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이해하신 분도 있겠지만, 그것은 ‘사회’나 ‘중간영역’이 아니다. 이러한 작품에서 배제된 것은 ‘세계 설정’이다. 작품 내부에 삽입되는 ‘우주세기 0079’나 ‘성단력 2998’ 같은 가공의 역사, 또는 ‘모빌슈트’나 ‘모터헤드’, ‘미노프스키 입자’나 ‘이레이저 엔진’ 같은 SF 설정을 축으로 이야기의 배경에 존재하는 세계관에 액세스한다는 독법 그 자체가 여기서는 배제되어 있다. 《최종병기 그녀》의 세계에서 치세는 왜 싸우는지, 그 병기는 어떤 원리로 가동하는지 전혀 알 수 없다. 별의 목소리도 마찬가지이고 《이리야》 또한 아키야마 자신이 말한 것처럼 ‘의도적으로 삭제’되어 있다. 그리고 독자는 그러한 설정 등을 거의 신경 쓰지 않고, 청소년의 자의식 또는 소년과 소녀의 연애, 슬픈 사랑에 완전히 감정을 이입한다. 신세기 에반게리온도 ‘인류보완계획’ ‘범용인형결전병기’ ‘사도’라는 수수께끼에 쌓인 단어를 자주 등장시키며 실컷 시청자의 흥미를 끌어놓고는, 종반부의 노선 변경에 의해 그에 대한 해설을 전부 내팽개치고 이카리 신지라는 등장인물 1인의 자의식만을 클로즈업했다. 그리고 후발주자인 세 작품에 이르면 ‘세계 설정’은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는다.
--- 『《최종병기 그녀》 별의 목소리 《이리야》가 배제한 것』
루프물이란 ‘시간 SF’의 일종으로, 등장인물이 어떠한 원인에 의해 동일한 1주일, 또는 어느 특정 시점부터 자신이 죽을 때까지 등의 시간을 반복하는 작품을 말한다. 오타쿠 문화에서는 특히 오시이 마모루 감독의 1984년 작품인 극장판 애니메이션 우루세이 야츠라2 뷰티풀 드리머가 문제작으로서 크게 화제가 되었다. 오시이 감독은 학원제 하루 전을 계속 반복하는 주인공 그룹의 모습을 그린 이 작품을 통해, 몇 년씩이나 연재가 계속되어도 시간이 경과하지 않는 원작의 러브코미디 세계를 지적했다. 뷰티풀 드리머 이후 오타쿠 문화에서 루프물은, 오타쿠 문화나 그것을 소비하는 오타쿠들 자신의 모습을 그려내는 것으로서 만들어지거나 논해졌기 때문에, SF의 장르 중 하나라는 단순성을 넘어 독특한 위상을 차지하고 있었다.
--- 『루프물의 전통과 게임적 리얼리즘』
그렇기 때문에 앞에서 언급한 여러 작품은 독자와 동일하게 현대를 살아가는 젊은이를 등장시키고, 과잉으로 보일 정도로 자기언급을 하고, 거대로봇이나 최종병기, 명탐정이나 우주인, 그리고 세카이계 등의 만화 같은, 허구의 존재에 불과한 것을 표현하려 한다. 그리고 등장인물이 만화를 만화라고 지적할 수 있는, 근대적인 자의식과 상처 입는 신체를 가진 살아 움직이는 인간, 이른바 투명한 문체로 그려 마땅한 존재임을 명확히 한 후, 정작 그들 자신이 허구라고 지적한 바로 그 불투명한 세계 = 우주전쟁, 밀실살인, 세카이계 내부로 그들을 떠민다. 아즈마가 말한 세카이계의 반투명성은 이러한 자기언급 운동에 의해 성립한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반투명한 문체 = 아톰의 명제는 등장인물에 의해 ‘작중의 사태가 흔해빠지고 황당무계하며 허구적인 것’이라고 지목되지 않으면 성립되지 않는다. 그렇게 정의내림 당하고, 인지되고, 조롱당했기에 세카이계가 융성했던 것이다, 라고 결론지을 수 있다.
--- 『자기언급 운동이 세카이계를 성립시킨다』
그러나 동방의 경우, 원작자 ZUN의 설정과 팬의 2차 창작 설정의 경계가 극히 애매해서, 명확하게 제작자와 수용자를 구별할 수 없다. 물론 수용자가 만든 설정 중에는 서로 모순되는 것도 있지만 동방 프로젝트의 팬은 그다지 엄밀한 설정을 기대하지 않는다. ZUN부터가 캐릭터의 동일성에 대한 얽매임이 희박하고, 종종 체형이나 머리 모양 등이 크게 바뀐다. 설정 자체도 ‘하늘을 나는 정도의 능력’ 등, 일부러 애매하게 쓰여 있다. 2차 창작을 하는 쪽에서도 이야기를 쓸 때, 그런 설정의 다발에서 취사선택해 캐릭터를 그리고 있는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동방은 아즈마 히로키가 말한 ‘데이터베이스 소비’의 전형이라고도 생각된다.
---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