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이 아닌 나에게 하는 질문에는 삶에 대한 의지가 묻어 있다는 것을 셀프 인터뷰를 하며 알게 됐다. 무엇이든 질문을 던져두면 어떻게든 나 스스로 결말을 완성하고야 마니까. 더 좋은 건 스스로 질문하면서 나만의 속도를 찾아갈 수 있었다는 것이다. 세상이 정해준 기준이나 속도가 아닌. 최근에는 운명처럼 한 강연에서 인상적인 이야기를 들었다. 스스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질문하는 사람이 돼야 한다는 것이었다. 어쩌면 스스로 질문을 많이 한다는 것은 적극적으로 삶을 개선하려고 하는 나의 의지일지도 모르겠다. 스스로 묻고 답했지만,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한번쯤 답해보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질문과 대답을 적었다. 물론 내가 한 질문과 대답을 모범답안이라 할 수 없다. 시간이 흐르면 사람의 생각은 변할 테고, 언젠가는 내가 지금 했던 질문들도, 나의 답변도 달라질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내용이 ‘새로고침’되더라도, ‘질문 있는 사람’으로 살아가겠다는 마음만은 그대로일 것 같다.
---「프롤로그」중에서
하루의 끝에는 굳이 무언가를 들으려 하지 않는다. 이미 하루 종일 많은 것을 보고 들어서 머리와 귀가 꽉 차있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예외가 있다면 저녁에 써야 할 글이 있을 때다. 글을 쓸때는 왠지 조용하고 차분한 음악이 어울릴 것 같지만, 나는 아침저녁 상관없이 쾅쾅 울리는 옛날 노래들을 주로 찾아 듣는다. 윤상, 김현철의 노래, 최신 노래 중에서는 르세라핌의 앨범을 틀어둔다. 『기록하기로 했습니다』를 쓴 김신지 작가님은 빗소리 ASMR이나 재즈, 발라드처럼 조용한 걸 들어야 글이 써진 다고. 성향에 따라 같은 일도 이렇게 다르게 하다니! 시끄러워야 무언가에 집중되는 나와는 전혀 달라서 너무 웃겼다. ‘같은 일도 다르게 한다’는 말은 주로 남다른 결과물을낸 사람을 보며 감탄하거나 칭찬할 때 쓰는데, 나는 아주 사소한 일에도 이 말을 자주 쓰고 싶다. 고심해 고른 노동요 하나로도 같은 일을 다르게 할 수 있고, 그 순간과 과정을 즐길 수 있으니까. 이런 마음으로 매일 아침과 저녁의 플레이리스트를 정비한다.
---「아침과 저녁의 플레이리스트?」중에서
꼰대 같은 말이지만 인생에 버텨야 하는 시간은 필요하다. ‘이직 많이 하면 안 돼, 그래도 회사에 들어갔으면 2, 3년은 버텨야지’ 이런 식의 버티기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이때까지와는 다른 버티기, 그러니까 자신만의 기준과 신념, 가치관에 근거한 버티기가 필요하다. 우선 내가 이 회사에서 힘든 이유가 내 성향 때문인지, 회사에 문제가 있는지를 제대로 보기 위한 시간이 필요하다. 제대로 보지 않거나 볼 새도 없이 ‘불편하다’ ‘마음에 들지 않는다’ 등 모호한 기분만 갖고 변화를 시도한다면, 그냥 그 회사에 다녔다는 사실만 남고 내게 남는 게 없다. ‘고인 물은 썩는다’는 말도 맞지만, 고여야 흐를 수 있는 게 물이기도 하니까.
---「버틸까, 이직할까」중에서
나도 돈보다는 시간에 더 가치를 두는 사람이라서 무조건 시간을 선택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무라카미 하루키도 자신이 번 돈으로 자유와 시간을 산다고 말하지 않았나. 나도 돈을 버는 이유가 자유와 시간을 갖기 위해서였다. 시간과 돈이라는 선택지 앞에서 10년 전의 시간으로 돌아가는 것을 선택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10년 전으로 돌아간다고 생각하니, 지금 내 곁에 있는 사람들이 없었다. 지금 이 사람들이 없는 순간을 상상하니 너무 외로워졌다. 10년 전으로 돌아가면 남편과 소중한 사람들을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우리들의 추억은 어떻게 되는 걸까. 그리고 내가 쌓은 시간들은? 최근 〈유퀴즈〉에 나온 배우 강동원 씨는 너무 쉼없이 20여 년을 달려왔기 때문에 다시 과거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지금의 여유와 나이듦이 좋다고. 이 이야기를 들은 친구도 비슷한 답변을 했다. 뭐가 뭔지도 모르고 무조건 열심히 했던 20대보다는 이제 뭐가 뭔지 조금은 알것 같은 30대가 좋다고. 너무 힘들었던 예전으로는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말이다. 시간과 돈 중에 하나 고르는 질문인 줄 알았는데, 이젠 어떤 시간을 보내왔냐고 묻는 질문으로 느껴진다. 몇 년이 지나서 이 질문을 다시 들었을 때는 조금 더 고민하지 않고 대답하고 싶다. 지금까지 열심히 잘 살았고, 지금 함께 하는 사람들 그리고 지금의 삶이 너무 좋기 때문에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말이다. (결국 강동원도, 친구도, 나도 10억을 택했….)
---「10년 전 과거로 돌아가기 vs. 10억 받기」중에서
각자 삶의 속도가 다르다는 걸 알면서도 왜 타인의 속도를 의식하는 걸까. 비교하는 나쁜 습관을 들였던 학창 시절에서 그 힌트를 찾았다. 정해져 있던 수업시간처럼, 모두에게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지기 때문에 정해진 시간 안에 무엇을 해냈는지를 자꾸 비교하는 것 같다. 우리 삶에서 공평하게 주어지는 것, 시간 말고 또 다른 게 있을까? 가령 외모나 재력은 당연히 천차만별이고, 비교하기도 어렵다. 하지만 누구든 하루 24시간을 살아내야 한다. 보여지는 것이 중요하고, 보여주기도 쉬운 아웃풋 중심의 사회에서는 누가 어떤 시간을 얼마큼 보냈는지 비교하기 쉽다. 변명처럼 보이겠지만 이쯤 되면 남들과 비교하지 말자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한 미션 아닐까. 답이 이미 정해진 질문이라면, 질문이 잘못된 것일 수도 있다. 얼마 전에 친구들과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것 말고 통제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자’는 이야기를 나누면서 생각했다. 비교할 수밖에 없는 운명이라면, 무엇을 비교할지는 내가 통제하자고. 빨리 움직여서 얻은 경험의 양보다 느리더라도 깊이 경험한 즐거움을, 더 멀리 보고 더 길게 보고 삶 전체의 평균 속도를… 비교해서 얻고 싶었던 것은 남보다 빠른 속도가 아니라 나는 내 삶을 얼마나 잘 살고 있는지 알고 싶은 것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질문해보길 잘했다.
---「나이, 경험치, 속도… 왜 남들과 비교하는 걸까?」중에서
이 책의 작업이 막바지에 접어들었을 때 『일놀놀일』을 함께 쓴 규림과 함께 ‘내 인생을 바꾼 질문들’이라는 주제로 전주에서 북토크를 했다. 각자 ‘질문’을 주제로 인생 질문을 이야기했는데, 규림의 인생 질문이 인상적이었다. ‘자기 자신에게 호기심을 가지라.’(제니퍼 애슈턴, 『지금, 인생의 체력을 길러야 할 때』, 북라이프) 우연히 책에서 이 문장을 보고 규림은 ‘나는 내가 궁금한가?’라는 질문을 시작으로 자기 자신에 대해 더 질문하고 궁금해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나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사람의 인생은 궁금해하면서 나 자신에 대해선 궁금해하지 않았던 예전을 떠올리면서 말이다. 내가 나에게 관심을 주지 않으면 아무도 나에게 관심을 주지 않는다. 내가 가장 궁금해하는 사람은 바로 나여야 한다. 질문하는 게, 좋은 질문이 중요한 건 맞지만 그 질문이 내 삶에 영향을 주지 못한다면 그게 다 무슨 소용인가. 내 삶을 좌우할 사람이 나여야 한다는 점에서도 나에게 관심을 갖고 질문하는 것은 중요하다. 나로서 살기 위해선 타인을 궁금해하는 것만큼 나 자신에 대해서 궁금해하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난 앞으로 어떤 이야기를 만들어갈지, 나는 어떤 것을 꾸준히 하고 싶은지, 어떨 때 가장 행복한지. 나에 대해 궁금해하고 알아가는 게 가장 나다워지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에필로그」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