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목정보
발행일 | 2020년 03월 06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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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260쪽 | 392g | 140*207*20mm |
ISBN13 | 9788965749899 |
ISBN10 | 8965749891 |
발행일 | 2020년 03월 06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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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260쪽 | 392g | 140*207*20mm |
ISBN13 | 9788965749899 |
ISBN10 | 8965749891 |
MD 한마디
경제 규모에서 선진국인 대한민국. 불행히도 자살율도 선두다. 저자는 한국이 미국의 시스템을 추구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덧붙여, 대안 모델인 독일에 주목하자고 제안한다. 더 이상 행복을 개인 차원에 맡겨서는 안 된다. 공동체 전체의 행복을 생각해볼 때다. - 손민규 사회정치 MD
들어가는 말 “우린 지금 이상한 나라에 살고 있다” 프롤로그 병든 사회에서 거울 보기 제1장 민주주의자 없는 민주주의 1 우리의 혁명은 도착하지 않았다 민주주의 1등 선진국, 대한민국/얼마나 위대한지, 얼마나 취약한지/광장 민주주의와 일상 민주주의 2 빼앗긴 주인의 권리를 되찾기 위해 조교도 총장을 할 수 있는 대학 /노사공동결정제, 독일 경제 성장의 비밀/‘이름 대 이름’이 의미하는 것/새로운 삶을 위한 도발 3 68혁명, 모든 형태의 억압을 거부하다 부조리한 세상에 맞서다/세계를 뒤엎은 68혁명/과거청산과 교양 사회/아우슈비츠와 비판 교육/사회적 정의를 추구하는 정치 제2장 대한민국의 거대한 구멍 1 왜 한국에만 68혁명이 없었는가 ‘서울의 봄’이 오지 않은 이유/68혁명의 빈자리를 연구하다/베트남전 파병의 시작과 끝/1968년 대한민국, 역사의 흐름에 역행하다 2 위대하고 위태로운 86세대 이 땅의 86세대는 누구인가/86세대의 성취와 한계/도덕적으로 우월하다는 위험한 착각 3 경쟁의 덫에 걸린 한국 교육 인권 감수성과 소비 감수성의 부재/성에 대한 죄책감은 민주주의의 적이다/원샷 사회와 텐샷 사회 4 자기착취와 소외에 병들어가다 내 안의 노예 감독관/수단에 잡아먹히다/단단한 성(性)의 장벽 제3장 악순환의 연결 고리를 찾아서 1 시대착오적인 헬조선의 자화상 ‘큰 나라’ 대한민국/사람들이 자꾸만 뛰어내린다/유례없는 불평등 사회/우울한 아이와 노동 기계 어른/학벌, 새로운 계급의 탄생 2 야수가 활개 치는 사회 여의도가 수상하다/대한민국을 집어삼킨 야수 자본주의 3 정권 교체만으로는 바꿀 수 없다 ‘보수 대 진보’라는 거짓말/기만적인 기득권 싸움/수구-보수 과두지배는 어떻게 가능했나 4 미국보다 더 미국적인 ‘작은 미국’, 대한민국/미국은 글로벌 스탠더드가 아니다 제4장 우리는 함께 웃을 것이다 1 독일 통일에 대한 오해와 진실 평화가 시급하다/동에서 온 독일 통일/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빠른 통일을 원하다/동독 사람들에게 상처를 남긴 ‘통일의 날’/통일 비용은 손해가 아니다/동독을 보는 서독, 서독을 보는 한국 2 남과 북, 다치지 않고 손잡는 법 감히 ‘통일’이라는 말도 꺼내지 못했지만/남한과 북한, 두 병자가 만나다/서로의 생각과 이력을 존중하기 3 성숙하고 평화로운 통일 한반도를 위하여 한반도의 정치적 미래는 북한 주민의 손에/단호하게 평화를 요구할 것 에필로그 거울 앞에서 당당하기 |
왜 독일이 거울이 되어야 하나
외국, 그 중에서도 선진국으로 알려진 국가들을 찬양하고, 한국 사회를 비판하는 책들은 꽤 많이 존재하고 있다. 그렇기에 1989년 독일로 유학을 떠난 저자가 문제를 ‘상식적으로’ 해결하는 독일을 지켜보며 자신이, 그리고 한국의 문화와 사회 시스템이 ‘이상하다’는 점을 느꼈다고 하니 이 책이 또 하나의 외국 예찬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닐 것이다.
“정말이지 우리는 참 ‘이상한 나라’에 살고 있습니다. 세계가 부러워하는 정치 민주화를 이루고, 세상이 놀라워하는 경제 성장도 거두었는데, 우리의 불행은 날로 커져만 가고 있습니다. 세계에서 자살률이 가장 높은 나라, 세계에서 노동시간이 가장 긴 나라, 세계에서 불평등이 가장 심한 나라, 세계에서 노동자의 죽음이 가장 빈번한 나라가 대한민국입니다. 그뿐 아닙니다. 대한민국은 세계에서 아이들이 가장 우울한 나라이고, 세계에서 아이들을 가장 적게 낳는 나라이며, 세계에서 모두가 모두를 가장 불신하는 나라입니다. 이쯤 되면 가히 인간이 살 수 없는 지옥이라 불러도 과장이 아니겠지요. 젊은 세대가 ‘헬조선’이란 말을 만들어낸 것은 결코 타박할 일이 아닙니다.” [pp. 4~5]
어디선가 여성 1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평균 출생아 수가 한국은 1.1명으로 198위라는 글을 보았으니 세계에서 아이들을 가장 적게 낳는 나라는 맞겠지만, 세계에서 자살률이 가장 높은 나라는 그린란드고, 세계에서 노동시간이 가장 긴 나라는 멕시코로 알고 있었는데, 그 사이에 한국이 추월했나? 어쨌든 이 책이 “JTBC <차이나는 클라스> 131회 ‘독일의 68과 한국의 86’편과 132회 ‘우리의 소원은 통일?’편을 녹취하여 재구성” [p. 7]했다고 하니, 일일이 통계를 확인해보지는 않았지만, 저자의 정보가 맞으리라 생각한다.
저자의 말대로 한국이 인간이 살 수 없는 지옥이라면, 굳이 독일이 아니라 다른 어떤 나라를 비교대상으로 삼아도 문제가 없을 것이다. 그런데 왜 하필 독일일까? 저자에 따르면, 독일이 현재 유럽을 굳건하게 이끌고 있는 국가라서 비교대상으로 삼은 것이 아니라 한국처럼 ‘냉전과 분단’이라는 공통분모를 가지고 있는 비슷한 규모의 국가이면서 다른 결과물을 이끌어냈기 때문이라고 그 이유를 제시하고 있다. 보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독일은 우리에게 여러 면에서 비교할 가치가 있는 나라입니다. 우선 현대사의 궤적이 가장 유사합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냉전과 분단의 운명을 공유했지요. 국가의 규모도 엇비슷합니다. 통일 이후 독일은 약 8천4백만 인구를 가지고 있고, 통일된다면 한반도는 7천8백만 정도의 규모가 될 것입니다. 통일 이전의 서독과 지금 남한의 인구도 비슷합니다. 우리가 흔히 모델로 삼는 스칸디나비아 국가들이 인구 5백만에서 1천만 정도의 작은 나라인 점을 상기하면 독일은 우리에게 현실적으로 가장 적합한 비교 대상이지요.
독일이 미국 모델에 대한 ‘대안 모델’이라는 점도 중요합니다. ‘미국보다 더 미국적인 나라’ 대한민국을 개혁하려면 미국에 대한 ‘안티테제’로 평가받는 독일로부터 영감을 얻을 필요가 있습니다.” [pp. 5~6]
문제를 상식적으로 해결하는 나라
저자는 독일을 우리가 지향해야 할 모델로 삼자고 하면서도 독일 모델이 결점이 없는 것은 아니라는 말도 한다. 다만, “독일은 이 문제들을 비교적 ‘상식적’으로 해결하는 나라” [p. 6]라고 얘기할 뿐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독일이 문제를 상식적으로 해결하는 나라가 된 것은 무엇이 계기가 되었을까? 저자에 따르면 독일에서 이런 변화의 계기가 된 것은 ‘68혁명’이라고 불리는 일련의 변혁을 추구하는 움직임이었다. 이 새로운 흐름 속에서 총리로 선출된 빌리 브란트(Willy Brandt, 1913~1992, 이하 ‘브란트’) 정부는 철저한 과거청산을 했다. 먼저 “학교 역사 시간의 절반을 히틀러 시대, 나치 시대에 할애” [p. 65]하여 비판교육을 했고, 폴란드 바르샤바의 유태인 게토를 방문한 자리에서 자발적으로 무릎 꿇기도 했다. 대개의 한국 정치인들은 정치적 수사로서 무릎을 꿇거나 사과를 하는 경우는 있어도 진정으로 잘못을 인정하는 모습을 보이는 경우가 드물다고 알고 있다. 아마 정치인이 잘못을 인정하지 못하는 까닭은 그로 인해 현재의 내가 초라해질 수도 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물론 독일에서도 그와 같은 우려 섞인 시선이 없었던 건 아니다. 하지만 제2차 중동전쟁의 영웅인 이스라엘의 이츠하크 라빈(Yitzhak Rabin, 1922~1995) 총리의 도덕성과 진정성이 오슬로 평화협정을 가능케 했던 것처럼, “브란트라는 인물 자체가 반(反)나치 저항 운동의 상징이었기 때문에 세계가 독일 과거청산의 진정성” [p. 74]을 인정했다고 한다.
우리가 불행하지 않으려면
그렇다면 한국은 왜 그렇게 되지 못했을까? 저자는 한국이 4.19 혁명, 5.18 민주화운동, 6.10 민주항쟁, 촛불혁명 등 수 차례 정치민주화를 이룩해놓고도 심각한 불평등 사회가 된 근본 원인이 68혁명의 부재와 기만적인 정치 구조, 맹목적인 야수 자본주의, 분단체제에 있다고 한다.
첫째, 독일은 1968년 파리 시위를 기점으로 전 세계로 확산된 68혁명을 통해 ‘모든 형태의 억압으로부터의 해방’을 사회적으로 구현했다. 한국은 이와 반대로 박정희 정부가 자신의 전향을 증명하기 위해 베트남에 지상군 파병을 해야 했고, 그 영향으로 본격적인 병영사회로 재편되었다. 이로 인해 한국에서만 억압이 시작되는 예외적인 현상이 발생했다는 것이다.
둘째, 한국은 “’수구’와 ‘보수’가 손을 잡고 권력을 분점해 온 구도” [p. 172]를 유지하면서 보수와 진보가 경쟁하고 있는 척하고 있다. 이는 “독일에서 가장 보수적인 정당인 기민당이 사회적 시장경제를 실행하고 있는 데 반해, 한국에서는 진보라고 불리는 민주당조차 자유시장경제를 신봉하는 상황” [p. 186]에서도 드러난다. 이처럼 “한국의 보수는 진보인 척하면서 개혁보다는 기득권 유지에 골몰해 온 세력” [p. 180]이기에 “한국은 전 세계에서 유례가 없는, 극단적으로 우경화된 정치 지형을 가진 나라” [p. 182]가 된 것이다.
셋째, 독일은 ‘인간의 얼굴을 한 자본주의’를 지지하는 자들이 의회의 다수를 점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은 국회의원 중 96퍼센트 이상이 자유시장경제, 독일에서는 “자본주의가 효율적인 체제임은 분명한데, 인간을 잡아먹는 양수의 속성을 지녔다” [p. 166]고 해서 ‘야수 자본주의’라고 불리는 체제를 지지하고 있다.
넷째, 수구세력의 존립 명분을 제공하고 국민들을 불안으로 몰아가는 남한과 북한의 냉전체제가 존재한다. 저자에 따르면, 이 냉전체제로 인해 “군사 주권을 미국에 양도함으로써 한국의 국가 주권을 훼손했고, 극단적으로 우경화된 정치 지형을 조성하여 정치 구도를 기형화했으며, 재벌 독재의 경제 질서를 만들어 경제 정의를 파괴했고, 권위주의적 성격을 심어 한국인의 성격 구조를 왜곡” [p. 199]했다는 것이다.
즉, 우리의 불행은 개인의 잘못이나 역량 부족 때문이 아니라 사회의 문제라는 것이다. 따라서 교육 시스템과 경제 구조 등 우리 사회의 뿌리 깊은 문제를 뜯어고치지 않는 한 우리의 불행은 끝나지 않을 것이라고 저자는 경고하고 있다. 이를 위해 저자는 “지금이 86세대에게는 어쩌면 마지막 기회인지도 모릅니다. 재벌개혁, 정치개혁, 교육개혁, 검찰개혁, 사법개혁을 결연히 감행하여 새로운 대한민국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렇게 하여 후세대에게 ‘지옥’을 넘겨주지 않는 것이야말로 86세대에게 남겨진 마지막 시대적 소명”[p. 257]이라고 호소한다. 다만, “새로운 정치권력으로 부상한 86세대가 정치적 비전과 상상력을 결여” [p. 105]하고 있고, 뿌리깊은 도덕적 우월감으로 무능해져 있는 상태이기에 그들이 다음 세대를 위한 역할을 하는 개혁의 주체가 되기보다는 개혁의 대상이 될 가능성이 높지 않을까 하는 걱정을 떨쳐버릴 수 없다.
'헬조선'이라고 불리는 한국사회의 병리현상을 독일이라는 거울에 비추어 보고, 해결방안을 모색하는 책이다. 우리가 정치적 민주화와 경제적 성장에도 불구하고 세계 최고의 자살율, 세계 최저의 출산율, 경쟁에 내몰리는 불행한 아이들, 세계 최고의 노동시간, 경제적 불평등의 심화, 세계 최고 수준의 노동자 사망과 같은 불행한 모습을 갖게 된 근본원인을 고찰하고 있다. 한국사회 안에 살고 있을 때에는 잘 보이지 않던 것들이 해외에 살면서 그곳과 비교해 볼 때 이런 구조적 문제들이 더 잘 보이는 법이다.
독일에서 공부한 저자는 한국과 비슷한 분단상황을 극복한 독일의 사례를 바탕으로 참 이상한 나라, 한국의 상황을 분석한다. 한 이탈리아 철학자가 한국사회의 특징으로 '끝없는 경쟁, 극단적 개인주의, 일상의 사막화, 생활 리듬의 초가속화' 이 4가지를 꼽았다고 하는데 이 섬뜩한 현상들이 왜 일어나고 있는 것인지 독일이라는 거울을 통해 해답을 찾으려 노력한다. 독일이 통일되는 당시 독일에 살고 있었다는 저자는 그렇기 때문에 한국을 보다 객관적이고 냉정하게 들여다 볼 수 있었다고 이야기한다.
한국의 민주주의는 정치적 측면에서 큰 진전을 이루었지만 우리의 일상에서는 전혀 진전이 없었음을 저자는 지적한다. 광화문에서 목이 터져라 민주주의를 외친 사람이 집에 돌아오면 완전한 가부장적 아버지가 되고, 다음 날 학교에서는 아이들을 쥐잡듯 들볶는 권위주의적 교사이며 혹은 회사에 가서는 갑질을 일삼는 상사라는 것이다. 일상에서 민주주의가 전혀 자리잡고 있지 못하다는 것이다. 그 원인은 유럽이 겪은 68혁명을 한국에서는 거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진단한다. 모든 형태의 억압으로부터의 해방을 기치로 내걸었던 68혁명이 기성 세대가 만들어놓은 억압의 메카니즘을 몰아내고 일상의 민주화를 가져왔는데 우린 정치를 제외하고 경제, 사회, 문화적 측면에서 그런 민주화 경험이 전무하다는 것이다. '헬조선'이 되는 뿌리를 생각하게 만드는 공감이 되는 지적이다.
저자는 통일문제도 새로운 시각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한반도의 통일문제는 남북이 갖고 잇는 고질적인 병을 치유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는 것이다. 세계에서 가장 권위적인 사회주의 국가인 북한과 가장 약탈적인 자본주의 체제의 남한이 단순하게 통일만 해서는 안되고, 그 이전에 북한의 권위주의적 사회주의를 민주화하고 남한의 약탈적 자본주의를 인간화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한국사회의 근본적 부조리가 해결되려면 단순한 정권교체를 넘어 교육시스템과 자본주의적 경제시스템의 근본적 개혁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우리사회가 이런 모습을 갖게 된 것은 68혁명의 부재와 보수와 진보에 관한 기만적인 정치구조, 맹목적인 야수자본주의, 그리고 분단체제에 있는데 이 시스템에 대한 근본적 성찰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우리가 지금까지 당연시 해 왔던 많은 생각과 제도들이 외부의 눈으로 볼 때 어떤 문제가 있으며, 우리는 어떤 노력을 해 가야 하는지에 대한 근본적 문제점을 던지고 있는 책이다.
30-50클럽이라는 게 있다. 국민소득이 3만불 이상이고 인구가 5천만 명 이상인 강대국을 말하는데 세계에 단 일곱 개 나라만이 해당하는 이 모임에 대한민국이 끼어 있다. 명실상부 외적으로는 분명 선진국이라고 아니할 수 없다. 게다가 정치 민주화와 경제 성장을 단기간에 이루어낸 우리는 왜 국뽕을 맞아도 치사량까지 맞을 만한 이 나라를 '헬조선'이라 부르고, 자살률이 세계 최고인 불행한 사회를 살고 있을까. 저자 김누리 교수는 이에 대한 답을 독일이라는 거울에 비추어 찾고자 한다. 전쟁, 냉전, 분단, 통일에 이르는 역사적 과정이 우리와 무척이나 닮았기 때문이다. 이 책은 학술서가 아니라 '차이나는 클라스'라는 강의를 녹취하여 요약 정리한 것인 만큼 논의의 깊이가 깊다기 보다는 미처 생각지 못했던 부분을 깨우치게 되는 정도의 기대를 갖고 읽으면 좋을 것 같다.
국정 농단에 대한 분노로 켜진 촛불의 힘을 입어 들어선 이 정권도 이제 임기를 약 5개월 여밖에 남겨놓지 않고 있다. 앞서 말했던 30-50클럽 가운데서도 대한민국의 민주주의 지수가 1위인데, 그 순위는 이 촛불 혁명의 덕이다. 3.1운동, 4.19, 5.18, 6.10으로 이어지는 유구한 민중적, 평화적 전통을 잇는 이 혁명은 그 열망이 기대한 만큼의 변화를 이끌어내지 못함으로써 우리나라의 민주주적 정치 체제가 얼마나 취약한지를 역설적으로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큰 바람이 불었는데도 큰 바다로 나가지 못하는 것은 배가 작아서다. 즉, 민주적 사회의 기반이 될 민주주의자가 없거나 적다는 것이다. 이는 우리의 저변에 깔려 있는 제국주의와 군사주의의 뿌리가 그만큼 깊다는 것을 의미한다.
"민주주의는 단지 정치 제도의 문제가 아니라, 삶의 태도의 문제이다. 타인을 배려하고 존중하며, 약자와 공감하고 연대하며, 불의에 분노하고 부당한 권력에 저항하는 태도-이러한 심성을 내면화한 민주주의자를 길러내지 못하는 한 제도로서의 민주주의는 언제라도 야만으로 추락할 수 있다"(p35)
장애를 가진 자식들을 위해 특수학교 세우는 것을 허락해 달라며 이웃 주민들에게 무릎을 꿇던 부모들의 눈물이 생각난다. 자신보다 두 배는 더 살았을 배달 기사에게 '못 배워서 그 따위 일을 한다'고 조롱하던 명문대생이 떠오른다. 경쟁에서 지면 인생이 끝난다고 생각하는 사회. 그 두려움이 아래로, 아래로 파고들어 겨우 엄마, 아빠를 부르는 아기들에게 영어로 대화를 시도하는 코미디가 벌어지는 곳이 지금의 대한민국이다. 우리 헌법 제1조는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고 나라의 정체성을 규정한다. 그러나 독일 헌법 제1조는 '인간의 존엄성은 침해되지 않는다'라며 모든 것에 앞서 인간의 존엄을 말한다. 민주주의를 인간의 존엄을 보장하는 것을 최우선으로 하는 정치 제도라고 규정한다면 우리와 그들의 정치적 지향점은 다를 수밖에 없다. 그래서 독일에서는 일개 조교도 대학 총장으로 선출될 수 있고, 대기업 이사회에서도 노동 이사들의 비율이 높을 수 있다. 저자는 이러한 사회 구조의 출발을 '68혁명'에서 찾고 있다.
68혁명이 불러온 독일의 변화들을 짚는다. 2차 대전 종료 직후에 과거 청산이 철저하게 이루어졌던 프랑스와는 달리 독일에서는 68혁명 이후에야 비로소 과거 청산이 시작되었다. 나치 부역자들에 대한 청산인 셈인데, 그들이 미친 영향에 비해 나치가 집권한 기간은 불과(?) 12년 이라는 데 사실 놀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독일 교육의 절반쯤은 이 기간을 '비판'하는 비판교육에 할애하고 있다 하니 과거의 역사적 책임을 '통감하고 반성'한다는 것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이에 반해 무려 36년을 시달렸던 우리는......
비판교육의 목표는 수업 시간에 선생님들이 한다는 다음의 말에서 짐작해볼 수 있다.
"내가 하는 말을 믿지 마라. 왜 그런 말을 하는지 그 배후를 의심하라. 비판적으로 사유해야 민주시민이 된다."(p67)
지금 우리가 하듯 줄을 세우기 위해서 객관식, 단답식 시험을 보는 건 나쁘다 정도가 아니라 학생들에게 스스로 사고할 힘을 거세하는 반(反)교육에 가깝다. 게다가 그 시험 방식은 공부를 하지 않고도 맞힐 수 있으므로 사기에 가깝다. 서정주의 시어가 상징하는 바를 1번부터 5번까지 중에 고르게 하는 것이 아니라, 왜 교과서에 서정주의 시가 실렸는지, 그의 삶은 어떠했는지, 그의 시가 문단에서 어떻게 그만큼의 권위를 얻게 되었는지를 성찰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학생들이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글쓰게 하고 서로 토론하게 하는 것은 교사들이 고민할 몫이다. 그러나, 학교 교육체제를 구속하는 직업 간 임금 격차, 대학 서열화,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차별 등등 각종 사회 체제는 국가가 나서서 해결해야 할 문제다.
교육 내용 뿐만 아니라 외적인 여건에서도 혁신적이다. 거의 모든 대학이 국립인데 학비가 없다. 생활비도 지원받는다. 입학 자격 시험만 통과하면 언제든지, 어느 대학 어느 학과에든지 들어가 공부할 수 있다. 생활비 지원은 나중에 이루어진 일이지만 이런 교육 제도가 갖추어진 것이 2차 대전 직후라고 하니, 무상 교육과 교육 발전은 국가의 의지에 달렸다는 것을 짐작해볼 수 있다. 이러한 교육 제도의 발전은 '교육 사회' 즉, 모든 독일인이 수준 높은 교육을 받아 교양인으로 살 수 있는 사회를 지향한다는 신념에서 나온 것이다.
교육 체제와 일부 사회적 측면만을 보았지만 68혁명은 전세계적인 변혁을 몰고 온 중대한 사건이었음에도 왜 우리나라에는 그 영향은 커녕 존재조차 모르는 사람이 대부분이게 되었는가. 그를 막은 것은 당시 이 땅에 짙게 깔린 냉전 체제, 군부 독재였다. 이 68혁명이라는 것이 베트남 전쟁의 참상에 대한 반성으로부터 촉발된 것인데, 베트남 전쟁에 세계에서 가장 많은 전투병(연인원 약 32만 명)을 파병한 대한민국은 그 지향점과 정반대일 수밖에. 그리고 극복되지 못한 냉전 체제로부터 비롯된 우리의 분단 체제(현재)는 일본의 과거(제국주의)와 중국의 미래(동북아 패권국가)와 더불어 동북아의 평화적 번영을 가로막는 가장 큰 장애물이 되고 있다.
그러니까 68혁명 이후의 서양 사회와 우리 사회가 다른 점이 있다면 바로 그 시기에 원인이 생겨났다고 할 수 있는 셈인데 그 시기를 지배한 박정희 전 대통령의 과(過)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68혁명의 세계사적 흐름에서 유리된 것은 물론이고 자신이 선거에서 승리하기 위해 만들어낸 지역감정, 정치자금 축적을 위해 시작한 강남 개발로부터 지금의 부동산 공화국이 비롯되었으며, 친일파 장교 출신이 대통령이 되면서 과거 청산을 요원하게 만들었고, 20년 가까이 군사 독재를 휘두르며 민주주의를 유린했다. 사회 전체는 물론, 회사고 학교고 모두 병영체제로 만들었기 때문에 우리가 파시즘 교육을 받고 자랐다는 것을 인식조차 못하게 되었다. 공(功)도 있고 과도 있다는 말로 물타기에는 지금까지 미치고 있는 그의 해악이 너무도 크다.
국가와 사회, 공동체에 대한 충성 강요 대신 개인의 존엄을 보장하는 민주주의 사회로 나가자면 결국 개개인이 민주적 인간이 되어야 한다. 그 선결 조건은 개인의 강한 자아인데, 우리의 교육은 자아를 강하게 확립시키는 것이 아니다. 무엇보다도 무의식적 성(性) 즉 리비도에 대한 죄책감을 주입시는 것이 자아를 약하게 만들고, 자아가 약하므로 권력에 굴종적인 권위적인 인간이 된다. 약한 자에 약하고 강한 자에 강하게 된다. 욕망을 솔직하게 말하지 못하는 위선적인 인간이 된다.(물론, 이러한 성 해방 교육의 결과로 현재 독일에서 일어나고 있는 학교 내 성범죄와, 다른 문제들은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다.)
이러한 제반 문제들로 인해 자신이 겪게 되는 억압과 착취를 사회 구조의 문제로 인식하지 못하고 개인의 문제로 치환하여 자기착취를 이어가게끔 하는 것이 또한 문제가 된다. 한 순간도 쉬지 못하고, 경제적으로든 사회적으로든 뜻대로 안 되는 것이 본인이 노오력하지 않은 탓이라고 생각하게 되는 것은 제도적인 기만이다. 이 틀을 벗어나려면 우선 자신이 그러한 상태에 있음을 인식해야만 한다.
내가 가장 인상적으로 읽은 부분은 프랑스 고등학생들이 이끌어 낸 교육개혁이었다. "우리는 공부하는 기계가 아니다."라는 구호 아래 소르본 대학의 해체를 주장했고 그것을 실현시킨 그 원동력은 어디에서 왔을까. "학생들 스스로가 노예 상태임을 자각하고, 자신들을 길들이는 학벌 사회에 저항"( p152)해야 한다는데 과연 이것이 가능하게 할 역량은 무엇이며 그것은 누가, 어떻게 길러줄 수 있는가에 대한 화두가 남았다. 이 사회의 민주주의를 발전시켜 온 혁명들의 선두에도 고등학생들이 서 있었음을 기억하면, 그것이 자생적인 것인지, 교육으로 길러줄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깊다.
여러 가지 문제를 살폈지만 결국 저자가 말하는 궁극적인 우리의 지향점은 우리 내 외부를 지배하는 분단 체제의 극복이다. 통일이 궁극적인 지점이 아니라 그 다음의 삶까지도 미리 준비해야 하는 것이다. 동서독의 통일이 동독 주민들의 저항 운동으로부터 비롯되었을 뿐만 아니라, 통일 한반도를 이끌 이들을 뽑는 캐스팅 보트는 - 남한의 정치적 지형이 보수-진보로 거의 균형을 이루고 있으므로 - 북한 2천만 인민이다. 그러므로, 통일 이전에 그들에 대한 민주시민교육이 주요한 과제로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