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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지 않고는 살 수 없는 우리에게] 이병률 작가가 3년 만에 펴낸 산문집. 『혼자가 혼자에게』로 홀로 잘 건너온 사람들을 향해, 이번에는 사랑을 말한다. 사랑이 지나간 흔적부터 사랑이 피어나는 순간까지. 사랑이 우리를 이끄는 모든 곳을 훑어준다. 마침내, 사랑하지 않으면 안 될 때가 왔다. - 에세이 PD 이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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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 잡아주지 못해서
뿌리째 아름다운 일 열 번 백 번의 프러포즈 우산 위로 떨어지는 여름 익숙한 맞은편 앞자리 파도 소리를 베개 삼아 깊은 잠에 빠져드는 당신과 나 그것이 아니라면 어떻게 하겠는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커다란 진동이 우리는 사랑하면서도 여러 번 헤어지자 말했다 가슴은 두근거리게 얼굴은 붉어지게 아무 날도 아닌 날에 당신은 잘 건너고 있는지 나 당신을 만나 문명이 되리라 나를, 당신을, 세상을, 세계를 좋아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되었습니다 당신에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면 나는 나도 뒤집을 줄 아는 사람이 되면 어떨까 따로, 아주 멀리 세상은 냉동칸에 든 열 칸짜리 얼음틀 거짓의 뒷맛으로 꾸며진 콘서트 어떤 날에 문득 그런 사람이라면 왜 하필 나를 좋아하죠 든든히 나를 오래 지켜줄 것 같은 사람 당신 집에는 언제 갈까요 모두가 여기에 있다 그 사랑 나는 돌려 말하지 않을 겁니다 같이 할 수 없고 나눌 수도 없는 당신이 행복하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마법사를 따라 들어간 호젓한 골목길 크리스마스에는 사다리 타기 불꽃이 몸에 박히는 작은 통증 당신하고 하루라는 시간 동안 허전하면 한잔하든지 나 연애합니다 사랑은 사다리 타기인가 파도타기인가 전화를 걸기 전에 뭐라고 말할지 연습해본 적이 있나요 이별은 도피의 다른 말이군요 그 사람이 좋은 이유를 찾았다 웃을 땐 이 여덟 개가 보이게 편지의 나머지 부분 체리가 익을 무렵 당신을 운다 활기는 안 바랍니다 생기를 챙기세요 매일 정각 자신에게 꼭 한 번씩은 들르는 |
저이병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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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이 한 사람에게 미지근한 감정의 부스러기만을 건네려 할 때도, 어떤 힘있는 표현은 그 한 사람을 살게도 합니다. 사랑이 그렇습니다. 짧게 줄여진 말이나, 직접적으로 하지 않은 말들 속에는 마치 뭔가가 발견되기를 기다렸다는 듯 우주가 꿈틀거리기 시작합니다. 사랑이 그렇습니다.
---「뿌리째 아름다운 일」중에서 오래 만나세요. 그 긴 시간 동안 셀 수 없고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최고의 기억을 담으세요. 중요한 건 사랑한 만큼의 여운일 테니. 그 여운으로 힘이 드는 건 아무것도 아닐 테니. ---「아무 날도 아닌 날에」중에서 당신이 시계를 볼 때면 시계는 늘 11시 11분을 가리키고 있다고 했다. 그런 일이 자주 있다고 했다. 나도 우연이겠지만 시계가 4시 44분을 가리키고 있을 때가 많아도 너무 많은데, 당신은 11시 11분을 보는 게 하루 두 번이지만, 내가 4시 44분을 가리키는 걸 보는 건 하루 한 번뿐일 거라고 했다. 시간에 그리도 능통하다니. 시계를 백 번씩 들여다보는 한이 있더라도 매일 그 4시 44분을 기다려야겠는걸. 그 이야기를 하는 당신을, 당분간은 당신을 좋아해야겠다고 정했다. ---「거짓의 뒷맛으로 꾸며진 콘서트」중에서 한 사람이 혼자서 하는 게 사랑은 아니기에, 한 사람이 할 수 있다 하더라도 그건 사랑이 아니기에, 우리는 사랑하다가도 어긋나고, 이어보려 해도 고스란히 해진 자국을 남긴다. ---「어떤 날에 문득 그런 사람이라면」중에서 사랑하는 일. 있는 그대로 한 사람을 사랑하기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요. 굳이 사랑을 내 것으로 만들어야 하고, 내 마음 위주로만 상대를 당겨야 했던 날들은 우리에게 상실의 고통을 안겨줍니다. 그렇지만 그게 다가 아닌 것. 사랑의 힘은 무엇도 될 수 있게 하고 그 무엇도 가능하게 했습니다. ---「당신이 행복하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중에서 |
사랑의 힘은 무엇도 될 수 있게 하고 그 무엇도 가능하게 했습니다
말 속에 진심을 숨겨놓는 사람들, 사랑과 이별이 제각각 스며든 우산, 사랑을 배운 적 없어서 사랑 앞에서 주저하는 사람, 아무 날도 아닌 날 서로에게 특별함을 선물하려고 식물가게를 찾은 두 사람. 사랑한다고 말하자 “왜 하필 나예요?” 하고 되묻는 사람, 사랑을 하지 않아도 된다고 선언하는 사람들을 바라보는 고백을 거절당한 사람, 계획 밖에 있던 눈물에 엄습당하는 누군가. 이 여러 모양의 사랑을 자신의 사랑과 겹쳐보다 보면 우리는 ‘사랑’을 가리는 ‘실패’의 휘장을 걷어낼 수 있을 것이다. “너무 아름다운 것만 보려다가 안 보게 되는…… 아름답지 않은 건 어떡하라고요……”라고 말하는 인물 앞에서, 그 말이 너무 아름다워서 푹 쓰러질 것 같으면서도 떠나는 인물에게 손을 흔들며 그날을 아름답게, 말들로 잔뜩 어질러진 밤으로 기억하듯 말이다. 그간 시인의 산문집이 여행을 떠나온 우리에게 가장 가까운 동행이 되어주었고, 갑작스럽게 맞이한 팬데믹 상황에서는 혼자로 오롯한 시간을 선사했다면 이번 산문집은 우리 훌쩍 떠나자고 슬쩍 내미는 손 같다. 그 손을 잡으면 다시 어딘가로 향할 수 있을 것 같다. 마치 언젠가 낯선 국가의 우체국에서 막연히 보냈던 엽서 한 장처럼 혹은 문득 우편함에 꽂힌 아는 사람의 편지처럼 당신에게 설레고 반갑게 손짓할 테다. 이 책을 다 읽어갈 때쯤이면 책 속에 등장하는 여러 소식에 동행하고 싶은 기분이 들기도 할 것이고, 연락이 뜸했던 친구에게 당신의 작은 소식 하나도 전하고 싶어질지도 모른다. 그것이 어떤 이야기일지라도, ‘요즘 어떻게 지내?’ 하며 평범하게 물꼬를 트더라도, 그 대화가 한줄기의 바람이 되어 당신을 다른 곳으로 데려가줄 것이다. 어떤 소식들은 말해야만 전해지고 그래야만 가닿을 수 있으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