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용동물, 반려동물, 관상동물, 실험동물, 야생동물…
인간이 층위를 나누어 온 동물과의 관계를 입체적으로 들여다보다
- 생생하고 풍부한 사례, 생각의 연결고리가 교차하며 만들어 내는 물음표로
‘동물과 공존하는 삶’이라는 시대의 요구를 성찰한다
반려동물, 식용동물, 관상동물, 실험동물, 야생동물 등 인간의 기준으로 층위를 나눈 다양한 동물들이 오늘도 태어나고 살아가며 죽음을 맞이한다. 이 모든 비인간 동물과 인간은 생태계 안에서 영향을 주고받는다. 동물과 인간 그리고 환경 사이의 접점을 고민하는 ‘원헬스’는 수의학에서 출발한 개념이다. 수의학자들은 인간과 동물이 서로 매개가 되어 발생하는 인수 공통 감염병을 연구하다 보면 동물과 인간의 건강과 복지가 매우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고 이야기한다. 수의생화학자 이항은 원헬스의 개념을 다음과 같이 소개한다.
인간 사회의 문제에만 집중해서는 인류의 건강과 복지를 지키기 어려워요. 인간, 동물, 생태계, 자연과 환경 전체를 통합적으로 바라보고 해결 방안을 모색해야만 비로소 인류의 문제도 해결할 수 있다는 주장이 힘을 얻는 이유죠. 이러한 문제 해결 접근법을 ‘원 헬스(one health)’라고 해요. 동물과 환경을 건강하게 지키지 못한다면 인류의 건강 역시 질병에 노출될 수밖에 없습니다. 사람, 가축, 야생동물의 보건과 의학, 그리고 환경과 생태 및 사회, 경제, 법률 전문가와 관련 기관 모두가 협력하고 거시적인 통찰력을 가져야 이 복합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있어요.
- 〈프롤로그〉 중에서
많은 과학자가 현재 지구에서 ‘여섯 번째 대멸종’이 진행되고 있다고 경고한다. 여섯 번째 대멸종은 이전에 일어났던 다섯 번의 대멸종과는 성격이 전혀 다르다. 이 대멸종의 원인은 인간이며, 우리는 점진적으로 그리고 다각적인 방법으로 지금 이 순간에도 대멸종을 이끌어 가고 있다. 인간이 아닌 동물들을 직접 죽이기도 하고, 그들의 서식지를 파괴하거나 오염시키기도 하며, 급기야 이제는 다른 동물들이 지구에서 생존할 수 없는 기후 조건을 만들고 있다.
수의연구사 황주선은 야생동물을 물건처럼 사고팔거나 가두는 인간의 행동은 그 자체로 야생동물을 학대하는 것이며, 더 나아가 생물 다양성의 보전에도 매우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다고 이야기한다.
야생동물을 전시하는 행위는 왜곡된 인식을 전달하게 되죠. ‘아, 야생동물이라는 건, 이렇게 개인이 잡아서 가두고 키워도 되는 존재구나. 실내에서만 살게 해도 되고, 인간이 주는 음식을 구걸하게 해도 되네. 그리고 인간이 원할 때면 언제든 힘으로 누르고 억지로 만져도 되는구나.’
어떤 물음표도 떠올리지 않고 야생동물을 ‘전시’하고 ‘구경’하는 사회라면, 그런 모습이 ‘자연스럽게’ 여겨지는 세상이라면,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하게 되지 않을까요? 이런 사회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라면 야생동물을 생태계의 구성원으로서 존중하고, 우리와 공존해야 할 대상으로 받아들이지 않을 것입니다.
- 〈인간이 생태계의 균형을 찾을 수 있을까?〉 중에서(36쪽)
수의인문사회학자 천명선은 하나의 트렌드로 자리 잡은 반려동물 기르기는 어쩌면 통계에 집계되지 않는 동물들이 처한 열악한 상황을 가리는 데 좋은 장식이 되고 있는지도 모른다고 지적한다.
반려동물을 키우는 것은 특별한 경험입니다. 인간이 아닌 다른 종의 존재들과 유대감을 가지고 소통한다는 점에서 신비로운 일이기도 하지요. 그런데 우리가 특별하게 생각하는 만큼 실제로 반려동물들이 소중하게 다뤄지고 있는지는 의문입니다. 여전히 반려동물을 자신의 사회적 지위나 취향을 보여 주기 위한 수단으로, 건강을 위한 도구로, 사회적 활동의 촉진자로만 ‘활용’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스럽습니다. 귀여운 이미지와 함께 쓰이곤 하는 “나만 고양이가 없어”라는 인터넷 유행어도 ‘유대’보다는 ‘소유’라는 의식을 은연중에 강화하죠.
- 〈동물에게 인간과 함께 사는 일이란?〉 중에서(87쪽)
여섯 번째 대멸종의 위협, 우리는 함께 살아남을 수 있을까?
- 동물 그리고 환경과의 공존을 생각하면
누구나 조금쯤은 마음의 불편함을 느끼는 시대…
- 죄책감에서 한 발짝 나아가 희망이 되려면 우리는 지금 무엇을 해야 할까?
- “변화는 이미 시작되었습니다. 내일도 함께 ‘안녕’합시다!”
오늘날 인간이 다른 동물과 환경에 끼치고 있는 악영향이 무엇이고, 그것이 어떤 부메랑이 되어 우리에게 돌아오는지에 대해 부인할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누구나 조금쯤은 마음의 불편함을 느끼며 살아야 하는 시대가 되었는지 모른다. 그러나 지금 더 중요한 것은, 우리가 달라지면 세상이 변한다는 희망을 품는 일 아닐까?
어릴 적 개미를 관찰하던 기억, 고양이 네 마리의 집사로 살아가는 일상, 동물원 매표소에서 바라본 관람객의 모습, 동물원 교육을 벤치마킹하기 위해 방문했던 독일에서 “그 누구도 야생동물을 ‘만져도 되는 대상’으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텔레비전에서도 그런 내용이 나오지 않고, 교육기관에서도 이를 분명히 교육하고 있어서 동물원에서 그러한 욕구를 갖는 관람객은 당연히 없습니다”라는 답변을 듣고 생경했던 일 등, 동물과 뗄 수 없는 삶을 살아왔고 살아가고 있는 수의사들의 경험과 시선은 독자들에게도 ‘낯선 물음표와 새로운 연결의 경험’을 선사할 것이다. 이들의 이야기는 전문가의 식견인 동시에 이 사회를 구성하는 시민의 경험이며, 그것은 곧 우리 누구나의 시선과도 연결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인간이 만들어 놓은 인간의 우월한 지위는 한 동물종으로서의 인간이 새로운 병원체에 감염되는 데 어떤 특별함도 주지 못했다. 오히려 인간이 이용하는 동물을 통해 병원체가 종간 감염을 일으키는 데 영향을 주었다. 그리고 그 피해는 인간과 가축 모두가 입고 있다. 신종 감염병을 예방하기 위해 이제 인간은 동물과 경계 없는 대책을 세워야 한다.
곰 보금자리 프로젝트의 최태규 활동가는 동물의 복지와 사람의 복지는 서로 경쟁 관계가 아니라 결국 같은 방향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고 말하며 이제는 ‘원 웰페어’에 주목할 때라고 이야기한다.
한국은 유별나게 약자에게 인색한 나라 중 하나입니다. 한국 사회와 동물의 관계, 그중에서도 가축에게는 특히 인색함이 두드러져요.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가입국인 한국의 국가적 경제력이 약하다고 말하기는 어려울 거예요. 그러나 그에 비해 보통 사람들의 삶이 워낙 빠듯하다 보니 동물들이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관심을 기울일 여유가 없는 것 같기도 해요. 사람이 살 만해져야 동물의 삶도 살필 수 있을 테니까요. 동물들도 살 만하게 만들자는 주장은 동물과 다를 것 없이 사는 사람들의 삶도 함께 챙기자고 주장해야 설득력을 얻습니다.
그래서 사람이든 동물이든 사회적 약자의 지위 변화는 서로 경쟁하기보다 동시에 일어날 가능성이 커요. 사람과 동물을 가르지 않고 사회적 약자의 삶의 질을 두루 걱정할수록, 주어진 상황과 문제를 좀 더 나은 방향으로 바꾸어 갈수록 모두의 삶의 질이 나아질 거예요. ‘동물 복지와 사람 복지가 하나’라는 의미로 원 웰페어(one welfare)라는 말이 주목받는 까닭입니다.
- 〈동물 복지 농장이 중요한 이유〉 중에서(113쪽)
인간은 오랫동안 동물, 그리고 인간과 동물의 관계를 이해하려고 노력해 왔다. 이런 노력이 동물을 보다 효율적으로 사용하고 착취하는 데에만 쓰이고 있지는 않다. 이렇게 쌓아 온 지식은 인간과 동물의 절대적인 경계를 허무는 근거를 마련해 주었다. 또한 동물에 대한 인간 중심적인 태도를 돌아보는 계기를 마련해 주기도 했다. 어쩌면 인간이라는 종이 이루어야 할 다음 발전 단계는 종을 넘어선 ‘이해와 존중의 능력’일지도 모른다. 이 책 《동물이 건강해야 나도 건강하다고요?》를 통해 독자들이 인간과 동물 그리고 우리를 품고 있는 생태계를 바라보는 관점에 새로운 초점을 더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