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목정보
발행일 | 2012년 01월 02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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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193쪽 | 288g | 153*224*20mm |
ISBN13 | 9788937462788 |
ISBN10 | 8937462788 |
발행일 | 2012년 01월 02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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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193쪽 | 288g | 153*224*20mm |
ISBN13 | 9788937462788 |
ISBN10 | 8937462788 |
노인과 바다 작품 해설 작가 연보 |
유명한 소설이다. 고전 걸작으로 이름이 높아서 독서에 일천한 나도 어릴 적부터 제목은 알고 있었다. 제목만 알았지 읽어볼 생각은커녕 내용을 찾아볼 관심도 갖지 않은 채로 지금까지 시간을 보냈고 구매한지 한참 지난 지금에서야 이 아름다운 이야기를 경험하게 됐다.
한참이나 고기를 잡지 못한 노인 어부 산티아고가 평소 함께하던 소년 마놀린 없이 혼자서 먼 바다까지 나가서 겪는 이야기.
산티아고는 자기 배보다도 큰 청새치를 마주하고, 끌고 끌리며 밤을 새는 혈투를 지속한다. 배는 항구에서 점점 멀어진다. 노인도 청새치도 지치지만 둘 다 서로에게 굴하지 않고, 이후 노인에게는 위기의 상황이 몇 차례 찾아온다. 꽤 극적인 내용이기 때문에 자세하게 서술하면 처음 읽는 독자의 감흥을 방해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찾아온 위기를 대처하는 산티아고를 보며 그가 삶과 자연을 대하는 태도에 대해 느낄 수 있다. 생태계 어디서나 존재하는 먹이사슬의 순환은 84일이나 고기를 잡지 못했던 외로운 어부의 일이더라도 예외가 없다. 바다 역시 대자연의 일환으로 땅이나 하늘이 그렇듯 살아 숨쉬는 모든 것들에 아낌없이 베풀고 가장 감사할 선물을 주는 동시에 비할 데 없이 무자비하다. 산티아고가 시간을 보내고, 고기를 낚고, 살아가던 멕시코 만류도 마찬가지다.
그는 늙었다. 자신이 더 이상 젊을 때와 같지 않다는 것을 안다. 그러나 여전히 자신이 할 수 있는 일들이 있다는 것을 안다. 산티아고는 깊게 사유하는 인물이 아니라 느끼고 행동하는 인물이다. 그럼에도 사흘 밤낮을 새며 포기하지 않고 헤쳐나간 여정이 삶의 가치를 긍정한다. 그의 항해는 시작부터 만반의 준비를 갖추지 않았다. 우리가 볼 때는 무모할 정도로 모험적이지만 노인 스스로는 무리해서 좀 멀리 나왔다고, 그래서 모든 것이 잘못됐다고 생각할 뿐이다. 그런 여정은 우연히 행운이 찾아와도 그걸 행운이라고 확신하기 힘들고, 행운임을 알더라도 확보하기 힘들다. 그러나 노인은 불굴의 의지로 행운을 잡아냈다. 뒤이어 줄짓고 몰려오는 위기, 덴투소와 갈라노들은 악운이 아니다. 행운을 잡아내려 악착같이 노력한 끝에 따라붙은 결과다. 사투 끝에 흘러나온 피에선 짙은 냄새가 나고, 바닷물을 적시고 물들이며, 바다에 사는 포식자와 청소부들을 깨운다.
사람들 대부분이 그렇듯이 노인은 위기에서 타인과의 유대에 대한 가치를 절실히 깨닫는다. 물론 노인은 바다로 나갔을 때부터 소년을 그리워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그건 여정이 끝났을 때처럼 심화된 모습이 아니었다.
처음 접한 헤밍웨이의 작품이지만, '하드보일드 스타일'이라고 불리는 그의 문체가 왜 미국문학의 유산이라고 불리는지 느낄 수 있었다. 그 명료하고 짧은, 객관적 사실만을 나열하는 문장에 담겨 있는 것들. 그 문장이 주제를 분석하는 게 아니라 느끼게 만들어 주었다. 어떤 향신료도 없이 무미건조한 산문이었지만 세밀한 감성을 건드렸고 서사 자체의 환상적 분위기와 맞물려 내가 본 어떤 글보다 시적이었다.
줄곧 산티아고의 심리와 내면을 묘사하고 그를 통해 이야기의 배경을 비추지만 그 모든 표현은 언제나 간결하다. 난잡하지도 화려하지도 않다. 하지만 어떤 길고 수사적인 글보다도 인물을 이해하는 데 직접적으로 와닿았다.
해설에서 실존주의자들과 헤밍웨이의 공통점에 대해 다룬 내용이 있었다. 이들의 철학에 대해서 공감하지는 못했지만 문학으로 표현하는 방식은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종합적으로 깊게 생각하지 않아도 가슴으로 느껴지는 작품이었다. 집중력이 부족해 어릴 때를 제외하면 독서 경험이 거의 없는데다 그마저도 끝까지 읽은 책이 손에 꼽는데, <노인과 바다>는 분량도 길지 않고 우수한 해설이 뒷받침되어 즐겁게 읽을 수 있었다.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작가의 퓰리처상 수상작답게 무수한 해석의 가능성과 삶의 사유, 철학적 요소를 담고 있을지 모르지만, 제쳐놓고도 직관적으로 아름다운 이야기였다. 평범한 일반인의 고전 독서 경험으로써 훌륭한 책이었다.
개인적으로 민음사의 세계문학전집 디자인이나 만듦새도 마음에 든다. 대화문이 낫표로 표기된 넘버링 타이틀은 너무 옛날 책 같아서 별로인데 <노인과 바다>는 큰따옴표로 표기되어 있어서 좋았다. 이렇게 짧은 소설에는 어울리는 판형인 것 같기도 하고.
년초에 쿠바에 갔을 때 헤밍웨이의 흔적을 참 많이 보았던 것 같습니다. 쿠바사람들이 미국 정부는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헤밍웨이는 참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헤밍웨이가 묵었던 호텔이아, 헤밍웨이가 자주 찾던 식당과 바는 물론 헤밍웨이가 살면서 집필을 하던 핀카비 히아의 저택과 그가 쿠바 친구와 함께 배를 타던 꼬히 마루에 이르기까지 아바나여행의 상당부분은 헤밍웨이의 흔적을 뒤쫓는 것이었습니다.
당연히 꼬히 마루가 무대가 되는 소설 <노인과 바다>를 다시 읽어보고 싶어졌습니다. <노인과 바다>는 고등학교 다닐 무렵 읽은 기억이 있습니다. 아마 그때는 참 지루한 이야기다 싶었던 것 같습니다. 생각해보면 일종의 모노드라마처럼 노인 혼자서 쏟아내는 말들이 별로 와닿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어렸던 탓이거나 아니면 생각이 모자란 탓이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다시 읽은 <노인과 바다>는 왜 퓰리처상을 받고 노벨 문학상을 받는데 기여했는지 충분히 이해가 되는 점이 있었습니다. 우선은 나이 듦을 무기력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자신의 존재감을 나타내기 위하여 전력을 다한 산티아고의 불굴의 정신을 꼽아야 할 것 같습니다. 여기에는 오래도록 바다에서 살면서 체득한 앎이 크게 한 몫을 하게 됩니다. 자연의 가르침은 한 순간에 모두 깨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산티아고가 거대한 청새치와 겨루는 과정에서 무리하거나 모자라지 않는 절묘한 낚시의 경지를 보여주었다는 것입니다. 역시 오랜 경험에서 터득한 지혜를 총동원하여 이룩한 성과라는 점입니다. 하지만 항구로 돌아오는 과정에서 산티아고의 물고기를 얻어먹겠다고 염치없이 덤비는 상어들에게는 단호한 면을 보이기도 합니다. 물론 마지막 순간에는 뼈만 앙상한 청새치를 항구로 가져오긴 했지만 말입니다.
작품 해설을 하신 분은 산티아고는 햄릿형이라기보다는 돈키호테형에 가깝다고 했습니다. 책도 읽지 않고 깊이 있는 사색도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망망대해에 일엽편주를 띄워놓으면 무념무상, 자연이 가르쳐주는 것들이 절로 머릿속에 콕콕 들어박힐 것 같습니다. 즉, 그는 무엇을 읽어서 정보를 얻기보다는 바다에서 몸으로 체득한 앎으로 낚시를 해왔던 것입니다. 그리고 중요한 점은 산티아고는 기본적으로 남에게 의존하거나 구걸하지 않고 독립적으로 살아가려는 정신을 가지고 있다는 점도 덕목의 하나로 꼽아야 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산티아고가 가진 자비한 마음도 귀한 것입니다. 너무 커서 배안으로 끌어들일 수 없어 배 옆에 붙여둔 청새치의 살첨이 끊임없이 덤비는 상어들에 의하여 뜯겨 나갈 때 청새치에 대하여 진심으로 미안해합니다. 너무 먼 바다에까지 나와서 청새치와 산티아고 둘 모두 망쳐버렸다고 후회합니다. 그리고는 “늙어서는 어느 누구도 혼자 있어서는 안돼”라면서 마놀린을 데리고 나오지 않은 것을 후회합니다. 물론 그동안 어획이 시원치 않아서 더 이상 마놀린을 데리고 배를 탈 수 없는 사정을 잘 알고 있었으면서도 말입니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어린 마놀린과 산티아고의 관계도 참 이상적인 듯합니다. 노인과 어린이의 조합이 얼핏보기에는 부조화처럼 보이지만, 소년은 노인으로부터 자연스럽게 바다에서 사는 법을 전수받을 수 있고, 노인은 소년의 도움을 받을 수 있으니 상부상조라는 점에서 우리 사회가 버리지 말아야 할 전형이 아닐까 싶습니다. 요즈음 젊은이들은 자신감이 넘치는 탓인 지 무엇이든 혼자서도 잘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만, 책이든 인터넷이든 어디에서도 얻을 수 없는 무엇은 오직 세상을 앞서 살아본 사람들로부터만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으면 좋을 것 같습니다.
노인과 바다는 쿠바의 바다를 배경으로 한 노인이 물고기 한 마리와 그의 목숨을 건 사투를 벌이고
잡은 물고기를 싣고 돌아 오는 도중 허망하게 상어에게 고기를 모두 뜯기고 뼈만 싣고 돌아오는
이야기이다.
이 작품으로 헤밍웨이는 노벨문학상을 수상했으며 많은 이들에게 이 소설을 통해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까지도 감동과 영감을 주고있다.
소설 속에는 평생 고기잡이를 했지만 그 운이 다했다고 평가받는 산티아고라는 노인과 오랜 시간
노인의 곁에서 고기잡이를 배우고 돕던 마놀린이라는 소년이 등장한다.
비록 부모님 뜻에 따라 이제는 노인과 다른 배를 타고 있지만 84일 동안이나 물고기를 한 마리도
잡지 못한 가난한 노인에게 소년은 여전히 무한한 신뢰와 존경의 마음을 가지고 있다.
아들처럼 다정하고 세심하게 노인을 살피는 소년과 그런 소년에게 고마움과 애정을 갖고 있는
노인의 모습은 이 소설을 읽는 이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감동시킨다.
망망대해 작은 배 안에서 사흘 밤낮을 끼니도 거르고 몸도 다쳐가면서 평생 잡아본 고기보다 더
큰 고기를 잡아 싣고 돌아오다 그 고기를 결국 상어 떼에게 뜯기게 되었을 때의 노인의 마음을
생각하며 우리는 함께 기뻐하고 함께 안타까워하게 된다.
“하지만 인간은 패배하도록 창조된 게 아니야.” 그가 말했다.
“인간은 파멸 당할 수는 있을지 몰라도 패배할 수는 없어.”
노인은 스스로에게 끝없이 되네 인다. 자신의 삶은 그 어떤 것으로도 무너질 수 없음을 이야기
하며 노인은 강인한 정신력과 의지로 버티고 마침내 항구로 돌아온다.
어느 누구도, 물질적인 것은 물론이고 자연의 힘과 운까지도 그를 패배 시키지 못한다.
때론 무모할 정도의 고집과 신념 그리고 강인한 생명력은 우리를 감동시킨다.
노인이 탄 작은 조각배와 노인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의 삶도 다르지 않음을 깨닫게 된다.
바다에서 만난 청새치나 상어떼와 같은 황홀한 기쁨과 우리를 흔드는 시련이 때론 우리 삶을 흔
들지라도 우리는 조각배를 저어 나가는 노인과 같이 우리의 삶을 지켜나가야 한다는 것.
황홀했던 고기를 잡은 기억도, 뼈만 앙상하게 남겨진 비참한 기억의 흔적도 다 내려놓고 망가진
노를 가지고 남은 키의 조각으로 조각배를 항구로 안착하는 노인의 모습 속에서 바다와 같은 인생
을 어떻게 항해 해야 할 지 우리의 삶을 다시금 돌아보게 만들어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