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목정보
발행일 | 2012년 01월 02일 |
---|---|
쪽수, 무게, 크기 | 193쪽 | 288g | 153*224*20mm |
ISBN13 | 9788937462788 |
ISBN10 | 8937462788 |
발행일 | 2012년 01월 02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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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193쪽 | 288g | 153*224*20mm |
ISBN13 | 9788937462788 |
ISBN10 | 8937462788 |
노인과 바다 작품 해설 작가 연보 |
별점에서 굉장히 적나라하게 보이듯 나는 예민하고, 불편한 게 많고, 인내심이 없어 이 작품에 대해 1점을 주기도 싫었다. 별점이라는 거 내가 주고싶으면 주는 거고 안 주고 싶으면 안 주는 건데 왜 1 점은 무조건 줘야 하는 거임?
작가가 힘들게 썼으니까 1점을 줘야 하는 거임? 정말 이해할 수 없군요.
다시 이 작품에 대한 후기를 작성해보자면 나는 남자 작가의 글에 대해서 올려쳐주고 싶은 마음이 추호도 없기에 30 페이지 가량 읽고 나온 그 단어에서 바~로 탈주닌자가 됐다.
친구가 말하기를 '노인과 바다'는 부산이다.
헤밍웨이가 미쳤다고 한국의 부산을 배경으로 썼다는 것이 아니라 부산이라는 지역의 특징이 '노인과 바다' 라는 것이다.
웃고 넘기세요... 안 웃겨도 넘어가세요.
처음에 노인과 소년이 나온다. 일단 주인공 둘 다 남자다. 노인이 될 남자와 이미 노인이 된 남자. 그 둘이서 낚시를 하고, 노인을 측은하게 여기며 먹을 거리를 가져다 주고, 그 노인과 시간을 떼우는 소년의 이야기가 초반 내용이었다.
제대로 드르렁~하게 된 건 야구 이야기를 해 달라고 해서 노인이 심각한 야빠였는지 과몰입 오타쿠모드로 야구 이야기를 하기 시작한다.
나는 야구를 좋아하는 편인데 저렇게 재미 없게 야구 얘기하는 남자는 군대 얘기 하는 게 더 나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먼십] 그 자체였다.
거기서 이미 내 안에서 노인의 평가는 나락갔고, 그 후에 나온 내용 중 하나에서 알게 된 정보를 말하며 중요한 불호 후기를 시작하겠다.
스페인어는 무생물도 성별을 나누어 지칭하는 단어가 달라진다.
노인은 늘 바다를 la mar로 생각했다.
사람들이 스페인어로 바다를 좋게 생각할 때 쓰는 말이었다. 바다를 좋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가끔 바다를 펌훼할 때가 있지만 그럴 때조차 여기 사람들은 바다를 여자로 지칭했다. 젊은 어부들 가운데 낚싯대에 찌 대신 부표를 달아쓰고 상어간으로 큰돈을 벌은 이들은 el mar라고 남성형으로 불렀다. (중략)
그러나 노인에게 바다는 늘 여자였고, 큰 호의를 베풀다가도 거두어가는 존재였다. 노인은 혹여 바다가 거칠어지거나 못되게 굴어도 바다로서도 어쩔 수 없으려니 여겼다. 여자들이 달에 많은 영향을 받듯 바다도 달의 기운을 받아서 그러려니 했다.
여기서 노인이 여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서술이 됐고 다음 발췌할 내용에서 나는 탈주했다.
"아구아 말라로구나. 갈보 년 같으니."
여기서 나는 과연 저 '갈보' 라는 단어가 정말 내가 생각하는 은어일까? 정말 그 단어를 직접적으로 썼다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전문학 중 세계 명작이라며 떠받들여지는 책이라고? 의문을 제기하며 검색하기 시작했다.
갈보의 ‘갈’은 사람의 피를 빨아먹어서 몸을 상하게 하는 갈(蝎)이라는 해충에서 따온 말이라고 한다. ‘보’는 울보, 째보, 곰보 등 천시되는 사람 뒤에 붙이는 접미사다.
[네이버 지식인 답변 발췌]
(아구아 말라: '해로운 물'이라는 뜻. 해파리를 칭함.)
[출처] [고전명작 재평가] 노인과 바다_ 공평한 서술이 만들어 낸 몰입감|작성자 YonE
내가 생각하던 그 뜻이 맞았고 내게는 이 작품을 더이상 참고 읽을 이유가 사라졌기 때문에 바로 책을 팔았다.
그 후로는 여성에 대한 혐오나 차별적 발언은 나오지 않는다고 하니 읽을 분들은 참고하시길.
저런 단어를 써가며 누군가는 불편하게 만들면서까지 글을 써야만 할까? 고전이라고 다 감싸주고 싶지 않다. 현대시대에 글 잘 쓰고 읽어줘야만 팔아줘야만 하는 나아가 건강한 메시지로 사회를 비판하는 글들이 넘치고 넘친다.
저게 문학이라면 난 헤밍웨이를 작가라고 칭하고 싶지 않다.
그리고 하나의 편견이 생겼음. 헤밍웨이 작품을 내게 추천하는 자에게.
아, 그런 작가의 글이 취향이시군요 유감입니다 저와는 성향이 너무나 다릅니다.
하게 되는 거임...
모두가 편하게 읽을 수 있는 글을 읽고 싶다.
"물론 기억하고말고. 네가 나한테서 떠난 게 내 솜씨를 의심해서가 아니라는 것도 잘 알고 있단다." 노인이 대답했다.
"할아버지 곁을 떠나라고 한 건 아버지였어요. 전 아직 나이가 어리니까 아버지 말을 따라야 해요."
"암, 그렇고말고. 당연히 그래야지." 노인이 말했다.
"그런데 아버지한테는 그다지 신념이라는 게 없어요."
"그래, 그건 그렇다. 하지만 우리한테는 신념이 있지. 안 그러냐?" 노인이 대꾸했다.
p.9
하지만 난 정확하게 미끼를 드리울 수 있지, 하고 노인은 생각했다. 단지 내게 운이 따르지 않을 뿐이야. 하지만 누가 알겠어? 어쩌면 오늘 운이 닥쳐올는지. 하루하루가 새로운 날이 아닌가. 물론 운이 따른다면 더 좋겠지. 하지만 나로서는 그보다는 오히려 빈틈없이 해내고 싶어. 그래야 운이 찾아올 때 그걸 받아들일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있게 되거든.
p.49
이제 노인의 머리는 맑을 대로 맑아졌고 단호한 결의로 흘러 넘쳤지만 희망은 별로 없었다. 좋은 일이란 오래가지 않는 법이거든, 하고 그는 생각했다. 그는 상어가 가까이 오는 것을 지켜보면서 큰 고기를 힐끗 바라보았다. 차라리 꿈이었으면 좋았을걸, 하고 그는 생각했다.
노인은 몸뚱이가 뜯겨 성하지 않게 되어 버린 고기를 이제 더 이상 바라보고 싶지가 않았다. 고기가 습격을 받았을 때 마치 자신이 습격 받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인간은 패배하도록 창조된 게 아니야." 그가 말했다. "인간은 파멸당할 수는 있을지 몰라도 패배할 수는 없어." 하지만 고기를 죽여서 정말 안됐지 뭐야, 하고 그는 생각했다.
고기의 앞쪽 부분만을 보고 있으려니 희망이 조금 되살아났다.
희망을 버린다는 건 어리석은 일이야, 하고 그는 생각했다. 더구나 그건 죄악이거든. 죄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말자, 하고 그는 생각했다. 지금은 죄가 아니라도 생각할 문제들이 얼마든지 있으니까. 게다가 나는 죄가 뭔지 아무것도 모르고 있지 않은가.
pp.181~188
"행운을 파는 곳이 있다면 조금 사고 싶군." 그가 말했다.
행운의 여신이란 여러 모습으로 나타나는 법인데 누가 그것을 알아본단 말인가? 어쨌든 어떤 모습의 행운이라도 얼마쯤 손에 넣고 그것이 요구하는 대로 값을 치를 테야. 하늘에 훤한 불빛이 나타나면 좋을 텐데, 하고 그는 생각했다. 나는 바라는 게 너무 많구나, 하지만 지금 당장 절실히 바라는 건 그 훤한 불빛을 바라보는 거야.
pp.211~212
어니스트 헤밍웨이, <노인과 바다> 中
+) 이 책에는 바다에서 물고기를 잡으려는 노인과 그 노인을 무한히 신뢰하는 소년이 등장한다. 노인 산티아고는 약 세 달 가량 바다에서 아무것도 잡지 못하고 빈손으로 돌아온다. 어렸을 때부터 그 옆에서 물고기 잡는 법을 배운 소년 마놀린은 그런 할아버지의 모습을 안타깝게 여기며 살뜰하게 그를 챙겨준다.
소년은 다른 어른들과 달리 노인이 갖고 있는 지혜와 기술을 믿는다. 노인이 물고기를 잡지 못하는 모습이 지속되자 어른들은 그에게 더 이상 운이 따르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소년의 부모 역시 그렇게 믿기에, 소년이 그와 함께 다니기보다 다른 어선을 타길 권한다.
어쩔 수 없이 소년은 노인과 떨어져서 다른 배에 타게 되는데, 소년은 새로운 배에서 계속 물고기를 잡지만 노인은 여전히 물고기를 잡지 못한다. 이런 부분은 저자가 소설 속 대사에서 언급한 두 가지 단어를 떠올리게 한다. 신념과 행운.
소년은 자신의 아버지가 신념이 없다고 말하지만, 그건 사실 아버지를 비롯한 어른들 모두를 가리키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들은 신념을 모르는 사람들이다. 성과 혹은 결과만 생각할 뿐 지나온 과정은 아예 고려하지도 않으니까.
노인에게서 많은 것을 배운 소년은 그렇게 그에 대한 신뢰를 쌓아가고 그것은 어느 순간부터 신념이 된다. 자신이 직접 경험하고 느끼며 깨달음을 얻는 과정에서 만들어지는 게 신념이 아니면 무엇이란 말인가.
바다에서 노인이 혼자 엄청 큰 청새치와 싸우는 동안, 그는 끝없이 소년을 생각한다. 그 아이가 곁에서 도와주었다면 벌써 이 큰 물고기를 잡았을 텐데, 하고 말이다. 노인은 큰 물고기와 사투를 벌이는 동안 순간순간 소년을 생각한다.
손이 다쳐 아플 때에도, 물고기가 저 깊은 바닷속으로 향해 들어갈 때에도, 먹을 것과 마실 것이 부족할 때에도, 배 위에서 선 잠이 들 때에도, 그리고 겨우 잡은 물고기를 배에 묶고 돌아오다가 상어를 만나 싸울 때에도 그는 소년을 생각한다.
노인은 생각할 것밖에 할 일이 없다고 중얼거리지만, 사실 노인에게 소년은 행운 같은 존재이다. 어떤 순간에도 함께했다면 어떤 결과가 나와도 노인에게는 행운으로 느껴졌을 것이다. 즉, 소년에게 노인이 신념이라면, 노인에게 소년은 행운이다.
소년이 없다는 걸 계속 확인하면서도 노인은 끝없이 소년을 생각한다. 그러다가 행운의 여신이 어떤 모습으로 나타날지 모른다고 생각하며 지금 자신에게 가장 필요한 '훤한 불빛'을 소망한다.
그리고 결국 노인은 빛을 만났고, 불빛 또한 노인을 찾았다. 다행히 그는 바다에서 죽지 않고 자기의 집으로 돌아간다. 또 전과 다름없이 소년은 지친 노인이 기력을 차리도록 묵묵히 돕는다. 노인에게 행운의 여신은 이렇게 다른 모습으로 계속 다가온다.
마지막에 노인이 잡은 물고기의 머리와 뼈대를 두고 사람들이 이야기를 나누는 부분에서 두둥,하고 울림을 느꼈다. 그렇지. 상어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엄청난 녀석이었으니까. 그게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난생처음 보는 엄청난 물고기겠지. 확실히 노인은 운이 없는 사람이 아니다.
오랜만에 고전을 읽었는데 잔잔한 울림이 매력적이라 손에서 놓지 않고 단숨에 읽었다. 예전에 읽었던 책 같은데 완전히 새롭게 다가오니, 내가 나이가 든 것인지 가치관이 달라진 건지 잘 모르겠다. 어쨌든 이 책을 다 읽고 나서 왜 고전이 지금의 우리에게 필요한지 알 것 같았다.
이 책을 읽으면서 노인의 태도에서 많은 것을 배우고 느끼며 스스로를 깊이 반성했다. 자기 자신을 의심하지 않는 것, 자기를 믿는 것, 상황이 여의치 않아도 마음의 여유를 잃지 않는 것, 매일 반복되는 일도 성실하게 해내는 것, 행운이 올 때를 대비하여 만반의 준비를 하는 것, 신념을 지키는 것, 쉽게 좌절하지도 희망을 잃지도 않는 것.
너무 많은 것을 느끼게 해준 책이었다. 꾸밈없이 단순한 문장으로 이렇게 깊이 있고 좋은 소설을 쓰다니, 새삼 소설이란 무엇인지 생각할 기회를 준 책이다. 이 책을 계기로 다시 고전 읽기를 시작해야겠다는 다짐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