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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대 중국의 경기변동과 시장
전제국가의 협치와 경제성장 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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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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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책머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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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제1부 화폐 유통과 농민소득의 변화〉

|제1장| 명말청초부터 청대 후기까지 화폐 유통량
명말 은 유입과 동전 주조량 추계|청대 전중기 은 유입 추계|청대 전중기 동전 주조량 추계
|제2장| 경기변동과 농민소득의 변화
근세 강남 농민의 소비구조 변화|근세 강남 농민의 수입구조 변화

〈제2부 청대 시장구조와 경기변동〉

|제1장| 전국시장과 지역경제
전국시장의 형성과 강남지역|전국시장망과 지역경제의 형성|지역시장의 자립과 지역경제
|제2장| 건륭연간의 화폐와 물가
건륭 후기 은전비가와 물가|건가성세와 경기변동
|제3장| 도광불황의 구조
명조의 유산: 거대한 지역차|18세기 강남지역: 스미스적 성장|18세기 장강 중상류지역: 맬서스적 함정|19세기 초 강남지역: 맬서스적 함정

〈제3부 청대 시장구조와 프로토공업화〉

|제1장| 동아시아 속의 청대 농촌시장
16-18세기 중국의 시장구조|거울로서 에도시대 시장구조|서로 다른 농촌 수공업|소결: 서로 다른 경제성장
|제2장| 강남 농촌시장의 세계
들어가며|강남지역 시진의 공간구성|강남시진의 인구와 주민구성|강남시진의 화폐와 도량형 관행|농민경제: 경제의 여러 층위들
|제3장| 농촌 수공업 선대제 생산문제

|결론|

참고문헌·찾아보기
총서 ‘知의회랑’을 기획하며

저자 소개1

성균관대학교 사학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하고, 일본 도쿄대학에서 청대 중국의 사회경제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중국 톈진의 난카이대학과 미국 일리노이대학에서 수학했으며, 베이징 소재 중국사회과학원 사회사연구실 방문학자를 지냈다. 현재 부산대학교 역사교육과에서 중국사를 가르치고 있다. 옮긴 책으로 『중국은 어떻게 서양을 읽어왔는가』, 『당음비사』(공역) 등이 있으며, 『전쟁과 교류의 역사: 타이완과 중국 동남부』, 『청사고 기초 연구』, 『동아시아의 근대, 장기지속으로 읽는다』 등의 책을 함께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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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2년 10월 30일
판형
양장 ?
쪽수, 무게, 크기
464쪽 | 860g | 152*225*29mm
ISBN13
9791155505564

책 속으로

국가는 과연 시장의 어디까지 개입하고 어디까지 방임할 것인가. 이는 문제를 바라보는 인식의 차이일 뿐, 어떤 지역과 국가에 구속된 영속적 속성이라 단정 지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리고 그 개입의 정도는 중국사에서 각 시대마다 달랐다는 것이 이 책의 주장 가운데 하나이기도 하다. 이 책은 현대와 다른 경제질서들이 과연 어떤 사회질서의 산물이었으며, 그것이 이 책이 주목하려는 청대의 경제발전에 과연 어떤 영향을 주었는가를 나름대로 소상히 밝혀보려 노력한 결과이다.
---「책머리에」중에서

이처럼 중국 화폐의 세계는 다양한 플레이어가 참여하는 세계로서, 각각의 플레이어들은 독자적 가치를 갖는 각각의 주인공들이었다. 그들이 만들어낸 화폐 또한 각각의 퀄리티를 갖는 각각의 주인공들이었다. 각각의 플레이어들이 독자적이었기 때문에 다른 플레이어와의 연결은 심히 미약해서 서로간의 환산은 잘 이루어지지 않았다. 비유하건대 중국의 화폐세계는 오늘날의 시점으로 보면 ‘주인공들이 너무 많은 무협지’와도 같은 세계였다.
---「서론」중에서

청조의 동전 발행은 어떤 의미에서는 오늘날로 보자면 일종의 ‘양적 완화(quantitative easing)’에 해당되었고, 이는 명대 중기부터 지속된 만성적인 동전부족이라는 사태에 대한 청조의 기민하고 신속한 대처였다. 1684년 천계령이 해제됨으로써 다시 은 유입이 재개되었지만, 동전이 부족한 상황 속에서는 이러한 은 유입이 가져온 막대한 유효수요를 내수로 전환할 수 있는 매개가 부족할 수밖에 없었는데, 이것을 해결한 것이 청조의 동전 발행이었다. 즉 순치연간 이후 시장에 안정적인 ‘유동성’이 공급됨으로써 상품생산이 활발해질 수 있었다. 이렇게 발행된 동전과 더불어 민간에서 발행한 사주전의 유통으로 해외무역을 통해서 얻어진 재화가 비로소 지역시장에 투하되어 농촌지역까지 상품경제가 활발해지는 계기가 되었다. 이른바 ‘건가성세(乾嘉盛世)’의 경제적 기원은 은 유입이라기보다 주조차익을 노린 청조의 적극적인 동전 주조정책에 있었다. 당시 전체적인 GDP가 증대하기는 했지만 매우 완만했기에, 인플레이션의 발생은 어디까지나 화폐 유통량의 증가 때문이었다. 반면 인플레이션은 소득의 양극화를 가져와 자산을 소유한 계층은 많은 이익을 볼 수 있었지만, 그렇지 못한 계층은 커다란 타격을 받게 되었다. 즉 대대적인 ‘동전발행(quantitative easing)’이 가져온 인플레이션 그리고 이 인플레이션으로 인한 양극화의 심화. 이것이 바로 ‘건가성세’의 경제사적 의미였다.
---「제1부 제1장 명말청초부터 청대 후기까지 화폐 유통량」중에서

청대 통화체제의 연구자들은 청조의 화폐정책과 통화시스템에 대해서 낮은 평가를 내리는 경우가 많다. 또한 그 때문에 아편무역을 통한 은 유출을 제대로 막지 못했다고 서술하는 경우를 자주 발견할 수 있다. 그러나 통화의 발행주체를 국가로 한정하고 통화의 규제를 독점하고 있는 현대적 시점에서 볼 때, 은량의 규격에 대한 규제를 방임하고 심지어 자신들이 발행한 제전의 통일도 이루어내지 못한 청조의 모습은 일견 이해하기 힘들지도 모른다. 그러나 은 유출이 있기 전까지 부족한 동전을 메꾸기 위해 동전을 대량으로 주조해 시장을 안정시키고자 했던 청조의 노력이 오히려 훗날의 화를 불러 일으켰다고 하더라도, 그 시기까지의 노력은 당대의 시점에서 평가해주는 것이 좀 더 온당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제2부 제2장 건륭연간의 화폐와 물가」중에서

다시 말하자면, 18세기 중국의 경제성장은 대량 이주를 허용함으로써 상대적으로 과잉된 인구를 인구집중 지역 외부로 배출하면서 팽창하는 방식이었다. 18세기에도 이전 시기와 마찬가지로 확대된 해외무역을 통해 대량의 은이 계속 유입되었다. 은의 풍요로운 유입은 호경기를 화폐적으로 뒷받침했고, 그 결과로 확대된 고용기회는 인구증가를 가능하게 했다. 그리고 호경기에 따르는 기호품의 다양화, 증가된 욕망은 자원의 보고인 ‘내부 변경’을 활성화시켜 많은 인구를 흡수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내부 변경의 개발이 어느 정도 완료되자 위기는 다시 변경에서부터 시작되어 중심인 강남지역으로 몰려왔고, 청조로서도 이를 만회할 방법을 찾지 못한 채, 1841년 아편전쟁을 맞이하고 말았다. 요컨대 18세기의 경제성장이 19세기에 이르러 위기의 원인이 되어버린 것이다. 19세기 들어 맬서스적 함정에 빠져버린 중국은 결국 스미스적 성장에서 이탈했으며, 18세기도 아닌 19세기에 도리어 ‘근대적 경제성장’과 멀어지게 되었다고 결론지을 수 있을 것이다.
---「제2부 제3장 도광불황의 구조」중에서

16-18세기 근세 동아시아 각국에서는 상업(=시장) 확대에 의한 성장, 즉 스미스적 성장이 공통적으로 출현했다. 그러나 시장이라는 성장 측면에서는 공통적일지 모르지만, 그 발전방향은 중국과 조선의 한편과 일본의 또 한편이 달랐다. 중국과 조선의 경제성장은 ① 낮은 시장통합도, ② 통합되지 않은 화폐와 도량형 사용관행, ③ 개별 농가에 의한 분산적 농촌 수공업을 그 특징으로 했다. 반면 에도시대 일본의 경제성장은 ① 조카마치와 자이고마치의 성장, ③ 에도막부에 의한 화폐주조권 장악과 도량형 통일, ③ 조카마치와 자이고마치 등으로의 수공업 집중 등의 특징을 보이고 있다. 설령 스미스적 성장이라 할지라도 구조면에서 확실히 대조적인 성장방향이었다. 19세기 중엽 이후, 동아시아 3국이 세계시장에 통합되면서도 이후 서로 다른 발전양상을 보여주었던 것은 개항 이전 출발선 자체가 이미 서로 달랐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제3부 제1장 동아시아 속의 청대 농촌시장」중에서

강력한 중앙권력을 유지했던 중국에서는 지방관이 지역경제의 대외수지나 화폐동향에 그리 관심을 갖지 않았다. 청조 조정은 건륭통보를 대량으로 발행함으로써 소액결제 화폐를 공급했지만, 화폐규격까지 통일시킬 의지는 갖고 있지 않았다. 따라서 규격이 통일되지 않은 동전은 특정 지역에서 정체되기 쉬웠고, 다른 지역과의 유통도 어려웠다. 반복하건대 청조는 지역 내 유동성 유지에도 개입하지 않고, 지역 간 결제를 위한 편의도 제공하지도 않았다. 앞 장에서 비유로써 설명했듯이, 청대 도광연간 통화시장은 물고기가 마음껏 뛰놀 수 있는 하나의 커다란 호수라기보다 작은 격벽들이 세밀하게 쳐져 있는 작은 논[水田] 같은 구조였다. 은을 매개로 한 세계경제에 중국과 유럽이 모두 편입되었는데도, 중국사회의 인플레이션 폭이 적었다는 점은 이로써 충분히 설명되지 않을까 생각된다. 또 본위화폐제도가 존재하지 않았던 탓에 여러 화폐들이 서로 복잡하게 사용되었고, 상호 환산, 즉 태환도 용이하지 않았기 때문에 은과 동전을 소유한 각 계층 간 빈부차도 확대되었다.

---「제3부 제3장 농촌 수공업 선대제 생산문제」중에서

출판사 리뷰

이 책의 문제의식과 시야
시장과 유통, 협치와 다양한 중심


기존의 청대 경제사 연구는 주로 지역사나 농업사 중심으로, 고립된 지역의 생산관계에 초점을 맞춘 것들이었다. 화폐와 시장 및 사회구조 그리고 국가적 통합 부분을 염두에 둔 접근은 전무하다시피 했다. 하지만 페르낭 브로델도 주저 『물질문명과 자본주의』에서 16~18세기 세계사를 서술하면서 ‘시장구조’에 주목하고, 이를 ‘교환의 세계’가 성립하는 데 중요한 지표로 간주하고 있듯이, 중국의 해당 시대 역시 시장과 유통의 시각에서 거시적·종합적으로 고찰해야 할 필요성은 충분하다. 저자는 이러한 관점에서 접근할 때, 생산력이 지속적·단계적으로 상승한다는 직선적 역사관의 맹점을 대신해 각 시기마다의 경제사적 특징이 훨씬 더 선명하게 제시될 수 있다고 본다.

특히 이 책에서 저자가 주목하는, 청대 경제사회의 가장 큰 특징은 중앙의 전제국가와 (민간의) 자율적 사회 사이에서 모색된 협치(governance), 즉 양자 간 균형[中]이다. ‘현실과 당위’ 사이에서 교묘한 균형을 찾아나가야 했던 청조 경제정책의 한 입장이 여기서 비롯된다. 청대 중국사회는 징세·치안·재판·국방 등의 중요 사안에선 황제와 고위관료들이 그 권한을 위력적으로 행사한 것이 맞지만, 그 밖의 경제와 관련된 여러 가지 업무들에선 사실상 책임주체가 모호했고 권한이 분산되어 있었다.

예컨대 이 책에서 주목하고 있는 화폐 발행 차원에서도 지방관이 동원할 수 있는 자원은 한정적이었기 때문에, 국가가 정해놓은 화폐를 일방적으로 강요하기란 불가능했다. 자연스럽게 민간에서 만든 화폐(사주전)가 어느 정도 용인되었고, 시장에서는 청조가 발행한 화폐, 이전 왕조가 발행한 화폐, 민간에서 만든 사주전 등 다양한 화폐가 병존하게 된다. 근대적 시선으론 이런 상황에서 경제가 안정적/정상적으로 굴러갔을까도 싶겠지만, 역사가 증거하듯이 세상은 작동했다. 더구나 화폐와 도량형을 둘러싼 상업상의 분규에서도 청조는 근본적 해결책을 제시하기보다 이러한 문제가 심각한 사회질서의 동요로 이어지지만 않게 하되, 나머지는 민간 자율에 맡기는 방식을 취했다. 그렇게 청대 경제사회에서는 시장이 세분화되어갈수록 민간 영역은 더 커졌고, 반대로 중앙권력의 개입은 점점 더 축소되었다.

화폐 유통과 경기변동
그리고 농민소득과의 상관관계


이 책에서 가장 먼저 독자의 시선을 사로잡는 대목은 충실한 사료적 접근을 통해 화폐 유통량/공급량의 변화와 경기변동(Business Cycle, 호황과 불황)의 상관관계를 가시화하고, 그 의미를 해독해내는 지점이다. 사전에 이를 시대별로 개요화해본다면, 청대 중국은 ① 불황기(1640년대~1680년대 후반: 순치·강희연간), ② 회복기(1680년대 후반~18세기 중엽: 강희·옹정·건륭연간), ③ 호황기(18세기 후반: 건륭·가경연간), ④ 침체기(19세기 초기: 가경연간)를 거쳐, 다시 ⑤ 19세기 초 도광연간의 불황으로 접어든다. 저자는 제1부 제1장에서 명말청초 이후 은 유입량과 동전 주조액에 대해 검토하면서 청대 경기변동의 근본 요인을 화폐 유통량의 변화에서 짚어낸다. 이를 보면, 국제무역을 통해 유입되는 은의 양이나 동전의 주조/유통량 및 유통속도의 변화가 각 시기의 경제상황과 일정한 경향성을 띠며 대응하는 모습을 읽어낼 수 있다.

화폐 유통 및 경기변동과 각 계층별 소득의 변화를 읽어낸 결과도 자연스럽게 이와 연동된다. 저자는 제1부 제2장에서 청대 강남지역 농민들의 소득수준 변화에 대해 살핀다(당시 경제적으로 선진지역이었던 강남 농민들의 소득수준에 관한 연구는 청대 농업경제 발전의 주요 지표로서 많은 주목을 받아왔다). 앞서 제1장에서 정리되었듯 청대에는 화폐량이 크게 늘어났고, 이는 당연히 농가경영에도 영향을 미쳤다. 전체적으로 강남지역에서는 명말부터 임금이 상승하기 시작했으며, 청초에 이미 이를 당연시하는 풍조가 정착되었다. 이번에도 저자는 청대의 이러한 수익 상승을 통화량 확대로부터 해석해낸다. 통화량 상승이 농촌시장의 확대를 가져오고, 이러한 상황에서 청대 농민들이 농촌 수공업을 통해 수익을 다각화해가는 모습을 설명하는 것이다. 그러나 다시 19세기 초에 통화량이 축소되면서 이러한 기본적인 수익구조에 커다란 변화가 생겨나기 시작했고, 그 결과 농민들의 수익 역시 축소될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제1부에선 통화량, 물가, 소득/소비수준 등 경기변동의 지표들이 퍼즐 맞춰지듯 재정리되면서 그 상호관계의 메커니즘이 드러난다.

청대의 시장구조
경기변동과 시장의 상관관계


제2부는 청대의 시장구조를 다룬다. 제2부 제1장에서는 명대 중기 이래로 진행된 강남지역의 눈부신 성장과 그 이후를 살핀다. 강남은 국내적으로 가장 중요한 수공업품인 면직물과 견직물에 대해 전국시장의 중심부로서 여타 지역들을 주변부로 거느리고 있었다. 즉 여기서 발생하는 경제적 이익을 독점함으로써 중국에서 가장 부유한 지역이 될 수 있었다. 그러나 이후 주변 지역들의 자립과 해외무역의 중심 이동은 곧바로 이 지역의 독점적 지위 상실, 나아가 그 결과인 경기불황으로 이어진다. 저자는 다양한 사료적 접근을 통해, 청대 중후기 중국시장의 발전이 갖는 특징을 지역시장의 자립화와 강남지역의 독점적 지위 상실로 분석해낸다. 즉 명말청초의 강남 중심형 모델은 청 중기 이후가 되면서 지역시장 자립형 모델로 점차 변화해간다.

제2부 제2장에서는 [경기 상승/호황기(상기 ②~③ 지점)를 고찰하는 시도로서] 건륭연간의 물가와 화폐사용에 대해서 살펴본다. 이때는 쌀가격의 꾸준한 상승에도 불구하고 굶주리는 사람이 없었고, 그것이 정상 가격으로 여겨지는―물가변동의 폭만큼 실질소득도 어느 정도 상승하던―시기였다. 여기에 1684년 천계령(遷界令, 반청운동세력을 제압하기 위해 내려졌던 해안봉쇄령)이 해제됨으로써 다시 은 유입은 재개되고, 제전과 사주전의 유통으로 해외 무역과 원격지 무역에서 얻어진 막대한 양의 부가 비로소 소민(小民)들의 부로 전환되어 농촌지역까지 활황의 모습을 띠게 될 수 있었다. 하지만 이후 활황의 그림자로서 인플레이션이 뚜렷해지면서 소득 양극화가 초래되기 시작했다. 자산소유 계층은 많은 이익을 볼 수 있었지만, 그렇지 않은 계층에는 타격이 불가피했다. 즉 대대적 동전 발행이 가져온 인플레이션 그리고 이어지는 양극화의 심화, 저자는 바로 이러한 분위기를 ‘건가성세(乾嘉盛世)’의 경제사적 의미로 읽어낸다.

제2부 제3장에서는 [건가성세에 이어지는, 경기 하강/불황기(상기 ④~⑤ 지점)를 고찰하는 시도로서] 이른바 ‘도광불황(道光蕭條)’의 구조를 살핀다. 전체적으로 청대 건륭연간에는 은의 유입과 동전 주조가 매우 활발했지만, 도광연간에는 동전 주조도 정체되고, 더욱이 은 유출이 가속화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기존의 지역시장은 강남지역을 중심으로 밀접히 연동되었지만, 각각의 시장에서 면방직업을 도입함으로써 수공업에 관한 한 강남지역의 우위는 점차 상실되어간다. 지역 간 교역이 둔화되자, 원격지 교역에 의거한 이익도 크게 줄어든다. 이익의 감소는 여타 상품에 대한 구매력 감소로 이어지고, 결국 이는 물가하락 현상으로 나타난다. 여기에 디플레이션을 더욱 부채질한 것이 화폐 유통속도의 저하였다. 즉 경기불황과 동전의 화폐 유통속도의 저하라는 두 측면의 중첩이 도광연간 불황의 원인인 셈이다. 이렇게 저자는 도광불황은 단순히 은 유출이라는 국제적 요인만으로는 설명하기 힘들며, 청대 중국의 시장구조 변화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분석해낸다.

동아시아 시장구조의
비교사적 분석


제3부 제1장에서는 동아시아 속의 청대 농촌시장과 그 비교대상으로서 일본 에도시대의 시장을 다룬다. 중국과 일본 모두 16세기 중후반 전 세계적 범위의 은 경제체제로 편입되면서 도시와 시장체계가 새로 형성된다. 16세기와 17세기 이후 양국 모두 소농경제가 안정되면서 여러 수준의 농촌시장이 발달하고, 도시·중간지대·농촌시장이라는 세 패턴의 시장구조를 갖추었다는 점을 서로 공유한다. 하지만 중국은 도시부도 발달하긴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현저한 발전을 구가한 쪽은 중간지대와 농촌시장이었다. 다시 말해 규모와 차원이 다른 각각의 시장경제권들이 수많은 동심원을 그리며 내부에서 끊임없이 확대되어가는 과정에 있었다. 중국 근세 강남지역 시장들도 행정 중심 지역인 현성에서 시작되어 점차 그 주변부 지역으로 확산되어간다. 반대로 에도시대 시장구조의 발전은 말단의 농촌 정기시[六?市]가 축소되어 자이고마치(在鄕町/在方町)가 발전하는 수렴형 쪽이었다. 이는 대도시 상품경제가 주변부인 자이고마치까지 확장되었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를 두고 근세 중국의 시장은 ‘분산적(decentralization)’, 근세 일본의 경우는 ‘수렴적(convergence)’이었다고 정리해낸다(동시대 유럽의 시장구조 역시 수렴적이다). 그리고 이러한 차이는 무엇보다 국가권력의 개입 정도에서 비롯된다는 입장이다. 명청시대 중국에선 국가권력이 시장에 개입하거나 이를 장악하려는 시도가 별로 없었던 반면, 근세 일본은 오다 노부나가 때부터 여러 방법을 동원해 상인층을 장악하려 했고, 때문에 조카마치(城下町)에 조닌(町人)이 집중되어 거주하는 일이 나타난다. 이를 통해 상업거래는 특정 장소에서 집중적으로 이루어지게 된다.

제3부 제2장에서는 지역경제의 구체적 사례로서 상해 교외의 작은 시진(市鎭)인 주가각진(朱家角鎭, 소주(蘇州)와도 가까운 강남 델타지역의 중심에 위치하고 있으면서, 전통적으로 미곡뿐만 아니라 면화와 면제품 등의 교역도 성행했던 곳이다)을 소재로 중국 농촌시장의 구조를 분석한다. 저자는 『주리소지(珠里小志)』는 물론, 청대 강남지역의 지방지나 문집, 일기, 농서 그리고 민국시기에 이루어진 농촌조사 등 다양한 사료를 토대로, 거래·매개수단·타 지역과의 네트워크 등의 관점에서 주가각진이란 공간을 하나의 경제단위로 파악하고, 그 경제생활의 구체적 실상을 재구성해낸다.

무엇보다 여기서 저자가 읽어낸 건 이곳―청대 ‘지역’―의 경제활동의 중층성이다. 즉 주각각진의 농민경제는 상품경제, 물물교환, 자급자족 등 여러 층위가 결합한 형태였다. 더구나 여기선 다양한 종류의 화폐와 도량형이 통용되었기 때문에, 주민들은 늘 어떤 교환수단을 사용할 것인지 끊임없이 고민해야 했다. 또 높은 소작료로 농민들에겐 화폐가 늘 부족했으며, 주가각진 자체의 물자 유통량 역시 크지 않아 근본적으로 진 내부에 통일적인 거래/유통 네트워크가 형성되기 어려운 환경이었다.

화폐 유통과 프로토공업화

청대 중국의 화폐는 지역체류 경향이 강해 중앙으로는 잘 집중되지 않았다. 결국 자본으로 전화되기보다 주로 사용가치를 표시하는 기능에 머물렀고, 획득하여 축적하기보다 재화를 구입하는 데 사용되기 쉬웠다. 상당수 농민들이 수공업을 통해 획득한 화폐를 생계보전이나 소비를 확대하는 데 사용하게 된 이유다. 지역에서 농촌 수공업을 통해 생활이 향상되었던 것은 분명하지만, 화폐가 한곳으로 집적되지 않고 농민들에게 균질적으로 산포되는 경향이 강했던 것이다. 이처럼 상당한 정도로 국가권력의 개입이 억제되거나 거의 방임인 상황 아래서 농민층이 능동적으로 상품생산에 참여함으로써 나타난 경제형태가 바로 면방직업 농촌 수공업이다. 저자는 이에 대해 제3부 제3장에서 프로토공업화(proto-industrialization, 원시/조기공업화)의 차원으로 접근해본다.

그러나 면방직업을 통한 수입 확대로 생계유지까지는 가능했지만, 생계수준 이상으로까지 수입을 확대하기는 어려웠다는 게 저자의 정리다. 앞서 정리했듯 지역사회 내부의 재화가 한곳으로 통합되기 어려웠다는 판단에서다. 즉 면방직업 농촌 수공업은 소농경제의 발전과 프로토공업화 자체에는 긍정적 영향을 미쳤으나, 이를 자본집적적 경제로 발전시키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스미스적 성장(아담 스미스가 『국부론』에서 언급한, 분업과 시장영역 확대로 인한 경제성장)’이 ‘근대적 성장’으로는 연결되지 못한 것이다. 저자는 시장권과 고립된 비독립적인 소수의 농가를 상품생산으로 편입시키고, 경영의 독립성을 제고시키는 조건을 형성했던 것이 이 지역의 농촌 면방직업에서 선대제(先貸制) 생산의 역할이었다고 결론 내린다.

오리엔탈리즘 너머

저자는 16세기 이후 중국과 서구가 전 세계적인 은 교역에 편입되었다는 점, 아메리카나 일본 은을 바탕으로 국내 상품경제가 발전했다는 점에서는 동일한 처지였지만, 실제로 중국과 서구의 경제질서 자체는 매우 이질적이었다고 본다.

중국은 화폐·시장·도량형 등 모든 차원에서 국가의 개입보다 민간의 자발적 질서가 중시되는 사회였고, 따라서 집중화된 상품경제보다 분산적인 상품경제가 발달했다. 화폐에 수반되는 경제적 부 역시 도시에 집중되기보다는 농촌 시진에 편재하는 경향이 강했다. 서유럽과 마찬가지로 면방직업이 발전했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농촌 시진을 중심으로 한 것이었으며, 도시 중심의 공장제 수공업으로는 발전하지 않았다. 대신 유럽 등과 달리 상업발달이 특정 지역(예컨대 도시부), 특정 계층(예컨대 신사층)에 집중되지 않았다. 도시/농촌, 신사/상인/농민층 모두가 다양한 방법으로 각각 상업화를 진전시켰고, 그 결과 이들 사이에 일종의 균형상태가 만들어졌다. 저자는 상업화가 상당히 진전된 청조사회에서 사회적·경제적으로 이렇다 할 근본적 변화가 일어나지 않은 이유를 이 지점으로부터 짚어낸다. 물론 여기서 중국과 서구가 서로 다른 경제질서로 발전한 것은 우열의 문제라기보다 상품경제의 전개방향이 서로 달랐다는 데서 기인하는 것이다.

세계경제 차원에서 중국의 근세를 재설정하되, 오리엔탈리즘의 시각을 경계/극복하며 달려온 저자의 한 시도는 이렇게 일단락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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