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목정보
발행일 | 2009년 05월 03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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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304쪽 | 441g | 153*224*30mm |
ISBN13 | 9788991428072 |
ISBN10 | 899142807X |
발행일 | 2009년 05월 03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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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304쪽 | 441g | 153*224*30mm |
ISBN13 | 9788991428072 |
ISBN10 | 899142807X |
옮긴이의 글 머리말 제1장 칼뱅의 권력 장악 폭력으로 구축한 새 질서/시대의 요청을 꿰뚫은 젊은 칼뱅/ 이제 제네바에서 자유는 끝났다/인류는 위대한 편집광에게만 굴복한다/정복자 칼뱅 제2장 제네바에는 단 하나의 의지만 남았다 성서정치/광신적 주지주의자 칼뱅의 초상/모든 것의 심판자/교회계율과 도덕경찰관/금지, 금지, 금지!/테러는 독재의 영원한 법칙/잿빛 그림자의 도시 제3장 자유와 양심의 수호자\독재자의 가면을 벗긴 페스트/자유로운 양심, 카스텔리오/양심, 독재와 맞부딪치다/카스텔리오, 제네바를 떠나다 제4장 불운한 희생양 신학의 돈키호테, 세르베투스/열정과 용기/망각을 모르는 증오/교활한 살인 음모/세르베투스, 감옥에서 도망치다 제5장 ‘다른 의견’의 비극적 종말 잔인한 비극이 시작되다/위선의 제물/세르베투스의 미칠 듯한 분노/화형의 불길이 정신까지 태울 수는 없다/마지막 절규 제6장 관용의 선언 폭력에 반대한다/옹색한 변명/더 이상 침묵할 수 없다/광신주의와의 싸움/자유 영혼의 목소리는 언제나 살아 있다 제7장 폭력에 맞서 양심이 일어서다 검열, 탄압, 음모/살인자 칼뱅을 고발한다/한때의 자유주의자여, 왜 ‘다른 의견’을 죽였는가?/칼뱅은 유죄! 유죄! 유죄! 제8장 폭력이 양심을 제거하다 권력의 테러/독재권력의 속성/덫을 놓아라!/명예로운 자는 극단적인 증오에 중독되지 않는다/화해와 관용을 모르는 광신자/패배한 관용의 화신/죽음만이 그를 구원할지니 제9장 카스텔리오의 부활 칼뱅주의의 유산/관용과 해방의 정신으로/카스텔리오, 부활하다!/모든 칼뱅에 맞서는 어떤 카스텔리오 *카스텔리오를 세상 속으로 이끌어내다 -크누트 베크 |
시대들은 소란하지만, 스스로 깨어날 것이다.
비가 온 다음에 아름다운 해가 나오듯, 싸움과 거대한 대립이 있은 다음에 평화가 오고 불행은 끝난다.
그러나 그러기까지 우리는 얼마나 고통을 겪을 것인가!
- 마르그리트 도트리슈의 노래
김영삼 전 대통령은 "닭의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온대이."라며 거스를 수 없는 민주화의 물결을 이야기했다. (3당 합당이나 대통령 임무 수행에 대한 공과 과는 논하지 않고 그냥 그의 말만 인용하여 본다.) 수없이 많은 희생의 대가로 얻은 광복, 민주화, 경제적 번영. 그 힘들게 얻은 것들을 지금 우리는 너무 쉽게 놓칠 위기에 처한 것이 아닐까. 이런 저런 나라의 위기를 내가 더 이야기해봐야 의미도 없고.. 가슴이 답답하기만 하고... 과연 또 한 번 새벽이 올 수는 있는 건가? 이런 생각을 하던 차에 '다른 의견을 가질 권리'를 만났다.
이 책은 칼뱅과 그의 공포정치에 희생된 세르베투스, 칼뱅의 잘못을 조목조목 밝힌 카스텔리오에 관한 평전이다. 중고등학교 시절, 세계사와 윤리 시간에 배운 종교개혁과 칼뱅에 대한 이미지는 매우 좋은 편이었다. 칼뱅의 독재와 공포정치에 대해 언급한 책도 선생님들도 없었기에 그는 성실하고 신앙 깊은 학자라고만 생각했다. 그런데 몇 년 후, 그가 제네바에서 어떻게 권력을 장악하고 그에게 반대하는 사람들에게 얼마나 잔인하게 보복을 했는가 알고 나니 꼬장꼬장하게 보이던 그의 얼굴이 아집과 분노에 차있는 얼굴로 보이기 시작했다. (아, 이미지란 얼마나 헛된 것인가.)
불통, 폭력과 억압, 독선 - 이런 단어들이 많이 떠오르는 요즘이다. 슈테판 츠바이크는 그에 맞선 인문주의자 카스텔리오의 이야기를 통해 인본주의와 관용에 대해 논한다. 홍세화씨가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 등의 책에서 줄기차게 외친 (tolerance 똘레랑스) 관용을 다시 떠올려본다. 비록 자신과 의견이 다르다 해도 남에게 해를 끼치는 것이 아닌 이상 인정하고 존중해주는 것이 관용 아니던가.
슈테판 츠바이크는 꽤 단정적이며 선동하는 말투의 문장으로 칼뱅의 오류를 지적하고 카스텔리오를 찬양한다. 명쾌한 문장이 그의 장기이며 그 선명한 색채가 마음에 들 때도 있지만 만약 생각이 다른 사람이라면 조금 불편해지지는 않을까 잠깐 생각이 들었다.
칼뱅은 제네바에서 종교지도자만이 아니라 시장, 판사의 역할을 다하며 자신에게 반대하는 자들을 철저히 숙청해버렸다. 젊고 청빈하고 고결하던 한 사람이 어쩌다가 폭력을 휘두르는 독재자가 되어갔는가... 그것이 역사의 비극이다. 그 희생양 중 한 명이 칼뱅과 다른 해석을 했다는 이유로 화형당한 스페인사람 세르베투스이다. 세르베투스와 카스텔리오는 말 그대로 코끼리 앞의 모기 신세였다. 아마 대부분의 대한민국 국민도 공권력 앞에서 이와 비슷한 무력함을 느끼지 않을까 싶다.
아, 한 개인이 도덕적인 정당성 외에는 아무런 힘도 배후에 없는 상태에서 완벽한 조직체에 맞서 자신을 지키려 할 경우에 그 투쟁은 얼마나 가망 없는 것인가! (p.24) 라고 저자는 외친다.
"하나님께서 내게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지 판단할 은총을 내리셨다"고 자기 확신에 찼던 칼뱅은 자신과 다른 의견 앞에 조금의 관용도 베풀 줄 몰랐다. 심지어 제네바 사람도 아닌 스페인 사람 세르베투스가 자신과 다른 의견을 내놓았다는 이유로 제네바에 온 그를 체포하여 산채로 화형을 시키기에 이른다.
인간의 생각을 심판할 권리, 인간이 내적 개인적 신념을 비열한 범죄와 동일하게 취급해도 좋은 권리가 누구에게 있단 말인가? (p.198)
잔인하게 세르베투스를 처형한 칼뱅을 정면으로 반박한 인물이 바로 카스텔리오다. 카스텔리오는 칼뱅의 말과 글을 인용하여 그의 모순을 낱낱이 밝힌다.
"이단자를 죽이는 것은 범죄행위이다. 쇠와 불로 그들을 파멸시키는 것은 인문주의의 모든 원칙을 부인하는 행동이다."라고 칼뱅은 기독교 강요에서 서술했다. 그런 그가 자기부정을 하고 범죄를 저지르다니... 참 아이러니하다. 힘 센 자가 잘못된 신념을 가지면 얼마나 위험해지는가를 다시 한 번 생각해본다. 그 위험한 칼춤을 끝낼 방법은 무고한 희생자 내지는 순교자가 나오는 수밖에 없는지도 모른다.
한 인간을 죽이는 것은 절대로 교리를 옹호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그냥 한 인간을 죽이는 것을 뜻할 뿐이다. 라는 단순하지만 명료한 논리로 카스텔리오는 칼뱅에게 맞선다. 이런 저런 미사여구나 사족을 붙이지 않아도 진실은 설득력을 가지는 법. 이를 두려워한 칼뱅은 카스텔리오를 제거하려 노력했으나 카스텔리오는 재판과 처형 전에 급작스럽게 죽음을 맞이한다.
사람들이 이 독재자 칼뱅에게 무릎꿇었던 이유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저자는
언제나 도발적인 인간에게 굴복하곤 하는 인류는, 단 한 번도 참을성 많고 공정한 사람에게 굴종한 적이 없었다. 라는 문장으로 군중들의 심리를 꼬집어 말한다. 이 문장을 읽으며 떠오른 몇 명의 대통령이 있다. 끈질기게 대화와 토론을 하려 했으나 결국 뜻을 이루지 못한 대통령과 수십년 간의 독재로 반인반신이 된 대통령. 앞으로의 대통령은 어떤 길을 걸어갈 것인가...
요즘 불통, 억압과 독선 이라는 단어를 떠올리게 하는 분이 있다. 나는 그 분이 역사 앞에 부끄럽지 않은 사람으로 남아주길 바란다. 당신 아버지와 당신의 나라가 아니라, 대한민국 국민 모두의 나라이고 당신은 못 볼지 몰라도 결국 사람들은 정의가 무엇인지 올바른 길이 무엇인지 찾아내 그 길을 함께 걸어갈 거라고.
선량한, 그러나 피에 젖은.
막시밀리앵 프랑수아 마리 이지도르 드 로베스피에르(Maximilien François Marie Isidore de Robespierre, 1758~1794)는 사치스럽지 않고, 금주와 금연 등 절제하는 삶을 살았던 사람이었다. 그러나 프랑스 대혁명의 과정에서 그가 루소의 이상을 현실화하겠다는 신념을 굽히지 않으면서 그에 대한 평가가 달라졌다. ‘루소의 피에 물든 손’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목표를 위해 수단을 가리지 않았던 그를 오늘날 우리는 ‘공포정치’의 상징으로 인식하고 있을 정도다.
장 칼뱅(Jean Calvin, 1509~1564, 이하 ‘칼뱅’)도 마르틴 루터가 시작한 종교개혁을 완성한 인물로, 개신교 그 중에서도 장로교의 아버지로 널리 추앙 받고 있다. 하지만 그도 미겔 세르베투스(Miguel Servetus, 1511~1553, 이하 ‘세르베투스’)의 억울한 죽음에서 보듯이 로베스피에르와 동일한 독선주의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다.
어쩌면 이런 선량한 독선주의자들이 많은 업적을 남기고 역사의 승리자로 기록될 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들의 반대편에 서서 패배자로 낙인 찍힌 이들의 삶도 의미가 있다. 영화 <암살>에서 안옥윤이 “모르지. 그렇지만 사람들에게 알려줘야지. 우린 계속 싸우고 있다고.”라고 했던 것처럼.
칼뱅과의 비교를 통해 카스텔리오의 평전을 쓰다
사람들은 자신과 닮은 이에 열광하기도 한다. 그렇기에 금(金)에 쫓겨 남쪽으로 옮겨간 남송(南宋)에서 촉한정통론(蜀漢正統論)이 대세로 자리잡게 된 것이리라.
마찬가지로 나치의 탄압을 피해 망명지를 떠돌았던 슈테판 츠바이크(Stefan Zweig, 1881~1942)도 폭력에 대항해서 관용과 양심의 자유를 부르짖은, 16세기의 인문주의자 세바스티안 카스텔리오(Sebastian Castellio, 1515~1563, 이하 ‘카스텔리오’)의 삶에서 동질감을 느끼지 않았을까.
이 책은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으로 알려진 <대비열전(對比列傳)>과 비슷하면서도 다른 구성을 취하고 있다. 광신적 주지주의자인 ‘칼뱅’과 자유로운 양심 ‘카스텔리오’라는 맞수를 비교하면서 서술했다는 점에서는 비슷하지만, <대비열전>과는 달리 유사한 인물이 아니라 상반된 인물을 엮었다는 점에서 다르다.
관용을 위해 박해를 선택하다
“칼뱅은 교리문제와 생활에서 한 치의 자유도 허락할 인물이 아니었다. 그의 생각에 따르면, 교회는 모든 인간에게 절대적인 복종을 강요할 권리뿐 아니라 의무를 가지며, 단순히 열의가 없다는 사실만으로도 벌을 내려야만 했다.
그는 제네바 시민들이 한 사람 한 사람 공개적으로 이 교리문답을 받아들이고, 그에 따르기로 맹세하는 일을 직권으로 강요해달라고 시의회에 요구했다. 시민들은 초등학생처럼 열 명씩 ‘장로(長老)’의 안내를 받아 교회에 가서는 오른손을 들고 장관이 낭독하는 맹세를 같이 해야만 했다. 이 맹세를 거부하는 사람은 곧바로 도시를 떠나라는 강제명령을 받았다. 이 요구는 매우 단호한 것이었다. 이때부터 종교문제에 관한 한 칼뱅의 요구와 견해에서 머리카락만큼만 벗어나도 제네바 성벽 안에서 살 수 없다는 뜻이었다.” [pp. 47~48]
심지어 “어떤 시민이 ‘칼뱅 선생님’이라고 부르지 않고, ‘칼뱅씨’라고 불렀다” [p. 87]는 이유로 감방에 가야 할 정도였다.
그런 상황에서 칼뱅과 의견이 다르다는 이유로 세르베투스가 화형(火刑)당하자, 카스텔리오는 이에 반발하여 <칼뱅의 글에 반대함>이라는 공개고발장을 썼다. 우리는 그 결과를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살아있는 권력에 도전한 대가로 “칼뱅은 그의 책들을 찍고 금지하고 불태우고 압류했다. 정치적인 압력수단을 동원해 그가 다른 지역에 머물러 있어도 집필금지령을 내렸다.
(심지어) 카스텔리오는 발걸음 하나까지 감시를 받았고, 그의 말 한마디까지 누군가 엿들었으며, 편지는 모두 누군가 가로챘다. (이런 숨막히는 압박 속에서) 때 이른 죽음만이 카스텔리오를 망명이나 화형대에서 구원했었다.” [pp. 24~25]
“사람들은 자기 자신의 생각에 대해, 혹은 자신의 생각이 옳다는 생각에 대해 너무나도 뚜렷한 확신을 가진 나머지 오만하게 다른 사람을 멸시하기에 이르렀다. 이러한 오만에서 잔인함과 박해가 나온다. 오늘날에는 거의 사람 수만큼이나 다양한 견해가 있건만, 다른 사람이 자신과 견해가 같지 않다면 조금도 참으려 하지 않는다. 그래서 추방, 망명, 감금, 화형, 교수형 등 온갖 처형과 고문이 날마다 행해지고 있다. 오직 높으신 분들의 마음에 들지 않는 의견을 가졌다는 이유로, 때로는 어떤 특별한 이유도 없이 그런 일들이 행해진다.” [pp. 199~200]
카스텔리오는 이를 막기 위해서는 ‘관용’이 필요하다고 여겼다. 그렇기에 그는 세르베투스의 신학적 견해에는 동의하지 않으면서도, 자신의 목숨을 걸고, 누구나 다른 의견을 가질 권리가 있다는 신념을 실천한 것이다.
참으로 애틋하게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사랑한다는 말을 못 하겠고, 참으로 감동 받으며 읽은 책에는 리뷰를 선뜻 못 쓰겠다. 내 맘 속에 아껴둔 존재에 대해 내 부족한 언어로 표현하기가 어렵기도 하고, 표현하는 순간 나의 진지한 감정이 남들에게 유치한 감상으로 보여져 버릴까봐 겁나기도 해서이다. 그래도 이따금은 세상에 대해 크게 외치고 싶다. 나 이 사람을 읽고 사랑하고 있노라고. 내 친구인 당신들도 이 사람의 매력을 인정하라고.
나는 역사 관련 서적 읽는 것이 좋다. 특히 자신의 앞 시대를 냉철히 고찰하며 자신의 당 시대를 열정적으로 살아간 역사 저술가들의 책을 읽는 것이 좋다. 예를 들자면 사마 천. 그는 궁형의 치욕을 견디고 살아남아 <사기>를 썼다. 또, 프랑스 아날 학파의 대표적 학자이며<봉건 사회>의 저자인 마르크 블로흐. 그는 강단에만 머무르지 않고 2차대전 당시 레지스탕스에 자원하여 활동하다가 독일군에게 총살당했다. 그리고 지금 이야기하는 슈테판 츠바이크. 그는 나치의 탄압을 피해 망명하던 도중 시대의 폭력을 이기지 못하고 자살했다. 이런 저자들이 쓴 역사서를 읽으면 배경으로 나온 시대만 보게 되는 것이 아니라 그 시대를 통해 자신의 시대를 말해주는 저자들의 낮은 목소리가 행간에서 들린다. 소름이 돋아 미칠 것만 같다.
나의 슈테판. 독자들은 그를 <베르사유의 장미 마리 앙트와네트>의 전기 작가라든가, <광기와 우연의 역사>의 대중적 역사 에세이 작가라든가, <모르는 여인의 편지>의 문학가로만 기억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안타깝다. 내가 보기에 그의 진면모를 읽을 수 있는 책은 이 책 <다른 의견을 가질 권리>나 <에라스무스>, <아메리고>인데 말이다. 물론 그의 다른 책들에서도 섬세한 심리 파악 문체라든가 인간 사회에 대한 통찰력 등 그의 매력은 충분히 넘쳐 난다. 하지만 과거 한 시대의 폭력에 외롭게 저항하거나 묵묵히 자신의 길을 갔던 사람의 이야기를 생생히 들려주어서 자신이 살고 있는 현 시대의 폭력까지 고발해 버리는 그의 양심과 지성을, 겉으로는 고요해 보이지만 분노로 거세게 뛰고 있는 그의 심장의 박동을 느끼기에는 위의 3종의 책이 최고라고 나는 생각한다.
이 책이 다루는 시대는 서양의 16세기이다. 루터와 칼뱅이 활약하던 종교개혁의 시기이자 헨리8세와 프랑수아1세와 카를5세, 슐레이만 대제란 걸출한 군주들이 등장했던 유럽 격동의 시기이다. 게다가 지네 말로는 대항해시대인 서구 세력의 침략이 한창 진행되던 시대. 정말 작가들이 쓸 거리도 독자들이 읽을 거리도 많은 시대이다. 더불어 아직 미숙한 내가 보기에 한 가지 가장 중요한 점은, 이 시기가 바로 현대까지 이어지는 세계사와 세계관의 주요 기틀이 거의 다 짜인 시기라는 점이다. 이 책에서 저자가 다루는 종교개혁만 해도 그렇다. 나는 신학적으로는 모른다. 그래서 종교개혁을 근대적 정신을 지닌 개인의 탄생과 기존 권위의 부정이라는 면에서 본다. 그런데, 신교도들의 이후 역사를 보면 이상한 점이 보인다. 자신들이 카톨릭에 의해 박해받던 시절에 내세우던 주장과 달리, 자신들이 권력을 잡은 이후에는 자신들과 다른 종교적 해석을 하거나 신앙과 상관없는 정치적인 면에서 신의 이름을 내걸고 반대자들을 박해하는 모습이 너무도 많이 보인다는 점이다. 사실 다른 해석을 할 권리를 들고 기존 교회에 저항했기에 그들의 명칭이 프로테스탄트인 것인데, 그렇다면 그러한 프로테스탄트 내에서는 이단이란 개념조차 성립할 수 없는 것 아닌가! 그런데 프로테스탄트 내에서 이단에 대한 공개 화형식이 일어났다. 제네바에서 신정정치를 구현한 칼뱅에 의해서, 역시나 신의 이름을 내걸고.
1509년 프랑스에서 태어난 칼뱅은 신학과 인문학 연구에 몰두하다가 종교 개혁적 입장을 지지하는 연설을 하고 생명의 위협을 느껴 스위스 바젤로 망명한다. 그 곳에서 그는 <기독교 강요>를 저술하여 종교 개혁의 대표적 신학자로 인정받는다. 이후 옛 동료 파렐의 강요로 제네바의 종교 개혁에 참여하게 된 칼뱅은 설교자 자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엄격한 종교 제도들을 도입하여 시의회와 갈등을 빚고 파면당하나 카톨릭 세력의 위협을 느낀 제네바 측이 다시 삼고초려하여 그를 모셔간 이후로 제네바를 "개신교의 로마"로 만들고자 엄격한 신정정치를 펼친다. 문제는, 칼뱅은 자신과 다른 종교적 해석이나, 신앙과 상관없는 부분에 대한 다른 의견을 못 받아들이는, 지나치게 독선적 성격의 소유자였다는 점. 곧 엄격한 법 집행으로 제네바의 거리에서는 웃음이 사라지고 오직 종교경찰의 감시의 눈초리만 번득이게 된다. 심지어 어린이에게도 사형이 집행된다.
1553년, 칼뱅은 삼위일체설을 부인하고 칼뱅의 권위에 도전했던 스페인 출신의 세르베투스를 부당하게 대하여 이단으로 단정, 화형에 처해 버린다. 이에 칼뱅은 전 유럽 지성들의 비판을 받는다. 칼뱅이 무서워 각자의 서재 안에서 문을 닫아 걸고 한 비판을. 이에 맞서 공개적으로 칼뱅의 오류를 지적한 사람이 바로 이 책의 주인공인 카스텔리오이다. 카스텔리오는 <칼뱅의 글에 반대함>에서 말한다. "한 인간을 불태워 죽인 일은 이념을 지킨 것이 아니라, 한 인간을 살해한 것이다! "라고. 그후 카스텔리오는 칼뱅의 스파이들에 의해 일거수 일투족 감시당한다. 치사하고 비열한 허위 고발과 중상모략에 시달리기도 한다. 그러나 카스텔리오는 자기 의사를 표현하여 반박할 권리조차 빼앗긴다. 뛰어난 전략가인 칼뱅은 자신이 다스리는 제네바 시와 카스텔리오가 있는 바젤 시의 외교 문제로 이 문제를 이끌어가서 문인에게서 글을 쓸 권리를 빼앗아 버린 것이다. 카스텔리오의 책이 인쇄되어 출간되기까지 이후 백 년을 더 기다려야 했다. 그러나 칼뱅 측의 지속적이고 야비한 공격에 카스텔리오는 온화하게 "기독교도에게는 사랑의 의무가 있다는 것이다. 그것을 실천하자. 그것을 실천함으로써 우리의 적들의 입을 다물게 하자. 당신은 당신의 의견이 옳다고 생각하는가? 다른 사람도 자신들의 의견을 그렇게 생각한다. "라고 기독교적인 관용 정신으로 맞선다. 점점 궁지에 몰려 가던 카스텔리오는 48세의 나이로 운명한다. 그의 친구의 말처럼 "하나님의 도움으로 적들의 발톱에서 빠져 나간" 것이다. 아마, 그가 조금 더 오래 살았더라면 세르베투스처럼 이단으로 몰려 화형당했을 지도 모른다.
이런 카스텔리오의 관용정신은 17세기 로크가 <관용에 대한 서한>을 쓰기 이전에, 18세기 볼테르가 <관용론>을 집필하기 이전에, 19세기 말 에밀 졸라가 <나는 고발한다>라는 공개서한으로 드레퓌스를 옹호하기 이전에 몇 세기나 앞서서 등장한 것이다. 그것도 극도의 대립과 증오로 혼란스러웠던 16세기 종교개혁의 와중에 말이다. 그러나 카스텔리오의 투쟁과 원고는 잊혀졌다. 그의 책은 사상의 자유를 가장 신성한 기본법으로 요구한 유럽 최초의 문서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칼뱅의 승리이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이에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어떤 도덕적인 노력도 세상에서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는다. 영원한 이상을 위해 너무 일찍 나타났던 사람들, 그래서 패배한 사람들도 패배함으로써 자신들의 의미를 실현했다. (중략) 언제나 승리자들의 기념비만을 바라보는 세상을 향해서, 수백만의 존재를 망가뜨리고 그 무덤 위에 자신들의 허망한 왕국을 세운 사람들이 인류의 진짜 영웅이 아니라, 폭력을 쓰지 않고 폭력을 당한 사람들이 진짜 영웅이라는 사실을 기억하게 해야 한다.
- 본문 23쪽
바로 위와 같은 대목에서, 나는 본다. 칼뱅의 독재와 독선에 맞선 카스텔리오의 단단하고 날카로운 펜을. 또한 나는 본다. 나치 독일의 폭력에 맞서는 저자 슈테판 츠바이크의 역시 단단하고도 날카로운 펜을. 그래서 이 책을 읽다보면 폭력의 시대에 저항하는 두 명의 사랑스런 인문주의자 남자들이 그려져서 심장이 마구 뛴다. 갈비뼈가 아플 정도이다. 뿐만이랴, 내가 무식해서 미처 모르는 그 어떤 카스텔리오가, 그 어떤 슈테판이 더 있었을지,,,, 아, 이런 감상적 문장이 나올까봐 내가 이 책의 리뷰를 오랫동안 못 썼던 것이다!
나의 슈테판이 쓴 책들을 읽다보면 이상한 현상이 생긴다. 처음에는 책의 내용을 이해하기 위해 등장 인물의 전기적 정보와 관련된 부분에 줄을 치며 읽는다. 그런데 갈수록 주요 내용과 상관없이 슈테판의 멋진 논평이 드러난 문장에 감탄하며 줄을 치게 된다. 그래서, 책을 다 읽은 후에 리뷰를 쓰고자 다시 책을 후루룩 넘겨 줄친 부분만 읽으면, 책의 내용을 요약하기에는 하나도 도움이 안 되지만 너무도 반짝이는 문장들을 눈부시게 만나게 된다. 그래서 지금 나는 이 리뷰를 마무리짓기 위해 도대체 어떤 문장을 인용해야 할 지 난감하다. 그래도, 이 책의 주제와 이 저자의 매력을 한 칼에 보여주는 문장을 고른다면, 아래와 같다.
일시적으로 이 이념이 말을 못하게 막으면, 그것은 모든 억압이 미치지 못하는 가장 깊은 양심의 공간 속으로 도망쳐 들어간다. 그래서 권력자들이 자유정신의 입을 틀어막고서 자신이 이겼다고 생각해도 아무 소용이 없다. 새로운 인간이 태어나는 것과 더불어 새로운 양심이 태어나기 때문이다. 그리고 언제나 누군가는 인류와 인간성의 양도할 수 없는 권리를 위한 싸움을 떠맡아야 한다는 정신적인 의무를 생각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언제든 모든 칼뱅에 맞서 어떤 카스텔리오가 다시 나타나서 폭력의 모든 폭행에 맞서 사상의 독자성을 옹호하게 될 것이다.
- 본문 288쪽에서
그러나 결코 저자 슈테판 츠바이크는 카스텔리오를 영웅적으로 묘사하고자 칼뱅을 근거없이 비방하지는 않았다. 그가 이 책을 집필하고자 자료를 찾던 1935년에 쓴 편지에는 이런 내용이 있다. "지금 나는 카스텔리오에게 완전히 빠져들고 말았기 때문에 칼뱅에 대해서 공정한 태도를 취하고, 그에 대한 적대감을 갖지 않아야 한다는 점입니다. 그가 카스텔리오에게 부당한 행동을 했다 하더라도, 우리는 그에게 부당해지지 않도록 노력해야만 합니다." 또한 이 책 본문 280쪽에서도 저자는 이렇게 분명히 말하고 있다. "칼뱅이 요구했던 것과 역사의 발전 속에서 칼뱅주의가 이룬 것을 동일시하는 것은 큰 잘못일 것이다. " 바로 이 점이 내가 슈테판 츠바이크를 "나의 슈테판"이라고 부르는 많은 이유 중 하나이다.
슈테판 츠바이크의 저서들은 나치 독일 시절에 금서로 지정되었으며, 2차대전 종전 후 재간행된 이 책은 기독교 칼뱅파 쪽으로부터 신학적, 정치적으로 심한 공격을 받았다. 카스텔리오가 겪은 일과 비슷한 일이 그에게도 일어난 것이다. 이에 카스텔리오와 슈테판 츠바이크를 다 지켜본, 두 남자를 다 사랑하는 나는 마지막으로 이 문장을 쓴다. 어느 시대든, 이념이나 종교 자체보다 광신의 자세가 더 문제인 것이다, 라는 문장을.
*** 사족 : 혹시 이 글이 불편하실 분들을 위해 이미 칼뱅의 추종자들은 1903년에 세르베투스가 화형당한 제네바의 그 자리에 기념비를 세워 칼뱅의 오류를 인정한 바가 있다는 객관적인 사실을 알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