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목정보
발행일 | 2019년 04월 26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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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형 | 양장? |
쪽수, 무게, 크기 | 152쪽 | 256g | 120*186*20mm |
ISBN13 | 9788934995388 |
ISBN10 | 8934995386 |
발행일 | 2019년 04월 26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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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형 | 양장? |
쪽수, 무게, 크기 | 152쪽 | 256g | 120*186*20mm |
ISBN13 | 9788934995388 |
ISBN10 | 8934995386 |
2022년 노벨문학상 아니 에르노의 단순한 열정과 부끄러움 두 책은 참 다른 느낌을 가지고 있다. 단순한 열정의 여인은 사랑에 열정적인 당찬 느낌의 여성이고, 부끄러움의 12세 소녀는 수치심으로 마음을 다친 여린 여성이었다. 작가는 12세 소녀 때와 지금은 많이 다르지만 부끄러움은 그녀의 삶의 방식이 되었다고 한다.
공장 노동자였던 전력에 의해 형성되고 그녀의 과격하고 야심찬 성격과 직업에 걸맞게 조절된 어머니의 종교관이란 다음과 같다. 종교란 개인적 행위로서 종교의 모든 장점을 물질적 삶을 윤택하게 하는 데 쏟아부어야 하며, 다른 가족이나 동네 손님 대부분과 자기를 구분 짓는 일종의 선민의식의 기호이며, 시내 중심지에 살면서 거들먹거리는 부르주아에게 과거 노동자였던 사람도 신앙심과 교회에 베푸는 자비심으로 인해 그들보다 더 가치 있는 존재임을 보여주는 사회적 주장이며, 자아 성취, 완벽주의에 대한 일반화된 욕망의 테두리이고, 거기에 나의 미래도 일부를 이루고 있다.
부끄러움 p.98
어린 나이의 작가는 식료품 가게의 딸로서 동네 사람들의 관심 때문에 구설수에 오르지 말라는 부모님의 이야기를 항상 들었다. 또 종교와 지식이라는 두 가지 절대적인 생활만이 있는 기독교 사립학교를 다녔다. 어린 소녀는 본인이 감당할 수 없는 살인미수의 현장을 목격하였고 그것은 부끄러움의 시작이었다. 그리고 절대 들키고 싶지 않았던 모습을 친구들에게 보이고 만다. 부끄러움의 최고점이었다. 그 부끄러움이란 단어는 무언가 귀엽다는 생각이 들어, 부끄러움보다는 수치심이 이야기의 내용에 더 어울리는 것 같다.
책이 나온 뒤에는 다시는 책에 대해 말도 꺼낼 수 없고 타인의 시선이 견딜 수 없게 되는 그런 책, 나는 항상 그런 책을 쓰고 싶다는 욕망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열두 살에 느꼈던 부끄러움의 발치에라도 따라가려면 어떤 책을 써야 할까?
부끄러움 p.126
대한민국은 다른 국가들에 비해 종교적으로 자유로운 것 같다. 작가처럼 태어나자마자 부모나 국가에 의해 한 종교와 함께하는 삶은 어떤 삶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단순한 열정>에서는 한 여인의 열정적인 사랑의 감정을 느껴볼 수 있었다. <부끄러움>에서는 지난날 겪었던 수치심들의 기억이 한꺼번에 가슴속에 다가와 작가의 수치심들을 이해할 수 있었다.
<부끄러움>은 2022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아니 에르노의 여덟 번째 소설로, 열두 살 때 노동계층 부모와 기독교 사립학교 사이의 간극을 체험하고 존재의 불편함을 느꼈던 원체험(기억에 각인되어 영향을 받게 되는 어린 시절의 체험)에 대한 회고이다. <단순한 열정>을 발표하고 한동안 윤리적 논란에 휩싸였을 때 자전적 서사 그 이상을 제시함으로써 모든 논란을 잠재우고 작가로서 일대 전환을 이루어낸 작품이다.
<부끄러움>은 가난한 노동계급으로서의 부모의 위치를 인식하는 것으로 시작하여 고급스러운 기독교 사립학교를 오가며 보낸 유년 시절의 이야기로 이어지며 내면 깊이 자리한 수치심을 응시한다. "6월 어느 일요일 정오가 지났을 무렵, 아버지는 어머니를 죽이려고 했다."는 문학사상 가장 충격적인 첫 문장 중 하나로 오랫동안 회자되고 있는데, 이 사건은 작가에게도 반드시 한 번은 말해야 하는 근간이자 '원체험'이었다. 작가 아니 에르노는 <부끄러움>으로 자신의 치부를 열어 보이고, 보다 자유로운 글쓰기로 한발 나아갔다.
"어두운 컴컴한 지하실에서 아버지는 어머니의 어깨인지 목덜미인지를 틀어쥐고 있었다. 아버지 손에는 나무둥치에 박혀 있던 전지용 낫이 들려 있었다. 지금 기억나는 건 울음소리와 비명뿐이다. 그런 후 우리 세 식구는 다시 부텈에 모였다. 아버지는 창가에 앉아 있었고, 어머니는 싱크대 옆에 서 있었으며, 나는 계단 끝에 쭈그려 앉아 있었다. 나는 울음을 멈출 수 없었다. 아버지는 정상으로 되돌아오지 않았다. 연신 손을 떨었고 목소리를 여전히 낯선 사람처럼 들렸다. 아버니는 "넌 왜 울러, 내가 너한테 무슨 짓을 했다고"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그때 내가 대꾸했던 한 마디가 기억난다. "아빠가 내 불행을 벌어놓은 거야." 어머니는 "자, 이젠 끝났다"라고 말했다. 그러고 나서 우리 셋 모두 자전거를 타고 근처에 산책을 나갔다. 돌아오자 아버지는 여느 일요일 저녁과 마찬가지로 다시 식당 문을 열었다. 그리고 그 일은 더 이상 문제 삼지 않았다.
그것은 1952년 6월 15일의 일이다. 내 유년 시절의 정확하고 분명한 첫 번째 날, 그전에는 칠판과 노트에 적인 날짜와 하루하루의 흐름이 있었을 뿐이다."
아니 에르노는 활자화된 글로 복원하고픈 욕구, 다른 어떤 것도 시도할 수 없다는 좌절감 등의 징후로 미루어보아 자신이 이렇게 책을 쓰고 있다는 것은 단숨에 모든 것을 노출하는 위험을 무릎썼다는 것을 의미하지만, 그것은 날 것의 사실들이라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날것의 사실들일뿐, 노출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수년 전부터 고정된 이 장면, 나는 이것을 꿈틀거리게 만들어서 이 장면으로부터 신성한 징후를 박탈하고자 했던 것이다."
아니 에르노는 1940년 르아브르 인근의 작은 공업도시 릴본에서 식품점 겸 식당을 운영하는 뒤셴느 부부의 외동딸로 태어났다. 1945년 노르망디 이브토로 이사해 기독교 사립학교를 다닌 후 루앙 대학교와 보르도 대학교에서 현대문학을 공부했다. 이 책은 아니 에르노가 열두 살 소녀였을 때 경험했던 충격적인 사건과 부끄러움에 관한 이야기를 담아내어 인상적이다.
"내게 중요한 것은 나 자신이나 주변 세계를 생각할 때 사용했던 단어들을 되찾는 일이다. 정상적인 것과 용납될 수 없는 것, 심지어 생각조차 할 수 없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1995년의 나라는 여자는, 조그만 자기 도시와 자기 가족 그리고 사립학교만 알고 있어서 사용할 수 있는 단어가 제한되었던 1952년의 소녀 속으로 다시 들어갈 수 없다. 그 소녀 앞에는 살아야 할 무한한 시간이 놓여 있었다."
"당시에 내 현실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나를 가두었던 환경, 학교, 가족, 시골의 의미를 규정하는 동시에, 미처 그 모순을 눈치채지 못했지만 내 삶을 좌우했던 법칙, 의식, 믿음, 가치를 찾아보는 것 외에 달리 확인할 길이 없다. 종교의 단어, 행동이나 사물과 연관된 우리 부모의 단어, <유행의 메아리>나 <초가집의 모임> 같은 잡지에서 내가 읽었던 소설의 단어 등 나를 구성했던 언어를 밝혀내야 한다. 6월 어느 일요일의 사건을 둘러싸고 있었던 세계, 미쳐버리는 줄 알았던 열두 살 세계의 텍스트를 분해하고 재조립하기 위해서는 아직까지도 내게 묵직한 무게를 행사하는 단어를 사용해야만 한다."
아니 에르노는 자신의 12살은 만인이 만인을 감시하는 세상의 법칙과 관례 속에서 지나가고 있었다고 말한다. 다른 사람이 어떻게 사는지 반드시 알고 싶어했는데, 그것은 남에게 떠들어대기 위해서인 동시에 구설수에 오르지 않기 위해서 자기의 삶은 철저히 감춰야 했기 때문이었다. 아니 에르노는 사람들은 남들의 행동거지를 관찰하고 숨겨져 있는 아주 조그만 습성을 분석했고, 그런 것들을 모아 해석을 붙이면서 한 사람의 역사가 만들어졌다고 이야기한다. 그것은 각자가 조그만 말 한마디씩 덧붙여서 만들어지는 집단창작 소설 같은 것이었다.
"사람들의 일상사나 행동은 대화를 통해 선과 악, 허용된 것 혹은 권장된 것과 금지된 것이라는 범주로 분류되었다. 이혼한 사람, 공산주의자, 동거하는 사람, 미혼모, 술을 마시거나 낙태한 여자, 해방의 날에 머리를 깍인 여자, 집을 돌보지 않는 여자 등에게는 절대적인 비난이 쏟아졌다. 결혼 전에 임신한 여자나 카페에서 노는 남자 그리고 일반적으로 모든 남자들의 행동에 대해서는 아주 관대한 편이었다. 일을 열심히 하는 경우에는, 그 작자는 술은 마시지만 게으름은 피우지 않는다는 식으로 잘못이 면죄되거나 최소한 묵인되었다. 건강은 하나의 덕목이었는데, 그 여자는 건강하지 못하다라는 말은 동정의 표현인 동시에 비난이기도 했다. 아무튼 질병은 내 잘못도 아닌데 운명에 대한 주의력 부족으로 간주되었다. 일반적으로 온전하고 정당하게 병들 권리는 인정되지 않았고 항상 구설수의 대상이 되었다."
아니 에르노는 예의는 주도적 가치이자 사회적 판단의 첫 번째 원칙이였다고 말한다. 예의를 지키면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잘 지내게 되고 구설수에 오르지 않게 된다. 아니 에르노는 예의란 일종의 보호 장벽인 셈이고, 따라서 부부 사이나 부모와 자식 사이의 예의는 위선이나 악의처럼 느껴져셔 불필요한 것이었다고 이야기한다. 거칠고 노골적이고 악을 쓰는 것이 정상적인 가족 간의 대화였다.
"사람들을 평가하는 기준은 사교성이었다. 단순 솔직하고 공손해야 했다. '응큼한' 아이들, '사사건건 시비를 거는' 노동자들은 타인과의 대화에서 지켜야 할 정당한 법칙을 위반한 사람이었다. 고독을 추구하는 사람은 자칫 '곰'으로 취급될 정도로 무시당했다. 혼자 살려고 하거나, 사람들에게 말을 걸지 않으면 그 사람은 꼭 야만인처럼 살잖아!라는 말을 듣게 되며, 인간의 존엄성에 해당하는 무엇인가를 거부하는 것으로 여겨졌다. 그것은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것, 즉 다른 사람의 사생활에는 무관심하다는 것을 노골적으로 과시하는 것이었다. 즉 관습에서 벗어나는 짓이었다. 그러나 이웃이나 친구 집에 너무 자주 집요하게 드나들거나 어떤 여자나 남자 집에 항상 '죽치고 있는 것' 역시 질책의 대상이었다. 그것은 자존심의 결여였다."
"당시에는 감정을 표현하는 단어란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 실망했을 때에는 멍청했었지, 불만이 있을 때에는 나빴었지 같은 표현이 고작이었다. 과자를 미처 먹지 못하고 접시에 남겨두고 나왔거나 애인을 잃었을 대에는 죽을 맛이야라고 했다. 그리고 바로 그 표현, 불행을 벌다. 감정의 언어는 뤼 마리아노와 티노 로시의 노래들, 델리의 연재소설, <유행의 메아리>나 <꽃반 속의 인생> 같은 잡지의 언어였다."
아니 에르노는 기독교 사립학교는 종교와 지식이라는 두 가지의 절대 명령, 두 개의 이상이 구분되지 않은 채 하나로 묶여서 자신의 생활을 압도했던 곳이며 가장 많은 시간을 보냈던 곳이기도 하다고 말한다. 아니 에르노는 사춘기까지, 신에 대한 믿음은 자신의 유일한 규범이었으며 기독교만이 유일한 진리라는 것은 그 어느 것으로도 움질일 수 없는 부동의 사실이었다고 이야기한다.
"우리는 진리와 완벽함 그리고 빛의 세계 속에 있다. 다른 세계란 미사에 가지 않고 기도도 하지 않는 사람들의 세계, 오류의 세계이며 그것은 심지어 이름조차도 저주가 되는 듯 이따금 산발적으로만 입에 오르는 세계인데, 그것은 다름 아닌 공립학교이다. (내게 '공립'이란 분명한 의미는 없었지만 막연하게나마 '나쁜'이란 형용사와 동의어였다.) 우리의 세계와 그들의 세계는 모든 점에서 구별된다."
"내게는 성적에 따른 분류 외에 또 다른 분류방식이 있다. 그것은 하루하루 단체 생활을 하다 보면 자연스레 생기는 것으로, '싫은 아이'와 '좋은 아이'로 나누는 것이다. 우선 '잘난 체하는 아이'와 '그렇지 않은 아이', 축제 때 춤추는 여자로 뽑히거나 방학 때면 바닷가로 여행하기 때문에 '자신만만한 아이'와 그렇지 않은 아이들로 나뉜다. 잘난 체하는 아이들은 부모가 회사 중역이거나 상인이고 시내 중심지에 살며 얼굴이 예쁘다는 신체적, 사회적 특징이 있으며, 잘난 체하지 않는 아이들은 농사꾼의 딸이거나 기숙 학생, 인근 시골에서 자전거로 통학하며 나이가 좀 들었고 대개는 낙제생들이다. 이들이 자랑거리로 삼을 수 있는 땅이나 트랙터, 도매상 등 농사와 관련된 모든 것은 아이들의 비웃음을 샀다. '촌구석'과 관련된 모든 것은 경멸되었다."
아니 에르노는 개학일마다 깨끗한 교복을 입고 예쁜 기도서를 가지고 있으며 어디에서나 1등을 하고 기도문을 줄줄 외웠지만, 더 이상 다른 여학생과 같지 않았다고 말한다. 아니 에르노는 순진무구한 사립학교에서는 알지 말아야 할 것을 알았다고 이야기한다.
"나는 사립학교, 그곳의 품위와 완벽함에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 되었다. 나는 부끄러움 속에 편입된 것이다.
부끄러움에서 가장 끔찍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오로지 나만 부끄러움을 느낀다고 믿는 것이다."
"나는 처음으로 어머니를 사립학교 세계의 시선으로 보았던 것이다. 나의 기억 속에서 아버지가 어머니를 죽이려 했던 장면과 아무 상관없는 이 장면이 그것의 연장으로 생각된다. 아무렇게나 풀어헤쳐진 이상한 셔츠 사이로 내비친 어머니의 알몸뚱이를 통해 우리의 진면복,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이 발각된 것처럼 느껴졌다.(...)
그 뒤 여름 내내 있었던 모든 일은 우리의 천박함을 재확인하는 것이었다. 이렇게 사는 사람들은 '우리밖에' 없다."
아니 에르노는 자신의 부모의 직업, 궁핍한 그들의 생활, 노동자였던 그들의 과거, 그리고 우리 존재 양식에서 비롯된 결과물이었기 때문에 부끄러움을 느끼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고 말한다. 부끄러움은 반복되고 누적되었다. 아니 에르노는 "부끄러움은 내 삶의 방식이 되었다. 아니, 더는 인식하지조차 못했다. 부끄러움이 몸에 배어버렸기 때문이다"라고 이야기한다.
"우리 존재의 모든것이 부끄러움의 표식으로 변했다. 마당의 오줌통, 함께 자는 방, 어머니의 손찌검과 거친 욕설, 술에 취한 손님들과 외상으로 물건을 사는 친적들. 술에 취한 정도를 정확히 파악할 줄 알고 월말이면 통조림으로 끼니를 때우는 우리 삶에 대한 정확한 인식. 오직 이 인식만으로도 내가 사립학교의 무시와 경멸의 대상인 계층에 속한다는 사실이 분명해졌다."
아니 에르노는 책이 나온 뒤에는 다시는 책에 대해 말도 꺼낼 수 없고 타인의 시선이 견딜 수 없게 되는 그런 책, 항상 그런 책을 쓰고 싶다는 욕망을 갖고 있었다고 말한다. 하지만 아니 에르노는 "열두 살에 느꼈던 부끄러움의 발치에라도 따라가려면 어떤 책을 써야 할까?"라고 반문한다. 1996년 여름이 끝나고 이 책을 쓰고 있었던 지난 몇 날 동안 어떤 영화가 개봉했든 어떤 책이 발간됐든, 혹은 어떤 예술가가 죽었든 그것이 1952년에 일어난 사건이면 대뜸 신경이 곤두섰고, 그런 일들이 까마득히 먼 그해의 현실, 어린아이였던 자신의 존재의 실체를 증명하는 것처럼 여겨졌다는 아니 에르노의 글이 묵직한 여운을 남긴다.
"비아리츠의 사진들을 본다. 아버지는 이십구 년 전에 돌아가셨다. 사진 속 여자아이와 지금의 나 사이에는 이제 아무런 공통점도 없다. 내게 이 책을 쓰게 만든 6월 일요일의 그 장면을 마음속에 품고 있다는 점만 제외하면. 그 장면은 결코 내 마음속에서 떠난 적이 없었다. 이 작은 여자아이와 나를 같은 사람으로 만드는 것은 오로지 그 사건뿐이다. 나의 정체성과 내 존재의 항구성을 가장 강렬하게 느낀 오르가슴을 나는 그로부터 이 년 뒤에나 느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