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목정보
발행일 | 2000년 06월 30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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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327쪽 | 444g | 132*225*30mm |
ISBN13 | 9788937460388 |
ISBN10 | 8937460386 |
[2023 베스트] 페이퍼 인센스, 다이어리, 캘린더 (국내도서 3만원↑, 포인트 차감)
발행일 | 2000년 06월 30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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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327쪽 | 444g | 132*225*30mm |
ISBN13 | 9788937460388 |
ISBN10 | 8937460386 |
1. 달과 6펜스 2. 작품 해설 / 송무 3. 작가 연보 |
고갱을 소재로 소설을 쓰고 싶어서 고갱이 살았던 타히티 섬까지 다녀왔다는 서머싯 몸. 소설속의 스트릭랜드가 증권거래소에 다녔다는 것,가족과 헤어져 타히티섬으로 들어가 그림을 그리다 죽은 것등은 고갱의 삶과 일치한다. 표지의 그림때문에라도 책을 읽는동안 고갱을 보고 있는듯했다.
서머싯 몸은 죽은 후에 화가로서 유명해진 스트릭랜드와 가까이 지낸 인연으로 회상기를 쓰게 되었다는 '나'를 주인공으로 소설을 전개해 나간다. 내가 스트릭랜드를 만나서 겪고 느껴던 것,또는 그를 아는 인물들을 만나 그들로부터 들은 이야기들이다. 스트릭랜드는 증권거래소 직원으로 안정적인 가정을 꾸리며 살아가고 있었는데, 어느 날 편지 한 통 남기고 떠나버렸다. 작가인 '나'는 그의 집에 초대를 받아 밥 한번 같이 먹었을 뿐인데, 그의 아내 부탁으로 스트릭랜드를 만나러 가게 된다. 여자랑 바람이 나서 가정을 버린거라고 생각했지만,그는 그림을 그리고 싶어서 떠났을 뿐이라고 이야기한다.
나는 그림을 그려야한다지 않소. 그리지 않고는 못배기겠단 말이요. 물에 빠진 사람에게 헤엄을 잘 치고 못 치고가 문제겠소? 우선 헤어나오는 게 중요하지. 그렇지 않으면 빠져 죽어요.-p69
그림을 그리는 것이 삶의 의미라는 말로 들린다. 가난하게 사는 것도 문제가 되지 않고,가족도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보편적인 진리, 인습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양심에 호소해도,가족에 대한 죄책감 하나 보이지 않는 그를 보며 공포를 느끼기도 했지만,그의 창조본능이 도대체 어디서 기인한 것일까란 질문을 던진다. 나는 정확하게 해답을 제시하지는 않기에 혼자 질문하고 상상할 뿐이다. 그의 냉정함에도 불구하고 지속적인 만남을 가지게 된 나는 그의 삶을 가까이서 지켜보게 된다.
스트릭랜드는 자신에게 친절함을 보이는 화가 스트로브의 도움을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나의 친구이기도 한 스트로브는 아무도 인정하지 않는 스트릭랜드의 그림을 보고 천재성을 느끼는 사람이다. 그래서, 가난 때문에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병에 걸린 그를 집으로 데려와 아내로 하여금 간호하게 하는등 그에게 최선을 다하지만,스트릭랜드는 당연하게 여길뿐이다. 자신을 사랑하게 된 그의 아내를 버림으로써 자살에 이르게까지 하면서도 어리석고 균형 잡히지 않은 인간이기에 그런거라고 말할 뿐 미안함을 느끼지 못한다. 인간적인 면은 찾을래야 찾을 수가 없다.
그 일이 있은 후 스트릭랜드를 만나지 못한 나는 그가 말년을 보냈다는 타히티 섬으로 가서 그를 알고 지냈던 사람들로부터 그의 이야기를 듣는다. '사람은 자기 바라는 대로 되는 것이 아니라 생겨먹은 대로 된다' 는 것을 섬 사람들은 알고 있었기에 그 환경에서는 그가 고약하게 보이지 않았던 거라고 생각하게 될만큼 그에 대한 평은 호의적이고,그의 예술을 인정하는 분위기였다. 그는 문둥병으로 생을 마감했다. 보이지 않는 눈으로 죽기 전까지 그렸던 벽화는 그의 마지막을 보았던 의사를 통해 그가 천재였음을, 그의 선택이 잘못된 것이 아니었음을 말해준다.
달이 혼과 관능의 세계, 또는 본원적 감성의 삶에 대한 지향을 암시한다면, 6펜스는 돈과 물질의 세계, 그리고 천박한 세속적 가치를 가리키면서,동시에 사람을 문명과 인습에 묶어두는 견고한 타성적 욕망을 암시한다.-p310
라고 밝히고 있다. 가족을 버리고, 타인에 대한 일말의 배려도 없는 사람이기에 인간적으로는 정이 가지 않았지만, 속세에서 발을 떼고, 가난이나 죽음에 대한 두려움 조차 없이 진정으로 원하는 길을 가기가 어디 쉬울까? 가만히 자신을 들여다 보고 진정 용기기 필요할 때 용기를 내보라고 말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이 소설의 소재가 된 고갱에 대해서 한마디 곁들이자면 난 그를 썩 좋아하지는 않는다. 대단한 취향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의 그림이 나랑 맞지 않고, 인간적으로도 호감이 가지 않는다는 것이 이유라면 이유랄수도 있겠다. 그래서인지 그에 대한 일대기 형식의 책은 읽어본 적이 없는데,이 책을 읽고나니, 고갱에 대해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어떤 편견을 가지고 있는건 아닐까란 생각이 들었다. 고갱에 대해서도 제대로 알고 싶어졌다.
그의 소설 '인생의 베일' 을 재밌게 읽었었는데, 다른 책들도 읽을 목록에 올려둔다. 화자인 나를 통해 인격, 아름다움이란 것, 사랑, 양심, 예술등에 대한 이야기들을 들려주는 데,지금 읽어도 전혀 고루하지 않게 느껴지는 그의 글들이 참 맘에 들었다.
스트릭랜드는 잘 다니던 증권사를 갑자기 그만둔 채 부인과 자식을 버리고 어느 날 홀연히 파리로 떠난다. 화자인 '나'는 스트릭랜드 부인의 부탁을 받고 그에게 찾아가 돌아올 것을 종용한다. 스트릭랜드는 열정적이고 진지하게 이렇게 말한다.
'나는 그림을 그려야 한다지 않소. 그러지 않고서는 못 배기겠단 말이요.'(p.69)
'내'가 그를 설득하는 논리는 대체로 다음과 같다. 당신은 가족들에게 큰 죄를 지는 것이다. 사람들이 당신을 비난하고 멸시할 것이다. 그림을 그리는 재능이 당신에게 없다면 기껏해야 삼류에 그칠 것이다. 보편적으로 공동체에 속한 개인이 지켜야할 법칙이 있다. 양심은 사회의 이익을 개인의 이익보다 앞서 생각하도록 우리를 강요한다. 스트릭랜드는 이 모든 논리를 한꺼번에 무너뜨릴 수 있는 답을 한다. 그것은 '난 그런 것 따위는 아무 상관없단 말이오.'이다. 다시 화자가 주장했던 논리를 읽어보면, 그것들은 모두 '남들이 그래야 한다'라고 생각하는 것들임을 알 수 있다. 이 논리는 다름아닌 우리가 '꿈'을 찾으려 할 때 스스로를 설득하며 주저 앉히는 말들이다. '타자의 욕망을 욕망한다'는 라캉의 명제까지 가지 않더라도, 우리는 타인의 시선을 배제하고서는 아무 것도 결정할 수 없다. 우리가 내리는 대부분의 행동에 '나'는 없다.
주인공 스트릭랜드가 매력적인 이유는 바로, 누구도 쉽게 할 수 없는 그 '미친짓'을 해냈기 때문이다. 남의 눈치 보지 않고 살아버리는 그런 정신나간 짓 말이다. 그는 상징적 의미의 미친짓 말고도, 실제 행동으로도 패륜적인 족적들을 남기지만 사람들은 오히려 그 점에서 신화의 완성을 발견한다. 그의 아들이 아버지와 관련된 오해를 풀기 위해 지극히 정상(?)적으로 쓴 아버지의 전기는 오히려 그를 찬양하는 이들을 당황케 만들었다. 그가 그린 모든 그림의 색채는 빛과 붓, 물과 물감 뿐만 아니라 비윤리적 행태와 오만한 광기까지가 섞여서야 비로소 빛을 내기 때문이었다. 그의 그림은 특정한 시기에 그려진 단순한 결과물이 아니라, 그의 온 인생을 쏟아 부은 진실의 집적체로서 의미를 갖고 있었다.
달과 6펜스는 너무도 유명해서 이제는 거의 이상과 현실의 대명사 정도가 되어버렸다. 직장 독서토론 모임에서 이 책을 첫 번째 책을 선정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사실 모임에 참석한 어느 누구도 당장 그 자리를 박차고 꿈을 찾아갈 리 없는 것을 알고 있다. 우리는 매번 가지 않은 길을 아쉬워 하며 살도록 되어 있으며, 그 길로 간 누군가도 우리가 가는 이 길을 그리워 하며 살 것 또한 알고 있다. 프루스트의 말처럼 '두 길을 모두 갈 수 없음을 아쉬워 하며, 가지 못한 길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보게' 되는 것이 인생이다. 스트릭랜드는 사람이 적게 간 그 길을 택한 몇 안되는 사람 중의 하나였고, 그 길에서 완성된 결실을 맺은 신화의 주인공이었다. 그가 신화가 되기까지 정상적인 것은 하나도 없었다. 때문에 우리는 그러한 신화의 완성에서 내면 깊숙이 잠재되었던 터무니 없는 꿈의 실현을 대리만족하는 것일 지도 모르겠다.
종종 독자를 위한 해설이 실리지 않았더라면 하고 생각할 때가 있는데 이 책이 특히 그렇다. 이 소설이 '폴 고갱'을 소재로 쓴 책인 것은 다 알고 있다. 굳이 해설에 사실은 고갱은 그렇게 살지 않았다고 스트릭랜드와의 차이를 밝혀 놓은 점에서 책 전체의 흥미가 급격히 반감되어 버렸다. 우습게 떠오른 생각은, 스트릭랜드의 아들이 아버지를 위한답시고 아버지의 신화를 무너뜨리더니, 이 책의 역자는 독자를 위한답시고 달과6펜스의 신화를 갉아 먹는 것은 아닌가 싶었다. 달과 6펜스는 대학 때 읽고 최근 다시 읽어보았는데 읽히는 느낌이 판이했다. 그것이 내가 사회에 순응해 버린 결과인지, 꿈을 잃어버린 것인지 알 수 없지만, 스트릭랜드에 대한 경외감이 커진 것은 확실하다. 모든 책이 두 번 읽혀야 한다면 그 첫번째와 두번째를 언제로 하느냐에 따라 책의 가치가 극대화 될 수 있을텐데, 이 책은 사회에 발을 딛기 전에 한 번 읽고 사회 생활이 십년이 넘은 후에 한 번 읽는다면 적절할 것 같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서머싯 몸의 《달과 6펜스》는 후기 인상파 화가 폴 고갱을 모델로 한 작품이다. 주식중개인으로 멀쩡히 일하다 그림을 그리겠다고 아내와 자식들을 두고 뛰쳐나와 그림에 몰두하다, 결국 타히티에서 생을 마감한 폴 고갱의 삶은 소설가에게 인상 깊었고, 이를 모티브로 해서 쓴 소설은 대단한 반응을 이끌어냈다.
제목의 ‘달과 6펜스’의 상징 역시 잘 알려져 있다. ‘6펜스’가 현실의 세계라면, ‘달’은 영혼의 세계다. 즉, 스트릭랜드가 주식중개인으로 가족과 함께 살아가던 세계가 ‘6펜스’의 세계라면, 현실의 안락을 버리고 고난의 길, 예술의 길을 걸었던 세계가 ‘달’의 세계다. 서머싯 몸은 폴 고갱을 모티브로 스트릭랜드라는 인물을 재창조하여 현실과 예술 사이의 괴리와 위대한 예술의 승리를 한 권의 소설로 보여주었다.
폴 고갱의 실제 삶과 소설 속의 찰스 스트릭랜드의 삶은 약간 다르다. 소설에서는 직업과 가정을 버리고 그림의 세계로 뛰어드는 모습을 느닷없는 것으로 그리고 있지만, 이는 극적인 구성을 위한 것이었고, 그가 죽게 되는 병도 소설에서는 나병(문둥병)으로 묘사하고 있으나, 실제로는 심장병과 매독으로 고생했고, 결국은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이러한 변용은 이 소설이 단순히 폴 고갱이라는 천재 예술가의 삶을 재현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폴 고갱이라는 화가는 모티브일 뿐이며, 그를 모델로 한 스트릭랜드의 삶과 행적으로 통해 보다 중요한 문제를 다루기 위한 것이란 걸 이야기한다.
이 소설을 읽는 방법은 여러 가지일 것이다. 물론 앞에서 얘기한 대로 현실과 예술의 세계를 대비시키며, 어떻게 위대한 예술의 성취를 이룩하는지에 대한 이야기로 읽을 수 있다. 그렇게 읽는다면, 과연 우리가 삶의 의미를 어떻게 찾을 것인지, 의미 있는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무엇인지를 고민하게 된다. 그러나 스트릭랜드라는 인물의 기행을 보면, 위대한 예술가의 비도덕성에 집중할 수도 있다. 이는 위대한 예술이 반드시 위대한 성품의 소유자는 아니라는 것을, 그리고 그것을 우리는 용인할 수 있는가의 문제를 제기할 수 있다. 혹은 스트릭랜드 대신 그 주변의 인물에 집중할 수도 있다. 이를테면 스트릭랜드가 주식중개인이었을 때 아내를 보면 상류층에 포함되고 싶어하는 속물근성을 볼 수 있고, 그른 속물근성은 그가 떠났을 때 저주를 퍼부었지만 그가 죽고 유명해지고 난 후에는 그의 아내였음을 자랑하는 모습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그밖에도 의사 알렉 카아미클이나 스트릭랜드에게 모든 걸 주는 것 같지만, 역시 현실에 안주하기를 고집하는 스트로브도 그렇다.
훌륭한 소설은 이렇게 다양한 관점에서 읽을 수 있도록 한다. 그가 제기한 여러 문제들은 지금도 해결이 되지 않은 문제다. 벌써 100년이 넘은 소설이지만 아직도 현실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