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검색을 사용해 보세요
검색창 이전화면 이전화면
최근 검색어
인기 검색어

소득공제
참선 잘하그래이
성철 스님 열반 20주기 추모 에세이
문태준 공저 김성동 등저
김영사 2013.11.26.
베스트
종교 top100 4주
가격
15,000
10 13,500
YES포인트?
750원 (5%)
5만원 이상 구매 시 2천원 추가 적립
결제혜택
카드/간편결제 혜택을 확인하세요

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  해외배송 가능?
  •  문화비소득공제 가능

이 분야의 이벤트

책소개

목차

1. 山僧, 겨레의 스승이 되시다
성철 큰스님의 각령으로부터_고은|산은 산, 물은 물_김형효|성철 스님과 삼천 배는 나에게 하나의 화두였다_한승원|성철 큰스님의 청빈과 수행의 삶을 바라보며_김희중|철 상인을 회고하다_이은윤|나는 부처가 될 수 없음에_이계진|나 같은 중한테 속지 마라_김택근|위대한 포기를 일깨워준 스승의 길_이호신|참선하다가 죽어버려라_고영섭|결곡한 의의와 절욕의 큰 수행자

2. 깨달음, 우리에게 가라고 하신 그 길은
성철 스님의 《선문정로 서언》_박성배|참선 잘하그래이_남지심|둥근 달, 내 마음의 등불_정종섭|‘산은 산, 물은 물’과 《벽암록》_박제천|밥값과 내 안의 부처_홍신선|시를 쓰려면 천 번을 써라!_정호승|하늘을 넘치는 죄업_고형렬|어느덧 화두처럼 다가온 성철 스님_박정진|영원히 잊지 못할 명장면_김호성

3. 그립습니다, 스님, 성철 큰스님
〈백일법문〉을 듣는 일이 일상사였다_무비|아름다운 얼굴_김성동|이 뭣고?_고준환|도적아 도적아_송준영|변두리에서 부치는 편지_강대철|세 번의 삼천 배, 한 번의 만남_박석|길 위의 사람들_최태만|나의 유학과 성철 스님_황순일

저자 소개 2

공저문태준

관심작가 알림신청
 

Moon, Tae-june,文泰俊

1970년 경북 김천에서 태어났으며, 고려대 국문과와 동국대 대학원 국문과를 졸업했다. 1994년 《문예중앙》 신인문학상에 시 『처서處暑』 외 9편이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 『수런거리는 뒤란』, 『맨발』, 『가재미』, 『그늘의 발달』, 『먼곳』, 『우리들의 마지막 얼굴』, 『내가 사모하는 일에 무슨 끝이 있나요』, 시 해설집으로 『포옹』, 『어느 가슴엔들 시가 꽃피지 않으랴 2』, 『우리 가슴에 꽃핀 세계의 명시 1』, 산문집으로 『느림보 마음』, 『바람이 불면 바람이 부는 나무가 되지요』가 있다. 소월시문학상, 노작문학상, 유심작품상, 미당문학상, 서정시학작품
1970년 경북 김천에서 태어났으며, 고려대 국문과와 동국대 대학원 국문과를 졸업했다. 1994년 《문예중앙》 신인문학상에 시 『처서處暑』 외 9편이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 『수런거리는 뒤란』, 『맨발』, 『가재미』, 『그늘의 발달』, 『먼곳』, 『우리들의 마지막 얼굴』, 『내가 사모하는 일에 무슨 끝이 있나요』, 시 해설집으로 『포옹』, 『어느 가슴엔들 시가 꽃피지 않으랴 2』, 『우리 가슴에 꽃핀 세계의 명시 1』, 산문집으로 『느림보 마음』, 『바람이 불면 바람이 부는 나무가 되지요』가 있다. 소월시문학상, 노작문학상, 유심작품상, 미당문학상, 서정시학작품상, 애지문학상, 목월문학상, 정지용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문태준의 다른 상품

등저김성동

관심작가 알림신청
 

KIM, SUNG-DONG,金聖東, 호:시은(市隱)

1947년 음력 11월 8일 충청남도 보령에서 태어났다. 내림줄기 있는 유가에서 어릴 때부터 우국지사 유학자 할아버지한테 한학 가르침을 받고 자랐다. 해방 바로 뒤 뒤죽박죽과 한국전쟁 소용돌이 속에 아버지와 큰삼촌은 우익한테 외삼촌은 좌익한테 처형당하고 ‘아버지’와 ‘집’을 빼앗긴 채 유·소년기를 줄곧 전쟁난리와 이데올로기가 남긴 깊은 흉터 속에서 헤맸다. 1954년 옥계국민학교 입학, 1958년 서대전국민학교로 전학, 1960년 삼육고등공민학교 입학, 1964년 서라벌고등학교 2학년 2학기로 편입했고 1965년 3학년 1학기에 자퇴서를 내고 도봉산 천축사로 출가·입산해서 지효
1947년 음력 11월 8일 충청남도 보령에서 태어났다. 내림줄기 있는 유가에서 어릴 때부터 우국지사 유학자 할아버지한테 한학 가르침을 받고 자랐다. 해방 바로 뒤 뒤죽박죽과 한국전쟁 소용돌이 속에 아버지와 큰삼촌은 우익한테 외삼촌은 좌익한테 처형당하고 ‘아버지’와 ‘집’을 빼앗긴 채 유·소년기를 줄곧 전쟁난리와 이데올로기가 남긴 깊은 흉터 속에서 헤맸다. 1954년 옥계국민학교 입학, 1958년 서대전국민학교로 전학, 1960년 삼육고등공민학교 입학, 1964년 서라벌고등학교 2학년 2학기로 편입했고 1965년 3학년 1학기에 자퇴서를 내고 도봉산 천축사로 출가·입산해서 지효대선사(智曉 大禪師) 상좌(上佐)가 됐다. 법명 정각(正覺). 산문(山門) 안에서는 산문 밖을, 산문 밖에서는 산문 안을 그리워했다.

1975년 [주간종교] 종교소설 현상 공모에 원고지 120장짜리 단편소설 「목탁조(木鐸鳥)」가 당선되어 활자화됐으나, 불교계를 악의적으로 비방하고 전체 승려를 모독했다는 조계종단 몰이해로 만들지도 않은 승적을 빼앗겼다.

1976년 늦가을 하산했다. 1978년 ‘한국문학 신인상’ 현상공모에 중편소설 「만다라」가 당선되었다. 이듬해 이를 장편으로 고쳐 펴내어 문단과 독서계에 커다란 메아리를 불러일으켰다. 이후 섬세하고 빈틈없이 느긋하게 독장치는 ‘조선 문체’로 한국 근·현대사 생채기와 구도(求道) 나그넷길에서 ‘있어야 할 까닭’을 더듬어 찾는 문제작들을 널리 알려왔다. 1998년 [시와 함께]에 고은 선생 추천으로 시 「중생」 외 10편을 발표하며 시작(詩作)활동도 하였다. 1983년 해방전후사를 밑그림으로 하는 장편소설 『풍적(風笛)』을 [문예중앙]에, 1960·1970년대 학생운동사를 다룬 장편소설 『그들의 벌판』을 [중앙일보]에 이어싣다가 좌익 움직임을 다룬 속뜻과 반미적 속뜻이 문제되어 각각 2회·53회 만에 중동무이되었다. 1983년 중편소설 「황야에서」로 ‘소설문학 작품상’을 받게 되었지만 문학작품을 상업적으로 써먹으려는 주관사 측 속셈에 맞서 수상을 뿌리쳤다.

소설집으로 『피안의 새』(1981), 『오막살이 집 한 채』(1982), 『붉은 단추』(1987), 『그리운 등불 하나』(1989), 『민들레꽃반지』(2019), 『눈물의 골짜기』(2020) 등을, 장편소설로 『만다라』(1979), 『집』(1989), 『길』(1991), 『꿈』(2001), 『국수(國手)』(2018) 등을, 우의(寓意)소설로 『김성동의 죽고 싶지 않았던 빼빼』(1981), 『염소』(2002) 등을, 산문집으로 『부치지 않은 편지』(1981), 『그리고 삶은 떠나가는 것』(1987), 『미륵의 세상 꿈의 나라』(1990), 『김성동 생명에세이』(1992·원제 『생명기행』), 『미륵의 세상, 꿈의 나라』 상권(1993), 『김성동 천자문』(2004·2022), 『현대사 아리랑-꽃다발도 무덤도 없는 혁명가들』(2010), 『한국 정치 아리랑』(2011), 『염불처럼 서러워서』(2014) 등을 냈다.

신동엽창작기금(1985), 행원문화상(1998), 현대불교문학상(2002)을 받았고, 단편 「민들레꽃반지」로 제1회 리태준문학상(2016), 소설집 『민들레꽃반지』로 요산김정한문학상(2019)을 받았다.

김해 신어산 백룡암, 영동 천태산 영국사, 설악산 백담사, 너브내 나루터 닷곱방, 남양주 대궐터 봉영사, 광릉수목원 곁 봉선사, 광릉내 곁 우사암(牛舍庵), 양평 고읍내(古邑內) 까대기, 오대산 진부 토굴, 양평 청운면 우벚고개 비사란야(非寺蘭若), 용문산자락 덕촌리(德村里). 25년 동안 열한 군데를 풍타낭타(風打浪打)하다가 2021년 ‘조선의 별’이었던 김삼룡 선생 옛살라비인 충주에 바랑을 풀며 충주 얼안 해방동무들과 ‘역사기행’을 꿈꾸다가 2022년 9월 25일 우리 곁을 떠났다.

김성동의 다른 상품

저자 소개
김형효_서강대학교 교수, 한국정신문화연구원 대학원장.
한승원_소설가. 소설 《아제아제 바라아제》의 작가.
김희중_천주교 대주교. 광주대교구장.
이은윤_전 〈중앙일보〉 논설위원, 전 〈금강불교신문〉 사장.
이계진_방송인, 전 국회의원.
김택근_언론인, 시인.
이호신_한국화가.
고영섭_종교학자.
문태준_시인, 불교방송 프로듀서.
박성배_뉴욕주립대학교 불교학 교수.
남지심_소설가. 소설 《우담바라》의 작가.
정종섭_헌법학자. 전 서울대학교 법학대학장.
박제천_시인. 경기대학교 문학창작과 교수.
홍신선_시인. 전 동국대학교 문예창작과 교수.
정호승_시인.
고형렬_시인.
박정진_문학평론가. 문화인류학자.
김호성_동국대학교 불교학부 교수.
무비_스님. 동국대학교 역경원장.
김성동_소설가. 소설 《만다라》의 작가.
고준환_법학박사. 경기대학교 명예교수.
송준영_시인.
강대철_조각가.
박석_상명대학교 중국어문학과 교수.
최태만_미술평론가. 국민대학교 예술대학 교수.
황순일_불교학자.

품목정보

발행일
2013년 11월 26일
쪽수, 무게, 크기
392쪽 | 590g | 145*220*30mm
ISBN13
9788934965619

책 속으로

삼천 번의 절은 꼬박 하루 동안 해야 하는데, 그 절을 하는 동안에 바보가 아닌 한에는 성철 스님을 만나뵙고 풀어야겠다고 마음먹었던 고가 모두 스스로 풀릴 터이다. 그게 풀렸다면 스님을 뵈어야 하는 이유가 소멸되는 것 아닌가.---한승원 〈성철 스님과 삼천 배는 나에게 하나의 화두였다〉

성철 큰스님은 한평생 바루 하나와 옷 한 벌로만 자신의 몸을 건사하셨다. 그리고 나이 일흔이 될 때까지도 손수 양말을 기워 신었으며, 한겨울이라도 땔감의 양을 결코 지나치게 하는 일이 없었다고 한다. 화장지 한 장도 네 조각으로 나누어 사용하고, 승복이 누더기가 될 때까지 평생 옷 한 벌로 지내신 것은 결코 청빈에 관한 가르침만은 아닐 것이다. 구도자로서 물질에 대한 절제의 태도와 외향적인 모습에 마음을 두지 말고 내적인 수련에 더욱 정진하라는 가르침이 아닐까 생각한다.---김희중 〈성철 큰스님의 청빈과 수행의 삶을 바라보며〉

우리 현대사에서도 박정희 쿠데타 이후 신군부의 노태우정권까지 삼십일 년 동안은 무신정권이라 할 만하다. 지눌선사는 정혜결사를, 성철 스님은 봉암사결사를 주도했다. 정혜결사와 봉암사결사는 수사만 다를 뿐 내용은 똑같다. “부처님 법대로 살자.”두 스님은 변방에 머물며 서울에 나타나지 않았다. 성철 스님 또한 불법으로 나태한 한국불교를 찔렀다. 수행으로 자신을 일으켰다. 지눌의 ‘땅에서 쓰러진 자 땅을 짚고 일어서라’는 성철의 외침이기도 했다. 그것은 자신을 향한 채찍이었다. 성철 스님은 산중에 물러나 있으면서 세상에 가장 깊숙이 나아가고 있었다. 불교의 면목은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물러서는 것이었으니 제자리를 지켜 현실과 불교계를 깨웠던 것이다.---김택근 〈나 같은 중한테 속지 마라〉

밤이 깊어가자 늦가을 산속은 갑자기 겨울이 찾아온 듯 무척 추웠습니다.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게 하나둘 불길 곁으로 모여들었습니다. 저도 너무나 추워서 점점 불길 곁으로 가까이 다가갔습니다. 그러다가 문득 깨닫게 되었습니다. ‘아! 지금 이 불길이 무엇인가. 바로 스님의 법체를 태우는 불길이 아닌가. 스님께서는 자신의 몸을 태워서 나를 추위에 떨지 않게 해주시는구나’ 하고 깨닫게 되었습니다.---정호승 〈시를 쓰려면 천 번을 써라!〉

성철 스님은 그런 보조지눌 국사를 엄청 비난했다. 그 유명한 돈점 논쟁은 그중에 일부분에 불과했다. 그 논쟁은 육백 년 만에 일어난 제대로 된 교리논쟁이기도 했다. 한두 번도 아니고 법상에 올라갈 때마다 반복해서 집요하게 이야기했다. 심지어 보조 스님 때문에 “조계종 법맥마저 유야무야되었다”는 극언도 서슴치 않았던 것이다. 그 바람에 그날은 법회 분위기까지 싸늘해졌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역으로 성철 스님이 혹여 보조 스님의 화신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던 적도 있었다. 보조의 오류가 아니라 당신의 오류였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다면 보조의 오류를 바로 잡으려고 저렇게까지 집요하게 해야 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보조 스님의 후신이 아니라면 어떻게 저리도 자신있게 또 모질게 비판할 수 있었겠는가?

---무비 〈백일법문을 듣는 일이 일상사였다〉

출판사 리뷰

우리 곁에 오셨던 큰스승, 성철 큰스님의 살아 있는 숭고한 정신을 기리며!

한 위대한 인물이 서거하여도 그 자취는 뭇사람에게 오랜 시간 영향을 미친다. 우리나라의 많은 지도자들 또한 그러하다. 그중에서도 성철 스님은 한국 불교인 중 가장 강력한 지도력으로 칭송 받고 사후 20년이 지난 지금도 가장 존숭을 받은 스승이다.
1967년 '자기를 바로 봅시다'로 대중을 향한 가르침을 시작한 성철 스님은 이미 깨침을 이룬 산승이었다. 암자를 막고 10년간의 동구불출과 8년간의 장좌불와로 수행의 최고경지를 이룬 스님은 뭇사람의 추앙을 받아 조계종 종정으로 추대되었다. 그러나 스님은 한 발자국도 산문을 나서지 않고 짧은 법어를 내려 세인에게 엄청난 충격을 주니, 곧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였다. 삼천 배가 아니면 만남을 허락하지 아니하고, 검소 투철하지 아니한 수행은 가차 없이 내리치는 가르침은 이후 한국불교의 큰 산맥을 이루게 되었다.
그 신선한 충격은 30년이 지나도록 세인의 가슴에 깊이 자리하고 있다. 이 책 《참선 잘하그래이》는 그 시대의 숭고한 느낌을 스님이 열반한 지 20주기를 맞는 오늘 되살려 보여주기 위해 마음을 일군 이들의 에세이 모음집이다. 문단, 예술계, 학계, 종교계, 언론계 등 사계의 저명인사 스물일곱 명이 내뿜는 큰스님에 대한 추모는 마치 너른 평야의 들꽃처럼 다양하다. 그 글을 읽으며 만년도 중년도 청년도 사뭇 뜨거움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성철 스님의 선사상을 선양하기 위해 설립된 백련불교문화재단이 오랜 기간 이 기획을 추진했으며, 그동안 성철스님 관련 책자를 꾸준히 발간해온 김영사가 공을 기울여 마무리를 지었다.

그 누가 잠깐의 꿈속 세상에 꿈을 꾸며 살다가 죽어가랴.
만고의 진리를 향해 초연히 나 홀로 걸어가노라.
-성철 스님의 출가시 중에서


이 책의 필자들은 사계의 저명인사이다. 크게 분류하여 본다면 큰스님을 직접 뵙고 가르침을 받은 사람들과, 뵙지는 못하고 출판이나 언론, 방송을 통해 간접적인 가르침을 받아 흠모했던 사람들로 나눌 수 있다.
한 시대를 대표하는 고승을 삼천 배를 다 못해 뵙지 못했음을 안타까워하고, 고인을 찾아 가르침을 청함에 소홀히 한 스스로에 대한 부끄러움을 느끼는 이야기들이 전편에 깔려 있다. 감동하고, 그리워하고, 부끄러워하고, 감사해하며 쓰인 이 글들은 깨침의 세계를 향한 진지한 노력은 모든 이에게 얼마나 가치가 있는 것인지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불교학자 박성배 교수는 성철 스님 문하에서 3년을 수행하고 산문을 나선다. 이룬 것이 없는 듯 허탈한 마음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미국으로 건너가 천신만고 끝에 뉴욕 스토니부룩대학교에서 교수가 되어서는 큰스님의 가르침이 담긴 책자를 앞에 놓고 제자들과 함께 그 가르침을 연구하고 분석하고 정리한다. 그 세월이 30년에 이르렀다.
소설가 남지심 선생은 삼천 배를 하고도 큰스님을 먼발치에서밖에 뵐 수 없었던 회한을 간직하고 있었다. 그러나 열반의 소식을 듣고는 다비장에 가서 합장으로 스님을 보내면서 그리움 속에 그 섭섭함도 불태운다.
김희중 대주교는 종교의 지도자가 어떤 길을 가야 하는가를 성철 스님은 몸으로 행동으로 철저한 가르침을 주신 분임을 강조하고, 화가 이호신 선생은 예술가의 생로에서 큰스님이 스스로에게 미친 영향은 매우 크고 깊은 인연사를 이루었음에 감동하는 등, 이 책에 실린 스물여섯 편의 인연이야기를 읽다보면 성철 스님께서 다시 우리 곁으로 살아 돌아오신 느낌이다. 인연의 깊고 얕음을 떠나 생존 당시 성철 스님께서 우리에게 어떤 의미였는지 또 남은 사람들의 가슴에 어떤 화두로 남으셨는지 다시금 생각하게 된다.

성철 스님은 속인으로 이 땅에 태어나서 부처의 길을 택하였다. 오직 진리를 위해 모든 것을 버린 용기, 그 결의를 평생토록 지킨 철저한 수행, 무소유와 절약의 정신은 바로 ‘우리시대 부처’의 모습이었다. “자기를 바로 보라” “남을 위해 기도하라” “일체 중생의 행복을 위해 기도하라”고 이르시던 그 참되고 소박한 가르침은 오늘도 가야산의 메아리가 되어 영원에서 영원으로 울리고 있다.

리뷰/한줄평0

리뷰

첫번째 리뷰어가 되어주세요.

한줄평

첫번째 한줄평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