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목정보
발행일 | 2021년 07월 23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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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형 | 양장? |
쪽수, 무게, 크기 | 264쪽 | 414g | 134*195*20mm |
ISBN13 | 9791166890253 |
ISBN10 | 1166890252 |
발행일 | 2021년 07월 23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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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형 | 양장? |
쪽수, 무게, 크기 | 264쪽 | 414g | 134*195*20mm |
ISBN13 | 9791166890253 |
ISBN10 | 1166890252 |
MD 한마디
[세상과 사람을 잇는 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 세상과 사람을 잇는 다양한 ‘작은 이야기‘로 따뜻한 감동을 전하는 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 그가 영화에 담고자 했던 세상, 그 다짐과 노력을 한 권에 담아냈다. 한국 독자를 위해 특별히 기획한 이번 책은 정성일 영화평론가와의 대담을 수록해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을 더 가까이 만날 수 있다. - 에세이 MD 김태희
저자의 말 5 ·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하여 13 축의 말고 다른 것 30 문화는 외교의 종이 아니다 33 감독은 책임질 수 있을까 38 감동보다 사유를 46 범죄와 책임 51 모놀로그와 다이얼로그 57 ·· 자기 내면의 정의 61 언행불일치 69 복수에 대한 생각 75 타자를 상상하는 능력이 훨씬 중요하다 78 무른 태도 82 귀를 기울이는 법 88 공평함이란 무엇인가 94 ··· 누가 101 게 105 ···· 손도끼 111 키키 키린 116 야스다 마사히로 119 모테키 마사오 124 하라다 요시오 128 나쓰야기 이사오 131 에드워드 양 감독 134 ····· 분부쿠에 대하여 139 각본 145 결과적으로 더 좋은 작품이 된다 148 영화가 변하는 게 아니라 제가 변합니다 152 ······ 나를 만든 영화 66편 163 〈파비안느에 관한 진실〉을 찍기 위해 다시 본 영화 186 고레에다 히로카즈×정성일 199 “영화를 하고 있기에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옮긴이의 말 258 |
가족에게서 결코 작지 않은 이야기를 듣다
<작은 이야기를 계속하겠습니다>를 읽고
어느 가족에게 진짜로 기적이 일어날지는 아무도 모른다. 한 사람이 다른 한 사람을 만나 또 다른 한 사람을 가슴이나 배로 낳아 한 집을 이루는 과정은 기적에 가까운 일이다. 그렇게 모인 사람들을 '가족'이라 부르며 가족이기에 모두 다 알고 이해한다고 여기는 이들에게, 《어느 가족》,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 《아무도 모른다》 등의 영화를 통해 가족에 관한 이야기를 계속하고 있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오히려 가족이니까 서로 알지 못하거나 모른 척 하는 건 아닌지 되묻는다. 개인과 사회라는 두 개의 웅덩이에 한 발씩 담그고 있는 수많은 가족에 대해 미처 다 헤아리기도 전에 물이 차고 넘거치거나 아예 말라버리듯 가족의 해체가 가속화되고 있다. 이러한 오늘날의 현실 속에서 <작은 이야기를 계속하겠습니다>는 가족의 의미와 미래에 대하여 사회나 국가 차원의 큰 담론이 아닌 개인과 시민이라는 상대적으로 작은 존재들을 오랫동안 들여다보며 기록한 창작자의 작지만 큰 생각과 노력을 담고 있다.
엇비슷한 모습의 행복한 가족과 달리 저마다의 이유로 불행한 가족일지라도 그 시작은 결여와 결핍, 즉 '부재'로부터 비롯되었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그곳에 있지 아니하므로 보이지 않는 게 당연하지만, 그는 가족에서 분리 혹은 배제되어 '보이지 않는' 사람들을 가시화시키는 데에 계속해서 눈을 맞추고 귀를 기울인다. 영화 이전에 다큐멘터리를 제작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혼잣말하며 일방통행하는 우를 범할 수 있는 영화의 결점을 타자와 대화를 주고받으며 소통하는 방식으로 메운다. 자신만의 언어로 자기 얘기만 하는 게 아니라 타자의 언어로 말하고, 그러기 위해 타자의 언어에 귀 기울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는 곧 타인에 대한 상상력, 나아가 공감력으로 연결된다.
"생명은 그 안에 결여를 품고 그것을 타자로부터 채운다." 요시노 히로시의 시구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 속에서 결여와 부재가 늘 부정적인 것이 아니라 타자를 향해 열린 가능성으로 표현되고 인물들이 자기 욕구를 해소하는 데 작은 불씨와도 같다. 다양한 형태의 가족을 주제로 한 그의 작품들에서 마주하는 부모와 자식 또는 어른과 아이는 모두 결핍감에 시달리는 모습으로 묘사되는데 자식이나 아이의 경우 그 정도가 더 심할 수 밖에 없다. 때로 관객에게 불편감과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는 소재와 이야기라면서 창작자에게 영화가 초래할 사회적 영향에 대해 어떻게 책임질 것인지 항의하는 이들에게, 그는 되려 책임질 수 있다고 하는 창작가가 더 위험하며 감독이 관객의 심리변화까지 책임지지도, 책임질 수도 없기에 영화란 거기에 비춰져 있고 나타나 있는 것으로 바라봐주길 바란다고 응답한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세계 밖에서 그 안을 들여다보는 아이들의 눈과 마음의 가치를 발견했다. 그것들이 어두운 현실을 햇볕 아래로 끌어내 말리는 힘을 발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아이를 씨앗에 비유하자면, 영화 속에 그것을 심으면 어떤 것은 말라죽기도 하지만 또 어떤 것은 햇빛을 향해 가며 저 나름의 성장을 이루게 된다. 일테면 세상 사람들(어른들)의 눈에 비친, 《아무도 모른다》에서 아버지가 각기 다른 동생들과 함께 작은 집에서 살다가 어머니마저 떠나버린 상황에 처한 주인공 아키라는 편의점에서 물건을 훔칠 가능성이 다분해 보인다. 그러나 감독은 아키라의 내면에서 어른들의 눈이 닿지 않는 곳, 즉 도둑질을 하지 않는 전개로 극적 갈등을 풀어낸다.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에서 고속열차가 서로 스쳐지나가는 순간 소원을 빌면 기적이 일어난다는 얘기를 들은 형제가 헤어진 부모와 다시 함께 살길 바라는 마음으로 여행을 떠나지만 결국 형 코이치는 가족보다 세계를 선택하면서 어른의 세계로 한 발짝 더 다가서는 모습을 보여준다. 《어느 가족》에서 친부모로부터 부정당하고 사라질 뻔한 유리는 어머니와 아버지, 그리고 할머니로 '보이는' 좀도둑 가족에게 훔쳐진 후부터 그들에게서 차츰 가족의 사랑을 배우며 스스로 부모를 선택하기에 이른다. 이러한 아이들의 용단은 자신의 결핍을 채워나가는 방식으로만 쓰이지 않고, 어른들의 불안과 공허를 채워주는 데에도 큰 몫을 해낸다. 커가는 아이뿐만 아니라 어쩌다 어른이 된 사람들의 성장통을 치유해주는 처방전처럼 말이다.
개인과 사회가 지닌 만병의 근원 중 하나가 가족일지도 모른다. 가족을 어떻게 바라보고 대하는지에 따라 건강한 개인과 사회로 거듭날 수 있다는 점에서 볼 때, 가족에 관한 이야기들이 결코 작지만은 않다는 걸 알게 된다. 앞으로도 계속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시선을 좇아가려 한다. 그의 작은 이야기에 귀기울이며 작은 것들을 다르게 들여다보고 상상해 나가다보면, 언젠가 가족 너머에 있는 그 무엇을 찾을 수 있을 것만 같은 희망을 보았기 때문이다.
바닷마을 다이어리(2015), 어느 가족(2018), 원더풀 라이프(2001),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2013), 걸어도 걸어도(2009)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 몇 편을 만났다. 그 중 <바닷마을 다이어리>는 고감독님의 작품인줄 모르고 만나기도 했고,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처럼 찾아서 만난 영화도 있었다. 그리고 내가 고감독님의 영화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되어준 <어느 가족>이 있다.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2011)’은 중간 즈음 멈췄으니 제외하기로 한다)
그의 영화를 만나면 스스로를 향한 나 자신의 시선과 타인과의 관계(그 관계에는 ‘가족’ 역시 포함된다)에 대해 한동안 곱씹게 된다. 언뜻 영화 속에서나 있을 법한 이야기라 생각할 수도 있을텐데, 그렇게 이야기들을 되새기다보면 영화와는 무관해 보이던 일상과 닿아있는 상념들이나 감정의 이면에 숨겨진 상처 같은 것들을 떠올리게도 된다.
이웃 말순님의 글로 이 책을 알게 되었을 때 주저 없이 책을 읽기 시작한 것은 아마도 이런 생각들이 내 안에 고여 있었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솔직히 처음 페이지를 펼쳤을 때는 많은 부분이 정치적인 이슈와 닿아 있어 내 예상과 다른 전개에 조금 당황하기도 했다. 영화감독이니 당연히(이 역시 선입견일테지만) 영화와 관련한 이야기들이 주를 이룰 것이라 여겼기 때문이다(이 책 이전에 ‘영화를 찍으며 생각한 것’이 출판되었다는 것은 책을 읽는 도중 알게 되었다).
나는 사람들이 ‘국가’나 ‘국익’이라는 ‘큰 이야기’로 회수되어 가는 상황 속에서 영화감독이 할 수 있는 일은 그 ‘큰 이야기’ (오른쪽이든 왼쪽이든)에 맞서 그 이야기를 상대화할 다양한 ‘작은 이야기’를 계속 내놓는 것이며, 그것이 결과적으로 그 나라의 문화를 풍요롭게 만든다고 생각해왔다. p.25
그렇다면 그들에게 자신의 행위를 총괄하라고 강요하는 우리는 일장기와 기미가요가 완수해온 역할을 어떤 형태로 총괄한 걸까? 사죄는 끝난 걸까? ‘침략 전쟁은 없었다’는 식의 주장이 큰 목소리로 들려오게 된 현재 상황 속에서, 일본인이 50년 전에 저지른 행위에 대해 과연 얼마나 많은 사람이 당사자 의식을 가지고 생각하고 있을까? p.49
상대의 이름을 빼앗는 것도, 땅을 빼앗는 것도, 문화를 빼앗은 것에 대한 책임도 60년간 유야무야 내버려두면 어물쩍 넘어갈 수 있는 모양이다. 그런 사회에서 우리는 살고 있다. 그런 오늘날의 일본 사회가 열두 살 소년을 살인으로 향하게 만든 것이 아닌가? 사회는 그 소년에게 ‘사람의 생명을 빼앗는 건 무슨 일이 있어도 나쁘다’고 가르쳤던가? 약자를 폭력적으로 지배하면 안 된다고 가르쳤던가? 가르친 건 그 반대 아니었던가? 그렇게 생각하며 사회의 죄를 스스로 짊어지고, 사회 개혁에 피 흘릴 각오를 하는 것이 정치의 본래 역할 아닌가? pp.53-54
오늘날 일본 정치권에서 가장 부족한 것이 바로 이 능력 아닐지요. 그들은 자신의 심정을 토로하기 위해서만 언어를 씁니다. 그것이 타인에게 상처를 줄 수 있다는 상상력도, 듣는 능력도 없습니다. p.89
이름과 땅과 문화를 빼앗겼던 나라에 살고 있는 사람이기에 유독 크게 와닿는 대목들이 있었는데(격하게 고개를 끄덕여가면서 말이다), 책의 중간을 넘어가다보니 이 글이 과연 특정 ‘국가’에만 해당하는 것인기 싶어졌다.
창씨개명과 무력을 앞세운 영토 침략이 아니더라도 현대사회를 살고있는 우리도 타인의 이름을 무시하고 나와 다른 문화에 대해 비하하지 않는가, 그리고 그것을 나를 포함한 공동체의 ‘이익’을 위해서라 당연시 여기지는 않는가. 그렇다면 과연 나는 얼마나 당당하게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가, 내 안의 물음들이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자기와 모습이 다르거나, 다른 신을 믿거나, 다른 형태로 생활하면 ‘왠지 기분 나쁘다’는 거겠지요. 이해가 안돼. 그래서 무서워. 그렇다면 이해하려고 노력하면 될 텐데요...... 미디어는 그것을 위해 존재할 텐데, 지금은 반대로 상호 이해(대화)에 방해되는 행동을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거기에는 ‘반대로’ 그들이 보기에는 우리도 충분히 꺼림칙하지 않은가 하는 시선이 아무래도 빠져 있는 듯합니다. p.79
이런 그의 생각들이 영화에 담겨져 있었구나, 생각하니 그의 영화를 볼 때마다 되새겨지던 불편함이, 한없이 곱씹어 생각에 빠지게 했던 질문들의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상대의 언어로 이야기하기’ 위헤서는 우선 철저하게 상대의 언어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일테면 제가 쓰는 ‘희망’이라는 말과 상대가 쓰는 ‘희망’이라는 말이 과연 같은 의미인지를 살펴보는 것입니다. 대부분은 다릅니다. 거기에는 미묘한 차이가 있습니다. 서로 다른 인생을 걸어왔고 상이한 가치관으로 살았으니 당연한 일입니다. ‘다르다’는 것이 대전제이고 그 위에서 커뮤니케이션을 모색해 나갑니다. p.88
타인은 나와 다르다는 ‘당연’하지만, 종종 잊곤 하는 전제를 받아들이고 서로 소통하는 것이야말로 다양성을을 강조하면서도 자꾸만 극단으로 치달아 편협해져가는 우리 사회에 절실한 자세가 아닌가 싶다. 그리고 항상 그러하듯, 이 글을 적고 있는 나부터 잊지말고 지켜야할 덕목이다.
상상력이 중요하다고들 여기저기서 거듭 말하는데, 이건 딱히 상대의 기분에 동화하는 게 아니라 자신과는 다른 가치관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존재, 그리고 그런 그들이 보는 우리의 것과는 다른 세계상을 상상하고 인정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오히려 그런 ‘타자’에 대한 상상이 훨씬 중요하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p.81
*나에게 적용하기
하나. 상대방의 말에 귀 기울이기(적용기한 : 지속)
두울.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 찾아보기(적용기한 : 11월 중)
*가장 먼저 보고 싶은 영화는 ‘태풍이 지나가고(2016)’
*Joy가 만난 고감독님 영화들
하나. 바닷마을 다이어리
바다고양이 식당에 가보고 싶다 : http://blog.yes24.com/document/9906806
두울. 어느 가족
아빠가 되고 싶었던 그와 엄마가 되고 싶었던 그녀
: http://blog.yes24.com/document/11223974
세엣. 원더풀 라이프
단 하나의 소중한 추억 : http://blog.yes24.com/document/13779698
네엣.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그렇게 가족이 된다 : http://blog.yes24.com/document/13830913
*기억에 남는 문장
나만 안전지대에서 중립을 지킬 수 있다는 건 어리광 섞인 오해이며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p.24
영상 제작자(전달자)는 시청자에게 그런 사유를 요구하기에 앞서, 먼저 스스로 거울을 앞두고 철저하가게 사유할 필요가 있다. p.50
지금, 현재만의 정서적 반응이나 판단에 휩쓸리지 않으려면 자기 안에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그 행위의 정당성을 제대로 확인해야 합니다. 거듭해서요. pp.69-70
아키 씨는 메일에서 “반대만 하는 건 누구라도 할 수 있어요” “달리 뭘 할 수 있다고 생각하세요?”라고 물으셨는데, 지금 그 질문에 대답한다면 ‘그럼에도 끝까지 계속 반대하는 것’이 제가 할 수 있는 일의 첫걸음이라 생각합니다. p.70
그렇게 손에 넣은 모두가 비슷한 집에 살고 비슷한 옷을 입고 같은 가치관 속에서 생활한다는 ‘안도감’, 사실 그것은 생물로서의 다양성을 잃는, 인간에게는 매우 불건강한 사태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고 봅니다. p.81
‘말’은 정말 어렵습니다. 상대에게 가닿을 말로 이야기하는 건 웬만해선 힘들다고 생각해요. p.88
“나는 참배하고 싶으니까 하는 거야. 뭐가 나빠!” 라는 건 그저 ‘자신의 언어’로 이야기하는 것일 뿐, 그 말과 행위가 어떤 형태로 상대에게 가닿을지 전혀 생각하지 않는 무책임한 자기표현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런 건 표현조차 아닙니다..(중략)..애초에 아무리 본인이 ‘사적인 참배’라고 말해봤자, 국내외에서 정치적 파문이 일고 있는 시점에서 그건 공적인 행위입니다. 본인이 사적인 참배로 생각하거나 말거나 그건 본인에게 말고는 전혀 의미가 없습니다. pp.89-90
말이란 입에서 나온 시점에 절반은 이미 자신의 것이 아닙니다. 그렇게 생각해야만 합니다. p.91
미아가 되었을 때 그 아이를 덮치는 불안은 아마도 부모를 잃었다는 단순한 감정이 아닐 것이다. 그건 나 따위 아무도 아랑곳하지 않는 ‘세계’, 그리고 그 무관심과 어쩔 수 없이 직면하게 된다는 커다란 당혹감이다. p.103
자신을 무조건적으로 받아주고 감싸주는 존재의 곁을 떠나 ‘타자’로서의(그것이 선의든 악의든) 세계와 마주하는-사람이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에서 언젠가는 누구나 경험해야 할 이런 뜻밖의 만남을 예행연습으로서 폭력적으로 강제 체험하는- 것이 미아라는 경험 아닐까. 바로 그래서 미아는 갓난아기처럼 울부짖는 것이다. pp.103-104
그리고 제아무리 울어봤자 이제는 고독하게 세계와 마주해나가야 한다고 깨달았을 때, 소년은 자신이 미아라는 점과 결별하고 어른이 되는 게 아닐까. 그때를 경계로 어머니는 자신을 감싸 안아주는 세계 그 자체가 아니라 세계한구석에서 자신을 기다려줄 뿐인 조그만 존재로 변한다. 한때 미아였던 어른은 그것을 깨달은 순간 이번에는 남몰래 운다. p.104
그러나 내가 존경해 마지않는 건 촬영 현장에 약속 시간보다 한 시간 빨리 혼자 운전하고 와서 대기실에서 대본을 무릎 위에 펼쳐둔 채 눈을 감고 홀로 대사를 연습하는 키린씨다. p.114
그때 키린 씨가 가진 손도끼는 자기 자신 위로 들려 있다. 남을 향한 엄격함보다 더한 엄격함으로, 그는 본인을 지적하기 위해 대기하고 있는 것이다. 그 모습은 정말로 아름답다. 성스럽기까지 하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p.115
잘 표현이 안 되지만 바통을 건네받은 느낌이랄까요. “뒷 일은 잘 부탁해” 하며 건네준 것을 소중히 품고 달리자는 각오 같은 것. 그 각오가 있어야 비로소 그 사람에 대해 쓰거나 말할 수 있는 게 아닐까 합니다. p.133
아 참, 점심을 먹으러 간 바닷가 레스토랑에서 양조위(!)를 만나서 인사를 했고, 박찬욱 감독의 신작에서 주연을 맡은 송강호 씨와 서서 얘기를 나눴고, 일부러 시간을 내서 공식 상영회에 와준 쥘리에트 비노슈 씨와 점심을 함께 먹기도 했네요. 그런 멋진 시간도 있었습니다. p.149
*송강호, 쥘리에트 비노슈를 만나다니, 부러운 마음이 가득하다. 하지만 그중 단연 양조위! 양조위 라니!! (고감독님도 느낌표를 표시하지 않았던가!)
심장아 나대지마! 씨네필인 사람으로써 좋아하는 영화인이 직접 쓴 책을 읽는 것은 큰 기쁨이다. 이전작 「영화를 찍으며 생각한 것」을 아끼며 읽었는데 신작 <작은 이야기를 계속하겠습니다>도 설레임을 주체하지 못하며 책장을 넘겼다. 일본의 영화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산문이다.
기대감으로 읽어가는데…세상에 만상에, 이 책 너무 좋은 거다. 내가 고레에다 감독 영화를 처음 인지한 건 「아무도 모른다」였고 좋게 느낀 건 「걸어도 걸어도」가 최초였다. 그 때도 배우 아베 히로시가 좋았지 특별히 감독에 관심을 갖진 않았다. 그러다가 이 감독 보통이 아니구나, 기억해야 겠구나 싶은 영화를 제대로 만났다.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가족 영화를 많이 보아왔지만 기존의 작품들 어디서도 느끼지 못한 독창적인 감동을 선사해 준 영화였다. 시간이 또 한참 흘러 2018년에 굉장한 소식이 들려왔다. 「어느 가족」으로 히로카즈 감독이 칸 영화제 대상을 탄 것이다. 고백하자면 당시에 나는 그 결과를 받아들이지 못했다. 이창동의 「버닝」이 훨씬 더 창의적이고 시대를 대변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내가 고레에다 감독을 좋아한다는 건 상상을 못한 채 1년여가 지났다. 좀 마음이 누그러지고 드디어 「어느 가족」을 봤다. 인정받을 만한 수준 높은 영화임을 비로소 느꼈고 무엇보다 주인공 안도 사쿠라에 홀딱 반했다. 히로카즈가 다른 건 몰라도 여성을 묘사하는 방식이 존경스러운 점이 있음을 깨달았다.
<작은 이야기를 계속하겠습니다>를 통해 히로카즈가 ‘어떤’ 감독인지를 상세하고 깊이있게 알아갔다. 비록 좋아하게 된 것은 얼마 안 됐지만 지난 12년 동안 고레에다의 영화들은 나의 뇌리와 감정에 자리하고 있었다. 고레에다는 1995년 입봉한 후에 TV매체와 영화를 넘나들면서 왕성한 창작 활동을 해 왔다. 그저 테크니션이 아니라 ‘미디어 종사자’라는 사명감을 뚜렷이 가지고서 여러 매체에 자신의 의견을 발표해 온 그. 본 책은 그를 기반으로 나온 것이다. 읽으며 감탄하고 소름 돋는 순간이 여럿 있었는데 ‘옴 진리교’에 대한 미디어의 태도를 말하는 장에서는 전율이 쫙 났다. 얼마전에 다큐멘터리로 그와 관련된 작품을 보고, 일본에 성숙하고 경이로운 지식인들이 존재한다는 걸 접했었다.
고레에다는 단순히 예술로써의 영화를 하는 장인을 넘어서, 일본 사회에 목소리를 내 온 탁월한 사상가이기도 했다. 나는 칸 영화제 대상을 약간의 질투를 담아 바라봤었지만, 고레에다는 국제적인 수상을 하기에 충분한 진짜 마에스트로였던 것이다.
영화 예술을 대하는 순수한 애정을 ‘고백’하는 대목들은 읽어도 읽어도 질리지 않았다.
TV 프로그램을 제작하고 영화를 연출하는 사람으로써 일본을 냉철하게 바라보고, 내셔널리즘에 매몰되는 국가에 대해 쓴소리를 하는 고레에다의 글은 진지하고 통쾌하다.
이창동과 허우 샤오시엔을 존경한다는 히로카즈의 표현들은, 일본 역사와 껄끄러운 문제가 있는 아시아인들 사이에서 영화를 통한 공유와 연대감이 가능함을 꿈꾸게 했다.
푹 빠져 읽다가 감독 특유의 표현법에 어느새 동화되어 피식 피식 웃음짓는 나를 발견하게 됐다. 《영화라는 공동체》 챕터에서 감독은, 세계인들이 언어와 문화는 달라도 영화를 통해서 같이 울고 웃고, 함께 분노할 수 있다는 것을 선언한다.
고레에다 감독은 지금 우리 배우들을 데리고 신작을 만들고 있다. 송강호 강동원 배두나와. 최애 배우들이 나와서기도 하지만, 이제는 히로카즈 감독님의 영화라서 나는 이 작품을 더 오매불망 기다린다. 감독은 말했다. 영화는 어떤 메시지를 ‘찬양’하거나 ‘비판’하기 위한 수단이어선 안 된다고. 엄밀히 감독은 작품으로 말하는 사람이라는 히로카즈의 단언에 나도 공감했다. 그러면서도, 작품을 만들면서 자신의 머리와 가슴에 차곡차곡 쌓인 ‘무언가’를 밖으로 표현해 낸 책을 만나는 것은 너무도 반갑고 소중했다.
이 책은 영화를 사랑해 온 이들에게, 일본의 살아있는 지성이 궁금한 독자에게 모두 큰 만족을 안겨줄 것이라 확신한다. by Asl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