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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놈 일기 1

나쁜놈 일기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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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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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21년 12월 20일
쪽수, 무게, 크기 257쪽 | 142*202*20mm
ISBN13 9791197646416
ISBN10 1197646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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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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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 봄날 감나무 꽃을 과자처럼 주워 먹고/ 실지렁이 우글대는 도랑물에 우려진 어린 풋감을 건져먹고/ 여름장마 견뎌낸 생감은 더 이상 떨어지지 않으니/ 먹을 것 없는 아이는 감나무만 쳐다본다/학교에서 돌아온 나는 감나무에 올라가 멀쩡한 감에 상처를 입히고 그 가지를 꺾어 큰 가지에 걸어 놓았다. 몇 날이 지나 상처 입은 곳부터 떫은맛이 사라진 감을 나는 사탕처럼 빵처럼 먹었다. 어쩌다 떫은 감을 겁 없이 먹는 날은 내장이 뒤틀려 게워내기도 했다. 그 아픔이 너무도 커 다시는 안 먹을 것 같아도, 또 다시 먹는 것은 배 아픈 몸서리보다 배고픈 설움이 더 커서였는지도 모른다. 가난은 그렇게 나를 가르쳐주고 키워내고 있었다.
--- p.29

하루 장사를 결산한 후 담양에서 집으로 돌아갈 무렵이면 날은 어두워지고 6키미터 거리에 있는 집까지 공동묘지가 두 곳이 있는데 늦은 밤 이곳을 지날 땐 여지없이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다. 어떤 사람이 자전거 타고 가다 귀신에 홀려 자전거를 버려두고 갔다는 이야기와 공동묘지 앞까지 있었던 생선이 공동묘지를 지나와 보니 새끼줄만 남았다는 전설 등이다. 이런 말도 안 되는 미신이 공동묘지 앞에서 진짜처럼 느껴지는 것은 실재로 맞닥뜨린 자의 두려움이 그것을 믿기 때문이다. 누구라도 깊은 밤 공동묘지를 홀로 지나갈 때 머리카락이 공중에서 잡아채듯 세워지고 검은 그림자가 묘지에서 솟아오른 것같이 보이면 그 공포감은 미신으로 들었던 얘기를 믿게 만들 것이다. 나도 순간 귀신 이야기에 빠져 공동묘지를 벗어나려 자전거 바퀴를 세게 밟으려는데 귀신들이 짐칸에 올라탄 것처럼 자전거가 앞으로 나아가지 않았다. 이때의 공포는 참과 거짓을 떠나 귀신에게 온몸의 힘을 빼앗긴 듯 오금이 저린다. 페달을 밟는 헉헉대는 숨조차 모가지를 핥는 귀신 혓바닥소리로 들릴 만큼 착각을 한다.
--- p.56

그 시절 짜장면은 아무나 먹을 수 있는 값싼 음식이 아니었다. 서민 집 아이는 생일이나 입학 졸업 등 축하받는 날에나 먹을 수 있었고 젊은이들은 데이트할 때 사내가 여인에게 보석처럼 사주는 귀한 음식이었다. 대한민국은 1970년대까지만 해도 먹을 것만 있으면 못난이도 장가들던 가난한 국가였다. 아무리 잘난 남자도 돈 많은 남자보다 멋있을 수는 없었다.
--- p.66

더운 여름엔 앞치마로 아랫도리만 가리고 웃통을 벗은 채 등짝에 냉수를 끼얹으며 일을 하기도 했다. 어쨌든 당장 내줄 음식이 50여 그릇이 넘는데 기껏 한 번에 국수 3~4인분밖에 못 뽑는 기술로는 감당이 어렵다. 이때를 기다린 듯 고수(주방장)가 라멘장 대신 옷소매를 걷어 올린다. 고수는 그러는 것처럼, 그래서 숨은 고수가 필요한 것이다. 백전노장인 주방장은 한 번에 14~15그릇씩 쫙쫙 면을 뽑아낸다. 신기(神奇)하다. 반죽과 사람과 자연이 함께 춤추는 모습이다. 한 마리 학이 창공을 노니는 여유로움이다. 반죽이 고수의 손에서 춤을 추고 있다.
--- p.80

이렇듯 수타면 뽑기의 정해지지 않는 기술들은 데이터로 되는 게 아니라 경험으로 축적된, 그러면서도 상황에 따라 급변하는 인간 마음까지 수용돼야 한다. 기후 변화는 예측 가능하지만, 수타 반죽 변화는 더 넓고 높고 깊은 것이라서 누구도 예측하기 어렵다.수타면을 가마솥 끓는 물에 넣으면, 그 면이 서로 들러붙지 않게 막대로 잘 젓는 것도 기술이고 삶는 시간도 기술이고 끓기 시작할 때 고루 익도록 뒤집어 젓는 것도 기술이다. 삶은 면을 건져내는 요령도, 국수를 끓여내는 솥에 담긴 물의 양과 그 물이 얼마나 탁하고 맑은가를 아는 것도 기술이다. 이 모든 것 중 단 한 가지라도 소홀하면 눈으로는 완벽하게 보일 수 있어도 결코 맛에 있어서는 완벽하지 않다.
--- p.82

어쩔 수 없이 태어나 어쩔 수 없이 살아있는 사람, 남에 의해 얻은 생명이니 남이 내 인생을 마음대로 해도 되는 것처럼 살아있는 사람, 나를 구박하고 나를 사람 취급하지 않는 사람이 내 편이었으니, 그녀는 내 편이 많을수록 더 고통 받는 사람이었다.그녀의 엄마는 맹인이었다. 일제강점기에 태어나 일본인 사이에서 견뎠고 태평양전쟁과 한국동란에도 살아남은 전사 아닌 전사였다. 눈이 안 보여 두려울 게 없어서 살아남은 것이었을까? 엄마가 그 전장을 이겨내고 양동 주위에 자리 잡은 건 불가사의한 일이었다. 소녀는 그 전설을 얘기하고 있는 것이다. 그녀도 사실은 엄마에 대한 것을 모두 알지는 못한 것 같았다. 엄마가 자식에게 슬픈 얘기들을 어찌 다 해주었겠는가?
--- p.145

서울역에서 호남선 열차를 탔다. 언제나 그렇지만 고향 가는 열차는 가슴이 벅차고 설렌다. 고향을 생각하면 내 그리운 어머니 얼굴이 먼저 떠오른다. 가족을 위해 이 마을 저 마을로 사시사철 비 오는 날만 아니면 하얀 보따리를 머리에 이고 장사 다니셨던 어머니, 해가 질 무렵 곡식 자루 안고 먼 마을 모퉁이를 돌아 걸어오시는 어머니의 거룩한 모습이 눈에 선하다. 별이 빛나는 밤하늘도 황금빛 들판도 맑고 푸른 시냇물도 가로수 아름다운 신작로 길도 내 어머니 앞에서는 그저 한낱 작은 이야기에 불과하다.
--- p.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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