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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미

자미

: 내 이름의 새로운 철자

리뷰 총점9.8 리뷰 7건 | 판매지수 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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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정치 top100 1주

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3년 01월 25일
쪽수, 무게, 크기 484쪽 | 504g | 140*200*25mm
ISBN13 9791197918179
ISBN10 11979181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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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혼돈 사이에는 횃불처럼 활활 타는 여성들의 이미지가 다이크들처럼 서서 내 여정의 경계를 장식하고 구분한다. 이 친절하고도 잔혹한 여성들의 이미지가 나를 집으로 이끌었다.
--- p.13

한때 집이란 아주 먼 곳, 한 번도 가본 적 없지만 어머니의 입으로 전해 들어 잘 아는 장소였다. 어머니는 노엘스 힐의 상쾌한 아침과 뜨거운 정오에 풍기던 과일 향기를 들이마시고 내뿜으며 흥얼거렸지만, 나는 코 고는 소리와 악몽 때문에 흥건한 땀으로 가득한 할렘의 공동주택 어둠 위로 그물처럼 걸려 있는 사포딜라와 망고를 상상해야만 했다. 다만 이곳이 전부가 아니라 믿었기에 견딜 만했다. 비록 엄청난 에너지와 집중이 필요한 일이었지만, 지금 여기는 그저 잠깐 머무는 장소일 뿐이라고, 영영 생각할 장소도 아니며 나를 완전히 사로잡는 곳도, 정의하는 곳도 아니라고 상상했다. 우리가 올바르게, 또 검소하게 살아가고, 길을 건너기 전에 양옆을 확인한다면, 언젠가 우리는 다시 그 달콤한 장소로, 집으로 돌아갈 수 있으리라고.
--- p.28

어머니는 무척이나 강한 여성이었다. 그 시절 미국 백인들의 일상어에서 ‘여성’과 ‘강한’이라는 두 단어의 조합은 눈먼, 등이 굽은, 미친, 아니면 흑인 따위의 일탈적인 형용사가 뒤따르지 않는 한 불가능에 가까운 것이었다. 그러기에 내가 어렸을 적 ‘강한 여성’이라는 말은 평범한 여성, 그러니까 그저 ‘여성’과는 완전히 동떨어진 어떤 것을 의미했다. 그렇다고 ‘남성’과 동등한 것도 아니었다. 그럼 무엇이었을까? 이 제3의 신분은 무엇을 의미했을까?
--- p.31

나는 어머니의 숨겨진 분노뿐 아니라 비밀스러운 시를 비추는 거울이다.
--- p.59

내가 백인 친구들과 다르다는 것, 내가 흑인이라서가 아니라, 내가 나라서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고등학교를 다닐 때였다.
--- p.141

어쩌면 용감함이란 용감하지 못한 것에 대한 더 강렬한 두려움인지도 모르겠다.
--- p.160

내가 제너비브와 한 번도 한 적 없는 일들. 서로의 몸을 맞대고 우리가 느끼는 열정을 털어놓기. 빌리지의 레즈비언 바, 아니, 어느 바라도 가기. 리퍼 피우기. 서커스 동물들을 태우고 플로리다로 향하는 화물열차를 탈선시키기. 전 세계의 욕설들을 배우는 수업 듣기. 스와힐리어 배우기. 마사 그레이엄 무용단의 공연 보기. 펄 프리머스 만나기. 다음번에는 함께 아프리카에 가자고 하기. 그 책을 쓰기. 사랑을 나누기.
--- p.167

나는 그의 몸과 그의 욕망에 대한 나의 앎이 어디에서 나온 것인지 조금도 의문을 품지 않았다. 그날 밤 진저를 사랑하는 일은 집으로 돌아가 애초 내 것이었던, 어떻게 여태 모르고 살 수 있었는지 남몰래 생각에 잠기게 되는 기쁨을 맛보는 것과 같았다.
--- p.240

멕시코시티에서 보낸 첫 몇 주간 걸을 때 발만 내려다보던 평생의 습관이 깨지기 시작했다. 볼 것이 너무 많았고, 읽고 싶은 흥미롭고 천진한 얼굴들도 너무 많아서, 나는 길을 걸을 때 고개를 드는 연습을 했고 얼굴에 내리쬐는 뜨거운 햇빛에 기분이 좋았다. 어디를 가든 온갖 색조의 갈색 얼굴들이 내 얼굴과 마주쳤고, 거리에서 나와 같은 피부색을 수도 없이 보며 내 존재를 확인하는 일은 완전히 새롭고도 짜릿했다. 이전까지는 나 자신이 가시적 존재라 느낀 적도 없었으며 내가 눈에 보이지 않는 존재라는 사실조차도 몰랐던 것이다.
--- pp.269~270

우리, 젊고 흑인이고 괜찮았고 동성애자였던 우리는 점심시간에 속마음을 털어놓을 학교 친구나 회사 동료 하나 없이 첫 실연을 이겨내야 했다. 우리가 행복하고 비밀스러운 미소를 짓게 하는 그 이유를, 실재하는 구체적인 것으로 만들어줄 반지가 없었듯, 우리의 실험실 보고서나 도서관 문서에 얼룩지는 눈물에는 어떠한 이름이나 이유가 주어지지도, 공유되지도 못했다.
--- p.306

레즈비언이되 고정된 역할을 수행하지 않는다는 점이 우리가 서로에게 보여줄 수 있고, 또 우리를 서로 연결지어주는 단 한 가지 차이였다. 애초에 우리는 다른 세상에 속한 사람이 아니었기에, 자본주의, 탐욕, 인종주의, 계급주의 같은 다른 세상의 문제로부터 자유롭다고 믿고 싶어 했다. 그러나 그렇지 않았다. 그럼에도 우리는 마치 실제로 그런 문제들로부터 자유롭기라도 한 듯 계속 서로의 집을 찾아 함께 식사하고 삶과 자원을 나눴다.
--- pp.355~356

흑인이건 백인이건 키키건 부치건 펨이건, 우리 모두가 때로는 제각기 다른 비율로 공유하던 유일한 공통점은 우리가 여성이라는 이름 아래서 감히 서로 연결되고자 한다는 것, 그리고 여성이라는 이름을 우리의 문제가 아닌 우리의 힘으로 본다는 것이었다.
--- p.390

함께 여성인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았다. 우리는 달랐다. 함께 레즈비언인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았다. 우리는 달랐다. 함께 흑인인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았다. 우리는 달랐다. 함께 흑인 여성인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았다. 우리는 달랐다. 함께 흑인 레즈비언인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았다. 우리는 달랐다.
--- p.391

우리의 자리란 그 어떤 하나의 특정한 차이에서 오는 안정감이 아닌, 차이라는 집 그 자체라는 걸 알게 되기까지는 시간이 걸렸다. (그리고 종종 우리는 배움 앞에서 겁쟁이가 된다.) 매일같이 살아남음으로써 얻은 힘을 사용하는 법을 배운 것은, 두려움이 반드시 무력함을 가져오는 게 아니라는 것을, 우리와 반드시 같지 않아도 서로를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오랜 시간이 지난 뒤의 일이다.
--- p.392

세상에는 사라지지 않는, 우리가 의지하는 진리들이 있다. 여름철엔 해가 북쪽으로 움직인다는 것, 얼음은 녹으면 작아진다는 것, 휘어진 바나나가 더 달다는 것. 아프레케테는 나에게 나의 뿌리를, 우리가 가진 여성의 몸에 대한 새로운 정의를 가르쳐주었고, 여태까지 나는 그 정의를 배우기 위한 훈련을 해왔을 따름이었다.
--- p.432

아프레케테, 아프레케테, 우리가 여자의 힘으로 감싸여 잠들 수 있는 그 교차로까지 나를 몰아가줘. 우리의 몸이 맞닿는 소리는 모든 낯선 이들과 자매들의 기도이기에, 교차로마다 버려져 폐기된 악마들은 우리의 여정을 쫓아오지 못할 거야.
--- p.436

한때 집은 무척이나 먼 곳, 단 한 번도 가지 못한, 오로지 어머니의 입을 통해서만 알던 장소였다. 그곳이 더는 내 집이 아니게 된 뒤에야 나는 캐리아쿠의 위도를 알게 되었다. 그곳에서는 다른 여성들과 눕는 일이 내 어머니의 혈통을 타고 전해지는 일이라고 한다.
--- p.440

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보이기/감추기

“나는 삶을 필요로 하는 만큼,
확인을, 사랑을, 나눔을 필요로 하는 만큼, 흑인으로 자랐다.”


1920년대 뉴욕 할렘가에서 태어난 오드리 로드는 아프리카계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났다. 안경을 쓰지 않으면 앞을 보지 못할 정도의 심한 근시를 앓았고, 또래보다 뒤늦게 입이 트인 아이였다. 뉴욕이라는 곳에서 소수자일 수밖에 없던 어머니는 자신과 같은 처지인 오드리가 그 누구보다 세상의 규율을 빠르게 깨우쳐 적응하기를 바랐으나, 오드리는 시각장애인 교실에서 처음 글자를 배우던 때부터 세상의 규칙에 맞서 살아남기 위해 투쟁한다. 오드리는 부진아를 표시하는 고깔을 쓰고 인종차별적 의미가 내포된 ‘브라우니’ 모둠에 앉아 있거나, 흑인에게서는 백인과 다른 특유의 체취가 난다고 여기는 수녀님의 주의를 듣거나, 흑인이라는 이유로 반장 선거에서 떨어지거나, 여름휴가로 가족들과 함께 떠난 워싱턴의 아이스크림 가게에서 쫓겨난다.

부모는 애초에 인종차별을 당할 가능성을 미리 계산하지 못했다는 사실에만 죄책감을 느낄 뿐, 오드리가 세상의 질서에 잠잠히 편입하기를 요구한다. 따라서 오드리는 ‘유색인’이라는 단어의 정확한 의미도 듣지 못한 채 스스로를 ‘백인’으로 정체화하겠다고 말하거나, 흑인 순교자로 불리는 미국혁명 최초의 열사인 크리스퍼스 애턱스를 열여덟 살까지 들어보지 못하거나, 어머니의 고향이던 서인도제도의 캐리아쿠섬이 전혀 표기되지 않은 지리부도들 사이에서, 자신의 기원을, 자신의 모습을,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지 못한 채 자라난다.

그러나 오드리 로드는 감춰지는 자, 차별받는 자에 머무르지 않는다. 어릴 적 언니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결심했던 것처럼 오드리는 자신의 이야기를 직접 만들어낸다. 흑인 학생이 고작 세 명뿐이었던 헌터고등학교에서 오드리는 주변인이던 친구들과 모여 ‘낙인찍힌 자들’이라고 스스로를 정체화하고, 일생의 우정을 경험하게 한 제니를 만나며 사랑을 인식한다. 스탬퍼드의 공장에서는 진저를 만나 자신의 성정체성을 깨닫고, 자신이 처음으로 머물기를 선택한 장소인 멕시코에서는 유도라를 만나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사랑받는다. 그리고 다시 뉴욕으로 돌아와 정서적으로 깊은 타투를 남긴 뮤리얼과 아프레케테를 만나며 절망 안에서도 새로운 답을 찾아낸다. 끊임없이 자신이 존재할 장소를 찾아내고 만들어낸 오드리는 어머니의 집을 떠나 자신만의 서사를 만들고, 차별과 혐오가 가득했던 할렘 거리마저 자신의 ‘집’으로 만들며 흑인으로서, 여성으로서, 그리고 성소수자로서 기어코 자전신화를 이루어낸다.

쉴 곳이 필요할 때 쉼을 내주었던 여성들
검게 물든 모습 그대로 태양 아래로 나를 밀어내준 여성들


『자미』는 오드리 로드가 사랑한 여자들에 관한 이야기다. 흑인 페미니스트 시인이라는 수식 이전에, 오드리는 여자를 사랑하는 한 여자였다. 오드리가 처음 사랑한 여자는, 어머니와 갈등이 심하던 무렵에 만난 제니다. 방종한 여자처럼 욕설을 일삼고, 길에서 담배를 피우고, 어머니 지갑에서 돈을 훔치고, 거리를 쏘다니며 함께 노동조합가를 불러대던 제니와 오드리. 그러나 온 세계에 변화의 바람이 몰아치던 1948년, 제니는 자살한다. 몸을 맞대고 서로의 열정을 털어놓은 적도, 함께 책을 쓴 적도, 사랑을 나눈 적도 없이, 오드리는 제니를 무력하게 떠나보낸다. 이후 오드리는 집을 나와 가혹한 홀로서기를 시도한다. 첫 교제의 결과는 낙태로 이어졌고 적당한 일을 찾지 못한 오드리는 스탬퍼드로 떠난다. 그리고 이곳에서 진저를 만나 레즈비언으로서의 정체성을 처음으로 자각한다. “여자와 사랑을 나눈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도 전혀” 모르던 오드리는 “그 일이 일어나길 바란다는 것, 그리고 그것은 내가 여태껏 해본 그 어떤 일과도 다르다는 것”을 어렴풋하게 느낀 채, 파도처럼 몰아치는 기쁨과 만족감을 만끽한다. 그러나 관계를 진지하게 여기지 않는 진저를 보며, 오드리는 그 누구도 사랑하지 않고 그 누구와도 가까워지지 않겠다고 마음먹는다.

그 결심은 낯선 소리와 냄새, 경험으로 이뤄진 멕시코의 쿠에르나바카에서 연상의 여성 유도라를 만나며 깨지고 만다. 매카시즘을 피해 멕시코로 이주한 기자였던 유도라는 “생각하느라 평생을 보낸 사람, 내가 무슨 말을 하건 나를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었고, 유도라의 집에서 한없이 대화를 나누며 여러 날을 보내던 오드리는 그를 끌어안고 사랑을 나누고 싶다고 처음으로 제안한다. 그 제안에 유도라는 이렇게 답한다. “너는 정말 아름답고 또 갈색이야.” 자신이 “있고 싶었고 또 선택한 장소에 와 있다”는 감각, “사회적으로도 뚜렷한 윤곽을 지닌 확실한 존재”라고 느끼게 해준 멕시코에서 오드리는 사랑을 통해 스스로를 긍정한다.

사랑의 전지전능함을 알려준 여자는 다시 돌아간 뉴욕에서 만난 뮤리얼이다. 오드리가 일했던 공장의 선임자이자 시를 썼던 뮤리얼. 처음 그를 만난 순간부터 오드리는 뮤리얼이 “내 말은 물론이고 말로 표현할 수 없이 무거운 고통 때문에 말하지 못한 수많은 것들마저도 그 어떤 설명도 없이 다 이해하는 것 같았다”고 느낀다. 뮤리얼과 주고받던 편지에는 그들이 품은 허기와 고립감, 그러나 유머러스하면서도 선명하게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담겨 있었고, 그들은 서로의 고독은 물론 꿈조차 서로 닮아 있다고 확신한다. 함께 고양이 밥을 주고, 오래된 가구를 거리에서 주워 오고, 과일과 술을 슬쩍하고, 사랑을 나누며, 오드리는 자신의 삶 깊은 곳까지 뮤리얼이 스며들도록 공간을 내어준다. 그들은 그들만의 방식으로, 그들의 세계를 배열하며 서로에게 확실성과 마술, 근면한 노력에서 오는 경이를 건네주었고, 오드리는 이 모든 것이 사랑하는 이와 관계 맺을 때 오가는 정당한 감각임을 알게 된다. 동시에 오드리는 뮤리얼이 자신이 만든 창조물이 아님을 깨닫는다. 뮤리얼은 언제나 자기 자신이었음을, 그가 형성되는 과정에 자신이 도움을 보탰을 뿐임을, 뮤리얼이 오드리에게 그랬듯이.

“그곳이 더는 내 집이 아니게 된 뒤에야
나는 캐리아쿠의 위도를 알게 되었다.”


『자미』는 오드리 로드가 여성들과의 관계 안에서 정체성을 탐구하며 ‘집’을 찾아가는 여정에 관한 글이기도 하다. 어릴 적, 오드리가 꿈꿨던 집이란 “아주 먼 곳, 한 번도 가본 적 없지만 어머니의 입으로 전해 들어 잘 아는” 서인도제도의 섬이었다. 모든 것에 관한 노래가 있는 곳, 흰눈썹꿀새가 재바르게 날던 곳, 어머니 린다의 할머니인 마 마리아가 노엘스 힐 기슭에서 파도가 찰싹이는 카리브해를 내려다보며 알려준 것들을 린다의 어머니인 마 리즈가 이어받던 곳. 그리고 짙은 라임 향기 속에서 어머니 린다가 태어나고 “바다로 나간 남편 없이도 잘 살아남은 여성들, 남편이 돌아오지 않더라도 서로를 사랑하게” 된 여성들의 섬. “캐리아쿠 여성들이 서로를 사랑하는 방식은 그레나다의 전설이며, 그들의 힘과 아름다움도 마찬가지다.” 캐리아쿠를 꿈꾸며 자란 어머니처럼 오드리는 그레나다를 꿈꾸며 자랐고, 어머니의 말을 이루던 그레나다 방언은 오드리의 언어를 이루었으며, 오드리는 어머니처럼 “강한 여성”이 된다.

오드리는 “사랑받으려고 승인받으려고 노력”하지 않았다. “그저 살아 있기 위해” 또는 “인간으로 남아 있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강한 여성’이 되어야 했다. 그러나 1950년대 뉴욕의 빌리지에서도, 흑인 레즈비언이 강한 여성이 되기란 녹록지 않았다. 흑인 레즈비언은 함께 뭉친다고 해서 딱히 이득을 얻을 리 없는 ‘이국적인 시스터 아웃사이더’였고, 특히 오드리처럼 펨으로도 부치로도 역할을 정하지 않은 존재가 허용되는 장소를 찾기란 불가능한 일이었다. 게다가 레즈비언 바에서 오드리는 “벽장 속 대학생”이자 “투명인간 취급”을 받았고, 헌터대학교에서는 “벽장 속 레즈비언”이자 “침입자 취급”을 받았다. 그 당시 여성들 간의 진정한 연결을 위해 실제로 노력을 기울인 사람은 흑인이건 백인이건 레즈비언들이 유일했음에도 오드리는 그 사이에서 괴리감을 겪었고, 흑인이 아니었던 뮤리얼과의 관계에서도 오드리는 극복할 수 없는 차이를 느꼈다. 오드리와 같은 이들에게는 ‘장소’가, ‘집’이 주어지지 않았으므로, 이들은 “공간이, 위로가, 고요가, 미소가, 비판하지 않는 태도가 있는 곳이라면 가리지 않고 매달렸다”.

그리고 어느 슬프고 외로운 봄날, 오드리는 마침내 “정서적인 타투로서” 삶에 또 다른 흔적을 남긴 아프레케테를 만난다. 아프레케테는 오로지 “나 자신의 삶밖에 없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 서로를 가두지도 질식시키지도 않으며 불길을 나눌 수 있는 사람, ‘태고의 시간, 최대한 먼 곳, 그러나 집에서 가까운 곳, 그래서 가장 진정한 것들을 가지고 온 사람’, 여성의 몸에 대한 새로운 정의와 오드리의 뿌리를 다시금 알려준 사람, 그럼으로써 수많은 꿈을 함께 나눈 사람이었다. 고동치는 감정의 격랑을 헤쳐온 오드리는 아프레케테를 통해 자신의 정서적 뿌리를 되새기고, 절망에 대한 답으로서 사랑을 다시금 인식하며 오롯이 자신의 힘으로 자신의 ‘집’을 짓기 시작한다. 그와 보낸 시간은 비록 짧았지만, 오드리는 아프레케테와 헤어지고, 개선되었고, 더 나은 교환을 할 수 있도록 스스로를 다시금 빚어낸다. 그는 새 아파트에 가져갈 소금 몇 상자와 새 빗자루를 사고, 새로운 일자리를 찾으며 새로운 방식으로 새 생활을 살아간다. 동시에 검은 피부를 가졌던 어머니의 뿌리에서 이어진 여성들의 전통을 이어가면서. 그리고 그에게 “본질을 불어넣어준 여자들을 언어로써 다시금 창조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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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드리 로드는 인종, 계급, 젠더에서 모두 비주류 쪽의 카드를 가지고 태어났다. 보통 이런 경우 가장 시급한 것은 먹고사는 문제라고 생각하기 마련이지만 그렇지 않다. 소수자들에게 존재의 의미를 재규정하는 언어를 찾는 일은 생존의 바닥을 다지는 일이기 때문이다. 소수자로 살아간다는 건 눈에 띄고 싶을 때는 보여지지 않다가 눈에 띄고 싶지 않을 때는 누구보다도 도드라지게 드러나는 삶의 아이러니를 견뎌내야 한다는 걸 의미한다.

다행스럽게도 오드리 로드는 스스로 ‘낙인찍힌 자’라고 부르는 것을 겁내지 않는 유별난 친구들과 함께할 수 있었다. 이들은 유색인종, 공산주의자, 다이크 등 그 시대의 가장 불온한 이름으로 불린 이들이었고 그에 걸맞는 삶을 기꺼이 살아갔다. 이렇게 살 수 있었던 뿌리에는 조금의 실수도 용납될 수 없는 세계에서 꼿꼿하게 자기 자신과 가족을 지켜낸 어머니의 존재가 있었다. 보고도 못 본 척하되 아무것도 잊지 않는 어머니의 방어술은 뿌리를 옮겨온 이들이 새로운 땅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이었다. 하지만 이것은 매일 조금씩 자신을 죽여야만 가능한 일이다. 소수자들은 적응할 수 없는 것을 적응하기 위해 애쓰면서 경험과 지식이 분리된 세계에 살아간다. 그것은 무지개가 되지만 종종 올가미인 ‘우리’를 만들어낸다.

“침묵은 우리를 지켜주지 않는다.” “지배자의 연장으로는 지배자의 집을 부술 수 없다.” 이 두 문장은 시간의 흐름 속에서도 꺾이지 않는 오드리 로드의 불굴의 정신을 담고 있다. 《자미》는 그 정신의 뿌리를 알려준다. 이 책에는 저자에게 흔적을 남긴 아름답고 강한 여자들에 대한 이야기로 가득하다. 자신을 죽이지 않으면서 ‘우리’를 다시 짓는 방법을 알고 싶다면, 여자를 사랑하고 싶다면, 여자인 자신을 사랑하고 싶다면, 바로 이 책을 읽어야 한다. 지금 당장.
- 권김현영 (여성주의 연구활동가, 『여자들의 사회』 저자)
오드리 로드는 삶의 모든 순간을 기억하고 있는 것만 같다. 가능한 일일까? 가만히 오드리 로드의 책을 읽고 있으면 내가 인간이라는 것을, 또한 지구에 태어나 인간으로서 인생이라는 것을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강렬하게 자각하게 된다. 살아 있으므로, 살아가고 있으므로, 우리는 이 책의 빼곡한 문장이 담고 있는 의미를 이해할 수 있다. 오드리 로드는 우리가 살아 있다고, 인생은 살아 있는 자에게 주어지는 것이라고 『자미』의 모든 문장을 통해 말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발 딛고 있는 이곳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잊지 않고 알려주는 이 또한 오드리 로드 자신이다. 분명히 고백하자면, 나는 이토록 자세하고 내밀하고 풍성하게 삶을 기억하지도 기록하지도 못한다. 그러나 내게도 어둡고 빛나며 복잡하고 단순명료한 순간이 삶으로써 언제나 나와 함께했음을 나는 오드리 로드를 통해서야 가까스로 믿게 되었다.
- 유진목 (시인, 『연애의 책』 저자)
‘언어와 시와 사랑과 좋은 삶’이 한데 버무려진 이야기를 오래 꿈꿨다. 바닷가에 발을 조금 적시고 마는 그런 사랑 말고 파도에 휩쓸려 정수리까지 젖어버려서 꼴이 말이 아니게 되는 신나는 사랑. 사랑이 끝나도 시로 남아서 영원의 축복을 누리는 사랑. 자발적인 헌신과 상스러운 섹스가 있지만 나쁜 남자는 등장하지 않는, 마음이 놓이는 사랑 이야기. 『자미』에서 이 모든 서사의 욕망이 충족되었다. 오드리 로드는 흑인으로 사는 것만으로도, 흑인이자 여성으로 사는 것만으로도, 흑인이자 여성이자 동성애자로 사는 것만으로도 형벌이던 시대를, 거짓 자아가 아닌 자기 자신으로 위엄 있게 살아낸다. 사랑과 글쓰기의 힘이다. 그래서 그의 자전신화는 상호 탐구와 존재 연결에 관한 보고서다. 얼마나 멋진가. 추방된 존재의 서사가 마침내 사랑의 역사로 재배열되는 삶은. 만나고 헤어질 때마다 더 큰 우주로 팽창하는 그의 생애는 별빛 같은 언어를 쏟아낸다. 첫 장부터 마지막까지 찬탄과 동경을 담아 숨죽이며 읽었다. 시시하게 살기 싫지만 고통이 두려워 잔뜩 움츠린 내 삶에 그의 이름을 “정서적인 타투”로 새기고 싶다. 사랑, 여성, 글쓰기로 된 구축물 『자미』는 온갖 난관에도 불구하고 자신으로 살아가려는 이들에게 미래의 피난처가 될 것이다.
- 은유 (작가, 『크게 그린 사람』 저자)
『자미』는 오드리 로드의 삶을 ‘관계’ 중심으로 서술한 책이다. 이 관계를 촘촘히 채운 이들은 여성들이다. 어머니와 자매처럼 가족관계에서 시작해 수많은 친구와 연인 등으로 뻗어나간다. 로드가 자전적 이야기를 통해 우리에게 펼쳐 보여준 그 관계의 지도를 따라가다 보면, 1930년대부터 1950년대까지 뉴욕의 흑인·여성·동성애자의 삶에 대한 일종의 문화기술지로도 읽힌다. ‘자매들’과의 관계는 로드를 먹이고 입히고 재우며 생존을 위한 단단한 의식주 역할을 하는 동시에, 그 무엇보다 로드에게 정서적으로 사랑이 충만한 일상이 가능하도록 해줬다. 한편, 이 관계들은 굵직한 상처와 커다란 상실감도 남겼다. 다시 말해 『자미』는 이 관계들에 대해 로드가 보내는 사랑의 언어이며 동시에 애도의 언어로 가득하다. 로드에게 영양분을 준 만큼 상처도 준 관계들이지만 그 상처마저도 “반향과 힘을 담은 정서적인 타투로서” 로드의 삶에 흔적을 남겼다. 서로를 북돋아주며 성장한 관계들 속에서 ‘나’는 더 단단해졌다. 사랑의 힘을 믿지 않을 수 있을까. 세상의 약자와 소수자가 사랑하기를 방해하는 권력의 한복판에서 서로의 사랑을 굳건히 믿는 마음만큼 질긴 저항도 없다.
- 이라영 (예술사회학자, 『말을 부수는 말』저자)
흑인 레즈비언 페미니스트의 여성 운동 연대기가 펼쳐지리라 예상했던 나는 클리토리스 이야기가 나오는 프롤로그를 읽을 때부터 조금 당혹했다. 『자미』는 400페이지가 훌쩍 넘는 분량 내내 여성에 대한 사랑 이야기로 가득했고 그 사랑은 운동의 동지나 자매로서의 사랑이 아니라 쏟아지는 햇살 아래에 몸을 온전히 드러낸, 침대 위에서 기분 좋게 엉켜 있는 두 여자의 땀에 젖은 몸에서 흘러나오는 그러한 사랑이다. 책을 다 읽고 나니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운동과 투쟁의 영역이 키스와 관능과 성애와는 거리가 먼 것이라는 메마른 상상은 언제부터 왜 하게 되었던 걸까? 오드리 로드가 『시스터 아웃사이더』에서 말했듯, 성애는 “영적인 것과 정치적인 것을 이어주는 다리”이며 “우리 안의 가장 깊고 강력하고 풍요로운 것을 신체적·감정적·심리적으로 표현하고 다른 사람과 나누는 것, 즉 가장 깊은 의미에서의 사랑을 향한 열정”이다. 이 열정은 힘과 앎과 연결의 원천이 되어 우리를 행동하게 만든다. 나와 타자를 섞어주고 나와는 너무나 다른 그를 알아보기 위해 스스로 뻗어나가 자라게 만든다. 그런 점에서 키스가 없다면 운동도 없다. 아아, 오드리 로드처럼 쓰고 오드리 로드처럼 살고 싶다. 『자미』는 지구상에서 가장 섹시하고 가장 정치적인 자전신화다.
- 하미나 (작가, 『미쳐있고 괴상하며 오만하고 똑똑한 여자들』저자)
흑인 여성에 대한 사회의 폭력과 혐오를 목격할 때마다 나는 오드리 로드에게 의지한다. 오드리 로드가 그러한 공격들에 어떻게 응전할지 궁금하다. 오드리 로드의 우아함과 힘, 맹렬한 지성은 모든 흑인 여성을 옹호해내는 데 탁월한 능력을 발휘한다.
- 록산 게이 (작가, 『나쁜 페미니스트』『헝거』 저자)
《자미》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책이다. 오드리 로드의 아웃사이더 성향에 관한 서술은 닫혀 있던 내 마음을 열게 해주었다.
- 앨리슨 벡델 (작가, 『펀 홈』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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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매 포토리뷰 자미 - 오드리 로드의 자전신화 내용 평점4점   편집/디자인 평점4점 YES마니아 : 로얄 스타블로거 : 블루스타 s*****0 | 2023.05.22 | 추천0 | 댓글0 리뷰제목
  <자미>는 우리 시대 페미니스트들의 가장 중요한 원천이자 목소리인 오드리 로드의 자전신화로, 이 기념비적인 인물이 우리가 익히 아는 모습이 되기까지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자미(zami)'는 서인도제도의 캐리아쿠섬에서 친구이자 연인으로서 함께 일하는 여성을 일컫는 단어다. 서인도제도 출신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난 시인 오드리 로드는 사실과 허구의 경계를 아우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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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미>는 우리 시대 페미니스트들의 가장 중요한 원천이자 목소리인 오드리 로드의 자전신화로, 이 기념비적인 인물이 우리가 익히 아는 모습이 되기까지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자미(zami)'는 서인도제도의 캐리아쿠섬에서 친구이자 연인으로서 함께 일하는 여성을 일컫는 단어다. 서인도제도 출신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난 시인 오드리 로드는 사실과 허구의 경계를 아우르는 자기 정체성의 기원에 관한 이야기를 뜻하는 '자전신화'라는 새로운 장르의 글에서, '자미'라는 단어로 스스로를 정체화하고 자신에게 흔적을 남겼던 수많은 여성으로부터 자신이 탄생할 수 있었음을 밝힌다. 매카시즘이 득세하던 1950년대 뉴욕 할렘은 흑인 여성이자 레즈비언이었던 오드리 로드에게 결코 아름다운 배경이 아니었지만, 그 시공간 속에서도 오드리 로드는 불온한 이름으로 불린 자신의 낙인을 오히려 서사의 시작으로 삼고, 꼿꼿하고 기꺼이 자신의 삶을 살아내며 이를 기록한다.

 

 

이 책의 저자인 오드리 로드는 "나와 혼돈 사이에는 횃불처럼 활활 타는 여성들의 이미지가 다이크들처럼 서서 내 여정의 경계를 장식하고 구분한다. 이 친절하고도 잔혹한 여성들의 이미지가 나를 집으로 이끌었다"고 말한다. 뿐만 아니라 오드리 로드는 "영원토록 여성, 내 몸은 더 늙고 오래되고 현명한 다른 삶들의 살아 있는 재현이다"라고 이야기한다.

 

오드리 로드는 어린 시절 내내 집이란 사람들이 여태까지 지도 위에 포착해내지 못한, 목을 졸라 교과서의 페이지 사이에 가두지 못한, 여기가 아닌 어느 다정한 곳일 거라고 속으로 생각했다고 말한다. 그곳은 오로지 우리만의 공간, 나무에 매달린 블루고와 빵나무 열매, 너트메그와 라임과 사포딜라, 통카콩, 그리고 붉고 노란 파라다이스 플럼 사탕으로 가득한 나만의 비밀스러운 낙원이었다는 오드리 로드의 글이 눈길을 끈다.

 

"한때 집이란 아주 먼 곳, 한 번도 가본 적 없지만 어머니의 입으로 전해 들어 잘 아는 장소였다. 어머니는 노엘스 힐의 상쾌한 아침과 뜨거운 정오에 풍기던 과일 향기를 들이마시고 내뿜으며 흥얼거렸지만, 나는 코 고는 소리와 악몽 때문에 흥건한 땀으로 가득한 할렘의 공동주택 어둠 위로 그물처럼 걸려 있는 사포딜라와 망고를 상상해야만 했다. 다만 이곳이 전부가 아니라 믿었기에 견딜 만했다. 비록 어멍난 에너지와 집중이 필요한 일이었지만, 지금 여기는 그저 잠깐 머무는 장소일 뿐이라고, 영영 생각할 장소도 아니며 나를 완전히 사로잡는 곳고, 정의하는 곳도 아니라고 상상했다. 우리가 올바르게, 또 검소하게 살아가고, 길을 건너기 전에 양옆을 확인한다면, 언젠가 우리는 다시 그 달콤한 집으로 돌아갈 수 있으리라고."

 

오드리 로드는 어머니는 무척이나 강한 여었이었고, 그 시절 미국 백인들의 일상어에서 여성과 강한이라는 두 단어의 조합은 눈먼, 등이 굽은, 미친, 아니면 흑인 따위의 일탈적인 형용사가 뒤따르지 않는 한 불가능에 가까운 것이었다고 말한다. 그러기에 로드리 로드는 자신이 어렸을 적 강한 여성이라는 말을 평범한 여성, 그러니까 그저 '여성'과는 완전히 동떨어진 어떤 것을 의미했고, 그렇다고 '남성'과 동등한 것도 아니었다고 이야기한다. 뿐만 아니라 오드리 로드는 자신은 어머니의 숨겨진 분노 뿐 아니라 비밀스러운 시를 비추는 거울이라고 말한다.

 

"내 어머니가 다른 여자들과 달랐기에, 때로 나는 남들과 다르다는 데서 오는 기쁨과 특별함 같은 긍정적인 감정을 느꼈다. 그러나 때로는 같은 이유로 고통을 느끼기도 했는데, 나는 어린 시절 그것이 내가 느끼는 슬픔 대부분의 원인이라 생각했다. 내 어머니가 다른 어머니들과 같았더라면 남들이 날 더 좋아했을지도 몰라. 그러나 어머니가 남들과 다른 건 계절 같은 건, 추운 날씨 같은 것, 6월의 안개 낀 밤 같은 것이었다. 이유도 계기도 필요치 않은, 원래 그런 것이었다."

 

오드리 로드는 고등학교를 다니던 4년간 근근이 생계를 유지한다는 것은 얼마나 빈약하기 짝이 없는지, 그러나 그런 생계가 자신의 생존에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알게 되었다고 말한다. 오드리 로드는 그 시절을 떠올릴 때마다 마치 수용소 쓰레기더미에서 먹을 만한 것을 골라내면서 이 쓰레기 없이는 굶어 죽으리라는 걸 아는 자신의 모습이 담긴 오래된 사진을 보는 기분이라고 이야기한다. 오드리 로드는 자신이 짝사랑하던 이들을 포함해 선생님들은 대부분 극도의 인종차별을 일삼았고, 사람과의 접촉에 있어 자신이 의식하던 욕망에 비해 얼마나 미약한 정도로 만족해야 했는지에 대해 말한다. 그리고 용감함이란 용감하지 못한 것에 대한 더 강렬한 두려움이라고 이야기하는 오드리 로드의 글이 인상적이다.

 

"내가 백인 친구들과 다르다는 것, 내가 흑인이라서가 아니라, 내가 나라서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고등학교 다닐 때였다."

 

뿐만 아니라 이 책에서 오드리 로드가 자살로 생을 마감한 제너비브와 함께 하지 못했던 일들을 써내려간 글이 깊은 여운을 남긴다.

 

"내가 제너비브와 한 번도 한 적 없는 일들. 서로의 몸을 맞대고 우리가 느끼는 열정을 털어놓기. 빌리지의 레즈비언 바, 아니, 어느 바라도 가기. 리퍼 피우기. 서커스 동물들을 태우고 플로리다로 향하는 화물열차를 탈선시키기. 전 세계의 욕솔들을 배우는 수업 듣기. 스와힐리어 배우기. 마사 그레이엄 무용단의 공연 보기. 펄 프리머스 만나기. 다음번에는 함께 아프리카에 가자고 하기. 그 책을 쓰기. 사랑을 나누기."

 

"하얀 관 위에 흙덩어리가 공허하게 툭툭 떨러지는 소리. 죽음이 핌묵할 이유라고 생각지 않는 새의 울음소리. 검은 옷을 입고 외국어로 뭐라고 읊어대는 남자. 자살한 사람을 위한 빈 구덩이는 없다. 여자들이 흐느끼는 소리. 바람. 봄의 최전선. 풀이 자라는, 꽃이 피어나는, 저 먼 나무들이 가지를 뻗는 소리. 하얀 관 위에 부딪히는 소리."

 

오드리 로드는 오직 자신만의 눈으로, 자신만의 힘으로 싸우리라는, 젊은이 특유의 무모하면서도 강력한 맹세를 했으나, 이는 결국 어머니가 했던 맹세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고 말한다. 오드리 로드는 집을 떠난 뒤 자신을 살아가게 해주는 다른 여성들을 만났으며, 그들로부터 다른 사랑을 배웠다고 이야기한다.

 

"나는 열일곱 살이었다.

결의에 차 벌벌 떨며 부모님의 집에서 나온 뒤, 나는 우리가 머무는 이 나아와 지금까지와는 다른 관계를 만들어가기 시작했다. 어머니의 망명지였으나 이제는 어머니가 아는 것보다 거리 구석구석을 더 잘 알게 된 이 나라에서 나는 그저 쓰라린 감정이 아니라 생산적인 소득을 얻고자 마음먹었다. 그럼에도 어머니가 알고 가르쳐주었던 것들 덕분에 나는 이곳에서 상상 이상으로 잘 살아남을 수 있었다."

 

오드리 로드는 낯선 동네에서 진저라는 여성을 만나고, 사랑을 나누는 것이 자신을 넘어선 어떤 과업이라고 생각했으나 실은 그저 손을 뻗어 욕망이 이끌게 내버려 두는 것이었다고 말한다.

 

"나는 그의 몸과 그의 욕망에 대한 나의 앎이 어디에서 나온 것인지 조금도 의문을 품지 않았다. 그날 밤 진저를 사랑하는 일은 집으로 돌아가 애초 내 것이었던, 어떻게 여태 모르고 살 수 있었는지 남몰래 생각에 잠기게 되는 기쁨을 맛보는 것과 같았다."

 

오드리 로드는 멕시코시티에서 보낸 첫 몇 주간 걸을 때 발만 내려다보던 평생의 습관이 깨지기 시작했다고 말한다. 오드리 로드는 볼 것이 너무 많았고, 읽고 싶은 흥미롭고 천진한 얼굴들도 너무 많아서, 길을 걸을 때 고개를 드는 연습을 했고 얼굴에 내리쬐는 뜨거운 햇빛에 기분이 좋았다고 이야기한다. 오드리 로드는 어디를 가든 온갖 색조의 갈색 얼굴들이 자신의 얼굴과 마주쳤고, 거리에서 자신과 같은 피부색을 수도 없이 보며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는 일은 완전히 새롭고도 짜릿했다고 말한다. 뿐만 아니라 오드리 로드가 멕시코에서 유도라라는 여성을 만난 이야기를 건네어 흥미롭다.

 

"멕시코에 있는 나는 더 이상 투명인간이 된 기분을 느끼지 않았다. 거리에서, 버스에서, 시작에서, 광장에서, 그리고 특히 유도라의 시선 속에서, 때로 유도라는 한쪽 입꼬리만 올려 웃으며 말없이 내 얼굴을 눈으로 훑었다. 그럴 때면 꼭 나를 바라본 사람,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처음으로 보아준 사람이 그인 것만 같았다. 그는 나를 바라보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나를 사랑했으며, 내가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그것은 우연의 일치가 아니었다."

 

오드리 로드는 젊고, 흑인이고, 동성애자로 살아가는 게 어떤 기분이었는지 기억한다고 말한다. 오드리 로드는 대체로 자신과 진실과 빛과 열쇠를 지니고 있다는 기분이 들어 괜찮았지만, 그럼에도 대체로 순전히 지옥 같았다고 이야기한다.

 

"우리, 젊고 흑인이고 괜찮았고 동성애자였던 우리는 점심시간에 속마음을 털어놓을 학교 친구나 회사 동료 하나 없이 첫 실연을 이겨내야 했다. 우리가 행복하고 비밀스러운 미소를 짓게 하는 그 이유를, 실재하는 구체적인 것으로 만들어줄 반지가 없었둣, 우리의 실험실 보고서나 도서관 문서에 얼룩지는 눈물에는 어떤 이름이나 이유가 주어지지도, 공유되지도 못했다."

 

"나는 동성애자인 동시에 흑인이었다. 후자는 바꿀 수 없는 사실이었다. 갑옷이고, 망토이고, 벽이었다. 종종, 흑인이 아닌 다른 레즈비언들과 대화를 나누다가 이런 화제를 꺼내고 싶다는 악취미가 들 때마다, 나는 어떤 의미로 내가 동성애자들의 성스러운 연대, 처음부터 내게 충분치 않게 느껴지던 그 연대를 깨뜨리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오드리 로드는 여태까지 자신이 알던 몇 안 되는 레즈비언은 전부 자신의 삶의 기존 맥락 속에서 만난 여성들이었다고 말한다. 학교건, 직장이건, 시건, 성적 지향을 넘어서는 다른 관심사로 이뤄진 세계를 공유하는 사이었다. 오드리 로드는 우리 모두 여성을 사랑한다는 사실은 다른 이유로 친해지고 마음을 나누게 된 뒤에야 할 수 있었다고 이야기한다.

 

오드리 로드는 "레즈비언이되 고정된 역할을 수행하지 않는다는 점이 우리가 서로에게 보여줄 수 있고, 또 우리를 서로 연결지어주는 단 한가지 차이었다"고 말한다. 뿐만 아니라 오드리 로드는 "애초에 우리는 다른 세상에 속한 사람이 아니었기에, 자본주의, 탐욕, 인종주의, 계급주의 같은 다른 세상의 문제로부터 자유롭다고 믿고 싶어 했다. 그러나 그렇지 않았다. 그럼에도 우리는 마치 실제로 그런 문제들로부터 자유롭기라도 한 듯 계속 서로의 집을 찾아 함께 식사하고 삶과 자원을 나눴다"고 이야기한다.

 

오드리 로드는 흑인이건 백인이건 키키건 부치건 펨이건, 우리 모두가 때로는 제각기 다른 비율로 공유하던 유일한 공통점은 우리가 여성이라는 이름 아래서 감히 서로 연결되고자한다는 것, 그리고 여성이라는 이름을 우리의 문제가 아닌 우리의 힘으로 본다는 것이라고 말한다.

 

"함께 여성인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았다. 우리는 달랐다. 함께 레즈비언인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았다. 우리는 달랐다. 함께 흑인인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았다. 우리는 달랐다. 함께 흑인 여성인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았다. 우리는 달랐다. 함께 흑인 레즈비언인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았다. 우리는 달랐다."

 

"우리의 자리란 그 어떤 하나의 특정한 차이에서 오는 안정감이 아닌, 차이라는 집 그 자체라는 걸 알게 되기까지는 시간이 걸렸다. 매일깥이 살아남음으로써 얻은 힘을 사용한느 법을 배운 것은, 두려움이 반드시 무력함을 가져오는 게 아니라는 것을, 우리와 반드시 같지 않아도 서로를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오랜 시간이 지난 뒤의 일이다."

 

책 <지미>에서 오드리 로드는 세상에서 사라지지 않는, 우리가 의지하는 진리들이 있다고 말한다. 여름철엔 해가 북쪽으로 움직인다는 것, 얼음을 녹으면 작아진다는 것, 휘어진 바나나가 더 달다는 것, 아프레케테는 자신에게 뿌리를, 우리가 가진 여성의 몸에 대한 새로운 정의를 가르쳐주었고, 여태까지 자신은 그 정의를 배우기 위한 훈련을 해왔을 따름이었다는 오드리 로드의 글이 깊은 여운을 남긴다. 오드리 로드는 자미, 친구이자 연인으로서 함께 일하는 여성들을 부르는 캐리아쿠식 이름, 우리는 그 전통을 이어간다고 이야기한다.

 

"내가 사랑한 여자들은 저마다 나에게 자신의 흔적을 남겼다. 나 자신의 일부면서도 나와는 별개인, 너무나도 다른 나머지 그를 알아보기 위해서 자라나고 뻗어나가야 했던 귀중한 일부분을 내가 사랑했던 자리에, 그렇게 자라다가 우리는 헤어짐에 이르렀다. 모든 것이 시작되는 자리다. 또 다른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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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리뷰 내 몸은 더 늙고 오래되고 현명한 다른 삶들의 살아 있는 재현 내용 평점5점   편집/디자인 평점5점 스타블로거 : 골드스타 p*****s | 2023.02.20 | 추천0 | 댓글0 리뷰제목
  지난 주 금요일 아침에 마지막 장을 넘겼다. 밤에 읽으면 밤샘한다는 친구의 경험을 타석 삼아 아껴 읽으려한 자구책이었다. 오늘 아침이 어찌나 허전하던지, 빛이 다 사라진 계절이 닥치는 듯했다. 반가운 북토크 영상이 있어서 덕분에 속을 채워 집을 나섰다.   https://www.youtube.com/live/95O6bKYxo64?feature=share   프란츠 파농의 <검은 피부 하얀 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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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 금요일 아침에 마지막 장을 넘겼다. 밤에 읽으면 밤샘한다는 친구의 경험을 타석 삼아 아껴 읽으려한 자구책이었다. 오늘 아침이 어찌나 허전하던지, 빛이 다 사라진 계절이 닥치는 듯했다. 반가운 북토크 영상이 있어서 덕분에 속을 채워 집을 나섰다.

 

https://www.youtube.com/live/95O6bKYxo64?feature=share

 

프란츠 파농의 검은 피부 하얀 얼굴을 읽고 자신의 식민지성, 백인 우월주의, 흑인공포증을 생각해본다던 먼 곳의 친우의 글이 내내 머릿속을 맴돌았다. <자미를 추천했는데 여전히 오드리 로드는 자신에게 신인류 같아서, 읽기 싫기도 너무나 읽고 싶기도 하다고.

 

내 무심함은 주로 선택과 고민을 얄팍하게 한다. 불행과 폭력에 신경 쓸 시간이 없어! 하는 오드리 로드식(?) 무심함은 사랑을 기록하여 이런 엄청난 작품을 만들었다. 왜 표지가 이토록 다채롭고 풍성하고 찬란해야했는지 읽고 나니 다 이해된다. 아름답다.

 

이벤트로나 기억되는 현실의 사랑은 참 볼품이 없다. 문자에 온갖 색조가 묻어 있는 책을 번역이란 생각 없이 읽을 수 있었기 때문에, 실패 없는 황홀한 몰입이 내내 즐거웠다. 빨려 들어갈 듯한 시간 동안에는 나도 잠시 섬 여자처럼 빛에 타고 볕에 데워졌다.

 

이 여성들이 가진 아프리카인다운 예리함에는 보다 부드러운 모서리가 있고, 그들은 비가 내리는 따뜻한 거리를 오만하면서도 점잖은 태도로 휘젓고 다니며, 나는 힘과 취약함 속에서 그 모습을 떠올린다.”

 

여행을 가고 싶지만 이미 잔뜩 쌓아둔 탄소마일리지가 어마어마해서 괴롭고, 오래 전 가려다 예방백신접종에 놀라 그만 둔 아프리카를, 아니 어디든, 이번 생에 다시 향해볼지 모르겠다. 이곳에서 고향을 찾지 못한 나는 어디에 가든 이방인일 뿐이겠지만,

 

어디를 가든 온갖 색조의 갈색 얼굴들이 내 얼굴과 마주쳤고, 거리에서 나와 같은 피부색을 수도 없이 보며 내 존재를 확인하는 일은 완전히 새롭고도 짜릿했다.”

 

음식에 대한 호기심은 사랑에 대한 관심과 같고 삶에 대한 간절함과 같다던 친구의 말도 떠올랐다. 처음 들었을 땐 별 감흥이 없었는데, 식욕이 없어서 혈당 조절 약처럼 식사하던 몇 달 간의 고역, 사랑으로 사람을 바라보는 일도 힘들었고, 삶의 민낯은 무기력으로만 해석되었다.

 

절구 바닥에서 으깨지는 향신료에 절굿공이가 부딪치는 낮은 소리와 함께 소금과 후추는 마늘고 셀러리 잎에서 배어나는 노란 즙을 흡수했다.”

 

꽃다발 장미에게 다시 뿌리가 날까 심어보았다. 딸기 모종도 곧 옮겨 심어야 한다. 파릇파릇 향기 진한 허브들도 심어야겠다. 키우고 따고 자르고 으깨고 먹는 그 시간을 상상하면서. 그렇게 지내다 보면 작품 속 색과 빛의 계절이 여름으로 도착할 것이다. 어쩌면, 설렐 것이다.

 



 

세상에는 사라지지 않는, 우리가 의지하는 진리들이 있다. 여름철엔 해가 북쪽으로 움직인다는 것, 얼음은 녹으면 작아진다는 것, 휘어진 바나나가 더 달다는 것. 아프레케테는 나에게 나의 뿌리를, 우리가 가진 여성의 몸에 대한 새로운 정의를 가르쳐주었고, 여태까지 나는 그 정의를 배우기 위한 훈련을 해왔을 따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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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꽃처럼 흔한 얼굴과 강한 생명력을 가진, 결국은 아름답게 존재해나가는 우리 모두를 위한 서사. 내용 평점5점   편집/디자인 평점5점 YES마니아 : 골드 미**리 | 2023.02.06 | 추천1 | 댓글0 리뷰제목
#디플롯 #자미 #오드리로드 #여성 #사랑 #소수자 #서평단 한 줄 평 : 들꽃처럼 흔한 얼굴과 강한 생명력을 가진, 결국은 아름답게 존재해나가는 우리 모두를 위한 서사. 그간 내가 접했던 디플롯의 책들이 자연으로부터, 수학으로부터 발견해낸 사랑의 흔적들에 대한 이야기였다면 이 책은 인간 버전의, 지극히 인간적인 사랑의 서사가 펼쳐지는 이야기였다. 그래서 이 책은 디플롯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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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플롯 #자미 #오드리로드 #여성 #사랑 #소수자 #서평단

한 줄 평 : 들꽃처럼 흔한 얼굴과 강한 생명력을 가진, 결국은 아름답게 존재해나가는 우리 모두를 위한 서사.

그간 내가 접했던 디플롯의 책들이 자연으로부터, 수학으로부터 발견해낸 사랑의 흔적들에 대한 이야기였다면 이 책은 인간 버전의, 지극히 인간적인 사랑의 서사가 펼쳐지는 이야기였다. 그래서 이 책은 디플롯에서 나올 수밖에 없는 책이었다. 디플롯이 이야기하는 '사랑의 서사'가 깊고 넓어지는 과정에 함꼐할 수 있어서 참 감사하고 좋았다. 앞으로도 계속 더 그 시리즈 아닌 시리즈들을, 그 역사를 함께해나갈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책을 덮으면서 더 마음의 여운처럼 남았다.

오드리로드의 삶은 온갖 소수자의 교집합 안에 있다. 사실 하나만 걸려있어도 스스로 움추러들거나 살아가는 과정에서 핍박받기 쉬운 것들, 사실은 그 존재로는 자연스러운 것이지만 사회적으로 만들어진 굴레 안에서 스스로를 숨기거나 구겨 넣게 하거나 사실은 괜찮은 것을 안 괜찮게 생각해서 필사적으로 매달려야만 하게끔 만드는 그런 것. 그녀는 그 모든 핍박과 압박 속에서 비뚤어지거나 타락하거나 자신을 숨기거나 구겨넣지 않고, #권김현영 선생님의 추천사처럼 '자신을 죽이지 않으면서 우리를 다시 짓는 방법'으로 자신을 받아들이고 사랑하며 있는 그대로를 긍정하는 삶의 표본 그 자체를 보여준다. 어떻게 그럴 수 있냐고? 그래서 이 책을 읽어야 한다. 정말로 자세하고 내밀하고 풍성하게, 자신의 삶을 통해서 한 장 한 장 쌓아올린 삶들의 순간들은 순간순간이 소중한 문장들이라 함부로 추려내기가 쉽지 않았다. 요즘 들어서 크게 된 사람들, 결국은 자신의 삶을 우뚝 세운 사람들의 단면들을 찾아보게 되는데, 그 단면들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그를 만들어낸 순간들이 마치 파이의 겹겹처럼 쌓여서 바삭하고 맛있는 파이 한 개를 만들어냈듯이 이 책도 그러했다. 그러니 읽어보시라고 말할 수밖에.

오드리로드의 서사를 보면서 문득 #레슨인케미스트리 가 생각났다. 확실히 지금보다도 더 해결해야할 과제가 많았을 때를 살았던 사람들의 이야기라서.

앞으로 앞으로 진보해나가는 지금도 소수자의 이야기들은 그저 받아들여지지 않아서 투쟁으로 투쟁으로 쟁취해가야할 영역들이 너무나도 많은데, 그런 움직임들이 막 태동하던 시기인 1940년대를 살아가던 그녀의 삶이 막막함 앞에서 좌절되지 않고, 투쟁만으로 점철되어 지쳐쓰러지지도 않으며 마치 그 자리에서 비바람을 이기며 짓밟혀도 다시 피어나는 숱한 들꽃마냥 함께 핍박 받는 '자매들'과의 관계 속에서, 소수자라는 이유로 고립되기보다는 다양한 자매들에게 내밀 수 있는 손이 많은 천수보살과 같이 더욱 풍성하게 손내밀 수 있는 사람이 되어서 더 풍성한 사랑으로 함께 버티고 견뎌내는 사랑으로 함께 살아내기를 택한 그녀의 삶이 아주 평범하게 쌓아올려져왔다는 사실을 그녀가 겪어왔던 고통의 서사들을 담담하게 이야기함으로써 놀라울만큼 잔잔하게 전해주고 있다는 것이 마음 속에 웅장하게 다가왔다. 어쨌든 사랑은 이긴다는 것을 보여주는 이야기.

이것은 소수자 여성의 생존기이지만 처절하지가 않다. 인간극장이나 다큐삼일 같은 따뜻함이 살아있는, 그러나 스케일이 비교할 수 없이 큰 사랑의 서사로 우리 안의 많은 소수자성들을 관계의 매개로 삼아 연대하는 원동력이 될 수 있게 하는 이야기다. 생존과 연대가 버거운 사람들, 누구나 하나씩 가지고 있는 자신만의 소수자성에 스스로를 가두고 작아져온 많은 사람들에게, 이 따뜻한 존재의 서사를 함께 읽어보자고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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