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목정보
발행일 | 2023년 01월 25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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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484쪽 | 504g | 140*200*25mm |
ISBN13 | 9791197918179 |
ISBN10 | 1197918175 |
발행일 | 2023년 01월 25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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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484쪽 | 504g | 140*200*25mm |
ISBN13 | 9791197918179 |
ISBN10 | 1197918175 |
추천의 글 제목 없는 헌사 프롤로그 자미 에필로그 감사의 글 옮긴이의 글 |
<자미>는 우리 시대 페미니스트들의 가장 중요한 원천이자 목소리인 오드리 로드의 자전신화로, 이 기념비적인 인물이 우리가 익히 아는 모습이 되기까지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자미(zami)'는 서인도제도의 캐리아쿠섬에서 친구이자 연인으로서 함께 일하는 여성을 일컫는 단어다. 서인도제도 출신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난 시인 오드리 로드는 사실과 허구의 경계를 아우르는 자기 정체성의 기원에 관한 이야기를 뜻하는 '자전신화'라는 새로운 장르의 글에서, '자미'라는 단어로 스스로를 정체화하고 자신에게 흔적을 남겼던 수많은 여성으로부터 자신이 탄생할 수 있었음을 밝힌다. 매카시즘이 득세하던 1950년대 뉴욕 할렘은 흑인 여성이자 레즈비언이었던 오드리 로드에게 결코 아름다운 배경이 아니었지만, 그 시공간 속에서도 오드리 로드는 불온한 이름으로 불린 자신의 낙인을 오히려 서사의 시작으로 삼고, 꼿꼿하고 기꺼이 자신의 삶을 살아내며 이를 기록한다.
이 책의 저자인 오드리 로드는 "나와 혼돈 사이에는 횃불처럼 활활 타는 여성들의 이미지가 다이크들처럼 서서 내 여정의 경계를 장식하고 구분한다. 이 친절하고도 잔혹한 여성들의 이미지가 나를 집으로 이끌었다"고 말한다. 뿐만 아니라 오드리 로드는 "영원토록 여성, 내 몸은 더 늙고 오래되고 현명한 다른 삶들의 살아 있는 재현이다"라고 이야기한다.
오드리 로드는 어린 시절 내내 집이란 사람들이 여태까지 지도 위에 포착해내지 못한, 목을 졸라 교과서의 페이지 사이에 가두지 못한, 여기가 아닌 어느 다정한 곳일 거라고 속으로 생각했다고 말한다. 그곳은 오로지 우리만의 공간, 나무에 매달린 블루고와 빵나무 열매, 너트메그와 라임과 사포딜라, 통카콩, 그리고 붉고 노란 파라다이스 플럼 사탕으로 가득한 나만의 비밀스러운 낙원이었다는 오드리 로드의 글이 눈길을 끈다.
"한때 집이란 아주 먼 곳, 한 번도 가본 적 없지만 어머니의 입으로 전해 들어 잘 아는 장소였다. 어머니는 노엘스 힐의 상쾌한 아침과 뜨거운 정오에 풍기던 과일 향기를 들이마시고 내뿜으며 흥얼거렸지만, 나는 코 고는 소리와 악몽 때문에 흥건한 땀으로 가득한 할렘의 공동주택 어둠 위로 그물처럼 걸려 있는 사포딜라와 망고를 상상해야만 했다. 다만 이곳이 전부가 아니라 믿었기에 견딜 만했다. 비록 어멍난 에너지와 집중이 필요한 일이었지만, 지금 여기는 그저 잠깐 머무는 장소일 뿐이라고, 영영 생각할 장소도 아니며 나를 완전히 사로잡는 곳고, 정의하는 곳도 아니라고 상상했다. 우리가 올바르게, 또 검소하게 살아가고, 길을 건너기 전에 양옆을 확인한다면, 언젠가 우리는 다시 그 달콤한 집으로 돌아갈 수 있으리라고."
오드리 로드는 어머니는 무척이나 강한 여었이었고, 그 시절 미국 백인들의 일상어에서 여성과 강한이라는 두 단어의 조합은 눈먼, 등이 굽은, 미친, 아니면 흑인 따위의 일탈적인 형용사가 뒤따르지 않는 한 불가능에 가까운 것이었다고 말한다. 그러기에 로드리 로드는 자신이 어렸을 적 강한 여성이라는 말을 평범한 여성, 그러니까 그저 '여성'과는 완전히 동떨어진 어떤 것을 의미했고, 그렇다고 '남성'과 동등한 것도 아니었다고 이야기한다. 뿐만 아니라 오드리 로드는 자신은 어머니의 숨겨진 분노 뿐 아니라 비밀스러운 시를 비추는 거울이라고 말한다.
"내 어머니가 다른 여자들과 달랐기에, 때로 나는 남들과 다르다는 데서 오는 기쁨과 특별함 같은 긍정적인 감정을 느꼈다. 그러나 때로는 같은 이유로 고통을 느끼기도 했는데, 나는 어린 시절 그것이 내가 느끼는 슬픔 대부분의 원인이라 생각했다. 내 어머니가 다른 어머니들과 같았더라면 남들이 날 더 좋아했을지도 몰라. 그러나 어머니가 남들과 다른 건 계절 같은 건, 추운 날씨 같은 것, 6월의 안개 낀 밤 같은 것이었다. 이유도 계기도 필요치 않은, 원래 그런 것이었다."
오드리 로드는 고등학교를 다니던 4년간 근근이 생계를 유지한다는 것은 얼마나 빈약하기 짝이 없는지, 그러나 그런 생계가 자신의 생존에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알게 되었다고 말한다. 오드리 로드는 그 시절을 떠올릴 때마다 마치 수용소 쓰레기더미에서 먹을 만한 것을 골라내면서 이 쓰레기 없이는 굶어 죽으리라는 걸 아는 자신의 모습이 담긴 오래된 사진을 보는 기분이라고 이야기한다. 오드리 로드는 자신이 짝사랑하던 이들을 포함해 선생님들은 대부분 극도의 인종차별을 일삼았고, 사람과의 접촉에 있어 자신이 의식하던 욕망에 비해 얼마나 미약한 정도로 만족해야 했는지에 대해 말한다. 그리고 용감함이란 용감하지 못한 것에 대한 더 강렬한 두려움이라고 이야기하는 오드리 로드의 글이 인상적이다.
"내가 백인 친구들과 다르다는 것, 내가 흑인이라서가 아니라, 내가 나라서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고등학교 다닐 때였다."
뿐만 아니라 이 책에서 오드리 로드가 자살로 생을 마감한 제너비브와 함께 하지 못했던 일들을 써내려간 글이 깊은 여운을 남긴다.
"내가 제너비브와 한 번도 한 적 없는 일들. 서로의 몸을 맞대고 우리가 느끼는 열정을 털어놓기. 빌리지의 레즈비언 바, 아니, 어느 바라도 가기. 리퍼 피우기. 서커스 동물들을 태우고 플로리다로 향하는 화물열차를 탈선시키기. 전 세계의 욕솔들을 배우는 수업 듣기. 스와힐리어 배우기. 마사 그레이엄 무용단의 공연 보기. 펄 프리머스 만나기. 다음번에는 함께 아프리카에 가자고 하기. 그 책을 쓰기. 사랑을 나누기."
"하얀 관 위에 흙덩어리가 공허하게 툭툭 떨러지는 소리. 죽음이 핌묵할 이유라고 생각지 않는 새의 울음소리. 검은 옷을 입고 외국어로 뭐라고 읊어대는 남자. 자살한 사람을 위한 빈 구덩이는 없다. 여자들이 흐느끼는 소리. 바람. 봄의 최전선. 풀이 자라는, 꽃이 피어나는, 저 먼 나무들이 가지를 뻗는 소리. 하얀 관 위에 부딪히는 소리."
오드리 로드는 오직 자신만의 눈으로, 자신만의 힘으로 싸우리라는, 젊은이 특유의 무모하면서도 강력한 맹세를 했으나, 이는 결국 어머니가 했던 맹세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고 말한다. 오드리 로드는 집을 떠난 뒤 자신을 살아가게 해주는 다른 여성들을 만났으며, 그들로부터 다른 사랑을 배웠다고 이야기한다.
"나는 열일곱 살이었다.
결의에 차 벌벌 떨며 부모님의 집에서 나온 뒤, 나는 우리가 머무는 이 나아와 지금까지와는 다른 관계를 만들어가기 시작했다. 어머니의 망명지였으나 이제는 어머니가 아는 것보다 거리 구석구석을 더 잘 알게 된 이 나라에서 나는 그저 쓰라린 감정이 아니라 생산적인 소득을 얻고자 마음먹었다. 그럼에도 어머니가 알고 가르쳐주었던 것들 덕분에 나는 이곳에서 상상 이상으로 잘 살아남을 수 있었다."
오드리 로드는 낯선 동네에서 진저라는 여성을 만나고, 사랑을 나누는 것이 자신을 넘어선 어떤 과업이라고 생각했으나 실은 그저 손을 뻗어 욕망이 이끌게 내버려 두는 것이었다고 말한다.
"나는 그의 몸과 그의 욕망에 대한 나의 앎이 어디에서 나온 것인지 조금도 의문을 품지 않았다. 그날 밤 진저를 사랑하는 일은 집으로 돌아가 애초 내 것이었던, 어떻게 여태 모르고 살 수 있었는지 남몰래 생각에 잠기게 되는 기쁨을 맛보는 것과 같았다."
오드리 로드는 멕시코시티에서 보낸 첫 몇 주간 걸을 때 발만 내려다보던 평생의 습관이 깨지기 시작했다고 말한다. 오드리 로드는 볼 것이 너무 많았고, 읽고 싶은 흥미롭고 천진한 얼굴들도 너무 많아서, 길을 걸을 때 고개를 드는 연습을 했고 얼굴에 내리쬐는 뜨거운 햇빛에 기분이 좋았다고 이야기한다. 오드리 로드는 어디를 가든 온갖 색조의 갈색 얼굴들이 자신의 얼굴과 마주쳤고, 거리에서 자신과 같은 피부색을 수도 없이 보며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는 일은 완전히 새롭고도 짜릿했다고 말한다. 뿐만 아니라 오드리 로드가 멕시코에서 유도라라는 여성을 만난 이야기를 건네어 흥미롭다.
"멕시코에 있는 나는 더 이상 투명인간이 된 기분을 느끼지 않았다. 거리에서, 버스에서, 시작에서, 광장에서, 그리고 특히 유도라의 시선 속에서, 때로 유도라는 한쪽 입꼬리만 올려 웃으며 말없이 내 얼굴을 눈으로 훑었다. 그럴 때면 꼭 나를 바라본 사람,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처음으로 보아준 사람이 그인 것만 같았다. 그는 나를 바라보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나를 사랑했으며, 내가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그것은 우연의 일치가 아니었다."
오드리 로드는 젊고, 흑인이고, 동성애자로 살아가는 게 어떤 기분이었는지 기억한다고 말한다. 오드리 로드는 대체로 자신과 진실과 빛과 열쇠를 지니고 있다는 기분이 들어 괜찮았지만, 그럼에도 대체로 순전히 지옥 같았다고 이야기한다.
"우리, 젊고 흑인이고 괜찮았고 동성애자였던 우리는 점심시간에 속마음을 털어놓을 학교 친구나 회사 동료 하나 없이 첫 실연을 이겨내야 했다. 우리가 행복하고 비밀스러운 미소를 짓게 하는 그 이유를, 실재하는 구체적인 것으로 만들어줄 반지가 없었둣, 우리의 실험실 보고서나 도서관 문서에 얼룩지는 눈물에는 어떤 이름이나 이유가 주어지지도, 공유되지도 못했다."
"나는 동성애자인 동시에 흑인이었다. 후자는 바꿀 수 없는 사실이었다. 갑옷이고, 망토이고, 벽이었다. 종종, 흑인이 아닌 다른 레즈비언들과 대화를 나누다가 이런 화제를 꺼내고 싶다는 악취미가 들 때마다, 나는 어떤 의미로 내가 동성애자들의 성스러운 연대, 처음부터 내게 충분치 않게 느껴지던 그 연대를 깨뜨리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오드리 로드는 여태까지 자신이 알던 몇 안 되는 레즈비언은 전부 자신의 삶의 기존 맥락 속에서 만난 여성들이었다고 말한다. 학교건, 직장이건, 시건, 성적 지향을 넘어서는 다른 관심사로 이뤄진 세계를 공유하는 사이었다. 오드리 로드는 우리 모두 여성을 사랑한다는 사실은 다른 이유로 친해지고 마음을 나누게 된 뒤에야 할 수 있었다고 이야기한다.
오드리 로드는 "레즈비언이되 고정된 역할을 수행하지 않는다는 점이 우리가 서로에게 보여줄 수 있고, 또 우리를 서로 연결지어주는 단 한가지 차이었다"고 말한다. 뿐만 아니라 오드리 로드는 "애초에 우리는 다른 세상에 속한 사람이 아니었기에, 자본주의, 탐욕, 인종주의, 계급주의 같은 다른 세상의 문제로부터 자유롭다고 믿고 싶어 했다. 그러나 그렇지 않았다. 그럼에도 우리는 마치 실제로 그런 문제들로부터 자유롭기라도 한 듯 계속 서로의 집을 찾아 함께 식사하고 삶과 자원을 나눴다"고 이야기한다.
오드리 로드는 흑인이건 백인이건 키키건 부치건 펨이건, 우리 모두가 때로는 제각기 다른 비율로 공유하던 유일한 공통점은 우리가 여성이라는 이름 아래서 감히 서로 연결되고자한다는 것, 그리고 여성이라는 이름을 우리의 문제가 아닌 우리의 힘으로 본다는 것이라고 말한다.
"함께 여성인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았다. 우리는 달랐다. 함께 레즈비언인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았다. 우리는 달랐다. 함께 흑인인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았다. 우리는 달랐다. 함께 흑인 여성인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았다. 우리는 달랐다. 함께 흑인 레즈비언인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았다. 우리는 달랐다."
"우리의 자리란 그 어떤 하나의 특정한 차이에서 오는 안정감이 아닌, 차이라는 집 그 자체라는 걸 알게 되기까지는 시간이 걸렸다. 매일깥이 살아남음으로써 얻은 힘을 사용한느 법을 배운 것은, 두려움이 반드시 무력함을 가져오는 게 아니라는 것을, 우리와 반드시 같지 않아도 서로를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오랜 시간이 지난 뒤의 일이다."
책 <지미>에서 오드리 로드는 세상에서 사라지지 않는, 우리가 의지하는 진리들이 있다고 말한다. 여름철엔 해가 북쪽으로 움직인다는 것, 얼음을 녹으면 작아진다는 것, 휘어진 바나나가 더 달다는 것, 아프레케테는 자신에게 뿌리를, 우리가 가진 여성의 몸에 대한 새로운 정의를 가르쳐주었고, 여태까지 자신은 그 정의를 배우기 위한 훈련을 해왔을 따름이었다는 오드리 로드의 글이 깊은 여운을 남긴다. 오드리 로드는 자미, 친구이자 연인으로서 함께 일하는 여성들을 부르는 캐리아쿠식 이름, 우리는 그 전통을 이어간다고 이야기한다.
"내가 사랑한 여자들은 저마다 나에게 자신의 흔적을 남겼다. 나 자신의 일부면서도 나와는 별개인, 너무나도 다른 나머지 그를 알아보기 위해서 자라나고 뻗어나가야 했던 귀중한 일부분을 내가 사랑했던 자리에, 그렇게 자라다가 우리는 헤어짐에 이르렀다. 모든 것이 시작되는 자리다. 또 다른 만남."
지난 주 금요일 아침에 마지막 장을 넘겼다. 밤에 읽으면 밤샘한다는 친구의 경험을 타석 삼아 아껴 읽으려한 자구책이었다. 오늘 아침이 어찌나 허전하던지, 빛이 다 사라진 계절이 닥치는 듯했다. 반가운 북토크 영상이 있어서 덕분에 속을 채워 집을 나섰다.
https://www.youtube.com/live/95O6bKYxo64?feature=share
프란츠 파농의 <검은 피부 하얀 얼굴>을 읽고 자신의 식민지성, 백인 우월주의, 흑인공포증을 생각해본다던 먼 곳의 친우의 글이 내내 머릿속을 맴돌았다. <자미>를 추천했는데 여전히 오드리 로드는 자신에게 신인류 같아서, 읽기 싫기도 너무나 읽고 싶기도 하다고.
내 무심함은 주로 선택과 고민을 얄팍하게 한다. 불행과 폭력에 신경 쓸 시간이 없어! 하는 오드리 로드식(?) 무심함은 사랑을 기록하여 이런 엄청난 작품을 만들었다. 왜 표지가 이토록 다채롭고 풍성하고 찬란해야했는지 읽고 나니 다 이해된다. 아름답다.
이벤트로나 기억되는 현실의 사랑은 참 볼품이 없다. 문자에 온갖 색조가 묻어 있는 책을 번역이란 생각 없이 읽을 수 있었기 때문에, 실패 없는 황홀한 몰입이 내내 즐거웠다. 빨려 들어갈 듯한 시간 동안에는 나도 잠시 섬 여자처럼 빛에 타고 볕에 데워졌다.
“이 여성들이 가진 아프리카인다운 예리함에는 보다 부드러운 모서리가 있고, 그들은 비가 내리는 따뜻한 거리를 오만하면서도 점잖은 태도로 휘젓고 다니며, 나는 힘과 취약함 속에서 그 모습을 떠올린다.”
여행을 가고 싶지만 이미 잔뜩 쌓아둔 탄소마일리지가 어마어마해서 괴롭고, 오래 전 가려다 예방백신접종에 놀라 그만 둔 아프리카를, 아니 어디든, 이번 생에 다시 향해볼지 모르겠다. 이곳에서 고향을 찾지 못한 나는 어디에 가든 이방인일 뿐이겠지만,
“어디를 가든 온갖 색조의 갈색 얼굴들이 내 얼굴과 마주쳤고, 거리에서 나와 같은 피부색을 수도 없이 보며 내 존재를 확인하는 일은 완전히 새롭고도 짜릿했다.”
음식에 대한 호기심은 사랑에 대한 관심과 같고 삶에 대한 간절함과 같다던 친구의 말도 떠올랐다. 처음 들었을 땐 별 감흥이 없었는데, 식욕이 없어서 혈당 조절 약처럼 식사하던 몇 달 간의 고역, 사랑으로 사람을 바라보는 일도 힘들었고, 삶의 민낯은 무기력으로만 해석되었다.
“절구 바닥에서 으깨지는 향신료에 절굿공이가 부딪치는 낮은 소리와 함께 소금과 후추는 마늘고 셀러리 잎에서 배어나는 노란 즙을 흡수했다.”
꽃다발 장미에게 다시 뿌리가 날까 심어보았다. 딸기 모종도 곧 옮겨 심어야 한다. 파릇파릇 향기 진한 허브들도 심어야겠다. 키우고 따고 자르고 으깨고 먹는 그 시간을 상상하면서. 그렇게 지내다 보면 작품 속 색과 빛의 계절이 여름으로 도착할 것이다. 어쩌면, 설렐 것이다.
“세상에는 사라지지 않는, 우리가 의지하는 진리들이 있다. 여름철엔 해가 북쪽으로 움직인다는 것, 얼음은 녹으면 작아진다는 것, 휘어진 바나나가 더 달다는 것. 아프레케테는 나에게 나의 뿌리를, 우리가 가진 여성의 몸에 대한 새로운 정의를 가르쳐주었고, 여태까지 나는 그 정의를 배우기 위한 훈련을 해왔을 따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