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
머리말
프롤로그 제1장 잊었으나 잊히지 않는 기억 과거사가 된 베트남전쟁·연구 범위와 대상 제2장 기회로서의 베트남전쟁 아시아내셔널리즘의 충돌·전쟁자본주의 시대의 개막·베트남전쟁의 국민국가적 무의식 제3장 베트남전쟁 담론 변천사 동질성 담론과 반공개발론, 1965-1968년·경제 담론과 휴전 반대론, 1969-1975년·타자성 담론과 기억의 공백기·탈냉전과 대항 담론의 심층 제4장 베트남전쟁의 재현 대상들 황색 거인의 신체 변화·베트콩의 정치성·한국을 노크한 베트남 난민 제5장 평화를 위하여 경합하는 두 목소리·사과의 윤리 에필로그 주·참고문헌·찾아보기 수록 도판 크레디트 총서 ‘知의회랑’을 기획하며 |
|
냉정하게 말해 이 문제―민간인 학살―는 양국 관계의 핵심도 아니나, ‘한강의 기적’을 일군 한국의 과거사로서 가해/피해의 사실 관계 규명을 넘어 전쟁자본주의가 만들어낸 복수의 가해자/피해자들이 필연적으로 얽혀 있는 지금 이곳을 이해하는 데 필요하다. 종전 후 50년이 흘러 역사의 인과율이 엮어낸 이 자리에 있는 자들은 누구인가. 우리는 어떻게 베트남전쟁과 연결돼 있을까. 양국의 전쟁에 얽힌 온갖 주체들이 만나는 해원의 난장은 불가능할까.
--- p.58 「제1장 잊었으나 잊히지 않는 기억」중에서 베트남 파병은 박정희정권이 한반도 바깥에서 가능한 모든 방법을 써서 반공민족주의를 운영한 한국의 과거사다. 한국은 한국전쟁이 남긴 냉전적 유산을 물려받은 적장자 역할에 충실했을 뿐 아니라 휴전론에 반대해 유산의 유효기간을 최대한 연장하고자 했다. 한국전쟁의 비극을 겪은 한민족이, 유사한 역사적 아픔이 있는 약소민족의 미래에 대해 취한 이 모순적 태도를, 이른바 영원한 적도 아군도 없는 국제정치로 합리화하지 않고, 전후의 폐허를 이기고 ‘성공한 한국’이 안고 있는 본질적 문제로 접근해야 하는 까닭은 여전히 우리가 냉전적 사고가 작동하는 분단 상황에서 살아가기 때문이다. --- p.62~63 「제2장 기회로서의 베트남전쟁」중에서 전쟁이 자본 축적의 기회인 것은 이상하지 않다. 16세기부터 18세기 사이에 전쟁은 유럽의 자본주의를 촉진했고, 이후 자본주의 발전 단계에서 제국주의는 자본의 국가화와 국제화를 모순적으로 동시에 추구했다. 경제는 정치에 유기적으로 융합되고 국가는 군대와 무기를 육성해 시장을 지키기 위해 타국을 침공했다. 제1차 세계대전을 겪은 이들에게 전쟁은 자본주의가 정상적으로 작동한 결과였다. 양차 세계대전 후 유럽에서 놀랍도록 정교하게 구조화된 산업 체계가 탄생했고, 미국 역시 베트남전쟁 초기에는 상당한 경기 호황을 경험했다. 단지 한국사에 새로운 자본 획득 기회를 제공하는 전쟁이 없었을 뿐, 한국전쟁 덕에 전후를 ‘성공적’으로 끝낸 일본이 또한 옆에 있었다. 한국전쟁의 최대 수혜자 일본과 1달러 전투수당을 받고 미군이 꺼리는 위험한 작전을 수행했던 한국을 대등하게 비교할 수는 없으나 현실적으로 전후의 ‘빈국’에 매월 들어오는 달러의 힘은 대단했다. --- p.108~109 「제2장 기회로서의 베트남전쟁」중에서 참전 초기에 정부는 참전의 당위성과 필요성에 집중했다. 모든 매체는 양국이 닮은꼴 전쟁에 휩싸이게 된 원인을 한국과 베트남의 역사적 유사성에 두고 한쪽의 미래를 다른 쪽의 미래로 떠들었다. 베트남이 아직 공산화되지 않았는데도 파병하지 않으면 한국이 공산화될 것처럼 위기감을 조성했다. 한국의 안보를 미군이 맡는 조건하에 국군을 사지에 보내야 하는 처지는 한국전쟁 당시 연합군에 대한 보은과 최초의 해외 진출 등의 명분에 가려졌다. 정작 사병들은 이러한 명분이 와 닿지 않았다. 파월은 원칙적으로 자원병을 받았지만 지원자가 부족할 때 ‘돈 없고 빽 없는’ 사병이 상급자의 권유를 거부하기는 쉽지 않았다. 더 큰 문제는 이들이 베트남에 대해 무지한 상태로 출국해야 했다는 것이다. --- p.145 「제3장 베트남전쟁 담론 변천사」중에서 또 황색 거인은 ‘미군보다 잔인하다’고 비난받았다. 탑을 지킨 한국군이 밀림에서 베트콩을 잡으면 미군은 엄지를 세웠지만, 정부군과 베트남인들은 눈살을 찌푸리고 외면했다. 동전의 양면인 용맹함과 잔인성이 한국군의 특징을 지시했다. 한국군의 ‘군사적 남성성’이 미디어에 재현되며 국위를 선양할 때도 패배하거나 부상당한 한국군은 보이지 않았다. 상처 입은 몸 대신 치료 후 휴식 중인 부상병, 용감하게 산화해 사후 계급이 특진되거나 훈장을 추서 받은 전사자를 보도했다. 이들의 군사 서비스 노동이 국내 경제를 부흥시키던 때, 햇볕에 그을린 젊은 한국군의 육체는 해외로 뻗어나가는 한국의 민족주의를 표상했다. 한국군은 보이지 않는 적을 상대하는 공포마저 정신력으로 통제 가능해야 했다. --- p.259~261 「제4장 베트남전쟁의 재현 대상들」중에서 오늘날 자본이 매개하지 않는 장소는 없다. 하지만 자본주의체제 안에서라도 우리는 조금 더 공정하게 기억을 다룰 수 있다. 많은 소설, 영화, 연극, 연구서가 보여주었듯이, 가해자의 위치를 자각한 주체가 반보쯤 앞서 담론을 주도하는 것은 이 문제에 관한 국민국가 내부의 진전된 사회적 합의를 촉발하는 데 필요하다. 국가자격 상실 청구 재판이 끝났을 때 〈별들의 전쟁〉의 어린 피해자는 망자의 세계로 돌아갔지만, 우리는 여전히 생존한 피해자들과 함께 살아가고 있다. 피해자의 손을 잡는 것은 복잡하고 어려운 정치적 ‘결단’이 아니다. 일찍이 2000년 캠페인 당시 한 독자는 이를 “자신의 잘못에 사과를 구하”는 ‘정의’로 정리했다. 다행히 시민의 윤리는 같은 길을 간다. --- p.369 「제5장 평화를 위하여」중에서 |
|
이 책의 문제의식,
어떤 적극적인 망각 어느덧 베트남전쟁(1955~1975) 종전 50년이 가까워지고 있다. 기억 저편으로 사라져버린 데도 그리 이상하지 않을 시간. 32만이 넘는 병력을 파병했고, 5천여 젊은이가 목숨을 잃었으며, 3만여 라이따이한까지 생겨났지만, 우리 기억 속 전쟁은 1992년 한베 재수교 후, 경협·여행/관광·결혼 및 노동인력 이주 등, 새로 추진되는 현실적 인연들 덕에 잊혀갔다. 정녕 전쟁은 잊혀져간 걸까, 그냥 우리가 잊어버린 걸까. 한국사회에서 ‘과거사’로서 전쟁은 점점 박제된 유물이 되어가고 있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면 베트남전쟁은 한국전쟁과 닮은꼴을 한 최근의 전쟁이었다. 한국인들도 냉전이자 열전인 6.25를 겪었다. 그런데 잊지 않으려고 매년 기념식을 열고 정치권까지 나서 기억 투쟁을 주도하는 한국전쟁에 비해, 베트남전쟁에 대한 사회적 시선은 한결같이 냉담하다. 1990년대 후반에 일어난 대항 담론?베트남전 참전에 대한 반성적 인식?도 베트남 당국의 개혁개방(도이머이) 정책에 한국이 적극 편승하면서 양국이 함께 묻어야 할 과거가 되어가고 있다. 이러한 태도는 모든 전쟁이 악이라는 일반론에서도 멀거니와, 국민국가에서 국민을 대리하는 국가권력의 위세만 주지시킬 뿐이다. 권력은 전쟁같이 아프고 불편한 기억은 되도록 잊는 것이 좋다고 설득한다. 이 책에서 저자가 베트남전쟁을 ‘잊힌 전쟁’보다 ‘잊은 전쟁’이었다고 주장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베트남전쟁은 통상 미국(및 남베트남)과 북베트남(및 남베트남민족해방전선, 일명 베트콩)의 전쟁으로 규정되어왔다. 하지만 저자는 이 책에서 이를 전쟁이 준 기회에 주목한 ‘한국의’ 베트남전쟁이라 부름으로써 이에 대한 시각을 전환해보고자 한다. 이는 베트남전쟁이 1960년대 한국의 근대화프로젝트에 미친 영향과 태평양-한국전쟁이 낳은 제국의 폭력, 조선인 학살, 동족상잔이라는 비극을 경제적 성장 가능성으로 희석시키는 심리적 전환점이 되었다는 데 주목하는 것이다. 이 책의 또 다른 문제의식, 이념보다 자본 태평양-한국전쟁기를 거치며 전쟁은 극렬한 이념 대립에도 불구하고, 대중적으로는 민족 공동체를 파괴한 재난으로 각인되었다. 이른바 전후문학이 앞장서 만들어낸 이러한 심상은 강력한 반공이데올로기의 이면에서 전쟁을 고발하고 평화를 추구하는 대중적 감성을 꾸준히 지지해왔다. 그런데 미상불 대한민국의 베트남전 참전이 기회로서의 전쟁이란 관점을 퍼뜨리기 시작한 것이다. 전쟁으로 자본을 축적한 일본이 그랬듯이 자본을 축적하는 방법에 대한 윤리는 부질없이 무너져 내렸다. 이 책은 이렇게 베트남전쟁이 한국전쟁 이후 대중의 기억 속에서 모순적으로 중층 결정되던 사회주의에 대한 공포를, 근거 있는 승공의식으로 바꾸어버렸다는 데 초점을 둔다. 요컨대 이 전쟁이야말로 우리 사회에 승공개발을 모토 삼은 ‘전쟁자본주의’를 선사한 결정적 계기로 작용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어느새 타국에서 일어난 전쟁 참전이 내 조국의 경제발전을 위해 불가피한 선택이었다는 분위기 속에서 40여 년이 지나갔다. 물론 그간 이에 대한 반작용이 없진 않았다. 본격적으로 이 책에서 다루게 될, 참전과 함께 생산된 각종 기록물, 영상 취재물, 문학작품 등은 주류 담론의 균열과 봉합, 해체의 지점을 끈질기게 붙들고 탐색했다. 1990년대 후반 시민사회를 중심으로 시작된, 전쟁범죄를 직시하자는 반성적 관점은 바로 이러한 반작용의 결과기도 하다. 그러나 저자는 이것이 문제의 종착지는 아니라고 강조한다. 한국의 베트남전쟁이 현재의 한베 관계보다 우리 내부의 무한 자본주의 옹호론에 미친 영향이 더 크고 중요하다는 사실을 거듭 지적하기 위해서다. 자본이 매개하지 않는 장소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오늘날, 보다 근본적인 성찰이 시작되어야 하는 지점이 바로 여기다. 이러한 맥락에서 이 책은 베트남전쟁의 국제적 성격보다, 전쟁이 한국사회 내부에 빚어낸 다양한 영향들에 먼저 주목한다. 또 이를 위해 관련 담론과 재현물들이 드러내는 ‘내적 논리’를 해부하는 데 집중했다. 이 책의 서사 ―기억과 기회 제1장은 도입부다. 한국에서 베트남전쟁이 잊었으나 잊히지 않는 전쟁인 이유와 한국의 과거사로서 이를 수용해야 하는 까닭을 한국전쟁이라는 프리즘을 빌려 설명한다. 참전-종전-한베 재수교-2000년-시민평화법정을 계기로 담론이 전환되는 형태를, 공식 담론 지배-참전 기억 투쟁-대항 기억 형성-시민 화해 실천으로 범주화하면서 각 단계에서 살필 주요 텍스트를 밝혀놓았다. 제2장은―앞서 문제의식에 밝혀둔 것처럼―전쟁자본주의의 관점에서 베트남전쟁을 반공개발의 기회로 삼았던 반공국민국가의 민족주의를 재고해본다. 제2의 한국전쟁인 이 전쟁에서 같은 것을 기대한 한국인들이 전혀 다른 베트남민족주의와 조우하며 느끼는 논리적 모순과 혼란한 심리를, 아시아내셔널리즘의 충돌 및 한국전쟁과 다른 진실로부터 회피하려는 국민국가적 무의식으로 분석한다. 공식 담론의 모순을 인지하면서도 이를 부인하고 속절없이 모순된 논리로 빨려 들어가 맞은 월남 패망이, 참전을 잊은 어느 날 한국의 과거사로 등장한 것은 역사적 필연이라는 것이 제2장의 결론이다. ―베트남전쟁 담론들의 변천사 제3장은 제1장에서 구분한 담론 변천사를 시기별로 자세히 살핀다. 이후의 담론에 의해 지양되는 참전 담론의 전체적 양상을, 1. 동질성 담론과 반공개발론, 2. 경제 담론과 휴(종)전 반대론, 3. 타자성 담론과 기억의 공백기, 4. 탈냉전과 대항 담론의 심층 파트로 나누어 분석한다. 한국사회에서 참전의 기억은 베트남전쟁을 기술한 교과서들만 보아도 여전히 1절의 이념과 2절의 성장론이 지배적이다. 경제성장 신화는 부단히 자랑하고픈 민족사였기 때문이다. 과거사로서의 기억은 여기에 끼어든 불청객일 뿐이다. 나아가 진영 대립의 논쟁점들을 짚지 않고서는 담론의 변천사를 입체적으로 파악하는 데 한계가 있으므로, 3절과 4절에선 월남 패망 후 한국사회가 난민을 수용하는 태도와 20년간 계속된 두 진영의 논리 싸움까지 두루 검토한다. 저자는 이 절들을 통해 이 문제의 중심에 놓이는 참전군인의 모순적 위치를 기존 연구자들이 편협하지 않게 다루고자 애쓴 까닭을 알게 될 것이라 말한다. 4절 끝에는 설문조사를 통해 한국사회를 경험한 국내 거주 베트남인들―결혼이주여성, 유학생, 이주노동자―의 베트남전쟁(과거사)과 한베 관계에 대한 인식 수준을 정리한 결과도 덧붙여 있다. 표본의 한계와 언어의 장벽 등이 있었지만, 저자는 현재 베트남 청년들이 양국 관계를 보는 시선 속에는 ‘자본친화적인’ 태도가 역력하다고 적시한다. ―베트남전쟁의 재현 대상들 제4장은 이 책의 문제적 주역들이 재현되는 관습과 문법을 분석한다. 한국군(황색 거인), 베트콩(작은 괴물), 난민(보트피플)이 그 주인공들이다. 황색 거인이란 단어에 스민 인종주의/제국주의적 태도는 단순히 민족적 자부심 정도로 치부할 성격이 아니다. 저자는 훗날 제기된 한국군의 잔학성이나 민간인 학살 논란은 한국군이 자신을 호명한 이 용어에 문제성이 함축되어 있다고 본다. 참전군인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여러 문제작들을 경유하면서 한국군이 베트남에서 하위제국주의를 욕망하며 수행한 젠더화된 군사노동의 본질을 직시해본다. 베트콩은 한국군이 황색 거인으로 존재하기 위해 필요한 절대적 타자였다. 베트콩이 시체로 물화(物化)되는 만큼 한국군은 자아를 부풀릴 수 있었다. 저자는 휴전으로 중지된 한국전쟁의 빨갱이 색출이 한국군 승전담을 통해 완료되는 담론의 효과를, 인도적 한국군 대(對) 체포되는 베트콩의 대비로 풀어나간다. 하지만 전쟁 당시 초라한 비체(卑體, abject)였던 사회주의는 승전으로 다시 사상의 지위를 회복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때 이들은 어느새 친자본적 관료가 되어 있다(과거 전설적인 지휘관이자 호치민의 수양딸이었던 베트콩 여성은 관광청 부청장이 되어 밝은 얼굴로 “과거의 적도 이제는 손님이 되었으니 서방세계와 관광으로 가까워지면 총을 맞대는 비극도 예방할 것”이라고 말한다). 한국의 공식적인 참전 담론은 이렇게 자본의 승리를 증명한 통일베트남의 비참과 마침내 성장을 택한 통일베트남의 개방 이야기에서 멈춘다. 월남 패망 후 한국에 들어온 난민을 재현하는 문법이 참전기의 한국 대(對) 베트남의 젠더 구도를 반복하는 것은 현재 우리가 보는 양국 표상과 동일하다. ―평화를 위하여 제5장은 2018년 ‘시민평화법정’ 이후의 시간을 다룬다. 베트남전쟁 시기 한국군에 의한―퐁니·퐁넛, 하미 마을―민간인 학살 50주기에 맞춰 가해국의 시민들이 마련한 생존자의 육성을 듣는 자리는 국민국가의 틀을 넘어서는 시민성의 확대라는 기념비적 의의가 있었다. 그리고 법정이 남긴 숙제를 받아 2021년 ‘극단신세계’가 올린 연극 〈별들의 전쟁〉에 나타난 ‘가해자의 피해자성’ 문제를 분석해본다. 가해자의 윤리는 긴 시간을 거쳐 이 문제가 도달한 최근의 쟁점이다. 문서들의 증언력과 피해자 증언이 한 자리에서 뒤섞인 두 법정은 무엇을 성취하고 무엇을 남겼을까. 경합하는 목소리들을 가르고 민간인 학살 논란이 도달한 지점을 짚어본다. |