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목정보
발행일 | 2023년 05월 15일 |
---|---|
쪽수, 무게, 크기 | 248쪽 | 128*188*20mm |
ISBN13 | 9791160405194 |
ISBN10 | 1160405190 |
발행일 | 2023년 05월 15일 |
---|---|
쪽수, 무게, 크기 | 248쪽 | 128*188*20mm |
ISBN13 | 9791160405194 |
ISBN10 | 1160405190 |
MD 한마디
권여선 소설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소재는 술. 술을 마시며 이야기하는 인물들 속에서 같이 취하곤 했던 독자라면 반가울 산문집. 계절에 어울리는 음식과 안주을 소소하고 즐겁게 다뤄냈다. 중간 중간 있는 삽화와 함께 맛을 상상하다보면 어느 새 맥주 한 잔 걸치고 있을지도. -에세이MD 김유리
들어가는 말 술꾼들의 모국어 1부 봄: 청춘의 맛 라일락과 순대 만두다운 만두 김밥은 착하다 부침개꽃을 아시나요? 젓갈과 죽의 마리아주 2부 여름: 이열치열의 맛 여름의 면 물회, 그것도 특! 떙초의 계절 여름나기 밑반찬 열전 3부 가을: 다디단 맛 찬바람 불면 냄비국수 급식의 온도 가을무 삼단케이크 4부 겨울: 처음의 맛 그 국물 그 감자탕 솔푸드 꼬막조림 어묵 한 꼬치의 추억 집밥의 시대 5부 환절기 까칠한 오징어튀김 삐득삐득 고등어 콩가루의 명절상 졌다, 간짜장에게 |
권여선의 다른 책을 읽고 그녀를 이해하기 위해 산문집을 찾다 최근 출판된 이 책을 선택했다. 가벼워 보이기도 하고 한편 먹는 것이 그 사람을 잘 드러내는 것이기도 해서 골랐는데 다 읽고보니 그녀를 소설에서 이해한 것 보다 더 잘 이해했는지는 모르겠다. 작가가 좀 많이 사랑스럽기는 하다. 어쩌면 '오므라이스 잼잼'처럼 노란표지에 귀여운 그림 덕분일지도.
다만 내가 간과한 것은 이 책이 개정 1판이었다는 것. 최근 그녀의 글을 보고 싶은 마음에 골랐는데 그것은 아닌 걸로. 책날개의 작가 작품들 소개때문에 착각한 나의 실수, 들어가는 말에 그녀가 '안녕 주정뱅이'를 재작년에 냈다고 한 것을 아무렇지 않게 읽어내려간 나의 실수다.
책 표지엔 '권여선의 음식 산문집'이라 적고 들어가는 말에는 '안주'라는 말이 누누이 나와 무척 재밌었다. 음식에 관해선 소주가 8할의 지분을 차지하는 그녀의 무럭무럭 자란 입맛을 읽어내려가는 재미가 쏠쏠하다.
읽으면서 돌아가신 할머니가 해주셨던, 지금의 나로써는 무리인 음식들이 나오니 입맛이 다셔졌다. 지금도 작가처럼 하려면 할 수도 있을텐데 난 그냥 멍하니 할머니가 해 주셨던 음식을 생각하며 입맛만 다시고 엄두는 못내는 못난이다. 그래서 그녀가 해 주는 이야기에, 그녀가 해 대는 음식들에 기꺼이 동참해 입맛을 다시며 멋지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그녀의 (안주로써의) 음식 이야기를 듣다보면 그 음식에 관한 나의 기억이 한 자락씩 떠오른다. 작가의 힘이다. 만두이야기를 읽으며 아직까지 만두를 빚는 우리 친정을 생각하고, 부침개를 말하면 아이와 함께 했던 진달래화전 부침과 돌아가신 시어머니의 지짐이란 단어(난 그때 부침개를 그렇게 부르는 걸 처음 들었다)가 생각난다. 꼬막조림을 읽으면서는 예전 그 바쁜 일상 와중에도 저녁에 휘황찬란하게 올라왔던 엄마의 꼬막조림이 생각난다. 그녀의 글에서는 그녀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도 그랬었지'하며 추억을 회상하게 하는 힘이 있다. 음식을 먹은 것처럼 추억을 회상하며 힘이 났다.
그래서 그녀를 소설만큼 산문으로 이해했느냐 하면 글쎄... 아직 많은 글을 읽지 못해 보류라고 하고 싶다. 다만 그녀가 세상에서 자신의 집밥으로, 자신의 음식으로 본인을 돌보고 살찌우고 살고 생각한다는 것은 알겠다. 작가는 안주이야기를 빼고 얘기하지 못한다고 하지만 나는 안주가 아닌 살아갈 힘을 얻는 음식 이야기라고 말해주고 싶다. 평범한 일상에서 힘이 나는 먹거리의 힘. 음식의 힘. 그리고 작가의 힘.
'오늘 저녁 뭐 해 먹지' 고민했는데 '뭐 먹지'로 바꿔 생각해야지, 암.
<책 속 한 구절>
그때 나는 깨달았다. 드디어 어머니의 집밥의 시대가 끝나고 내 집밥의 시대가 열렸다는 것을, 그리고 내가 앞으로 집밥을 좋아하게 될지 싫어하게 될지는 다른 누구도 아닌 오직 내 손에 달렸다는 것을. -210쪽-
권여선 작가의 첫 산문집인데 주제가 음식이다. 권여선 작가의 소설에는 술 마시는 장면이 꼭 나온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안녕 주정뱅이>라는 제목의 소설집을 내기도 했다) 권여선 작가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음식은 술인데, 그래서인지 이 책의 서문에서 저자는 책 제목이 원래는 <오늘 안주 뭐 먹지?>인데 '안주'가 생략된 거라며 어떤 음식이 나오든 곁들여 먹는 술을 떠올려 달라고 한다. (이 정도면 후속편으로 <오늘 뭐 마시지?>가 나와야 하는 것 아닌가요 ㅎㅎㅎ)
이제는 술도 잘 마시고 술과 함께 먹는 음식 모두를 사랑하는 저자이지만, 어릴 때는 편식이 아주 심한 편이었다. 고기 특유의 냄새를 못 참아서 순대는 물론이고 만두나 고깃국물도 못 먹었다. 그랬던 저자가 대학에 입학해 술을 마시기 시작하면서 식성이 급격히 변했다. 고기는 물론이고 순대나 만두는 없어서 못 먹는다. 반대로 어릴 때 저자에게 고기를 먹이려고 부단히 애썼던 어머니는 종교적인 이유로 엄격한 채식을 하고 계시다니 모녀간의 역전이 놀랍다.
저자는 음식을 잘 먹기만 하는 게 아니라 잘 해먹기도 한다. "오늘 뭐 먹지?"라는 즐거운 고민이 "오늘 뭐 해 먹지?"로 바뀌는 순간 무거운 부담이 되지만, 잘 해먹는 사람 치고 잘 먹지 않는 사람도 없다. 저자는 주로 한식을 즐겨 해먹고, 젓갈도 직접 담가 먹는다. 봄에는 제철 바지락을 사서 조개젓을 만들고, 가을에는 천연 생굴을 사다가 어리굴젓을 만든다. 낙지젓, 오징어젓도 직접 만들고, 앞으로 명란젓, 멸치젓, 갈치속젓에도 도전할 거라고. 이름만 들어도 군침이 돈다.
음식에 얽힌 추억하면 빼놓을 수 없는 존재가 바로 가족이다. 이 책에도 저자의 가족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아버지 월급날이 되면 어머니가 식구 수에 맞춰서 사 왔던 고로케 맛도 궁금하고, 어디서도 맛보기 힘들다는 마른 오징어튀김 맛도 궁금하다. 단식의 경험도 나온다. 단식을 하고 나면 미음조차 꿀맛이고, 간장만 먹고살아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입맛이 새로워진다니 이 또한 궁금하다.
먹는 얘기는 또 다른 먹는 얘기로 이어지고, 그러다 유치해진다.
“그렇게 친해진 후 작가들이 주로 무슨 얘기를 나누느냐. 대부분 먹는 얘기다. ~ 먹는 얘기에 관한 한 창작촌도 군대나 감옥에 뒤지지 않는다.” (149~150쪽)
작가의 경험은 이제 내게도 상식이 되었다. 오래전 고등학교 교사를 하는 친구에게 물은 적이 있었다. 교무실에서 선생들끼리 모이면 전공분야가 다양해서 여러 가지 재미있는 얘기들이 많지 않냐고. 그랬더니 그 친구 대답이 그랬다. “선생들끼리 모여서 얘기도 잘하지 않지만, 나오는 얘기들도 유치하다” 그때 내가 깨달았다. 세상살이가 원래 유치하다는 것을. 책을 읽으면서 작가가 얘기하고 싶은 음식 이야기에서 벗어나 유치한 세상을 혼자 헤맸다.
김밥을 썰지 않고 통으로 들고 먹는 것도 좋아한다는 작가의 말에 통김밥을 먹던 기억이 돌아가신 어머니의 얼굴과 함께 기억났다. 어머니가 쌌던 김밥은 늘 밥이 많았다. 10개의 김밥을 말기로 시작한 일은 곧 시간을 줄이기 위하여 원래의 계획보다 작은 수의 김밥이 되었다. 그러니 김밥은 뚱뚱했다. 그걸 나에게 들고 먹으라고 주었던 어머니였다. 귀찮아서 그랬던 것인지, 늘 무뎠던 칼로 김밥을 써는 것이 싫어서 그랬던 것인지는 모를 일이었지만 어머니의 얼굴이 기억나면 내가 그렇게도 싫었던 어머니의 단점도 기억난다. 어쨌든 무딘 식칼로 김밥을 썰면 옆구리가 터져 볼썽사나웠다. 들고 먹는 김밥은 믿음직스럽고 맛이 좋았던 기억이 났다.
유치한 생각은 이어진다. 작가는 통김밥을 알게 한 분이 숙모라고 하면서 그 숙모가 보기 드물게 아름답고 키가 크고 날씬한 분이라는 기억을 소환했다. 그리곤 삼촌과 숙모의 이혼 이야기가 이어지고, 작가가 서른 살이나 서른한 살쯤 같이 통김밥을 먹었던 숙모와 같이 예쁘고 늘씬한 친구 이야기로 전개되면서 “이제는 서로 만나지 않게 되었는데”라는 말에 생각의 갈래가 생겼다. 그러다 대파잎이 석 삼자로 그려진 파전을 얘기하면서 “요즘 가끔 그 파전과 그 친구 생각이 난다. 그 파전을 팔던 주점도, 그 친구도 지금은 없다.”는 말에 그만 유치 찬란한 길로 빠졌다. ‘작가의 성격이 모난가? 잘 싸우나? 한 번 싸우면 뒤끝 작열인가? 원칙주의자라서 그런가? 고집불통인가? 자기애가 강한가?’ 김밥도 썬 김밥과 통김밥이 맛이 다르고, 파전도 육전도 맛이 좋게 요리하여 먹는 방법을 작가는 얘기하고 있는데 나는 작가가 만나고 헤어진 사연의 근원을 찾아 혼자 헤매고 있었다.
울진의 맛있는 물회를 얘기하는 작가의 글에서도 ‘맛있는’과 비교되는 속초의 물회를 소환했다. 물회를 먹다 보면 항상 국물이 남는다. 그래서 국수사리를 추가하는 것이 보통의 일이다. 추가된 국수사리를 먹다 보면 그냥 국물이 사라진다. 시원하고 달콤하고 새콤한 물회 국물을 남기는 경우가 없다. 그게 물회의 맛이라고 나는 믿었다. 그런데 지난번 속초 유명한 물회집에서는 국물에서 매운맛이 심했다. 된장을 섞은 듯 국물의 색도 번잡했다. 결국 국수사리 추가도 시키지 않았고 국물은 그대로 남았었다. 맛있는 작가의 물회 글에 맛없는 물회 국물을 떠올린 것도 유치한 나의 뒤끝일 것이다.
“말린 생선은 각기 그 맛이 얼마나 오묘하게 다른지” (226쪽) “생선을 말리면 살이 단단해지고 깊은 맛이 난다” (228쪽)며 삐뜩삐뜩 말린 생선이야기에서도 그랬다. 갑자기 말린 생선에서 중학교 선생님의 말이 떠올랐다. “우리가 먹는 음식들은 모두 동식물의 시체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그때 교실 안의 모두가 감탄사를 터뜨리면서 사실에 동의했었다. 그래도 시체와 음식은 어울리는 단어가 아니다. 작가의 맛있는 음식 이야기에 시체가 떠오른 것도 유치했다. 하지만.
“집밥이 무조건 맛있다고 확신하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임에는 분명하지만, 옳지는 않다” (207~208쪽)라는 말에 그만 공감하고 정신을 차렸다. 유치한 짓은 나이가 들어도 고쳐지지 않는다. 좀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