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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 Beneg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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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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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는 바닷가에서 태어났어. 그곳에는 그물과 배와 모래와 산들바람처럼 보드라운 돌멩이가 있고, 불가사리와 조개껍데기로 가득한 부두에서 수박을 먹는 오후가 있었어. 파도가 먼바다에서 유리 조각들을 동글동글하게 깎아 선물로 보내주었지. 해변의 조약돌들은 물살을 따라 쉬지 않고 재잘거렸어. 차락 차락 차록 차록 차룩. 소녀는 인간의 말보다 바다의 말을 먼저 배웠어.
소녀가 읽는 법을 배웠을 때 어른들은 계단을 높이 쌓을 만큼 많은 책을 소녀에게 구해 주어야 했어. 소녀는 정원의 체리나무 꼭대기에 까치발로 기어오르기를 좋아했어. 가장 달콤한 열매도 가장 예쁜 낱말도 언제나 제일 높은 가지 끝에 있다고 소녀는 말했어. (시인을 찾는 방법 2) 공원 벤치에 앉는다. 가을이 오기를 기다린다. 모든 것이 가을빛으로 물들고 나뭇잎이 우수수 떨어지면 시인들이 시를 쓰려고 벤치로 모여들 것이다. 편지는 마음에서 마음으로 이어지는 비밀 통로야. 글자는 다리가 되는 작은 돌이지. 종이와 잉크로 만들어진 돌. 편지는 먼 곳의 연인들을 조금씩 끌어당겨. 하나의 편지는 하나의 이야기야. 우리의 아이들과 그 아이들의 아이들에게 닿을 이야기. 시로 쓸 수 있는 이야기. 상자 속에 보관되는 이야기. 종이가 노랗게 바래도록 많은 시간이 흐른 뒤에 누군가 상자를 발견해 읽게 될 이야기. 편지는 영혼에 닿을 거야. 연인의 이야기가 발견될 거야. 땅에도 바다가 있어. 바람이 숲을 어루만지면 초록빛 파도가 물결처럼 일렁이며 답하거든. 노래도 해. 우리의 바다처럼. 하지만 다른 언어로 하는 노래야. 그곳의 물고기는 깃털이 있고 나뭇가지 위에서 살아. 배는 나무 위에서 항해하지. 소녀는 답을 알지 못했어. 소년도 답을 알지 못했어. 하지만 시는 답을 알 수 없는 질문에 답을 해주기도 해. 그래서 나나는 첫 번째 시집을 썼어. 달리 말할 길이 없었던 모든 것에 대해 말하는 책이었지. 제목은 ‘새의 심장’이었어. --- 본문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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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름다운 그림책은 시를 쓰지 않는 사람도 손쉽게 시인으로 만든다.
이것이 기적이 아니라면 무엇을 기적이라 부를 수 있을까.” -안희연 시인 바다와 숲의 바람이 불어오는 시적인 그림책 “땅에도 바다가 있어. 바람이 숲을 어루만지면 초록빛 파도가 물결처럼 일렁이며 답하거든. 노래도 해. 우리의 바다처럼.” 나나가 영혼의 친구 마르탱에게 쓴 편지의 문장처럼 이 아름다운 그림책은 글과 그림에도 바람이 불고 소리가 나고 냄새가 스며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 스페인 시인 마르 베네가스와 포르투갈의 아티스트 하셀 카이아노의 협업으로 만들어진 이 시적인 작품은 은유와 암시로 가득하면서도 가볍고 경쾌한 리듬을 가지고 있다. 시에 대해 말하지만 시가 무엇인지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보여주는 방식으로. 글은 질문과 비밀이 차오르는 시기의 소녀의 내면과 모험, 두 인물의 우정, 자연과 도시의 풍광을 세밀히 포착해내고, 그림은 빨간색, 파란색, 검은색의 제한된 팔레트로 단순하고 천진하게 표현되어 독자들이 이야기를 완성해나갈 빈 공간을 마련해 놓았다. 우리는 그 빈틈으로 불어오는 바다와 숲의 바람 속에서 나나의 사랑과 모험을 채워가고, 나아가 이야기 바깥으로 자기만의 모험을 떠날 수도 있다. 음미하고 듣고 냄새 맡으며 떨림을 흠뻑 느낄 수 있는 책. 좋은 시가 바로 그러할 것이다. - 오후의 소묘에서는 시인의 그림책을 꾸준히 펴내고 있으며, 브라질 시인 클라우지우 테바스의 《마음의 지도》, 이탈리아 시인 아주라 다고스티노의 《눈의 시》에 이어 《새의 심장》에서도 정원정 번역가와 박서영(무루) 작가가 또 한 번 합을 맞췄다. 깊고 섬세한 번역으로 탄생한 아름다운 문장들이 단연 돋보인다. 시가 있는 곳은 어딜까? 사랑이 나를 떨리게 하는 걸까? 배, 그물, 모래로 가득한 부두에서 자라난 소녀는 조약돌이 파도와 나누는 대화, 폭풍이 고함치는 소리, 조개껍데기가 품은 태양, 낱말들이 생겨나는 실뭉치처럼 누구도 들을 수 없는 것을 듣고, 누구나 볼 수는 없는 것들을 본다. 나나가 모은 작은 보물들은 저마다 무엇이든 일어날 수 있는 우주다. 나나는 그것이 바로 ‘시’라는 것을 알게 되고, 더 많은 시를 만나고 그것들이 품은 비밀을 풀기 위해 시인을 찾아 도시로, 숲으로 떠난다. 모험을 떠난 것은 나나 혼자지만, 나나는 결코 혼자가 아니었다. 하얀 밀가루로 시를 쓰는 제빵사의 아들 마르탱은 나나가 떠나기 전 새 모양으로 구운 빵을 선물한다. 이걸 먹으면 날개가 생길 거라고. 그리고 마르탱은 바다에 남아 나나가 모으던 보물들을 계속해서 찾아내고 또 간직한다. 나나가 돌아오리라 믿으며, 그때 시가 나나의 곁에 있을 수 있도록. 페이스트리와 바다와 숲의 냄새가 나는 편지들을 주고받으면서 나나에게는 누구도 답할 수 없는 질문들이 쌓여간다. 나나는 답을 찾게 될까? 나나가 마침내 시의 마음을 발견한 순간엔 어느 때보다 마르탱을 그리워하며 그에게 자신이 본 모든 것을 공유하고 싶어진다. 그런 마음을 담아 마르탱에게 마지막 편지를 보낸 밤에는 시가 나나에게 말을 걸어오기도 한다. “나는 너에게서 왔고, 그에게서도 왔고, 그 모든 것 속에 있어”라고. 이 이야기는 이렇게 우리에게도 말을 걸어온다. 시에는 사랑이 깃들어 있고 사랑은 시를 부르며 시는 어디에나 있다고, 우리는 나나처럼 그것을 알아보기만 하면 될 것이라고. 마르 베네가스(지은이)의 말 나나의 이야기는 바다의 이야기입니다. 바람에 날려 숲에서 바다로 온 언어들, 파도와 돌의 말들이지요. 마법 같은 빵과 노래하는 소녀의 심장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하늘을 나는 새의 비행경로를 따라 소녀가 그려낸 보이지 않는 손글씨예요. 그리고 인생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사랑으로 쓰고 꿈으로 엮는, 바로 그것 말이에요. 외로움과 슬픔도 피할 수 없지요. 그 여정에서 나나의 심장은 시어들의 둥지를 만듭니다. 인생을 여행하는 이야기이기도 하죠. 시어를 구하기 위해 소녀는 바다에서 도시로, 도시에서 숲으로 떠납니다. 비밀과 시의 이야기입니다. 자주 눈을 감아야 할 것이에요. 노트를 곁에 두고 떠오른 보물들을 시로 간직하게 될 테니까요. 나나가 그랬던 것처럼. 어쩌면 편지의 이야기일까요. 편지에 적히는 모든 단어는 돌다리를 이루는 돌입니다. 종이와 잉크로 길을 만드는 것이죠. 가까워지려는 몸짓과도 같아요. 마지막으로 이것은 이름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당신의 이야기에는 어떤 이름을 지어주면 좋을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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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은 어떻게 탄생하는가. 이 아름다운 그림책은 말한다. 한 사람의 죽음이 그를 관통하던 날, 그는 새로운 이름을 얻고 시인으로 다시 태어났노라고. 그렇다면 시는 어디서 오는가. 이 아름다운 그림책은 말한다. ‘새의 심장’ 없이는 그 어떤 시도 완성될 수 없다고. ‘새의 심장’은 의외로 가까운 곳에 있다. 그리고 누구에게나 있다. 눈이 아닌 것으로 보는 일, 가지 끝에 걸려 있는 가장 소중한 단어를 향해 발끝을 살짝 들어 올리는 동작, 빵을 굽듯이 편지를 써 내려가는 마음 안에도 그것은 있다. 이 아름다운 그림책은 시를 쓰지 않는 사람도 손쉽게 시인으로 만든다. 우리를 우리 삶의 주인으로 만든다. 한 권의 책을 읽었을 뿐인데 너무 큰 비밀을 알아버린 것 같다. 이것이 기적이 아니라면 무엇을 기적이라 부를 수 있을까. - 안희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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