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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1년 12월 06일
쪽수, 무게, 크기 320쪽 | 410g | 140*210*14mm
ISBN13 9791189336462
ISBN10 11893364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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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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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책 속으로 책속으로 보이기/감추기

내 직업은 작은 헌책방의 주인이다. 표면적으로는 일단 그렇다는 말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중고책을 사고파는 일을 하고 있지만 사실 나는 책에 얽힌 기묘한 이야기를 수집하고 있다. 김수영 시인이 오래전에 쓴 것처럼 “잠자는 책은 이미 잊어버린 책”이다. 그 책을 깨우는 사람만이 진짜 책 속의 이야기를 얻을 수 있다. 잠들어 있는 책을 깨워 그 속에 깃든 무한한 힘을 찾아낸다. 그게 바로 진짜 내가 하는 일이다.
--- p.9

“와아, 정말 대단하시네요. 사장님은 말만 듣고 모든 걸 다 알아내는 셜록 홈스 같아요. 어떻게 그걸 아셨어요? 실은 제가 그 책에 대해서 확실히 기억하고 있는 것이라곤 표지가 노란색이라는 점 하나뿐이거든요.” 남자의 말에 나는 장난스러운 표정으로 한쪽 눈을 찡그리며 손가락으로 관자놀이를 가리켰다.
--- p.55

“집에 분명히 있는 책인 걸 아는데도 사는 일이 있습니다. 그 이유는 두 가집니다. 첫째는, 집 어딘가에 책이 있다고 기억으로는 확신하지만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는 경우입니다. 두 번째는 더 우스운 경우입니다. 책을 갖고 있고 그게 어디에 있는지도 정확히 알고 있지만, 워낙 꺼내기 어려운 곳에 있어서 차라리 그 책을 다시 사는 겁니다. 물론 이 경우는 책값이 저렴하다는 단서가 있어야겠지요.”
--- p.96

모든 책에는 제목, 저자, 출판사, 펴낸 날짜 등이 적힌 서지정보라는 게 있기에 그 내용만 알면 일단은 일을 시작할 수 있다. 그런데 간혹 서지정보를 알 수 없는 책을 찾아달라고 하는 손님이 있다. 무슨 책을 찾는지 본인도 정확히 알지 못하는 경우다. 모르는 책을 어떻게 찾을 수 있을까? 그보다 먼저, 자기도 모르는 책인데 왜 그걸 찾으려고 하는 걸까? 하지만 그런 경우는 분명히 있다. 몇 년 전 서점에 찾아왔던 중년의 한 여성 손님처럼 말이다.
--- p.108

문을 열고 들어온 사람은 마치 프로레슬러처럼 덩치가 컸다. 울퉁불퉁한 근육은 또 어떻고! 옷을 다 갖춰 입고 있는데도 눈을 어디에다 둬야 할지 몰라 당혹스러웠다. 설마 이 사람은 여기가 헬스장인 줄 알고 들어온 건 아니겠지? O씨는 성큼성큼 걸어와 내 앞에 서더니 자기 이름을 말한 다음 책을 찾고 있는데 도와줄 수 있겠냐고 물었다. 걸걸한 목소리에 생김새도 제법 거친 느낌이라 나는 조금 무서웠다. 말만 부탁이지 내 처지에서 그 당시 분위기는 거의 협박을 받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나는 단호하게 대답했지만 O씨가 듣기엔 주눅이 든 목소리였을 것이다.
--- p.118

책에 사악한 기운이 깃들어 있다는 얘기를 들어보신 적이 있으신지? 유럽의 중세시대 이야기냐고? 아니다. 오늘날에도 어떤 책은 소유하고 있는 것만으로 주인이 그 책에 깃든 힘을 똑같이 누릴 수 있다고 전한다. 이제부터 이야기할 《오맨》 번역 초판본에 관한 이야기는 소설이 아니라 진짜다. 평소 심약한 체질이신 분은 여기까지만 읽어주시길 당부한다.
--- p.161

도둑은 상상 이상으로 많다. 훔치려면 돈이나 보석이지, 왜 책일까? 크게 나누면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는 읽기 위해서. 그다음은 책을 팔아 돈을 만들기 위해서다. 간혹 두 가지 이득을 다 챙기는 도둑도 있다. 훔친 책을 정성껏 읽은 다음 다른 헌책방이나 인터넷에 올려 파는 거다. 책 도둑은 어느 서점에나 있기 마련이다. 바퀴벌레 같다고나 할까? 언뜻 보면 없는 것 같지만 사실 상당히 많다. 책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나 도둑이 있다고 해도 심한 말이 아니다. 대형서점, 마트의 도서 코너, 지하철 대기실에 마련한 공공문고, 심지어 교회나 성당에 몰래 들어가 성경책을 훔쳐다 파는 사람도 있다.
--- p.192

“사연이 맘에 들고 안 들고는 크게 따지지 않습니다. 손님께서 개인적인 이야기를 저에게 들려주시는 것만 해도 큰 용기가 필요한 거니까요. 그런 이야기들은 모두 특별하죠. 자, 그럼 지금부터 이야기를 들려주시면 제가 수첩에 받아 적도록 하겠습니다. 사소한 내용이라도 좋으니까 생각나시는 대로 다 말씀해주세요.”
--- p.228

“사업 말입니다. 완벽하게 준비하셨고 그대로 잘 진행되어서 돈도 많이 버셨다고 그러셨잖아요? 그게 어떻게 한순간 망하게 된 건가요? 완벽했던 사업이었잖아요?”
“그거라면 대답하는 데 30초도 안 걸리겠군요.” 그는 다시 시계를 봤다. 그러곤 아주 짧게 대답했다.
“이 세상 자체가 애초에 완벽하지 않은 거예요. 저는 그 단순한 사실을 몰랐던 겁니다.”
--- p.248

“책을 읽고 힘을 얻은 건 사실이에요. 하지만 말씀드렸듯이 여자 혼자 여행을 한다는 건 단순히 용기만 가지고 되는 일은 아니에요. 주변 사람들에게 말할 때, 저는 박완서 작가의 책을 읽고 그 즉시 짐을 챙겨 여행을 떠난 것처럼 조금 멋을 부렸어요. 하지만 현실은 달랐죠. 한 달 넘게 고민했어요. 책 속의 결정적인 한 문장이 아니었다면 저는 결국 고민만 하다가 끝냈을 거예요.”
“한 달간의 고민을 끝내게 만든 한 문장이라. 궁금한데요?”
“박완서 작가는 이렇게 썼어요. ‘자연은 홀로 있는 사람에게만 그의 내밀한 속삭임을 들려준다.’ 저는 이 문장을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답니다.”
--- p.285

그런데 뜻밖에도 S씨는 시주가 아니라 책을 찾고 있다고 했다. 그는 나를 보며 “여기 주인이신지요?” 하며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나는 그렇다고 했다. 그는 고개를 돌려 잠시 주변을 둘러보더니, “책을 팔고 있지만 사기도 많이 사시는 모양입니다?”라고 말했다. 맞는 말이라 깜짝 놀랐다. 나는 벌떡 일어서며, “스님, 그걸 어찌 아셨나요?”라고 물었다. 그는 껄껄 웃었다. “들어오다 보니 계단 앞에 온라인 서점에서 온 택배 상자가 여러 개 놓여 있더군요. 그걸 보고 넘겨짚었습니다.” 뭔가 대단한 신통력을 가진 법력 높은 스님이라고 생각했는데 대답을 듣고 나니 허탈했다.
--- p.291

고등학교 3학년 때 S씨는 수업시간에 갑자기 교사에게 화를 낸 일이 있다. 그 사건은 학교에서 그를 유명인으로 만들었다. 문학 수업시간이었다. S씨가 발작하듯 큰 소리로 “왜 선생님은 남이 한 얘기를 학생들에게 가르칩니까!”라고 소리쳤다. 난데없는 행동에 교사도 뭐라 하지 못하고 멍하니 학생을 바라볼 뿐이었다. S씨는 첫 번째보다 더 큰 소리로, 마치 비명을 지르듯 말했다. “다른 사람 말고 선생님 자신의 독창적인 생각은 없느냔 말입니다!” 이 일로 S씨는 한 주 동안 정학 처분을 당했다.
--- p.294

“저는 감독님께, 그럼 한 가지만 묻고 싶다고 했어요. 원작 속에서 미란다의 대학 전공이 무엇인지 알고 계시냐는 거였어요. 감독님은 잠시 머뭇거리더니, 미란다의 전공 따위가 왜 중요하냐고 하면서 화를 냈어요. 그러곤 ‘너는 그저 몸매가 좋아서 합격시킨 거니까 여러 말 할 것 없이 촬영 때 내 지시만 잘 따르면 돼.’라고 하면서 책상을 손바닥으로 쿵, 소리가 나도록 치는 거예요. 저는 화가 나서, ‘미란다는 미술을 전공했어요. 당신하곤 비교도 안 될 만큼 뛰어난 예술가라고!’라며 쏘아붙인 다음 그대로 문을 열고 나가버렸어요.
--- p.308

누군가의 일생을 판단하려면 그 사람에게도 일생이라는 시간이 필요한 게 아닐까 싶어요. 꽃 다루는 일을 하면서도 그런 걸 자주 느낀답니다. 저도 처음엔 꽃이 예쁜 건 활짝 피었을 때뿐이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래서 가엾다는 마음도 자주 들었어요. 그런데 이제는 알아요. 꽃은 싹트고 잎이 나오고 활짝 피어났다가 시들어 고개를 숙이는 그 모든 과정 자체가 아름다운 거예요.”
--- p.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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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신론자를 자처하는 사람으로서 좀 부끄러운 고백인데, 책이라는 물건에는 마법이 깃든다는 생각이 종종 든다. 머리로는 부정하지만, 서가 사이를 걷다가 그 분명한 힘을 피부로 느낀다. 대형서점보다는 도서관에서, 그보다는 작은 서점에서, 그리고 헌책방에서 가장 강력하게. 전자책보다는 종이책에, 그중에서도 소장자의 사랑을 오래 받은 사연 많은 책에 그 마력이 더 깊이 담기는 것 같다.
여기 그 마법을 가장 생생하고 아름답게 관찰하고 서술한 책이 있다. 분명 마법인데 우리가 아는 물리법칙을 위배하지는 않아서 더 신기하다. 책의 마법을 믿고 싶은 분들께, 마법 없는 차가운 일상에 지친 분들께 큰 위안을 줄 이야기가 스물아홉 편 실려 있다. 저자의 경험 중 일부만 추렸다고 하는데, 나는 벌써 속편을 기다린다.”
- 장강명 (소설가, 논픽션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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