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과 건강
와인은 고대로부터 화학적인 결합에 의한 의약품이 나오기 전까지 수많은 생약제제 중 한 가지였다. 특히 ‘의학의 아버지’라 불리우는 히포크라테스는 두통, 소화장애, 신경통, 불면증 등에 향료를 가미한 와인을 처방하기도 하였다. 일찍이 서양의 의사들이 ‘와인은 나이 많은 사람들의 간호사’라는 말을 할 정도로 나이 든 사람들에게는 효과가 좋다. 와인에는 에틸 알코올, 6가지 산, 인산염 등의 염화물, 당분, 칼륨, 칼슘 등의 무기 물질이 포함되어 있다. 특히 칼슘과 칼륨은 체내에서 약알칼리성을 띠므로 산성 체질을 알칼리성으로 바꿔주어 성인병 예방에 효과가 있으며, 나이든 사람이나 여자들에게는 골다공증을 예방하는 효과가 있다고 한다. 특히 레드 와인에 많이 함유된 타닌 성분과 폴리페놀 성분 등이 순환기 질병인 고혈압과 동맥경화, 심장질환, 그리고 암을 예방하고 치료에도 도움이 된다는 의학계의 많은 보고서가 있다. 그러나 ‘술은 백약의 으뜸이지만, 만가지 병은 술에서 생긴다’는 말이 있듯이 적당할 때 약이 되지만 지나치면 결국에는 독이 된다.
와인의 보관
와인은 브랜디나 위스키 등의 증류주와 달리 막걸리와 같은 발효주로 병입 후에도 소량의 산소와 와인의 여러 성분들이 반응하면서 와인의 거친 맛이 부드러워지고, 향과 색이 좋아져 마시기 좋은 와인이 된다. 따라서 보관 여부에 따라 와인의 품질이 좋아지기도 하고 나빠지기도 한다. 일반적으로 집에 조그마한 와인 셀러라도 있으면 그곳에 넣어 보관하는 것이 가장 좋으나, 셀러를 갖추지 못한 경우에는 다음과 같은 기준으로 보관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 일반적으로 화이트 와인은 레드 와인에 비해 보관 기간도 짧고, 보관을 잘 한다고 해서 와인의 질이 크게 나아지지 않는다.
· 가격대가 싼 와인 같은 경우는 보관하는 것보다 빨리 마시는 것이 좋다.
· 중간 가격대라면 레드 와인의 경우에는 5~10년 이내, 화이트 와인의 경우는 2~3년 이내가 좋다.
· 타닌 Tannin 이 많이 함유된 카베르네 소비뇽 같은 풀 바디 품종의 와인은 다른 품종에 비해 장기 보관이 가능하다. 피노 누아 품종의 경우는 그랑 크뤼급 이상은 장기 보관이 가능하다.
· 구세계 와인의 경우에는 포도의 수확 연도가 좋고 나쁨에 따라 장기 보관 여부를 결정하는 것이 좋다.와인을 보관할 때 유의 사항
· 보통 와이너리의 지하 카브 온도는 연중 15~18도 내외로, 사계절 온도 변화가 없는 곳이다. 따라서 일반 가정집에서도 가장 온도 차이가 적고, 한 여름에도 낮은 온도를 유지할 수 있는 곳이 좋다. · 뒷 베란다 등 직사광선을 피할 수 있고 어두운 곳이 좋다. 가능한 박스에 넣어 서늘한 장소에 보관하는 것이 좋다.
· 습도가 55~75%로 유지할 수 있는 곳이 좋다. 건조한 경우 코르크가 말라서, 그 틈 사이로 와인이 증발하면서 상할 수 있기 때문에 코르크가 마르지 않도록 수평으로 눕혀서 보관해야 한다.
· 서늘하면서 통풍이 잘되고, 냄새가 나지 않는 청결한 곳으로 진동이 없는 곳이어야 한다. 병에 진동이 가해지면 숙성 속도가 빨라져 질의 저하를 가져온다.
일반 냉장고는 모터에 의해 온도를 낮추는 방식으로 진동이 있으며, 식품에 의한 냄새도 있어 와인을 장기간 보관하는 장소로서는 적합하지 않다.
· 장소와 금전적인 여유가 있다면 조그만 가정용 와인 셀러를 추천한다.
와인과 음식의 마리아주
돼지고기에 새우젓이 궁합에 맞듯이 와인도 그 와인에 어울리는 음식이 있다. 이를 프랑스에서는 결혼이라는 의미의 마리아주 mariage 라고 한다. 와인과 음식의 마리아주는 지금까지의 관습이나 상식에 의존하기보다는 본인의 취향에 따라 마시고 싶은 와인을 마시면서 즐기면 된다.
오랜 세월 유럽에서 전해 내려오는 마리아주의 원칙은 다음과 같다.
· 일반적으로 화이트 와인은 생선이나 갑각류 등 해물류의 음식과 어울리며, 레드 와인은 육류에, 로제 와인은 가벼운 음식, 스위트 와인은 디저트류가 적합하다.
이는 화이트 와인의 산 acid 은 생선의 맛과 조화를 이루기 때문이고, 레드 와인의 타닌은 육류의 지방을 중화시켜 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요리는 소스와 함께 하므로 소스에 따라 요리의 맛이 달라지기 때문에 해물류도 소스가 진한 경우에는 피노 누아 등 가벼운 레드 와인도 어울리며, 담백한 오리고기는 영한 레드 와인이나 드라이한 화이트 와인도 어울리므로, 요리 소스와 개인의 취향 등을 고려하여 선택하는 것이 좋다.
· 짠맛과 단맛 즉 단짠이 상호 보완하면서 조화를 이룬다.
짠맛이 나는 체더 치즈에 스위트 와인이나 탄닌이 강한 레드 와인, 맵고 아린 맛이 나는 블루 치즈에는 과일향이 풍부한 감미가 있는 리슬링 등 화이트 와인이 어울린다.
· 어느 한쪽이 압도해서 단맛은 보다 더 단맛으로 신맛은 보다 더 신맛으로 매칭시키는 경우이다. 케이크 등 디저트에는 스위트 와인이 어울리는 경우이다.
· 그 지역 음식에는 그 지역에서 나오는 와인을 선택하는 것이 좋다. 이탈리아의 스파케티는 이탈리아의 와인이 더 잘 어울린다.
· 한국 음식과의 마리아주는 불고기 같은 경우는 호주의 쉬라즈 와인 또는 프랑스 보르도 생테밀리옹 지방의 레드 와인이 무난하며, 삼겹살 구이같은 경우는 보르도 지역의 레드 와인이나 남부 론 지방의 레드 와인과 어울린다. 통닭 구이 같은 경우는 화이트, 로제, 레드 다 잘 어울릴 수 있다.
테이스팅
와인을 마실 때 통과 의례처럼 해야하는 의식이 있는데, 와인을 잔에 따르기 전에 누군가에게 와인을 조금 맛보게 하는 것이다.
테이스팅 과정
· 마시고자 하는 와인이 변질되지 않았는지 확인하기 위해서가 첫 번째 목적이다. 와인은 유통 과정에서나 보관 과정에서 변질되는 경우가 가끔 있으므로, 손님에게 제공하기 전에 호스트가 확인하는 것이다.
· 제공된 와인은 적정 온도로 칠링 chilling 되어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이다. 화이트 와인의 경우는 베이스가 산이므로 알맞게 칠링되어야만 와인의 제 맛을 느낄 수가 있기 때문이며, 레드 와인의 경우에는 에어링을 위해 디캔팅 decanting 을 필요로 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 주문한 와인이 본인이 경험했던 와인이나 생각했던 와인이 아닐 경우에는 반품을 할 수 없다. 왜냐하면 와인은 빈티지별로 맛이 약간씩 다르기 때문에, 상한 와인의 경우 외에는 반품이 안된다.
테이스팅 요령
· 눈으로 와인의 빛깔과 투명도, 점도 등을 확인한다.
· 코로 글라스에서 올라오는 향기를 맡는다.
· 입으로 조금 마셔 혀로 굴려가면서 와인의 맛을 느껴본다.
· 목으로 넘기면서 맛을 본다.
· 마시고 난 후의 여운을 느껴본다.
· 표현 방법에 대한 규칙이나 금기 사항이 없으므로 간단히 느끼는 대로 코멘트 해준다.
샤토 딸보 와인 이름의 유래
샤토 딸보 와인은 한국의 와인 마니아들에게 가장 친근하고 인기 있는 와인으로 알려졌으며, 격조 높은 자리에서도 손색이 없는 메독 지방의 그랑 크뤼 클라세 4등급, AOC 와인이다. 특히 이 와인은 2002년 한국 월드컵 당시, 히딩크 감독이 한국의 16강 진출이 확정된 후 “오늘은 와인 한잔 마시고 푹 자고 싶다”라는 말과 함께 1998년 빈티지의 샤토 딸보를 마셔 더욱 더 유명해진 와인이며, 대한항공에서도 한때 퍼스트 클래스에서 제공되는 와인이었다.
이렇게 친근한 샤토 딸보의 이름은 1337년부터 1453년 사이에 프랑스와 영국 사이에 벌어진 ‘백년 전쟁’의 영국군 마지막 총사령관 ‘제너럴 존 탈보트’(프랑스 발음으로는 딸보)의 이름에서 유래되었다. 아키텐 공국의 상속녀 엘레아노르가 프랑스 왕 루이 7세와 이혼하고, 앙주 백작이자 또한 노르망디 공작인 헨리 2세와 1152년 재혼하면서 보르도 지역을 포함한 남서부 지역을 지참금으로 가져갔는데, 당시 영국은 노르망디공의 지배를 받고 있었으므로, 헨리 2세가 영국 왕위에 오르자, 아키텐 지역도 자연스럽게 영국의 영토가 되었다. 영국은 영국령이 된 보르도 와인의 수입량을 늘리고, 관세도 면제해 줌에 따라, 보르도 지역 와인은 다른 지역 와인에 비해 경쟁력을 갖게 되면서, 그 이름이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13세기 말이 되자 급기야 영국령의 프랑스 영토가 프랑스 국왕의 영토보다 더 넓어졌다. 1328년 프랑스의 샤를 4세가 남자 후계자 없이 사망하자 사촌 형 필리프 6세가 왕위에 오르게 되었는데, 그렇잖아도 호시탐탐 프랑스를 노리던 영국의 애드워드 3세는 샤를 4세의 가장 가까운 남자 친척은 조카인 본인이기 때문에 필리프 6세의 왕위를 무효라고 하며 자기가 계승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참다못한 프랑스 왕 필리프 6세는 1337년에 당시 영국령이던 아키텐 지역을 무력으로 점령하고, 프랑스 내의 모든 영국 소유 영토를 몰수한다고 선언하면서 백년 전쟁의 서막이 시작되었다. 처음에는 프랑스측의 작전 실패와 영국의 장궁이라는 화살이 제노바 용병의 석궁보다 장전 속도가 빨라 영국은 한때 파리까지 점령할 정도로 전세를 유리하게 이끌었다.
그러나 잔 다르크라는 독실한 카톨릭 농가에서 태어난 17세의 처녀가 혜성처럼 나타나, ‘’라는 대천사 미카엘의 음성을 듣고서, 당시 황태자였던 샤를7세을 찾아가 군사 지원을 요청하고, 전쟁에 참여하여 눈부신 전과를 거두며, 영국군에 포위되었던 오를레앙을 탈환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1450년에는 노르망디 지역의 대부분을 회복하게 되고 이 여세를 몰아 샤를 7세는 아키텐 지역을 공격하고, 1453년 7월 프랑스는 마침내 영국군의 최후 거점인 보르도지역의 까스띠옹을 함락시켜 보르도 지역을 점령하였다. 이 때 제너럴 존 탈보트(프랑스 발음으로 딸보)가 영국군의 프랑스 원정 사령관였으며, 최후의 저항을 하다 아들과 함께 장렬한 죽음을 맞이하였다. 백년 전쟁 중 최대의 격전으로 꼽히는 까스띠옹 전투를 끝으로 지루했던 백년 전쟁이 끝을 맺게 되며, 영국은 노르망디와 아키텐 지역을 모두 잃고 현재의 영국으로 줄어들게 되었다.
딸보 장군은 오늘날 프랑스 보르도일대의 기옌느라고 하는 지역에 대영지를 소유하고 있었는데, 그는 백년 전쟁을 마무리하는 결정적인 전쟁에서 조국인 영국을 위해서 프랑스군과 싸우기도 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자신의 영지가 있는 기옌느 지방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프랑스와의 전투에서 승리해야만 했다. 딸보 장군은 평소에 자기 영지의 백성들을 잘 보살펴 주어 백성들로부터 추앙을 받았으며, 용맹하고 전술에 뛰어나 프랑스군 기사들도 전사한 그의 죽음 앞에서 경의를 표했다고 한다. 그래서 백년 전쟁의 마지막 시점에 영국군 총사령관이었던 딸보 장군을 기념하여 ‘샤토 딸보’로 명명했다고 한다.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