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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스트의 책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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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배수아
관심작가 알림신청裵琇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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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언어가 M에게 절대적인 세상의 징표였다면, 음악은 접근할 수 없는 정신이자 종교이고 영혼 그 자체였다.
--- p.8 더, 더 많은 음악, 하고 그 목소리는 말했다. 보통 수량을 나타내는 많다, 라는 표현은 이 경우에 적절한 것이 아니다. 더 아름답다 혹은 더 슬프다, 더 멀다, 더 죽어 있다, 더 혼자 있다, 라고 표현할 때처럼 그 목소리는 말했다. 더 ……한 음악. 더 죽어 있다, 라고 우리는 아무도 말하지 않는다. 그것은 비교할 수 없는 절대적인 가치이기 때문이다. 손바닥을 뒤집듯이 단지 둘 중의 하나만을 가질 수 있는 문제이다. 음악은 절대적인 것이고 죽음도 마찬가지다. 더 많은 죽음이나 덜한 죽음이 존재하지 않듯이 음악도 마찬가지다. 그것은 영혼의 등가에 해당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 p.9 일반적인 생각대로라면 음악을 내게 더 많이, 라고 말하는 편이 적절할지도 몰랐다. 더 많은 죽음이거나 더 많은 알몸(나체의 개체수를 나타내는 것이 아닌), 더 많은 (단 한 명인) 최초의 인간, 더 많은 우주, 더 많은 음악의 영혼, 더 많은 유일한 것, 더 많은 더 멀리 그쪽으로, 더 많은 멘델스존, 더 많은 M, 그리고 더 많은 그 겨울. --- p.10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무거운 짐을 지고 더 무거운 마음을 안고 밤 기차를 타고 멀리 떠났으나 결국은 자신에게서조차 벗어나지도 못했던 그 여행에 대해서. --- pp.27~28 “너도 그런 데서 죽게 될 거야, 분명히.” “왜 그렇게 생각하는 거야?” “다른 장소란 존재하지 않으니까. 그렇지 않아?” --- p.83 정신적 빈곤과 경박함은 곧 죽음과 다를 것이 없다. 이것은 M의 생각이었다. 진지한 시선이 결여된 정신은 부패하는 고기보다 더 나을 것이 없다는 것이다. 죽음이란 실제로 구체적인 형상으로 나타나기에 앞서서 추상적인 개념으로 우리 삶의 내용을 포괄적으로 점유한다는 것이다. 그 기준으로 말한다면, 이미 태어나는 순간부터 죽어 있는 사람들이 있다. --- p.84 언어를 알게 된다는 것은 결국은 자국어의 경계를 넘어서서 사고하는 일이며(외국어를 배운다는 의미에서가 아니라), 성장한다는 것은 단지 언어를 통해서만이 가능하며 그것은 단지 언어만이 사고(소통이 아니라)의 명확한 도구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M의 생각은 환영이었다. M은 자국어가 단지 의지만 있으면 얼마든지 넘어설 수 있는 경계에 지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설사 외국어에 능통하다 하더라도 역시 의식의 감옥이라는 것을 말하지 않았으나, 나는 알고 있었다. 그리하여 마침내는, 내가 M과 서로 다른 자국어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 견딜 수 없을 정도로 고통스러워졌다. --- p.106 나를 깊게 관통했던 것은 소유욕이란 무엇일까, 하는 물음이었다. 그것은 어디에서 오며 과연 용납될 수 있는 것인가. 아름다움, 섬세함, 배려와 관용, 은둔된 평화, 글을 읽고, 음악과 함께 그리고 쓴다…… 그러면서 마침내 찾아낸 영혼의 일치, 그 모든 것들을 한순간에 배반하고 파괴해버릴 만큼 그것은 정당한 것인가. 인간은 왜 소유욕을 가지며 그것이 충족되지 못할 때 짐승처럼 분노하는 것일까. --- p.157 M은 마치 그림이 전혀 없는 책과 같았다. 내가 영혼을 바쳐 읽지 않으면, 나는 M을 영원히 알 수 없게 되는 그런 존재 말이다. 나는 내가 M을 일생에 단 한 번밖에 만날 수 없으며, 그 기회를 영영 잃었다고 인정할 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M에 대한 그리움을 멈추지 않았다. M에 대한 그리움이 없었다면 나는 군중 사이를 산책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그것이 아니었다면 나는 사람들의 얼굴을 바라보거나 말을 걸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 pp.187~188 |
이상하고 아름다운 세계,
배수아의 결정적 순간들을 다시 만난다 작가 배수아는 1993년 등단하여 30년 가까이 ‘한국문학의 가장 낯선 존재’로, 자신의 이름을 하나의 장르로 만들어왔다. 그의 작품은 독자로 하여금 허기진 줄 모른 채 허기져왔던 새로운 감각에 눈뜨게 했다. 시공간의 원근을 비틀어 비일상적인 것, 꿈과 현실의 경계를 지운 것으로 가득한 세계를 펼쳐 보임으로써 소설을 읽는 일이 주는 감상의 폭과 깊이를 확장시켰다. 이상하고 아름다운 세계, 배수아라는 이름의 그 세계에 결정적 장면으로 자리매김하게 한 네 작품을 새로운 장정으로 다시 만난다. 삼십대에 막 접어들어 펴낸 첫 번째 소설집 『푸른 사과가 있는 국도』, 이듬해 펴낸 두번째 장편소설 『부주의한 사랑』, 마니아 독자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는 작품이자 ‘에세이즘적 글쓰기’의 대표격으로 일컬어지는 장편 『에세이스트의 책상』, 여행가의 세계와 에세이스트의 세계 사이에 놓일 독특한 소설집 『훌』이 그것이다. 늙거나 낡지 않은 작품들. 환상적인 불협화음, 독창적인 목소리를 내는 이 작품들은 배수아의 새로운 독자는 물론, 오랜 독자에게도 반가운 선물이 될 것이다. 나는 소설이란 독자의 감수성과 감수능력과 독서력에 의해 완성된다고 보는 편이다. 작가의 상상력과 독자의 상상력이 함께 요구된다고. 그렇게 완성된 소설이 마침내 살게 되는 거라고. 나는 내 소설이 상상력이 있는 독자를 스스로 찾아가기를, 그럴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_배수아, 『악스트』 no.17 송종원 평론가와의 인터뷰에서 “배수아의 소설은 익숙한 정체성의 징표들을 버리고 ‘구별된 나’를 선언했다. 부당한 보편성이나 미리 놓여 있는 공통감각으로 환원되지 않는 단독적인 ‘나’를 재발견하기 위해 배수아의 소설은 여행을 계속해온 셈이다.”(문학평론가 김미정) “암시와 회상, 망각과 착각 사이를 오가는 현기증. 그 현기증 사이로 모든 확실한 것들이 빠져나가는 미끌거리는 느낌. 이것이 배수아의 소설이 우리에게 제공하는, 익숙하고 안정적인 사물들의 세계가 녹아 없어지기 직전에 이르는 재난의 체험이다. 이 재난이야말로 우리에게 ‘새로운 것’에 대한 체험의 입구로 데려다준다는 점을 다시 강조할 필요가 있을까.”(문학평론가 권희철) 읽는 이의 가슴 깊은 곳을 건드리고 깨어나게 하는 소설, 국적과 성별과 모국어와 그에 따라 부여되고 당연시되는 역할과 운명들에서 탈피한 소설, 설명되기보다는 체험되는 소설, 그 신비로운 세계로의 입장을 적극 권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