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큘라'-우리의 '어두운 자아'
그렇다면 조나산 하커의 드라큘라 서으로으 여행은 곧 문명과 교양을 떠나 시도해 본 자신의 원초적 본능으로의 상징적 여행이라고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가 그 어둠 속의 여행의 끝에서 대면한 것은 물론 야만과 무례- 공 '불법적 '인 존재-의 화신인 드라큘라였다. 그것은 그의직업이 부동산 거래에 따른 제반 사항을 '합법적'으로 처리해 주는 부동산회사의 직원이라는 점을 생각해 볼 때 퍽이나 적절하게 느껴진다.
--- p.207-208
나는 우선 소외된 예술자르인 영화의 바로 그러한 문학적 가능성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고 더 나아가 영화 중에서도 소외된 분야인 소위 오락 영화 속에 숨겨져 있는 예술적 의미에 대해 주목하기 시작했다. 그것이 내가 왜 이 책에서는 높은 예술적 가치를 지녔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공인된 예술 영화 보다는 흔히 액션 오락 영화라고만 알려져 있는 헐리우드 상업 영화들을 주로 다루고 있는가 하는 이유다. - 그것이 바로 비평가가 해야 될 작업이자 책무인지도 모른다.
--- p.8
그러나 전술한 대로, 'JFK'의 의도는 극도의 혼란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절대적 진리의 해체와 전복에 있다. 그러므로 여기에서 혼란은 낡은 진리를 무너뜨리고 새로운 진리를 발견하기 위한 필연적인 과정이 된다--마치 빛을 보기 위해서는 먼저 어둠을 보아야만 하듯이. 정보이론과 엔트로피 이론에 의하면, 오직 정보에 있어서만은 결핍보다는 과잉이 좋다고 한다. 대부분의 경우, 과잉은 언제나 쓰레기를 만들고 쓰레기는 결국 엔트로피를 초래하게된다. 그러나 정보의 경우에는 통제나 조종보다는 차라리 정보의 방출과 넘침이 더 효과적으로 엔트로피를 억제한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역설적인 이론은 곧 정보를 통제하려는 지배권력의 의도를 무산시키고, 결국에는 새로운 진리를 찾을 수 있도록 도와준다. (p. 270)
--- p.
[JFK]에서는 전형적인 미국적 주인공 짐 개리슨 검사조차도 영웅으로 부각되지는 않고 있다. 심지어는 마지막 법정진술에서도 그는 관람객들이 기대하는 만큼의 박력과 호소력을 보여 주지 않는다(아마도 의도적으로). 그러나 그는 가장의 의무를 다하지 못하고 가족들을 위험에 빠뜨리면서도 진실을 밝히는 작업을 계속한다. 적어도 그의 아내의 시각으로 볼 때에는 그렇다. 그러나 사실은 짐 개리슨에게 있어서 진실을 밝히는 작업은 궁극적으로 자신의 가정을 지키는 작업과 동일시된다. 진실을 밝히지 못할 때, 자신과 자신의 가족 역시 언젠가는 케네디처럼 당하게 되리라는 것이 모든 미국인 주인공들을 지탱해 주는 공통적인 신념이다(이점, 자신이 직접 피해를 당하기 전까지는 모든 것을 남의 일로만 생각하는 한국인들에게는 중요한 교훈이 된다). 바로 그것이 왜 이 영화의 중간중간에 개리슨과 가족들 간의 갈등이 삽입되고 있으며, 또 왜 영화의 마지막에 재판에 진 후 개리슨이 같이 투쟁했던 부하직원들이 아닌 자신의 가족들과 함께 손을 잡고 법정을 떠나는가 하는 이유다.
--- pp.274-275
[JFK]에서는 전형적인 미국적 주인공 짐 개리슨 검사조차도 영웅으로 부각되지는 않고 있다. 심지어는 마지막 법정진술에서도 그는 관람객들이 기대하는 만큼의 박력과 호소력을 보여 주지 않는다(아마도 의도적으로). 그러나 그는 가장의 의무를 다하지 못하고 가족들을 위험에 빠뜨리면서도 진실을 밝히는 작업을 계속한다. 적어도 그의 아내의 시각으로 볼 때에는 그렇다. 그러나 사실은 짐 개리슨에게 있어서 진실을 밝히는 작업은 궁극적으로 자신의 가정을 지키는 작업과 동일시된다. 진실을 밝히지 못할 때, 자신과 자신의 가족 역시 언젠가는 케네디처럼 당하게 되리라는 것이 모든 미국인 주인공들을 지탱해 주는 공통적인 신념이다(이점, 자신이 직접 피해를 당하기 전까지는 모든 것을 남의 일로만 생각하는 한국인들에게는 중요한 교훈이 된다). 바로 그것이 왜 이 영화의 중간중간에 개리슨과 가족들 간의 갈등이 삽입되고 있으며, 또 왜 영화의 마지막에 재판에 진 후 개리슨이 같이 투쟁했던 부하직원들이 아닌 자신의 가족들과 함께 손을 잡고 법정을 떠나는가 하는 이유다.
--- pp.274-27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