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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우 속의 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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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3년 11월 08일
쪽수, 무게, 크기 264쪽 | 346g | 134*200*17mm
ISBN13 9791165348359
ISBN10 1165348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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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도라는 어떤 심정이었을까. 절대 열지 말라던 상자를 굳이 열고야 말았던 그녀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다. 원래 하지 말라고 하면 더 하고 싶어지니까. 정말로 열어선 안 되는 상자였다면 처음부터 주지 말아야 하는 거 아니야? 더군다나 열지 말라 해놓고선 바닥에 희망을 숨겨두는 것은 또 무슨 장난일까. 결국 희망을 찾으려면 상자를 열어야만 한다니. 세상에 재앙을 불러왔을지언정 판도라가 스스로 상자를 열었기에 인류는 신으로부터 하사받은 희망을 얻을 수 있었다. 그러니 내가 이 상자에 손을 대려는 것도 당연한 마음이다.
--- p.7

“지구 생명체를 선물하는 건 어때요?”
“동물을 데리고 갈 수는 없어. 이미 여럿 죽여서 여론이 바닥이거든.”
“제가 생각한 건 식물이에요.”
선우가 휴대폰을 꺼내 직접 찍은 집 베란다 사진을 보여주었다. 정갈하게 가꿔진 화분이 가득했으며 차분하고 섬세한 그와 잘 어울리는 전경이었다. 나는 얼굴을 선우 으로 쑥 들이밀어 휴대폰을 보는 척 그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선우는 평소 말수가 많지는 않았지만,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말할 땐 눈이 반짝거렸다. 그가 손가락으로 확대해서 보여준 건 작은 소나무 화분이었다.
“여기 가운데에 있는 건 소나무 분재예요.”
“음. 고급스럽네.”
“보기에도 멋있고 의미를 담기에는 더욱 좋아요.”
“어떤 의미?”
“소나무는 식물개체 중 제법 항상성이 높은 종자예요. 사시사철 푸르고 강직한 모습을 보여주니까요. 초록 잎은 생명을, 흑갈색 뿌리는 굳건한 육지를 상징한다고 봐요. 이 아름다운 식물이 하나의 지구인 것이죠.”
--- p.37~38

“이 우주는 모든 것을 쌍생성합니다. 플러스가 있으면 마이너스가 있듯이 물질이 탄생하면 반드시 어딘가에 반물질이 생성되지요. 그리고 쌍소멸을 피하기 위해서 두 물질은 서로 다른 차원으로 흩어지는 운명을 가집니다. 지구의 반물질에 해당하는 반-지구, 그것은 바로 SP이며 반대로 SP의 입장에서 반-SP에 해당하는 별이 지구입니다. 얼마나 멋진 거울우주입니까?”
--- p.56~57

“그건 문제가 안 됩니다. 과학이 결국 도덕까지 초월하지 않습니까? 옳은 것, 그른 것, 모든 것은 우수하고 똑똑한 자들이 규정하는 가치입니다. 그리고 우수한 자들이 정점에 두는 학문이 바로 과학이지요. 그러므로 발전된 과학을 영위하는 자들이 모든 가치를 재단합니다. 자존심이 상해도 우리가 SP를 따라야 합니다. 그래야 인류 존속도 실현 가능합니다. 이 생각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 p.99~100

정말로 우리는 서로의 물질이자 반물질일까. 충돌하고 소멸하며 원망하고 걱정하며. 꼭 닮은 우리는 치열하게 서로를 향해 말없는 마음을 건네며 살았다. 매 순간을 미움이라 정의하고 부정하려 했지만 나의 짝인 너를 내 세계에서 도려내는 일은 불가능함을 잘 알고 있다. 이 우주 모든 물질에게는 짝이 있고, 꼭 맞아떨어지는 퍼즐 조각처럼 서로에게 맞춰져 결코 거부할 수 없는 에너지를 발산한다. 우리의 순간이 쌍소멸이라는 저주로 치달을 거라 두려워했지만 마음속에는 그럼에도 놓지 못하는 의지가 있었다.
--- p.22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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