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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골목길 역사산책
진경시대 | 신진경시대 | ‘역사산’책 1. 부암동 무릉도원길 산책 부암동―세속을 잊은 산속 별천지 부암동 사람들―이상향을 꿈꾼 사람들 못다 이룬 꿈, 몽당붓에 실어 펼치다: 추사 김정희 | 나는 대한의 명필이로소이다: 소전 손재형 부암동 산책―무릉도원길 신선의 별장에 둥실 뜬 보름달: 석파랑 | 저문 강에 칼을 씻고: 세검정 | 북악산 기슭 신선이 노닐던 곳: 유당 김노경 별서 터 | 태양 아래 그들처럼: 라 카페 갤러리 |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환기미술관 | 신선이 노니는 별서: 삼계동산정 석파정 | 무릉도원 계곡: 무계정사 부암동 무릉도원길 산책로 2. 정동 역사길 산책 정동―세우고 빼앗기고 되찾은 나라 정동 사람들―삶으로 역사를 쓴 사람들 임시정부 지킴이: 백범 김구 정동 산책―역사길 70년 대역사: 서울주교좌성당 | 비겁한 임금, 의로운 백성: 경운궁 | 인재를 기르는 집: 배재학당 | 배꽃 핀 언덕: 이화학당 | 언덕 밑 하얀 교회당: 정동제일교회 | 헤이그 밀사: 중명전 | 아관파천: 러시아공사관 | 국내 임시정부청사: 경교장 정동 역사길 산책로 3. 북촌 개화길 산책 북촌―고귀한 북리 북촌 사람들―부강한 나라를 만들자 양반자제 일어서다: 고균 김옥균 | 만민이 일어서다: 송재 서재필 북촌 산책―개화길 북학을 넘어 개화로: 재동 백송집 박규수 집터 | 왕립병원: 재동 제중원 홍영식 집터 | 친일매국을 넘어 자주독립으로: 백인제 가옥 | 3.1독립만세운동: 계동 중앙고등학교 | 건축왕 정세권: 가회동 북촌한옥마을 | 맹감사현: 북촌동양문화박물관 | 독립운동에서 민주화운동으로: 안국동 윤보선 가옥 | 고요히 배우고 즐거이 놀게 하자: 세계 어린이운동 발상지 | 하늘과 한 자 다섯 치: 운현궁 북촌 개화길 산책로 4. 서촌 조선중화길 산책 서촌―군더더기 없이 담백한 마을 서촌 사람들―조선시대 한류 주도자 진경시대: 겸재와 사천 | 조선중화주의: 삼연 김창흡 서촌 산책―조선중화길 하얀 하늘, 파란 바람 그리고 미운 나: 윤동주문학관 | 물소리의 추억: 수성동계곡 | 봄바람 피우는 집: 갤러리 서촌재 | 다시 찾은 우리 얼: 박노수미술관 | 푸른 마음밭: 청전화옥 | 우리 집, 남 커피: 커피숍 서촌산책 | 세상의 중심에서 매국노의 아방궁으로: 송석원 터 서촌 조선중화길 산책로 5. 동촌 문화보국길 산책 동촌―힘든 시절 살아 견디어낸 곳 동촌 사람들―나라 잃은 개화파 물처럼 흘러서 맘껏 푸르다: 간송 전형필 | 절필 낙향하여 모진 세상 견디어내다: 상허 이태준 동촌 산책―문화보국길 포목시장을 열어 나라를 지키다: 흥인지문 | 내 이름은 명품: 동대문디자인플라자 | 문화보국 보화각: 간송미술관 | 동산에서 본 동서울: 창신동 | 정겨운 우리 동네: 이화 벽화마을 | 편안한 낙타 등허리: 낙산공원 | 다시 찾은 조선집: 수연산방 동촌 문화보국길 산책로 결론: 나는 역사를 걷는다 조선 사람, 청나라를 걷다 | 한국 사람, 역사를 걷다 미주 참고문헌 |
저최석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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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봄처럼 산책하기 좋을 때도 드물다. 약간 서늘하지만 걸으면 몸에 열이 나서 금방 걷기에 적당해진다. 지루할 즈음 두루 핀 꽃으로 이야기꽃을 피운다. 성가신 벌레도 없다. 봄기운 듬뿍 받은 산책자들은 더없이 밝고 활달하다.
한양도성 안에 살았던 우리 조상들도 이맘때 순성(巡城)을 했다. 새봄이 오면 한양도성 성곽을 한 바퀴 걸었다. 특히 과거를 앞둔 거자(擧子)들은 순성 후에 흥인지문(동대문)에서 돈의문(서대문)까지 한양도성을 가로질러 걸었다. 성곽을 따라 걷고 난 뒤 동대문에서 서대문으로 가로질러 걸으면 순성길은 어느새 가운데 중(中) 자 모양이 된다. 가운데 중 자는 ‘급제하다, 합격하다’라는 뜻도 지니고 있다. 시험을 앞둔 거자들은 도성을 한 바퀴 걸은 후에 동대문에서 서대문으로 가로질러 걸음으로써 가운데 중 자 모양으로 순성했다. 합격을 기원한 순성이다. 저마다 취향과 사정에 따라 순성한 것이다. - ‘부암동 무릉도원길 산책’ 중에서 서촌재를 지나니 박노수미술관이 나온다. 한국화가 남정(藍丁) 박노수 화백이 지난 1973년부터 2011년까지 살던 집이다. 2013년 타계한 박노수 화백이 모두 1천여 점에 달하는 그림, 소장품 등과 함께 사회에 환원하여 지금은 ‘종로구립 박노수미술관’이 되었다. 건축가 박길룡이 한국식, 일본식, 서양식 등 건축기법을 절충하여 1939년에 설계한 집이라고 하는데, 그 멋스러움과 아늑함이 정말로 놀랍다. 박길룡은 조선인 최초의 건축사이자 일제강점기 최대의 건축물이었던 화신백화점, 민가다헌(閔家茶軒), 경성제국대학 본관, 평양대동공전 교사(현재 김일성대학교사), 보화각(현재 간송미술관) 등을 설계한 이로 잘 알려져 있다. 박길룡은 서양식과 일본식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는것을 비판하면서, 우리의 생활을 새로운 각도에서 연구함으로써 주택과 온돌을 개량하여 민중의 주거생활을 개선하고자 했다. 그러나 박길룡이 설계한 이 집은 가슴 아픈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네거티브 헤리티지(negative heritage)다. - ‘서촌 조선중화길 산책’ 중에서 2017년 겨우내 얼어붙은 밤을 밝힌 촛불은 헌법재판소와 청와대를 오갔다. 자랑스러운 촛불 역사의 현장으로 자리 잡은 헌법재판소는 지하철 3호선 안국역 2번 출구에서 빤히 보이는 대리석 건물이다. 헌법재판소는 조선시대로부터 구한말에 이르는 시기에도 역사의 현장이었다. 헌법재판소 오른쪽에 우리나라 첫 근대식 왕립병원 재동 제중원이 있었다. 그 뒤편 언덕 백송은 개화파를 길러낸 박규수의 집터다. - ‘북촌 개화길 산책’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