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목정보
발행일 | 2021년 10월 18일 |
---|---|
쪽수, 무게, 크기 | 204쪽 | 218g | 118*188*12mm |
ISBN13 | 9788936438586 |
ISBN10 | 8936438581 |
발행일 | 2021년 10월 18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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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204쪽 | 218g | 118*188*12mm |
ISBN13 | 9788936438586 |
ISBN10 | 8936438581 |
MD 한마디
[소설가 황정은의 첫 에세이] 소설가 황정은의 첫 에세이가 출간되었다. 『일기 日記』라는 제목처럼 작가의 어떤 날들의 기록을 담아냈다. 코로나19로 달라진 하루와 조카의 낙서에 대한 일상의 에피소드부터 차별과 혐오, 아동 학대, 그리고 세월호에 대한 마음까지. 반짝이는 문장들로 사랑과 위로를 건넨다. - 에세이 MD 김태희
일기日記 일년一年 미안하다고 말하지 않는다 책과 책꽂이 이야기를 쓰려고 했지만 민요상 책꽂이 목포행木浦行 산보 쿠키 일기 고사리를 말리려고 흔痕 일기日記 작가의 말 미주 |
어느 유튜버가 필사하기 좋은 책으로 추천한 에세이집이다.
필사하기 좋은 책. 작가에게 그보다 더한 찬사가 있을까.
정작 필사를 하지는 않았지만 눈으로 베껴 쓴다는 기분이 들만큼 문장부호, 줄 바꿈, 어휘선택, 문장의 길이까지 유심히 살펴보았다. 평소 같으면 후루룩 읽었을 만큼 길지 않은 분량이지만, 이번에는 그렇게 후딱 읽고 던져놓고 싶지 않았다.
《일기》. 제목처럼 늘 몸에 지니고 다녀도 좋을 법하게 손에 쏙 들어오는 작은 책이다.
저자, 황정은. 책날개에 얼굴 가린 사진 한 장과 프로필도 없이 소설가라는 간단하다 못해 빈약한 작가 소개가 있다. 약력 몇 줄 넣기가 어려워서 생략한건 아닐테고, 뭔가 이유가 있겠지, 생각하며 검색해 봤다. 76년생, 불문과 중퇴. 《百의 그림자》, 《야만적인 앨리스씨》 등의 장편소설과 《디디의 우산》, 《연년세세》 등의 소설집을 출간했다. 최근 문학계 블랙리스트 사건에 항의한 일로 뉴스에도 등장했다. 세월호, 미투, 소수자 인권 문제 등, 사회의 여러 문제를 고민하고, 세상일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작가다. 그러다 보니 책에 수록된 열한편의 에세이도 대부분 개인적인 이야기로 시작되지만 세상과 손잡고 있다.
수명壽命의 명命엔 타고 났다는 의미가 있고 그 때문인지 나는 가끔 ‘수명’이나 ‘명’이라고 말할 때 ‘그 목숨이 본래 가진 길이’를 본 것처럼 말한다. 명이 다했다고 말하고, 명이 줄거나 늘었다고 말하고, (수)명을 연장하고 단축했다고 말하면서 ...... 하지만 지금 사람들의 명은 타고나는 것이라기보다는 구조構造되는 것이다. 어떤 사람이 재정적으로나 물리적으로 의료서비스에 얼마나 접근할 수 있는지, 어떤 노동환경에서 일하고 있는지, 혐오에 얼마나 노출되어 있는지, 어떤 형태의 가난을 겪었는지/겪고 있는지, 어떤 제도와 정책의 영향을 받으며 살고, 어떤 정책이 부재한 채로 그 부재의 영향을 받으며 사는지 등등이 전부 명命의 조건이다.
(p34)
문득 시간을 생각하고, 나와 주변인들의 나이를 헤아려보고, 인간의 DNA와 노화를 떠올리고, 그 다음엔 주어진 수명을 살 수 없는 소수자의 문제에 눈을 돌린다. 의식의 흐름을 논리정연하게 확장시켜가며 문제의 본질에 접근해간다. ‘일기’라는 제목 때문에 신변잡기식의 가벼운 이야기를 예상했지만 글은 생각보다 무거웠다. 가장 사적인 이야기를 하면서도 자신에게 매몰되지 않고, 서로의 이음새를 보고, 모두의 안녕을 걱정한다.
게다가 저자는 그저 참여하거나 문제를 지적하는 데만 의의를 두지 않고, 용기 있게 자신의 피해 경험을 토대로 해결책을 찾아내, 다른 이들과 공유하고자 노력한다.
어린 시절의 나를 탓하지 않는다. 그 일들을 내가 원했다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시간이 흐르면 저절로 이렇게 된다고, 결국엔 무감해지고 괜찮아진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내 경우엔 만날 때마다 그 시절을 떠올리게 만드는 친척들과의 왕래를 뒤늦게나마 중단한 것이 도움이 되었다. 내가 겪은 어려움이 그것만은 아니었다는 점도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
그러나 그 순간들을 잊은 적은 없다.
(p.180)
가장 충격적인 챕터였던 흔痕.
부모님의 살뜰한 보살핌 없이 고군분투해야 했던 어린 시절, 아무도 방어해주지 않던 그 때 겪은 성폭력은 오래도록 트라우마가 되었고, 저자는 아직도 어제 일처럼 괴로워한다. 가해자인 사촌이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도 모른다고 했지만 설마 그럴 리가 있겠는가. 여전히 애써 외면하는 중이라는 뜻이 아니겠는가. 더 화나는 건 부모의 뜨뜻미지근한 태도, 그리고 더더 노여운 일은, ‘커서 뭐가 되려고’라는 죄책감을 피해자가 짊어지도록 만드는 닫힌 사회였다.
처음엔 얼마나 잘 쓴 글인가에 주목하고 봤는데 뒤로 갈수록 단어나 문장, 문체보다 작가 자신에게 몰입하게 되었다.
필사를 추천할 정도로 문장이 아름답다고 해서 읽은 책이다. 내가 아름다움이란 말의 뜻을 오해했나보다. 아름답다는 걸 그저 미사여구나 깔끔하고 정갈한 문체 정도로만 이해했으니 말이다. 이 책의 문장들은 분명 아름답지만 그것은 손끝으로, 머리로 얻어진 게 아니었다. 진주를 껴안듯 그렇게 아파하고, 당장 손해 볼망정 차마 남의 상처를 외면하지 않고 살아온 당당한 결과물임을, 이제는 안다.
어찌어찌 연습해서 문장은 그럴듯하게 쓸 수 있을지 몰라도, 진실을 파고드는 올곧은 그 마음을 반이라도 따라갈 수 있을까.
일일이 베껴 쓰지는 않았지만 빨리 읽고 넘기기 아쉬워 한 문장, 한 문장, 소리 내어 읽어 보았다. 그리고 알게 되었다. 이 책은 따라 쓰기에도 좋지만, 소리 내어 읽기에도 적당하다는 것을.
눈으로, 입으로, 손으로. 그렇게 공들여 읽고 싶은 책을 만났다.
일기에는 그 사람의 생각과 고민이 담겨 있다. 혹시라도 누가 내 마음을 들여다볼까 봐 열쇠 달린 일기장을 구매해 쓰기도 했다. 지금은 어떤가. 다른 사람들에게 보이는 일기를 쓴다. 물론 개인적인 친분이 있는 사람들보다는 불특정다수가 보는 거겠지만. 그렇게 우리는 누군가의 관심이 필요하게 된 건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시인 혹은 소설가의 에세이를 즐겨 읽는 편이다. 좋아하는 작가의 마음이 드러나는 글을 읽고 있으면 작가들도 우리와 다르지 않다는 공감의 일환일까. 어쨌든 에세이를 자주 읽게 되는 것 같다. 특히 에세이를 잘 쓰지 않기로 유명한 작가들의 책이 나올 때면 몹시 두근거린다. 이제야 마음을 터놓을 준비를 한 그들의 진솔한 마음들을 느끼고 싶어서다.
황정은의 이번 책도 처음으로 펴낸 에세이라 의미 있다. 많은 사람이 기다렸을 작가의 에세이는 우리의 마음을 두드린다. 기억과 고통의 시간이 혼재하는 글들. 마음속 깊은 곳에 숨겨두고 말하고 싶지 않았던 이야기들을 한다.
아무리 가까운 사이라도 절대 말하지 않은 것이 있다. 굳이 말하고 싶지 않은 것. 그냥 묻어버리고 싶은 기억들. 하지만 에세이를 쓰게 되면 말하지 않고서는 글을 쓸 수 없을 거 같다. 비슷한 경험과 기억이 있다면, 그걸 말하지 않고는 글을 쓸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때로 혹은 자주, 글은 치유의 힘이 있기 때문이다. 드러냄으로써 치유를 경험한 적이 있을 것이다. 그래서 누군가에게 말하고 싶은지도 모른다.
황정은의 소설을 좋아하는 사람이 많다. 어떤 이는 황정은의 글을 읽고 출판일을 하게 되었다고도 밝혔다. 다른 사람들이 황정은을 높게 평가하니 읽게 되었다가 반하게 된 케이스다. 작가의 책이 나올 때마다 구매하게 되는 것.
시집과 같은 아담한 사이즈의 책에서는 진지함이 가득했다. 부모와 자매들의 애틋함. 고통스러운 기억. 가족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자행되는 것들 때문에 우리는 아프다. 누군가에게 말하고 싶어도 애써 기억을 감춘다.
소설을 쓰는 일은 여우에 홀려 여우굴에 들어가는 일과 얼마간 닮았다. 백지를 바라보다가 한 계절, 두 계절이 훌쩍 지나가 버린다. 봄비 내릴 때 책상 앞에 앉았는데 소설 한 편을 마무리하고 나오니 낙엽이 떨어지는 때,라는 패턴으로 시간이 흐르는 일을 직업으로 택해 살다보니 나이를 띄엄띄엄 생각하거나 거의 생각하지 않는다. (32페이지)
소설을 쓰는 일은 디스크 등 각종 통증을 유발한다. 소설을 쓰기 위해 파주로 이사한 뒤의 일상을 적은 글에서 작가는 자신만의 운동법을 소개한다. 호수공원 쪽으로 산책하는 작가의 일상과 책 이야기를 한다. 「민요상 책꽂이」는 라디오에서 내용을 들어 얼른 그 부분을 읽고 싶었었다. 네 살의 조카가 세계문학전집의 출판사 이름을 따라 쓴 민요상이라는 글자에서 조카에 대한 애정이 묻어났다. 민요상 책꽂이라 이름 붙이고 조카에게 물려줄 것을 상상하는 그 마음에 슬며시 미소를 지었다.
「목포행」에서 작가는 목포 신항에 인양된 세월호를 보고 느낀 점들을 말한다. 고통과 치욕의 사고에서 멀어져 일상을 보내고 있는 우리에게 경종을 울리는 듯하다. 내 일이 아니라고 그동안 잊고 있었다.
「빨강머리 앤」을 보고 자랐던 우리는 앤에 대한 관심에서 마릴라 아주머니의 마음을 들여다보게 되는 것을 알 수 있다. 드라마에서 출발하여 학대당하는 아이에 대하여 말하는데 우리가 사회의 이면을 너무 모른척하지 않았나 반성하게 된다.
연재가 이어지는 동안 문장을 계속 쓸 수 있었고 덕분에 소설 한편을 무사히 썼다.
쓰고 싶지 않다거나 쓸 수 있다거나, 아무튼 쓰는 것을 생각하는 일은 쓰지 않는 틈에 일어나는 일이라는 것도 새삼 알았다. (161페이지)
매일 일기를 쓰면서 문장을 쓰는 동안 쌓인 스트레스를 푼다고 했다. 아무렇게나 쓴 글이 그의 일기다. 소설처럼 완벽한 문장들의 집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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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일기를 읽을 때는 언제나 알 수 없는 죄책감과 어깨가 움츠러드는 긴장감에 휩싸이곤 한다. 책으로 출간되어 읽는 것이 공식적으로 허락된 일기이든 개인의 사적 비밀이 담긴, 책상 서랍에 꽁꽁 숨겨둔 비밀 일기이든 가리지 않고 일기라는 이름이 달린 글을 읽고 있노라면 언제나 그런 느낌을 지울 수 없는 것이다. 학창 시절, 형이나 누나의 일기를 몰래 훔쳐보다 들켜서 죽지 않을 만큼 혼쭐이 났던 경험이 나로 하여금 그렇게 주눅 들게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일기를 읽을 때는 언제나 내용 위주로 후다닥 읽는 것은 물론 한두 줄의 중요 문장만 머릿속에 기억한 채 원래 있던 자리에 가지런히 두고 조용히 물러나는 걸 원칙으로 하게 되었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황정은 작가의 『일기日記』를 책으로 읽으면서도 나는 내내 주변의 눈치를 살폈고, 금방이라도 누군가 내 방문을 왈칵 열고 들어올 것만 같은 불안감에 시달려야만 했다. 아무도 없는 방에서 홀로 책을 읽었으면서도 말이다. 이러한 긴장감으로 인해 눈을 통해 들어온 문장은 뇌를 통해 쉽게 이해되거나 기억되지 않았다. 작가의 내밀한 이야기를 몰래 훔쳐 읽는 것만 같았고, 꽁꽁 숨겨둬야 할 이야기들을 나만 알고 있는 듯해서 가슴이 쿵쾅쿵쾅 뛰었다.
"나는 나와 동거인의 나이를 잘 세지 않는다. 소설을 쓰는 일은 여우에 홀려 여우굴에 들어가는 일과 얼마간 닮았다. 백지를 바라보다가 한 계절, 두 계절이 훌쩍 지나가버린다. 봄비 내릴 때 책상 앞에 앉았는데 소설 한편을 마무리하고 나오니 낙엽이 떨어지는 때,라는 패턴으로 시간이 흐르는 일을 직업으로 택해 살다보니 나이를 띄엄띄엄 생각하거나 거의 생각하지 않는다." (p.32)
내가 황정은 작가의 작품을 처음 읽었던 건 아마도 <百의 그림자>가 아니었나 싶다. 그 시절의 나는 박민규 작가의 <핑퐁>이나 <카스테라>, 천명관 작가의 <고래>처럼 문체가 특이하거나 창의성이 뛰어난 작품들에 열광하고 있던 터라 황정은 작가의 <百의 그림자> 역시 푹 빠져들 수밖에 없었고, 작가의 또 다른 작품 <디디의 우산>이나 <연년세세>도 출간과 동시에 읽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럼에도 나는 황정은이라는 이름 석자만 기억할 뿐 그녀에 대해 도통 아는 게 없었다. 그저 소설 잘 쓰는 작가일 뿐.
첫 장인「일기日記」와 그다음 장인 「일 년一年」은 파주로 이사한 작가의 달라진 일상과 코로나19로 인한 주변의 변화에 대한 이야기이다. 경의중앙선 너머로 호수공원이 보이는, 직선거리로는 150여 미터밖에 떨어져 있지 않지만 철길이 가로지르고 있어 1킬로미터를 걸어야 호수공원의 일부인 소리천에 다다를 수 있는 곳이란다. 작가는 원고노동자로서 몸을 관리하기 위해 호수공원을 한 바퀴 돌고 근력운동과 스트레칭을 하는 등 몸을 지키는 일에 열심인 모습을 쓰고 있다. 그렇게 새로운 곳에 적응을 하며 집앞 공터인 '반달터'를 지켜보았고, 우주를 상상하기도 하고, '명命을 지닌 존재들의' 안녕을 빌기도 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서 숨 막히는 '말'들이 있다는 걸 아니까, 이 고요의 성질에 질식이라는 성분이 있다는 걸 아니까, 어디로도 가지 않고 이렇게 유지하는 고요가 그래도, 그래서, 나는 좀 징그럽습니다." (p.41)
「책과 책꽂이 이야기를 쓰려고 했지만」과 「민요상 책꽂이」에는 어린 조카들에 대한 이야기가, 『미안하다고 말하지 않는다』에는 작가가 좋아하는 애니메이션인 「빨강머리 앤」에 대한 작가의 솔직한 평이 담겨 있다. 그런가 하면 「목포행木浦行」은 2017년 이후 매년 목포신항을 방문하는 작가의 이야기를 쓰고 있다. 「산보」는 작가가 돌보는 화분들과 걷기에 관한 이야기를, 쿠키를 먹는 것처러 읽을 수 있는 일기를 목적하고 썼다는 「쿠키 일기」, 그리고 「고사리를 말리려고」와 「흔痕」에는 작가의 과거가 담겨 있다. 작가의 아픈 과거를 읽다 보면 공감할 수 잇는 아픔 한 자락이 길게 여운을 남긴다.
"어떤 날들의 기록이고 어떤 사람의 사사로운 기록이기도 해서, 그것이 궁금하지 않은 독자들이 잘 피해갈 수 있도록 '일기日記'라는 제목을 붙여보았습니다." (p.197 '작가의 말' 중에서)
사람들의 일상을 방해하지 않으려는 듯 살금살금 겨울비가 내렸다. 점심을 먹고 조심스레 빗길을 걸었다. 먼짓내가 사라진 가까운 공원의 풍경을 눈에 넣으며 나는 누군가의 아픔을 생각했고, 인간의 삶이 유한하다는 게 썩 나쁜 일은 아니라며 자위했다. 누군가 다녀갔는지 허공에서 보행을 하는 운동기구는 주인을 잃고 한동안 흔들렸다. 살금살금 비가 내렸고, 조용조용 걸음을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