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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은 영원했다

리뷰 총점8.6 리뷰 6건 | 판매지수 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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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출간일 2020년 12월 17일
쪽수, 무게, 크기 212쪽 | 212g | 120*188*20mm
ISBN13 9788932038124
ISBN10 8932038120

이 상품의 태그

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MD 한마디

[문지문학상, 젊은작가상 대상 정지돈 소설] 인용과 질문과 농담과 아이러니, 정지돈 장편소설. 이야기는 한때 미국 스파이로 오인 받던 공산주의자 현앨리스의 아들인 실존 인물 정웰링턴의 삶을 주축으로 한다. 작가는 사실과 상상,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새롭게 배치하고 엮어내며 시간에 가려진 하나의 세계를 오늘의 것으로 그려낸다. -소설MD 박형욱

“이 소설은 보지 못한 것에 대한 증언이다”

어제를 보여주는 미래의 책 또는 오늘을 사유하는 어제의 책
인용과 질문과 농담과 아이러니로 연결되는
정지돈이라는 소설


문지문학상, 젊은작가상 대상 수상 작가 정지돈의 장편소설 『모든 것은 영원했다』가 출간되었다. 다양한 장르를 끌어들여 소설의 지평을 확장시켜온 정지돈은 첫 책 『내가 싸우듯이』부터 최근작 『농담을 싫어하는 사람들』에 이르기까지, 자신이 흡수한 텍스트에서 사실을 차용해 새로운 글로 탄생시키는 작업을 꾸준히 해왔다. 『모든 것은 영원했다』는 한때 미국 스파이로 오인 받던 공산주의자 현앨리스의 아들인 실존 인물 ‘정웰링턴’의 삶을 주축으로 삼는다. 정지돈은 건조한 정보에 풍부한 허구를 뒤섞고 필연과 우연, 회의와 믿음을 오가는 진지한 담론에 실없는 농담을 교차시키면서 정웰링턴과 그 시대 사람들에게 지면을 내어준다. 흩어져 있던 이미지, 자료와 텍스트가 정지돈을 경유해 한 권의 책으로 완성되었다. 인용과 질문과 아이러니로 가득 찬 이 지적인 책을 무엇이라 말할 수 있을까. “그들을 생각하고 그들을 통해 생각”하며 보내진 편지? 정지돈이 큐레이팅한 전방위 네트워크? 작가는 아마도 특유의 방식대로 응수할 것 같다. 제 소설 “전체를 통칭할 수 있는 말은 없고 생각해보지도 않았습니다”(니콜라 레). 무엇이라 부르든, 지나간 세기의 기록이 어떻게 오늘 우리의 현실로 이어질 수 있는가를 모색하는 그의 접근 방식에 동참해보기에 적절한 연말이다. 『모든 것은 영원했다』 속 겪어본 적 없는 그리운 세계를 방 안에서 경험해보기 바란다.

라파엘 히슬로다에우스. “허튼소리를 퍼뜨리는 사람” 혹은 “무의미한 것에 박식한 사람”이라는 뜻을 가진 이름이다. 토마스 모어가 이 안내자의 설명과 함께 독자를 데려간 곳이 바로 「유토피아」였다. 무의미의 감각과 유토피아의 감각을 결합할 줄 아는 사람들이 좀더 많아져야 한다. 내가 늘 신기해하고 또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점은, 인간이란 자기가 한 번도 가져보지 못한 것들에조차 그리움을 느낄 수 있는 존재라는 사실이다. 나는 그 능력이 인간다움을 측량하는 중요한 척도 중의 하나라고 주장하고 싶다. 김수환(한국외대 교수, 러시아 문학 연구자)

저자 소개 (1명)

책 속으로 책속으로 보이기/감추기

그는 단지 자신이 열외자라는 사실을 깨달았을 뿐이다. 이 사회의 구성원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만한 문제와 연결된 감수성을 갖지 못한 열외자. 그렇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 역시 그의 문제에 공감하지 못할 것이다. 그들은 서로의 문제에 대해 어떤 불의나 분노도 느끼지 못할 것이다.
--- p.54

체코 정권은 이상했다. 억압적이면서 느슨했고 지옥 같지만 나른하고 자유로웠다. 흐루쇼프의 탈 스탈린 발언 이후 정권은 진화하고 변해야 한다는 사실을 인지했지만 정권을 유지하기 위해선 아무것도 달라지면 안 된다는 사실도 알았다. 권력은 딜레마 사이에 끼여 옴짝달싹 못 했고 원래의 방식을 고수했지만 눈에 띄게 조용해졌다. 사람들은 그곳에서 사는 법을 터득했다. 여기에는 어떤 변태적 자유가 있다.
--- p.69

연애 초기 윌리는 사라진 모험과 투쟁에 대해 이야기하길 좋아했고 안나는 이야기를 듣는 게 좋았다. 모험과 투쟁이 좋아서가 아니라 윌리가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않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사실 때문에 좋았고 윌리 역시 누구에게도 못 한 이야기를, 짧은 삶의 한순간 빠졌고 꿈꿨던 것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다는 이유 때문에 좋았다. 그러면 잠깐이지만 둘 모두 착각에 빠질 수 있었다. 윌리는 삶이 지금 의미 있으며 모험이 지속되고 있다는 꿈을 꿀 수 있었고―안나가 자신의 이야기를 신나게 들은 날은 카를로비바리의 비탈을 거의 뛰어서 내려오곤 했다―안나는 외부 세계의 힘이 미치지 않는 장소를 발견한 은밀한 즐거움을 누렸다.
--- p.107

그녀는 잡지를 한참 보았다. 지금이 아니면 언제 다시 이곳에 오게 될지 몰랐고 자신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을 사지 못하면 스스로의 인생이 망가진 것처럼 느껴질 거라고 생각했고 그런 생각에 깜짝 놀랐다. 단지 외국 잡지를 사느냐 사지 못하느냐에 삶의 무게를 가늠하게 된다는 건 어디서 온 생각일까. 왜 이것이 나의 기분을 좌우한다고 믿는 걸까.
--- p.114

나는 언제나 아무것도 하지 못한 사람들에게 매혹당했다. 관점에 따라 그것을 무능이라고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능력이야말로 가장 과대평가된 덕목이다. 능력은 사람의 안에서 나오는 게 아니라 안과 밖의 상호작용으로 구성되며 결국에는 그의 밖에 자리한다. 그런 의미에서 아무것도 하지 못한 사람들은 능력이 없는 것이 아니라 부정의 능력을 가지고 있다. 유능함이 자신을 증명하는 종류의 능력이라면 불능은 세계를 증명하는 능력이다. 정웰링턴의 불능은 그가 가진 가장 적나라한 능력이었다. 거의 남아 있지 않은 기록과 목소리, 망각으로서 그렇다.
--- p.135~36

누구를 위해서 글을 쓰지? 진정한 작가는 자기 자신을 위해 글을 써야 한다. 그러나 그건 더 이상 이유나 동력이 되지 않는데 갑자기 열차 안에서 떠오른 것이다. 새로운 독자가. 다른 곳에 있지만 나와 유사한 상황에 놓여 있고 하지만 내가 아닌 그런 사람들이 수없이 많을 것이고 나는 어쩌면 처음부터 그런 사람들을 위해 글을 써왔는지도 모르겠다고 말이다.
--- p.203

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보이기/감추기

Q. 소설에 어떤 신념을 담으려 하나요?

A. 복잡성. 오해의 여지가 많은 이야기가 좋습니다.
사실 우리의 삶이 전부 복잡하잖아요.
소설도 삶처럼 레이어로 가득했으면 좋겠습니다.
―매거진 B,『JOBS잡스: NOVELIST소설가』 인터뷰에서

“나는 언제나 아무것도 하지 못한 사람에게 매혹당했다”


정웰링턴에 대해 알려진 기록은 적다. 독립운동가이자 공산주의자인 현앨리스의 아들. 1927년 10월 하와이에서 태어나 자랐다. 1945년 외항선을 타는 선원이 되었다. 1947년 UCLA 의예과에서 잠시 수학했다. 1948년 프랑스, 독일을 거쳐 체코의 헤프에 도착했다. 이듬해 프라하 찰스대학교 의대에 입학했다. 1955년 의사가 되었다. 1958년 소비에트 출신의 체코 여성 안나 솔티소바와 결혼해 딸 타비타를 낳았다. 그해 10월 정웰링턴은 미국 시민권을 포기했고 체코 시민권을 요청했다. 1959년 4월 귀화했다. 1962년 11월 헤프 시립병원 중앙연구소 소장으로 임명됐다.

1963년 11월 병원 해부실에서 독극물을 삼키고 자살했다. 그는 하와이 이민 1세대 집안의 자식으로 미국 시민권자이지만 동양인이었고 자주 인종적 편견을 겪었다. 북한으로 가길 바란 공산주의자였지만 북한은 미국 시민인 그를 배척했다. 그의 어머니는 북한에서 미국 스파이로 몰려 처형당했다. 체코 비밀경찰의 협력자로 활동했으나 체코 경찰은 그가 공산주의자라는 사실을 믿지 않았다. 정웰링턴은 미국, 북한, 체코 어디서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모든 것은 영원했다』는 이러한 사실을 기반으로 하지만 선형적인 삶은 큰 의미가 없다. 약술된 정웰링턴의 궤적 가운데 이 소설에서 주로 다뤄지는 부분은 헤프에서 시작해 헤프에서 끝난 체코 생활이다. 정지돈은 빈약한 사실 사이를 추측과 상상으로 채우고 타임테이블을 뒤섞으면서 정웰링턴을 통해 생각한다. “시간은 기억 속에서 거리를 상실했고 종이를 반으로 접어 펜으로 구멍을 뚫은 것처럼 의식의 지평 위에 14년 전과 14년 후가 겹쳐졌다.” 체코에서의 마지막 시기와 처음 도착했을 때가 교차 편집되면서 정웰링턴의 기억과 생각은 다른 등장인물의 이야기나 작가가 바깥에서 끌어온 텍스트들과 함께 쏟아져 내린다.

정웰링턴이 역사의 희생자, 시대의 열외자인 것은 명백한 사실이지만 정지돈이 소설에서 시도하는 것은 그를(또한 그들을) 위로하거나 숨겨진 진실을 밝히거나 카타르시스를 자아내는 일이 아니다. 작가가 생각한 정웰링턴은 실제와는 다른 세계에 있다. 그러나 역사에 희미한 족적만을 남긴 존재가 이어가는 소설적 현실은 작가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이상하게 슬프고 웃긴데 신기하게도 따뜻하다. 이것이 추천사에서 학자 김수환이 이야기한 ‘인간다움’일 수도 있겠다. “아무것도 하지 못한 사람들은 능력이 없는 것이 아니라 부정의 능력을 가지고 있다. 유능함이 자신을 증명하는 종류의 능력이라면 불능은 세계를 증명하는 능력이다.” 시대와 세계에 받아들여지지 않은 ‘불능자’ 정웰링턴의 딜레마를 따라가며 정지돈의 소설을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소설 속에서 윌리와 안나, 이지는 모든 것에 대해 고민하고 대화를 나눌 자유가 있다. 실제 삶에서 시간이 그들을 속박했기에 소설에선 그럴 필요가 없었다. 그러나 문학에는 문학의 룰이 있고 시간은 언제나 우리를 제어한다. 나는 항상성과 돌연변이가 우연과 필연에 대한 논의를 거쳐 역사에 닿는 광경을 보고 싶었다. 텍스트는 나보다 먼저 생각하므로 정웰링턴의 죽음 이전에 겹쳐진 픽션의 레이어를 따라 드러난 형상을 보고 싶었다. 이곳에서 정웰링턴은 죽지 않을 것이기에 생각 역시 끝나지 않을 것이다. (p. 158)

과거에 좋아했던 이 책을 지금도 좋아하는 이유는 […] 그러한 말을 할 수밖에 없었고 그러한 말이 나왔던 세계에 감응하기 때문이다. 거창하고 확신에 찬 말, 우울하고 울분에 찬 말, 자조적이고 냉소적이고 아름답고 비참한 말. 모든 시대는 모든 시대를 꿈꾸게 한다. 이러한 종류의 꿈은 서로 다른 맥락과 선으로 얽혀서 옳고 그름을 구분하기보다 선들의 흔적을 쫓아가는 것에 의미를 둬야 한다.
―『영화와 시』에서

“모든 시대는 모든 시대를 꿈꾸게 한다”

이 소설의 제목은 알렉세이 유르착의 문화연구서 『모든 것은 영원했다, 사라지기 전까지는』에서 차용한 것이겠다. “우리 시대가 기억하는 가장 가까운 ‘종말’의 체험”인 소비에트 사회주의 체제 붕괴 즈음의 사람들이 살아간 방식을 새롭게 조명해낸, “‘후기’ 사회주의 소비에트의 일상적 삶이 근대 ‘이후’를 살아가는 우리의 삶과 만들어내는 기이한 공명”(김수환)을 느낄 수 있는 책이다. 오늘날 우리 삶과의 “기이한 공명”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은 두 책의 공통점이다. 소설 후반부 「미래를 전망함」부터 관찰자이자 서술자인 ‘나’가 전면에 등장한다. 나와 ‘젊은 맑시스트’는 정웰링턴이 체코에서의 삶을 시작하고 마쳤던 도시인 헤프에 가 그의 흔적을 찾는다. 그곳에서 산책하고 대화하고 관찰하고 경험한 모든 것을 기록하는 동안 둘은 정웰링턴을 알고 있다는 사람을 우연히/필연적으로 만나게 된다. 소설의 일부인 동시에 일종의 작가 노트이기도 한 이러한 방식을 통해 정지돈은 과거 애호와 그것의 전시를 넘어 현실과의 연계를 좀더 실천적으로 시도하고 있다.

또한 정지돈이 참고한 다양한 텍스트 중 ‘편지’에 주목해본다. 작가가 인용한 리카르도 피글리아의 말처럼 편지는 검열자가 있던 시기 ‘말할 수 없는 것을 어떻게 말할 것인가’에 골몰한 흔적이고, “편지를 쓴다는 것은 미래로 메시지를 보내는 일이다”. “편지를 쓰는 동안, 우리는 그 자리에 없을 뿐 아니라, 지금 어떤 상태인지도 […] 모르는 사람과 현재 시제로 대화를 나누다가, 나중에야 서로의 이야기를 읽게” 된다. “역사의 어느 지점에서 정웰링턴과 마주”쳤을 그의 동시대인들은 부단히 편지를 주고받는다. “자기 시대의 사건들을 반영하지 않을 수 없다”는 거창하고 진지한 발언부터 “내 사는 곳이 제일 춥구나” 하는 시시콜콜한 이야기까지, 우리는 과거에 보내진 편지를 그들의 미래이자 우리의 현재인 오늘 별다른 거리감 없이 읽으면서 과거-현재-미래의 뒤섞임을 다시 한번 경험할 수 있다. 어쩌면 정지돈의 소설을 읽는 경험도 이와 비슷한 일이 아닐까.

* 표지 사진은 폴란드에서 태어나 노르웨이에서 활동하고 있는 독일 사진작가 Damian Heinisch의 작업이다. 1945년 그의 할아버지는 우크라이나로 이송되던 중 실종되었고 1978년 그의 아버지는 가족을 이끌고 독일로 내쫓기듯 이민을 갔다. Damian Heinisch는 아버지와 할아버지가 겪은 일종의 강제 이주 겸 기차 여행에서 영감을 받아 우크라이나에서 노르웨이 오슬로까지 기차로 유럽을 횡단하며 사진을 찍었다. 그는 이 기차 프로젝트the Train Project를 사진집 『45』로 출간했고, 이 사진집은 소설가 이상우를 통해 정지돈에게 전달되었다. 표지에 사용된 두 사진은 사진집에 미수록된 작업이다. 시점도 장소도 불분명해 보이는 사진들의 제목은 도시 간 거리를 의미하지만 기준점이 어디인지는 알 수 없다.

추천평 추천평 보이기/감추기

여기 정웰링턴이라는 한 남자에 관한 기록이 있다. 관점에 따라 불운했다고도 혹은 무능했다고도 말할 수 있겠으나, 어쨌든 자신의 ‘불능’을 통해 모든 것이 영원했던 한 세계를 증명할 수 있었던 인물이다. 픽션도, 논픽션도, 그렇다고 다큐나 에세이도 아닌 이 ‘상상의’ 기록을 과연 뭐라고 부를 수 있을까? 「소비에트 더하기 전력Les Soviets plus l’electricite」(2001)을 만든 니콜라 레는 자기 영화의 장르를 묻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제 영화 전체를 통칭할 수 있는 말은 없고 생각해보지도 않았습니다.”

언제부턴가 나는 소설가 정지돈을 우리 시대의 뛰어난 전시 기획자로 생각해왔다. 소설과 뮤지엄의 이런 비교는 공연한 수사가 아니다. 슐레겔은 소설을 ‘장르 중의 장르’로 여겼는데, 소설이 그 속에 다른 모든 것을 담아낼 수 있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또, 언젠가 보리스 그로이스는 19세기에 소설이 했던 것과 똑같은 역할을 오늘날 수행하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뮤지엄 전시라고 말한 바 있다. 전시는 모든 장르와 매체를 아우를 뿐 아니라 결정적으로 초trans역사적인 공존과 연결을 보장한다. 그곳에서 파라오의 미라는 뒤샹의 변기와 나란히 놓일 수 있다.

또한 그렇게 만들어진 전시물이 (비록 뮤지엄 공간 내부이긴 하지만) 그 자체로 ‘실제 삶 속의’ 현실이기도 하다는 점을 덧붙일 수 있겠다. 그런데 그와 비슷한 것들은 이미 인터넷에서 이뤄지고 있던 것이 아닌가? 이를테면 디깅과 아카이빙 문화, 그와 연결된 취향의 리스트는 이미 익숙한 풍경이다. 그러나 인터넷과 뮤지엄 전시의 중요한 차이점은 인터넷에서는 자신이 찾고자 했던 것들만을 찾을 뿐이지만, 전시에서는 본래의 관점이나 흥미로 볼 때 그다지 보고 싶어 하지 않았을 것들까지를 보게 된다는 점에 있다.

정지돈의 특이한 전시 소설exhibition novel들에선 ‘모든 것이 가능해 보였던’ 지난 세기를 향한 노스탤지어가 느껴진다. 하지만 알다시피 수집가의 갤러리에 놓인 파편들은 결코 총체성의 큰 그림을 제공하는 법이 없다. 기껏해야 되려다 만 서사, 역사의 꼬인 매듭들, 모호한 시적 알레고리가 전부다. 라파엘 히슬로다에우스Raphael Hythlodaeus. “허튼소리를 퍼뜨리는 사람” 혹은 “무의미한 것에 박식한 사람”이라는 뜻을 가진 이름이다. 토마스 모어가 이 안내자의 설명과 함께 독자를 데려간 곳은 다름 아닌 「유토피아」였다.

유토피아에 붙들린 자들의 문제는 자신이 어느 시간대에 속하는지를 모른다는 것이다. “현재의 시간에 미래의 시간을 기입했고 미래의 시간을 과거의 시간에 기입했”던 정웰링턴이 그랬고, “옛것과 새것의 조화가 완벽히 이루어지지 않은 채로 역사를 10년 단위로 감았다 풀었다 하는 꼴”인 젊은 맑스주의자도 그랬다. 아마도 정지돈은 이 사회의 열외자들, “누구나 공감할 만한 문제와 연결된 감수성을 갖지 못한” 자기와 같은 시대착오자들이 수없이 많을 것이고, 그런 사람들이 자기 소설을 읽어줄 거라 믿고 싶은 듯하다. 나도 그러기를 바란다. 하지만 그러려면 무의미(혹은 무능)의 감각과 유토피아(혹은 향수)의 감각을 결합할 줄 아는 ‘정지돈스러운’ 사람들이 좀더 많아져야 한다. 내가 늘 신기해하고 또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점은, 인간이란 자기가 한 번도 가져보지 못한 것들에조차 그리움을 느낄 수 있는 존재라는 사실이다. 심지어 나는 그 능력이 인간다움을 측량하는 중요한 척도 중의 하나라고 주장하고 싶다.

시대착오적인 향수를 간직한 이들을 위한 정지돈의 초대장이 또 한 권 도착했다. 이번엔 한국(과 북한)의 근현대사를 다루고 있으므로 좀더 친숙하고 가까운 이야기일 것도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갖가지 이미지와 에피소드, 도큐먼트와 사물들이 어지러이 뒤섞인 전시실의 풍경은 여전히 그대로다. 이번에도 그 풍경은 지금 여기 ‘우리의’ 절박하고 중대한 (당면)현실 못지않게 한 세기 전 ‘그들의’ 멀고 낯선 과거에도 관심을 둔 사람들을 위한 것이다. 외려 그들의 지나간 꿈과 기대, 신념과 실패를 마치 동시대인의 그것마냥 느낄 줄 아는, 조금 이상한 사람들을 위한 것이다. 누가 알겠는가. 당신 역시 “무의미한 것에 박식한 사람”이 이끄는 저 전시실의 풍경 속에서 낯선 이물감 대신 왠지 모를 편안함과 자유로움을 경험하게 될지도. 그렇다면 이제 당신이 정지돈 뮤지엄의 관람객museum-goer이 될 차례다.
- 김수환 (한국외대 교수, 러시아 문학 연구자)

회원리뷰 (6건) 리뷰 총점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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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매 영원은 없다 내용 평점4점   편집/디자인 평점3점 p*****s | 2022.08.09 | 추천0 | 댓글0 리뷰제목
'모든 것은 영원했다, 사라지기 전까지는''소비에트의 마지막 세대'라는 부제가 달린 알렉세이 유르착의 책 제목이다.2005년 미국에서 출간된 후 학계에 큰 화제를 불러일으키며 후기 소비에트 시기 문화 연구의 붐을 일으켰다고 한다.영원할 것만 같았던 소비에트의 권위적 담론이 해체되고 새로운 융복합적 주체성이 탄생하는 모습을, 그 안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의 경험을 통해 설명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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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은 영원했다, 사라지기 전까지는'

'소비에트의 마지막 세대'라는 부제가 달린 알렉세이 유르착의 책 제목이다.
2005년 미국에서 출간된 후 학계에 큰 화제를 불러일으키며 후기 소비에트 시기 문화 연구의 붐을 일으켰다고 한다.
영원할 것만 같았던 소비에트의 권위적 담론이 해체되고 새로운 융복합적 주체성이 탄생하는 모습을, 그 안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의 경험을 통해 설명한 수작이다.

그렇다면 이 책의 제목은 유르착의 책으로부터 따온 것일까.
참고문헌에도 올려놓은 것을 보면 그렇게 보인다.

다만 방향은 정반대에 위치한다.
유르착이 붕괴되는 체제에 오히려 빠르게 적응하는 모습을 통해 체제와 삶 사이에 이미 존재했던 모순이 자연스럽게 전복되는 과정을 끄집어낸 것이라면, 이 책은 50년 전 이념의 틈바구니 속에서 방황하다 삶을 마감한 정웰링턴이라는 실존인물을 통해 '과연 영원한 신념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을 던지며 선택적 갈등 자체를 해체할 것을 촉구한다.

'전투적 공산주의자'라고 자신을 소개하던 주인공이 유토피아를 꿈꾸며 찾았던 체코도, 마지막 종착지라고 생각했을 북한도, 공산주의 체제의 중심국가로서 무너지지 않을 것만 같았던 소련도 결국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하나의 시공간일 뿐이었다. 어느 곳에도 속하지 못한, 어느 곳으로부터도 환영받지 못한 채 영원의 틈새에 갇혀버린 윌리(정웰링턴)가 결국 주체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최종의 선택지는 '자살'이었다.

'우리가 행동하고 생각하고 말하는 과정이 교차하며 오가는 무수히 많은 순간에서 아주 가끔 의미가, 무언가 일치되고 연결되는 순간이 탄생하지만 그때가 지나면 그것을 말할 수도 없다. 그렇지만 그런 순간들은 사라지지 않는다. 영원히 남아서 존재하고 있다. 단지 망각할 뿐이다. (중략) 오랜 세월 묵혀뒀더 트라우마가 불현듯 현실을 찢고 나오는 마지막 순간에 복받쳐 오르는 충격과 감동, 회한, 그리고 구원. 내가 말했다. 아직도 그런 걸 믿어요?' (본문 중에서)

영원한 구원은 없다. 믿음이 믿음을 만들 뿐이다. 그 사실만이 영원한 명제일 것이다. 모든 것이 모든 것일 수 있도록 만드는 원천이다. 그걸 망각한 채 집착하다보면 어떻게 될까.

'깊이는 사람을 병들게 한다. 윌리는 헬레나를 통해 깨달았다. 그리고 병은 사람을 매혹한다는 사실도.' (본문 중에서)

결국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영원의 함정으로부터 벗어나야 한다. 주체적 삶으로 회귀해야 한다. 내 삶의 주인인 나로 돌아와야 한다.

'지옥에선 생각을 할 수 있지만 생각을 연결할 수는 없어, 생각을 연결하는 것은 미래를 향한 행동이기 때문이야.' (본문 중에서)
'꼭두각시가 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마라. 꼭두각시가 되는 순간 너의 주인은 너에게 관심을 잃을 테니. 가장 두려운 것은 내가 나의 주인이 되는 것이다.' (본문 중에서)

함몰된 이념은 분절을 초래하고 분절된 이상은 맹목적 순종으로 주체를 몰아넣는다. 생각을 하되 연결시키지 못하게 하는 것. 그것이 잘못된 이념이 주체들에게 작동하는 방식이다.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영원'이라는 착각을 통해 주체를 마비시키는 힘이 된다. 역설적이게도 정웰링턴의 비극적인 삶은 '영원'이라는 착각으로부터 벗어나야 하는 우리의 자각을 촉구하는 모멘텀인 것이다.

영원은 분명 없다. 주체적인 삶이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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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매 책 리뷰 내용 평점3점   편집/디자인 평점5점 냐* | 2021.05.26 | 추천0 | 댓글0 리뷰제목
지금 시대에선 36이란 나이가 결코 많지 않은 나이이다, 사람에 따라 어리다고 할 수도 있는 나이이기도 하다. 그 젊은 나이에 겪었던 수많은 딜레마들이, 공산주의의 모순들이 그를 쓸쓸한 죽음으로 몰고간다. 요즘으로썬 상상도 못할 이야기다.    "나는 언제나 아무것도 하지 못한 사람들에게 매혹당했다. 관점에 따라 그것을 무능이라고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리뷰제목

지금 시대에선 36이란 나이가 결코 많지 않은 나이이다, 사람에 따라 어리다고 할 수도 있는 나이이기도 하다. 그 젊은 나이에 겪었던 수많은 딜레마들이, 공산주의의 모순들이 그를 쓸쓸한 죽음으로 몰고간다. 요즘으로썬 상상도 못할 이야기다. 

 

"나는 언제나 아무것도 하지 못한 사람들에게 매혹당했다. 관점에 따라 그것을 무능이라고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 아무것도 하지 못한 사람들은 능력이 없는 것이 아니라 부정의 능력을 가지고 있다. 유능함이 자신을 증명하는 종류의 능력이라면 불능은 세계를 증명하는 능력이다. 정웰링턴의 불능은 그가 가진 가장 적나라한 능력이었다."

인상적인 구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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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산주의를 신봉한 엄마와 아들이 첩자가 된 경계인의 역사를 하이퍼링크시킨 문학 내용 평점5점   편집/디자인 평점4점 i*****e | 2021.04.14 | 추천1 | 댓글0 리뷰제목
리틀도서관 매주한권 휴먼터치 이번에 책맛보기하는 책의 제목은 모든 것은 영원했다,입니다. 30대의 젊은 저자, 정지돈이 우리나라 근현대사를 두루 섭렵하여 거친 듯 섬세하게 소설화했습니다. 거친 듯 섬세하다라고 한 것은 저자가 즐겨 사용하는 표현을 패러디해 본 것입니다. 이를 테면 다음과 같은 표현이 책에 등장합니다. 신문은 저널 이상이었고 이하였다. 선제공격이자 방어;
리뷰제목

리틀도서관 매주한권 휴먼터치

이번에 책맛보기하는 책의 제목은 모든 것은 영원했다,입니다. 30대의 젊은 저자, 정지돈이 우리나라 근현대사를 두루 섭렵하여 거친 듯 섬세하게 소설화했습니다. 거친 듯 섬세하다라고 한 것은 저자가 즐겨 사용하는 표현을 패러디해 본 것입니다. 이를 테면 다음과 같은 표현이 책에 등장합니다.

신문은 저널 이상이었고 이하였다.

선제공격이자 방어였다.

그것이 죄인가? 아니다. 그러나 그것은 한 번도 죄가 아닌 적이 없었다.

저자는 이번 책을 쓰면서 상상했다라고 하면서 추리하지는 않았다고 합니다. 저자의 이런 표현에서 치우치지 않으려는 건강한 경계인을 봅니다. 균형 잡아 보려고 하는 건전한 경계인을 봅니다.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으면, 열광하는 팬이 모이지 않는 요즘 현실을 감안해서, 건강하고 건전한 저자로 본 것입니다.

이 소설이 의미하는 핵심 단어는 경계인이 아닐까, 싶습니다. 소설은 남한과 북한, 미국, 체코의 경계인으로 살아야 했던 20세기 인물들의 처형, 유배, 방황, 자살을 알려줍니다. 네이버 국어사전은 경계인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둘 이상의 이질적인 사회나 집단에 동시에 속하여 양쪽의 영향을 함께 받으면서도, 그 어느 쪽에도 완전하게 속하지 아니하는 사람.

정지돈은 제가 처음으로 만나는 저자입니다. 어떤 저자인지 어떤 책을 써왔는지 배경지식이 전무한 상태에서 마주하자니 독해가 수월하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묘한 끌림은 있었습니다.

저자가 역사를 이야기하는 방식은 기존의 픽션(fiction) 서사 구조를 따르지 않습니다. 역사적 사실(fact)에 상상력(fiction)을 더한 팩션faction이라고 할 수도 없습니다. 그렇다고 논픽션(nonfiction)은 더더욱 아닙니다. 저자는 스스로 소설이 확실하다며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이 소설은 보지 못한 것에 대한 증언이다. 자료를 토대로 정웰링턴의 삶과 감정, 생각에 대해 상상했고 이야기를 덧붙였다. 나는 무엇도 추리하지 않았다. 진실을 밝히거나 진실에 다가가려고 노력하지 않았다. 그들의 속내를 짐작하거나 그들이 되어보려고 노력하지도 않았다. 소설 속에 나오는 인물들의 말과 생각은 흩어져 있는 자료와 이미지, 텍스트가 나와 나의 경계를 경유해서 씌어진 것이다. 이 이야기를 쓰기로 결심했을 때 원했던 것은 그들을 생각하는 것이었고 그들을 통해 생각하는 것이었다.

사실 우리는 누구나 둘 이상의 집단에 동시에 속한 경계인의 삶을 살아갑니다. 아이도 아니고 어른도 아닌 사춘기를 살고, 진보도 아니고 보수도 아닌 시민으로 살기도 합니다. 자립을 위해 전공을 고심하고 여러 직장을 전전하는 것도 경계인으로 사는 것입니다. 직장과 가정, 연인과 애인, 본가와 처가, 시가와 친정, 상사와 부하 사이에서 우왕좌왕하며 사는 것도 역시 경계인으로 사는 것입니다.

게다가 간혹은 이사할 곳을 찾아 이곳저곳을 지치도록 쏘다녀야 하고, 병이 들면 절박하게 이곳저곳을 알아보며 헤매기도 합니다. 생의 끝자락에서는 요양원과 요양병원 두 곳 모두에서 퇴짜를 맞는 가련한 처지에 놓일 수도 있습니다. 이렇듯 우리는 너나 할 것 없이 넓은 의미의 경계인으로 일상을 살아가고 있고 살아가야 합니다. 경계인의 삶은 누구에게라도 만만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소설 속 등장인물들이 경계인으로 살았다고 해서, 특별나거나 불운하게 보지는 않으려고 합니다. 다만 조선말기, 일제 강점기, 대한민국 건국과 육이오 전쟁을 지나온 앞선 세대들의 경계인으로서의 삶을 그대로 지켜보렵니다. 오늘날 코로나 정국에서 역시 경계인으로서 살아 가고 있는 우리들이니 말입니다. 책은 20세기 초 급부상하고 있던 공산주의 사상에 매료되어 북한을 신봉하다가 버림을 받았던 경계인들의 삶을 제시하고 나열하고 연결합니다. 거기에 저자의 사유를 곁들이며 소설은 전개됩니다

저자의 책 쓰기는 사진 읽기에서 비롯되었습니다. 눈이 크고 슬픈 아름다운 청년의 사진에 붙들려, 사진의 주인공 정웰링턴의 생애를 추적하고 추리합니다. 저자는 정웰링턴의 삶을 순차적으로 차근차근 보여주는 친절을 베풀지 않습니다. 저자의 불친절에 독자들이 반발할까봐 미리 방어라도 하듯 소설 말미에서 다음과 같이 언급한 것을 발견했습니다. ,, 그저 웃고 말았습니다.

버지니아 울프는 순차적이지 않은 기억과 생각들이 비처럼 쏟아져 내리는 소설을 쓰고자 했다.  

저자가 자신의 지식, 정보, 사유들을 마구 쏟아내면 독자들은 그것들을 주워 담으며 정돈하고 간추려야 합니다. 그래야 비로소 독해가 시작될 수 있습니다. 저자는 덜 부지런해도 되고 독자는 더 부지런해야 합니다. 저자는 자신이 알게 된 지식과 정보들을, 전형적인 소설 구성으로 공들여 빚어내는, 그런 창작을 하지 않습니다.그건 아마 자신이 섭렵한 배경지식들이 워낙 방대하다보니, 그럴 수밖에 없었을 것 같습니다.저자는 정보와 사유의 양을 주체할 수 없다보니, 기존 소설 구성의 틀에 맞추기가 버거웠을 법합니다.

저자의 책을 단 한 권만 읽은 독자로서 미숙한 견해를 풀어놓자니 부끄럽습니다. 정지돈 젊은 저자는 이미 하이퍼링크식 읽기에 능숙한 세대입니다. 그러니 쓰기가 하이퍼링크식으로 되는 것은 당연합니다. 클릭하면 바로 다른 정보와 지식으로 넘어가면서 끊임없이 연결되고 이어지는 하이퍼링크식 읽기와 쓰기는 젊은 저자에게는 자연스러운 읽기 쓰기 방식일것입니다. 그렇지만 전형적인 소설에 길들여 있는 독자에게는 저자의 소설이 자폐적으로 보일 수도 있고 즐기기 또한 쉽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하이퍼링크식 읽기가 우리의 일상을 파고든지 오래되었으니 저자의 소설을 수월하게 독해하는 독자층이 점점 늘어날 수도 있지 않을까, 전망해봅니다.

저자는 떠오르는대로 ,쓰고 싶은 대로, 생각나는대로, 써지는 대로, 두서없이 이야기를 전개하더라도 독자는 클릭하며 하이퍼링크를 따라가듯 읽으면 됩니다. 퍼즐 맞추는 재미가 있습니다. 퍼즐은 처음에는 막막하지만 어느 시점을 지나게 되면 척척 즐길 수 있습니다. 저자의 소설입구는 퍼즐 맞추기의 처음처럼 만만하지 않았습니다. 전형적인 소설에 익숙한 독자인 저로서 소설의 초입에서 꽤 많이 서성거려야 했습니다. 과거 현재 미래가 제멋대로 오락가락하고 여러 인물들의 등장과 퇴장이 자유로워서 상당한 기억력을 요했습니다. 게다가 역사적 지식과 저자의 사유가 혼재되어있어 그 경계를 가리느라 집중해야 했습니다.

비로소 30쪽 정도에서 무난하게 안착함으로써 책의 세계에 진입할 수 있었습니다. 전형적인 소설에 익숙한 독자답게 저는 순차적으로 정웰링턴의 생애를 대충 재구성해 보려고 합니다. 제가 이해한 만큼, 이해한대로 재구성할 수밖에 없으니 완벽하거나 완전한 것은 아님을 미리 밝힙니다.  

정웰링턴은 1927년 하와이에서 태어나고 자랐습니다. 어머니 현앨리스가 임신을 한 채 조선을 떠나왔기 때문입니다. 정웰링턴의 아버지는 일제강점기 조선에 그대로 살았습니다. 역관이었던 외할아버지 현순으로 인해 그 가족들은 조선 밖의 세계에 대해 두려움이 덜했을 듯합니다. 당시 미국은 아메리칸 드림을 표방하는 꿈의 나라 기회의 나라였습니다. 거기다가 공산주의 사상이 세계를 강타하고 있을 무렵이었으니 어머니 현앨리스와 아들 정웰링턴은 꿈을 붙들고 꿈에 매달려 미국에서 살았을 법합니다.

정웰링턴은 자라면서 자연을 직접 체험하는 것을 내켜하지 않았습니다. 자연에 대해 생각하기를 좋아했습니다. 미국에서 황인종으로서 현실을 직접 경험하는 것이 고역이었기에 그랬을까요? 단지 즐거운 상상에 방해가 되기 때문이었을까요? 신봉하고 있는 꿈의 실체가 무너지는 것이 두려워서였을까요? 어쨌든 정웰링턴은 어려서부터 꿈과 현실의 경계를 넘나들려고 하지 않습니다. 꿈과 상상으로만 치우치려고 합니다. 그 상황을 책은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는 하와이에서 태어나고 자랐지만 물과 친하지 않았다. 물을 바라보는 건 좋지만 물에 들어가는 건 싫었다. 숲을 바라보는 건 좋지만 숲에 들어가는 건 싫었다. 그는 신들의 정원이라 불리는 자연에 대해 생각하는 게 좋았다. 생각하고 말하고 글을 쓰는 것이 그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었다. 만성적이고 일상적인 노예 상태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상상하는 것이다.  

10대 고교생 정웰링턴은 레닌이 쓴 [제국주의, 자본주의의 최고 단계]라는 책을 읽고 레닌의 포로가 되었습니다. 정웰링턴은 미국 교회를 다니며 친분을 쌓았고 미국 공산당에 가입하여 교육을 받았습니다. 그는 교회와 공산당 둘 모두가 자신에게 선사해 줄 천국과 유토피아 꿈을 신봉하면서 소련의 부패를 외면하고 레닌을 지지했습니다. 스탈린을 비판한 흐루쇼프에게서 새로운 희망을 발견했습니다. 공산주의 사상에 깊이 경도되어 가는 소년 정월링턴에 대해 저자는 다음과 같이 진단합니다.

소년 정월링턴은 모든 것을 말할 수 있었다. 말할 수 있다는 것은 아는 것이 없다는 뜻이다. 알게 되는 순간 할 말이 없어진다.  

이 부분을 인용해 쓰면서 정부 측근의 어떤 인사가 떠올랐습니다. 그 유명 인사는 시시때때로 요리조리 말 바꾸기를 청산유수로 읊어대는 달변가입니다. 인성이 마치 마비라도 된 듯 뻔뻔하게 우리들을 갖고 놀 때면 그 얍삽한 잔꾀가 빤히 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 교활한 저명 인사를 추종하는 선량한 이들이 많은 것이 의아스럽습니다. 그것은 아마 그 사람의 치사한 행위를 읽기 보다는 노련한 말솜씨에 홀리기가 더 쉽기 때문일 것입니다. 마르크스 그 당사자의 일상과 행위에 주목하지 않고 마르크스주의라는 이론과 언어에 빠지게 되는 것도 이와 같지 않을까, 싶습니다.

정웰링턴은 18(1945)에 뉴욕, 21(1948)에 파리를 거쳐, 22세에 체코 프라하에 도착했습니다. 1948년 프랑스 파리에서 샀던 잡지를 14년 후에 태우게 됩니다. 그리고 그는죽습니다.

20대 초반의 청년 정웰링턴은 우리나라가 한참 건국의 무질서한 혼란기를 겪고 있을 때 프라하 의과대에서 공부를 합니다. 그때 미국에서 함께 공산당원의 교육을 받았던 선우학원을 만납니다. 선우학원은 무조건적으로 소련을 지지하는 웰링턴의 말에 반론을 제기하고 미국을 옹호하기도 했습니다. 선우학원은 마르크스와 멀어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선우학원과 정웰링턴의 미묘한 관계에 대해 책은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습니다.

정웰링턴은 선우학원의 나약함에 실망했다. 행동해야 할 때와 생각해야 할 때를 구분하지 못하는 것은 변절자의 특징이다. 그는 선우학원에게 때때로 화를 냈고 확인되지 않은 소련의 부패에 대한 제국주의자들의 언론 플레이에 놀아나선 안 된다. 우리는 믿고 기다려야 하며 힘을 합쳐야 된다고 말했다.

정웰링턴이 선우학원을 나약하게 평가했던 것은 그 무렵 선우학원과 대조되는 인물 김강을 만났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김강은 분명한 목표를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목표는 이승만 정권의 타도와 미 제국주의 타도였습니다. 정웰링턴이 20대 초반 의대에서 벙어리 취급을 받으며 차별과 싸우고 있을 때 김강을 우러러보는 부분을 옮겨봅니다.

그는 운동을 좋아했고 기독교 문학을 열심히 읽었고 경기장에서 권투시합을 빼놓지 않고 봤다. 그의 사고 안에서 모든 혁명은 필연적이었으며 그것 말고 가치 있는 일은 존재하지 않았다.

김강은 지금이 가장 중요한 시기라고 했다. 우리에게 민족의 명운이 걸려있다고 말했다. 김강의 이야기는 멈추지 않는 조류처럼 한번 흐름을 타면 지평선 너머까지 나아갔고 그것이 원대한 꿈인지 망상인지 정신이 아득해졌다. 김강의 연설은 길고 같은 말의 반복이었지만 정웰링턴은 지겹지 않았다. 같은 말 위로 같은 말이 올라타며 점점 높은 파고를 이루었고 거세게 흔들었다.

하와이 노예 출신의 동양인 이민자 의사로서 미국인들의 병간호나 하면서 살 건지, 차별과 국경이 존재하지 않는 인터내셔널의 일원이 되어 새로운 종을 탄생시킬 연구에 매진할 것인지 선택해야 했다.

정웰링턴이 24세가 되던 1951,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그때 프라하 카페에서 중년 남자 미스터 루다가 정웰링턴에게 접근합니다. 그는 담배를 선물하면서 친구이야기, 대학교에서 들은 이야기, 미국에서 들은 이야기를 해주라는 부탁을 합니다. 정웰링턴이 공산주의자가 진정 맞다면 공산주의의 번영을 위해서 협조하라는 것이었습다. 미스터 루다는 비밀경찰이었고 정웰링턴은 이때부터 감시에서 벗어날 수 없는 생활로 접어들게 됩니다. 간첩활동은 이렇게 하여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정웰링턴의 어머니 현앨리스와 박헌영은 1955년 북한에서 처형되었습니다. 정웰링턴이 28세 되던 해입니다. 정 웰링턴이 10대 시절 미국 LA에서 김강이 신문을 편찬했을 때 어머니 현앨리스는 신문의 주요 필진이었습니다. 정웰링턴은 그 신문의 열렬한 애독자였습니다.

어머니 현앨리스는 미국의 스파이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공산주의를 신봉하고 추종한 그녀는 북한에서 스파이로 판결 받고 처형됐습니다. 현앨리스는 진짜 혁명가이자 북한의 명령을 따르는 북한의 스파이였습니다. 책은 정웰링턴의 외삼촌이자 현앨리스의 남동생인 현피터를 등장시켜 다음과 같이 적고 있습니다.

누이는 하와이 상하이 도쿄 서울을 제집 드나들 듯 오갔는데 매번 이름도 바뀌고 남편도 바뀌고 하는 일도 바뀌었다. 현피터는 자신과 누이가 중요한 일을 하고 있다고 믿었고 나라를 구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현앨리스는 북한에서도 미국에서도 간첩이라고 했으니 경계인이 분명합니다. 박헌영은 남한의 단독정부수립을 반대한 공산주의자입니다. 자본주의를 지향하는 남한에서 공산주의 활동을 주도했으니 박헌영 역시 경계인이었던 셈입니다. 그들은 공산주의를 지나치게 순수하게 신뢰했기에 북한 정치 권력에 의해 제거되었던 게 아닌가, 싶습니다.

195629세 정웰링턴은 체코 여자 안나를 연구소에서 만나게 됩니다. 이상주의자 정웰링턴과 회의주의자 안나였지만 두 사람은 결혼하게 됩니다. 안나가 회의주의자처럼 믿음도 기대도 없는 삶을 지향했던 것은 연구소의 또 다른 동료 이지의 영향이 큽니다. 이지의 아버지는 마르크스주의자였으며 10월 혁명 때 모든 것을 자진 반납했지만 오해한 농민들에 의해 살해당했기 때문입니다.

정웰링턴은 필연을 지지했고 안나는 우연을 지지했습니다. 그러니까 정웰링턴에게 진화는 생명체의 필연적 속성이었지만 안나에게는 불완전성으로 일어나는 우연적 사건이었던 셈입니다. 그렇지만 안나는 무력한 불완전성보다 이상을 품고 살아가는 정웰링턴에게 이끌려 결혼을 결심하게 됩니다. 정웰링턴이 우연이 아닌 필연을 지지한 이유에 대해 책은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습니다.

정웰링턴은 우연을 세계와 생명의 근본 원리로 볼 수 없었다. 그와 가족의 삶은 의지적인 삶이었다. 의지적인 삶이 우연의 작동에 의해서 파멸로 이어졌다는 말은 의지의 무의미함을 의미했고, 그건 곧 자신과 가족의 삶이 무의미함을 뜻했다.

정웰링턴은 195730세가 되던 해에 안나와 결혼을 합니다, 바로 그 해 정웰링턴은 비밀경찰에게 전경준 송안나부부에 대해 보고를 했습니다. 다음 해 그들 부부는 북한 입국과 동시에 연락이 두절됐습니다. 그 상황을 책은 다음과 같이 적고 있습니다.

송안나에게 말하고 싶었다. 어머니는 처형당했고 당신들도 북한에 가면 그꼴이 날 거라고, 미국으로 돌아가서 인권 단체에 호소하거나 공산주의나 자본주의 어느 곳의 힘도 미치지 않는 곳에 가서 숨어 살라고, 그러나 정웰링턴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북한이 히스테릭한 반응을 보이는 것은 단지 입국 절차일 뿐이라고 걱정말라고 했다.

정웰링턴은 미국시민권을 포기하고 체코시민권을 요청했다. 수락되었고 비밀 경찰 미스터 루다는 꽃다발을 보냈다. 정웰링턴의 내면에서 한 가지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안나를 판 대가로 안나를 얻었다. 그러니까 두 안나 모두에게 죄를 지은 거라고. 안나와 함께 살기를 결심한 일련의 선택과 순간들은 다른 곳으로 건너가기 위한 시도였다는 걸 깨달았다. 그는 길을 건넜지만 건너간 곳은 존재하지 않았고 원래 있던 곳은 재가 되어 사라졌다. 모든 시도는 무산되었고 그는 어디에도 도착하지 못했다.

정웰링턴이 31세가 되던 1958, 딸 타비타가 태어났습니다. 다음 해 1959, 귀화 선서를 했습니다. 미국 국적을 버리고 체코 국적을 획득했고 체코인 가족을 이루었으며 비밀경찰의 감시도 중단됐습니다.1962년 독일과 국경이 가까운 헤프 시립병원 소장으로 임명됐습니다. 가족들은 병원 인근의 아파트로 이사했습니다. 안정 단계에 접어들었습니다. 그러나 1년 후 196336세에 병원 해부실에서 독극물을 삼키고 자살하고 맙니다.

시립병원 소장으로 임명된 1962, 비밀 경찰 루다가 나타나 젊은 시절의 우상이던 김강을 사찰하라고 지시했습니다. 미국에서 공산주의 활동을 하다가 추방당한 김강 부부는 북한으로 들어갈 예정이었습니다. 당시의 정웰링턴의 속내를 책은 다음과 같이 적고 있습니다.

나는 어릴 때 김강을 만났고 그는 우리 집안의 사람들과 잘 안다. 나는 북한에 가는 것이 옳지 않은 결정이라고 말할 것이다.

어머니가 북한에서 처형됐고, 비밀경찰은 자신을 협박하고 있으며 안나와의 결혼 생활은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고 말해야 할지 고민했다.

그러나 그는 속내를 누구에게도 발설하지 않았습니다. 두려움과 혼란스러움을 드러낼 수조차 없었습니다. 자신이 감시당하고 있다는 우려 때문이었습니다. 그런 감옥살이에 처해있는 그를 아무도 몰랐습니다.

36세의 정웰링턴은 서가에서 책을 꺼냅니다. 14년 전 파리에서 샀던 잡지 입니다. 공산주의에 대한 원대한 꿈을 품고 설레던 20대 초반의 젊은 정웰링턴이 그려집니다. 우리나라가 건국의 몸살로 혼란을 겪고 있었던 1948년 정웰링턴은 미국을 떠나 파리를 거쳐 체코로 향했습니다. 그리고 북한의 번영을 위해 변절하지 않고 줄곧 은밀하게 일해 왔습니다. 하지만 그는 파리에서 샀던 그 잡지를 14년 만에 태우면서 품었던 꿈을 재로 만듭니다. 꿈이 재가 되는 광경을 담담하게 지켜보면서 정웰링턴은 다음과 같이 반추합니다.

예전에는 그렇게 믿었다. 공산주의는 국경과 인종, 성별과 나이를 뛰어넘는다. 자본주의는 반대다. 자본주의는 상이한 욕망과 먹이로 성장하고 국경과 인종, 성별과 나이를 나누고 계급을 형성한다. 그러나 이제 모든 게 변했고 이러한 변화를 설명할 수 없었다. 세계가 변한 건가? 내가 변했나 

정웰링턴은 자본주의에 비해 우위를 점했던 공산주의에 대해 의심하게 되었습니다. 이는 변절을 의미합니다. 변절은 죽음을 초래할 수밖에 없습니다. 저자가 표현한 다음과 같은 문장에서는 아, 그렇구나, 신음을 토하며 공감했습니다.

한국전쟁 이후 한국의 공산주의자는 모두 죽었다. 남한의 공산주의자는 월북하거나 살해됐고 전향했으며 북한의 공산주의자는 숙청됐고 처형됐고 유배됐다.

그래도 정웰링턴은 6.25전쟁이 끝나고 나서 10년 동안이나 더 공산주의자로 살았습니다. 그런 그가 1963년 공산주의 대한 꿈을 완전히 재로 만들고 맙니다. 정웰링턴이 꿈을 접은 이후에도 남한의 젊은이들은 여전히 꿈을 품고 살았습니다. 정웰링턴이 죽은 지 60년이 지나도 줄기차게 북한에 대한 기대와 미련을 버리지 못한 채 짝사랑하고 있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왜 북한은 공산주의를 신봉하는 사람들을 순순히 환영해 주지 않을까요? 그건 아마 자본주의 병폐를 조금이나마 희석시킨 북한의 공산주의 국가적 훌륭한 면모를 자신만만하게 보여줄 수 없기 때문에 그 파장이 두려운 게 아닐까, 싶습니다.

저자는 북한을 사모했던 이들의 20세기 흔적들을 찾아 접속하고 연결하며 나열했습니다. 역사 지식을 하이퍼링크시키듯 문학화했습니다. 그래서 이번 책맛보기의 제목은 다음과 같이 정해 보았습니다. 제목이 길어지고 말았습니다.

제목은 '공산주의를 신봉한 엄마와 아들이 첩자가 된 경계인이 된 역사를 하이퍼링크 시킨 문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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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줄평 (7건) 한줄평 총점 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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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매 평점3점
잘 읽히지가 않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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냐* | 2021.05.26
구매 평점3점
고인 서사 피어난 사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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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ES마니아 : 골드 y*******l | 2021.04.06
평점1점
위선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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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ES마니아 : 로얄 k****i | 2021.0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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