통해 입증된다. 크리스천에게 있어 신앙은 실천을 통해 풍부해지며 그 내용이 신학의 문제로 해명되는 것이다. 말하자면 신앙은 앎과 실천을 함께 지니는 것이다. 아는 바가 없으면 불완전한 신앙이 되고 실천이 없으면 죽은 신앙이 된다. 

??P39-40. 신학(앎)으로 출발한 사람은 실천에서 신앙의 열매를 얻어야 하고, 실천에서 시작한 사람은(신학자가 되라는 것은 아니지만) 신학적 신념과 인생관을 갖출 수 있어야 한다. 

??P105. 기독교의 사랑의 질서가 모든것들을 완성시키길 소망한다. 사랑과 섬김의 질서가 기독교의 본질이다. 서로가 서로를 소중히 여길 수 있어야 사랑의 열매가 얻어지는 것이다.

??P129. 기독교 신앙은 개인의 변화는 물론이고 사회의 역사적인 변혁에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어떤 종교와 신앙을 가질 것인가. 이것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 선택이다.

??P155. 더 많은 사람이 인간답게 살며, 하나님의 자녀답게 은총의 질서에 머물게 되는 길은 사랑의 실천에 있다. 그리스도는 그 사랑을 가르쳐 주셨고 하나님께서는 그 사랑의 하늘나라를 완성시켜 주실 것을 약속하셨다. 

????이 책의 특별한 점

?? 너무 신학적으로 무겁지 않으며, 신앙인이라면 꼭 고민해야 할 문제를 명쾌하게 짚어준다.


????이런 사람들에게 추천합니다.


?? 연륜있는 철학자의 시선에서 바라본 한국 기독교의 미래를 보고싶다면?

?? 과연 기독교에게 희망이 있는지 궁금하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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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세기를 살아온 지성적 기독교인의 100년치 하나님 나라 여행기. 내용 평점5점   편집/디자인 평점5점 j*******z | 2020.12.02 | 추천0 | 댓글0 리뷰제목
한 세기를 살아온 지성적 기독교인의 100년치 하나님 나라 여행기.이 책을 한 문장으로 요약하자면 딱 그렇습니다.저자는 100년을 살았습니다. 살아있는 역사가 써내려 간 기록은 그 존재만으로도 묵직한 가치가 되었습니다. 책에서 다루는 주요 내용을 쉽게만 말하자면 “기독교가 살아남는 방법” 입니다. 일종의 기독교를 위한 맞춤형 자기 계발서 같은 느낌입니다. 그러나 그 성격이;
리뷰제목

세기를 살아온 지성적 기독교인의 100년치 하나님 나라 여행기.

책을 문장으로 요약하자면 그렇습니다.


저자는 100년을 살았습니다. 살아있는 역사가 써내려 기록은 존재만으로도 묵직한 가치가 되었습니다. 책에서 다루는 주요 내용을 쉽게만 말하자면기독교가 살아남는 방법입니다. 일종의 기독교를 위한 맞춤형 자기 계발서 같은 느낌입니다. 그러나 성격이 세속적 성장 주의를 추구하거나 기독교의 숭고한 가치를 훼손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대한민국이라는 맥락 속에서 100년을 살아오며, 기독교가 추구해야 정신적 방향성을 담담하게 정리 느낌입니다.


기독교가 살아남을 방법,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기독교가 소망스러울 있는 비결은 이성적 판단력과 인륜적 질서에 있습니다. 이성과 인륜은 인간다움의 기본입니다. 인간이 추구해야 이성과 인륜에 대한 정직하고 성실한 삶의 자세가 기독교가 소망스러울 있는 길이라고 말합니다. 기독교인의 가치는 교회 안에서보다 사회 전체에서 객관성과 보편성을 인정받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저자가 바라본 하나님 나라입니다.


결국 저자는 우리에게 하나님 나라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유독 눈이 떠나지 않던 줄이 있었습니다. “삶에 하늘나라의 부분이 있어야 한다 글이었습니다. 저자가 바라본 기독교의 소망은 간단했습니다. 정직하게 인간다운 그리스도인의 삶에 하늘나라의 부분이 머무는 것입니다. 저자 자신이 100년을 살아오면서 스스로의 삶에 머물기도 하고 때로는 고대하며 바라보기도 했던 하늘나라에 대한 이야기를 4가지의 주제로 나누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책을 그의 100 하늘나라 여행기라고 말하고 싶었습니다. 여행기에는 도산 안창호 선생님도 등장하고, 4.19 이승만도 등장합니다. 외에도 그가 살아오며 만난 많은 지성인들과 한국 사회가 고스란히 안에 깃들어 있습니다. 내공이 어마어마합니다. 그래서 좋았습니다. 뜬구름 잡는 하늘나라 이야기가 아니라 저자가 이성과 인륜을 추구하며 겪어왔던 내공이 탄탄한 하늘나라 이야기라서 좋았습니다. 


교회가 교회 안에만 머물러 점차 교회주의에 물들어가는 것을 거부하는 그리스도인이 있다면 추천하고 싶습니다. 기독교의 소망은 교회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사회 전체에서 교회가 되는 , 교회 개개인의 삶에 하늘 나라의 부분들이 임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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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ES마니아 : 골드 블**틀 | 2020.1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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