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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말 · 5
제1부 존재하는 모든 것은 진동한다 … 13 유다 … 15 어제는 다 누가 먹었나요 … 16 슬픔의 탄생 … 18 도마 위 동태처럼 시간을 토막낼 수 있다면 … 19 죽음에게 시비를 걸다 … 20 냉동 파이 … 22 득수得水 … 24 별 … 26 흰 … 27 13월 … 29 마지막 말 … 30 진술 … 31 유서 한 장 … 36 소라게 … 38 목련나무 아래서 … 40 만기 … 41 제2부 모든 꽃은 성기다 … 45 흐드러진 것들은 … 47 오래 보면 슬프다 … 48 울음이 자라는 것을 보고 말았다 … 50 헛꽃 3 … 52 아버지의 칸나 … 54 감기 … 56 분꽃 … 58 레터의 연가 … 60 가시성 … 61 안개꽃 … 63 존재의 꽃 … 64 실어를 살다 … 66 시, 아주 오래된 이야기 … 68 암 … 70 눈사람의 시간 … 72 작약은 위험해 … 74 제3부 어떤 자정 … 77 탈출 … 79 동우소곡冬雨小曲 … 80 빈곤 포르노, 시선 … 82 야나르타쉬 … 84 기미 … 85 서울행 … 88 창에 들어선 것들에 대한 예의 … 90 사과를 깎다가 … 92 사과의 욕망 … 94 작은 점에 대한 애상 … 97 도플갱어 … 99 표면장력 … 101 그리움을 재는 자 … 103 재동에서 … 105 박꽃처럼 환해서 … 107 너를 지우는 일 … 109 가을의 변주 … 112 제4부 아카이브 … 117 빙상 … 120 큰 할메 … 121 큰 집 … 124 세상의 모든 질문은 … 126 슬픈 짐승 … 127 한 쌍의 와불처럼 … 129 마인 … 131 비망非望 … 133 시간의 물성 … 134 생일 … 135 약전略傳 … 136 나목에게 … 139 오래 내어두다 … 140 고유하다 … 141 고요에 대하여 5 … 143 춘설 … 144 시인의 산문 털실로 짠 심장 … 147 에필로그 … 16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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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 우는 소리
들어 보셨나요 시를 쓰는데 뱀 우는 소리가 궁금해졌어요 통보 없는 죽음처럼 이별을 놓고 당신이 사라졌을 때 낮은 무음으로 울었어요 꺼진 알람처럼 예정되어 있으나 울리지 못한 텅 빈 마디와 마디 서로 부벼 우는 꼬리처럼 밤이 오면 허물을 벗고 뿔방울뱀처럼 꼬리를 말고 울어요 밤내 모르는 울음으로 읽어보실래요? --- 「시인의 말」 중에서 아이가 힘겹게 숨을 몰고 있었다 담당의에게 빨리 와 달라 요청했다 끝내 그는 오지 않았고 아이는 숨의 끈을 놓치고 말았다 사망 선고를 하러 온 그에게 물었다 왜 오지 않았죠? 살릴 수 있는 아이를 살리기 위해서요 그 판단을 왜 당신이 하나요? 그날 이후로 나는 악마에게 영혼을 팔았다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히기 위해 유다에게 악을 심어 놓은 것처럼 세상에는 의지로 할 수 없는 일도 있었다 평생 남을 미워해 본 적 없는 나는 그에게도 똑같은 슬픔을 주십사 기도했다 아이가 놓친 봄을 십수 년 보내고서야 마음 한편을 지키고 있던 용서가 손을 내밀었다 날카로운 울음의 칼날에 내 안의 악마는 거꾸로 매달려 죽었다 --- 「유다」 중에서 세상이 노래지면 큰일인데 노랗다 개나리 울타리 밑 노오란 마당 그늘만 가득하던 나의 세계에 모래알 같은 볕알들 훌쩍, 내려와 반짝이고 있다 서풍 불자 몽우리들 휘—휘 떨며 아직 모르는 울음이 자라는 것을 보고는 훌쩍— --- 「울음이 자라는 것을 보고 말았다」 중에서 다섯 살 인형 머리 대신 문득, 생머리카락을 빗질하고 싶었다 동생을 낳아 달라며 일 년을 졸랐다 열여섯 갓 부임한 도덕 선생의 투명한 안경테 너머로 아지랑이가 피어올랐다 심장이 자주 울컥했다 스물여섯 불도저 같은 남자를 만나 出家대신 出嫁를 택했다 그의 삶에 나를 덧대며 조용히 세상을 배웠다 스물여덟 첫아이가 몸에 들자 세상에 단 하나뿐인 임신부처럼 배를 내밀고 다녔다 서른한 살 아버지를 잃었고 서른여섯 어머니마저 시간에 저당 잡혔다 마흔여섯 열여섯 살 딸을 가슴에 묻었다 그날 이후 계절은 단 한 번도 제시간에 오지 않았다 죽음을 살아낸 지 십 년 강물은 바다에 이르러 새로 태어난다는 걸 알았다 어제는 산책길에서 만난 고목이 환하게 꽃 피우는 것을 보고 칼칼 웃었다 --- 「약전略傳」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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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에 목소리를 입히는 시인이자 시낭송 문학가
허향숙 『울음이 자라는 것을 보고 말았다』(솔) 출간 시를 쓴다는 것은…내 안에 고인 어둠을 한 국자씩 퍼내어 햇살 아래 말리는 일 시인에게 딸과의 이별은 “급성 백혈병이라는 가혹한 뜨개바늘”(「잔혹 동화」 中)로 사정없이 풀어헤쳐진 시간이었다. 이별을 맞이한 뒤, 시인의 계절은 “봄여름가을겨울을 / 통째로 삼킨”(「13월」 中) 달에 멈춰 섰다. 그 지독한 부재의 시간은 시 속에서 애절한 이미지로 형상화된다. 표제시인 「울음이 자라는 것을 보고 말았다」에서 시인은 “그늘만 가득하던 / 나의 세계”와 예고 없이 내려앉은 슬픔의 존재를 "자라는 울음"으로 묘사하며, 피할 수 없는 상실의 무게를 담담하게 포착해낸다. 아픔 이후 비로소 형식적 감각주의까지 탈피할 수 있어 시집의 대미를 장식하는 산문 ‘털실로 짠 심장’에서 시인은 다시 시를 쓸 수밖에 없었던 운명적 이유를 밝힌다. “나 또한 한때는 시의 화려한 수사修辭에 매몰되어, 정작 말하고자 하는 진실을 놓친 적이 있었다” (「꽃이 꽃인 줄을 모르듯이」 中) 그는 더 이상 유행하는 시풍이나 현대적인 감각주의에 기대지 않는다. 시인에게 시는 "슬픔으로부터 자신을 구원해줄지도 모르는 간곡한 처방전"이자, 바닥을 기어본 자만이 이해할 수 있는 "뿌리의 안간힘"이다. 『울음이 자라는 것을 보고 말았다』는 상실의 긴 터널을 지나는 이들에게 "괜찮아, 딱 좋아" (「상실의 빛깔로 너를 안다」 中) 라고 스스로를 다독일 수 있는 따뜻하고 단단한 위로의 둥지가 되어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