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에게 내 생각을 직접 말할 수 없다는 것이 너무 화가 났다. 그러자 태풍이 불어닥쳤다. 나는 발로 엄마를 차고, 소리를 질렀다. 그러면서 계속 블록이 있는 방향을 가리켰다. 사람들이 쳐다보기 시작했다. 어떤 사람들은 손가락질을 했고, 어떤 사람들은 아예 눈길을 돌렸다.엄마는 카트를 끌고 출입구로 갔다. 그러고는 카트에서 나를 홱 잡아 올려 품에 안고서는 성큼성큼 그곳을 걸어 나왔다. 카트에는 주인 잃은 물건들이 널려 있었다. 차에 도착했을 때 엄마의 얼굴은 눈물로 홀딱 젖어 있었다. 엄마는 뒷좌석에 있는 유아용 카시트에 나를 앉히더니 안전띠를 매면서 소리쳤다.“대체 왜 그러는 거야?” --- p.22
의사?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까. 진지하게 말하건대, 의사들은 나를 잘 모른다. 엄마는 간호사다. 그래서 나는 어쩐지 엄마가 의사들처럼 말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진짜 의사를 만나면, 그들은 내게 어떻게 말을 걸어야 하는지조차 전혀 알지 못한다. --- p.24
나는 내가 들을 수 없다고 생각하는 어른들을 볼 때마다 언제나 깜짝 놀란다. 어른들은 내가 너무 모자라서 자기들이 나누는 이야기를 하나도 못 알아들을 거라고 생각한다. 나란 사람은 없는 것처럼 아무렇지 않게 나에 관한 이야기를 지껄인다. 내가 옆에 버젓이 있는데도 말이다. --- p.29
내 휠체어에는 팔을 고정하도록 조여 주는 부분 위에 투명한 판이 있다. 그 판은 대화를 할 때 쓸 수도 있고, 개인 식탁으로 쓸 수도 있다. 지금보다 더 어렸을 때, 엄마는 수십 개의 단어를 그 위에 붙여 주었다. 그래 봤자 거기에는 명사, 동사, 형용사가 각각 몇 개, 내 주위에 있는 사람들의 이름, 웃는 얼굴을 그린 그림 정도가 있을 뿐이다. --- p.44~45
학교에 다니기 시작하면서 나는 의자에서 떨어지는 것보다 훨씬 더 큰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게는 단어가 필요했다. 생각을 표현할 수도 없는데 어떻게 다른 것을 배울 수 있단 말인가? 어떻게 질문을 할 것이며 또 답할 것인가? --- p.52
더 이상 아빠의 말을 들을 수가 없었다. 하고 싶은 말은 너무도 많은데 할 수가 없어 머릿속이 요동치고 있었기 때문이다.엄마가 슬퍼하면서 걱정하는 것이 너무 마음 아팠다. 그런 내 마음을 엄마에게 그대로 전해 주고 싶었다.엄마의 실수가 아니라고.나는 그냥 나일 뿐이고, 내가 이렇게 된 것은 엄마와는 아무 관계가 없다고. --- p.82
엄마와 나는 가끔 소리 없이 이야기를 나눈다.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천장을 가리키면 엄마는 내가 천장에 있는 환풍기에 대해 얘기하는지, 아니면 달에 대해 얘기하는지, 그것도 아니면 지난 폭풍 때 빗물이 새서 생긴 검은 얼룩에 대해 얘기하는지 단박에 알아챈다. 엄마는 내가 슬픈지 아닌지도 금방 안다. 그리고 내가 언제 엄마를 껴안고 싶어 하는지도 정확히 안다. --- p.92
난 지금까지 엄마, 아빠에게 어떤 말도 직접 해 본 적이 업었다. 단 한 번도. 그래서 버튼을 눌러 내가 정말 하고 싶었던, 그러나 한 번도 말할 수 없었던 그 말을 했다.“사랑해요, 엄마, 아빠.”엄마는 결국 눈물을 쏟으며 아빠를 꽉 붙잡았다. --- p.147
방송국 대기실에서 콜라를 마셨을 때를 제외하면 지금까지 내가 뭘 먹는 모습을 본 사람은 우리 팀에 아무도 없었다. 누군가가 내게 밥을 먹여 주는 모습을.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음식은 식고 있었다. 나는 엄마를 쳐다보았다. 엄마도 나를 쳐다보았다. 엄마는 숟가락을 들고 내 생각이 어떤지 알고 싶다는 표정을 지은 채 나를 바라보았다.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엄마는 숟가락에 마카로니를 떠서 조심스럽게 내 입에 넣어 주었다. --- p.255~256
“멜로디, 혹시 친구들한테 전화 온 거 없었니? 선생님한테나?”브이 아줌마가 이를 악물고 말했다.“선생님한테서도?”“다들 준비하느라고 바빴을 꺼예요.”엄마가 체념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난 한 명이라도 연락을 했는지 알고 싶은 거예요. 설마… 설마 아이들이 일부러 멜로디를 떼어 놓고 갔다고는 생각할 수 없어요.” --- p.281
“왜 전화하지 않으신 거죠?”엄마는 선생님의 말을 잠시 듣는 것 같더니 버럭 소리를 질렀다.“그럼 우리도 어렵지 않게 한 시간 일찍 공항에 도착했을 거예요. 그럼 워싱턴에는 문제없이 갈 수 있었겠죠! 이 일로 우리 딸이 얼마나 절망하고 있는지 알기나 하세요?” --- p.286
나는 엘비라의 볼륨을 최고로 높였다.“왜 저만 남겨 두고 간 거죠?”교실은 소름이 끼칠 정도로 조용했다. 누군가가 카메라를 들고 이 상황을 찍지 않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었다.아이들은 누군가 먼저 말을 꺼내기를 기다리며 서로 눈치만 살폈다. --- p.312
가끔은 삶이란 게 퍼즐 조각 같기도 하다. 누군가 내게 퍼즐을 줬는데, 완성된 모습이 어떻게 생겼는지는 알려 주지 않은 것이다. 완성된 모습이 그려진 퍼즐 상자가 내게는 없다. 그래서 퍼즐이 완성되면 어떤 그림이 나올지 알지 못한다.
--- p.3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