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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_ 내 존재의 가치를 찾아서
어떤 수의 룸비니 부처님 참나무 이야기 플라타너스 바람과 새 걸레 숫돌 첨성대 아라연꽃 한 알의 밀 추기경의 손 선암사 해우소 진실 네모난 수박 흰이마기러기 낙산사 동종 하동 송림 장승 해설 _ 순명과 자유의 인생론 / 홍용희 |
鄭浩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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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실은 주머니가 달린 수의다. 이 세상에 주머니가 없는 옷은 없다. 그렇지만 수의에는 주머니가 없다. 망자의 옷이기에 무엇을 넣고 갈 주머니가 필요하지 않다. 공수래공수거(空手來空手去),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게 인생이기 때문이다.
--- p.11 「어떤 수의」 중에서 그러나 나의 주인 김씨는 달랐다. 수의에 주머니가 필요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았다. 그는 어느 날 ‘주머니 달린 수의를 만들어드립니다’라는 광고를 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전시장 도로 쪽 벽면에 현수막을 걸어놓거나 전단지를 만들어 길거리에서 직접 나누어주기도 하다가 나중에는 아예 신문 광고를 내기도 했다. --- p.12 「어떤 수의」 중에서 “그런데 어르신, 사랑은 아낌없이 주고 가는 게 아닌가요? 왜 가져가시려고 하시는지요?” “아, 그건, 내가 준 사랑이 아니라, 내가 받은 사랑을 가져가려는 거야. 사람은 태어날 때도 사랑에 의해서 태어나지만, 죽을 때도 가족들의 사랑을 받으면서 죽어. 그래서 그 사랑을 내가 가져가고 싶은 거야. 특히 나는 내 아내의 사랑을 가져가고 싶어. 그 사람이 나를 사랑해주지 않았다면 내 인생은 빈껍데기에 불과해. 아내의 사랑 때문에 그래도 내가 인간답게 살았어. 그런 귀한 사랑을 어찌 두고 갈 수 있겠나. 수의에 주머니라도 달아서 거기에 가득 넣어 가야지 않겠나.” --- p.21 「어떤 수의」 중에서 “힘을 내도 소용없어요. 하루하루 산산조각이 날 뿐이에요.” “허허……. 산산조각이 나면 산산조각을 얻은 것이고, 산산조각이 나면 산산조각으로 살아가면 되지 무슨 걱정이 그리 많은가.” --- p.46~47 「룸비니 부처님」 중에서 때때로 나는 부처님의 고행상 형상을 한 단순한 모조품이 아니라 고행 끝에 진짜 부처님이 된 느낌이 들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비록 순례 기념품이지만 룸비니에서 부처님의 형상으로 태어났다는 사실에 대해 깊이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 p.50 「룸비니 부처님」 중에서 다시 태어난다는 것은 ‘나무에게는 죽음이 없다’는 사실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어떠한 고통을 겪는다 할지라도 육체의 형태만 여러 가지로 달라질 뿐 나무라는 영혼은 죽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날 그는 벌목되는 어른 참나무의 말씀을 통해 더욱 큰 꿈을 갖게 되었다. --- p.56~57 「참나무 이야기」 중에서 ‘이제 참회해야 해. 나는 새들이 날아와 앉는 걸 늘 싫어했어. 새들은 내가 좋아서, 좀 편히 쉬고 싶어서 찾아온 건데 새똥이 내 몸에 떨어진다고 새들을 늘 쫓아버렸어. 여름에 매미가 내 몸에 붙어 시끄럽게 울어대는 것도 정말 싫어했어. 지금 생각해보니 다 내 잘못이야. 나는 목불이 될 꿈을 꾸면서 오만하기 짝이 없었어. 겸손함을 몰랐어. 큰스님께서는 늘 자기를 바로 보라고 말씀하셨는데, 나는 나를 들여다본 적이 없어. 목불이 되고자 했던 것도, 산사의 대웅전 대들보가 되고자 했던 것도 다 나를 바로 보지 못했기 때문에 그런 헛된 꿈을 꾼 거야. 내가 나를 속인 거야.’ --- p.66~67 「참나무 이야기」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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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내 존재의 가치와 의미를 찾아 떠나는 여행”
현실의 도화지 위에 그린 우화의 세계 석가모니가 태어난 고향이라는 전설이 전해지는 네팔 룸비니의 한 조각가에 의해 부처의 고행을 모티브로 한 조각상이 만들어진다. 이 작은 기념품 불상은 순례객들의 눈길을 끌지 못하다가 한국인 중년 남성에 의해 한국으로 향한다. 중년 남성은 조그만 부처 조각상을 책상에 올려놓고 심란할 때마다 말을 걸고 또 조각상의 말에 귀를 기울인다. 안타깝게도 남자의 삶은 평탄하지 않다. 이미 오랜 시간 고통을 겪었건만 또 다른 고통이 이어진다. 삶이 망가질 대로 망가져버린 남자의 절망 앞에서 부처 조각상이 말한다. “산산조각이 나면 산산조각을 얻은 것이고, 산산조각이 나면 산산조각으로 살아가면” 된다고. 도저히 어찌해볼 수 없을 만큼 나락으로 떨어진 상황에서도 삶은 무한한 가치를 지닌다는 가르침이다. 한낱 기념품에 불과했던 불상이 남자와 교유하고 그를 진심으로 염려하면서 진짜 ‘룸비니 부처님’으로 거듭났다. 누구나 한 번쯤은 미미한 사물에 자신의 행운을 걸어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그런 행위를 굳이 미신이라고 깎아내리지는 말자. 힘든 시기와 중요한 순간에 어떤 물건이나 동식물에 기대고픈 심정은 태곳적부터 이어진 인간의 본성 아니던가. 정호승 시인의 신작 우화소설집 『산산조각』에 등장하는 화자와 주인공은 동식물과 사물이다. 어느 것 하나 인간을 대변할 수 없을 것 같은 미물이지만, 그것들은 엄연히 이 세상에 실재하고, 심지어 우리의 일상 깊숙이 들어와 있다. 마음이 울적한 날 방구석의 구겨진 걸레를 보면서 나의 신세를 투영해본 적 있지 않은가. 정호승 시인은 우리가 쉽게 접할 수 있는 미미한 존재들이 현재의 그 모습에 이른 궤적을 추적함으로써 실재하는 현실 위에 우화의 세계를 짓는다. 그리고 그들이 지나왔을 법한 시간과 경험, 깨달음을 통해 인간의 삶이 지닌 속성의 깊은 곳을 들여다본다. 그다지 눈여겨보지 않았고 관심도 두지 않았던 존재들이 지나온 만만치 않은 여정은 분명 문학적 장치가 만들어낸 허구이지만, 일상의 사건과 화법으로 세심하게 직조한 덕분에 나의 이야기로 읽힌다. 지금 그 자리에 있는 것들이 삶을 대하는 태도와 자세에서 의연함을 배운다. “시와 소설을 함께 품은 이야기” 우화소설에 담은 깨달음의 서사 정호승 시인은 일찍이 『항아리』, 『연인』 등의 ‘어른이 읽는 동화’를 펴냈다. 시의 특징인 압축된 언어와 회화성에 가려진 서사를 소설적 형태로 구현하고자 한 실험과 노력의 결과물이었다. 그러나 동심에 바탕을 두는 ‘동화’는 삶의 의미를 보다 다양하게 확산하고 천착하는 데 일정한 한계를 지닐 수밖에 없었다. ‘소설’의 형식을 빌릴 수도 있겠지만, 오랜 세월 시를 업으로 삼아온 시인으로서는 선뜻 엄두가 나지 않는 작업이었다. 우화는 창작의 범위가 넓고 자유스럽다. 그 어떤 소재나 주제에도 구속되지 않는다. 인격화한 동식물이나 사물을 주인공으로 등장시켜 인간의 다양한 삶을 드러내는 문학적 장르로서 부족함이 없다. _「작가의 말」에서 시에 함축된 서사를 ‘이야기’로 옮기고자 한 시인의 고민과 노력은 이번에 펴낸 신작 우화소설집 『산산조각』으로 결실을 맺었다. 짐작하건대, 시인이 택한 ‘우화소설’은 시와 소설 사이의 어느 지점에서 건져 올린 형식이자 수단이 아닐까. 물론 ‘우화소설’이라는 장르가 전인미답의 영역은 아니다. 다만 『산산조각』에 부여한 ‘우화소설’이라는 장르는 시를 이야기로 형상화하고자 한 정호승 시인이 고심하여 찾아낸 연결고리이기에 그 의미가 새롭다. “인생을 완성하기 위해선 삶의 여정을 완주해야 해” 삶이 무엇이냐고 묻는 이에게 건네주어야 할 책 살아가는 일이란 원래 이렇게 힘든 것인가, 고통과 고난은 평생 우리를 따라다니는가, 라는 의문이 점점 깊어지는 때다. 힘든 시간을 위로하는 수많은 말들이 떠돌지만 그 어느 것도 쉽게 와닿지 않는다. 삶의 속성이란 매우 복잡하고 가변적이어서 정석이 없고 답도 없다. 그래도 우리가 그나마 위안으로 삼을 만한 것이 있다면 힘겨운 과정과 단계를 지나온 누군가의 의연한 삶일 것이다. 「숫돌」의 칼갈이 ‘숫돌’은 아버지에게서 아들에게 대물림되었다. 평생 쇠를 이겨내고 칼날을 날카롭게 벼려왔다는 자부심을 갖고 살아왔다. 하지만 어느 날 군데군데 패고 홀쭉해진 자신의 몸을 발견하고 더 이상 칼 갈기를 거부한다. 「걸레」의 ‘걸레’는 주인남자의 팬티였다가 해어져서 걸레로 전락했다. 청결하지 못한 남자의 앞뒤를 가릴 때도 불만이었지만, 걸레가 되고 난 뒤에는 더더욱 서러운 시간이 이어진다. 하지만 숫돌과 걸레는 긴 세월을 견딘 벼루와 행주의 전언에 마음을 고쳐먹는다. 그 전언이란 ‘스스로의 가치를 발견하고 주어진 소임을 다하는 것이 곧 생을 완성하는 길’이라는 것이다. 「참나무 이야기」의 참나무와 「선암사 해우소」의 바윗돌은 어떤가? 참나무는 대웅전의 대들보나 목불(木佛)이 되겠다는 꿈을 키웠다. 바윗돌은 차밭의 싱그러운 환경 속에서 안락하게 지냈다. 하지만 둘은 전혀 뜻하지 않은 처지에 처한다. 참나무는 장작이 되고, 바윗돌은 더러운 변소의 기둥을 받치는 신세가 된다. 꿈꾸던 미래와 안락함을 빼앗긴 둘은 낙담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그들은 묵묵히 견디는 가운데 삶의 더욱 높은 경지에 다다른다. 자신의 본분을 다함으로써 완전함에 이르고자 하는 이의 삶에 어찌 행복과 평화가 깃들지 않겠는가. 스스로의 운명을 선택할 수 없는 미물들에게서 무엇을 얻을 수 있냐고? 생각해보면, 그것들은 우리의 현실을 구성하는 선명한 실체들이다. 길가의 가로수와 건물의 주춧돌과 주방의 행주와 방을 훔치는 걸레와 때가 되면 하늘을 가로지르는 철새들은 제각각의 시간에 충실하며 이 세상을 떠받치고 있다. 『산산조각』의 주인공들은 어느 것 하나 세속의 성공과 영화를 누리지 못하지만, 그래도 기어이 삶을 살아내어 다음에 찾아올 것을 기다리겠다는 단단한 생의 의지를 내보인다. 수많은 과정을 거쳐 거기 그 모습으로 있는 의연한 존재 앞에서 어찌 비장함을 느끼지 않을 수 있겠는가. 세상의 많은 것들이 인간의 욕망을 자극하는 방향으로 작동하고 있다. 자극된 욕망은 만족을 멀리하게 만들고 그에 따라 행복 역시 점점 멀어진다. 『산산조각』의 작품들 속에 등장하는 화자들은 나의 존재 가치를 깨닫고 주어진 역할에 순명하는 자세가 어떻게 우리의 삶을 고양시키고 행복과 평화에 이르게 하는지 자신의 삶을 통해 말해준다. 『산산조각』이 ‘우화’라는 틀을 넘어 심오한 구도의 길로 우리를 인도하는 이유다. 삶이 무엇인지, 왜 고난을 견디고 살아야 하는지 이유를 알고 싶다면, 이 책을 펼치라. 당신이 이 세상에 올 때부터 본래 갖고 있었던 신성함을 일깨우는 시간을 맞이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