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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풍해장국
오성일
2021.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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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시선

책소개

목차

시인의 말

제1부
밤에 쓴 말 | 미풍해장국 | 주방보조급구 | 아무개의 빙부상 | 산촌 | 화장 | 뒤편 | 전봉덕 할머니의 인터뷰 | 봄밤 | 산역山驛 | 시인학교 | 그래도 | 소만 | 연착륙을 빌다 | 죽 값 | 잊혀진 계절

제2부
염소 아빠 | 정경 | 곰소 | 마지기 | 여름밤 | 아픈 별 | 춘분 | 이별 | 항구, 리스본 | 힘껏 | 화상 | 아무르 | 꿈 | 숨을 죽이고 | 늙은 닭 | 미역국

제3부
섭섭한 저녁 | 예스터데이 | 겨울 저녁의 노래 | 덕담 | 장항선 1 | 감꽃 목걸이 | 촛불 | 산복도로 | 창호지에 쓴 가을 동화 | 맞는 말 | 재환이 형 | 아뿔싸 | 초록 선풍기 | 늙은 군인의 노래 | 지우개 | 아들 걱정

제4부
집으로 | 티타임 | 비 오는 새벽 | 금산사에서 | 소설小雪 | 장항선 3 | 무량사 뒤꼍 | 열 번에 한 번쯤 | 말도 안 되는 이야기 | 나무야 | 열 살 에스더와 눈먼 엄마 이야기 | 길용 씨 | 비 온 아침 | 소한 | 당신도 그러하신지 | 우화憂話

해설 박남희_두 개의 거울 속을 걷는 열린 산책자의 시학

저자 소개 1

작은詩앗·채송화

1967년 경기도 안성에서 태어났다. 2011년 [문학의 봄]으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존재의 슬픔에 아파하면서 옳은 것을 옳다고, 그른 것은 그르다고 고백하는 것으로 시 쓰는 노릇을 삼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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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1년 12월 15일
쪽수, 무게, 크기
116쪽 | 178g | 124*210*8mm
ISBN13
9791160201680

책 속으로

그가 관심을 가지고 있는 시적 대상들은 대부분 산책을 하다가 주변에서 쉽게 만날 수 있을 것 같은 사람이거나 사물들이고, 그는 이러한 대상들을 무심히 지나치지 않고 자신의 사유의 보폭 안으로 끌어들여서 선명한 언어의 발자국을 찍어낸다. […] 그가 산책을 하면서 생각하고 생각을 하면서 마주하는 대상들은 어딘가 소외되어 있거나 그늘져 있어서 시인의 마음을 끌어당기는 것들이다. 그의 시에는 “꾸고 싶지 않은 꿈이 자주 찾아오는 새벽”(「겨울 저녁의노래」)이 도처에 존재하지만, 그는 어긋났을지도 모르는 자신의 신념이나 패배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 해설 「두 개의 거울 속을 걷는 열린 산책자의 시학」 중에서


고개를 숙이고 생각하겠습니다 고요히 나에게만 묻겠습니다 하늘의 별빛에도 마음 흔들릴 수 있으니 우러르지 않겠습니다 눈 감겠습니다 도처에서 나를 노리는 파행과 봉착, 눈을 뜨면 꿈꾸지 않은 길 위에 서 있을 수도 있으나 가장 위독했던 순간의 기억으로 길을 되물어 가겠습니다 이 외로움이 나의 방향 감각입니다
--- 「밤에 쓴 말」 중에서


사무실 앞 미풍해장국이 문을 닫았습니다
그제 밤부터 불이 꺼져 있더니
오늘 낮까지 문이 잠겨 있습니다
문 닫힌 한낮의 식당 안을 들여다보는 건
왠지 섭섭하고 걱정이 드는 일입니다
해장국의 뜨뜻하고 뿌연 김이 가라앉은 식당에선
유리문 사이로 서러운 비린내 같은 게 새 나옵니다
옆 건물 콜센터의 상담원 처녀들이
늦은 밤 소주 댓 병과 함께 뱉어낸
고객님들의 악다구니와 욕지거리들도
식당 바닥 찬물 위에 굳은 기름으로 떠 있습니다
의자와 정수기와 도마와 탁자와 계산대는 다들
앞길이 막막하다는 표정으로
그늘 속에 반쯤 얼굴을 묻고 있습니다
나는 젊은 주인 내외가 무슨 상이라도 당했으려니
노할머니께서 돌아가셨는데
너무 슬픈 나머지
쪽지 하나 붙이고 가는 일 깜빡했으려니 짐작하면서
하루 이틀 더 기다려보자고 생각합니다
그나저나 이제 초여름인데 벌써 공기가 후줄근합니다
미풍이 좀 불었으면 좋겠습니다
콜센터 아가씨들에게도 해장국집 착한 부부에게도
그리고, 나에게도 바람이 좀…….
--- 「미풍해장국」 중에서


2016년 추석 연휴 끝 남쪽 지방에 큰비가 왔다
― 자녀들이 추석 쇠고 떠난 시골집엔 빗물이 방문 앞까지 들이닥쳐 겨울을 날 연탄까지 쓸어갔습니다
KBS 기자의 물난리 소식에 어딘가 기사 같지 않은 아린 맛이 있어 ‘겨울을 날 연탄’, 이 대목에서 마음은 한번 삐끗했는데,

이어지는 전봉덕 할머니(전남 담양군, 78세)의 인터뷰는 이랬다
― 하도 비 오는 소리가 짜락짜락 나. 그래서 인자 요리 와서 문을 열어보니께 넘실넘실혀 그냥. 죽겄어 깐딱하면…….

세상은 아직 황톳빛 난리가 그치지 않았는데, 나는 참 철이 없게도
남도 여자의 육자배기 대목이나 얻어들은 듯 짜락짜락 빗소리가 하도 넘실넘실 가슴 문턱을 넘쳐 들어와 깐딱하면 이쁜 시 한 줄을 토할 뻔했다
--- 「전봉덕 할머니의 인터뷰」 중에서


스물 두엇쯤 됐을까
그는 말을 제대로 꺼내지도 잇지도 못했다
자동차 보험 만기가 가까워 안내드렸다,
우리 보험으로 옮기면 뭘 더 챙겨드릴 수 있다, 대충 그러한 얘기
아주 무심하고 차갑게 대꾸하는 나에게
끈질기게 뭘 더 물어보지도 않고
고객님 그래도, 하고 매달리지도 않고
그냥 숨죽이듯 전화를 끊었다
그의 가늘게 떨리는 목소리와 나의 메마른 대답으로
쉽게 끝난 전화가 하루 종일 마음을 떠나지 않았다
분명 저 일을 오래 못 할 것 같은 청년을 생각하고
사는 일의 위태로움에 대해 생각했다
목소리를 떨며 하루를 사는 그를 뿌리치고
보험 재계약 사은품으로 나는
삼만 원짜리 주유권을 받았다
--- 「숨을 죽이고」 중에서


나는 남에게 걱정을 끼치는 게 싫어서 걱정이 많다 나를 걱정시키는 사람이 있어 잠 못 드는 밤이 있으나, 또 그런 나의 불면을 걱정하는 오랜 사람이 있어 나는 걱정이 많다 그래, 걱정은 몰래 하는 일이 되었다 주머니 속의 걱정을 만지작거리는 습관, 먼 데를 바라보며 그러는 습성이 병처럼 깊었다 지치도록 봄날도 깊었다 해 저무는 마음의 골짜기로 저녁바람이 분다 바람의 뒤편에는 발끝 저린 노을, 걱정
말라고 발등을 쓸며 어둠이 온다 잠시 무심하고 적막하고 따스하다 그 사이를 바람이 불고 또 걱정이 보챈다 너무 오래 집을 비웠다 해찰이 길었다 걱정을 데리고 집으로 갈 시간이다 오늘 밤도 나는 나 혼자가 아니어서 밤이 더디게, 지날 것이다

--- 「우화憂話」 중에서

출판사 리뷰

안간힘 쓰는 풍경으로 향하는 시인의 방향 감각,
밤에 쓴 말들을 나르는 미풍의 언어 속으로

“고개를 숙이고 생각하겠습니다 고요히 나에게만 묻겠습니다
하늘의 별빛에도 마음 흔들릴 수 있으니 우러르지 않겠습니다”


솔 시선 33번째 시집으로 오성일 시인의 『미풍해장국』이 출간되었다. 『미풍해장국』은 오성일 시인의 네 번째 시집으로, 우리가 삶에서 눈여겨보지 않는 사람과 풍경들을 오래 바라본 시인이, 작고 조용한 목소리로 되살려낸 시의 장소를 담고 있다.
시인은 자신이 걷는 세계의 자장을 민감하게 감지하는데, 해설을 쓴 박남희 문학평론가는, 오성일 시인이“자신의 마음과 정신을 타인에게 활짝 열어 보이는” “산책자의 언어적 보폭”을 가졌으며, 대상에 다가가는 “염려하는 마음”을 시인의 특징적인 면모로 꼽고 있다. 산책자의 언어는, 은근하고 고요한 ‘미풍’처럼 온다. 가볍고 부드러운 시인의 마음은 바람이 닿듯이 우리 옆에 머물고 스며드는데, 시인은 기척도 없이 옆에 와 가느다란 숨에 실린 이들의 말을 살피고 되읊는다.
시인은, “매달리지도 않고 그냥 숨죽이듯 전화를” 끊는 보험판매원의 “가늘게 떨리는 목소리”를,(「숨을 죽이고」) “지방 공장의 주소가 적힌 쪽지를 긴장된 얼굴로 가만히 펼쳐보는” “커다란 검은 눈의 네팔 청년”을,(「연착륙을 빌다」) “현수막을 걸다가 사다리에서 떨어져 척추를 다친 … 혜희의 아버지 길용 씨”를,(「길용 씨」) 밤늦게 퇴근하는 “주방보조의 젖어 있는 어깨”를(「주방보조급구」) 한참 바라본다. 그 모습은 발자국을 남기지 않고 세상을 바라보는 오래된 천사의 모습을 닮은 듯도 하다.
오성일 시인은, 어느 도시에서 “거리를 돌며 가등마다 불을 켜는” “늙은 점등원”처럼 우리 마음을 밝히는데,(「정경」) 그 불빛은 시적 대상들뿐 아니라, 시인 자신을 밝히는 것이기도 하다. 시인은 세상을 염려하면서, 동시에 “고개를 숙이고”(「밤에 쓴 말」) 자꾸 부끄러워한다. 염려하는 시인의 산책길 양쪽에는 타자를 향한 ‘염려’와 자신을 향한 ‘부끄러움’의 빛이 시인을 비추고 있다.

ㆍ ㆍ ㆍ

밤에 쓴 말들이 만드는 자리

오성일 시인이 세상에 건네는 목소리는, 언어로 대상을 전유하는 시의 세계에서 드물게 조용하고 담담하다. 시인은 말 이전에 먼저 침묵으로 지켜보고 기다리며, 버려지고 갇힌 것들, 혼자 앓는 것들 쪽으로 걸어간다. 시의 언어가 도착하기 전에 먼저 그 “안간힘 같은 풍경들”을 살피고 염려하는 것이다.
거리를 걷다 시인이 향하는 곳은 문 닫힌 한낮의 단골 식당 “미풍해장국”이다. 그는 밝은 한낮의 거리에서 그늘에 잠긴 식당을 들여다본다. 가라앉아 있는 그 어둠에서 시인은 “비린내”를 맡고, “악다구니”를 듣는다. 방향을 잃은 듯 떠 있는 식당 안 기물들의 막막한 표정을 두고 시인은 돌아설 수가 없다. 며칠째 닫혀 있는 ‘미풍해장국’에 대한 섭섭함과 걱정, 막막함 앞에서 시인은 “하루 이틀 더 기다려보자고 생각”한다. 기다리자고 마음먹은 그는 이렇게 말한다.

그나저나 이제 초여름인데 벌써 공기가 후줄근합니다 / 미풍이 좀 불었으면 좋겠습니다 / 콜센터 아가씨들에게도 해장국집 착한 부부에게도 / 그리고, 나에게도 바람이 좀…….(「미풍해장국」 중에서)

식당 안 그늘에 근심하던 시인은, “미풍이 좀 불었으면 좋겠습니다”, “나에게도 바람이 좀…….” 하며 그 특유의 심상함과 가벼움으로, 닫힌 ‘미풍해장국’과 예상치 못은 방식으로 만난다. 시인이 기다리는 바람의 방향은, 갇혀 있는 ‘미풍해장국’의 시간, 방향을 잃은 단골, ‘그리고, 나’ 모두를 향해 있기 때문이다. 그 기다리는 마음에는 열린 방향으로의 개시가 담겨 있다. 하지만 시인은 어떤 기대를 내비치기보다는, 응시하고 기다린다. 이때의 기다림은 ‘미풍해장국’ 가게가 열리기를 수동적으로 기다리는 상태가 아니라, 닫힌 가게와 거리를 매개하는 열린 공간이 된다. 그러다 문득 어떤 전환을 맞기도 하는데, 그것은 “바람이 방향을 바꾸어 부는” 그런 순간으로 온다.(「당신도 그러하신지」) 오성일 시인이 만드는 시의 자리는 이토록 자연스럽고 우연적이며 조용하지만, 무언가가 달라진 그런 자리인 것이다.
시인은 물난리가 난 남쪽 마을 뉴스를 보다가 할머니 인터뷰를 듣는다. “하도 비 오는 소리가 짜락짜락 나. 그래서 인자 요리 와서 문을 열어보니께 넘실넘실혀 그냥. 죽겄어 깐딱하면…….” 할머니 말을 가만 듣다가 시인은 이렇게 말한다.

세상은 아직 황톳빛 난리가 그치지 않았는데, 나는 참 철이 없게도
남도 여자의 육자배기 대목이나 얻어들은 듯 짜락짜락 빗소리가 하도 넘실넘실 가슴 문턱을 넘쳐 들어와 깐딱하면 이쁜 시 한 줄을 토할 뻔했다(「전봉덕 할머니의 인터뷰」 부분)

시인은 하마터면 철없이 시를 써 “깐딱하면” 일낼 뻔했다고 말한다. 시인에게는 시 한 줄보다 전봉덕 할머니의 말이 먼저다. 그리고 할머니의 말의 자리에 온 ‘깐딱하면 죽겄어’ 하는 물난리가, 애초에 시인이 쓰려고 했던 시의 자리에서 생겨나는 것이다.


세상 어디에 제 몸 하나 숨기지 못한 이름들을 호명하며

시인은 거리를 걷다 과속방지턱 앞에 선 할머니의 리어카를 본다. 그곳에는 할머니의 리어카를 밀어주는 공사장 신호수가 있고, 길 건너에서 할머니와 리어커와 신호수를 건너다보는 환자복 입은 노인이 있다.(「힘껏」) 시인은, 할머니 몸의 몇 배나 커다란 리어카를 중심으로 거리 전체를 조망하는데, 그 조망의 꼭지점에는 “세상 어디에 제 몸 하나 숨기지 못한 이름들”이 있다.
한번은 시인이 계약이 끝난 직원에게 밥을 사주며 위로를 건네고 돌아섰는데, 시인은 “무슨 만고의 교훈이라고 세상의 진리라고” 건넨 자신의 “부드러운 목소리”가 어쩐지 씁쓸하다.(「덕담」) 시인은 자신의 부드러움과 조용하게 건네는 말들에 마음이 편치 않다. 그는 “마음의 강바닥에 구르는 돌들, 물결에 몸 닳아 둥글어지지 않겠노라고 부딪쳐 날을”(「겨울 저녁의 노래」) 세우며, 부끄러움을 감추고 있기 때문이다.
그 부끄러움은 “어느 날 밤 하루쯤은 안 들어갈까, 생각도 했던 집으로 나는 얼굴 반쪽을 가린 채” 들어가게 하는 마음이다. “세상 어디에 제 몸 하나 숨기지 못해 떠돌다 간 이름들” 앞에서 살아 있는 시인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숙인다. 시인은 감기 한 번에도 “간 봄에 잘못한 짓들을 생각”(「이별」)하고, “어쩐지 누구에게 미안하단 생각이 자꾸” 떠오른다.(「비오는 새벽」) “나를 걱정시키는 사람이 있어 잠 못 드는 밤이 있으나, 또 그런 나의 불면을 걱정하는 오랜 사람이 있어 나는 걱정이 많다”(「우화憂話」).
그래서 시인이 “고개를 숙이고 생각하겠습니다 고요히 나에게만 묻겠습니다”(「밤에 쓴 말」) 하고 말할 때, 시인이 지닌 이 내성(內省)의 힘은 사적인 것이 아니다. 시인의 말들이 향하는 대상에 대한 염려의 다른 한편에는 이렇듯 시인 스스로 묻는 ‘부끄러움’의 감각이 있으며, 그것은 대상을 살피면서 기다리는 중에 나타나는 일이다. 이 순간 대상과 시인은 누가 먼저랄 것 없이 같은 자리에 오게 되는 것이다.
이렇듯 대상에 대한 염려와 자성의 공간이 오성일 시의 자리이다. 시인이 비워둔 이름들의 자리는, 이 대상에 대한 염려와 내성의 부끄러움이라는 역학 속에서 만들어진 긴장의 공간이다.
세상 속에서 조심스러운 마음으로, 조용한 말들을 건네며 오성일 시인이 만들어가는 이 사랑의 연대는, 오래 들여다봐야 할 우리 시의 깊은 자리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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