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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아에 대해 말하자면

정아에 대해 말하자면

[ 양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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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0년 06월 17일
판형 양장?
쪽수, 무게, 크기 248쪽 | 290g | 128*193*20mm
ISBN13 9791130630144
ISBN10 1130630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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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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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기다려도 임신테스터의 두 줄 선이 한 줄이 될 리 없었다. 혹시나, 혹시나 하고 5분만 더, 10분만 더…… 계속 기다려도 요술처럼 선이 사라져 한 줄로 되는 일은 없었다. 그때 삼겹살을 먹었더라면, 이런 일은 생기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15분을 더 기다렸지만 테스터는 여전히 선연한 두 줄을 가리키고 있었다. 이 아기는 정아가 아니라 지현의 아기고, 건호는 정아와 같이 살고 있기 때문에 건호에게 책임을 미루는 것은 정당하지 않은 일이다.
--- 「정아」 중에서

그들에게 정정은 씨의 희생은 이제 당연하고도 갑갑한 것이 되었고 내 아들이 잘났으니 당연히 받아야 할 것, 이라는 묘한 권리의식으로 둔갑했다. 아이고 우리 정은이 고맙기도 하지, 에서 그 계집애한테 누가 우리 아들 챙겨달라고 애걸복걸을 하길 했나? 제가 잘난 우리 아들을 워낙 좋아해서 그런 것을 뭘 어쩐담, 하는 식으로 빠르게 태세가 전환되었다. 팔랑귀를 가진 정정은 씨의 애인은 정은 씨에게 고마운 마음을 갖고 있긴 했으나 이제 더 아름답고, 더 젊고, 더 상냥하고, 더 부유한 여자를 얼마든지 만날 수 있고 그것이 부모에게 하는 최상의 효도라고 주장하는 양친의 설득에 그는 기꺼이 정정은 씨에게 이별을 고했다.
--- 「정정은 씨의 경우」 중에서

자기 사정 때문에 주말에 못 만나는 줄만 알고 영진은 늘 남자에게 미안해했다. 그러면 남자는 그만큼 주중에 많이 보면 된다며 부드럽게 미소를 지었다. 그 말대로 회사가 가까워 거의 날마다 만났고 정 바쁘면 테이크아웃 커피 핑계로 1분이라도 얼굴을 봤다. 업무 관계가 얽혀 있으니 당분간 서로 회사에는 비밀로 하자는 그의 말도 영진은 어른스럽다고만 생각했다. N이 날카롭게 따졌다. “퇴근한 다음에 연락 안 된 적 없어?” 생각해보니 영진은 잘 들어갔느냐, 잘 자라, 이런 문자도 받은 적이 없었다. 영진은 처음 해보는 연애라 원래 그런가 보다 했고, 영진도 무심한 성격이라 오히려 편하다고 생각했다. N은 진저리를 쳤다. “너 그렇게 미련한 것도 병이야, 병.”
--- 「아웃파이터」 중에서

김병권이 의외로 간단했던 수리를 신속 정확하게 끝마치고 고작 1시 경에 집에 돌아올 줄 그녀는 정말로 몰랐다. 남자를 끌어들인 후 미처 문을 잠그지 않았던 것도 그녀는 정말로 몰랐다. 윤정화의 큰 몸집에 처음에는 움찔한 것 같았지만, 이내 택시비 본전은 찾아야 한다는 듯 다짜고짜 키스하며 윤정화의 혀뿌리까지 삼켜버릴 기세로 깊숙이 빨아대던 남자가 갑자기 혀 움직이기를 멈추자 그녀도 눈을 떴다. 그러자 ‘정화 방’이라고 쓴 김병권의 서툰 글씨가 붙어 있는 문 앞에 그가 서 있는 것이 보였다. 방금 전까지 윤정화의 혀를 뿌리부터 뽑아낼 만큼 강렬하게 쭉쭉 빨아 당기던 남자는 이런 상황에 매우 익숙한지 주변을 잠깐 두리번거리다가 점퍼를 집어 들고 순식간에 사라졌다.
--- 「공동생활」 중에서

감동에 젖어 나는 한껏 가녀리고 연약한, 나는 당신의 여자예요, 라는 촉촉이 젖은 모기만 한 목소리로 그를 불렀다. 저기 보라지, 눈에 핏발까지 서 있다. 아, 나를 위해 이렇게까지 화내주다니. 나는 어쩌면 이 남자를 영원히 사랑할 거……. “고작 그따위 일에 밥벌이를 때려치워? 네가 지금 정신이 있는 애야 없는 애야!” “으, 응?” 갑자기 정신이 아득해졌다. 그따위 일? 그따위라고? 이게 뭔 소리람? “오, 오빠……?” “땅을 파면 돈이 나와 쌀이 나와? 그래, 그놈이 좀 집적거렸다 쳐. 너 사회생활 한두 해 해? 네 말대로 대리 승진한 거 아깝지도 않아? 사회생활 하면서 그런 일 있을지도 몰랐어? 별의별 더러운 인간 다 있어! 그게 사회야! 나도 뭐 좋아서 회사 다니는 거 아니다.”
--- 「누구세요?」 중에서

바바리맨이 이쪽을 돌아보았다. 어이없게도 사냥꾼에게 쫓기는 아기 사슴 같은 눈빛이었다. “왜 이래요! 따라오지 마세요!” 화정은 억울했다. 변태는 저 인간 아닌가. 분노의 에너지로 화정은 날듯이 달렸다. 계속 겁에 질린 눈으로 뒤를 돌아보며 달리다 바바리맨은 코트 자락이 다리에 휘감겨 넘어졌다. 무릎이 깨졌는지 뒹구느라 바바리맨의 성기는 쪼그라든 채 흙 범벅이 되었다. 화정은 측은한 마음이 들어 물었다. “괜찮아?” “가까이 오지 마세요! 저리 가세요!” 바바리맨은 한껏 몸을 가리며 소리쳤다. 화정은 어이가 없었다.
--- 「부장님 죄송해요」 중에서

하필이면 남녀 공용이었다. 다행히 화장실엔 아무도 없었다. 서둘러 소변을 보고 손을 씻은 후 더러운 거울을 열심히 들여다보며 마스카라가 뭉친 곳이 없는지 보고 있는데, 화장실 문이 벌컥 열렸다. 중키에 비쩍 마른 체구, 금테 안경을 쓴 남자가 뚜벅뚜벅 걸어 들어왔다. 수연은 얼른 손에 묻은 물기를 털고 남자를 피해 나가려고 했다. 그때 남자가 문손잡이를 열려는 수연 앞을 가로막았다. 영문을 몰라 눈을 크게 뜨는데, 남자가 둘둘 만 신문지를 손에 들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냥 신문지 뭉치가 아니었다. 남자는 수연을 빤히 쳐다보며 신문지를 풀어 바닥에 버렸다. 어두침침한 화장실 조명을 받아 시퍼런 식칼의 날이 번들거렸다.
--- 「내가 도대체 뭘 잘못했나요」 중에서

숙이는 뭘 몰랐고 바우는 너무 생각이 많았다. 숙이는 천진했고 바우는 생각이 욕망보다 앞서는 정말이지 드문 남자애였다. 입 한번 맞춘다 한들 맞추고 나서 잘 다물기만 하면 무슨 문제가 되랴마는 바우는 그런 일이 있었다가 들키기라도 하면 꾸중 듣고 끝나는 게 아니라 두 번 다시 숙이를 볼 수 없는 사태로 번져간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집 안팎에서 벌어지는 일들도 만만치 않았다. 이렇게 될 거, 뽀뽀나 한번 해봤어야 한단 말인가. 바우는 숨을 한 번 깊이 들이쉬고는 말했다. “너, 시집간다.”
--- 「이숙이의 연애」 중에서

어느 설문조사 결과를 읽었다. 시간 여행을 하여 젊은 시절의 어머니를 만날 수 있다면 어떤 말을 가장 해주고 싶으냐는 것이었다. 짧은 문장 하나가 압도적으로 1위를 차지했다. 엄마, 결혼하지 마. 비교적 행복한 가정생활을 하고 있는 부부 슬하에 자란 딸들 역시 젊은 시절의 어머니를 만날 수 있다면 결혼을 반드시 만류하고 싶다고 대답했다. 나를 낳지 않아도 되니까, 결혼하지 말고 엄마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살아. 인간이 낙원에서 추방당한 이후 제 몫의 고통을 짊어지고 살아가야 한다는 것은 여남 공히 감당해야 할 짐이지만, 여성의 짐은 다소 지리멸렬하고 얼핏 별것 아닌 것처럼 보이기 십상이다. 여성의 고통은 흔히 ‘투정’으로 읽힌다. 그러나 정말로 그것이 유아적인 ‘투정’이었다면, 저토록 많은 성인 여성들이 자신이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아도 좋으니 결혼이나 출산을 하지 않고 어머니가 독자적인 삶을 살기를 바랐을까.
--- 「작가의 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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