곤충의 침은 산란 기능을 제거함과 동시에 여러 가지 독성 요소를 추가하는 쪽으로 진화했다. 그리고 산란관 대신 침 아랫부분에 있는 개구부를 통해 알을 낳게 되면서 침은 오로지 독을 내뿜는 기관으로 자유롭게 기능하게 되었다. 산란과 상관없이 순수하게 침을 쏘는 장치를 갖게 된 곤충들은 숙주를 마비시키는 독뿐 아니라 포식자를 방어하기 위한 독도 개발하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오늘날 많은 원시 개미와 일부 단독성 말벌이 ‘마비’와 ‘통증’이라는 이중 효과를 내는 독을 사용하고 있다. 하지만 꽃가루와 꿀을 먹는 벌은 이런 독을 사용하지 않는다. 꿀벌과 사회성 말벌 등 2만 종이 넘는 채식성 벌은 주로 포식자를 방어하기 위해 독침을 사용한다. 때때로 다른 경쟁자를 물리치기 위해 침을 쏘기도 하는데, 가령 새롭게 등장한 여왕 꿀벌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죽음의 결투나 땅벌의 여왕이 다른 군집을 찬탈하는 과정에서 독침을 쏘는 것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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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충의 침과 독은 서로 만났을 때만 제대로 효과를 발휘한다. 침을 통해 주입되는 독은 액체 상태의 혼합 물질이다. 대부분 약간의 수용성 단백질과 동물의 체내에서 신경 전달 물질로 작용하는 생체 아민, 여러 개의 아미노산이 결합한 펩타이드, 아미노산, 지방산, 설탕, 소금, 그 밖의 여러 가지 물질이 섞여 있다. 이 같은 독성 물질은 모두 피부라는 보호 장벽 아래, 즉 체내에 주입되었을 때만 기능을 발휘한다. 그런데 독성 물질 대다수는 동물의 피부를 통해 흡수되지 않아서 단순히 적의 피부에 뿌리거나 살짝 바르거나 내뿜는 방식으로는 효과를 볼 수 없다. 특히 단백질, 펩타이드, 생체 아민에는 침투성이 없어서 생체의 취약한 조직이나 혈류에 도달하지 못한다. 이런 독을 피부 아래로 전달하는 것이 바로 침의 존재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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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충 침 통증 지수’가 개발되자, 침 쏘는 곤충의 생애를 깊이 연구하고 침이라는 무기가 녀석들에게 어떤 가능성을 열어 주었는지 예측할 길이 열렸다. 곤충의 생김새와 행동, 생애사를 근거로 침의 통증 지수를 예측하는 것은 물론이고, 통증 지수를 근거로 해당 곤충의 생활 방식을 예측해 볼 수도 있었다. 예를 들어 색깔이 화려한 단독성 말벌과 꿀벌은 좀 더 칙칙한 말벌과 꿀벌보다 더 고통스러운 강펀치를 날릴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 화려한 색을 띠는 쪽으로 진화했다는 것은 다른 곤충들이 흔히 쓰는 숨바꼭질 전략을 폐기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숨바꼭질 전략은 수많은 곤충이 오랜 세월에 걸쳐 효과를 증명한 방법인데, 그것을 폐기했다면 해당 곤충의 생애사에 그럴 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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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의 독성이 치명적인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지만, 꿀벌 독이 여러 뱀의 독성을 뛰어넘을 정도로 강하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꿀벌은 단지 뱀보다 몸집이 작을 뿐이다. 더 놀라운 점은 수확개미 독이 꿀벌 독의 효능을 초라하게 할 만큼 강력하다는 것이다. 평범한 수확개미의 독은 꿀벌 독보다 6배 더 치명적이고, 애리조나주 윌콕스에 서식하는 마리코파수확개미의 독은 꿀벌 독보다 20배쯤 더 유독하다. 수확개미의 독은 오늘날 곤충 독 가운데 가장 유독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심지어 몇몇 오스트레일리아산 뱀과 바다뱀을 제외한 모든 뱀보다 더 유독하다. 만일 수확개미가 바다뱀과 같은 크기였다면, 아마 우리는 녀석들의 독에 관해 훨씬 더 많은 사실을 알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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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란툴라대모벌에 쏘였는가? 그렇다면 체면 차릴 것 없이 드러눕고 소리 지르기 바란다. 녀석의 침은 심신을 너무나 무력하게 하고 고통스럽게 하는 탓에 자칫하면 길바닥의 움푹 팬 지점이나 돌출한 물체에 걸려 발을 헛디디거나 선인장 위 또는 철조망 울타리 쪽으로 넘어져 더 크게 다칠 위험이 있다. 그 고통을 느끼는 와중에 통상적인 조정 능력을 유지하고 인지적으로 신체를 통제해 돌발적인 부상을 방지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 소리를 지르면 심리적으로 만족을 느끼고, 침에 쏘인 통증에 집중된 신경을 분산하는 데 도움이 되므로 조금이나마 고통을 덜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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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당시에 내가 매미나나니를 연구하고 있다고 말하면 사람들은 모두 굉장한 두려움과 걱정을 표하고는 녀석들 침이 얼마나 아픈지 물었다. “저는 한 번도 쏘인 적이 없습니다만, 그다지 아플 것 같지 않아요.” 나는 늘 이렇게 대답했는데, 왠지 질문자에게도 나에게도 만족스럽지가 않았다. 나는 곤충 침 전문가였다. 전문가가 그런 불만족스러운 답을 내놓다니, 그래서는 안 될 것 같았다. (……) 학계에 떠도는 현대판 전설에 의하면 ‘슈미트는 침 쏘는 곤충이라면 무엇에나 직접 쏘여 보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니까. 그렇다, 나는 전설에 부응하기 위해서라도 매미나나니 침의 통증 수준에 관한 데이터를 확보할 필요가 있었다. 그런데 어떻게? 나는 전투가 한창일 때에도 쏘인 적이 없었는데 말이다. 그리고 솔직히 말하면 일부러 쏘이고 싶지는 않았다. 그렇다면 무엇을 해야 할까? 어느 날 기회가 찾아왔다.
서부매미나나니(western cicada killer) 한 마리가 마침 꽃에서 꿀을 빨고 있었고, 나에게는 포충망이 없었다. 나는 맨손으로 녀석을 잡았다. ‘쾅’ 아니, ‘찰싹’이라고 해야 할까? 어쨌든 나는 말벌에 쏘였다. 총알이나 횃불이 떠오르는 느낌은 아니었다. 그보다는 압정에 손바닥을 찔린 것 같았다. 타는 느낌은 전혀 없었고, 날카롭고 즉각적인 통증이 약 5분간 이어졌을 뿐이다. 부어오르지도 않았고, 20분 안에 통증이 완전히 사라졌다. 통증 지수를 매기자면 1.5 수준으로, 꿀벌 침보다 훨씬 낮았다. 커다란 덩치에 어마어마한 침을 가진 말벌치고는 통증 수준이 형편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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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독한 침의 명성에 비추어 생각하면 총알개미가 다른 곤충이나 동물을 주로 잡아먹을 것 같지만, 사실 녀석들은 대체로 채식주의자다. 총알개미는 달콤한 수액과 과즙, 그 밖에 잘 알려지지 않은 물질을 임관에서 찾아 먹는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런 물질에는 유충이 성장하는 데 필요한 단백질이 없다. 총알개미는 부족한 단백질을 충당하기 위해 포식자 행세를 한다. 녀석들은 다양한 곤충, 거미, 그 밖의 무척추동물을 사냥한다. 심지어 단단하고, 가시가 있고, 물어뜯기까지 하는 잎꾼개미도 잡는다. 먹이 정찰병들은 대개 크기가 15~22mm 정도로, 일개미 중에서도 큰 편에 속한 개체들인데, 먹잇감을 고르는 기준이 까다롭다. 화학적 분비물로 보호받는 다수의 애벌레나 독화살개구리처럼 유독한 동물은 피하고, 개구리 중에서도 해롭지 않은 것만 골라서 사냥하는 똑똑한 녀석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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