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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산 검은피
오봉옥 장편서사시 양장
오봉옥
2022.0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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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저자 소개 1

광주광역시에서 태어나 연세대 대학원에서 수학했다. 1985년 『창작과 비평』으로 등단했다. 시집 『지리산 갈대꽃』 『붉은 산 검은 피(상, 하)』 『나 같은 것도 사랑을 한다』 『노랑』 『섯!』 『달리지 馬』 『나비 도둑』 등을 출간했다. 산문집 『난 월급 받는 시인을 꿈꾼다』, 동화집 『서울에 온 어린 왕자(상, 하)』, 비평집 『시와 시조의 공과 색』 『김수영을 읽는다』 등을 펴냈다. 서정시 「등불」은 고등학교 문학 교과서에 수록되었고 영랑시문학상, 한송문학상을 수상했다. 현재 서울디지털대학교 교수, 문예지 『문학의 오늘』 편집인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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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2년 06월 23일
판형
양장 ?
쪽수, 무게, 크기
216쪽 | 380g | 124*210*20mm
ISBN13
9791160201734

책 속으로

그 아비들이 이승의 악연으로부터 해탈하기를 염원하는 오봉옥 시인-박수의 기도가 간절하다. 이 기도는 또한 죽은 아비들의 혼으로부터 벗어나기를 꿈꾸는 시인의 것이기도 하거니와, 아비들과 시인이 함께 자유로워지는 이중의 해방에 조건이 있다. “민중세상 다왔다고” 강력하게 암시하듯 자유롭고 평등하여 온 인민이 우애하는 후천개벽의 새 세상이 관건이다. 요컨대 이 땅에 지상천국을 건설하는 일이야말로 망자를 천도하는 첩경임을 선언한 것이 이 장시의 눈동자이던 것이다.
--- 「발문」 중에서


차라리
차라리 들리지나 말 것을
우금치 마루에 질척이는
흰옷이여
붉은 피 서리를 두르고
풀마다 잎잎이 늙어버린 청산이여
까마귀가 나이 어린 동학군 눈깔을 쪼다가
까악까악
끝내는 살점을 토해내는
몸서리치는 밤이여

죽은 넋이 어데 가서 잠들리오
강가에 숨을 멈춘 꽃들도 얼었는데
죽은 눈이 어데 가서 감기리오
저녁 새도 날지 못하고

절룩절룩 곡을 하는데
눈썹달이 먼발치서 떠서는
차마 보지 못하고 먹장구름 속으로
고개 돌리고 말았는데
아, 죽은 입이 무엇을 더 말하리오
--- p.15~16, 「서시 1」 중에서


해방이 뭣이다요
실머리 엉키듯 질질 끌려나간
징용 간 범팽이 석만이가 돌아와서
둔동아짐이 북간도에서 돌아와서
아니 판옥이 성님이 서대문형무소에서
안 죽고 살아왔당께 고것이 해방이요?
어이 마시 자네는 김상이 아니고 김씨인 거여
그리여 그렁갑네 이 작은 마을에도
실머리 감듯 질질 돌아온 사람들이
태극기도 봤다 하고
동해물과 백두산을 부르고 난리다는디
고런 것이 해방이다요
나 참, 창자를 쥐어뜯는 서러움은
언제나 해방이 될까잉!
--- p.34, 「서시 2」 중에서


1945년 8월 15일
석이는 들었다
걸레걸레 누더기 걸친
살아남은 조선인들은 다 들었다
절룩이며
숨죽이며
울먹이며
손을 맞잡고
부르르르 떨며
군수공장 철 대문 아래

녹슨 스피커에서
천황인지 누군지
떨리는 음성 들렸다
자글자글 끓는 말 속에서
어머니 목소리 들렸다
어머니 목소리 들렸다
석이는 하늘을 보았다
석이는 하늘을 보았다
--- p.133, 「제5장」 중에서


아아 그만둬야지
정말 그만둬야지 하면서도
어쩌랴 또 막장 어둠 속으로 들어가야지
칸데라 불빛 하나 앞세우고
앞이 깜깜한 갱도 속에 들어가야지
칸데라 불빛은 광부들의 또 다른 눈

그 눈 하나 믿고 칠흑 어둠 속에서
또다시 파야지
탄 더미 파면서
까맣게 타들어 가는 지 속창도 긁어 파야지

파내야지
이 시퍼런 삽날
이 날 선 곡괭이로
한 자 한 자 서러운 내 이름자 파내야지
소작쟁이 아비
소작쟁이 어미
날 때부터 서러운 내 이름자
그만 파내버려야지

잠시라도 탄 바닥에 쓰러져 누우면
아 여긴 무덤
검은 막장 끝도 없는 무덤
빈손으로 살다가
빈손으로 죽어 억울한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 않은
무덤
--- p.160~161, 「제8장」 중에서


길가에 풀섶 한 잎도
울며불며 가네
산꽃들도 떼 지어 붉게 붉게
붉은 주먹 흔들며 가네
가네
가고 마네
살아 있는 모든 것이 앞서서
죽어가는 모든 것이 뒷서서
죽음을 넘어
적들의 가슴팍 밀어내고
우리 한바탕 놀아보자고
이 악물고 가네
--- p.179~180, 「제9장」 중에서


피를 보아라
저기 거꾸러진 어깨마다
살아 흐르는 붉은 피 보아라
누가 죽음을 넘어 흐르는 저 피
핏줄기를 막는단 말인가
피를 보아라
저기 삭마른 가슴에서 내뿜는
허기진 피
검은 피 보아라
그것은
깃발이다 보아라
누가 감히
죽음을 넘어
펄럭이는 피 적신 깃발
--- p.184, 「제9장」 중에서


묻고 묻었다
모두가 묻었다
미군 총알이 박힌
미군 트럭에 짓깔려 뭉개진 발가락을 묻었다
열두 살 소년이 움켜쥔 피 묻은 주먹을
차마 감지 못한 까만 눈동자를
누가 벗어놓았는지 피 적신 버선 하나
미군 총알에 뻥뻥 구멍 뚫린
피범벅 저고리도 기어이 묻었다
그리고 묻었다 한 맺힌 이름
온몸이 분노뿐인 탄광노동자라는 이름을
그리고 묻었다 피맺힌 함성을
아니 아직도 살아 있는 적들을 위해
살아 번득이는 삽날을 곡괭이를
사람들은 묻고 또 묻었다
그리하여 다시 묻었다
묻고 묻어
더는 묻을 것이 없는
식민지 이 땅에서
삼십 년 사십 년 갈기갈기 찢어져 휘날리던
피 묻은 깃발을
우리네 살아 있는 가슴팍에
우리네 싸워야 할 주먹 속에
묻고 묻었다
모두가 묻었다

--- p.187~188, 「제9장」 중에서

출판사 리뷰

한국현대사 최초의 민중해방투쟁, ‘화순항쟁’을 그린 오봉옥 장편서사시 『붉은산 검은피』 33년 만에 개정 출간!
‘서사시의 전통을 되살려낸 다성의 소리들’
“자글자글 끓는 말 속에서 어머니 목소리 들렸다 어머니 목소리 들렸다”


1946년 일어난 ‘화순탄광사건’은 해방 직후 미군정이 우리나라에 들어와 처음으로 민중을 학살한 사건이다. ‘제주4.3항쟁’과 ‘여순항쟁’으로 이어지는 한국 현대사에서 ‘화순항쟁’은 해방 이후 첫 민중항쟁의 장을 열었다. 이러한 역사를 담은 『붉은산 검은피』는 1989년 출간 직후 시인이 구속되는 등 필화사건을 겪으며, 판매 금지되었다가 2022년 6월, 33년 만에 새로운 모습으로 독자들을 찾아왔다.
『붉은산 검은피』는 일제 식민지 시기에서 해방 이후 ‘화순항쟁’에 이르는 역사를 살아가는 석이 가족의 일대기와 노동자, 농민의 삶과 억울한 죽음, 그 넋을 기리고 있다. 시집은 역사적으로 새롭게 복원되고 평가받아야 할 민중항쟁으로서의 서사에서뿐 아니라, 해방 시기를 살아간 민중의 생생한 목소리를 뛰어난 발화 방식으로 형상화해내 문학사적으로도 중요한 의미를 담아냈다. 시집의 첫 출간과 판매금지, 그리고 2022년의 복간에 이르는 시집의 역사 자체는 우리의 현대사를 압축하고 있기도 하다.
우리 문학사에 면면히 흐르는 서사시적 전통을 되살려낸 시집 『붉은산 검은피』는 민중의 구체적인 생활상과 다성적인 목소리가 어떻게 생생하게 문학적으로 복원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중요한 질문에 답하고 있다. 시집을 간행한 임우기 문학평론가는 ‘간행사’에서 이 시집은 “서사무가(敍事巫歌)의 전통을 이어받은, 반제국주의 민족해방투쟁에서 산화한 탄광노동자들과 마을 주민들의 넋을 위무하는 진혼가”라고 평한다. 역사의 긴 목록 속에서 사태의 한가운데로 뛰어들어 발화하는 인물들은, 장단의 운율 속에서 우리와 공명한다.
시의 언어는 곡괭이를 든 광부처럼 수많은 삶의 조건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의 모습과 그들의 목소리를 캐낸다. 이러한 언어는 “주인공 석이를 비롯한 민중들과 역사 속 실존 인물들이 ‘따로-함께’하는 다성多聲의 목소리를 들려주는 이야기-소리꾼의 존재에서 그 민중적 진실성과 특별한 전위성”을 획득한다.(임우기 문학평론가) 그 현장은 유희의 ‘축제’로 변주되며 시인의 목소리를 빌어 한 번도 멈춘 적 없었던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해원과 축원의 시로 되살아나는 얼굴들
“넋이야 넋이로구나 이 넋이는 누 넋인고”


오봉옥 시인은 33년 만에 『붉은산 검은피』를 다시 펴내며 “‘화순항쟁’에서의 억울한 죽음을 규명하기 위해 한 사람의 삶의 궤적을 따라가는 식으로 구성을 다시 했고, 보다 더 단단한 짜임새를 위해 불필요한 삽화들은 걷어냈다. 그리고 약간의 오류가 있었던 부분들을 바로잡았다.”(‘시인의 말’)고 한다. 시집은 1989년 출간 직후 곧 판매 금지되었기에, 시인이 말한 개정은 단지 수정을 넘어 되찾은 목소리로 새로운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이다.
장대한 서사시는, 머슴이었던 우리의 아비가 황토현에서 동학농민군이 되어 싸우고 빨치산 아들의 죽음 앞에 서는 “천년만년 넋풀이” 「서시 1, 2, 3」으로 그 막을 연다. “넋이야 넋이로구나 이 넋이가 누 넋인고 […] 가자서라 가자서라 넋 맞으러 가자서라”(「서시3」, 42~43쪽) 하며 ‘씻김굿’을 시작한다.
발문에서 최원식 문학평론가는 서문의 “씻김굿이란 문자 그대로 망자(亡者)의 영혼을 씻어 이승의 한을 풀고 극락왕생하기를 비는 굿으로 굿에 참여한 죽은 자와 산 자 모두가 생기복덕을 입는 한바탕의 축제”라고 평한다. 오봉옥 시인은 이 ‘씻김굿’으로 1894년의 동학농민군 아비와 식민지 시대 만주에서 무장투쟁한 아비와 한국전쟁 전의 빨치산 아비, 1980년 광주에서 죽어간 오월 아비들로 이어지는 넋을 풀어낸다.
서사시의 주요 인물 석이는 “지도 커서 장군이 되고 싶었지 호랭이가 되어 너른 들판에 떠억하니 눕고”(「제1장」, 61쪽) 싶어하다가도 “참 재미나네 그래도 먹을 것이 생각”(「제1장」, 58쪽)나는 장난꾸러기 아이다. 석이에게는 아버지를 그리워하는 어머니와 누이, 기나긴 곡을 하다 “저문 들처럼 살다가 저문 들처럼” 돌아가신 할머니가 있다. 그리고 산에서 살아가는 빨치산 항일 독립유격대에 대한 “진짜배기 이야기 보따리를” 들려주는 독립운동가 사평아재가 있다.(「제2장」, 77쪽) 식민지 하에서 누이 미순은 굶주림과 괴롭힘을 견디다 못해 산으로 숨는다.
누이 미순이가 숨은 이 산은 “큰 산 아래 하루가 기울고/큰 산 아래 하루가 일어나는/산처녀 시상살이야/산이 무섭고/산이 든든하지요/살아 있는 산이 떠억 내려다보고 있으니/그 안에서 쥐 죽은 듯 살아야지요”(「제3장」, 95쪽) 하는 산이다. 민중의 삶과 항쟁의 역사에서 ‘산’은 중요한 무대였다. 숨을 곳 없는 그들을 최후에 감싸준 너른 품이자 삶의 의지를 복돋아주는 장소가 다름 아닌 ‘붉은산’이었다.
앓아누운 어머니는 더는 어머니로만 존재하지 않는다. 어머니는 “한밤중에 느닷없이 일어나선/죽은 할머니 흉내”를 내는 것이다. 석이가 “언제나 잘 사요?/물으면/‘그저그래야’ 하더니/‘나 이제 가야 쓰것다’/뒷짐 딱 지고 앙개앙개 걸어서/싸립문 열고 나갔지요/그때 새벽닭이 막 꼬꼬댁 울고/할머니가 된 엄니 저만큼 가더니/엄니 자신으로 돌아와서/‘아이고 춥다’/가느다란 몸 움츠”린다.(「제3장」, 106~108쪽) 어머니-민중은 현실을 견디며 다 말하지 못하고 떠난, 죽은 이의 목소리로 변모하는 것이다.
『붉은산 검은피』에서 이 어머니의 존재는 특기할 만하다. 어머니는 역사적·문학적 전형성에서 탈피해 고통의 구체적인 얼굴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어머니는 억울하게 죽임을 당한 이들의 삶을 함께 앓으며, 술에 취해 “곤드레만드레 속타령”을 하기도 하는 것이다.(「제3장」, 109쪽) 서사시의 전반부에서는 이처럼 식민지 시대를 살아가는 석이의 성장과 누이와 어머니의 얼굴을 압도적으로 그려내며 백미를 이루고 있다.


검은피로 흐르는, 붉은산에서 부르는 해방의 이름들
“말혀봐 말혀봐 도당체 해방이 뭐시였냐고?”


이제 서사시는 독립운동의 과정과 석이의 징용, 해방을 맞은 이들을 이야기한다. 독립운동을 하다 투옥된 사평아재가 고난을 당하고,(「제4장」) 석이는 일본으로 징용을 가서 전쟁과 해방을 맞는다.(「제5장」) 드디어 해방을 맞은 조선에서 사평아재가 출감하고,(「제6장」) 해방된 조선에 외국 군대가 등장한다.(「제7장」) 사평아재는 “아무래도 이곳에선/탄광촌 일이 가장 중요하지라우/아무래도 이 마을에선/죽은 아내의 혼이 떠도는 것 같어라우” 하며 탄광촌으로 떠난다.(「제6장」, 145쪽)
오랜 역사의 고난 끝에 해방을 맞았지만, “이봐요 이봐요/삼대째 오대째 이어온 소작쟁이님/당신 아내가 종이고/당신 아비가 머슴이고/당신이 소작쟁이인데/해방이 다 뭣이다요” 하고,(「제7장」, 151쪽) “말혀봐/말혀봐 도당체/해방이 뭐시였냐고?”(「제8장」, 167쪽) 하며, 과연 자신들에게 ‘해방은 무엇인가’ 묻는다. 민중에게 해방은 “소문”과 같은 것이었으며, 해방 공간에 민중의 자리는 없었다. 해방이 됐다는데, 사람들은 다시 떠난다. 탄광으로 들어간 석이와 사평아재. “파내야지/이 시퍼런 삽날/이 날 선 곡괭이로/한 자 한 자 서러운 내 이름자 파내야지/소작쟁이 아비/소작쟁이 어미/날 때부터 서러운 내 이름자”(「제8장」, 161쪽) 그들이 괭이로 파내려는 것은 탄더미에 묻힌 이름들이다. 마지막 「제9장」에 이르러 해방 일 년을 맞아 기념식장에 가던 석이와 사평아재를 비롯한 3천여 광부들은 자신들을 막아선 미군을 뚫고 갔다가 죽임을 당한다. 「맺음시」 ‘기억하라’에서 여전히 계속되는 침략의 역사와 전쟁에 대한 기억을 촉구한다.
장편 서사시 『붉은산 검은피』를 통해 독자들은 1894년 동학농민혁명에서부터 식민지 시대와 해방, 미군 점령과 분단에 이르는 현대사를 살아간 민중의 생생한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날 선 곡괭이질과도 같이 형상화된 시적 화자는 문학의 언어가 어떻게 역사적 언술과 다르게 현재의 독자들에게 닿을 수 있는가 하는 질문에 답하는 것이기도 한다.
현대시에서 그 맥이 단절된 다성의 화자를 복원해내며, 구체적인 목소리로 형상화한 탁월한 문학적 성과를 보여준 오봉옥 시인의 『붉은산 검은피』는, 그 역사적 의미를 더해 오늘의 독자들에게 깊은 감동을 전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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