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글이든 서술 원리 중 가장 기초적이고 핵심적인 것이 “말로 설명하지 말고 보여줘라.”이다. ‘키가 크다’ 대신 ‘키가 184센티미터 정도’로, ‘그 여자는 미인이다’ 대신 ‘콧날이 시원스럽게 길다’ 로, ‘더러운 남자’ 는 ‘목요일쯤에는 항상 몸에서 걸레 썩는 냄새가 나는 남자’ ‘소변을 보면 꼭 바지에 흘린 자국이 남는 남자’ 식으로 써라.
첫 문장이 움직임에서 시작되면 단숨에 독자의 흥미를 끌 수 있다.
“하워드 로아크는 웃었다.” (아인 랜드의「샘」)
움직일 때는 짧은 문장, 사색할 때는 긴 문장이, 감각적 암시가 함축된 정서는 더 긴 문장이, 분노는 스타카토 문체가 제격이며, 빛깔이 없거나 머뭇거리는 대화체를 피하고, 별 부담이 없을 때는 항상 능동태를 써라.
등장인물은 주변에서 찾아라. 상상이 현실을 못 따라가기 때문이다. 주인공의 모습이나 성격 등 부수적인 정보 또한 거의 모두 ‘기성품’을 활용하라. 실존 인물을 통째로 작품에 담기 어려운 경우에는 여러 사람을 한 인물로 합성하라.
내가(안정효) 초등학교 때 같은 반 아이였던 한기찬은 별명이 ‘기차 대가리’였는데, 언젠가 그는 교실에서 꼽추인 아이를 발랑 눕혀놓고 팽이처럼 돌린 적이 있었다. 나는 그 행동을 인간의 잔혹성을 부각하는 데 활용하였다.「하얀 전쟁」의 베트남 여인 하이는, 전쟁 중에 나와 친했던 보탄 손의 아내와 백마부대의 장교와 친했던 짜우 소년의 어머니를 합성한 인물이다. 「헐리우드 키드의 생애」의 헐리우드 키드는 같은 세대 모든 사람이 겪은 모든 경험을 단 하나의 인물로 집약해 놓은 종합 개념과 마찬가지여서, ‘단체로 찍은 독사진’이다.
극적 효과를 내려면 ‘뒤통수 치기’가 좋고, 독자를 긴장시켜 관심을 붙잡아 두려면 ‘절벽에 매달기’가, 인물 묘사를 효과적으로 하려면 ‘약 올리며 옷 벗기’가 효과적이다. ‘노루 꼬리 글쓰기’는 속도가 빨라야 한다. 형용사와 부사를 털어내고 접속사를 제거한 다음, 명사와 동사로만 엮어진 문장은 눈부신 효과를 낸다. 이 모두가 작가에게는 필수적인 기법이다. 찰스 웹이 쓴 「졸업생」의 벌거벗은 대화체는 노루 꼬리의 본보기이다.
“우린 바보가 아니죠.” 그가 말했다. “그런데도 우리가 하는 일이라야 겨우 이리로 올라와서는 옷을 벗고 같이 침대로 기어들어가기가 고작예요.”
“그게 싫증이 났어?”
“그렇진 않아요. 하지만 가끔 가다가 몇 마디 얘기라도 나누면 좀 분위기가 좋아지지 않을까요?”
그녀는 대답을 하지 않았다.
“생각해 봐요.” 벤자민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정말 속속들이 서로를 알면서도 서로 아무 얘기도 안 하는 우리들은 뭔가 좀 이상한 거 아녜요?”
“무슨 얘기를 하고 싶어?”
“아무 거나요.” 머리를 저으면서 그가 말했다. “아무 얘기라도 좋아요.”
“미술은 어때?”
“미술요.” 벤자민이 말했다.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좋겠군요. 부인이 얘길 시작하세요.”
“벤자민이 시작해.” 그녀가 말했다. “난 미술이라면 깡통이니까.”
“미술이라.” 그가 말했다. “미술에 대해서 뭘 알고 싶으시죠? 현대 미술을 더 좋아하나요, 아니면 고전 미술인가요?”
“둘 다 싫어.” 그녀가 말했다.
“미술에는 흥미가 없으시군요.”
“그래.”
“그런데 왜 미술 얘기를 하고 싶어하죠?”
“누가 하고 싶댔어?”
하고 싶은 말을 다 했으면 주저하지 말고 마침표를 찍어라. 예를 들어 작가이며 문장 이론가인 로이드 리브는 은광을 찾아 헤매는 두 명의 늙은 광부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소설을 썼다. 그들이 겪는 고난의 과정은 철저하고 처절하게 묘사되었으며, 마지막 장면에서 광부 한 사람이 천신만고 끝에 산을 내려와 다른 광부에게 말했다. “찾았어, 은광을 찾았다구!” 작품은 그 말로 끝난다. 리브의 선배가 이 작품을 보고 이렇게 평하긴 했지만 : “야박하구만. 멀고도 험한 길에서 추위와 굶주림과 외로움을 견뎌낸 독자는 은광 안을 들어가 구경할 권리가 충분하지 않나?”
문체의 종류는 사람 수 만큼이나 많다. 거름내 풍기는 흙빛 문체(이문구), 냉정한 스타카토 문장(헤밍웨이), 학구적 관용어법을 길거리 어법과 결합시키거나(솔 벨로우), 질경이 같거나(존 어빙), 편안하고 세속적인(존 스타인벡) 문장, 의식의 흐름을 헤쳐나가는 문체(윌리엄 포크너), 검박하고 심오한(보리스 빠스쩨르나끄) 문체, 자유분방한 마술적 사실주의(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께스) 문장 등등이 있다.
“내가 줄달아 물었던 것은 그가 연방 허벅허벅 웃으면서 고개를 가로저었기 때문이었는데, 내 말이 다 된 뒤에야 용모를 본래의 자기 얼굴로 반죽한 다음 무게 달린 음성으로 말했다. ‘우리네모냥 평생 끓탕에 삶기며 찍소리 한마디 못 내본 여물주걱이야 워디서 오라면 오구 가라면 가야지 달리 숨통 댈 디 있는 중 아남?’”(이문구의 「관촌수필」)
어떤 과정을 거쳐 쓰든, 무슨 문체로 쓰든, 모든 글쓰기의 공통점은 한가지이다. 요령으로는 뚝심을 당하지 못한다는 것(안정효)과 읽기에 쉬운 글이 가장 쓰기 어렵다는 것(헤밍웨이)이다.
--- 본문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