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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며 - 4
서문 | 산에 살자 - 12 제1장 하늘을 우러르면 언제나 봄 하늘 - 21 운명의 여름 - 31 자작나무 너머, 러시아 - 39 고독한 골프, 잎갈나무 낙엽 - 48 겨울 벚꽃, 오리온자리 - 52 제2장 사람은 걸어 다니는 식도 아버지와 정원 가꾸기 - 63 두릅과 장모님 - 68 장모님에 관하여 - 75 아버지의 치아에 관하여 - 79 소세키와 준베리 - 83 땅일구기 - 89 모종 심기 - 97 시든 토마토 - 104 제3장 꽃의 빛깔 영원한 행복 - 109 작은 천사 - 119 노란 꽃 - 126 한국전쟁과 진달래 - 134 조팝나무와 공조팝나무 - 140 김대중 대통령 - 144 초여름의 장미와 혹한의 영국 - 149 클레머티스 같은 나라 - 160 백작약 - 166 흰 백합 - 169 명랑하게 겨울을 보내다 - 173 말기의 꽃 - 185 제4장 우리는 고양이로소이다 루크의 등장 - 191 나는 수수께끼로소이다 - 203 파트너 - 209 나의 파트너, 다시 한 번 - 214 제5장 고향에 관하여 조용한 각오 - 231 치열하게 살아가는 그곳이 고향이다 - 236 나오며 - 239 옮긴이의 말 - 24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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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작가 알림신청Kang Sang-jung,カン.サンジュン,姜 尙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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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란, 국적이란 땅끝까지 달라붙어 따라오는 것인가
분단국가는 제아무리 풍요롭다 해도, 언뜻 보아 평화로운 듯해도 그 안에는 항상 폭력의 불씨가 숨어 있다. 독일적군파의 동향이 현지에서 보도될 때마다 현실은 결코 만만치 않음을 새삼 느꼈다. 나는 베를린장벽 앞에서 그 정체를 실제로 경험하고 싶었다. 하지만 내게는 기회가 오지 않았다. 독일어 시험에 합격해 정식 입학 허가를 얻은 유학생들만의 베를린 버스 투어에 초대받았지만 구 동독(독일민주공화국)과 국교가 없는 반공 국가(한국)의 여권밖에 지니지 않은 내가 베를린장벽 앞에 선다는 것은 이룰 수 없는 꿈이었다. 멀리 독일 땅까지 찾아왔으나 스스로 원해서 선택한 것도 아닌 국적이라는 문제 때문에 내 가능성은 뜯겨나가고 말았다. 나는 이런 냉엄한 현실 앞에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었다. 국가란, 국적이란 땅끝까지 달라붙어 따라오는 것인가. 나는 갑갑한 기분을 풀 길이 없었다. --- p.23~24 강인한 치아, 아버지와 어머니가 물려주신 유산 아버지가 음식을 씹을 때 내는 소리가 어찌나 경쾌하던지 어린 내 마음에도 강한 인상으로 남았다. 리듬감 있는 턱의 움직임과 씹는 소리는 무언가를 먹는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내게 말없이 알려주었다. 그리고 문득 나 또한 아버지와 똑같다는 것을, 아버지를 반복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먹는 것도 유전하는 걸까. 각진 턱 모양, 씹을 때 턱을 사용하는 방법, 그리고 씹는 소리까지…. 아버지와 똑같은 내가 있다니 신기했다. ‘식食의 유전’ 덕분에 내 치아는 여전히 쇠약을 모른다. 뭐든 잘 씹을 뿐 아니라 단단한 것도 겁내지 않는다. 이는 아버지와 어머니가 내게 남긴 유산이다. 씹는 맛이 좋은 머윗대조림을 씹을 때마다 나는 내 안에 아버지가 살아 있음을 느낀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강인한 치아는 이국의 땅에서 살아간 서민의, 어떤 일에도 꺾이지 않던 강인한 의지를 보여주는 듯하다. 나 또한 그것을 물려받았다. --- p.81~82 변해야 한다, 다시 태어나야 한다 아들을 먼저 떠나보내고 깊은 슬픔에 잠겼던, 아니 공중에 붕 떠 있는 듯했던 나는 공허함을 곱씹으며 비극을 봉인한 채로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에만 신경을 썼다. 그런 내게 동일본대지진으로 인한 참사는 영혼을 뒤흔드는 충격이었다. …… 그저 풍요로움을 얻기 위해 매진하고, 과학기술의 빛나는 미래를 믿었으며, 열에 들떠 경제성장을 향해 달려온 전후 일본. 나 또한 그렇게 반평생을 살았다. 민족적 소수자를 따라다니는 핸디캡이 있었다손 치더라도 나는 분명 그 상승 기류에 올라탔으며 혜택을 누렸다. 내가 누린 혜택은 분명히 다음 세대로도 흘러넘치리라 확신했다. 하지만 사랑하는 아들조차 구하지 못한 풍요로움이란 도대체 무엇이었을까? 내가 믿어온 과학기술이 가져온 생산력이란 또 무엇이었을까? 이와 같은 물음을 거대한 규모로 백일하에 드러내 보여준 것이 동일본대지진과 원전 폭발 사고였다. 인간이 살아가는 방식, 사회의 존재 방식, 낙관적인 과학기술론이 ‘근본적인 회의懷疑’라는 체에 걸러졌다. ‘변하자, 변해야 한다’, ‘다시 태어나자’는 마음이 나를 움직였다. --- p.121~124 한국적 카테고리에 속하자 38선 북쪽의 나라를 ‘지상낙원’이라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남쪽의 군사독재에도 찬성할 수 없었던 우리는 강한 반발심을 느끼면서도 ‘한국적 카테고리’라 불리는 쪽에 머물며 그 안에서 한국의 자유와 인권, 민주화를 부르짖었다. 그것이 우리의 거점이었다. …… ‘한국적인 카테고리’란 북한을 ‘적색 독재(김일성 주석)’로, 남한을 ‘백색 독재(군사독재)’로 간주하고도 굳이 한국(남한) 국적을 선택해, 일본에서 살아가면서도 한국의 학생과 지식인, 종교인과 언론인, 노동자와 민중의 ‘반독재’ ‘민주화’ 투쟁에 연대하겠다는 뜻이었다. 그러나 일본에 있는 우리는 이 투쟁에서 결코 ‘전위’가 될 수 없었다. 어디까지나 ‘후위’에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후위’라 하더라도 ‘영광스런 후위’이고 싶었다. 이것이 학생들의 젊은이다운 바람이었다. 일본의 한편에서 한국의 민주화를 부르짖는 학생들. 그들이 바로 우리였다. 하반신은 풍부한 물자와 자유를 만끽하는 풍요로운 사회에 푹 잠겨 있으면서도 심장과 머리는 군정 아래의 사회를 살아간다. 몸과 마음, 머리가 따로따로 노는 모순 속을 살아가는 젊은이들이었다. 이것이 땅에 발을 딛지 못하고 붕 뜬 채 살아가는 젊은이의 자기만족, 나르시시즘이었다고 해도 나는 연교처럼 의기왕성했다. --- p.127~129 ‘강아지파’에서 ‘고양이파’로 내 삶에 고양이가 들어온다는 것은 정말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런데 내가 아내의 공작에 완전히 속아 넘어가 고양이 ― 성묘가 되면 7킬로그램가량이 된다는 장모종 래그돌을 키우게 된 것이다. 마치 턱받이를 한 듯 북실북실한 가슴털이 난 털북숭이에 덩치 큰 고양이가 우리 집 안을 제 집인 양 돌아다니는 광경을 본다면 아마 우리 어머니는 놀라서 까무러치셨으리라. …… 시험 삼아 데려와 보는 건 어떠냐는 어정쩡한 아내의 말에 속아서 그만 고양이를 집에 들이게 되었다. 시험 삼아 데려와 본다는 말은 그저 말뿐으로 아내는 이미 주도면밀하게 준비하고, 여러 가지 사항들을 기정사실화했으며, 되돌릴 수 없도록 방어 태세를 갖추고 있었다. …… 개는 먹이를 주면 살랑대며 가까이 다가오고, 머리를 쓸어주면 기뻐하며 꼬리를 흔들어 애정을 표현한다. 그런데 이건 뭐냐고. 고양이는 억지웃음조차 지어주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경계심을 드러내며 부리나케 도망가서는 숨어버린다. 개와 고양이의 이런 차이에 나는 새삼스레 놀랐다. --- p.194~197 결국에는 혼자 남겨질 것이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그랬던 것처럼 우리 사이에도 여러 그늘이 왔다 갔다. 혈연으로 이어진 관계가 아님에도, 부부처럼 감정의 주름 구석구석까지 볼 수 있는 관계는 달리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그래도 결국에는 혼자 남겨질 것이다. 우리는 지금 죽음을 준비하기 위한 계절을 맞이하려 한다. 지금 생각해보면 ‘산’에 살고 싶어진 것도 고독이 눈에 띄게 드러나는 도회지가 아니라, 고독을 즐기는 삶을 나누고 각자의 최후를 맞이하기 위한 절묘한 거리감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정말 열심히 살았다. 애썼다. 아주 수고했어.” 고원의 마지막 거처에서 고독의 그림자를 느끼며 스스로에게 이런 말을 건넬 때를 기꺼이 기다린다. --- p.237~238 |
청춘의 방황과 결기, 중년의 성취와 상실, 노년의 자족과 관조
이 모든 것을 품은 내 인생의 마지막 집 일본어에 종활終活이라는 말이 있다. ‘인생을 잘 끝내기 위한 활동’이라는 뜻으로, 평균수명이 늘어나 긴 노년을 보내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등장한 신조어다. 단지 장례 절차나 유산 처리 방식을 결정하는 것만이 아니라, 자신이 어떤 사람이었고 어떻게 기억되고 싶은지, 소중한 사람들과 어떻게 이별하고 싶은지, 남은 날들에는 무엇을 하고 싶은지 등등 인생 전체를 돌아보며 정리하는 일련의 활동을 가리킨다. 1950년생으로 일흔을 앞둔 강상중 교수도 오랫동안 도시 안에서만 움직이던 삶의 궤도를 바꿔, 울창한 숲으로 둘러싸인 고원지대로 거처를 옮겼다. 그곳에서 생활의 작은 습관과 규칙까지도 새로 마련하면서, 달라진 시각으로 70년의 인생을 돌아본다. 한쪽 발은 생생한 하계의 삶에 담가두고 다른 한쪽은 고원의 녹음에 숨긴 채 세상을 뒤흔드는 사건들을 응시한다. 이것이야말로 내가 오랫동안 바라 마지않던 세상과의 딱 좋은 거리감일지도 모르겠다. …… 나는 지금 어머니가 몸소 보여주신 가르침 덕분에 스스로에게도, 세상에도 절묘한 거리를 둘 수 있는 장소에서 인생의 가을, 그 끝 무렵을 보낸다. - 7~9쪽 고원의 집에서 맞는 계절의 변화는 각 계절에 얽힌 인생의 모든 장면을 소환한다. 하이델베르크 대학가 카페에 앉아 연행되는 광주 시민의 사진을 보았던 1980년의 봄. 일본 이름을 버리고 ‘강상중’으로 살기로 결심한 1972년 서울의 여름, 고원의 가을 하늘에 흔들리는 자작나무처럼 푸른 하늘을 향해 뻗은 하얀 자작나무가 좋았던 영화 [닥터 지바고]와 러시아에 대해 품었던 알 수 없는 낭만, 벚꽃처럼 눈송이가 흩날리는 군사경계선 양쪽의 남북한 병사들을 그린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와 분단의 비극. 계절마다 확연히 다른 고원의 풍경처럼, 저자의 인생에도 예상치 못한 변화와 굴곡이 있었다. 이제 그는 고원의 집에서 이 모든 것을 돌아보며 한 사람의 인생에 대해, 그리고 간단히 풀리지 않는 역사의 문제에 대해 생각한다. 서울은 마치 피부가 벗겨져 혈관과 신경이 밖으로 다 드러난 채 발버둥치는 생물처럼 무시무시한 에너지를 발산하고 있었다. 나는 사람들의 커다란 목소리와 진지함에 압도되었다. 그 박력에 튕겨나갈 듯 불편한 마음이 드는 것도 사실이었지만 가는 곳마다 그리운 광경이 이어지던 서울이었다. 속마음을 감추지 않고 전부 다 드러내는 사람들, 그 모든 것을 받아주는 거친 솔직함에 움찔움찔 놀라면서도 가면과 두꺼운 의상을 벗어던지고 본성 그대로 있는 편안함을, 나는 난생처음 몸으로 느꼈다. …… 나는 모순덩어리처럼 느껴졌던 어머니를 낳은 근원에 도달한 듯했다. 서울에 머무르는 동안 내 안에서는 어떤 결심 같은 것이 천천히 싹트기 시작했다. 어머니를 키운 이 세계를 전부 받아들이자. 그리고 운명처럼 이 세계를 스스로 선택해 보이자. …… 여름은 내가, 바로 내가 된 계절이다. - 34~35쪽 인생의 겨울을 함께할 세 동반자 어머니, 아내 그리고 고양이 큰 사회적 성취를 이룬 중장년기에는 어머니의 가르침을 그저 추억의 실마리나 ‘옛날 물건’처럼 여겼던 저자는 노년에 접어들면서 점차 자신의 건강한 몸과 낙관적 태도, 깊은 절망 속에서도 다시 삶 쪽으로 방향을 트는 강인한 생명력이 어머니에게서 온 것임을 깨닫는다. ‘사람은 걸어 다니는 식도食道’라고 믿었던 어머니는 “잘난 사람도, 못난 사람도, 부자도, 가난한 사람도 다 입으로 넣어서 뒤로 빼는 거라 안 카나”라며 차별당했던 나날에 대한 울분을 나름의 방식으로 해소했다. 모든 사람은 다 똑같다, 그러니 사람 사이에는 정情이 있어야 한다는 어머니의 인간관은 지식과 학문의 세계에서 ‘리理’만 잔뜩 키운 아들이 그나마 균형감 있는 삶을 살 수 있게 이끌었다. 가장 사랑하는 아들의 죽음이라는 비극 앞에서 나는, 내가 태어난 날을 저주하고 싶었다. 검은 태양으로 닫힌 세계에서 나는 반만 살아 있는 껍데기였다. 죽음이 삶을 침식해가는 느낌이 온몸으로 퍼져 나갔다. 그런 느낌 속에서도 삶이 죽음에 승리했음을 자각할 수밖에 없었다. 분명히 너무 슬퍼 물 한 방울, 쌀 한 톨 삼킬 수 없었는데,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이미 먹고 있었다. 살아가는 기력을 잃었음에도 입을 움직이고 이로 씹으며 질긴 섬유질 음식마저도 목구멍 안쪽으로 삼켰다. “인간은 어떤 때라도 묵어야제. 살아 있으마 마 묵는 기라. 묵으마 뒤로 나오지. 아무리 힘든 일이 있어도 살아 있으마 그런 기라.” 마치 귓전에서 속삭이듯, 어머니의 가르침이 되살아났다. 의기소침한 내가 어머니에게는 한심하고 불쌍해 보인 모양이다. 내 인생 처음으로 이런 모습을 드러낸 것이었다. 이는 내 안의 교만과 긍지가 안개처럼 사라지고 그저 불쌍한 아버지가 되었음을 뜻했다. 그럼에도 나는 먹기를 멈추지 않았다. 배설 또한 멈추지 않았다. 삶의 의욕이 죽음에의 유혹을 이겼다. - 240쪽 몸과 마음의 바탕이 된 어머니는 돌아가셨고, 저자와 인생의 마지막 집을 함께 지키는 건 아내 그리고 두 마리 고양이다. 저자는 식성도, 취향도 다른 아내와 수십 년 고락을 함께하며 어느새 호흡이 잘 맞는 파트너가 되었음을 느낀다. 아내와 살면서 머윗대조림과 두릅튀김의 맛을 알게 되었고, ‘강아지파’를 고수했던 일평생이 무색할 만큼 어느새 고양이에게 이리저리 끌려다니며 아첨을 하는 ‘고양이파’가 되고 말았다. 이 책에서는 아내와 도란도란 땅을 일구고, 맛있는 음식에 군침을 흘리며, 도도한 고양이 앞에서 속수무책이 되는 강상중 교수의 색다른 면모를 확인할 수 있다. ‘비판적 지식인’이자 ‘우리 시대의 사상가’는 어딜 가고, 어리숙하면서도 다정다감한 남편이자 ‘집사’로 등장한 그의 모습에 절로 웃음 짓게 된다. 인간과 역사의 문제를 해명하려는 노력을 멈추지 말 것 인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지켜갈 담담한 각오 1950년 한국전쟁 발발 직후의 뜨거운 여름에 태어난 저자는 “살육의 해, 통곡과 비탄의 계절에 생명을 허락받았다는 사실에 나는 줄곧 집착해왔다.”(138쪽) 그리고 마치 자신의 운명이 한반도의 평화와 긴밀히 얽혀 있기라도 한 것처럼 줄곧 남북 화해와 통일 문제에 주목해왔다. 노년의 일상을 잔잔하게 그린 이 책에 김대중 대통령 이래로 이어진 남북정상회담과 최근의 북미정상회담, 한국전쟁의 종결 가능성 등에 대한 이야기가 비중 있게 다루어지는 이유다.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 그리고 그것을 이끌어낸 북미정상회담. 이는 단순한 국제정치 사건에 머물지 않고 좀 과장을 섞어 말하자면 내 일생의 의미와 관계가 있다. 한국전쟁의 해에 태어나 그 전쟁의 종결을 이 눈으로 확인한다면 나는 전쟁과 평화 사이를 산 것이 된다. 이렇게 생각하면 조용한 고양감이 내 안에서 퍼져 나가는 걸 느낀다. 이는 눈을 감는 그날까지 ‘시시포스의 굴레’가 계속되리라는 달관을 동반한 각오 같은 것이다. - 235쪽 남북 관계에 대해 줄곧 ‘신중한 낙관론’을 펼쳐온 저자에게 사람들은 “아주 머릿속이 꽃밭이시네요” 하고 야유를 보냈다. 그러나 그는 한 사람의 인생이든, 한 나라의 역사든 도저한 낙관을 품고 해결해나가려는 노력을 계속하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비관하는 자는 더 이상 할 일이 없지만, 끝끝내 낙관하는 자는 그 낙관의 실현을 보기 위해서라도 무엇인가를 계속 하는 수밖에 없다. 고원의 마지막 거처에서, 최후의 날을 준비하는 지금도 그는 세상의 부름에 부지런히 응답하며 인간과 역사의 수수께끼를 풀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인간은 하나의 수수께끼이며 그 삶의 집적인 역사 또한 하나의 수수께끼다. 이 수수께끼에 정해진 해답은 없다. 그렇다고 ‘사람이란 결국 그런 것이다’, ‘역사란 결국 그런 것이다’라며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모든 것을 상대화하지 말 것. 그리고 그 수수께끼를 해명하려는 노력을 아끼지 말 것. 거기에 인간의 존엄이 깃들어 있다. 나는 그렇게 여겼다. 일본과 한반도가 안은 역사적 갈등과 질곡 또한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단칼에 딱 잘라 해결할 수는 없다. 이 어려운 문제를 감히 누구도 생각해내지 못한 대담한 방법으로 간단히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단 한 사람의 인생조차도 그렇게 되지 않는 것처럼. 그저 포기하지 않고 인생과 역사의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를 밝히기 위해 노력해나가는 수밖에 없다. 이야말로 삶의 의미인지도 모르겠다. - 87~88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