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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며
1 이성의 쇠퇴와 몰락 2 새로운 문화전쟁 3 ‘자아’와 주관성의 부상 4 실재의 소멸 5 언어의 포섭 6 필터, 저장탑, 부족 7 주의력 결핍 8 ‘거짓말이라는 소방호스’: 프로파간다와 가짜 뉴스 9 남의 불행에 쾌감을 느끼는 사람들 나가며 주 추가 출처 해제 포스트트루스 시대의 인간의 조건―정희진 옮긴이의 말 독설 서평가의 본격 문화·정치비평 |
Michiko Kakutan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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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의 쇠퇴’(truth decay)라는 말이 ‘가짜 뉴스’와 ‘대안사실’ 같은, 이제는 익숙한 어구가 포함된 탈진실 시대의 어휘 목록에 합류했다. 랜드연구소는 미국의 공적 생활에서 “사실과 분석의 역할이 줄어드는” 현상을 가리켜 이 말을 썼다. 가짜 뉴스만이 아니다. 기후변화를 부정하는 사람들과 백신 접종을 반대하는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가짜 과학, 홀로코스트 수정주의자와 백인 우월주의자들이 활성화하는 가짜 역사, 러시아의 인터넷 트롤들이 만들어내는 페이스북의 가짜 미국인, 그리고 봇(bot)이 만들어내는 소셜미디어의 가짜 팔로어와 가짜 ‘좋아요’도 있다. --- p.11
달리 말하면, 트럼프는 언어를 실제와 정반대되는 의미로 사용해 혼란을 일으키는 오웰류의 요술을 부린다. “전쟁은 평화다”, “자유는 노예상태다”, “무지는 힘이다” 같은 식이다. ‘가짜 뉴스’라는 말을 가져와 뒤집어 이용해서 자신에게 위협이 되거나 호의적이지 않다고 보는 언론의 평판을 떨어뜨리려 할뿐더러, 러시아의 미국 대통령 선거 개입 조사가 “미국 정치 역사상 최대의 마녀사냥”이라고도 했다. 정작 트럼프 본인이 언론, 사법부, FBI, 정보부서 등 자신을 적대한다고 여겨지면 어떤 기관이든 수차례 공격해왔는데도 말이다. --- p.88 “전통적인 제도가 신뢰를 잃으면서, 사람들의 소속 욕구를 충족시키기에 직장의 빈약한 유대관계는 불충분했다.” 사람들은 이에 대응해 생각이 비슷한 이웃, 교회, 사교모임 등 다른 단체를 찾아냄으로써 공동체의식을 되찾았다. 이런 역학관계는 인터넷에 의해, 다시 말해 특정한 이념의 관점에 영합하는 뉴스 사이트, 특정 관심사를 가진 사람들이 모이는 게시판, 관심사를 공유하는 편파적 저장탑 안으로 사람들을 한층 더 분류해 넣는 소셜미디어에 의해 빛의 속도로 증폭될 터였다. 밀레니엄 전환기에 이런 분열은 이념보다는 취향과 가치관에 대한 것이었으나 “정당이 삶의 방식을 대변하게 되고 삶의 방식이 공동체를 규정하게 되면서 모든 게 공화당 지지자 또는 민주당 지지자로 나눌 수 있는 듯이 보인다”고 비숍은 썼다. 모든 것이란 의료보험이나 투표권이나 지구 온난화에 대한 견해만이 아니라 쇼핑하는 곳, 먹는 것, 보는 영화의 종류를 또한 의미한다. --- p.99 레닌은 언젠가 자신의 선동적인 언어가 “증오와 혐오와 경멸을 불러일으키려고 의도”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어법은 “상대 계급을 납득시키는 게 아니라 깨부수려고, 적의 잘못을 바로잡는 게 아니라 적을 파괴하려고, 적의 조직을 지구상에서 전멸시키려고 의도한 것이었다. 이런 어법은 실로 적에 대한 최악의 생각, 최악의 의혹을 불러일으키게 하는 성격의 것이다.” 이 모두가 트럼프와 지지자들이 2016년 미국 대통령 선거운동 기간 동안 힐러리 클린턴을 공격하면서 사용한 언어(“힐러리 클린턴을 가둬라”), 영국 브렉시트 운동의 과격한 지지자들이 사용한 언어, 대서양 양쪽 해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우파 포퓰리즘 운동이 점점 더 많이 사용하는 언어의 원형처럼 들린다. --- p.128 러시아의 소방호스 시스템이 풀어놓은 엄청난 양의 허위 정보는 트럼프와 그의 공화당 조력자들과 미디어의 기관원(apparatchik)들이 쏟아내는 좀더 즉흥적이지만 마찬가지로 방대한 양의 거짓말, 추문, 충격적 언사와 무척 비슷하다. 이들은 사람들을 압도하고 무감각하게 만드는 동시에 비정상의 경계를 낮춰 용납할 수 없는 것을 정상으로 만드는 경향이 있다. 모욕이 모욕에 대한 피로감에 밀려나고 이 피로감은 냉소주의와 권태에 밀려나, 거짓말을 퍼뜨리는 사람들에게 권한을 부여한다. 전 체스 세계 챔피언이자 민주주의를 지지하는 러시아 지도자인 가리 카스파로프는 2016년 12월 트위터에 이런 글을 올렸다. “현대 프로파간다의 요점은 잘못된 정보를 전하거나 어떤 의제를 밀어붙이는 것만이 아니다. 우리의 비판적 사고를 소진시키는 것, 진실을 무효화하는 것이기도 하다.” --- p.134 가장 끔찍한 인종차별과 성차별의 말, 그리고 심히 잔인한 말이 흔히 윙크나 조롱과 함께 소셜미디어에 올라온다. 그리고 그런 말을 한 사람들은 공개적으로 비판을 받으면 흔히 그냥 농담이라고 대응한다. 트럼프가 공격적인 발언을 하면 백악관 보좌관들이 그가 그냥 농담을 하는 거라거나 그의 말을 오해한 거라고 말하는 것과 아주 비슷한 식이다. --- p.147 나는 이 책의 관점에 동의하지 않는다. 하지만 많은 이들이 이 책을 읽고 저자가 제기한 문제를 공유하기를 절실히 바란다. 한 권의 책이 세상을 구할 수는 없어도 잠시나마 사람들의 발걸음을 멈추게 할 수는 있다고 생각한다. 이 책은 당대 우리 사회에 반드시 필요한 사유의 정거장이다. 미치코 가쿠타니는 진실이 있다고 믿으며, 트럼프 시대가 만들어내는 ‘가짜 뉴스’와 그 폐해를 성실히 보고한다. 공감하지 않는 이가 없을 것이다. 이 시대 최고의 트럼프 보고서가 아닐 수 없다. (…) 이제 사람들은 ‘노오력’과 같은 자기계발조차 불가능한 자아실현이라는 것을 안다. 대신, 타인을 밀치고 혐오하고 ‘관종’이 됨으로써 자신을 실현하려고 한다. 트럼프의 의미는 이런 시대의 모델이라는 데 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실천은 내 주변의 ‘트럼프들’과 싸우는 것이다. ‘우리 안의 파시즘’처럼 ‘내 안의 트럼프’도 극복해야겠지만, 아직은 트럼프들보다 트럼프들을 피해 다니는 이들이 많은 것 같다. 나는 이러한 상황이 희망적이라고 본다. 나를 포함해 우울증, 도시 탈출, “눈을 감고 살자”는 다짐, ‘욜로족’이 등장하고 있는, 이 시기를 놓쳐서는 안 된다. 모두가 트럼프가 되기 전에 말이다. 이 책이 필독서인 이유다. --- 「정희진(여성학 연구자), 해제」 중에서 |
전설의 독설 서평가, 미치코 가쿠타니의 국내 첫 출간작
2017년 1월, 퇴임을 앞둔 오바마 대통령과 책을 주제로 마지막 인터뷰를 진행한 사람은 바로 그였다. 조앤 롤링이 필명으로 쓴 탐정소설 『실크웜』을 비롯해, [섹스 앤 더 시티][걸스][디 어페어] 등 여러 드라마에서 언급되며 하나의 문화 아이콘이 된 서평가, 조너선 프랜즌이 “뉴욕에서 가장 멍청한 사람”, 살만 루슈디가 “이상한 여자”, 노먼 메일러가 “1인 가미카제”, 수전 손택이 “명석한 악평과 대조되는 멍청한 악평”을 썼다고 공격한 이 서평가의 이름은 미치코 가쿠타니이다. 미치코 가쿠타니는 일본계 미국인 문학비평가이자 서평가로, 「워싱턴포스트」「타임」을 거쳐 1979년 「뉴욕타임스」에 합류해 1983년부터 2017년까지 서평을 담당했다. 무라카미 하루키, 수전 손택, 마거릿 애트우드, 조너선 프랜즌, 노먼 메일러 등 유명 작가들의 특정 작품을 향해 독설도 서슴지 않았으며, 작가들은 그의 혹평에 다양한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이러한 논란 때문에 그가 유명세를 탄 것은 아니다. 그는 이언 매큐언,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 조지 손더스 등의 비평적 조력자였고, 자신의 비평 원칙에 따라 작품 그 자체에 대해 냉정하고 무자비한 비평을 구사했으며, 날카롭고 신랄한 어조로 그만의 확고한 스타일을 만들어냈다. 가쿠타니는 1998년에 비평 분야 퓰리처상을 수상했고, ‘영어권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서평가’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미치코 가쿠타니가 뽑은 올해의 책’ 리스트나 발췌한 서평으로 그의 이름을 접했던 독자들은 2019년 가을, 드디어 그의 글을 한국어로 직접 읽을 수 있게 되었다. 『진실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원제: The Death of Truth: Notes on Falsehood in the Age of Trump)는 가쿠타니의 두 번째 책으로, 여러 작가와 예술가들의 인터뷰를 묶은 『피아노 앞 시인』(The Poet at the Piano) 이후 30년 만에 발표한 책이다. ‘트럼프’와 탈진실 시대를 비평가의 눈으로 기록하다 『진실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는 문학비평가이자 서평가로서 명성을 얻은 미치코 가쿠타니가 「뉴욕타임스」 퇴임 후에 출간한 첫 책으로, 정치·문화비평에 속한다. 어째서 본격 저술가의 삶을 시작하며 집필한 실질적인 첫 책이 문학비평이 아니라 정치·문화비평일까? 여기서 독자는 긴급한 시대적 상황에 대한 가쿠타니의 절실한 비평적 개입을 읽어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그리고 이러한 개입이 비평의 중요한 소임 중 하나가 아닐까). 가쿠타니는 “‘진실의 쇠퇴’라는 말이 ‘가짜 뉴스’와 ‘대안사실’ 같은, 이제는 익숙한 어구가 포함된 탈진실(post-truth) 시대”에 “사실에 대한 무관심, 이성을 대신한 감성, 그리고 좀먹은 언어가 어떻게 진실의 가치를 깎아내리는지, 그리고 이것이 미국과 세계에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검토하”고자 이 책을 썼다. 가쿠타니는 이 책에서 진실이 공격받고 객관성이 인기를 잃으며 미국 대통령 트럼프가 하루에 5.9가지 거짓말을 하는 상황, 이성과 과학이 후퇴하고 가짜 뉴스와 음모론이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시대, 반지성주의와 농담인 척하는 편견과 혐오의 언어로 뒤덮인 세계를 “진실의 죽음”이라는 키워드로 건져 올려, 결코 타협하지 않는 서평가의 눈으로 냉정하고 명징하게 읽어낸다. 그는 트럼프 개인의 거짓말과 나르시시즘, 혐오의 정치뿐만 아니라 ‘트럼프’로 상징되는 우리 시대 전반적인 문화를 가로지르며, 정치 현실과 역사와 문학을 한데 엮어 다음과 같은 질문들에 대한 대답을 찾아낸다.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어째서 진실과 이성이 이런 위험에 처하게 되었을까? 눈앞에 닥친 진실과 이성의 죽음은 우리의 공적 담론과 정치 및 통치의 미래에 무엇을 예고하는 것일까?” 그에 따르면, 이러한 현상은 수십 년 전부터 서서히 나타났다. 가쿠타니는 좌우를 막론하고 일상생활, 정치, 학계, 문학과 대중문화, 인터넷 소셜미디어 등을 아우르며 다양한 영역에서 ‘진실의 죽음’을 둘러싸고 어떤 일들이 벌어졌는지 기록한다. 1960년대에 문화전쟁이 시작된 이래, 학계에서 논의되던 포스트모더니즘은 대중문화와 정치 주류까지 스며들어 상대주의를 퍼뜨렸고, 크리스토퍼 래시가 “나르시시즘의 문화”라 하고 톰 울프가 “‘나’의 시대”라 일컬은 것이 꽃을 피우며 주관성이 부상했다. 또한 1980년 무렵부터 미국은 1960년대의 사회변화에 대한 반응으로 분열되기 시작해 “가치관, 취향, 신념”을 중심으로 삶을 재편했다. 그리고 여기에 불을 붙인 게 인터넷이었다. 그는 미국의 민주주의를 둘러싼 풍경들, 1960년대 이후 포스트모더니즘과 문화전쟁에 관한 논의, 주관성의 부상, ‘현실’(reality)의 붕괴, 필터버블·저장탑·부족 현상, 인터넷이라는 매체의 문제, 러시아의 미국 대통령 선거 개입, 트럼프뿐만 아니라 히틀러·레닌·푸틴의 언어, 사회 전반에 만연한 허무주의, 프로파간다와 인터넷 트롤 등을 아우르며, 민주주의를 병들게 하는 것들의 어두운 핵심을 예리하고 깊숙이 파고든다. 조지 오웰, 한나 아렌트, 슈테판 츠바이크, 톰 울프,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 등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며, 어떻게 탈진실이 오늘날 광범위하게 확산되어서 우리의 환경이 되었는지, 우리가 어떻게 아이러니와 편견과 혐오의 언어에 도착하게 되었는지에 관해 간명하고 명쾌한 지도를 그려낸다. 그리고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민주주의의 초석일 진실을 되살릴 수 있겠냐고 되묻는다. ‘한국사회’에서 거짓과 혐오는 어떻게 일상이 되었는가 제목 ‘진실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는 진실이 죽어가는 세계를 만들어낸 태도를 함축하며, 사실 이 책의 주장과 반대되는 역설적 표현이다.『진실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는 ‘트럼프’로 상징되는 민주주의의 위기를 개탄하고 진실이 힘을 잃은 시대를 진단하며, 진실성과 투명성을 갖는 언어의 복원을 희망한다. 그리고 가쿠타니의 분석과 제언은 조국 법무부 장관 임명을 둘러싸고 벌어진 가짜 뉴스 논란에서 보듯이 여전히 과잉되고 편향된 말들로 시끄러운 한국사회에서 더욱 유용하다. 이 책은 댓글부대와 가짜 뉴스를 통한 여론 조작, 거짓말과 정치적 선동, 태극기부대, SNS와 부족주의, 음모론, 반지성주의, 악플과 혐오발언 등에 관해 유의미한 통찰과 비판의 지점들을 제공할 것이다. 말미에는 한국사회에 관해 가장 날카로운 비평을 들려주는 여성학 연구자 정희진의 해제를 덧붙여, 거짓과 혐오가 일상이 된 우리 사회에 깊이 있는 논의를 촉발한다. 정희진은 “이 책의 관점에 동의하지 않”지만, “많은 이들이 이 책을 읽고 저자가 제기한 문제를 공유하기를 절실히 바란다”고 썼다. 포스트모더니즘을 비판하며 진실이 있다고 믿는 가쿠타니와 달리, 정희진은 진실을 내세운 단 하나의 목소리를 경계한다. 그러나 이 책이 “이 시대 최고의 트럼프 보고서”로서 “필독서”로 읽히기를 바란다고 썼다. “‘노오력’과 같은 자기계발”조차 “불가능한 자아실현”이 되고 사람들은 “타인을 밀치고 혐오하고 ‘관종’이 됨으로써 자신을 실현”하려고 하는 시대, “트럼프의 의미는 이런 시대의 모델이라는 데 있”으며, “우리가 할 수 있는 실천은 내 주변의 ‘트럼프들’과 싸우는 것”이기 때문이다. 신랄한 서평가가 정직하게 기록한 이 책을 통해, 독자들은 우리 사회를 입체적으로 읽을 수 있는 통찰뿐만 아니라 거대한 전투를 위한 중요한 자원들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