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후감 : 하지 말라고는 안 했잖아요 ? - 한국문학 번역가 안톤 허의 내 갈 길을 가는 에세이- 안톤 허 지음, 어크로스, 2023.
‘안톤 허’는 2022년 부커상 국제부분 롱리스트(1차 후보)에 동시에 오른 한국소설 <저주토끼>(정보라의 소설)와 <대도시 사랑법>(박상영의 소설)을 영어로 번역한 사람이다.
(소설가 한강의 소설 ‘채식주의자’가 받은 상이 이 부커상이다. 이 상은 영어로 번역된 문학책만을 심사대상으로 한다.)
저 책들이 최종적으로 부커상을 타지는 못했지만 저 때 한국 언론은 한국 책 두 권이 후보에 올랐다는 사실에 무게를 두었을 뿐 저 두 권의 책을 번역한 사람이 안톤 허라는 번역가 한 사람이었다는 사실에 무심했다. 한국 사회의 번역가에 대한 전반적인 무관심이 이러했다.
이 책은 무엇보다도 한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출판계에 은근히 퍼져 있는 번역가에 대한 천시 풍조와 영어중심주의에 대한 비판을 요령있고 실감나게 하고 있다.
안톤 허는 이름 때문에 오해를 받지만 아버지가 해외주재원으로 있었기 때문에 어렸을 때 9년동안 해외생활을 했지만 한국인이고 계속 한국에서 살고 있다. 그래도 아마도 어렸을 때 영어를 쓰면서 한 해외생활이 한국문학 번역을 가능하게 하지 않았을까 하는 것이 내 생각이다. 그는 아버지의 강요에 의해 법대에 진학했고 졸업은 했으나 흥미가 없었고 그의 관심은 문학이었고 결국 번역의 길로 들어섰다.
우리가 흔히 번역은 영어나 불어로 쓴 다른 나라 책을 한글로 번역하는 것을 염두에 두고 있는데 안톤 허는 우리나라 문학책을 영어로 번역하는 사람이다. 이런 사람은 그냥 번역가라 하지 않고 특별히 ‘한국문학 번역가’라고 한다. 이 책을 읽어 보면 이런 사람이 아주 드물고, 정말 힘든 작업이다. 이런 사람이 전 세계를 통틀어 3명 정도이고 출판되는 책은 1년에 10여권 남짓이라고 한다.
한국작품을 번역하려면 탁월한 영어 실력을 갖추고 힘겹게 번역 작업을 하는 노고는 물론이고 작가에게 호소하고 한국출판사를 설득하고 번역 전문 기관에게 매달리고, 미국출판사에 제안서를 내밀어 허락을 받고 영미권 미국 인플루언서와 독자들에게 호소하여 책이 팔리게 해야 하는데 그런 작업에 더 많은 노고를 쏟았고 그것이 더 힘들었다고 했다. 안톤 허는 문학번역 수업을 받고 첫 단행본을 펴내는 데 약 9년이 걸렸다고 했는데 그는 낮은 지위와 안 좋은 대우에도 불구하고 끈기있게 번역하고 저런 작업을 했고 드디어 인정을 받았다. 이 책은 번역가로 어려운 여건 속에서 살아남은 눈물겨운 생존기이고 의지의 한국인의 자랑스런 성공스토리이다.
나도 한국 사람이 쓴 이런저런 책들을 많이 보지만 또한 영어권에서 쓰여진 번역책도 많이 읽는 편이다. 나는 책을 쓰는 저자들을 존경하지만 번역가들도 좋아하고 눈여겨 본다. 나도 오래전에 전임교수가 되기 전에 독일어 번역을 해 볼까도 생각했었다. 지금은 번역가들이 많지만 30년전에는 흔하지 않았고 독일 유학파 교수들은 번역을 안했다. (국내에서) 박사논문을 쓸 때 거의 완벽하게 통독한 독일 서적들이 몇 권 있었는데, 그때 그 책들과 독일 (문학이 아니라) 사회과학이나 법학 책들을 번역을 했었으면 하는 아쉬움과 미련이 지금도 있다. 그래서 나는 번역가들의 기사를 흥미있게 보고 있고 그들이 쓴 책을 종종 사서 읽었고 이 책의 소개도 그래서 내 눈에 꽂혔다.
안톤 허는 서울대 대학원 영문학과 입학시험을 칠 때 영어로 답안지를 썼다고 한다. 그러니까 시험감독을 하던 영문과 교수가 왜 영어로 쓰느냐고 물었다고 한다. 그는 “영어로 쓰면 안된다는 지시가 없잖아요…?”
이 말이 이 책의 제목의 탄생 배경이다. 이렇게 안톤 허는 엉뚱했고 탁월했고 용감했다. 그러니까 이 분야에서 이름을 날리고 있다.
안톤 허는 번역가가 되기 위해서는 “누가 불러주어야만 꽃이 되는 것이 아니라, 아무도 불러주지 않아도 꽃 필 수 있는 자세와 마음가짐.”이 필요하다고 했다. 또한 “상당수의 번역가들은 지식에 대한 욕심으로 박사과정 끝까지 전력질주하듯 달리는데 지식의 끝까지 갔더니 낭떠러지만 존재”하지만 그것을 받아들이라고 한다. “그걸 인식해야만 제대로 된 번역, 배움, 삶에 임”할 수 있다고 했다.
이런 말을 누가 감히 할 수 있겠고 이런 자세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되겠는가?
안톤 허의 한국문학에 대한 사랑이 남다르다. 독서는 기본이다.
“창작은 제 번역 일의 일부일 뿐이고, 번역 일도 결국 제 독서 행위의 일부에 불과”하다고 했다. 결국 독자가 되는 것이 우선이라는 얘기다. (이 책에 가끔 언급되지만 대학 교수님들은 대부분이 논문은 쓰지만 대부분이 독서는 안한다.) 어렸을 때부터 독서도 많이 했고 우여곡절 끝에 법학, 심리학, 불문학, 영문학의 학위를 가졌으니 나름 공부도 집요하게 했겠다.
모든 책은 탐구와 정진의 산물이지만 특히 이 책은 번역가로서 직업을 알리고 자신이 자진해서 선택한 고난을 극복하고 새로운 길을 개척한 안톤 허 자신의 다큐멘터리라고 봐도 된다. 이 책을 계기로 번역가들에 대한 대우와 지위가 향상되었으면 좋겠다.
* 알고 보니 안톤 허는 성소수자다. 그런 것은 염두에 두지 않고 읽었는데 하기야 굳이 그것을 의식할 필요도 없다. 그래서 이 책에서는 아내나 와이프라 하지 않고 배우자라 했다. 나의 선입견은 동성애자는 나약하다는 것이었는데 이렇게 굳센 의지를 가진 사람도 동성애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의 성소수자에 대한 선입견이 오류이었음을 인정한다.
* 안톤 허는 신경숙 작가의 소설을 좋아하는데 첫 번역 작품이 신경숙 작가의 <리진>이라는데, 나도 오래전에 그 책을 읽었는데, 전체적으로 별로였고 역사소설은 참 쓰기 힘든 것이구나 하고 느꼈었다. 하기야 안톤 허의 문학에 대한 안목이 나보다는 더욱 뛰어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