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에서 성인으로 불리기 시작한 나이부터 나는 가족을 떠나 혼자 살았다. 투쟁은 더 이상 신문과 텔레비전 뉴스 속에 있는 것이 아니었다. 아버지의 그늘 밑에 있는 딸, 더 이상 교복 입은 청소년이 아닌 한 명의 여성. 여성의 발끝은 어디에 서든 언제나 영락없는 험지였다. 안전을 위협 하는 일을 보고 듣고 경험해야 했으며,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존재의 정체성을 공격하는 일로부터 마음을 다쳤다.
--- pp.6-7, 「서문」
분노로부터 매일같이 영감을 얻어야 하는 삶에서 벗어나고 싶다. 물 흐르듯 안전하고 평온한 일상을 영위하고 싶다. 남자들은 어떤 걱정을 하며 삶을 쓰는지 궁금하다. 현관문을 닫고 집 안으로 들어서며 오늘도 무사히 귀가했음에 감사해야 하는 여성들의 일상과는 어떻게 다를까. 아마 천지 차이일 테다. 여자의 삶은 이런 불편과 공포와 억울함 속에 둘러싸여 있다고 매번 설명해주어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어머니 세대에는 성차별이 있었지만 우리 세대에는 성차별이 없다고 말하는 이들이 나는 부럽다. 그러한 일상, 그 다름의 간극을 얼마나 부러워해야 하는지 가늠조차 할 수 없다는 사실이 그저 씁쓸할 뿐이다.
--- pp.17-18, 「분노로부터 얻는 영감」
약자에게는 언제나 분기점이 있고 그때마다 라벨링 작업을 당하곤 한다. 원래는 이름이 없었고 원래는 존재하는 것으로 여겨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 그 이유는 너무나도 간단하다. 남성에게 이름을 붙일 수 있는 지위나 우위를 점한 세력이 따로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권력을 가진 강자에게는 따로 이름이 없다. 그걸 만들어봐야 부를 필요도 없다. 그가 기준이 되고, 그만이 누군가를 불러다 앉히는 위치에 있기 때문이다.
--- pp.82-83, 「NEW WOMEN ARRIVE」
성인이 된 딸들에게 통금 시간을 정해주고 행실을 지적한다. 서른이 다 되어가는 나이일지라도 어린아이처럼 복종하기를 바란다. 딸은 언제나 자신의 소유물이라고 생각한다. 연애를 할 때 홀로 옳은 결정을 내릴 수 없다고 믿는다. 딸이 자신이 허락하지 않은 관계를 맺기도 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 그렇지만 딸 가진 아빠가 세상천지에 널렸는데 딸을 단속하며 조신하고 착한 딸이라는 프레임에 가두기보다 ‘늑대’라고 부르는 그 남자들과 같은 남자로서 세상을 좀 바꿔보려 노력해주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적어도 자신들이 팔 뻗어 닿는 거리 안에서만이라도.
--- pp.118-119, 「‘딸바보’라는 단어의 이면」
피해를 입을 때마다 나는, 나의 사회생활은, 나의 개인적인 삶은, 그냥 나를 둘러싼 모든 것은 한 번에 다 함께 쪼그라들었다. 한계를 모르고 위축되는 그 느낌이 나는 제일 싫었다. 안전하기 위해서, 나를 지키기 위해서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기본적인 사회생활조차 조심해야 한다는 사실을 견디기도 힘들고 용납할 수도 없는데, 결국은 어쩔 수 없이 그 사실 앞에 무너져 굴복해야 하니까. 매일 비굴하게 세상에 지는 기분이었다. 무엇이든 남자와 똑같이 잘하고 남자보다 잘하고 누구보다 잘하려고 애쓰며 살아왔는데, ‘여자’로서의 내 존재는 나를 성적으로 신체적으로 언제든 테러를 당할 수 있는 잠재적 피해자로 규정하게 하고, 그래서 내가 나를 살리기 위해서 많은 것을 포기하게 했다.
--- p.145, 「변태들의 문자」
뜨거운 물로 샤워를 할 때마다, 찬물을 틀어놓고 오래 설거지를 할 때마다 내게 상처를 죽죽 그어놓은 것들의 얼굴이 떠올라 괴로웠다.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나서도 그랬다. 잊고 넘어간 줄 알았는데 멍하니 머리를 식힐 때면 꼭 다시 생각이 나고 분하고 억울하고 화가 났다. 그럴 때마다 나는 지금까지 받아온 피해만으로도 충분하다고 되뇌었다. 지금까지 받아놓은 것만으로도 차고 넘치는데 남이 아니라 나까지 나를 괴롭힐 필요는 없다고 내게 말해주었다. 억울해서라도 더 이상 나에게 주어진 피해의 양을 늘리지 않는 것. 나는 심신을 회복하는 동안 이 생각을 가장 많이 했다.
--- p.182, 「피해자를 위한 꿀팁」
어린 나이의 나는 이렇게 살았다. 어리다고 무시하는 남자들, 권력을 함부로 쓰는 놈들의 틈바구니에서 언제나 바락바락 악을 쓰고 풍파를 일으키면서. 그들은 그래야만 나를 보았고 그래야만 여기 내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대수롭지 않게 여기던, 언제든 무시해도 되고 짓밟아도 된다고 생각했던 ‘어린 여자애’ 대신 진짜 나를 보여주는 방법은 이것뿐이었다. 내가 일으킨 파도는 집채만 한 세상에 비할 게 아니어서 바다는 금세 다시 잔잔해 졌지만 파도가 일었다는 것을 누군가는 기억할 것이다. 그것만으로도 내게는 충분하다.
--- pp.224-225, 「어린 여자애 혼자 그랬을 리 없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