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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시선

책소개

목차

시인의 말

1부
혼잣말 | 가객 | 파랑 대문 옆 의자 | 천도복숭아 | 팔진법 | 생업 1 | 말없는 이야기 |우리 사이 | 금강 그늘 문 | 거문들 산조 | 꽃길 | 눈 | 대추 | 가을 금산 | 빈집 | 석교에서 | 낙법 | 노시산방기老?山房記

2부
| 무성영화 | 조용한 밤 | 동백조문冬柏弔問 | 빈집 2 | 실비 | 스크린도어 | 사월의 눈 | 빈방 | 유족 | 폐촌에서 | 오월을 걷다 | 단정꽃차례 | 자정에 | 바깥 | 고향 집 일주문 | 점심 | 색계色界 1 | 색계色界 2

3부
시간의 그림자집 | 정처 | 천개동 물소리 | 종鍾 | 통점 | 가을날 | 생업 2 | 미신 | 연가 | 건달을 위하여 | 백중사리 | 병원 옥상정원 | 실향 | 뿔 | 연못 | 소원 | 다석多夕 | 하룻길

해설 존재의 원형을 찾아가는 선연한 기억들― 권덕하의 시세계__유성호

부록 낱말풀이

저자 소개 1

대전에서 출생했다. 1994년 [화요문학] 동인시집 『두고두고 살아나는 꽃』에 시를, 2002년 [작가마당]에 문학평론을, 2006년 [시안]에 시를 발표하며 문단 활동을 시작하였다. 시집 『생강 발가락』, 『오래』와 문학평론집 『문학의 이름』, 문학연구서 『콘라드와 바흐찐』 등을 냈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창작기금(2009), 미네르바 작품상(2013), 아르코문학창작기금(2018) 등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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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18년 12월 10일
쪽수, 무게, 크기
120쪽 | 158g | 128*200*20mm
ISBN13
9791160200690

책 속으로

등구나무 그늘에 들마루 있고
이웃끼리 너울가지 좋게
웃음꽃 이야기꽃 피우던 오래,
바람과 햇살 어울려 흥얼거리던 곳이
한없이 그립습니다
골목과 이웃이 사라집니다
찬바람 부는 거리에
쓸쓸한 사람들이 늘었습니다
여느 구석에서 ‘오래’를 그리며
말이 앓다 뿌리 내립니다
---「시인의 말」중에서

우리 사이에
글자가 생기기 전
글자 쓸 일도 없고
그러니까 글씨가 없을 때
엄지머리거나 꼭지거나 해서
때로는 듣는 사람도 없고
기척으로 다 통하고
인사가 따로 없을 적에
터 물고 오래 있다가
느려터진 뿌리로
그늘이나 권하는 느티나무처럼
---「우리 사이」중에서

몸 먼저 깨어나 베갯잇 가만히 만져 본다 손가락에도 눈 있는 듯 응달진 곳에 가 있다
횃대에 걸려있는 허물 뒤로 희붐하게 봉창 밝아 어디서 다쳤는지 모르는 상처 늘었다
간밤을 도왔던 발자국들 다시 되돌아가는 먼 길, 알 수 없는 일이 생긴다는 말 돌부리에 걸리고
매듭지지 못한 낯꽃으로 서두르는 모습 어디서 본 듯한데
먼지 털다 자꾸 이불귀 놓치는, 정녕 마음이 낯설기만 하다
---「빈집」중에서

달, 너는 날 오래 바라본다 네 눈길에서 내 시간이 발효되고 있다 온갖 잡념 다녀간 뒤 수수꽃다리 향기로 어두워진 창틀 너머 보이지 않는 손이 호렴 뿌린다 끓고 있는 내 체온에서 너는 무엇을 뒤지려는 것일까 네가 내 몸에 지운 그림은 물속에서만 제 빛깔 살아내는 돌처럼 목이 잠겨 있는데, 새된 소리와 풀 비린내와 핏빛을 슬하에 거느린 채 정작 자신을 잊은 사람의 입에서 흘러나온 슬픔의 뿌리, 입술이라는 것은 그렇게 부표처럼 망각의 물살 거슬러 용케도 곧추서 있다 끓고 있는 피가 네 눈길 한 입 베어 물어도 너는 그저 오래 환하기만 하다
---「시간의 그림자집」중에서

권덕하 시인의 신작 시집 『오래』는, 연면한 시간의 흐름 속에서 흐려지거나 사라져간 것들에 대한 애잔한 연민과 그리움의 상상적 도록圖錄이다. 오래고 선연한 기억 안에 웅크리고 있는 실감의 재현을 통해 시인은 우리가 잊고 살거나 모르고 지나쳐가는 순간과 장면을 선명하게 붙잡아준다. 특
별히 시인이 화두로 삼은 ‘오래’는, ‘시간적으로 길게’라는 뜻 외에도, 거리에서 대문으로 통하는 좁은 길 혹은‘ 마을’의 뜻으로 쓰인 공간적 개념을 가지고 있었다. 시인은 “둥구나무 그늘에 들마루 있고 이웃끼리 너울가지 좋게 웃음꽃 이야기꽃 피우던 오래, 바람과 햇살 어울려 흥얼거리던 곳”(‘시인의 말’)으로서의 ‘문門’의 함의를 새삼 떠올리면서, 그것이 시간 범주에만 쓰이고 있다는 진단을 통해 우리가 서성였던 ‘오래’와 그 주변에 대해 노래해간다. 살갑고 다감한 시인의 성정과 언어가 결속하면서 빚어지는 우리 시대의 고고학적 지도地圖가 아닐 수 없다.

---「해설」중에서

출판사 리뷰

시간의 힘에 맞서는 실감 어린 기억,
과거에 붙박인 정지된 곳이 아니라 과거와 현재를 잇는 징검다리, ‘오래’


시인은 일상의 건조한 현실을 벗어나 상상과 다정으로 빚어낸 전혀 다른 세계를 직조하면서도 다시금 시인의 내면으로 발을 굴러 미처 발견하지 못하고 지나친 주변부를 세심하게 조망한다. 그가 바라보는 세계는 마치 낙엽이 날리는 듯하는 쇠락한 공간이다. 머물던 이들은 이주를 준비하고, 남아 있는 자들의 마음도 이리저리 흔적으로 긁혀 있는 그의 시세계는 그러나 아주 곤두박질치거나 냉랭한 비애의 감상으로 싸늘해지지는 않는다.

우리 사이에
글자가 생기기 전
글자 쓸 일도 없고
그러니까 글씨가 없을 때
엄지머리거나 꼭지거나 해서
때로는 듣는 사람도 없고
기척으로 다 통하고
인사가 따로 없을 적에
― 「우리 사이」 중에서

시인이 조망하며 노래하는 곳은 춥고 바람이 부는 공간인 동시에 오래 발붙이고 산 사람들의 꺼지지 않는 다정이 진득하게 흔적을 남기는 곳이다. 이는 시인의 추억에서 비롯된 공간에 기인하며, 그곳에서 사람들은 글자 없이 말없이 통하는 사이로, 서로를 향해 마음의 문을 열어두었다. 시인은 “골목과 이웃이 사라지고 찬바람 부는 거리에 쓸쓸한 사람이 늘었”음을 말하며 근원적 공간인 ‘오래’를 갈망한다. 사라져간 것들에 대한 연민과 상실의 감각에서 비롯된 그리움으로 가득 찬 눈앞의 풍광이 다소 냉랭할지라도 시인은 그가 기원으로 삼은 ‘오래’의 따듯한 기억을 통해 치유와 회복의 방식으로 맞서나간다. 이때 ‘오래’는 과거에 붙박인 정지된 곳이 아니라 과거와 현재를 잇는 징검다리가 된다.

서늘하고도 따스하게, 삶을 더듬어 올라가는 실존적 미학

유성호 평론가는 『오래』의 해설에서, "시인이 자신의 삶의 흔적을 언어적으로 구성해가는 방식을 짚는다. 이는 시인의 유일한 실존의 방식이다. 그러나 절망의 밑바닥에서 피워 올리는 페이소스나 미래적 전망을 열고자 하는 희망의 원리는 시인의 시적 목표가 아니며 오히려 그는 세련된 구어적 활력을 통해 스스로의 운명과 실존적 자의식을 대립시킨다. 이처럼 시간의 힘과 맞서는 긴장과 거리를 통해 시인은 서늘하고도 따스한 자신만의 시학을 구축해간다.
그것이 바로 세상의 복잡한 이치와 원리를 자신의 경험 내부에서 보편화하려는 시인의 욕망이 반영된 것일 터이다. 이 점이 권덕하 시의 고유한 미학적 실질이요 장처長處가 아닐 수 없다.”라고 평했다.

권덕하 시인은 “찔레꽃머리에 말을 심고 뜻을 길러 가을하는 마음으로” 시집을 지어 올린다고 고백한다. 이번 시집은 존재의 원형을 찾아가는 선연한 기억들을 통해, 그가 뿌리고 길러낸 성취와 가능성을 우리에게 다시 한 번 충일하게 들려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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