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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 재난 국가

쌀 재난 국가

: 한국인은 어떻게 불평등해졌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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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정치 top20 2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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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1년 01월 25일
쪽수, 무게, 크기 384쪽 | 486g | 140*210*18mm
ISBN13 9788932038001
ISBN10 8932038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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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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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D 한마디

『불평등의 세대』의 저자 이철승 교수의 신작. 한국사회 불평등의 기원과 현재를 규명했다. 불평등을 다룬 대부분의 책은 자본주의적 생산 양식을 분석하는데, 이 책은 동아시아 벼농사 체제에 주목한다. 한반도 고대국가의 형성부터 최근 팬데믹에 이르는 시간을 관통한다. - 손민규 사회정치 MD

목차 목차 보이기/감추기

저자 소개 (1명)

책 속으로 책속으로 보이기/감추기

왜 쌀, 재난, 국가의 상호작용을 불평등의 기원으로 삼았는가? 그것은 반복되는 재난에 맞서 먹거리를 유지하는 활동이, 불평등 구조가 진화하는 과정의 맨 앞에 놓인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이 책은 이러한 불평등 구조의 진화 과정을 한반도에서 고대국가가 형성되는 시기부터, 오늘날 코로나 팬데믹까지 훑어 내려온다. [……] 나는 동아시아인들이, 한반도 정주민들이 어떻게 불평등에 대해 인식하는지를 분석할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불평등 구조가 역사적으로 진화해온 과정이 어떤 제도를 통해 현대를 사는 우리 삶에서 발현되는지를 탐구할 것이다. 이 두 가지 축을 중심으로 쌀, 재난, 국가의 상호작용을 들여다봄으로써 협업, 위계, 경쟁이라는 키워드를 고안해내고, 결국에는 오늘날의 연공제 비판으로 이어질 것이다. ‘쌀 이론’을 통해 오늘날 한국 사회의 위계와 불평등 구조─협업과 경쟁의 구조, 교육열 그리고 노동시장의 (비정규직과 여성에 대한) 차별 구조─를 파헤치려는 것이다.
--- p.9~10, 「들어가며」 중에서

한국인에게 이 위계란 일상 자체다. 한국인만큼 협업을 잘하는 종족도 드물지만, 한국인만큼 위계를 따지는 종족도 드물다. 그 위계의 구조는 엄격할뿐더러 세밀하고 촘촘하다. 인간관계마다, 말 한마디 한마디마다 이 위계의 구조는 깊이 드리워져 있고, 우리의 아이들은 이 위계에 적응하고 순응하는 법부터 배운다. [……] 우리는 왜 이 위계 구조를 그토록 오래 강고히 지속시켜왔고, 얼마나 더 오래 이 위계 구조와 함께 살아가야 하는가? 우리는 왜 그토록 ‘평등과 정의와 형평’을 갈망하면서, 동시에 위계를 목숨처럼 소중히 여기는가? 왜 평등과 정의를 외치는 사람이 뒤로는 학벌과 직업, 연공서열 위계에 집착하는가? 질문은 꼬리에 꼬리를 문다. 이 책이 모든 질문에 다 답하지는 못할 것이다. 하지만 건드릴 것이다, 때로는 다소 도발적으로.
--- p.23, 「프롤로그」 중에서

이 연공 문화는 동아시아 기업 조직의 뼈대─연공제─로 재탄생한다. 동아시아 기업들은 입직에서부터 퇴직에 이르는 개인의 생애를, 동일한 임금 상승 테이블을 공유하는 세대들로 쪼개어 위계 구조를 만드는 동시에 세대 단위 협업 시스템을 창출했다. 동아시아 마을 공동체의 수직-수평 기술 튜닝 시스템은 동아시아 기업 조직에서 연공제를 매개로 재탄생하게 된다. ‘가족 같은 기업’ 안에서 부장님은 부모의 역할을, 선배는 이웃 어른들과 같은 역할을 했다. 입사 동기는 동년배 사촌들 및 동네 친구들과 다름없었다. 그들은 동아시아 마을 기업처럼 긴밀하게 엮인 공식·비공식 네트워크 안에서 협력과 경쟁의 쳇바퀴를 탔으며, 동아시아 마을 공동체의 협력 기제인 ‘표준화’를 생산공정과 관료제에 도입하여 ‘기민’하고 ‘긴밀’하게 작동하는 동아시아 기업 조직을 만들어냈다.
--- p.35, 「프롤로그」 중에서

벼(과 식물들), 기후와 지형이라는 주어진 환경, 벼농사 경작의 주체와 제도라는 세 가지 요소는 이렇게 (진화적) 상호작용을 거치며 동아시아의 초기 농경국가 체제를 주조했다. ‘왜 하필이면 동아시아인들은 쌀을 먹게 되었는가’라는 질문과 ‘도대체 왜 동아시아의 국가는 다른 지역에서 발견할 수 없는 강력한 관료제(서비스)를 그토록 일찍부터 만들 수밖에 없었는가’라는 질문은 사실상 같은 ‘연쇄 고리’의 답을 가진, 같은 질문인 것이다. 벼와 동아시아인 그리고 그들의 강한 국가는, 다윈의 표현을 빌리자면 ‘공진화’한 것이다. 쌀밥과 강하고 효율적인 국가는 서로 다른 두 차원의 것이지만 상호 친화적이다. 단순화해 이야기하면 우리는 쌀밥을 먹으며 더 크고 강한 국가를 건설했고, 그러한 국가를 만들었기에 쌀밥을 계속 먹을 수 있었다. 이런 면에서 다소 어색하더라도 동아시아 국가는 쌀 국가rice state라고 불릴 만하다.
--- p.68~69, 「1장 동아시아 국가의 기원」 중에서

동아시아 기업의 연공제는, 두 가지 가정을 농촌 공동체로부터 이식했다. [……] 이 두 가정은 현장에서 실제로 실현되는지 여부와 관계없이, 개인에 대한 직무평가를 건너뛰는 것을 가능케 했다. 개인 간의 숙련도가 평준화될 것이라는 가정과 개인들의 숙련도가 동일한 속도로 성장할 것이라는 가정이 결합하면, 같은 연차의 인력에게 동일한 보상을 주는 것이 가능해진다(정당화된다). 함께 일하며 조직의 목표를 함께 이루었으니 연차 그룹에 따라 보상을─불평등하게─나눈 후, 같은 연차 내에서는─평등하게─n분의 1 하는 것이다(고로 밥과 술은 연차 높은 사람이 산다). 따라서 연공제는 연차를 공유하는 노동자들 간에 연대 의식을 고양시켰고, 생산성이 집합적으로 향상되는 데 디딤돌이 되었다. ‘왜 같이 일 해놓고 나이 많다고 더 가져가’라는 불만은, ‘너도 기다리면 나처럼 보상받아’라는 미래에 대한 약속으로 덮였다. 이렇게 ‘지연된 보상’은 나이 많은 ‘충분히 기다린 세대’로부터 ‘아직 기다릴 날이 20년, 30년 남은 세대’에게 강제되었다. 연공제는 어찌 보면 기다리고자 하는 자, 혹은 기다릴 수 있는 자들(정규직)끼리의 ‘공모’다.
--- p.149~50, 「2장 벼농사 체제의 협업-관계 자본의 탄생」 중에서

결국 동아시아인들이 발전시킨 ‘(시민)사회’를 구성하는 주요 축은 서로 간섭하고 싫은 소리를 해야 서로가 사는, 협업과 조율 시스템이다. 우리는, 동아시아인은 오랜 세월 동안 이 협업 시스템을 발전시켜왔고, 근대화 과정에서 이 시스템을 공장으로, 사무실로 이식시켰다. 부장님이 사사건건 일과 삶에 간섭하는 것에 숨이 막히는가. 집 안에서뿐 아니라 직장에서도 ‘간섭 권력’이 작동하는 곳이 동아시아 사회다. 추석에 집안 어른들로부터 듣는 싫은 소리에 넌덜머리가 나는가. 추석이란 무엇이냐고? 바로 씨족사회의 간섭 권력의 위계가 당신의 일상을 적나라하게 집안 전체에 드러내고 평가하는 자리다. 동아시아는 개인주의자가 남 신경 안 쓰고 하고 싶은 일 하며 자유롭게 살기에 이상적인 곳이 아니다. 서로가 촘촘하게 엮여 타인의 생각과 행동을 지켜보고 감시하며 베끼고 잔소리하고 보폭을 맞춰가면서 서로 엇비슷해져가는 사회인 것이다.
--- p.173~74, 「3장 코로나 팬데믹과 벼농사 체제」 중에서

어쩌면 나의 일탈 행위 때문에 발생할지 모를 바이러스의 확산 못지않게, 그로 인해 쏟아지는 비난의 화살과 체면의 손상이 더 걱정되는 것이다. 바로 ‘사회적 조율 시스템’에 조응하지 않아서 (마을) 공동체로부터 추방당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확진 판정 없이도 이들을 집에 머물도록 이끄는, 궁극적인 행위의 동기다. 따라서 절대다수가 마스크를 쓰고, 대다수가 자가 격리의 원칙을 지키는 상황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이 사회적 조율 시스템은 어디서 유래한 것인가? 이러한 평판 저하를 고려하는 ‘남 눈치 보기의 문화’는 어디서 왔을까? 국가가 가르쳐준 것인가? 관료가 디자인한 것인가? 목화씨를 숨겨 가져오듯 다른 나라에서 배워온 것인가? 아니다. 나는 이 ‘사회적 조율의 기예’가 수천, 적어도 수백 년 동안 마을 단위로 경영해온 공동노동 시스템에서 유래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제껏 이야기했던 ‘벼농사 체제’로부터 말이다.
--- p.177, 「3장 코로나 팬데믹과 벼농사 체제」 중에서

벼농사 체제에서 발흥한 동아시아의, 한국의 개발국가는 소농 출신 도시민들에게 부동산을 통한 ‘개인화된(사적) 안전 자산’을 확보하도록 부추김으로써, 복지국가 안전망의 의무를 ‘방기’하고 생산의 조직국가로서의 전통적 의무에 충실했다. 시민사회의 개인들은 각자 일을 그만두는 시점까지 집 한 채 혹은 여러 채를 장만하는 것을 목표로 자산 취득 경쟁에 몰입했고, 이는 벼농사 체제하 소농들의 개간지 경쟁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이었다. 그 경쟁의 산물은 세 개의 층으로 분할된 자산 계급의 출현이다. 자산을 기반으로 소득을 창출할 여력이 있는 상층 20퍼센트의 자산 소유 계급, 자산을 노후 소득으로 소비해야만 하는 자산 소비 계급(다수의 중산층), 그리고 노후 소비를 감당하기에 불충분한 자산으로 국가와 자식 외에는 의지할 곳이 없는 하층의 자산 빈곤 계급이 그들이다. 그리고 이 분할의 결과는 오늘날 우리가 목도하고 있는 세계 최고의 노인 빈곤율이다. 노인을 공경하고 위계를 강조하는 벼농사 체제가 21세기 후기산업사회에 만들어낸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보편적 복지국가의 수립이 지연된 2020년, 2030년 그리고 그 이후에도 이러한 자산에 의한 사적 복지의 전통은 더욱 강화될 것이고, 일하는 자들 간의 불평등은 노년의 불평등으로 유지·확장될 것이다.
--- p.274~75, 「4장 벼농사 체제와 불평등의 정치심리학」 중에서

오늘날 한국의 세대 내 불평등과 세대 간 불평등은 모두 이 연공제에 응축되어 있다. 연공제로 인해 세대 간, 연령 간 불평등이 만들어지고, 이것을 향유할 수 있는 정규직과 그렇지 못한 비정규직 사이의 임금격차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비정규직 노동운동의 정규직화를 위한 핵심 요구 사항은 연공제의 적용이다. 젊은 청년들은 연공제 혜택으로 안정적인 임금상승을 60세 혹은 65세까지 누릴 수 있는 직장에 들어가기 위한 경쟁에 20대를 소비한다. 이쯤 되면 연공제 공화국이라 부를 만하다.
--- p.316~17, 「5장 연공제와 공정성의 위기」 중에서

우리는 21세기에 벼농사 국가체제의 유산의 덕과 폐해를 톡톡히 보고 있다. 재난 시기에는 너무도 효율적으로 일하는 국가 덕에 금세 일상으로 돌아가 하던 일을 할 수 있다. 하지만 오늘날의 후기 산업/정보화 사회는 더 이상 벼농사 체제의 마을 공동체가 아니다. 시도 때도 없이 질병, 사고, 실업, 육아, 빈곤과 같은 개별화된 재난과 복지 수요가 시민 개개인을, 자본주의가 초래한 수많은 위험에 노출시킨다. 벼농사 체제의 국가는 이러한 현대사회의 개개인의 위험에는 너무나 굼뜨고 무관심하다. 씨족의 일원을, 마을의 구성원으로서의 일원을 챙겨주던 벼농사 체제의 공동체 또한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동아시아 정주민들은 거대한 재난이 닥칠 때만 국가의 덕을 보고, 평온한 일상에서는 각자의 욕망과 착취가 횡행하는 세계화된 시장을 헤쳐 나가야 하는 것이다. 무엇을 해야 할까?
--- p.334~35, 「6장 벼농사 체제의 극복」 중에서

연공제는 코로나 팬데믹에서도 위력을 발휘한다. 어떻게 국가경제는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하고 있고, 하층 국민들은 역병으로 인한 경기 침체로 일자리를 잃고, 감염된 노인 네다섯 중 하나가 속절없이 죽어가고 있는 2020년에, 상층 임금 소득자들만 승승장구할 수 있을까? 코로나 직격탄이 세계경제를 침체의 늪에 빠뜨린 2/4분기에 5분위 기준 최하층 근로소득이 18퍼센트 떨어질 동안, 최상층은 겨우 4퍼센트밖에는 줄지 않았다(2/4분기, 통계청 가계동향 조사 발표). 경제가, 기업 조직이 위기에 처하건 말건, 정규직의 임금은 끝없이 자동적으로 오르도록 설계된 연공제 탓이다.
--- p.365, 「6장 벼농사 체제의 극복」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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